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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삼인(病者三人) ◈
◇ 3장 ◇
해설   목차 (총 : 4권)   서문     이전 3권 다음
1912년
조중환
 

1. 3장

2
여학교장 김원경 사무실
3
평무대 양실이 되고, 테이블, 교의, 등불이 놓였으며 지화가 궤 속에 들어 있고, 수판을 놓으며 장부를 조사하고 있는 사람은 그 학교 교장 김원경의 남편되는 박원청이니 나이는 삼십여 세 되는데 그 학교 회계로 있는 사람이러라. 이때 하인이 들어오더니,
 
4
하인
5
지금밖에 웬 여편네가 하나 와서 영감께 보이겠다고 합니다.
 
6
박원청
7
웬 계집이란 말이냐. 나이는 얼마나 되었디. 모양은 어떠하고,
 
8
하인
9
전에는 보지 못하던 계집어야요. 나이는 스물 대여섯이나 되어 보이고, 얼굴을 기름이 조로로 흐르는 것이 똑 기생의 집 자릿저고리 같습디다. 매화의 집에서 왔다던가요.
 
10
박원청
11
무엇이, 매화집에서. 그럼, 거기서 조방 보는 설월이라 하는 년이 온 것이로구나. 학교에까지 쫓아와서야 어떻게 하나, 내가 없다고 보내려무나.
 
12
하인
13
댁에 계시다고 했는걸요.
 
14
박원청
15
그럼 안되었구나. 그렇지만 네가 어떻게 말을 잘 꾸며대서 말을 해 보내야지. 이리 들어와서야 쓰겠니.
 
16
하인
17
아이고 쓸데없습니다. 벌써 여기 들어 왔는걸요. (박원청이 깜짝 놀래어 어찌할 줄을 모르는데 설월이가 들어온다.)
 
18
설월
19
영감은 오래간만에도 뵈옵겠구려. 어쩌면 그렇게 한번 아니 오신단 말이오. 우리 매화는 밤낮으로 영감 생각만 하고 있는데, 인정이 있거든 한번 와서 좀 보시구려. (박원청이는 하인이 옆에 있는데 창피함을 못견디어 눈짓과 기침으로 눈치를 보이나, 종알거리기 좋아하는 설월이는 조금도 남의 창피한 것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물 흐르듯 종알거린다.)
 
20
박원청
21
글세, 다 알아들었으니 그만두어. 매화가 필 때가 되면 어련히 내가 또 꽃구경을 갈라고.
 
22
설월
23
얼시고, 그렇게 시침을 떼고 딴 소리로 나를 속이려고 하면 내가 그렇게 속아 넘어가나. 우리 매화가 당신으로 해서 병이 나다시피한 것을 생각하면 매화는 고사하고 내 마음에도 미워서 못 견디겠소.
 
24
박원청
25
실없는 소리 하지 말게.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이렇게 와서 요란을 피우나.
 
26
설월
27
어디는 어디야, 학교지. 우리집에 와서 매화 무릎을 베개삼아 배고 자빠져서 지랄할 때와는 아주 점잖은 체도 하네.
 
28
박원청
29
그건 무슨 소리야. 어서 오늘은 그대로 가게. 오늘은 사무가 좀 바쁘니.
 
30
설월
31
일이 있어서 왔는데 도로 가요. 그러나 지난 달에 세음은 어찌하실터이오. 오늘은 좀 주셔야지요.
 
32
박원청
33
세음이 무엇이야.
 
34
설월
35
왜 또 모르는 체하고 이리하오. 똑 노름채라고 말을 해야 알아듣겠소. (박원청이는 하인 보는 데 창피를 이기지 못하여,)
 
36
박원청
37
이애, 너는 왜 거기 잔득 서서 있니. 어서 가서 심부름이나 하지 아니하고, 어서 저리로 가거라.
 
38
하인
39
네에, 지금 가겠습니다. 두 분이 하시는 수작이 곧 재미있습니다그려.
 
40
박원청
41
예이 그놈, 가라면 어서 갈 것이지.
 
42
설월
43
손님이 왔으니 차라도 한 잔 주구려.
 
44
박원청
45
차 가져 올 것도 없다. 저기 나가 있다가 부를 때나 들어오노라, (하인이 밖으로 나간 후,)
 
46
박원청
47
글세, 사람이 어찌하면 그렇게 염치가 없이 덤비나. 하인이 앞에 있는데 창피해서 죽을 뻔했네. 만일 교장께서--- 아니 우리 마누라가 이것을 보았더면 어찌할 뻔하였나. 큰일날 걸.
 
