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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를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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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
채만식
1937년 소년에 연재한 채만식의 소설, 어머니를 찾아 낯선 곳을 떠돌아다니는 한 소년의 모험을 다룬 작품이다.
1
어머니를 찾아서
 
 
2
이름은 부룩쇠.
 
3
부룩송아지 같대서 부룩쇠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아닌게아니라 조금 미련하고 고집은 대단하고 기운은 무척 세어서…… 그리고 또 노란 머리가 곱슬곱슬한 것이라든지 넓죽한 얼굴이 끝이 빨고 두 눈방울은 두리두리 코는 벌씸한 게 뒤로 젖혀진 것이라든지 흡사 부룩송아지 같기는 했읍니다.
 
4
그래서 주인영감은 가끔 부룩쇠가 미련을 부린다든지 고집을 쓴다든지 해서 답답증이 나면
 
5
“이녀석 대가리에 밤만씩한 뿔만 나보아라. 당장 그때는 코를 꿰어놀테니.”
 
6
하고 농담삼아 꾸지람을 곧잘 합니다.
 
7
성(姓)은 모릅니다. 부룩쇠 저도 모르거니와 다른 사람도 아무도 모릅니다. 성뿐 아니라 나이도 몇살인지 모릅니다.
 
8
“부룩쇠야, 너 몇살 먹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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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른들이 물으면 부룩쇠는
 
10
“몰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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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도 있고 그래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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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녀석아 네 나이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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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14
“잊었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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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그러나 또 어느때는 나이를 물으면 열한 살이라기도 하고 열두 살이라기도 하고 껑충 뛰어서 열아홉 살이나 뚝 떨어져 다섯 살이라고 대답을 해서 남을 하하 웃기곤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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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모두 그럴 것이 부룩쇠는 본래 이 마을 아이가 아닙니다.
 
17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치면 여섯 해 전, 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늦은 가을 어느날 저녁때였읍니다.
 
18
지금 부룩쇠네 주인영감인 윤호장 영감이 물방앗간을 둘러보려고 지 우산을 받고 나오니까 물방앗간 처마 밑에 가 웬 낯모르는 어린아이가 비를 흠씬 맞아 가지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읍니다. 그애가 바로 부룩쇠였읍니다.
 
19
윤호장 영감은 물도 보려니와 또 이런 때면 걸인들이 물방앗간으로 모여들어 불을 놓고 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 둘러보려 나온 참이라 마침 웬 어린아이가 거지 같지는 아니해도 이 마을 아이도 아닌데 그러고 있으니까 미심쩍어서
 
20
“너 웬 아이냐.”
 
21
고 물어보았읍니다.
 
22
부룩쇠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큰 눈만 끄먹끄먹합니다.
 
23
“웬 아이야? 너 어데 사냐?”
 
24
윤호장 영감이 잼쳐 물으니까 부룩쇠는
 
25
“저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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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제가 오던 행길 쪽을 턱으로 가리킵니다.
 
27
“이녀석아 덮어놓구 저기면 어데야?”
 
28
“몰라유.”
 
29
“몰라? 허, 그놈 참! …… 그런데 여기는 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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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유.”
 
31
“서울? 허, 그놈이야! …… 이놈아 서울 가는 놈이 왜 남의 물방앗간으로 왔어?”
 
32
“치워서유. 배고푸구……”
 
33
“옳지 칩구 배고푸면 서울이 물방앗간이더냐? 허허 그놈 참.”
 
34
윤호장 영감은 마음을 놓았든지 이렇게 놀리더니
 
35
“너 집두 없이 떠돌아다니는 아인가 분데 우리집에 와서 있을련? 애기나 봐주구……”
 
36
하고 물읍니다.
 
37
“네.”
 
38
어린 부룩쇠는 밥과 뜻뜻한 잠자리를 생각하면서 냉큼 대답을 합니다.
 
39
“그러면 날 따라와.”
 
40
부룩쇠는 비를 도로 맞으면서 윤호장 영감의 뒤를 찰래찰래 따라섰읍니다.
 
41
“이름이 무엇이냐?”
 
42
가면서 윤호장 영감이 물읍니다.
 
43
“부룩쇠유.”
 
44
“부룩쇠? 그놈 원이 생기기를 부룩송아지같이 생겼구나.”
 
45
하고 윤호장 영감은 돌아다보면서 허연 수염 속으로 웃습니다.
 
46
“그래 이름은 부룩쇠고…… 성은?”
 
47
“몰라유.”
 
48
“몰라? ……성두 모르구 아주 상놈이로구나! …… 그럼 나이는 몇 살?”
 
49
“몰라유.”
 
50
“나이두? 허, 그놈 참.”
 
51
“그때 우리 어머니가 다섯 살이라구 그랬세유.”
 
52
“이놈아 그때가 언제야?”
 
53
“몰라유. 그때 고구마 삶어주면서……”
 
54
“허허 그놈 참……좌우간 쓰기는 쓰겠다.”
 
