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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부(王府)의 낙조(落照) ◈
◇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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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김동인
1
자시(子時).
2
축시(丑時).
3
인시(寅時)도 거의 되었다.
 
4
송악(松嶽)을 넘어서 내리부는 2월의 혹독한 바람은 솔가지에서 처참한 노래를 부르고 있고, 온 천하가 추위에 오그라들고 있는 겨울 밤중이었다.
 
5
이 추위에 위압되어 한길에는 개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고, 개경(開京) 10만 인구는 두터운 이불 속에서 겨울의 긴 꿈을 꾸고 있을 때다.
 
6
그러나 대궐에는 이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고관에서부터 말직까지 모두 입직해 있고, 방방이 경계하는 듯한 촛불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7
왕후궁 노국 대장공주전(魯國大長公主殿)의 앞에서 내시며 궁액들이 몸을 웅크리고 추위에 떨며 심부름을 기다리고 있었고. 침전의 밖에도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8
침전. 정침에는 아무도 없는 대신에 그 협실에 두 사람이 있었다.
 
9
협실에 안치(安置)한 불상(佛像) 앞에 중 편조(遍照)가 합장을 하고 꿇어앉아 있고, 그 곁에는 고려 국왕 공민(恭愍)이 단아히 역시 불상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10
난산(難産) 후에 환후 위독한 왕후 대장공주의 쾌차를 불전에 빌기 위하여, 왕은 비밀히 중, 편조를 침전(寢殿)까지 불러들여 여기서 기원을 드리게 한 것이었다.
 
11
부처에 매우 귀의해 있는 왕이 이전 원나라에 있을 때에 구해 두었던 영하다는 불상 앞에 지성으로 꿇어엎드려 있는 왕과 편조.
 
12
어지럽고 불길한 일이 박두해 있는 가운데서도 고요히 고요히 깊어가는 겨울밤을 왕과 편조는 불상 앞에 엎드려서 공주의 쾌차를 빌고 있었다. 궁중에 비밀히 불러들인 편조라, 큰소리로 기원을 외지도 못하고, 입 속으로 드리는 그 기원에 왕은 연하여 합장을 예배하였다.
 
13
이때 복도를 좇아서 공주부(숙옹)에서 침전으로 달려오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소리나 또한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였다.
 
14
왕은 빨리일어나서 협실에서 정침으로 나왔다. 협실과 정침을 가로막는 장지무을 겨우 닫을 때쯤, 공주부에서 달려온 궁녀가 침전 밖에서 시직하는 내시에게 무엇을 소곤소곤 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15
왕이 자리를 잡을 때에,
 
16
"환관 최만생(崔萬生) 아뢰옵니다."
 
17
하는 내시의 말이 들렸다.
 
18
"음, 무에냐?"
 
19
"잠간 내전까지 입어하십사는 후전(後殿) 마마의 전탁이 계시오니다."
 
20
"음, 가마."
 
21
황황히 일어나서 내시의 부액도 받을 겨를이 없이 공주부로 발을 옮길 동안, 왕의 가슴은 놀랍게도 방망이질했다.
 
22
공주부에서 입시해 있는 전의(典醫)의 표정을 보고 왕은 벌써 사태가 그른 것을 직각했다.
 
23
진맥을 하기 위해 뚫은 병풍의 구멍 틈으로 은어와 같은 공주 손의 맥을 짚고 있던 전의는, 왕의 임어에 허리를 굽히기는 굽혔지만 얼굴로서는 절망의 뜻을 나타내었다.
 
24
병풍을 돌아서 공주에게로 내려가매, 머리맡에는 왕의 어머님 명덕 태후가 앉아 있고. 발치에는 혜씨 이씨(惠氏李氏)가 앉아 있었으며, 그 뒤로는 몇몇 지밀 궁녀들이 지며 있다가. 왕의 임어에 조금씩 자리를 움직이기는 했지만, 말 한 마디도 없이 공주의 누워 있는 얼굴로 눈들을 향하고 있다.
 
25
왕은 공주의 침두에 가서 고요히 앉았다.
 
26
몽고인(蒙古人) 특유의 기다란 속눈썹이 반달 모양으로 굳게 닫혀 있고, 좀 짧은 듯한 윗입술이 방싯이 열려서, 기운 없는 호흡이 그 틈으로 드나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7
비교적 넓고 균형 잘된 백옥 같은 이마에는 머리칼이 두어 올 걸려 있었으며, 그 사이 10개월 간의 태중과 이번 난산 때문에 여위고 여윈 뺨에는, 따로 만들어 붙인 듯이 광대뼈가 솟아 보였다.
 
28
왕은 손을 들어서 고요히 공주의 이마에 얹었다. 선뜻한 왕의 손이 이마에 앉히매, 공주는 눈을 번쩍 떴다.
 
29
번쩍 뜬 눈은 잠시 허공에서 방황했다. 허공에서 희번덕이던 눈이 왕에게서 돌아와서 잠시 머무를 동안, 겁에 들뜬 듯하던 눈은 차차 사람다운 표정을 갖기 시작했다. 왕을 알아본 것이었다.
 
30
"상감마마!"
 
31
비로소 입에서 나온 말이다.
 
32
왕은 곁에 놓인 붓으로 공주의 마른 입술을 추겨 주려고 손을 움직이려 할 때에, 공주의 손이 벼락같이 왕의 손을 와서 잡았다.
 
33
단지 사람다운 표정이 나타나 있는 데 지나지 못하던 공주의 눈이, 순간 변하여 타는 듯한 정열이 넘쳐흐른다.
 
34
"상감마마, 상감마마!"
 
35
"공주, 좀……."
 
36
"상감마마, 신을 안아 주세요."
 
37
움직일 기운이 없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는 그 고민! 왕은 양팔을 공주의 허리 아래로 넣어서 공주의 몸을 안았다.
 
38
상반신을 왕의 무릎에 올려 놓은 공주는, 최후의 정열 때문에 창백하던 얼굴이 붉게 변하고, 그 눈에는 광채가 났다.
 
39
"상감마마, 좀더 힘있게 안아 주세요. 힘껏, 신의 허리가 끊어지도록……."
 
40
왕의 팔에 힘이 차차 더해감에 따라서, 머리를 좀더 들어 보려는 공주의 최후 노력.
 
41
"상감마마, 신은 기쁘옵니다. 더 힘껏…… 신은, 신은 다만 마마께 후사 없으신 것이 죄송……."
 
42
숨이 찬 듯이 말을 끊었다. 온 정열을 모아서 왕을 우러러보던 공주의 눈도 힘이 어느덧 풀렸다. 걸근걸근 힘없는 숨소리.
 
43
그 숨이 문득 끊어졌다. 왕의 마음이 철썩 내려앉는 순간, 아직껏 좀 가볍던 공주의 몸이 천근같이 무거워졌다.
 
44
"공주! 공주!"
 
