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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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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5
채만식
1
앙 탈
 
 
2
S는 때가 새까맣게 묻은 칼라를 뒤집어 대고 넥타이를 매었다.
 
3
와이샤쓰 소매도 뒤집어서 단추를 끼웠다. 가뜩이나 궁한 그에게 검정 세루 양복이 칼라 와이샤쓰를 짜증이 나도록 땟국을 묻혀 주었다.
 
4
어젯밤에 요 밑에 깔고 잔 양복바지는 입고 앉아 조반을 먹느라면 구겨질 것이 맘에 걸리기는 하나 주인 노파가 밥상을 가지고 올 터인데 잠방이 바람으로 문을 열고 받아들일 수는 없으므로 섭섭은 하지만 할 수 없이 집어 입었다.
 
5
혁대를 매며 내려다보니 줄은 칼날같이 잡혔으나 좀 비집은 데를 검정실로 얽어맨 자리와 구두에 닿아 닳은 자리에 올발이 톱니같이 내어다보였다.
 
6
바짓가랑이로 내려가서는 엄지발톱에 닿아 구멍이 난 언더양말이 남에게 보인다면 몹시 창피할 만큼 숭업게 발톱이 내어다보였다.
 
7
S는 한참이나 바지와 양말의 험집을 한심하게 내려보다가 한숨을 내어쉬며
 
8
‘뭘…… 양말은 구두를 신으면 보이지 않을 것이고 바지는 누가 쫓아와서 자세히 굽어다보나……’
 
9
이렇게 속으로 단념 반 위안 반의 강제 안심을 하고 옷을 집어 방바닥에서 묻은 먼지를 쓸어내렸다.
 
10
짜박짜박 발걸음 소리가 나며 뒷마루에 쿵하는 밥상 놓는 소리가 들렸다.
 
11
S는 가슴이 섬뻑하였다.
 
12
어제 해전에는 기어코 밥값을 얼마간 변통해 주마고 해놓고 아침에 일찍 나갔다가 자정 후에야 들어와서 잠을 잤으므로 아침에는 또 한바탕 졸경을 칠 텐데…… 생각하니 앞이 아득하고 얼굴이 화끈 달았다.
 
13
아침에 일어나서는 기침도 크게 하지 못하였고 세수를 하면서도 혹시나 말을 꺼내지 아니하는가 하고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는 주인 노파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얼핏 콧등에 물만 쥐어 바르고 도망질을 쳐 들어와 버렸다.
 
14
“밥상 갖다 놓았수.”
 
15
하고 주인 노파가 웬일인지 안마루로 가서 상냥하게 주의를 시켜 주었다.
 
16
S의 생각에는 밥상을 들여밀면서
 
17
‘돈.’
 
18
하고 손을 벌릴 줄 알았던 것이 아마 어제 아침에 그만큼 단단히 약속을 하였으니까 돈은 어김없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고 느긋이 수작을 붙이는 모양 같았다.
 
19
조반을 먹고 나는 동안이 비록 짧으나 그동안의 유여가 S에게는 퍽도 위안의 시간이 되었다.
 
20
그는 밥상을 집어들었다.
 
21
만 년을 가도 다름이 없는 염생이똥 같은 콩자반, 기스락물 같은 간장, 채전밭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날깍두기, 구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새우젓, 다 식어서 민둥민둥한 된장찌개…… 이것이 밥상 위에 놓은 찬이요 밥은 외수없이 검붉은 조각팥 밥에서 벗어나지 아니하였다.
 
22
S는 양복이 구기지 아니하도록 조심스럽게 다리를 뻗고 앉아 숟갈로 밥을 꺽꺽 팠다.
 
23
그래도 그렇잖던 입맛인데 당겨 넘어갈 리가 없었다.
 
24
다시 신발 소리가 나며 주인 노파가 한 손에 숭늉 그릇을 들고 문을 방긋이 열었다.
 
25
S의 타는 속도 모르고 주인 노파는 천 갈래 만 갈래의 주름살이 잡힌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교태를 띠며
 
26
“찌개가 식어서 어떡허우!”
 
27
하고 과분한 근심을 하였다.
 
28
S는 제발 그만두어 주었으면 싶게 거북하였다.
 
29
“뭘요…… 괜찮습니다.”
 