55
윤호장 영감은 끝엣말을 혼자 이렇게 중얼중얼합니다. 못나고 숫두름한 게 괜찮다는 말이지요.
 
56
“너 이녀석 둬두구 옷해 입히면 살끔 달어나서는 못쓴다 응.”
 
57
윤호장 영감은 큼직한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에 이렇게 다집니다.
 
58
“네 안 달어나유.”
 
59
“안 달어난댔겠다?”
 
60
“네.”
 
61
이렇게 해서 부룩쇠는 서울을 가던 중간에 무엇하러 서울길을 나섰는지 그것은 차차 알려니와 윤호장 영감집에 꼬마동이로 들어왔읍니다. 그런지가 벌써 여섯 해가 된 것입니다.
 
62
처음은 윤호장 집에서 그때 세 살 먹은 애기를 업어주었읍니다. 그러다가 애기가 자라니까 재작년 부터는 아궁이마다 군불때기, 쇠물쑤기, 소꼴 먹이기, 그리고 나무하기, 안팎 심부름하기, 이래서 지금은 거진 장정 몫을 하고 있읍니다. 이것이 부룩쇠의 내력의 중간 한토막이고.─
 
 
63
오늘도 부룩쇠는 솔가리(솔잎나무)를 그들먹하게 한 짐 해서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와 학교 앞 행길로 지나다가 나뭇짐을 길 옆에 받쳐놓고 쉽니다.
 
64
아직 이른봄이라 날이 덥지는 아니해도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와서 부룩쇠는 얼굴에 땀이 배었읍니다.
 
65
그래 꽁무니에 찬 삼베수건을 뽑아 땀을 씻고 있노라니까 그림처럼 네모반듯한 학교에서 땡땡 종소리가 나고 이어 조무래기 아이들이 와 떠들면서 운동장으로 쏟아져나옵니다.
 
66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에서 달음박질도 하고, 공도 차고, 철봉대에 가 매어달리기도 하고, 목마도 타고, 개중에는 싸움도 하고 하지만 재미있게 놀고 있읍니다.
 
67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까 부룩쇠는 저도 그 속에 뛰어들어가 한바탕 휩쓸려서 놀고 싶었읍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 아니면 거기 들어가 놀지도 못하고 또 아이들이 노는 데 들여주지도 아니한다는 것을 아니까, 작기나 하면 부득부득 대고 들어가겠지만 차마 못하고 서서 바라보기만 합니다.
 
68
그뿐 아니라 부룩쇠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일상 학교에를 좀 다녀보고 싶었읍니다.
 
69
사람이 공부를 해야 된다든가, 또 공부를 해야 좋다든가 그런 것은 가르쳐 주는 이도 없고 알지도 못하고 해서 모릅니다. 그러나 제 또래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모자를 쓰고 날마다 학교에 가고 가서 공부라는 것을 한다니까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래서 부룩쇠도 학교에를 다녀보고 싶은 것입니다.
 
70
그런데다가 또 동무가 많고 그애들과 맘대로 장난하고 뛰고 재미있게 놀 수가 있으니까. ─
 
71
학교에서는 조금 뒤에 또 종소리가 땡땡 나더니 아이들은 그렇게 뿔뿔이 헤어져 요란스럽게 떠들고 뛰고 달리고 하던 것을 뚝 그치고 모두 패패 ‘나란히’ 를 해서 교실로 들어가 버립니다. 운동장은 갑자기 텅 비고 조용해서 짝 소리도 없읍니다.
 
72
그때 마침 학교에서 강선생님이라고 하는 이가 나왔읍니다. 강선생님은 윤호장 영감네 바로 이웃에 살아서 부룩쇠를 잘 알고 그래 가끔 만나면 귀도 잡아당기고 우스운 소리도 하고 하는 입니다.
 
73
“이놈 부룩쇠냐? 이리 오느라. 코 꿰자.”
 
74
강선생님은 헤죽이 웃고 섰는 부룩쇠를 보고 전처럼 우스운 소리를 한마디 하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75
“성상님.”
 
76
부룩쇠는 부리나케 나뭇짐을 짊어지고 강선생님을 따라가면서 긴하게 부릅니다.
 
77
“왜 그래?”
 
78
“저, 나유우.”
 
79
“그래서?”
 
80
“학교 좀 댕깁시다.”
 
81
“머?”
 
82
강선생은 웃기는 웃어도 좀 뜻밖이라는 듯이 돌아봅니다.
 
83
“그놈 부룩쇠가 못헐 소리가 없구나?”
 
84
“왜유?”
 
85
“이녀석아 남의 집 꼬마둥이 사는 놈이 학교를 어떻게 다닌다구 그러니!”
 
86
“꼬마둥이는 못 댕기나유?”
 
87
“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뒤를 거두어서 보내주어야지.”
 
88
부룩쇠는 더 어렸을 때에 눈에 익은 어머니의 얼굴이 선연히 머리에 떠오릅니다.
 
89
“어머니나 아버지가 보내주어야 해유?”
 
90
“아무렴.”
 