45
예기는 했었지만, 이 의외의 사변에 왕은 공주의 몸을 안은 채 어쩔 줄을 모르고 공주만 연하여 찾았다.
 
46
이 동안 국모 대장공주의 승하를 조상하는 애곡성이 태후며 혜비 이씨들에게서 터져나왔다.
 
47
이튿날 국상은 정식으로 반포되었다.
 
48
공민왕 14년 2월, 아직도 매운 바람이 몸을 에는 겨울이었다.
 
49
긴 듯하고도 짧은 생애, 짧은 듯하고도 긴 생애.
 
50
왕이 아직 한낱 고려 종실로서 백안첩목아(伯顔帖木兒)라는 몽고의 이름으로 원(元)나라 서울에 잠저(潛邸)해 있을 때, 원나라 황제의 어명으로 원나라 종실 위왕(魏王)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51
즉 이번에 승하한 대장공주였다. 후에 본국 고려로 돌아와서 충정왕(忠定王)의 뒤를 이어 고려 국왕이 된 이래 14년 간을 변함없이 사랑하던 왕비였다.
 
52
즉위 이래 14년 간 어지러운 고려의 정파(政派)에 올라앉아서 파란 많은 생애를 보낼 동안, 사랑하는 공주의 내조가 없었다면, 왕은 왕위를 내던지고 공주와 함께 어느 조용한 곳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으러 떠났을 것이다.
 
53
동과 서와 남쪽의 해변으로는 왜적의 난이 끊이지 않는 일면에, 또한 북쪽으로는 홍건적(紅巾賊)의 난이 있어서, 그 편 역시 한때도 평안한 날이 없어, 어떤 때는 왕이 멀리 상주까지 몽진을 한 일까지 있었다.
 
54
이렇듯 동, 남, 서, 북으로 외구의 환이 끊일 날이 없으면서, 또한 안으로는 내란이 끊이지를 않았다.
 
55
즉위 원년에 최유, 김원지의 무리가 원나라의 힘을 빌어서 본국인 고려를 침범하려던 일을 비롯하여, 조일신, 김용 등의 난이라, 무엇이라, 한때도 베개를 편안히 하고 잠잘 날이 없었다.
 
56
신임하는 신하와 대할 때에도, 저 사람의 마음 배포가 어떤가를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왕의 입장이었다. 신임하는 신하가 연하여 당신을 배반할 때에, 왕의 눈에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믿을 사람이 없이만 보였다.
 
57
이렇듯 얽히고 설킨 어지러운 국정에, 또한 재상가끼리의 세력 다툼이며, 사병(私兵)을 양성하는 장상끼리의 싸움이 끊이는 날이 없었다. 어지러운 정국이었다.
 
58
이런 어지러운 정국 안에서 왕후 노국 공주의 따뜻한 사랑이 없었다면, 왕은 1년도 왕위에서 배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59
이러한 어지러운 정국에서, 과거 14년 간의 치적을 돌아보건대 과연 용하였다.
 
60
먼저 원나라의 세력이 왕의 손으로 얼마만치 꺾이었다.
 
61
이전에는 무슨 소소한 일을 행할지라도 반드시 먼저 원나라에 품하여 허가를 얻던 것을, 이 왕의 대에서는 선참 후주의 방침으로 나아갔다. 먼저 행하고 후에 아뢰었다.
 
62
아직껏은 각 재상 분권이던 정치를 중앙 집권으로 꾀하여, 재상끼리의 세력 다툼을 얼마만치 완화시키고 모든 권세를 국왕인 당신이 잡았다.
 
63
그 밖에도 집안 문벌이나 학벌만 자랑하고 아무 실능력이 없는 대상들은 차차 경원해 버리고, 실능력을 가진 장상을 좌우에 모아들였다.
 
64
풍속에 있어서도 원나라 풍속과 고려의 풍속을 다 잘 알고 있느니만치 세밀한 주의로써 개량하였다.
 
65
각 산에 솔을 심어서 사태를 방비하고, 재상들의 매 사냥을 금하여 공연한 살육을 막고, 아울러 이 때문에 밟히는 전토를 보호하고, 돈을 만들어서 일용에 편케 하고, 수차를 만들어 농사에 편리하게 하고, 흔히 민간에 미행하여 백성의 고초를 살피고 세세한 일까지 모두 살피고 살펴서 국운을 융성케 하여. 피폐했던 고려의 국정이 바야흐로 이 왕의 대에서 중흥이 되나 보다 누구든 믿었다.
 
66
이 왕의 위업 뒤에 숨은 공주의 내조에 힘이 얼마나 컸던고! 첩첩이 쌓인 어지러운 문제에 골머리 쓰여서, 에라 왕이고 무에고 내던지고 말까 할 때마다. 공주의 부드러운 손은 왕의 어깨에 얹히었다.
 
67
"상감마마, 마마께서 내던지시면 고려의 백성은 누구를 믿고 살리까?"
 
68
격려하는 공주의 말은 피곤한 왕으로 하여금 다시 용기를 내게 했다.
 
69
빈전(殯殿) 재궁(梓宮)을 지키는 왕. 수없이 피운 향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왕은 고요히 앉아 있었다.
 
70
"상감마마, 수라를 어쩌리까?"
 
71
환관 신소봉(申小鳳)이 이렇게 아뢸 때도, 왕은 아무 대답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72
공주 승하한 지 벌써 초 7일이 지난 이때까지, 왕은 여태껏 수라를 받아 보지 않았다. 몇 번 냉수를 찾고 몇 번 태후의 강권에 못이겨 술 몇 잔과 돈육 몇 점을 입에 넣어본 뿐, 수라반은 대하지 않았다.
 
73
여전히 끼니때라고 환관은 예에 의지해서 수라를 채근하지만, 왕은 또한 여전히 예에 의지해서 대답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74
"상감마마, 수라를 어쩌리까?"
 
75
신소봉은 한번 더 채근해 보았다. 그런 뒤에 잠시 기다려 보고 이젠 자기의 직책은 다했다는 듯이 왕과 재궁께 절하고 고요히 물러갔다.
 
76
"대사!"
 
77
신소봉이 밖으로 나간 뒤에, 비로소 왕은 눈을 조금 떴다. 그리고 편조를 찾았다.
 
78
가득이나 어두운 빈전에 향 연기가지 자욱하여 똑똑히 보이지는 않으나, 중 편조가 재궁 앞에 합장 명목하고 염불을 외고 있었다.
 
79
"대사!"
 
80
"불러계시오니까?"
 
81
"다시 공주를 안 돌아올까?"
 
82
"생자 필멸이올시다."
 
83
말이 끊어졌다.
 
84
또다시 왕은 눈을 감고 편조는 염불을 외었다.
 
85
잠시 정숙한 가운데서 시간이 흘렀다. 잠시 뒤에 이번은 편조가 염불을 중지하고 왕 쪽으로 돌아앉았다.
 