30
“아이그…… 그래두…… 자 이 뜨뜻헌 숭늉에 좀 놓아 자시우.”
 
31
“네.”
 
32
S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거북하며 그리고 속이 조여서 가슴이 막히는 것을 그대로 밥그릇만 꺽꺽 팠다.
 
33
노파는 아주 안타까와하는 말씨로
 
34
“고생이구려…… 다 저래두 고향에서는 귀동잘 텐데…… 객지에 나와서……”
 
35
하고 혀를 끌끌 찼다.
 
36
잠깐 동안 말이 없이 S는 밥을 먹고 노파는 바라보고─이 침묵이 S에게는 중죄수(重罪囚)가 형의 언도를 받으려는 찰나와 같이 무겁고도 괴로왔다.
 
37
“물 부우서 다 자시우.”
 
38
하고 노파는 여전히 상냥한 말로 건넸다.
 
39
“네 다 먹지요.”
 
40
“그런데…… 저…… 돈 좀 됐수?”
 
41
본문대로 들어갔다. 지금껏 한 것은 연극의 서막이었었다.
 
42
S는 고개를 숙인 채 들지를 못하였다.
 
43
밥은 그대로 먹고 있으나 S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이 S의 입으로 기어들어갔다.
 
44
그러나 언제까지든지 아무 대답도 아니할 수는 없었다.
 
45
대답을 하여야 할 터인데 대답할 말은 없었다.
 
46
겨우 고개를 들고 주인 노파를 치어다보는 S의 얼굴에는 괴로운 미소─아니 그것은 미소가 아니라 근육의 경련이다― 그 근육의 경련이 무렴하여서 상기된 얼굴로 기어올랐다.
 
47
“저…… 거시키……”
 
48
“안됐수?”
 
49
주인 노파의 얼굴은 일순간에 와락 변하고 목소리는 무쇠를 깨칠 것 같이 쨍쨍하였다.
 
50
S는 고개를 움칫 숙여버리고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였다.
 
51
“어쩌잔 말이요 그럼? 응?”
 
52
“………”
 
53
“글쎄 어쩔 셈이란 말이요? 응.”
 
54
“………”
 
55
“차일피일 이리 미루구 저리 미루구 오늘 된다 뭣 내일 된다 일 주일을 기다려라……”
 
56
S는 할 말이 궁하여 푸념을 곱다시 듣고만 있다가 겨우 고개를 들고
 
57
“이거 보세요. 그런 게 아니라.”
 
58
하고 사정을 하려는 것을 주인 노파는 톡 쏘며 핀잔을 주어버렸다.
 
59
“듣기 싫어요. 무에 그런게 아니란 말이요? 발써 멫 달채요? 알기나 허우? 석 달채요 석 달채…… 석 달 동안에 동전 한푼 구경이나 시켰수? 염체가 무슨 염체야 글쎄.”
 
60
“허기야 역정두 나시겠지만 제 말을 좀 들어보세요.”
 
61
“밤낮 들어야 그 말이 그 말인데 듣기는 뭘 들어요…… 월급 자리를 못 구했네, 뭣 집에서 돈이 오네, 친구한테 취허네…… 원 사람이 염체두 좋지.”
 
62
“여보세요, 그러실 것이 아니라 제 말을 들어보세요…… 제가 무슨 돈벌이를 허게 된 것을 않고 들어앉았는 것두 아니구 집에서는 부쳐 준다 부쳐 준다 허기만 허구 안 보내 주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
 
63
“글쎄 그런 사정을 날더러 어쩌란 말이요? 월급자리가 있건 없건 집에서야 돈을 보내 주건 말건 나는 밥장사를 해먹는 테니깐 밥값을 받아야만 허잖소? 낸들 땅을 파다 대우? 어데 가 도적질을 해 오? 댁이야 어찌 됐건 먹은 밥값은 주어야 나두 이 짓이나마 해먹지?”
 
64
한푼의 수입 없이 옳은 말이다. S의 말은 더욱 궁하여진다.
 
65
그러나 S는 어서 이 곤경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고 싶은 일념밖에는 없었다.
 
66
“그러니까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전엣 일은 그렇게 된 것이구…… 어제 돈을 좀 취허랴고 친구를 찾아갔다가 만나지를 못했읍니다. 그러니까 오늘 다시 찾아가서 기어코 얼마간 우선 변통해다 드릴께 오늘 하루만 더 참어주세요…… 오늘은 실수 없겠읍니다.”
 