91
부룩쇠는 그동안 희미해졌던 어머니를 찾아갈 생각이 불현듯이 솟아 올랐읍니다.
 
 
92
부룩쇠는 네 가지 큰 소원이 있읍니다. 첫째 모찌떡을 한번 실컷 먹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마을에 있는 가게 앞을 지나노라면 유리로 뚜껑 덮은 목판 속에 그놈 모찌떡이 말코 같은 놈, 똥그란 놈, 갸름한 놈, 네모 반듯한 놈, 모두 가지런히 들어 있는 게 어떻게도 먹고가 싶은지 침이 꿀꺽 넘어가고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기를 일쑤 합니다.
 
93
그래서 부룩쇠는 추석하고 설명절이면 윤호장 영감님한테 돈을 10전씩 타는데 그때면 그놈을 쥐고 부리나케 그 가게로 가서 모찌떡을 사먹습니다. 그러나 10전에 겨우 다섯 개 주는 것, 먹을 때는 꿀같이 맛이 있어도 다 먹고 나면 간에도 아니 차서 차라리 아니 먹으니만도 못했읍니다. 그래서 부룩쇠는 생각에 모찌떡을 아무리 먹어도 한 백 개 먹어도 싫지 아니할 것 같고, 그렇게 한 백 개고 이백 개고 마음놓고 맘껏 한번 먹어보고 싶었읍니다. 다음은 차를 한번 타보고 싶은 것입니다.
 
94
마을에서 한 시오리 되는 곳에 정거장이 있는데 더러 심부름이 있든지 해서 정거장에를 갔다가 그놈 시커머니 기다란 차가 식식거리며 들이닿고 윙 소리를 깜짝 놀라게 질러주고는 달아나고 하는 것을 보면 저도 한번 떡 타고 앉아 보았으면 재미가 아주 고소할 것 같아 다리가 절로 우쭐거려지곤 합니다.
 
95
그 다음은 학교에 다녀보고 싶은 것.
 
96
그리고 그 다음이 제일 요긴한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은 것입니다.
 
97
부룩쇠가 어머니를 찾으려고 한 것은 벌써 오랜 일로 집에 있을 적부터였읍니다.
 
98
제 말대로 그때 어머니가 고구마를 삶아주고 다섯 살이라고 하던 그 무렵입니다.
 
99
어느날……
 
100
이 날도 부룩쇠는 나가 놀다가 저녁 때 집으로 돌아와 사립문께서부터
 
101
“엄마 ―”
 
102
부르고 들어섰읍니다. 부룩쇠는 언제든지 밖에 나가 놀다가 들어오면 맨먼저 이렇게 어머니를 찾습니다.
 
103
그래서 엄마가 방에서든지 부엌에서든지 얼핏
 
104
“오냐.”
 
105
하고 대답을 하면 부룩쇠는 달려가서 어머니한테 매어달려 응석도 부리고 또 놀던 이야기도 종알종알 하고 합니다. 이때같이 마음이 놓이고 좋은 때는 없읍니다.
 
106
그러나 만일 어머니가 대답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아니하면 그만 맥이 풀리고 노여워서 울상을 해가지고 들에든지 이웃에든지 쫓아가 기어코 어머니를 찾아내고서야 맘이 놓이고 속이 후련합니다.
 
107
그날도 뒷동리에 갔다 거기서 여러 아이들하고 놀던 끝에 싸움이 나서 좀 얻어맞고 한 원정 이야기를 할 양으로 어머니가 까맣게 보고 싶어 그렇게 부르면서 들어섰는데 어머니는 대답도 없고 보이지도 아니했읍니다.
 
108
그래 대번 울상이 되어 대뜰로 올라서면서
 
109
“엄마.”
 
110
하고 다시 부르니까 어머니 대신 할머니가 방에서
 
111
“에미 어데 가구 없다.”
 
112
합니다. 어머니가 집에 없는 것은 노엽기 짝이 없읍니다. 부룩쇠는 비죽비죽 울면서 도로 나가 동리집으로 들로 어머니를 찾아다녔으나 필경 만나지 못했읍니다.
 
113
집에서는 엉엉 울고 저물게 들어오는 부룩쇠를 할머니가 전에 없이 곰살갑게 달래며 밥을 주고 아버지는 부룩쇠가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니까 때려주고는 휙 나가버렸읍니다.
 
114
부룩쇠는 할머니가 달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고 내처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어버렸읍니다. 잠결에 몇번이나 여느때 하듯이 어머니의 젖꼭지를 만졌지만 어쩐지 이상스러웠읍니다. 이튿날 새벽에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보니까 어머니는 그래도 안 보이고 아버지만 그때야 돌아 오셨읍니다.
 
115
아버지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이를 북북 갈며
 
116
“그 년놈을! 그저 그 년놈을 잡기만 잡으면 그저……”
 
117
하고 누구를 욕을 하는데 부룩쇠는 무슨 속인지를 몰랐읍니다.
 