86
"생자 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이것이 사람의 세상이올시다. 여기 이르러서는 왕후 장상이라도 필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이미 돌아가셨거니와, 전하께서는 전하를 아버지로 알고 있는 천만의 생령을 위해서라도 좀더 보중하시지 않으면 안 될까 하옵니다."
 
87
마디마디마다 똑똑히 끊어서 아뢰는 편조의 말. 그러나 왕은 여전히 응치 않았다.
 
88
"전하! 다른 점은 그만두고라도 공주전 재세시에 공주전께서 그렇듯 사랑하시던 이 창생을 위하셔서라도 옥체를 보중하옵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애통해 하시는 마음은 어리석은 빈도도 짐작 못하는 바가 아니옵니다마는, 이 창생을 위해서보다도 전하를 위해서보다도, 전하께서 이 창생을 버리시면 승하하신 공주전의 영이 가장 슬퍼하실 점을 생각하셔서라도, 좀더 보중하시지 않으면 안 될까 하옵니다."
 
89
무슨 말을 할지라도 여전히 눈을 감고 부처 같이 가만히 앉아 있는 왕. 좌우 눈에서는 눈물만 흘러서 침침한 촛불에 눈물이 번쩍거리고 있다.
 
90
편조는 딱하였다.
 
91
어떻게 하면 이 왕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마음을 돌려서 수라를 진어케 하나!
 
92
공주 상하한 뒤에는 마치 산송장으로 자처하는 이 왕을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인간다운 감정과 감각을 회복하도록 하게 하나?
 
93
본시부터 공주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다른 여인을 거들떠보지 않던 왕이라, 공주 승하한 뒤부터는 여인이란 여인은 모두 악마로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94
이번 공주 승하한 뒤로는, 왕은 모든 아리따운 후궁들까지도 악마 같이 보였다. 공주 없는 이 세상에, 다른 계집들은 어째서 존재하느냐? 저런 계집들은 왜 살아 있고, 공주는 왜 없어졌느냐? 이러함 마음으로서 여인들을 빈전 가까이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공주 승하하였는지라, 당연한 순서로 이젠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 혜비 이씨가 빈전에 들어오다가 왕에게 쫓겨난 이래로, 빈전에는 여인이라고는 왕의 모후되는 명덕 태후 한 사람이 들어올 뿐, 다른 여인은 얼씬하지 못했다.
 
95
지금에 있어서 가장 근심되는 것은 왕의 건강이었다.
 
96
벌써 8, 9일 간을 수라를 진어치 않았으매, 어떻게 해서든 수라반을 대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급무였다.
 
97
수라를 권키 위하여, 왕께 생자 필멸의 이치를 강론하던 편조, 이 돌부처와 같은 왕을 우러러보며 잠시 가만히 있다가 한 걸음 무릎으로 나아가서 왕의 딱 맞은편에 앉았다.
 
98
"전하!"
 
99
대답이 없었다.
 
100
"전하!"
 
101
"……."
 
102
"전하!"
 
103
편조는 왕의 양손(무릎 위에 합장하고 있는)을 꽉 잡았다.
 
104
"전하, 전하!"
 
105
"대사."
 
106
왕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은 폭발하려는 통곡의 서곡이었다. 대사. 한 마디 부를 뿐, 왕은 체면을 내던지고 당신의 손을 뽑아서 얼굴을 덮고 울었다.
 
107
"대사, 반혼법(返魂法)은 불가(佛家)던가? 도가(道家)전가?"
 
108
울음에 섞어서 하는 왕의 하소연에 기지 있는 편조는 매달렸다.
 
109
"전하, 빈도가 마침 그 말씀을 올리려 했습니다. 공주전에 가셨다 할지라도 반혼술로 다시 전하를 뵐 날이 있을까 하옵니다. 보중하소서. 전하, 보중하소서."
 
110
편조는 왕의 손을 다시 끌어잡고 장삼 소매로써 왕의 눈물을 닦아 드렸다.
 
111
"만약 그런 술(術)이 있다 하면, 여기 공주의 혼을 다시 불러주오."
 
112
"아니올시다. 입토(入土)키 전에 혼은 공주전 속체에 그냥 계셔서 출현하실 수가 없사옵니다. 보중하소서. 보중하소서. 공주전 입토하신 뒤에는 빈도가 반드시 공주전의 혼으로 전하를 모시게 하오리다. 그때 돌아오신 공주전의 혼께서 전하의 너무도 수척하신 용안을 대하오면 얼마나 심통하오리까? 보중하소서. 수라를 부릅소서. 공주전을 위하셔서옵니다."
 
113
그날 왕은 비로소 수라를 진어하였다.
 
114
적적한 수라!
 
115
이전에는 반드시 공주가 함께 앉아서 서로 권하며 서로 받으며 하던 수라반을 혼자서 받을 때에, 왕은 너무도 적적하여 편조에게 배식을 명하였다.
 
116
한 개 옥천사(玉川寺) 사비(寺婢)의 자식으로 그 아비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중 편조는, 이리하여 왕의 총애와 신임을 차차 높여 갔다.
 
117
2월에서 3, 4월 공주의 영해를 정릉(正陵)에 안장하기까지 왕은 빈전에서 난 적이 없었다.
 
118
왕은 이제 공주 입토한 뒤에 편조의 반혼법으로 공주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이 단 한 가지 희망으로 쓸쓸한 삶을 그냥 계속하였다.
 
119
2월에서 3, 4월 날이 차차 따스해감에 따라서 공주의 재궁에서도 차차 냄새가 괘악해 갔다. 밖에서 갑자기 빈전에 들어오는 사람은 한순간 숨이 딱 막힐 만치 냄새가 괴악했다. 냄새를 감추기 위하여 눈이 쓰라리도록 향을 피웠지만, 인위적 향내가 그 냄새를 감출 수가 없었다.
 
120
아무리 이 방에 젖은 왕의 코도 이 냄새는 맡았다. 그러나 이 냄새조차 왕에게는 눈물을 자아는 향내였다. 이것이 공주의 몸이 썩느라고 나는 냄새거니 하면, 이 냄새가 밖으로 나가서 대공에 헤어지는 것이 아까웠다.
 
121
많은 물재를 들여 삼화서 가져온 오석(烏石)으로 명공이 깍은 석관에서도 틈틈으로는 붉은 물이 바닥에 새어 내렸다.
 
122
다른 사람이면 이 빈전에 들어오기조차 싫어할 것이나, 왕은 빈전에서 한 번도 밖에 나가 보지를 않았다.
 
123
찬 바람이 살을 에고 산야에는 아직 두터운 눈이 쌓여 있는 2월에 승하하여, 백화가 난만한 5월에 안장을 할 동안 눈이 녹고 땅의 얼음이 풀리고, 흙이 트고 풀이 나고 자라고,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남국 갔던 새들이 모두 돌아오고 할 동안 왕은 세월 가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어둠침침한 빈전 촛불과 향 연기와 향내와 악취가 뒤서리는 가운데, 끔과 같이 생시와 같이 만 3개월나마를 보냈다.
 