48
설월
49
무엇이오. 큰일나요. 판관사령으로 사는구먼. 아이고 망측해라. 그게 사내 주먹이란 말이오.
 
50
박원청
51
그렇지만 여기는 여편네가 주장하는 학교가 되어서 암만 사나이라도 소용이 없어. 그러나 내 세음은 모두 얼마가 되나. (세음발기를 바라보더니)
 
52
박원청
53
합계 이십칠원 삼십오전이로군. 대단 비싸다.
 
54
설월
55
당신은 놀 제는 좋아하다가도 세음해 달랄 때엔 꼭 군소리를 하고서 값을 깎으려고 하니 노름채도 깎습니까. 그런 단작스러운 버르장머리는 인제 좀 내버리시오. 암만해도 오늘은 세음을 다 해주셔야 하겠소.
 
56
박원청
57
아무렴, 세음은 해주겠지만 오늘은 돈이 마침 없으니 요다음에 받아가게.
 
58
설월
59
할 수 없어요. 오늘은 세상 없어도 받아 가야만 하겠소. 저 책상 위에 있는 것은 그게 돈이 아니고 무엇이오.
 
60
박원청
61
(손을 들어 돈을 꽉 누르고) 천만의 소리를 다 하네. 이것은 학교 돈이니까 암만 많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것이야. 만일 그 돈을 건드렸다가는 내 목이 비어서 양풍하는 날일세.
 
62
설월
63
당신 목 달아나는 것을 내가 알 것 있소. 당신이 돈을 아니 주면 나는 교장 마님께 달라겠소.
 
64
박원청
65
아이고 아이고 천만에, 우리 마누라더러 그런 말을 했다가는 나는 죽고 사지는 못하는 사람일세. 저 오늘만 참아 주면 내일은 일찍이 어떻게든지 변통해다가 줄 터이니 오늘은 그저 돌아가게. 이 치부책을 다 그럭저럭하면 그 속에서 돈이 날 모양이니까 내일은 실기 아니함세. 응.
 
66
설월
67
할 수 없어요, 속이는 것도 한 번 두 번이지요. 오늘은 세상없어도 받아야 하겠소. 세음만 다 해주시면 당신이 반가와 하실 것을 하나 드리지요.
 
68
박원청
69
내가 반가와할 것? 무엇이야, 응.
 
70
설월
71
무엇은 물어 무엇해요. 보면 기가 막힐 것이지. 생각해 보시구려. 무엇일 듯한가.
 
72
박원청
73
암만 생각해도 알 수 없는걸.
 
74
설월
75
알면서도 부러 모르는 체하는 게지. 그런게 아니라, 매화가 편지를 당신에게 전해 달라고---
 
76
박원청
77
응, 매화가 내게 편지를 했어. 옳지, 요전에 만났을 때에, 우리 단둘이서 문밖으로 훗훗하게 놀러 가지고 하더니, 필경 그 말인 게로구. 이리 내어 어서 보게, 궁금하니. (하며 수염을 좌우로 쓰다듬으며 얼굴 모양을 낸다.)
 
78
설월
79
드리기는 드리더라도, 세음을 해주셔야지요, 세음을 해주어야 드릴터이요, 세음을 해주시면 이 편지를 드리지, 그렇지 아니하면 이 말을 교장마님에게 하고 돈을 받아갈 터이니 어찌하실 터이오.
 
80
박원청
81
어, 지독한 귀신도 만났고, 할 수 없으니 나중에 어떻게든지 할 양으로하고, 우선 이 돈으로라도 세음을 하여 줌세.
 
82
설월
83
그러면 어서 주시오.
 
84
박원청
85
편지부터 먼저 뵈여야지.
 
86
설월
87
그건 할 수 없소. 편지를 드릴 터이니 돈을 내이시기오. 우리 좌수우봉합시다. (박청원은 할 수 없어 이십팔원 지폐를 책상위 내어 놓고 편지를 받는다.)
 
88
박원청
89
자, 돈은 여기 이십팔원이 있으니 육십오전을 거슬러 내야지.
 