118
그러고 부룩쇠가 또 어머니를 찾다가 우니까 아버지는 어제 저녁처럼 야단도 아니하고 때려주지도 아니하고 되레 사탕을 주면서 살살 달랬읍니다. 사탕이 좋아서 부룩쇠는 그때만 어머니를 잊어버리고 울음을 그쳤읍니다.
 
119
그 뒤로 어머니는 영영 없었읍니다. 부룩쇠는 아주 풀이 죽어버렸읍니다. 어디 나가 놀다가 들어올 때도 사립문 밖에서 엄마 하고 부르기는 하지만 제깐에도 시름이 없어 소리도 크지 아니했읍니다.
 
120
할머니가 어머니 대신 안고 재워주고 밥도 주고 옷도 입혀주고 하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그래 줄 적만큼 편안하고 맛있고 좋고 하지 아니했읍니다.
 
121
아버지도 전보다는 더 귀애해 주었지만 그것도 어머니가 있는 것만 못했읍니다.
 
122
그런데 그러던 아버지마저 어느날
 
123
“서울 가서 엄마 데리구 오께 그새 울지 말고 있으라.”
 
124
고 이르고 나가버리더니 영영 또 오지 아니했읍니다. 부룩쇠는 할머니와 단둘이서 더욱 쓸쓸히 지냈읍니다. 더구나 밥을 못 해먹을 때가 많아 그런 때면 한결이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곤 했읍니다.
 
125
그렁저렁 설이 지나고 또 추석명절이 지나서 훨씬 있다가 들에서 벼를 들일 무렵에 부룩쇠는 어머니를 그리다 못해 서울로 어머니를 찾아 나섰읍니다.
 
126
서울이 어디가 붙었으며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으나 다만 동리 앞으로 난 신작로를 그대로만 가면 서울이란 말은 들었기 때문에 그런 줄만 여기었던 것입니다. 조금 먼 동리로 마을이나 가는 푼수를 했던 것입니다.
 
127
그러나 아무리 가도 그리고 해가 저물어도 서울은 나서지 아니했읍니다. 그래 할 수 없이 들 가운데 새막에 가서 울고 자고 이튿날은 길 옆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캐어먹으면서 또 서울을 갔읍니다.
 
128
이렇게 사흘이나 가도 서울은 나오지 아니하고 마침내 비가 와서 오도가도 못하고 물방앗간 옆에서 떨고 있다가 윤호장 영감님을 만나 오늘날까지 지내온 것입니다.
 
129
그동안 부룩쇠는 어머니 그리는 생각을 잊은 적은 없읍니다. 다만 서울로 찾아간다고 나섰다가 혼이 나서 서울 가기가 그리 만만치 아니한 줄을 알고 또 일에 골몰하느라고 어머니를 찾아갈 생각은 좀 희미해졌어도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그런 마음은 되레 더해 갔읍니다.
 
130
그러던 차에 우연히 강선생님더러 학교를 다니겠다고 하다가 어머니 이야기가 나고 어머니가 보내주어야 한단 말에 부룩쇠는 불현듯이 다시 어머니를 찾아갈 생각이 나게 되었읍니다.
 
131
어머니를, 그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나고 그래서 그렇게 만나면 가고 싶어하는 학교도 보내줄 것, 또 모찌떡도 먹고 싶은 대로 흠씬 사줄 것, 이렇게 생각하니 부룩쇠는 한시라도 더 견딜 수가 없읍니다.
 
132
그러마 서울을 가자면 차를 타야 한다는데,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 타고 싶던 차까지 타게 되니 더욱 좋기야 하지만 그러나 차 탈 돈이 있어야지 하는 이 돈 생각을 하매 그만 맥이 풀렸읍니다.
 
 
133
부룩쇠가 강선생님을 만나서 다시 어머니를 찾아갈 생각이 골똘해진 뒤로 한 달이 지난 4월 그믐께 어느날 한밤중. ─
 
134
부룩쇠는 차표 사시요 하는 소리가 들리게 바쁘게 손에 땀이 나도록 꼭 쥐고 있던 5전박이 10전박이 섞어 60전밖에 아니 되는 돈을 주먹째 차표 파는 철망 앞에다 좌르르 쏟아놓으면서
 
135
“서울 차표 한 장만 주시유.”
 
136
했읍니다. 이 돈은 부룩쇠가 그새 한 달 동안 마음을 독실히 먹고 주인네 나무를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해 모아 닷새에 한번 혹은 엿새에 한번 한 짐씩을 장만해 가지고 새벽으로 산에 와서 져다가 장터에 지고 가서 팔아 모은 돈입니다.
 
137
서울 찻삯이 얼만지 알지도 못하고 다른 동무 아이들한테 물어보았어도 아는 아이가 없고 그렇다고 어른들한테 물었다가 소문이 나면 윤호장 영감이 처음 데리고 갈 때에 그렇게 다지었고 부룩쇠도 달아나지 아니하겠다고 다짐을 둔 일이 있는지라 분명 못가게 할 것 같아 그렁저렁 돈이 60전이 되매 이만큼이나 많으면 되겠거니 짐작하고 오늘은 마침내 밤중을 타서 정거장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138
차표 파는 사람은 돈을 세어보더니 철망으로 내어다보면서
 
139
“안데, 도 이루원이시부종 모자라.”
 