124
그것은 다만 뒤숭숭하고 순서 없고 갈피를 차릴 수가 없는 날이 가고 오고 하는 것뿐이었다. 그 가운데는 아무 합리된 일도 없고 명료한 일도 없고, 어벙벙한 꿈과 같은 세월이었다.
 
125
때때로 재상들이 와서 무엇이 어떻다 하고는 돌아가고, 태후도 간간 와서 이렇다 저렇다 하다가는 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섞바뀌고 혼돈되어 돌아갈 뿐, 왕은 모두 알지도 못했거니와 알려 하지도 않았다.
 
126
공주는 이젠 돌아올 길이 없는 사람이라는 일념뿐이, 지금의 왕을 지배하는 단 한 가지의 생각이었다. 그 밖의 것은 왕의 감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127
이리하여 5월 공주를 정릉에 안장한 뒤 왕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128
그 건장하고 원만하던 체격이며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도록 여위고 약해진 것은 두말 할 것 없거니와, 성격과 감정에 있어서도 본시의 왕과는 딴사람이 되었다.
 
129
그 세밀한 관찰력과, 치밀하고, 밝던 정치안이며, 인자하고 관대하던 성질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멍하니 얼혼 빠진 사람같이 되어 버렸다. 무한한 창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나절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앉아 있기 일쑤며, 신하들이 무슨 말을 할지라도 듣는 둥 마는 둥, 몇 번을 찾아도 대답도 않고, 대답이 있댔자 헛대답이 많았다.
 
130
말하자면 인간으로서의 온갖 감정이며 감동을 잃은, 한 개의 움직이는 허수아비였다.
 
131
공주를 정릉에 안장한 지 한10여 일 지난 어떤 날 밤이었다.
 
132
"이리 오너라!"
 
133
"이리 오너라!"
 
134
왕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므로, 침전 밖에 입직해 있던 환관 최만생이 침전 툇마루로 돌아가려 할 때 왕이 침전에서 나왔다. 보매 뜻밖에(미복이나마) 두면까지 쓰고 어디 밖으로 거돌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135
만생과 동료 환관 한 명이 달려와서 부액을 하려 하매, 왕은 손짓으로 그만두란 뜻과 조용하라는 뜻을 나타내었다.
 
136
만생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137
"어디 거동을 하시옵니까?"
 
138
"음, 편조의 집까지!"
 
139
작은 소리로 왕은 대답했다. 그리고 더욱 작은 소리로,
 
140
"미행이다. 너희만 따라라."
 
141
하고 보태었다.
 
142
이리하여 왕은 환관 두 명만 데리고 몰래 대궐을 빠져나왔다.
 
143
대궐 담을 넘어 한길까지 뻗어 우거져 있는 꽃을 우러러보며, 말없이 걷는 왕의 뒤를 환관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만일을 경계하며 따랐다.
 
144
현월(弦月)은 벌써 서산에 걸리고, 상쾌한 바람이 옷깃을 날리는 여름 저녁이었다. 아직 초저녁이라, 한길에는 오고가는 사람도 꽤 많았다. 이러한 가운데를 왕은 왕으로서 따로이 근심을 갖고, 환관들은 직무상의 근심을 갖고, 묵묵히 행인의 눈을 피하며 갔다.
 
145
"반혼법(返魂法)을……."
 
146
왕이 편조를 밤에 찾은 것은, 편조의 반혼술로 그리운 공주의 면영이나마 다시 한 번 보고자 함이었다.
 
147
호반(胡盤)에 주안을 배포하고자 왕과 편조는 마중앉아 있었다.
 
148
"전하, 아직 시간이 이르옵니다. 대개 혼백은 자정이 지나지 않으면 출유치 않으옵니다."
 
149
왕께 공손히 술을 부어드리며 편조는 이렇게 말했다. 좀하면 도로 펴려는 얼굴을 정신 차려 근엄히 꾸미며 편조는 연하여 왕께 술을 권했다. 왕은 편조가 드리는 술은 받아서는 들이켜고 받어서는 들이켜고 했다. 한 번도 사양하거나 주저함이 없었다.
 
150
편조는, 드리는 대로 술을 받아 들이켜는 왕을 보면서 속으로 탄식하였다. 일국의 국왕, 그가 한 번 호령하면 천백의 미희(美嬉)라도 당장에 구할 수 있겠거늘 잃은 공주에 대한 지극한 사모의 염이, 이 금지옥엽으로 하여금 보행으로 천승(賤承)의 집까지 오게 하였구나!
 
151
"전하!"
 
152
상에 벌인 많은 음식 중에, 공주에게 소하는 뜻으로 채소만을 안주로 하는 이 정열의 중년 남자! 여위고 여윈 얼굴은 어느덧 술 때문에 검붉게 되고, 툭 두드러진 광대뼈 위에 번득이는 두 눈은 눈물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충혈이 되었다. 떨리는 그의 손. 술 때문에 중심을 잡기 힘들어 연하여 팔꿈치로 호반을 짚어 쓰러지기를 면하는 쇠약한 몸.
 
153
이 가련한 왕의 심경을 생각할 때는 편조의 눈에도 눈물이 괴려 하였다.
 
154
"전하, 오늘 반혼술로 공주전의 혼백을 어전에 부르기는 하겠습니다마는……."
 
155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한 뒤에 편조는 그 말끝을 맺었다.
 
156
"전하께서 공주전의 혼백을 한 번 보시면, 다시 이전과 같으신 인군(仁君)이 되시겠사오니까?"
 
157
왕은 눈을 들었다. 바야흐로 들이켜려던 잔을 중도에 멈추었다.
 
158
"적적하구려, 적적해! 오늘 보면 내일 또 보고 싶고, 내일 보면 또 모레 보고 싶고……."
 
159
"아니옵니다. 혼백은 자유롭지 못한 것. 한 달에 한 번쯤이나 헌신케 하올까, 매일은 힘들 것 같사옵니다."
 
160
"한 달에 한 번. 한 달, 삼십 일, 서른날……."
 
161
혼잣말 같이 이렇게 뇌던 왕은 아직 들고 있던 잔을 딱 하니 상에 놓았다.
 
162
"대사, 한 닿에 한 번씩이라도 제발……."
 
163
"그 대신 빈도의 아뢴 말씀을 잊지말아 주시옵시오. 이전과 같은 인군이 됩소서. 전하 한 분을 우러러보는 창생을 살피소서."
 
164
다시 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165
밤은 차차 깊어갔다.
 