67
주인 노파는 반신반의하는 듯이 S의 눈치를 살피다가 저으기 믿기는 하면서도 그래도 한 자락은 깔아놓느라고 홱 돌아가서 종종 걸어가며
 
68
“몰르우 나두 인제.”
 
69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무슨 소린지 모르게 두덜거리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70
S는 한증가마에서 뛰어나오는 것처럼 정신없이 벽에 걸린 양복저고리를 꿰어 입고 구두도 채 신을 겨를이 없이 하숙집을 빠져나왔다.
 
71
문 밖 길거리로 나서니 쫓아오던 귀신이나 떼어버린 것같이 마음이 시원하고 깊은 가을의 가벼운 햇볕이 무한히 상쾌하였다.
 
72
가을은 한참 깊었다.
 
73
가회동 막바지에 양편 언덕에는 나무와 풀들이 다 각기 제멋대로 단풍을 갈아 입고 맑은 햇볕을 마음껏 쬐고 있었다.
 
74
하늘에는 보이랴마랴 하는 엷은 구름이 한두 장 떠 있을 뿐 발돋움을 하여 손으로 만져보고 싶게 감감히 높아 보였다.
 
75
거리에도 가을빛이 깊어졌다.
 
76
지나는 사람들의 입은 옷이 벌써 그리하고 가게 앞에 놓인 과실이 그러하였다.
 
77
더구나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다 스프링을 입었다.
 
78
S는 가회동 막바지에서 재동 네거리까지 내려가는 동안에 스프링 입은 사람을 셋이나 만났다.
 
79
그럴 때마다 S는 조끼도 못 입은데다가(세루가 제철이 아닌 것은 아니나) 스프링도 없이 더구나 바싹 굽어다보면 험집투성이가 된 낡은 양복을 입은 자기의 모양다리에 어깨가 저절로 오므라지는 것 같았다.
 
80
그는 벌써 하숙집 일은 생각도 하지 아니하였다.
 
81
마음에 걸리는 것은 굴레 벗은 말같이 허전허전한 자기의 양복 태도요, 뒤축이 닳고 볼에다 반창고를 붙인 낡은 로이드식(式) 구두요, 뒤집어 댄 칼라였었다.
 
82
더우기 매초롬한 여학생이나 신여자와 마주칠 때에는 피하였으면 좋기는 하겠으나 눈이 손해이니 그러하기는 싫고 그대로 가까이 다가서서 지나가면서─곁눈으로 저편의 곁눈을 살펴가면서─도 발을 구르고 싶게 마음은 안타까왔다.
 
83
S는 재동 네거리에 서서 잠깐 망설였다.
 
84
어디로 갈까? 사방으로 훨훨 돌아다니며 쇼윈도우도 굽어다보고 은행으로 가서 아는 친구에게 담배도 얻어 피우고 여학생 얼굴 구경도 하고 싶었으나 자기의 꼴새를 생각하고는 발길을 동편으로 돌려 동관에 있는 M이라는 잡지사로 향하여 갔다.
 
85
S가 거의 매일 가서 놀고 밤이 깊도록 노는 것이었었다.
 
86
M사에서 역시 S와 같이 일이 없이 놀러 오는 친구들과 하루 종일 데굴데굴 누워 굴며 잡지도 뒤적거리고 신문장도 읽고 여학생 평 기생 평 공연한 사람의 단점 들추기 같은 것으로 해를 보냈다.
 
87
다른 사람들이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일어서는데 따라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갈 곳은 없었다.
 
88
밖에 나와 빙빙 돌다가 다시 들어갔다.
 
89
자정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헤어져 갔다.
 
90
인제는 S 자기도 꼭 가야만 하겠는데 하숙집으로는 덜미를 잡혀도 갈 수는 없었다.
 
91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갈 데도 없었다.
 
92
겨우 한 가지 M사에서 그대로 자는 도리밖에는 다시 없는데, 그러자면 사원인 P에게 전후 사정 말을 하여야지 무턱대고 그대로 잘 수는 없었다.
 
93
그러나 곧 죽을지언정 하숙집에 밥값을 주지 못해서 들어가지 못한다고 자기의 궁한 이야기는 남에게 하기가 싫었다.
 