140
하고 돈을 도로 내밉니다. 부룩쇠는 그만 기가 딱 막힙니다.
 
141
“돈이 그것뿐이유 네…… 그냥 한 장만 주시유.”
 
142
부룩쇠는 혀짧은 소리로 애걸하듯 합니다.
 
143
“제, 바세기 사래미! 고론 마리 오데 이소!”
 
144
하다가 차표 파는 사람은 또 한번 내어다보더니
 
145
“반뾰도 안데…… 반뾰도 사무시부종 모자라 사무시부종.”
 
146
하고 손을 싹싹 내저읍니다.
 
147
“나 인제 갖다 갚으께 한 장만 주시유.”
 
148
“바세기 사라미! 이러 오부소 가 가.”
 
 
149
(연재 제3회 缺[결])
 
 
150
부룩쇠는 그렇게 한눈을 팔고 걸어가다가 정거장 앞 세브란스 병원께로 있는 세거리의 교통정리하는 한가운데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151
부룩쇠는 교통순사한테 등덜미를 잡혀 웬 영문인 줄도 모르고 끌려갔읍니다.
 
152
순사는 부룩쇠를 잡아다가 막 세워놓고는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는데 부룩쇠가 보기에는 그런 중에도 속으로 우스워 견딜 수가 없읍니다.
 
153
꼭대기에서 찰칵찰칵 소리가 나는 생철 조각이 올라붙었다 내려붙었다 하는 쇠몽둥이를 세워놓고 그놈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팔을 내젓고 딸랑딸랑소리가 나게 발을 구르고─그리고 자동차, 전차, 자전거, 인력거가 모두 죽 모여섰다가는 풀려가고.
 
154
잠깐 이 짓을 하더니 순사는 부룩쇠를 보고 눈을 부라리면서
 
155
“왜 이놈아, 정신을 못 차리구 그래?”
 
156
하고 꾸중꾸중합니다. 그러나 부룩쇠는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읍니다. 그래도 아마 무슨 잘못이 있길래 그러나 보다고 얼핏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그래유 하고 빌었읍니다.
 
157
순사는 또 한참 그 우스운 짓을 하고 나선, 다시 그러면 경을 쳐준다고 나무란 뒤에 놓아줍니다. 부룩쇠는 서울이 무섭고 까다롭기는 한 데라고 생각했읍니다.
 
158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부룩쇠는 한참 망설였읍니다. 좀 들어가서 어머니가 있나 찾아보고 싶지만 그렇게 크고 좋은 집에서 살 것 같지도 아니하고 또 집이 원체 크고 해서 겁도 났읍니다.
 
159
그래 끼웃끼웃하노라니까 쇠꼬챙이로 울타리를 한 저 집안에서 웬 키 크고 코 크고 눈이 노랗고 뭐 참 이상스럽게 생긴 사람 하나가 양복 입은 긴 다리로 겅중겅중 걸어나오고 있읍니다.
 
160
부룩쇠는 옳다 되었다 싶어 얼핏 그 앞으로 다가가서는 지붕 꼭대기 치어다보듯이 고개를 쳐들고
 
161
“여보시유.”
 
162
하고 불렀읍니다.
 
163
그러니까 그 사람은 허리를 구부려가지고도 그래도 모자라든지 고개를 숙여 이렇게 부룩쇠를 들여다보더니
 
164
“배 고픕니까? 하고 섭섭합니다.”
 
165
하면서 호주머니 속을 부스럭부스럭 만지다가 오전박이 한푼을 꺼내 줍니다.
 
166
돈 달라는 거지아이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부룩쇠는 영문을 몰라 두릿두릿하다가 저도 손을 펴서
 
167
“돈 여기 있어요.”
 
168
하고 돈을 내밀었읍니다.
 
169
“그럼 어디 아픕니까? 병원 가고저 합니까?”
 
170
그 사람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킵니다.
 
171
“아니우. 저 우리 어머니요.”
 
172
“아, 어마님 찾어왔어요? 아, 어마님 네네 형님 어마님 이 안에 계십니까?”
 
173
“형님은 없어요.”
 
174
형님 어마님이라니까 부룩쇠는 형님과 어머니란 말로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175
“형님은 없구 어머니만 서울 왔어요.”
 
176
“네네 어마님 서울 왔어요? 서울 와서 이 안에 있읍니까?”
 
177
이런 답답이라니, 이편에서 그 안에 있느냐고 물어보려는 것인데 되레 물으니……
 
178
“나는 몰라유. 몰라서 시방 찾어다녀유.”
 
179
“아, 네네 어마님 어데 있는지 몰라요? 섭섭합니다. 나도 형님 어마님 몰라요.”
 
180
부룩쇠는 할 수 없이 돌아서서 조금 가다가 이번에는 과실 파는 가게를 끼웃이 들여다보았읍니다.
 