166
자정. 반혼법을 베풀어서 대장공주의 혼백을 왕 앞에 다시 불러낸다는 시각이었다. 이때 왕은 편조의 권하는 술 때문에 꽤 취한 때였다. 취하기는 꽤 취했지만, 일단 정신을 박은 일이라, 연하여 아직 자정이 안 되었느냐고 채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67
이리하여 자정. 편조는 일어나서 왕을 부액하였다. 연하여 쓰러지려는 왕을 단단히 부액하고, 반혼실로 천천히 걷는 동안, 편조는 왕의 귀에 입을 갖다대고 한 마디 한 마디씩 똑똑한 말로 이렇게 말했다.
 
168
"혼백은 형태는 있으나 소리는 없습니다. 첫째로 말씀을 거시지 말 것이며 혼백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오니, 밝기 전에 놓아 돌려보내셔서 후일 기약에 편리토록 하시옵소서."
 
169
반혼실은 복도를 통하여 뒤에 따로이 달린 이 집 후당이었다.
 
170
편조가 앞서서 문을 열어 잡고 왕을 인도하여 반혼실 안으로 들어갓다. 방 머리맡에는 금불 한 체가 안치되어 있고, 아래칸은 오색이 찬란한 비단으로 담벽을 삼고 그 앞에는 향로에 향불이 피워 있으며, 머리맡 불전에 놓인 방석은 편조의 자리인 듯하고, 웃간 담벽에 기대어 금병풍이 둘리고, 그 앞에 용을 수놓은 방석이 왕의 앉을 자리인 모양이었다.
 
171
편조는 먼저 왕을 인도하여 불전에 서서 함께 합장 예배하였다. 그리고는 왕을 왕의 자리로 가게 하고, 자기는 반혼 향가루 한 줌을 내어다가 행로에 뿌린 뒤 불전에 가서 명목하고 꿇어앉았다.
 
172
불전에 명멸하는 촛불 두 대와 향로 좌우편에 켜 있는 두개의 촛불을 광원으로 한 이 방은 비교적 밝았다.
 
173
경건한 마음으로 용석에 앉아 기다리는 왕. 엄숙한 태도로 불전에 축문을 외는 편조.
 
174
행로에서는 편조가 뿌린 향가루 때문에 자욱이 연기가 피어오른다.
 
175
엄숙하고 정숙한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고. 왕은 너무도 경건한 찰나에, 어느덧 몹시 취했던 술조차 얼마간 깨었다.
 
176
편조의 축문은 차차 차차 템포가 빨라갔다. 방 안의 향기는 더욱이 자욱했다.
 
177
향로에서는 마치 산화(山火)와 같이 연기가 피어올랐다.
 
178
이윽고 향가루도 거의 탔는지 연기가 점점 엷어졌다.
 
179
그때 그 엷어지는 연기의 틈으로 왕은 보았다.
 
180
틀림없는 대장공주였다. 너무도 엄숙한 기분이기 때문에 취기도 거의 깬 왕의 눈이 그릇 보앗을 까닭이 없었다.
 
181
연기가 차차 엷어가는 뒤로, 오색 비단을 바른 담벼락을 등지고 단아히 서 있는 한 개의 이국 부인(異局婦人).
 
182
희고도 좀 넓은 이마며, 좀 짧은 듯한 윗입술이며, 길고 꼬리가 위로 향한 듯한 눈하고 시꺼먼 속눈썹이며, 아로새긴 듯한 코도, 또는 그 자태도, 옷(원나라 황실 복장이었다)까지 어느 곳이든 일호도 틀림없는 공주의 현신이었다. 너무도 기이한 일에, 한순간 눈이 아득해졌다가 다시 왕이 시력을 회복했을 때에, 아래칸 공주는 얼굴에 미소를 나타냈다.
 
183
이젠 연기도 사라진 때라, 방긋이 웃느라고 열린 입틈에서, 왕은 공주의 이빨까지 보았다. 좌우편 송곳니가 덧니이기 때문에, 웃을 때는 더욱 고혹적으로 보이던 공주의 그 덧니까지 틀림이 없었다. 단지 승하 직전의 공주와 조금 다른 점은, 공주가 제 아무리 늙지 않는 북극 태생으로서 승하할 때까지 청춘미를 그냥 보전하고 있었다 하나, 그래도 나이가 서른이 넘은 완숙한 맛은, 그 얼굴에서든 자태에서든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지금 왕 앞에 나타난 이 공주는, 왕이 일찍이 백안첩목아로서 원경에 있어서 처음 공주를 알고 처음 공주와 사랑을 속삭일 그때의 공주였다.
 
184
"아, 공주!"
 
185
그것은 애무와 반가움의 고리라기보다, 오히려 맹호의 신음성과 같았다. 이런 신음성을 나며 왕이 공주에게로 달려 내려가려 할 때, 왕의 옷깃을 붙든 사람이 있었다.
 
186
펄떡 보니 편조였다.
 
187
편조의 만명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편조는 왕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188
"전하, 아까 아뢴 말씀을 잊지 마시도록. 그리고 저 문을 열면 협실이 있사옵고, 그 방에는 금침 준비도 있사옵니다. 그럼 빈도는 밝는 날 다시 배알하겠사오니, 오래 막히셨던 정회를 푸시옵소서."
 
189
"공주!"
 
190
왕은 편조의 말은 듣는 듯 마는 듯, 편조가 방 밖으로 나가는 동안 두 팔을 벌리고 허둥지둥 공주에게로 내려갔다.
 
191
공주는 얼굴에 부끄럼과 미소를 띠고, 역시 왕을 맞으려 한 걸음 두 걸음…….
 
192
왕을 반혼실에 남겨 두고, 편조는 홀로 나왔다.
 
193
왕과 함께 있기 때문에 저린 팔다리 허리를 몇 번의 기지개로 써 풀면서 정침으로 향했다. 왕을 모시느라고 얼굴에 지었던 근엄한 표정도 사라졌다.
 
194
재미들 보시오.
 
195
후당을 돌아보며 한번 씩 웃은 뒤에 걸음을 빨리하여 제 방으로 돌아왔다.
 
196
편조의 방에는 금침이 벌써 준비되어 있고, 편조의 베개에 엎드려 한 계집이 자고 있다.
 
197
편조는 내려갔다. 가만가만 내려가서 계집의 좌우 엉덩이의 틈을 발로 쿡 찔렀다. 거기 깜짝 놀라서 일어나는 계집을 붙안아 윗목으로 떼구루루 굴려 버리고 덤썩 제 자리에 누웠다.
 
198
굴러간 계집은 일어나 앉았다. 아직 졸음에 취한 눈으로 편조를 내려다보았다. 그 계집을 편조는 쳐다보면서, 눈을 부릅떠 보였다.
 
199
"요망스럽게 잠은 웬 잠이야?"
 
200
계집도 마주 흘겨보았다.
 
201
"중, 중, 까까중!"
 
202
"예끼, 여우 같으니!"
 
203
편조는 계집을 꾸짖었다.
 
204
"내가 여우 같으면 대사는 뭐 같으오?"
 