90
설월
91
아이고, 고맙습니다. 또 한 번 놀러오시오. (하며 이십팔전을 다 가지고 슬며시 밖으로 나아가니, 박원청은 편지 보기에 정신이 없어 설월이 가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92
박원청
93
편지는 모슨 편진고. 요사이 기운 어떠하시며, 일전 세음은 도무지 소식이 없사오니 어찌 하시는 일인지 모르와, 이 설월을 보내오니 이편에 곧 보내주시기 바라오며 일전에 말씀하시던 반지는 그간 잊어버리셨는지, 다시 소식이 없사오니 약조대로 곧 사서 보내십소서. 아녀자에게 그다지 실언을 하시옵나이까. 총총 수자 적습나이다. 이런 빌어먹을 년 보았나. 나는 무슨 정다운 편지나 하는 줄 알고 반가이 보았더니 왼통 돈만 달라는 말뿐일세그려. 이 설월이란 년이 나를 속였구나. 고헌 년 같으니--- 아, 이년도 벌써 달아났네. 육십오전, 거슬러 주지도 않고, 이런 죽일년이 세상에 있나. (마침 이때에 안에서 기침소리 나며 그 학교 교장 김원경이 양복 입고 나온다.)
 
 
94
김원경
95
이에, 무슨 소리를 그렇게 요란히 떠드오.
 
96
박원청
97
지금 잠깐 일이 있어서--- (하며 급히 편지를 집어 양복 주머니에 넣으려 하다가 책상 아리로 떨어뜨린다. 김원경은 무심히 이 편지를 집었더라.)
 
98
김원경
99
왜 이리 허둥허둥하고 있소. 오늘 세음은 다 해보았소.
 
100
박원청
101
네, 대강 다 되었습니다.
 
102
김원경
103
(치부와 돈 수효를 맞추어 보더니) 아, 세음이 맞지 않는구려. 치부보다 돈은 이십팔원이 부족인데---
 
104
박원청
105
응, 그럴 리가 없다구.
 
106
김원경
107
그럴 리가 없는 게 무엇이오. 자세히 세음을 해보구려.
 
108
박원청
109
그러면 치부의 합계가 잘못된 게지.
 
110
김원경
111
아니 가만히 있소. 내가 세음을 해보고 내 도장까지 쳤는데 틀릴 리가 있소. 그런데 돈이 왜 부족이 된단 말이오. 바로 말을 하오.
 
112
박원청
113
모자랄 리가 있다구. 내가 똑 여기 있어서 떠나지를 아니 하였는데 누가 와서 집어갈 리도 없는데 어쩐 세음이란 말인고, 알 수 없는 일이구--- 아아 옳지, 아까 내가 오줌 누러갔을 때에 누가 와서 홈쳐간 게로구. 암만해도 하인놈의 짓인 게지, 다른 놈이야 여기를 들어올 틈이 있나. 그놈의 목자가 항상 불량하더니 그게 그런 짓을 하는구. 눈을 밝혀야 하겠네그려.
 
114
김원경
115
얼사, 그건 다 무슨 소리야. 제 죄를 남에게 씌우려고 하니 나를 암만 속이려도 내가 속지 아니할 걸.
 
116
박원청
117
그건 무슨 소린가. 내가 그럴 리가 있나.
 
118
김원경
119
그러면 왜 돈이 부족될 리가 있소.
 
120
박원청
121
나는 부족되는 줄을 모르겠는데.
 
122
김원경
123
그러면 돈하고 회계하고 맞추어보구려.
 
124
박원청
125
무슨 회계하고---
 
126
김원경
127
이 회계해 놓은 채부책하고 맞추어 보란 말이예요.
 
128
박원청
129
(안경을 쓰고 책을 들여다보며 어름어름하다가) 어디 보이나.
 
130
김원경
131
이 합계해 놓은 것 보고, 이 돈을 세어 보란 말이예요, 그래도 몰라.
 
132
박원청
133
글세 합계가 어떤 것인지, 돈이 어떤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네. (눈을 쓱쓱 씻는다.)
 
134
김원경
135
나를 속이려고, 나는 벌써 다 알고 있는데, 낫살이나 먹어 가지고 밤낮 계집의 집에만 당기고.
 
136
박원청
137
그럴 리가 있나.
 
138
김원경
139
그럴 리가 있나, 흥, 그러면 이 편지는 웬 것이야. (하며, 매화의 편지를 내밀어 박원청의 턱밑에 들이댄다.)
 
