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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전기(女人戰紀) ◈
◇ 모시에 어린 추억(追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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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10.5~
채만식
1
女 人 戰 紀[여인전기]
2
2. 모시에 어린 追憶[추억]
 
 
3
1
 
4
단호박을 많이 두고 팥고명도 많이 두고 한 지름한 호박떡을 크막한 사 기함에 담아 뚜껑 덮고 무우동치미 담은 보시기 한옆에 곁들여 쟁반에다 받쳐 들고 사랑으로 나와 무료히 앉았는 학생에게 권한다.
 
5
"시장허겠수. 저녁 될 때꺼지 이거라두 좀 자시우."
 
6
"온 손수 이렇게…… "
 
7
말주변이 없는 학생은 여러 말로 겸사며 치하 같은 것을 할 길이 없어 그저 민망해하는 것으로 인사와 대답을 삼을 따름이었다.
 
8
"낮차루 아마 내려 들어오든 길인가본데 정거장 앞인들 이새 무슨 변 변히요 기 거리니 있을 리 없구…… 즘심을 그래 못 자섰겠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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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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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보겠지. 객지에 나서면 다 절루 고생이야…… 어서 좀 드우. 덥혀 내오려다 호박떡은 더워선 더워 맛이요, 차선 찬맛이란 다 길래…… ""……… ""어서 드우. 내 들어가 물 떠 내보내리다. 하루 열 낄 먹어두 때때루 속이 헛헛허구 헐 나이에 조옴 그래 시장했어! 쯧쯧!"
 
11
"그럼 먹겠읍니다."
 
12
학생은 합 뚜껑을 벗겨놓고 저깔로 뜨기 시작한다. 시장한 사람이 아니라도 그 먹음직스런 품이 대하는 이의 구미를 돕기에 족한 것이 있었다.
 
13
"고향이 어디요?"
 
14
"공주(公州)올시다. 충청남도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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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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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듭
 
17
"공주, 공주…… "하고 뇌 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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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댁엔 양친 다 구존해 기시우?"
 
19
"네."
 
20
"여러 형제에?"
 
21
"제 아래루 누이 하나허구 동생 둘이 있구 헙니다."
 
22
"퍽 번족한 댁이구려!…… 그럼 학생이 맏이면 양친께서 춘추가 그 대지 높으시진 아니허시겠지?"
 
23
"아버님께서 마흔아홉이시구, 어머님이 갓쉬흔이세요."
 
24
학생은 일변 먹으면서 이야기 대답을 하면서, 또 일변 속으로는 어떤 노인인지, 보도록새 인자스럽고 점잖고 그러고 말마디가 퍽도 유식하다고 탄복을 하여 마지않는다.
 
25
"그러구 참 성씨는?"
 
26
"추(秋)가올시다."
 
27
"추씨?"
 
28
반문하는 옥동댁의 음성이 약간 높았기도 하려니와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놀람과 동요의 빛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놀람은 처음의 놀람과 달라 확 연히 무엇을 깨달은 데서 온 놀람이요, 따라서 그 동요임에 틀림이 없었다.
 
29
"추씨, 오 추씨."
 
30
옥동댁은 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자기의 그런 놀라함과 동요의 빛을 그에게 뜨이지 아니한 것이 자못 다행하였다.
 
31
갈데없었다. 마지막으로 성이 맞았다. 나이도 정녕 그 어림일 테였다. 고향이 공주였다. 그 나머지야 물어보나마나한 노릇이었다.
 
32
옥동댁은 안으로 들어가 하인 귀동아범을 시켜 닭을 한 마리 살진 놈으로 잡게 한다. 그러고 몸소 나서서 찬수 분별을 한다.
 
 
33
2
 
34
한 필의 모시가 옥동댁의 무릎 위에 반만 펼쳐져 놓였다.
 
35
저녁을 치르고 아래청에서들도 마지막 동자질까지 다 마치고 제각기 제 구덕으로 헤어져 가 일찌감치들 자리에 들었고 하여, 아직 초저녁이건만 집안은 자는 듯 조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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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둔 어머니는 좋은 사윗감과 아울러 농에 넣어 보내줄 옷감 또한 작지아니한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시방은 전시. 평화시절처럼 화려하고 많은 옷 을 장만한다는 것이 부질없기도 하려니와, 가사 욕심을 부리자 한들 물자가 없는데야 무가내하였다. 오직 장롱 속에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뒤져내어 쓰는 대로 쓰는 것이요,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 옥동 댁의 무릎 위에 펼쳐져 놓인 한 필의 모시도 그런 사정에서 시방 깊이깊이 간직되었던 장롱 밑으로부터 꺼내어진 것이었다.
 
37
모시는 그러나 막상 소용이 될 수가 없었다. 삼십 년이나 된 한 필의 모시였다. 모시보다 더 질긴 피륙도 삼십 년이면 성하지가 못할 것이거늘 그 약한 모시올이랴.
 
38
담뱃잎을 틈틈히 넣어 싸고 싸고 하여 두어 왔고, 가끔가끔 거풍을 시킨것은 물론이었고, 그러다 신약으로 방충제를 이용할 줄 알면서부터는 그 법을 정성스레 시행하였고…… 그 덕에 좀만은 감히 침노를 하지 못하였다. 한 자리도 좀이 삭은 곳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감이 저절로 삭아져 버리고 말았다. 조금 힘주어 잡아당기면 필필 갈라지도록 삭아졌다. 거기에다 빛깔은 누렇게 절었고. 해서 도저히 지금의 옷감으로는 소용이 될 수가 없고 말았다.
 