205
"멧돼지 같이. 그래 속이 시원하니?"
 
206
마주보는 계집의 흘기는 눈이 가늘어졌다. 서로 가느다란 눈으로 한참을 흘겼다.
 
207
"내가 멧돼지면 임자는 암퇘지 되련?"
 
208
"싫어!"
 
209
"싫어? 잘도 싫겠다."
 
210
"싫구나! 싫으면 임자는 나가구 주씨(朱氏)나 보내게."
 
211
"것두 싫구나!"
 
212
"이두 싫구 저두 싫구. 에라, 임자 오늘 밤은 암퇘지 되게."
 
213
편조는 벌떡 일어났다.
 
214
한 소리 계명성으로 짧은 밤이 밝았다. 절에서 부처를 섬길 때부터 일찍 깨는 습관이 든 편조는, 거의 밤이 다 가서 겨우 잠깐 잠이 들었지만 날이 밝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편조는, 편조가 일어나는 기수에 벌써 툇마루에 준비된 세숫물에 밤 사이 기름때를 활활 씻어 버리고,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등대된 옷을 바꿔입고 후당으로 돌아가 보았다.
 
215
왕도 벌써 일어난 모양이었다. 공주의 혼백을 밝기 전에 돌려 보내고는 이내 잠이 못들어 일어난 모양이었다. 협실 밖에서 잠시 방 안의 기수를 살핀 뒤에, 편조는 헴 헴 두어 번 기침을 했다. 얼굴에는 근엄한 표정을 붙였다.
 
216
"헴! 헴!"
 
217
안에서는 여전히 동정이 없었다.
 
218
"헴! 헴!"
 
219
또다시 기쳐 보고 그냥 동정이 없으므로, 문을 방싯이 열어 보았다.
 
220
맞은편으로 보이는 왕. 누구에게 혼을 빼앗긴 사람 모양으로 눈이 퀭하니 이물 위에 까치다리로 앉아서 한 군데만 주시하고 있다. 곁에서 대포를 놓을지라도 모를 모양이었다.
 
221
편조는 이 모양을 보고 문을 좀더 넓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왕 앞에 나갈 때마다 우그러지는 어깨는 또 우그러졌다.
 
222
"빈도올시다."
 
223
궁중 예절을 모르는 편조는, 왕의 맞은 편에 가서 정면으로 왕께 절하였다. 그러나 왕은 여전히 한 군데만 주시하고 있을 뿐, 편조의 인사를 의식치 못하는 모양이었다.
 
224
절을 해도 인식치 못하므로 편조는 한 번 큰소리로 기침을 했다.
 
225
왕이 비로소 알았다. 깜짝 놀라며 몸까지 소스라쳤다.
 
226
"이게!"
 
227
"빈도올시다."
 
228
왕은 잠시 멍하니 편조를 마주보았다.
 
229
"오! 대사, 밝기 전에 갔구려."
 
230
"혼배은 광명한 곳을 싫어하옵니다. 전하, 초조반을 진어합셔야지……."
 
231
"혼백은 형(形)아 있으나 체(體)는 없다는데, 공주의 혼백은 체까지 있었구려."
 
232
체, 더욱이 10수 년 전의 탄력 있는 처녀로서의 공주의 체를 지난밤 다시 본 왕은 차마 잊지 못하겠다는 모양이었다.
 
233
"네, 전하의 지극하신 정성에 부처가 감동하셔서 특별히 체까지 보낸 모양이옵니다."
 
234
"체까지, 체까지. 아직 방 안에 향내가 남고 몇 올 머리털이 남고. 대사, 오늘 밤 또 볼까?"
 
235
"전하, 얼른 초조반을 진어합식 황궁합셔야지, 대궐에서 알면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날까 하옵니다."
 
236
"대사, 나는 대궐에 안 돌아가겠소."
 
237
공주를 만나본 이 방을 차마 못 떠나겠다는 뜻이었다.
 
238
편조는 머리를 조아렸다.
 
239
"전하께서 황궁 안합시면 빈도의 목이 그냥 남비 못하리이다."
 
240
왕은 의아한 듯이 편조를 굽어 보았다.
 
241
"지금 세신 대족 권당 유림 사문(世臣大族權黨儒林士門)이 클클한 가운데서, 전하께서 한 개 천승(賤僧)의 집에 미행하셨다는 소문만 날지라도 빈도의 목은 달려잇지 못하리오다."
 
242
"그래도……."
 
243
"아니옵니다. 오늘은 환궁합소서. 내월 말에 다시 미행합시면 공주전의 혼백을 다시 어전에 현출케 하리이다. 공주전도 그날을 얼마나 기다리시리까? 오늘은 어서 초조반을 진어합시고 환궁합소서."
 
244
문득 왕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두르르 흘렀다. 그러나 초조반을 부르는 뜻으로 고즈넉이 눈을 감았다.
 
245
여름은 무르익었다.
 
246
교외에서 빛을 자랑하던 하록(夏綠)은 어느덧 개경 안에까지 스며들어서, 길가 담 틈 뜰 구석마다 푸른빛은 한창을 자랑하고 있다.
 
247
수령궁 향각(壽寧宮香閣) 앞의 작약(芍藥)도 제철이라고 만개하여, 하늘을 나는 나비들을 부르고 있다.
 
248
"이전에는 공주와 함께 따던 이 꽃을……."
 
249
지금 혼자서 바라보는 왕의 심사는 형용하기 어렵도록 적적했다.
 
250
향각 난간에 의지하여 한참 꽃을 굽어보고 있다가 왕은 탄식하며 자리에 돌아왔다.
 
251
자리에는 비단 한 폭, 붓 몇 자루, 단청 물 등이 준비되어 있고, 내시 몇 사람이 부채를 들고 묵묵히 분부를 기다리고 있다.
 
252
왕은 자리에 앉아서 붓을 잡고 눈을 감았다.
 
253
한 번 눈을 감은 뒤 뜰 줄 모르는 왕은, 여기서도 눈 뜰 것을 잊은 듯이 잠자코 있었다. 공주의 영(影)을 그려 보려고 이곳에 자리잡은 왕이었다. 이전 원나라에 있을 때부터 서(書)며 화(畵)에 있어서 입신의 기(入神之技)라는 찬사를 받아 오던 왕은, 몸소 공주의 진영을 그려서 이와 매일 대하고자, 여름의 작약 냄새 우거진 이 향각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254
그러나 공주의 모습을 생각하고자 일단 눈을 감자, 왕의 눈은 뜨이지 않았다. 해마다 공주와 함께 여름에는 작약을 따던 이 동산, 또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한 겨울을 공주와 함께 말타기 연습하던 연마장으로 쓴 일이 있는 이 동산에 자리를 잡자마자, 공주의 모습보다도 지난 16년 간의 공주와의 부부 생활이 주마등과 같이 왕의 머리에 어른거려서 붓을 들 생각이 나지 않았다.
 
