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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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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진의 역사와 문화
22. 섬진강다목적댐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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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
(2024.01.27. 16:44) 
◈ 22. 섬진강다목적댐의역사
섬진강 다목적댐
 
댐 건설 연혁과 추진배경
 
섬진강유역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동진강유역은 대부분이 광활한 평야지대로서 하구지역에는 광대한 간석지가 발달되어 있어 농업개발의 적지를 형성하고 있으나 수원의 부족으로 항상 한해가 발생하였던 지역이다. 특히, 1920년 초유의 한해가 발생한 이후에 1925년 8월에 동진 수리조합을 설치하게 되었다.
 
당시 동진수리조합에서는 수자원이 풍부한 섬진강의 표류수를 유역 변경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데 착안하여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 높이 40m, 길이 305m, 유효저수용량 6,065만㎥의 곡선형 콘크리트 중력식 댐을 1928년에 완공하고 임실군 운암면 운정리에 취수구를 설치하여 섬진강 물을 최대 18㎥/s를 취수하여 동진강지역의 22,100정보의 몽리구역에 관개를 하게 되었다.
 
그 후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으로 인하여, 극심한 식량난과 자재난에 직면하게 되어 전략기지인 한반도에서 미곡을 증산하고 군수물자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동력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당시 남선수력전기(주)와 조선농지개발공영단(현 한국농촌공사) 사이에 협정을 체결하여 이 지역을 공동으로 종합 개발하는 계획을 세워 하류 2km지점에 1940년 4월 신댐을 착공하였다.
 
즉 기설댐 하류 약 2㎞ 지점에 새로운 댐 건설공사를 착수하였으나, 1944년 9월 세계 제2차 대전의 영향으로 중단되었고 1948년 8월 조선전업주식회사(현 한국전력공사)에 의하여 재 착공되었으나 1950년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1961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62~'66)에 반영되어 한국전력공사의 시공으로 1961년 8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이러한 과정으로 진행된 섬진강댐 건설사업 최초 발상부터 완공되기까지의 연혁은 아래와 같다.
 
