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대 상수(上手)에는 여학교 통용문이 되고 바른편에는 여학교 문패가 걸렸고, 장명등이 처마 앞에 달렸고, 정면으로는 담이 둘리었으며 담안에는 학교 교실이 넘어다 보이는데, 하수(下手) 로는 멀리 시가가 보이는 배경.
4
이때에 화도로 쫓아 정필수와 하계순이 들어오는데, 학교 문안으로 쫓아 미친 사람같이 쫓겨오는 박원청은 이 두 사람과 마주쳐서 세 사람이 넘어질 뻔하다가 다시 일어서서, 박원청은 두 사람을 지내어 화도 있는 곳까지 갔는데,
8
옳지, 그게 박생원이로구먼. 웬일이야, 사뭇 쫓겨나오니.
10
(별안간에 장님인 체하며) 그것들이 누구야, 응. 모를 사람들이니.
12
왜 이렇게 시침을 때이고 이리해. 나는 하계순이오.
16
응, 나는 누구라고, 자네들일세그려. 그럼 상관없지.
20
아니, 그건 지금 내 말일세--- 그러나 자네들은 어찌하여서 왔나?
22
다름이 아니라요, 당신이 좀 살려 주셔야 하겠습니다. 저는 저의 처에게 일어를 배우는데요, 배우기가 귀찮아서 귀머거리 노릇을 하였더니 그 후로는 밥도 먹이지 아니 하고, 그래 견디지 못해서 하 선생님 댁에를 의논차로 갔었지요.
24
나는 저 정필수를 귀머거리로 진찰을 하였더니, 우리 마누라가 그렇게 진찰하는 법이 어떤 책에 있느냐고 들이대니까, 나도 할 수 없이 벙어리 행세를 하였더니, 벙어리가 의원노릇 할 수 없으니 인제부터는 문간 심부름이나 하라고 내어 쫓는데 마침 저 사람이 오기에 서로 신세타령을 하고 계집년들 날뛰는 것을 어떻게 방비할 도리가 없겠느냐고 의논하는데, 또 마누라에게 들키었지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당신에게나 말씀을 해서 계집들을 단속을 해볼까 하고 온 길이오. (두 사람이 간단히 지난 말을 하니 박원청은 같은 일도 다 있다고 혼자 중얼거리는 말로 하다가,)
26
자네들 하는 말이 무슨 못생긴 소린가. 제 계집한테 꾸지람을 듣고 꿈쩍을 못한대서야 그게 사람인가, 무엇인가.
28
암만, 말씀은 그렇지오마는 사나이보다 여편네가 글도 잘하고 돈도 더 벌어서 서방을 먹여 주니까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30
이게 이른바 우승열패(優勝劣敗)라 하는 것이오그려.
32
자네들은 생각을 그렇게 하니까 못쓰겠다 하는 말일세, 대체 동양이라 하는 것은 남존여비한 풍속이 있는 곳이라, 가령 여자가 아무리 학문이 있고 돈을 많이 벌지라도 사나이들은 처음부터 마누라들에게 소들하게 보이어 놓아서 점점 여편네는 기승하고 사나이는 죽처지지. 나를 보게나그려, 암만 보기에는 이러해도 밤낮 기생상패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진탕 놀아도 누가 나를 가지고 말을 하겠나. 오늘도 어떤 내 정든 기생 하나가 편지를 하구서 둘이서 훗훗이 어디로 구경을 가자고 했데그려. 그 편지를 마침 우리 마누라가 보고서 무엇이라고 옥천암을 내어서 종알거리기에, 내가 주먹기운으로 막 내질러 놓았더니 자라 모가지 모양으로 쑥 들어가서는 다시 꿈쩍을 못하데, 그런데 자네들은 계집이 무서워 병신 흉내를 다 낸단 말인가. 그저 주먹바람이 제일일세. 그래도 듣지 않거든 내쫓아 버리지.
34
아이고나, 내쫓아요. 계집을 내쫓기는 고사하고 제가 지금 내쫓기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는 없으니 달리 무슨 묘한 방법이 없겠습니까.
36
글세, 이왕 병신인 체들을 하였다니 그대로 내어뽑는 것도 사나이의 행동이란 말이야.
38
그래서 여편네들 좀 고생을 시켜야지, 그것도 묘한 계책인데.
40
정말, 그렇소이다. 제일 병신이라 하는 것은 법률상으로 말을 하더라도 불론죄(不論罪) 라 하는 것이 있으니까.
42
그렇지, 그렇지. 여간 야단은 좀 쳐도 관계없네. (이때에 박원청의 아내 김원경이 문 안으로부터 나온다.)
