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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방춘신(南方春信) ◈
◇ 춘심(春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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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2
김영랑
1
春 心[춘 심]
2
──南方春信[남방춘신] · 3
 
 
3
이 고삿 저 골목에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유창하다. 정초 나들이에 길거리서 잠깐 만나 인사하는 소리만도 아니다. 웬 음성을 그리 높이 낼 리도 만무하다. 음향이 봄기운을 타는 것이다. 휭휭 울려난다. 어린애들은 벌써 츰내(호도기)를 만들기로 댓가지를 부러뜨린다. 더 일찍 아는 것 같다. 뒷 언덕에 산소나 물그대로 의자(倚子)를 만들고 흥청거리면서 늬나늬 늬나누 ── 를 분다. ‘어 ─ 허참’ , ‘잉 ─ 이’ 하는 소리가 윳댁(宅)에서 들려 나온다. 사이좋은 고부(姑婦)간의 살림 수작이 그러하다.
 
4
전라도서도 이곳 말이란 것이 처음 듣는 이는 아직 말이 덜 되었다고 웃고, 자주 듣는 이는 간지러워 못 듣겠다고 얼굴에 손까지 가리운다.
 
5
시인 C는 감각적인 점에서만도 많이 잡아 써야겠다고 한다. 통틀어 여기 말이 토정(吐情) 같으나 타도(他道) 말인들 의사 표시에 그치기야 하느냐마는 보다 더 토정일 것 같다. 우리가 등이 가려우면 긁고 꼬집으면 아야야를 발음하는 것과 그리 거리가 없는 말일 것 같다.
 
6
여자의 말이 더욱 그러하다. ‘잉 ─ 이응 ─ 오’ 하는 부정어가 어디 또 있는가.
 
7
길거리에서 떠드는 말소리가 공중으로 휙 날아 들어온다. 봄이 아니고야, 봄이 아니고야 그럴 수 없다. 바람이 댓잎 끝을 새어 나오는데 끝이 다 퍼져 버려서 말소리가 타고 오는 것일까. 어디 그뿐이랴, 장차는 산골짜기마다 찾아가서는 그 간질간질한 안개 아지랑이를 이리 몰고 저리 몰고 다닐 바람이다. 그러노라면 안개 아지랑이 멋지게 계곡에 숨을 날도 앞으로 며칠 아니다.
 
8
멋이란 말에 언뜻 생각키우는 것이 지용의 ‘멋’ 이다. 호남 해변에 가객기생(歌客妓生) 사회를 중심으로 멋이 발전했을 것 같다고 하여 서경 시문(書經 詩文)에서 보는 것은 멋이 아니라 운치(韻致)라 하고 멋은 아무래도 명창 광대(名唱 廣大)에 물들어 온 것 같다고 하였다. 시문이 운치와 맛이 어떻게 틀린다는 것을 얼른 말하기는 좀 어렵겠으나 명창 광대께서 멋이 물들어 온다는 것은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9
선비에게서 광대 명창이 멋을 배우려 애를 써도 격을 갖추지 못하고 떨어지는 수가 많기 때문에 흔히 그들은 신멋을 범한다. 그러고 보니 죄가 멋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 격 높은 평조(平調) 한 장(章)을 명창 광대가 잘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노래를 멋지게 부른다는 것과 그 양반 멋있다는 것과는 전연 말뜻이 틀린다는 것이다. 관북 관서(關北 關西)의 친구를 많이 아는 우리는 지용의 멋있는 훌륭한 시품(詩品)도 알 만하다.
 
10
수심가나 근대 일찍 육자배기가 퇴폐적일지는 모르되 남도 소리에 대한 지용의 견해엔 좀 승복치 못할 점이 많다 하겠다. 멋이 소리에만 있을 바 아니거니 운치에 무릎을 꿇어놓는 것이 부당할까 생각한다.
 
11
선비 가객이 소위 신멋을 범치 않음을 보라. 멋의 항변이 길어졌으나 지용은 평양서 멋진 기생을 못 만나 보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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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바닥은 내일쯤은 백선(白線)을 그을 만하게 습기가 걷혔다. 정연히 라인을 그어 놓아도 난타(亂打)라도 할 벗의 흰 운동복이 되었을까. 사동을 보내 둔다. 론 테니스, 내 청춘의 감격이 무던히 바쳐진 론 테니스, 흰 라인, 하얀 네트, 흰 유니폼, 하얀 볼, 봄볕에 그들은 발랄하다. 라켓 든 손을 흐르는 혈조(血潮), 1초 전에 만들어진 정혈(精血)이리라. 페어플레이의 정신을 나는 론 테니스에서 얻었다 함이 솔직한 고백일 것 같다. 사동이 모래와 흙을 파들여 온다. 화단에 신장(新裝)을 시작한다. 이 구석 저 구석 모여 있는 낙엽은 한번 진 채 겨울을 났다가 이제야 쓸리운다. 화단에 구르는 낙엽은 겨울의 한 운치임에 틀림없다. 후엽(朽葉)을 추려 보니 몇 종류 안 된다. 동청(冬靑)의 표(標)가 안 붙어 있는 초화(草花)가 이곳에서는 곧잘 그대로 동청(冬靑)한다. 흙을 새로 깔고 잔디를 떼어다가 선을 두르고 화단의 흙을 만지며 떡 고물 가을 감(感)이 난다.
 
 
13
《朝鮮日報[조선일보]》 1940년 2월 27일
【원문】춘심(春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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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랑(金永郞)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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