181
검정복을 하고 앞치마 같은 것을 두른 사람이 그게 무슨 소린지
 
182
“이랏샤이마세.”
 
183
하고 쑥 나오더니
 
184
“무엇 드리까요?”
 
185
하고 물읍니다. 부룩쇠는 구경도 못하던 여러 가지 과실이 물이 들을 듯이 놓여 있는 게 먹고도 싶기는 했읍니다.
 
186
“아니유 저 우리 어머니 여기 왔어유.”
 
187
“머? 늬 어머니가 누구야?”
 
188
그 사람은 대번 태도와 말이 변해집니다.
 
189
“아따 우리 어머니 말이유.”
 
190
늬 어머니가 누구냐라니 머 어머니가 둘이나 셋이나 열이나 있는 법도 있나요.
 
191
“허 참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이 녀석아 늬 어머니가 코가 어데 가붙었다구 날더러 묻는 거야?”
 
192
“우리 어머니두 코는 여기가 붙었어유.”
 
193
부룩쇠는 손가락으로 제 코를 가리키면서 애써 대답을 합니다.
 
194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부룩쇠는 도무지 속을 모르겠는데, 그 사람은 뱃살을 거머쥐고 웃는 것을 보다못해 돌아서버렸읍니다.
 
195
아마 미친 사람이 아니면 부룩쇠네 어머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룩쇠는 생각했읍니다.
 
196
그 다음에는 웬 헙수룩하게 생긴 부인네 하나를 보고 물어보았읍니다.
 
197
“여보시유, 저 우리 어머니 어데 있는지 몰라유?”
 
198
이렇게 물으니까 그 부인네는 부룩쇠를 짯짯이 치어다보더니
 
199
“늬 어머니가 누구냐?”
 
200
하고 되레 물읍니다. 그 부인네는 말이랑 퍽 상냥합니다.
 
201
“우리 어머니 말이유…… 서울 왔는데 내가 찾어왔어유.”
 
202
“오 그래! 그렇지만 덮어놓구 늬 어머니라니 내가 늬 어머니를 어떻게 아니?”
 
203
“몰라유? 못 부았어유? “
 
204
“못보구말구 간에 내가 알지를 못헌다.”
 
205
“제기 참! 어데 가 있는고! 다들 모른다니……”
 
206
부룩쇠는 그렇게 묻는 사람마다 모른다니까 맥이 풀려 혼자 두런거립니다.
 
207
그 부인네는 보기에 하도 딱했던지 가려다가 도로 멈춰 서서
 
208
“늬 어머니가 서울을 왔으면 어느 동리서 산다드냐? 그거나 알어야 찾어가지.”
 
209
하고 걱정을 합니다.
 
210
“서울 살어유.”
 
211
“글쎄 이애야, 서울두 분수가 있지 그냥 덮어놓구 서울이라면 아니?”
 
212
“그래두 서울이유.”
 
213
그 부인네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혼자 혀를 쯧쯧 차고 돌아섭니다.
 
214
부룩쇠는 그래도 싫어 아니하고 끈기있게 집집마다 끼웃거리며 어머니를 찾으면서 남대문 안을 들어섰읍니다. 남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그는 놀랐읍니다.
 
215
서울이 정거장 앞에서 보던 고 도래만인 줄 알았더니 또 이렇게 넓은 데가 있고 그러니 어머니를 찾자면 퍽 힘이 들겠다고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216
그러나 한편, 배도 고팠읍니다. 딴은 벌써 조반때가 훨씬 지나 점심때가 되어오는데 부룩쇠는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아니했읍니다. 그래 좌우간 돈은 육십 전이나 있겠다 어데 국밥집이 없나 하고 가면서 둘러보았지만 그런 것은 도무지 보이지 아니했읍니다.
 
217
부룩쇠는 큼직한 호떡 세 개를 뜨뜻한 물을 마셔가면서 다 먹고 일어섰읍니다.
 
218
한 개만 더 먹고 싶었으나 어머니를 찾을 동안 육십 전 있는 것을 별러서 사먹어야겠다고 양이 좀 덜 찬 것을 그대로 일어선 것입니다.
 
219
부룩쇠는 호떡집도 찾을래서 찾은 것은 아닙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도록 돌아다니다가 문득 보니까 시골 정거장 거리에서 보던 그런 호떡집이 있기 때문에 요행 들어갔던 것입니다.
 
220
호떡집에서 그렇게 웬만큼 요기를 하고 나와 문앞에 서서 인제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웬 거지아이 하나가 부룩쇠를 짯짯이 치어다보더니
 
221
“이애” 하고 말을 붙입니다. 부룩쇠가 호떡집 앞에 어릿어릿하고 섰으니까 생김새허며 벌써 시골 아인 줄 알고 만만히 보았던 것입니다.
 
222
“너 어데 사니?”
 
223
부룩쇠가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거지아이가 재차 물읍니다.
 
224
“어데? 나 아무데두 안 살어……”
 
225
부룩쇠는 집이 없으니까 이렇게 대답할밖에요.
 
226
“하하 나허구 같구나…… 시굴서 왔지.”
 