44
여보,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소. 장님이 되어 가지고 고칠 생각은 아니 하고 도망질하여 나와서는--- 어, 자네들은 어찌해서 왔나. 여기들 모여서 무슨 못된 공론들을 하고 있었어--- 응.
46
그게 누구야, 나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데.
48
나요 내야, 교장 김원경 씨야, 그래도 몰라.
52
마누라가 다 무엇이야. 버릇없는 소리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서 눈 고칠 생각이나 해요, 만일 그래도 아니 들어가면 끌고라도 들어갈 터이니.
54
네네, 가겠습니다. 여보게, 자네들. 내가 지금 들어가면 눈을 칼로다가 도려내인다니 좀 말려 주게. (정필수와 하계순이 보다못하여 두 사람의 사이를 파고 들어간다.)
56
자네들은 교장도 몰라보고 이게 무슨 짓들인가. (하며, 하계순과 정필수를 좌우로 밀어 물리치니 두 사람은 비틀비틀하며 좌우로 물려갈 때에 상수로는 공소사, 하수로는 이옥자가 나온다.)
60
아이고, 저이는 왜 또 여기 있을까. (세 사람은 모두 병신 모양을 제가끔 한다.)
62
너 같은 하인은 두어야 쓸데없으니까 오늘부터 내어쫓는 것이니 그런 줄 알아.
64
하계순도 오늘부터 방축하는 것이니 그리 알으시오.
68
자아. 인제 우리가 이 모양 당한 바에야 무엇을 헤아릴 것이 있나. 병신은 법률에도 불론죄니까 아무짓을 하여도 관계없으니 우리 세 사람이 입때가지 벌어놓은, 학교에 있는 돈은 모두 가지고 나가서 우리 분배하여 먹세. 자아, 들어가세. (하며, 박원청이 앞을 서고, 하계순 정필수도 문안으로 들어가려하는 것을 세 여자는 놀래어 못 들어가게 붙들고 한참 동안 다투는데 헌병 보조원 길춘식이 나와서 제재하며,)
72
예에, 이것은 우리 하인인데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내어 쫓으려 하니까 이렇게 요란을 피웁니다그려.
74
거짓말 마라, 이년아.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니, 네가 도리어 나를 밥도 아니 주고 구박을 하였지.
76
에라, 귀에 말이 들리는 게일세. (정필수가 깜짝 놀래어 어름어름.)
80
이것은 우리 병원에 있는 의사올시다. 그런데 지금까지 환자의 병을 보는데 약을 잘못 써서 사람을 수없이 죽였으니까. 이 사람은 살인죄이올시다.
88
이 사람은 우리 학교의 회계로 있던 사람인데 돈을 너무 축을 내어서 노오 나무래도 듣지 않다가, 심지어 외입을 해서 기생의 편지가 하루로 몇 십 장씩이 오는지 모르지요. 이게 증거물이니, 이 편지를 좀 보십시오.
90
함부로 사람을 무소하지 말아. (하며 급히 그 편지를 빼앗는다.)
94
허허, 우연히 오늘은 큰 중죄인들을 잡았군. 어떻든지 우선 구류를 해야 하겠구.
96
네. 가서 갇혀 있는 것이 밥은 줄터이니까 집에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98
집에서 찡찡거리는 소리만 듣느니보다 상팔자올시다. 어서 갑지오.
100
저 세 계집이 우리 잡혀가는 것을 보면 속이 시원들 할 터이니 어서 잡아 갑시다. (헌병은 포승으로 묶으려 하고, 세 여자는 잡아다가 어찌하려느냐 물은즉,)
102
말끔 조사한 후에는 검사국으로 보내서 감옥소로 들어갈 터어지. (세여자는 깜짝 놀라며,)
106
감옥소에는 아니 가도록 하여 주십시오.
108
그러면 우리 여자의 사회가 손상이 될 터이니 잡아 가지는 말고 단단히 꾸짖기나 하여 주십시오. (세 사나이는 발을 구르며, 잡아가라 하고 헌병은 영문을 모르고,)
110
안된다 안되어. 저의들이 호소를 하고 나중에는 무슨 딴소리야--- 너희들 어서 가자.
112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그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올시다.
118
응, 남편이야, 기가 막혀. (깜짝 놀라는 모양이 막을 닫히는 군호)
120
인제 다시는 병신 흉내를 내지 마시오. (세 뭉텅이 내외가 서로 손을 잡고 화목한 모양. 헌병 보조원은 기가 막혀 말 한 마디 없는 것으로 막이 닫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