섬진강댐 연혁
 
1917년 일본인 坂田(총독부 토목과)과 池田 2명의 기사를 파견 동진강유역 실태 조사
1917년 6월 일본인 판출기사와 전라북도지사. 정읍군수 등이 동진강유역 댐건설 장소 물색 현지조사 후 항공사진촬영결과 동진 평야와는 전혀 다른 유역으로 섬진강의 수원을 발견하고 착안하여 사업 성공을 거두게 됨.
1919년 12월 일본인들이 실시조사와 설계하는 과정에 수몰예상지구인 임실군 운암면민들의 극렬한 반대운동이 일어남.
1920년 2월 토목기술자인 공학박사 近藤仙太郞을 技士長으로 측량을 완료
1920년 5월 금만평야 대지주 수리조합 설립 및 댐건설추진
- 1천정보 이상 소유 일본인 대지주 5명 중심
- 섬진강 수계에 높이 26m의 아취형 댐건설 구상
- 대지주간 부담 이견으로 착수 실패
1921년 5월 동진수리조합 저수지 예정지부근 지질조사보고
1924년 대 한발로 호남평야 일대 불모의 황무지화
1925년 5월 동양척식회사 이리지점장 渡邊得司郞을 위원장으로 창립위원회 구성(위원장 1인, 위원 20명)
1925년 8월 19일 동진수리조합 설립인가(조선총독부)
1925년 9월 13일 운암제 사업계획(운암제 설치사업 포함)인가(조선총독부)
1925년 11월 1일 콘크리트 중력식 운암제(구댐)기공(동진농조)
1928년 10월 운암발전소 기공(남조선전기(주))
1928년 12월 8일 운암제 준공(동진농조)콘크리트 아취형 중력식 댐
※ 운암댐 준공 탑에는 단기4262(1929년 11월)년으로 기록됨
1929년 4월 운암수도 및 도수로 준공되어 통수 개시
1929년 5월 4일 수력발전사업 허가(남조선전기(주))
1929년 8월 29일 발전용수 사용계약(東津農組-南鮮水電)
유역에 관개용수 공급(18㎥/sec 관개면적 22,100ha
1929년 9월 7일 운암발전소 착공, 남선수전(주)가 남조선전기(주)의 권리의무 승계
1931년 10월 운암발전소 및 수갱준공(5,120kw)
1938년~1939년 대 한발로 발전 일시 중단
1939년 10월 26일 발전제한 수위 상향조정 협정체결(동진수리조합-남선수전(주))
1940년 4월 남선수력회사와 조선농업개발영단 공동으로 운암제 하류 약2km 지점에 댐건설 착수(H 64.0m, L 335.0m 콘크리트 중력식 댐, 총 저수량 527백만㎥
1940년 9월 칠보발전소 제1호기 기공(남선수전(주))
1941년 12월 15일 섬진제 확장협정 체결(동진농조-남선수전)
1943년 9월 조선총독부 방침에 의거 남선수전(주)가 남선전업(주)에 흡수통합(남선전업(주)는 추후 조선전업으로 변경
1944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댐건설공사 중단(남선수전)
1945년 4월 칠보발전소 제1호기 준공(14,400kw)
1945년 8월 8·15광복과 함께 공사중단
당시 물자난으로 공사가 지연되어 총공정 약60% 댐공사 23%완성
1948년 8월 조선 전업주식회사 댐 재시공
1950년 6월 6·25사변으로 공사 중단 및 발전소 시설 등 대파
1950년 10월 파손된 칠보1호기 및 변전설비 복구 개시
1951년 4월 칠보 1호기 복구완료
1953년 7월 20일 수복 후 복구된 운암발전소 제2호기 조속기 고장으로 시설 대파되어 2호기 폐쇄 철거(출력 2,560kw로 감소)
1961년 8월 11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한전대행시공, 칠보2호기 기공
1962년 4월 18일 섬진강댐 수몰지구대책위원회 구성(위원장 : 도지사)
1963년 3월 15일 동진강 간척사업 착공 (건설부 - 토련)
1965년 7월 1일 신댐 담수로 구댐(운암제) 수몰
1965년 12월 20일 본 공사 준공, 칠보 제2호기 발전소 준공(14,400kw)
1966년 1월 신댐 건설부 호남국토관리국에서 관리
(운암취수구 및 칠보발전소는 한전관리)
1966년 4월 23일 특정다목적댐 공포시행(섬진강댐도 동법 부칙에 의거 적용)
1966년 6월 30일 수몰지구 대책위원회 해체(수몰구역 2군 5면 24개리, 이주민 총 2,786세대, 수몰면적 9,371정보)
1968년 3월 10일 청호 저수지 건설 착공(건설부)
- 위치 :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계화간척지구내
- 기능 : 비 관개기 칠보발전소 방류수 담수 및 관개용수 공급
- 총 사업비 : 427백만원
- 만수면적 : 447ha
- 준공일 : 1971년 12뤌 31일
1968년 8월 28일 동진강 도수로 공사 본격추진(대통령 특별지시에 의거)
- 총연장 : 67.8km
- 총 사업비 14.5억원
- 준공일 : 1969년 6월 30일
- 주관 : 건설부(전라북도, 동진농조)
1968년 10월 27일 계화도 간척사업 방조제 최종 준공
- 총 매립면적 : 3,968ha
- 총 사업비 : 182억원
- 1호 방조제 : 9,254m 1966년 12월 31일 완공
- 2호 방조제 : 3,556ha 1967년 4월 2일 최종 체절성공
- 주관 : 건설부