227
“그래.”
 
228
“뭣허러?”
 
229
“우리 어머니 찾으러……”
 
230
“늬 어머니? 늬 어머니가 도망했니?”
 
231
“도망? 아니 몰라.”
 
232
“서울 어데 사는데?”
 
233
“그냥 서울이야.”
 
234
“해해 저런 바보 자식 보게……”
 
235
“아냐 그냥 서울이야.”
 
236
“만날 찾어보아라.”
 
237
하고 놀리다가 거지아이는 무엇을 까막까막 생각하더니
 
238
“너 돈 있지?” 하고 물읍니다.
 
239
부룩쇠는 있으니까 있다고 했읍니다.
 
240
눈만 빠꼼하지 얼굴도 손도 입은 옷도 다 새까만 거지아이는 부룩쇠가 돈이 있다고 하니까 통조림통을 달랑달랑하면서 바싹 다가섭니다.
 
241
“정말 돈 있어? 어데?”
 
242
부룩쇠는 손바닥을 펴보입니다.
 
243
“나 호떡 하나만 아니 두 개만 사주면 늬 어머니 찾어주지.”
 
244
이 말에 부룩쇠는 아주 귀가 반짝 뜨입니다.
 
245
“정말?”
 
246
“응.”
 
247
“네가 우리 어머니 아니?”
 
248
그새 물어보는 데마다 모른다고 했는데 이 애가 찾아준다니까 반갑기는 반가와도 한편으로는 좀 미심쩍어서 다져보는 것입니다.
 
249
“그럼!”
 
250
“보았니?”
 
251
“응.”
 
252
“어데서?”
 
253
“저기서.”
 
254
“저기 어데?”
 
255
“피, 그걸 가르켜주면 너 혼자 찾어가게?”
 
256
“그럼 호떡 두 개 사주께 가르켜 줄늬?”
 
257
“응…… 아니 세 개.”
 
258
“세 개? 그래 세 개.”
 
259
“그럼 들어가서 사가지구 나와.”
 
260
부룩쇠는 기쁜 마음으로 호 떡 세 개의 뇌물을 썼읍니다. 어머니를 만날 일을 생각하니 그것이 조금도 아깝지 아니했읍니다.
 
261
그러고 거지아이가 척 앉아서 아주 천천히 호떡을 먹고 있는 것이 아주 마음에 지리했읍니다.
 
262
“우리 아버지허구 같이 있디?”
 
263
부룩쇠는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보았읍니다.
 
264
“늬 아버지? 응 응.”
 
265
거지아이는 볼이 메어지게 호떡을 먹으면서 건성으로 대답을 합니다.
 
266
“내 말 않디?”
 
267
“네 말? 응 저 너 만나거들랑 데리구 오라구 그러더라.”
 
268
부룩쇠는 기뻐서 그만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갱이가 우줄우줄합니다.
 
269
거지아이는 호떡 두 개를 다 먹고 나머지 한 개는 그대로 신문지에 뭉쳐서 통조림통에 집어넣더니 트림을 한바탕 걸찍하게 하고서
 
270
“자, 가자.”
 
271
하고 일어섭니다. 부룩쇠는 어깨를 으쓱으쓱하면서 그 뒤를 따랐읍니다.
 
272
요리조리 이리 꼬불 저리 꼬불 한참 돌아다니더니 어느 골목 돌아가는 고패에 가서 앞서 가던 거지아이가 갑자기 홱 하고 뛰어 달아납니다.
 
273
부룩쇠는 깜작 놀라 주춤하고 섰다가 이어 그 뒤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섰읍니다.
 
274
그때에 거지아이는 벌써 저편 골목 고팽이로 뛰어가다가 해뜩 돌아다보더니 해해 웃고는 그냥 들고 뛰어버립니다.
 
275
부룩쇠는 숨이 차게 따라가면서
 
276
“이애, 이애, 호떡 세 개 더 사주께 이리 와 이리 와.”
 
277
하고 소리를 질렀으나 영영 놓치고 말았읍니다.
 
278
부룩쇠는 그만 맥이 풀려 길바닥에 펄썩 주저앉았읍니다.
 
 
279
나흘이 지나갔읍니다.
 
280
부룩쇠는 서울이라는 데가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넓고 그래서 어머니를 찾기가 퍽도 어려운 줄을 알았읍니다.
 
281
그동안 낮이면 호떡 한 개씩으로 두 때씩 요기를 하고 밤이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고달픈 잠을 자면서 그는 어머니를 찾아다녔읍니다.
 
282
그러다가 가졌던 돈 30전을 어제까지 다 먹고 오늘은 점심때가 겨웠어도 그냥 굶은 채로 있읍니다.
 
283
부룩쇠는 돌아다니다가 역시 처음 보는 거리로 나왔는데 거기가 동관이지마는 어딘 줄을 그는 모릅니다.
 
284
배는 허리가 고부라지게 고픕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야 누가 밥 한 그릇 주마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뉘 집 문전에 가서 밥 한술 주시요 하고 비럭질을 하기는 곧죽어도 싫습니다.
 