140
박원청
141
응, 무--- 무엇이, 무엇인지 도무지 나는 보이지 않는데,
 
142
김원경
143
아니 보이면 내 읽어 주리까. (하며 편지를 낭독한다.)
 
144
김원경
145
이래도 모른다고 하겠소 그래도 명색이 여학교 교장의 남편이란 사람이 이런 나쁜 짓을 하고 당긴단 말이오.
 
146
박원청
147
나는 그런 일이 없는데 웬 소린지 모르겠네.
 
148
김원경
149
왜 이리 시치미를 떼고 이리해. 겉봉에다가 당신 이름이 잔뜩 쓰여 있는데 그래.
 
150
박원청
151
거짓말 하지 말게, 그럴 리가 있나.
 
152
김원경
153
글세, 이걸 보면서도 그럴 리가 있느냐고 그리오 이 편지가 그래 눈에 들어가지 않는단 말이오.
 
154
박원청
155
편지가 눈에 들어가면 요술꾼이지.
 
156
김원경
157
말을 어떻게 알아듣고 그리해. 이 편지가 보이지 아니하느냐 하는 말이요(소리를 지른다.)
 
158
박원청
159
도무지 안 보이는데, 어디--- (하며 눈을 희번덕이고, 손으로 더듬더듬하여 장님모양을 짓는다)
 
160
김원경
161
눈을 뜨고서도 이것을 못 보아요.
 
162
박원청
163
응, 눈을 떴어도 희미해서 도무지 보이지를 않네그려. 별안간에 안질이 났나. 원. 조금도 보이질 않는걸.
 
164
김원경
165
그러면 장님이로군.
 
166
박원청
167
그렇지 보이지 아니하니까 장님이지.
 
168
김원경
169
응, 그러면 그만두시오. 전재 출납하는 일을 장님한테 맡겨둘 수 없으니 회계는 보지 마오. 내가 요전부터 어쩐지 궤 속에 돈이 날마다 없어지더라니. 이상히 여겼더니, 모두 이 장님의 짓이로구먼. 인제 장님이 되었으니까 장님 행세를 해야지.
 
170
박원청
171
장님 행세는 어찌하는 것인가.
 
172
김원경
173
내 뒤로 와서 어깨나 좀 주물러 주어요.
 
174
박원청
175
그건 좀 어렵구려. 명색이 서방님인데 계집의 어깨를 주무르다니, 그건 정말 어려운걸.
 
176
김원경
177
어렵기는 무엇이 어려워. 잔말말고 어서 주물러요. 공연히 분부를 거역하면 서방의 지위까지 파직을 시킬 터이니--- (하릴없이 뒤로 돌아와서 어깨를 주무른다. 이때에 하인이 들어오는지라 박원청은 머뭇머뭇한다.)
 
178
하인
179
지금 여기 공소사께서 오셨는데 교장마님을 잠깐만 조용히 뵈옵겠답니다.
 
180
김원경
181
그러면 이리 들어오시라 하려무나--- 그런데 어깨는 왜 안 주무르고 가만히 있어.
 
182
박원청
183
글세, 손님이 왔다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여봅시오, 그저 남 보는데는 그만 둡시다.
 
184
김원경
185
아이고, 아니꼬와라. 이 꼴에다가 부끄러운 줄은 아는 것일세. 관계치 아니하니 어서 주물러요.
 
186
박원청
187
그렇지만 공소사가 비밀히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니 나는 저리로 저리로 들어가겠소--- 이에, 내손을 좀 끌어다고, 보이지 아니하니. (하며, 발을 더듬더듬하여 하인에게 끌려가고 공소사가 밖에서 들어온다.)
 
188
공소사
189
아이고, 어떠십니까.
 
190
김원경
191
웬인이시오. 어서 이리 올라오시오. 무슨 일이 있소?
 
192
공소사
193
다른 말씀이 아니라요, 내가 이 학교 의원이지요. 명색이 촉탁의가 되어서 듣고 가만히 있지 못할 일이 있어서---
 
194
김원경
195
예, 무슨 일인가요.
 
196
박원청
197
다른 게 아니라, 이 학교 직원 중에 꾀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못쓰겠어요.
 
198
김원경
199
꾀병하는 사람이 있어요?
 
200
공소사
201
예, 지금 당장에 우리 남편된다는 사람이 가짜 벙어리가 되었지요. 또 하인에 정필수는 가짜 귀머거리가 되었지요.
 