255
일국의 군왕이나 또한 어지러운 정국의 통어자로서 왕의 과거는 기구한 생애였다. 연년 다달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우 외환.
 
256
이 고달프고 어지러운 생애를 보내는 동안, 물건의 그림자와 같이 왕의 곁에서 고초를 같이 겪어 드리고 간난을 나누어 맛보는 공주가 있었거늘…….
 
257
왕의 재위 14년 간 그냥 계속적으로 있은 어지럽고도 괴로운 과거를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하면서 겨우 지탱해 왔거늘, 이제는 이런 어지러운 일이 생기면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를 믿고 누구와 어려움을 나누랴?
 
258
낮이 되기도 전에 향각에 자리잡은 왕은, 화견을 앞한 채 해가 서산에 기울 때까지 그냥 망연히 있었다. 붓은 물에 적셔 보지도 않았다.
 
259
해가 서산에 넘고 들에 나갔던 새들이 제 깃을 찾을 때야, 왕은 비로소 눈을 떴다.
 
260
"마음이 산란해서 여기서는 안 됐다. 환궁하자."
 
261
여기서는 붓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262
일심을 다해 왕이 공주의 진영을 완성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263
신기(神技)라는 일컬음을 듣던 왕의 필력이요, 일심을 다해 가장 사랑하는 이를 그린 것이라, 과연 혼이 든 듯한 진영이었다.
 
264
진영이 완성된 뒤부터, 왕은 끼니때마다 진영의 앞에도 수라반을 갖다바치게 하여 산사람 대하듯 하였다. 그 애무와 대접에 있어서 공주 생존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하였다.
 
265
이렇게 공주에게 마음을 향하기 때문에 왕은 온갖 세상사가 귀찮았다.
 
266
이렇다 저렇다 대신들이 문제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귀찮고 시끄럽기만 했다. 이 모든 세상 잡무에서 피해 공주만 생각하며 그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267
이리하여 세상 잡무를 피하기 위해, 왕은 중 편조를 사부(師傅)로 삼고, 청한거사(淸閑居士)라는 호를 내리고 국정을 자순케 하였다.
 
268
과거 14년 간의 경험으로 보아서, 소위 세신 거족(世臣巨族)들은 서로 틀고 서로 물로 서로 짜고, 이리하여 삐억삐억 좋지 못한 꾀만 꾀하고, 도당(徒黨)이 짜지고 무어지면 자연히 세력이 생기고, 세력이 생기면 자연히 다른 세력과 다투고, 다틀 세력이 없으면 왕에 대하여 불쾌한 생각까지 품게 되고, 고려 5백 년 간을 쌓아 내려온 이 세력이 지금은 너무도 뿌리가 크게 뻗어서, 이들에게는 도저히 한 나라의 정사(政事)를 맡길 수가 없었다.
 
269
초야(草野)의 신진에서 유능한 인물을 추려낼 수 없는 바가 아니지만, 이들도 차차 올라가서 명망이 생기고 귀하게 되며, 어느덧 자기의 초라한 근본을 부끄러이 여겨서, 거족들과 혼인을 하고 그 틈으로 잠겨 버리니까, 이것도 또 한길만 있는 이이 아니었다.
 
270
유생(儒生)은 또한 나약하여 굳센 맛이 없고, 그 위에 학벌(學閥)의 뿌리로써 얼기설기 연락되어 강직한 정치를 하지 못할 것이다.
 
271
과거 14년 간을 고려의 국왕으로 있으면서 지나본 바, 통절히 느낀 바가 있어, 언제든 고립(孤立)하고 강직(强直)한 인물만 골라 오던 왕이라, 이번에 고려의 정치 대행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중 편조를 부른 것이었다.
 
272
득도(得道)한 불도(佛徒)이매 욕심 적고, 천한 태생이매 얽히는 연줄이 없고, 홀몸이매 역모할 근심이 없는, 이 편조야 말로 오래 왕이 구해오던 이상적 인물이었다.
 
273
이리하여 편조는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274
여름도 어느덧 가고, 성했던 모기들도 송악으로 그림자를 감춘 어떤 가을날이었다.
 
275
왕도 이제는 얼마만치는 안돈이 된 때였다. 만날 고주의 진영과 음식 거처를 같이하며, 한 달에 한 번씩쯤은 반혼법으로 공주의 몸을 어루만질 수가 있는지라, 처음 한동안과 같이는 비통해 하지 않았다. 공주 잃은 뒤에 눈물이 잦아진 왕이라, 지금도 공주의 말만 나오면 두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했지만, 여느 때는 담소(談笑)도 예사로이 하도록 안돈되었다.
 
276
그 어떤 날 왕은 편조와 함께 강안전에서 한담을 하고 있었다.
 
277
편조의 말,
 
278
"빈도, 아니 소신은, 본이 불도 출신이라 귀현(貴顯)의 예의에 통치 못하옵니다. 이런 점은 관대히 용서해 주셔야 하겠사옵니다."
 
279
사실 편조는 어전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펴고 까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장식하는 것과, 어깨를 좀 우그리는 것이 편조에게 있어서는 최대 유일의 존경법이었다.
 
280
"전하의 관후하신 처분으로 사부라는 직책을 맡았사옵지만, 소신은……."
 
281
왕도 웃었다. 편조도 웃었다.
 
282
"네. 신, 신이 무엇을 알리까? 성의 대로만 행하옵지만 소 아니, 신 본시 미천하와 명문 거족들을 어(御)키 힘든 것이 걱정이옵니다."
 
283
" 그게야 무슨 근심이 되리까? 사부의 뒤에는 국왕이 있으니, 국왕의 명예와 명문 거족인들 거역하리까?"
 
284
"그야 그러하옵니다만, 신이 전하께 추천하와 시환한 사람들도 일단 높은 지위에만 오르면 신을 무식한 천승이라 수모하오니 이것이 신에게는 억울합니다."
 
285
왕은 이 말을 듣고 얼굴에 검은 찌를 한순간에 보였다.
 
286
그럴 듯한 말이었다. 천승(賤僧)명족?천승?명족. 왕이 이점에 대해 좀 생각하고 있을 동안, 편조는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다가 갑자기,
 
287
"전하, 내밀히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288
하고 근시들을 물리기를 간청하였다.
 
289
왕이 근시들을 물린 뒤에 편조는 넙적 왕 앞에 엎드렸다. 때때로는 이렇듯 연락 없은 일을 예사로이 하는 편조임을 잘 아는 왕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묏더미 같은 편조의 등판을 멍하니 굽어보고 있을 때에, 편조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다.
 
290
"전하, 소신. 아니, 신을 죽여 주십사."
 