285
그래 돌아다닐 기운도 없어 우두커니 길 옆에 비켜 섰노라니까 그때 마침 전차 하나가 와서 섰읍니다.
 
286
무심결에, 아주 무심결입니다. 눈을 전차에로 돌리다가 부룩쇠는 억! 하고 놀라 반가운 소리를 외쳤읍니다.
 
287
어머니가, 그렇게도 찾던 어머니가 전차 속에 있던 것입니다. 이편을 보지는 아니해도 열어젖힌 창 안으로 보이는 그 얼굴은 부룩쇠가 꿈에도 잊지 못하던 어머니의 얼굴입니다.
 
288
도렴직하니 볼과 턱이 토실토실하고 그러고 부룩쇠를 볼 때면 언제나 웃음이 괴는 서늘한 큰 눈, 그러한 잊혀지지 아니하는 어머니의 얼굴인데 전차창으로 우두커니 무엇을 보고 있는 그 얼굴은 옷도 부룩쇠의 눈에 젖은 분홍적삼이 아니요, 얼굴도 조금 달라진 듯하기는 하나 그래도 갈데없이 어머니의 얼굴은 어머니의 얼굴입니다.
 
289
부룩쇠는 너무도 반갑고 가슴이 두근거려 잠시 멍하니 서서 보다가
 
290
“어머니이.”
 
291
소리를 치며 손을 내흔들고 전차 앞을 향해서 벼락같이 덤벼들었읍니다.
 
292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여전히 무심하게 딴 곳을 보고 있고 전차는 움직이었읍니다. 부룩쇠는 그만 미칠 듯이 전차 앞으로 몸을 와락 쏟트렸읍니다. 그러고는 이어 무엇인지 옆구리와 다리께를 사정없이 탁 치는 바람에 입을 딱 벌리고 나동그라져 정신을 놓았읍니다. 전차를 못 가게 한다는 푼수가 그 지경을 했읍니다
 
 
293
이리한 지 몇 시간이 지나서 부룩쇠는 겨우 정신이 들어가지고 눈을 떴읍니다.
 
294
무슨 고약한 약냄새가 나서 얼굴을 찌푸렸읍니다.
 
295
“부룩쇠야.”
 
296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부룩쇠에게 들렸읍니다. 부룩쇠는 이것이 꿈인가 하고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홱 돌렸읍니다.
 
297
그때에 팔다리며 옆구리까지 아프기는 했으나 어머니가 제 손목을 잡고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아플 겨를도 없었읍니다.
 
298
“어머니!”
 
299
숨차게 이렇게 불러보고는 부룩쇠는 머리가 어지르르해서 다시 정신을 놓았읍니다.
 
300
그러나 부룩쇠의 상처는 그다지 중한 것이 아니어서 곧 소성이 되어 갔읍니다.
 
301
병원에서 부룩쇠가 이렇게 어머니의 살뜰한 구원으로 병간을 받으며 사흘이 되던 날 저녁입니다.
 
302
부룩쇠는 그동안 지나던 이야기를 어머니한테 종알종알 하고 있노라니까, 병원 의사가 어제 와서 부룩쇠와 어머니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가던 신문기자라는 사람과 또 웬 뚱뚱하니 허연 노인 하나를 데리고 들어 왔읍니다.
 
303
어머니가 일어나서 그들을 맞이하니까 그 영감님은 부룩쇠를 들여다보면서
 
304
“오, 좀 나냐?” 하고 상냥하게 말을 합니다.
 
305
신문기자라는 사람은 어머니를 그 영감님한테 인사를 시키더니
 
306
“이 어른께서 당신네 모자가 그렇게 정경이 가엾이 되었다는 우리 신문을 보시고 찾어오셨읍니다. 당신네만 싫다고 아니하시면 그 집에 빚 진 것을 이 어른이 갚아주시겠다구요…… 그리고 또 이 앞으로 살아갈 방도가 없다면 이 어른은 집안은 군색허잖어서 두 노인 단 두 내외가 호젓하게 살아가시는 터이니까 와서 수양딸 수양손자처럼 계셔도 좋겠다구요. 어떻습니까? 물론 저 아이도 친손자 진배없이 공부도 시켜주시고 하신답니다.”
 
307
어머니는 울면서 그저 황송하고 감사하다고 수없이 허리를 구부려 치하를 합니다.
 
308
(잠깐 이야기가 뒤바뀌었지만 부룩쇠 어머니는 그때 고향에서 못된 사람의 꼬임을 받아 서울로 왔다가 어느 좋지 못한 곳에 팔려 있었는데, 그러다 이날 이때까지는 매일같이 아들 부룩쇠가 보고 싶어 노상 울며 지냈읍니다.)
 
309
어머니는 부룩쇠를 붙잡고 말씀하셨읍니다.
 
310
“인제는 너허구 나허구 떨어지잖구 서울서─지금 그 노인네 댁에 가서 편안히 살게 되었다…… 좋지? 부룩쇠야?”
【원문】어머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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