202
김원경
203
예에, 요새 그런 일이 많이 있구려. 우리 학교 회계도 지금 별안간에 장님이 되었구려. 당신 말을 지금 듣고 보니까 그것도 꾀병인 게요. 저런 못된 사나이들이 어디 있단 말이오.
 
204
공소사
205
예에, 당신 남편 양반께서도 그러셔요. 그럼 요사이 꾀병들이 돌림인게 올시다그려.
 
206
김원경
207
그럴 리가 있소마는, 명색이 사나이 주먹이라고 여편네를 업신여겨서 그리하는 것이니까, 다시는 그 따위 버릇을 하지 못하게 단단히 버릇을 가르치겠소.
 
208
공소사
209
글세, 내 말이야요. 우리가 오백 여 년을 갇혀 있다가 이런 성대를 만나서 여자로 사회에서 활동을 해서 사나이의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려 하는 것이 우리 목적인데, 이런 일이 있어서야 우리 목적을 득달할 수가 있소. 그러하니까 다시 사나이들이 이런 행실을 못하도록 단단히 장치를 해야 하겠길래, 당신을 뵈어 보고 그 의논을 하러온 길이올시다.
 
210
김원경
211
아이고, 당신 말씀이 옳소이다. 우리 영감--- 아니 우리집 치붓꾼부터 먼저 장치를 해주셔아 하겠소.
 
212
공소사
213
그렇게 하지요, 나도 지금 하계순이를 단단히 혼을 내고 왔습니다. 그러면 당신 남편을 장치하여 드리리다. (하며 하인을 부르더니 박원청을 데려오라 한다. 박원청은 하인에게 끌려 나온다.)
 
214
김원경
215
여보 영감, 눈이 그렇게 별안간에 아니 보이면 어찌하오. 마침 의사가 여기 와서 계시니 좀 보아 줍시사고 하구려.
 
216
박원청
217
아아니, 의사한테 보일 것은 없어. 돌림으로 그러는 것이니까 며칠 있으면 도로 낫겠지요.
 
218
김원경
219
그걸 어찌 믿소, 사람이란 것은 눈같이 중한 것은 없는데 만일 그대로 두었다가 영 눈이 멀어버리면 어찌하려고 그리하오.
 
220
공소사
221
그렇게 사양하시지 말고 어서 이리와 보이시구려.
 
222
김원경
223
이얘, 그 영감을 교의에 앉혀 드려라.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인이 교의에 앉히니 공소사가 대강 진찰한 후.)
 
224
공소사
225
지금 보아서는 눈은 아무렇지도 아니한 것 같은데.
 
226
박원청
227
글세, 보기에는 그러해도 조금도 보이지는 아니하니까.
 
228
공소사
229
그것 참 안되었소이다. 그러면 시험을 해봅시다. (하며 실내에 있는 제구를 가리키며 무엇이냐 묻는데, 박원청은 진정 보이지 아니하는 것같이 딴소리로 대답한다. 두 여자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230
공소사
231
이것은 참 중병이올시다. 정말 아니 보입니다그려. 이 병을 만일 그저 내어버려두면 눈 뿐이 아니라 나중에는 얼굴까지 다 썩어 없어지지요.
 
232
김원경
233
예? 그러면 큰일났소이다그려. 어서 무슨 약이든지 써서 고쳐 주시오.
 
234
공소사
235
염려 마십시오 내게 맡기시면 고쳐 드리오리다.
 
236
김원경
237
어서 속속히 고쳐 주시오. (하며 가방 속으로부터 가위와 칼과 집게를 내어 가지고 앞으로 가니 박원청은 놀래어,)
 
238
박원청
239
아 여보, 내 눈을 어떻게 하려고 기계를 가지고 덤비오.
 
240
공소사
241
눈이 보이는 게일세.
 
242
박원청
243
아니, 보이지는 아니해도 무엇인지 번쩍번쩍하는 것 같애서 하는 말이오.
 
244
공소사
245
이 눈은 칼로 도려 내어야지 낫지, 그렇지 아니하면 큰 병신이 되오.
 
246
김원경
247
(하인을 부르며) 이에, 잔뜩 붙들고 있거라. 꼼짝 못하게.
 
248
박원청
249
도려내어. 아이고머니나. (하며, 하인과 공소사가 붙든 손을 뿌리치고 한달음에 달아난다. 뒤쫓아 세 사람도 쫓아가는데 막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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