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남방춘신(南方春信) ◈
◇ 춘수(春水) ◇
카탈로그   목차 (총 : 4권)     이전 2권 다음
1940.2
김영랑
1
春 水[춘수]
2
─南方春信[남방춘신] · 2
 
 
3
이 강물의 나이는 열 여섯을 잡을까. 더구나 오늘이 초여드레, 조금 물이 많을 리 없다. 바다는 바로 밑이다. 갖다 뵈면 쭐 ── 따뤄 질 성싶다. 큰 배가 들어올라치면 오늘 이 강물은 그 배가 다 마셔 버려도 마셔 버릴 듯 줄기 가늘다.
 
4
눈 녹은 뒤 초봄이 이 강물에서 얼른 보인다. 며칠 전까지 강가에 얼어붙었던 얼음장이 녹기에 이틀이 다 못 갔다. 오리 갈매기가 저 밑 바닷가로 몰리는 듯하더니만 우 ── 하니 되돌아온다. 기고 날고 톰방거리고 강물이 너무 순해 보여서 그런 성싶다. 너무 허리가 늘어서 그런 성싶다. 그놈들이 아침 날빛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그런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햇빛을 좋아한다는 것은 실상 그리 천연(天然)일 수가 없다. 보람이니 설움이니 건강이니 지지리 햇빛은 쌍화탕이나 다를 거 무엇이냐. 햇빛을 사람이 좋아하기로 아무래도 오리 갈매기보다는 하등열질(下等劣質)이다. 사람은 차라리 해를 등지고 사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광명을 찾는다는 말부터가 따져 보면 수상하다.
 
5
물새와 햇발! 하루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그렇게 즐겨 볼 수 있다면 세사(世事)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천리 만리로다. 그 사람들 틈에서 시(詩)가 어쩌다 생겨났는지 모를 일이다. 몇 세기에 한 사람 적선(謫仙)이 난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큰 자랑이 아닐까. ‘베토벤’ , ‘모짜르트’ , ‘슈베르트’ ‘쇼팽’ 이 났다는 것은 사람의 큰 자랑일 밖에 없다. 한 발 남짓을 넘는데 원근(遠近)의 왕래를 가지고 나룻배도 물 위에 떴다. 물새가 난다. 바다로 바다로 난다. 해가 오른 뒤 사람과 오래 사귀는 것이 위험함을 물새는 안다. 물결 하나 까딱 않는 강물, 나룻배는 잠잠히 오르는 물김만 헤치고 가며 오며 한다.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 같아 만지니 따스하다. 거울 있어 본다면 불그스레하리라. 아까 말한 건강이 다 이렇게 얻은 건강이 죄 될 것도 없으므로 우리는 감사할 것도 없이 그저 건강할 뿐이다.
 
6
발을 돌려 딛는다. 어느 해 이른 봄, 그 아침도 다 이런 아침이었으리라. 발을 벗고 사장(沙場)을 들어섰다가 몹시 차서 도망쳐 나온 일이 있었다. 겨우 봄맛 담근 강모래를 섣불리 다룰 것도 없다. 산은 모두 제 품 안에 지난 삼림암석(森林岩石)을 다 드러내어 보이고는 있지마는 저마다 얼굴을 환히 드러내지 않는다. 더구나 기압의 탓인지 극히 엷은 안개가 이 골짝 저 골짝에 얕이 몰려 있는 초봄인듯한 숫스런 태와 간지러움까지 가벼이 싣고 있다. 몇 날이 못 가서 벗어질 어린애 낯에 솜털이 아니냐.
 
7
비로 쓸 것도 없다. 박사(薄紗)로 가리워진 명모(明眸)로 하여 우리는 마음 더 설렐 수가 있다. 아까 지나던 저자가 거진 다 헤어진다. 그 아낙네가 찬물에 들어 깊이 든 조개를 잡을 수는 없었다. 굴(석화)도 그리 흔할 수는 없다. 누구 하나 이 아침 옷 속에 손을 여민 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시렵지 않은 탓이다. 저자꾼이 온통 아낙네들인데 추워 뵈지를 않고 활발하다. 앞으로 추위는 없다는 것쯤 다 알아버린 까닭이다. 한낮쯤 하여 의자(椅子)를 미나리 방죽과 볼통갓 동바를 내려다보고는 코트 위에다 놓고 잠잠하고 따스한 날빛을 수북이 받으며 앉았다. 봄동은 눈에 눈되고 비에 씻기웠으나 외려 더 싱싱하고 탐스럽고 번듯한 품이 생으로 뜯어먹음직도 하다. 요새 미나리가 얼마나 미각을 당기는가, 고속(故俗)을 떠나 서울에나 사는 친구에게 물어 본다면 그는 금방 혓바닥에 침이 돌리라. 그 미나리가 자라기 서너 치보다 더 자라면 캐어 먹는 미나리가 아니라 베어 먹는 미나리가 된다. 맛이 떨어질 것은 물론이요, 운치가 있을 턱이 없다. 미나리 봄동이 정초부터 밥상에 오르는데 봄동이 더 전동혹한(前冬酷寒)으로 실수(失手)될 수가 있으나 유자(柚子) 내가 퍼렇게 사흘 동안 언제고 우리의 진미가 아닐 수 없다.
 
 
8
《朝鮮日報[조선일보]》 1940년 2월 24일
【원문】춘수(春水)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21
- 전체 순위 : 2187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210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남방춘신 [제목]
 
  김영랑(金永郞)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봄(春)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목차 (총 : 4권)     이전 2권 다음 한글 
◈ 남방춘신(南方春信)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