291
왕은 쿡하니 웃었다. 어두운 데 주먹으로 넙적하게 엎드린 것도 우스웠고, 그 묏더미만한 몸집에서 떨리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우스웠거니와, 떨리는 소신 아니 신이라고 정정하는 것이 더욱이 우스웠다. 왕은 고소(苦笑) 가운데서 이렇게 물었다.
 
292
"사부는 대체 무슨 일이오"
 
293
"죽여 주십사."
 
294
"글쎄 무슨 일이오?"
 
295
"신이 전하를 기망하왔습니다."
 
296
"그게 무슨 말이오?"
 
297
"신이 전하를 기망하왔습니다. 신자로서 군왕을 속인다는 것은 마땅히 죽을 죈 줄 모르는 바가 아닙지만 기망하왔습니다."
 
298
"글쎄, 무슨 일이오?"
 
299
너무도 수다스럽게 구는 바람에, 왕도 눈을 크게하고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300
"전하, 오늘 밤 누옥까지 미행합시면, 신이 천람에 바칠 것이 있습니다. 죽여주십사."
 
301
"사부, 죽이기는 저녁 뒤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일어나서 이야기나 합시다."
 
302
"광은을 무엇으로 보답하리까?"
 
303
편조는 일어나 앉았다. 방금까지도 죽여 달라고 목소리를 떨던 그가, 천연히 일어나서 어깨를 우그리고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나타내고 마주앉은 이 꼴을 왕은 망연히 바라보았다.
 
304
그날 밤 편조의 집, 공주 반혼전 협실에서는 세 사람이 솔발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305
금병풍 앞 용석 위에 앉은 사람은 왕이였다.
 
306
그 곁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는 젊은 여인은 대장공주였다.
 
307
그 맞은편에 엉거주춤 꿇어앉아 있는 사람은 편조였다.
 
308
"전하, 반야(般若)라는 북국 여인이옵니다. 전하를 기망한 죄는 일백 번 죽어도 마땅하오니 처분하옵소서. 그러나 이는 신 스스로를 위함이 아니옵고, 위로는 전하를 위함이옵고 아래로는 전하를 잃으며 광명이 끊기는 고려의 창생을 위해서옵니다. 공주전 승하 후에 전하를 몇 달간 빈전에 모실 때에, 전하의 심경을 살피옵고, 신이 몰래 사람을 놓아서 전국에서 구해 온 여인 백여 명 중에서 골라낸 사람이 이 반야이옵니다. 공주전의 면영을 닮았다고 구해 온 백여명 여인 중에서 가장 흡사한 자로 택한 여인이 이 반야이옵니다. 전비(田卑)의 천생이 어찌 감히 용종(龍種)에야 비기리까마는, 그래도 얼른 보기에는 외람되이도 공주전의 면영을 닮았삽기, 행여 전하의 부르심을 불까 하고 시이 꾸몄던 한막의 연극이로소이다. 군왕을 기망한 죄 일백 번 일천 번 도륙을 당하와도 한이 없소이다. 죽여 주십사."
 
309
왕은 대답이 없었다. 눈을 딱 감은 채 묵묵히 있었다. 방심한 듯, 그 밖에 다른 표정은 없었다.
 
310
아직껏 공주의 혼으로 알고 애무하던 것이, 사실인즉 한 개 실물 여인에 지나지 못하였으니, 거기 대한 낙망 때문에 이렇듯 방심 상태가 되었나?
 
311
반혼술이라 무엇이라 해서 군왕을 이렇듯 농락한 편조의 행동을 괘씸히 보기 때문에 그 노염으로 이렇듯 묵묵히 있나?
 
312
이런 무리들에게 속아서 줄줄 따라다니던 당신의 행동을 스스로 부끄러이 여기기 때문에 대답이 없나?
 
313
혹은 대장공주 아니 이 반야라는 여인에게 애정이 품어지므로 그것을 꺼려서 가만히 있나?
 
314
왕은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315
"반야도 또한 전하를 모신 지 수삭에, 외람되이도 전하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는지, 이젠 공주전의 혼백으로가 아니요, 반야 자신으로 모셔 보고 싶어하는 듯한 양을 보면, 그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심사가 가증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가련도 하옵니다. 성의(聖意)는 어떠하시온지……."
 
316
잠깐 말을 끊고 왕과 반야를 본 뒤에 편조는 또 말을 계속했다.
 
317
"또 한 가지, 반야는 전하를 처음 모신 뒤부터, 태기가 있는 모양이옵니다(왕은 이 말에는 흠칫하였다). 벌써 5, 6삭. 밭은 천비의 천종이나마 씨는 용종. 이 뒤라도 혜비전마마께서 왕자를 탄생합시면 다른 일이 없겠거니와, 그렇지 못하오면, 이 아기가 유일의 천하의 혈자가 아니오니까? 지금 나라의 정국이 어지러운 때에 하루바삐 혈사가 없으시면 고려의 사직이 위태롭사옵니다. 신의 죄는 일백 번 죽어도 마땅하옵기 어전에 죽음을 빌기와, 전하의 후를 생각하셔서 반야에게는 관대하신 처분이 계시기를 바라옵니다."
 
318
왕의 앞이라고 억지로 지으려던 근엄한 표정은 어느덧 자연적 위엄까지 띠었다. 눈에는 눈물 흔적까지 보였다.
 
319
왕은 그냥 침묵을 지켰다. 고요한 방에 세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잠자코 있었다. 한참 뒤에 왕이 일어섰다.
 
320
"전하 어디로……?"
 
321
편조가 펄떡 놀라서 뒤따라 일어섰으나, 왕은 따라오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두어 번 설레설레 젓고는, 머리를 푹 수그린 채 방 밖으로 나갔다. 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했다.
 
322
반야는 왕이 임어할 때부터 지금껏 머리를 가슴에 묻고 깎아놓은 듯이 앉아 있었다.
 
323
좀 뒤에 편조가 나가 알아보니, 왕은 아까 벌써 환궁하였다 한다.
 
324
그로부터 두 달, 편조는 대죄하는 뜻으로 집에 박혀 있어서 입궐치 않았다.
 
325
반야도 자기의 거실인 별당에서 근신하고 있었다.
 
326
그러나 왕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죄를 준다는 뜻도 입궐하라는 분부도 없었다. 편조도 이번 일은 왕과 반야와 자기 세 사람만이 아는 사건이라, 어떻다 말을 낼 수도 없고, 단지 침묵중에서 왕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는데 뜻밖에도 섣달에 들면서 왕은 편조를,
 
327
수정이순 논도섭리 보세공신 벽상 삼한 삼중대광 영도첨의사사사 판중방 감찰사사 취성부원군 제조 승록사사겸 판서운관사(守正履順 論道燮理 保世功臣 壁上 三韓 三重大匡 領都僉議使司事 判重房 監察司事 鷲城府院君 提調 僧綠司事兼 判書雲觀事).
 
328
로 봉하고, 겸하여 환속(還俗)하기를 명하고 속명까지 신돈(辛旽)이라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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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194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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