94
꾸물꾸물하는 동안에 P는 이부자리를 펴기 시작하였다.
 
95
S는 흔연하게 작별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96
속이 빈데다가 가을밤의 싸늘한 바람이 몹시 추웠다.
 
97
뱃속은 염치를 모르고 시장하였다.
 
98
관현을 넘어 재동 네거리에 있는 설렁탕집 앞을 지나가려니까 누릿한 냄새가 코로 술술 들어오고 혀 밑에서는 신침이 사정없이 괴어 나왔다.
 
99
그놈을 그저 파 양념과 고춧가루를 듬씬 넣어가지고 국물을 훌훌 마셔가면서 한 그릇 아니 두어 그릇 먹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같이 구미가 당겼다.
 
100
어느 구석에 눈먼 돈 십 전이나 들어 있나 하고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만져보았으나 원래 돈이라는 것을 구경한 지가 하복을 잡혀서 춘추복을 찾아 입은 때 밖에는 더 없는데 웬 게 있을 택 없었다.
 
101
하숙집에 무엇 또 잡혀 먹을 것이나 없을까 하여 보았으나 심지어 와이샤쓰까지 잡혀 먹었으니 남은 것이래야 이불밖에 더는 없고, 그러나 그것은 가지고 나올 수도 없고 또 가지러 들어갈 수도 없으니까 단념하는 수 밖에 없었다.
 
102
대관절 배가 고픈 것은 고픈 것이려니와 어디 가서 누워 잠을 자야 할 터인데…… 생각을 아무리 짜도 머리를 두르고 갈 만한 곳은 없었다.
 
103
그의 발길은 저절로 가회동 하숙집으로 향하여졌다.
 
104
대문은 굳이 잠겼었다.
 
105
대문이나 열렸으면 살그머니 들어가서 잠을 잔다든지 이불이라도 짊어지고 나와서 팔아라도 먹겠지만 대문이 잠겼으니 열어달라다가는 공연히 귀신덩어리를 만나 경을 칠 테고 경을 칠 테고 경뿐이 아니라 창피하게 나가란 말까지 들을지 모르는데 차마 문을 쩔벅거릴 용기가 나지 아니하였다.
 
106
그는 문 앞에 서서 두루두루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취운정으로 올라갔다.
 
 
107
중앙학교 뒤 선원전 담 밑 잔디밭 위에 양복저고리를 뒤집어 펴고 누운 S는 아무리 잠을 자려고─모든 것을 잊어버리고,─잠을 자려고 애를 쓰나 밉상으로 잠은 오지를 아니하였다.
 
108
춥기는 겨울 이상으로 추웠다.
 
109
불이라도 한 무더기 놓고 싶으나 댈 성냥이 없고 또 불을 놓다가는 사람이 쫓아올 테니 그도 못할 노릇이었었다.
 
110
배가 아니 고팠으면 그대로 누워서 견딜 대로 견디겠는데 뱃속이 창자까지 쓸어낸 것같이 시장하여 그 때문에 추위도 한층 더하였다.
 
111
오 전만 있어도 호떡 한 개에 뜨근뜨근한 차를 먹을 수가 있는데……
 
112
가만 있자……
 
113
‘내가 지금 길거리로 내려가서 공교하게 오 전 한푼이 흘려 있어…… 그놈을 주워가지고 호떡집으로……’
 
114
이렇게 생각하니 단침이 꼴딱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115
‘─가만 있자 십전짜리 두 푼을 줍는다면…… 설렁탕…… 옳지 설렁탕을 먹는다……’
 
116
아니 일원짜리를 주우면? 일 원 가지고는 셈이 닿지 않고 십 원? 아니 십원짜리 열 장…… 그렇지 열 장 백 원…… 그놈이면 우선 무엇보담도 고놈의 여우 같은 노파한테 석 달 밥값 육십 원을 팩 내던져 주고 그 굽실거리는 꼴을 좀 보고 청목당에 가서─아차 밤이 늦었지…… 그러면 우선 설렁탕이나 두어 그릇 먹고…… 그리고 양복을 한 벌……
 
117
양복은 해 입자면 모자라겠는걸…… 오백 원은 주워야겠는걸……
 
118
한 천 원만 주우면……
 
119
그것도 쓰자면 얼마 못 쓰겠는걸…… 집은 한 채 사야지……
 
120
한 만 원?
 
