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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선비가 웃목에 앉아 글을 읽는데 지붕이 새어서 물이 줄줄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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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흥이 담뿍 겨워 한바탕 읊느라니까 어제 저녁부터 밥을 못하고 삯바느질을 하느라고 아랫목에서 다뿍 찌푸리고 앉았던 마누라가 바가지를 박박 긁는다. 바가지를 긁으니까 서방님이 한다는 소리가 “이년! 배가 있으면 당장 타고 건너가서 청룡도로 목을 뎅겅 벨라!”하고 호령을 했단 말은 많이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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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거리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니 말이지 집이 새는 것을 보고 비류직하 삼천척을 읊는 것은(두 끼 굶은 가난한 선비로) 현대의 채플린을 능가할 만한 인생극의 배우다.(단 당시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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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비원 옥류천에서 흐르는 물이 나직한 바위 낭떠러지에 다다라 폭포(!)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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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에 주서(朱書)로 새겨놓았으되, ‘비류직하 삼백척 의시은하 낙구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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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동정심을 가지고 에누리를 하고 보아도 삼백 척이란 말은 못 붙일 말이요 십 척 가량이라고 보면 인심이 후한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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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대국인의 말씀을 시인하여 자굴(自屈)의 의(意)로 그렸다면 모르지만 기왕 풍을 치는 판이거든 비류직하 삼천척을 그대로 썼으면 되레 풍더분하지나 아니하였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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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었던지 가을이었던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오니까 그때 2년생을 데리고 개성 박연(朴淵)을 다녀온 R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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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싹 짜부라들어 아주 노인티가 완연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이순(耳順)을 넘었으되 적지 않게 멋이 있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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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시간에 들어오시더니 칠판에다 선 네 개를 써서 박연폭포의 약도를 그려놓고 아주 실감 있는 목소리로 “애들아! 박연폭포가 꼭 ×편네 ×문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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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선생님 말이 났으니 말이지 어느날은 새파란 남색 대님을 치고 오시었다. 애들이 씩씩 웃으면서 “선생님 남색 다님을……” 하니까 “얘들아 내가 겉이나 늙었지 맘도 늙은 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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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는 짓궂은 애들도 더 말을 못하고 킥킥 웃기만 하였다.(이것은 폭포 이야기의 부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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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애가라 폭포라면 코보들이 저희가 가진 세계제일의 하나라고 하는 자랑거리다. 기실 온전한 저희 것도 아니요 또 세계 제일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장관은 장관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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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귀(金富貴)나 백두산(白頭山)이보다 더 큰 물더미가 수백 척을 쏟쳐내려온다니 듣기만 해도 아이스크림 장사가 자살을 할 만하겠지.(본호 口繪[구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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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 좋아하고 남에게 이야기거리 되기 좋아하는 코보 박사 한 분이 (아마 미국에도 박사가 조선만큼이나 세월이 없는 모양이지) 통을 타고 그 나이애가라 폭포에서 낙차공식(落差公式)을 실험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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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미안하지만 백골이 영구자동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간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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