39
삭고 빛 전 한 필의 이 모시가 비록 옷감으로서는 소용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지만, 모시 그것에 어린 옥동댁의 삼십 년 ─ 시집 와서부터만 쳐서도 삼십 년의 ─ 길고 다난한 추억은 한점 한끝도 가실 바가 없었다. 모시 가는 올마다 추억은 면면히 그대로 어리어 있는 것이었었다.
 
40
사랑에 유하는 학생한테 잠깐 나갔던 문주가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면서 들어온다.
 
41
"달이 인전 퍽 밝을 텐데 흐렸어, 어머니!"
 
42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서다가 어머니가 램프불 아래서 난데없는 모시를 무릎에 펼쳐놓고 만지는 것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43
"웬 모시유 어머니?"
 
44
"오냐…… 학생 나그네는 어떻드냐?"
 
45
"낼 보아예지 알죠!…… 이런 모시가 다 있수?"
 
46
"삼십 년이나 묵었으니 그럴 밖으 더 있느냐?"
 
47
"아유! 삼십 년인다치문 어머니, 나보담두 열 살두 더 먹었구랴?"
 
48
"그렇단다. 이걸 느이 진외조할머니께서 손수 모시를 째서 올을 날아서 짜서 깨끗이 마전을 해서 나 시집 오는 농에다 넣어주셌더란다!…… 다른건 다아 없애면서두, 이 모시 한 필일랑은 손을 아니 대구서 알뜰히 건 살해 왔 드니…… "
 
49
"그런 걸 무엇허러 끄내우 어머니?"
 
50
"너 시집갈 농지기루 치마저고리나 잡아볼까 허구서 끄낸 것이 못 쓸까 보다 아무래두…… "
 
51
"누가 시집 간대나 머."
 
 
52
3
 
53
"그럼 시집 아니 가구 호박이라구 혼자 늙니?"
 
54
"인제 오빠가 개선해 돌아오구, 결혼허구, 그러구 나문 나두 어련히…… "
 
55
"네 오라비야 돌아올 날이 조만이 있느냐? 또 살아서 돌아오길 어찌 기약 허며!"
 
56
"걱정허실라 말래두! 인제 수훈갑(殊勳甲)에 금치 훈장 타가지구서 떵떵 거리 구 돌아올 때만 보아요!"
 
57
"그랬으면야 조옴 좋으랴만서두!"
 
58
"오빠 편지에두 그렇게 썼잖었수?"
 
59
"아뭏든지 넌 명년이 졸업이구 허니 먼점 시집을 갈 도릴 허는 게 내 생각엔 졸 상부르다만."
 
60
"나 시집 가구 없으문 어머닌 어머니 혼자서 어떡허구?…… 오빠가 와 보군, 아 너 이 기집애, 그샐 못 참아 어머니 혼자 떼내던지구서 시집을 갔어 ? 이 천하에 본초 없는 것 같으니로고 허문서 막 욕허문 어떡허우? 에구 무서…… "
 
61
"……… "
 
62
"어머니, 어머니?"
 
63
"오냐."
 
64
옥동댁은 대답이랑 얼굴이랑 다 건성이고, 무릎의 모시자락을 만지작 거리 면서 딴 생각에 정신이 팔린다.
 
65
"어머니, 무얼 또 그렇게 생각허우?"
 
66
"오냐."
 
67
"에이 갑갑해."
 
68
문주는 엔간히 어머니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고 웃목으로 넌지시 물러 앉아 책을 펼쳐든다.
 
69
서너 장이고 읽고 났을 때였다.
 
70
"문주야?"
 
71
어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들면서 이상히 곡진한 음성으로 딸을 부른다.
 
72
"어머닌 가끔 그렇게 시춤허구 있는 거 난 싫드라!"
 
73
"일러루 가차이 온?"
 
74
문주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무릎 앞에 와서 앉는다.
 
75
"문주야?"
 
76
"응?"
 
77
"내가 오늘밤따나 맘이 유난히 산란허구나!"
 
78
"왜, 어머니?"
 
79
"느이가 노상 듣구퍼하는 이야기 있지?"
 
80
"어머니 시집살이하든 이야기?"
 
81
"시집살이하든 이야기, 쫓겨가든 이야기, 서울루 가서 지나든 이야기, 느이 아버진 돌아가시구 느일 데리구 고생살이하든 이야기…… ""그거 시방 다아 이야기허우?"
 
82
"그걸 좀더 있다 네 오래비 장가나 들구 헌 담에 느이 남매 앉혀놓구 자초지종 다아 이야길 하쟀든 것이 네 오래비는 저렇게 나갔구…… 우환중에 내가 이렇게 병이 잦구 허니, 그러다 잿불 사라지듯 깜박 사라지는 날이면 느이한테 한이 될까 보구나. 그러니 너라두 우선 들어두었다 이담에 네 오래 비한테 두 들려 주구 허두룩 해라, 응?"
 
83
"어머니 입으루 오빠한텐 또 한번 허문 더 좋지 머."
 
84
"어디서버틈 이야기 허두를 끄낼거나?"
 
85
혼잣말로 그러면서 옥동댁은 지그시 눈을 감는다. 한참 동안이나 그러고있다 퍼뜩
 
86
"그때두 마침 요때처럼 추석 머리 였 드니라…… "하고 이야기를 내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한 팔자 기박한 여인이 삼십 년 의기 나긴 세월을 두고 그의 운명과 싸워 오던 설화는 마침내 풀리어나오던 것 이었었다.
【원문】모시에 어린 추억(追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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