121
만 원 만 원…… 그래도 모자라……
 
122
십만 원?
 
123
백만 원?
 
124
‘억만 원─척 버틴다―’
 
125
찬바람이 오싹 지나가며 S의 공상은 깨어졌다.
 
126
억만 원을 쓸 공상을 하면서 오 전이 없어 창자를 움켜쥐고 한뎃잠을 자는 자기의 행색이 한심하다 못하여 고소가 나왔다.
 
127
‘─그러나 나도 언제나 한 번은 호화롭게 살아보아야 한 텐데……’
 
128
그렇게 될 것도 같은데……
 
129
누구가 몇백만 원만 상속을 시켜 주면 그놈을 가지고 사회사업도 하고 그러고 집을 한 채 짓는데…… 그럼 종상이 그 따위는 어림도 없다……
 
130
아쉰 대로 십만 원만─ 아니 만 원만 있어도 위선 옹색은 면하겠는데…… 아니 천 원만…… 아니 백 원만…… 아니 십 원만…… 아니 일 원만…… 아니 위신 오전만이라도…… 아하……”
 
 
131
이튿날 아침.
 
132
S는 엷게 든 잠이 찬바람에 흔들려 깨었다.
 
133
양복에 묻은 티를 이(虱) 잡듯이 털어 입고 우물에 가서 세수를 하였다.
 
134
세수하기가 바쁜 것은 아니나 남보기에 세수를 하러 일찌기 올라온 것처럼 하느라고.
 
135
그는 가회동 주인집 앞을 피하려고 중앙학교 뒷산으로 해서 계동으로 내려와 또다시 M사로 갔다.
 
136
그는 자고 난 입맛이라 배가 고픈 것은 그다지 느끼지 아니하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137
M사에서는 P가 아직 이부자리 속에서 자고 있었다.
 
138
S는 염치 불구하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139
P는 그 서슬에 잠이 깨어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쓰며
 
140
“꼭두새벽에 이게 웬 일이요?”
 
141
하고 인사 겸 물었다.
 
142
S는 얼굴이 화끈하면서도
 
143
“꼭두새벽? 지금이 멫신데 그러우? 여닯시가 지났는데.”
 
144
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145
“여닯시가 새벽이 아니구 머야?”
 
146
“아이들뽀이.”
 
147
“흥 남 말은 잘 허는구려.”
 
148
S는 속으로 낯이 간지러웠다.
 
149
낯이 간지러우면서도 자기가 취운정에서 잠을 자고 내려온 줄은 모르고
 
150
일찌기 일어나서 기동하느니라고만 생각하는 P가 우습기도 하여 허허 하고
 
151
한바탕 웃었다.
 
152
“웃기는 왜?”
 
153
“좀 우스운 일이 있소.”
 
154
“무어이?”
 
155
“아니 나 혼자 우순 일이 있어서……”
 
156
P는 이불을 걷어가지고 일어나 앉았다.
 
157
“대관절 웬 일이요. 오늘은? 열시가 지나야 일어난다는 사람이?”
 
158
“응 누구 좀 만나려구 새벽밥을 해달래서 먹구 갔다가 만나지두 못하구……”
 
159
“그래서 치워서 코끝이 저렇게 새파랗구려?”
 
160
“응…… 새벽 바람이 어찌나 매운지……”
 
161
“무엇? 취직 문제 때문에?”
 
162
“응.”
 
163
“그거 참 어떻게 허우? 어서 해결이 돼야지.”
 
164
“글쎄, 허너니 그 걱정이야.”
 
165
“하숙밥값은 어떻게 하우?”
 
166
“좀 조르긴 하지만……”
 
167
“발써 여러 달일 텐데 그래두 인심이 괜찮헌걸?”
 
168
“응…… 내가 잘러먹잖을 줄은 아니까……”
 
169
“대관절 취직은 어찌 되는 모양이요? 안되는 모양이요?”
 
170
“아마 안될 모양인데……”
 
171
“그럼 어떡허우?”
 
172
“그래 걱정이지.”
 
173
“그게 참 큰 문제야…… 하여간 우리 게(蟹)꼬리만헌 상식만 가지고 각 방면으로 대구 구직을 헌다는 것이 잘못이니까.”
 
174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겠지……”
 
175
“사회의 결함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176
“그러면?”
 
177
P는 S의 눈치를 살피면서 좀 거북한 듯이
 
178
“S군 같은 사람은─물론 S군 하나만을 가리킨 말은 아니고 공장이나 일판으루 한 번 들어가는 게 썩 좋아.”
 
179
하고 다시 S의 낯을 살펴보았다.
 
180
그러나 S는 다만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밖에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181
“모르겠소? 이것은 내가 하필 S군한테 주의를 선전허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위선 다른 직업을 얻기보담 쉽잖소? 그래 가지구 S군이 거기서 딴 의식(意識)을 가지게 된다면 더구나 좋구……”
 
182
S는 고개를 쌀쌀 내둘렀다.
 
183
P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184
“물론 S군 생각에는 왜 너는 네가 먼점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야 옳은 일인데 괜히 너는 편하게 붓대를 가지구 놀면서 너와는 딴판인 날더러 가라느냐…… 이처럼 불쾌하게 여기기두 쉽겠지만 나두 실상 이 잡지가 다른 보통 잡지라면 지금이라두 다 내던지구 공장이나 일판으로 가겠소만…… 그러나저러나 이 잡지사두 형편이 아마 얼마 가지 못할 눈치니까 오래잖아서 나두 그렇게 되겠지.”
 
185
S는 아무리 하여도 P의 의견을 찬성할 수가 없었다.
 
186
그는 속으로 항의하였다.
 
187
‘노동? 괴롭고도 천한 그 짓을? 내가? 연애─누군지 모르나 어데선지 지금 나를 기다리는 듯 곱게 있을 미지의 애인은 어떻게 하고? 그러고 돈 많은 호화로운 생활은 어떻게 하고? 이 고운 손이 고운 얼굴이 노동판에 가서 썩어? 안될 말이다.’
 
 
188
S는 몸을 녹여가지고 M사를 나섰다.
 
189
우연만하면 P에게 돈을 몇십 전 빌려 달라고 하려 하였으나 그러한 이야기가 있은 뒤라 더구나 입이 열리지 아니하였다.
 
190
그러나 애꿎은 배는 사정없이 고파 견딜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191
길거리로 나서기는 하였으나 별로이 갈 곳은 없었다.
 
192
오고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치어다보며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었으려니 상각하매 누구나 붙잡고 사람을 살리라고 울고 싶게 안타까왔다.
 
193
먹을 것이 놓인 가게 앞을 지날 때에는 손이 저절로 그곳을 향하여 뻗쳐지는 듯하였었다.
 
194
그는 시장한 허리를 졸라매면서 거의 무의식중에 황금정에 있는 직업소개소에까지 당도하였다.
 
195
전에는 거의 날마다 다녀보았으나 S에게는 만족한 것이 없었으므로 얼마 동안은 다니지도 아니하였다.
 
196
행여 무엇이나 입에 맞은 떡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허실삼아 가보았다.
 
197
벌써 구직꾼들이 빽빽이 모여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었었다.
 
198
늙은이 젊은이 남자 여자 어린애 노동자 해서 한 오십 명이나 모였는데 모두들 밥을 한 그릇 주어 가지고는 고맙다는 말도 아니할 만큼 얼굴빛이 시들어 보였다.
 
199
이윽고 ‘소식’ 의 문이 열리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200
“─노동자 모집…… 함경북도 금광인데 가는 여비는 이 자리에서라도 대어주고 그곳에 가서는 일의 능률을 따라 일급 일 원 오십 전으로부터 삼 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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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꾼 속에서는 고요하던 물결이 흔들리며 여러 가지 소리가 흘러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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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늙은 것이야……”
 
203
“힘이 있어야 하지……”
 
204
“금전판으로 잘못 갔다가 죽는다데……”
 
205
“삯은 많이 준다만……”
 
206
“여기서 그대루 지겟벌이나 해먹지……”
 
207
아무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208
계원은
 
209
“없소? 갈 사람 없소?”
 
210
하고 외쳤다.
 
211
이때에 없는 기운에 힘을 내어
 
212
“있소.”
 
213
하고 나서는 사람이 양복신사 S였었다.
 
214
구직꾼들이나 계원의 동그래진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S는 사무실로 유유히 걸어들어갔다.
【원문】앙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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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