1972년 11월 15일 섬진강 재산권 처리방안 제27차 경제장관 회의 의결
≪회의골자≫
- 수몰된 운암제에 관한 동진농조의 기득권 보장
- 한전의 기 투자 분은 국고 귀속시키고 칠보발전소 2호기는 한전 귀속
- 수공에 댐 사용권 현물출자 하되 수공은 이를 한전과 동진농조에 각각 양도
- 댐 유지관리비 부담율 결정 (한전 69.16% 동진농조 30.84%)의결경위
- 동진농조의 구 운암제 투자분과 한전의 6.25사변전 신 댐 시공 분 그리고 5.16이후 국가(건설부) 투자분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재산권 처리상 어려움 수반
- 댐 운영상 이해관계가 상반되어 분규가 예상됨으로 댐 관리에 관한 세부 사항을 사전 규정토록 이를 경제장관 회의에 상정 의결절차를 거침
1973년 1월 20일 호남국토관리국에서 수공으로 관리 위임(가인수)
1973년 2월 1일 섬진강댐 인수반 파견(수공)
1973년 4월 3일 섬진강댐 임시 관리규정 제정(건설부)
1973년 5월 1일 섬진강댐 관리사무소 개소
- 위치 :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 산 5번지
- 초대 소장 : 토목 2급 황남구
- 인원(직원) : 16명(일반직 5명, 별정직 3명, 청경 8명)
1973년 5월 21일 섬진강댐 관리규정(안) 심의(건설부, 한전, 수공, 동진농조)
1973년 9월 섬진강댐 기본계획 공고(건설부 계획홍수위EL. 197.5m로 확정)
1973년 11월 6일 섬진강댐 관리규정 제정(건설부 훈령 제262호)
1973년 12월 27일 섬진강댐 관리위원회 운영세칙제정(건설부 승인)
1973년 12월 28일 섬진강댐 재산권 처리방안 제113차 국무회의 의결
1972년 11월 15차 경제장관 회의 의결사항 관련
1973년 12월 31일 동진농조에 관개부문, 댐 사용권 청구(동진농조 불응)
1974년 1월 13일 댐 사용권 공사에 현물출자(1,533,427,616원)
1974년 1월 23일 섬진강댐 관리위원회 소집 기본협정체결촉구
- 동진농조 불참으로 관개부문 댐사용권 양도 및 댐 관리비 부담에 따른 4년 반에 걸친 재산권 분규 야기
-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부, 농림부, 전라북도, 수공, 동진농조 등 관계기관의 다수 소집하여 협약 체결토록 공문독촉, 정부차원의 협조요청 등 집요한 노력 계속
- 동진농조측은 구 댐의 기득권 보장을 위한 정부와의 기본협정 체결 없이는 불응입장 고수
1974년 4월 26일 발전부문 댐 사용권 양수도 계약체결(수공-한전)
1974년 11월 13일 계화도 간척지 개답공사 착공
- 총 예산 : 68억 5천만원
- 시행기관 : 농수산부(농진공 대행)
- 용배수로 : 317km
- 개답면적 : 2,467ha
- 준공일 : 1977년 12월 20일
1976년 8월 23일 섬진강댐 77년도 관리비 에산반영 및 협의요청(산공→한전, 동진농)
1976년 10월 16일 동진 농조 측 섬진강댐 기본협정 체결없이는 일체의 비 용부담 의무 없으므로 회의 불참통보
1977년 4월 동진농조의 섬진강 구 댐 기득권 보장을 위한 협정 체결
(정부(건설부) ↔ 동진농조)
1978년 3월 9일 섬진강댐 관개부문 댐 사용권 양수도계약 체결
- 당사자 : 산공 – 동진농조
- 건설부에 체결보고(3. 17) 및 관리비 부담 협조요청(4.1)
1978년 4월 25일 섬진강댐관리위원회 개최(대 농진농조)
- 댐 사용권 양수도 계약에 따른 이행 촉구
- 댐 관리비 부담료 납부 촉구
1978년 7월 28일 섬진강댐 관리위원회 개최(산공 ↔ 동진농조)
- 현안문제 일괄타결
- 건설부에 개최결과 보고(7.31) 및 78 상반기 관리비 농진농조에 청구(9.5)
1982년 12월 운암수갱 도수로(압력터널) 노후화로 붕괴사고 발생
1982년 12월 4일 섬진강댐 퇴사량 조사 및 수몰지 경계표시 조사용역(’83. 11. 10 준공)
1983년 10월 칠보발전소 3호기 시공
1984년 1월 26일 댐 수몰선외 국유재산 용도폐지 추진지시(건설부 ↔ 수공)
1984년 12월 5일 용도폐지용 구비서류 작성제출 (산공 ↔ 건설부)
- 1,154 필지 10,557,237㎡
1985년 2월 1일 운암발전소 폐쇄
1985년 3월 15일 칠보발전소 3호기 준공 (출력 6,000kw)
1985년 4월 22일 발전 제한수위 조정협정 체결(한전 동진농조)
- 매년 3월말 발전제한 수위를 종전 178.3m에서 184.68m로 조정
- 관개용수 82,645천㎥ 추가 확보
1985년 11월 건설부(재무부) 1차 국유지(임야) 용도폐지
1982년 2월 3일 계획 홍수위선 이상 임야에 한하여는 폐천부지로 전북도 에 양여 조치 (건설부 이리청 → 전북도)
- 1,142필지 10,512,543㎡
1987년 9월 2일 갈담 사택 신축 시공
- 구 조 : 연립 4세대(1층)
- 계약자 : 전주소재 신우건설(주)
- 계약액 : 72,220천원
- 준 공 : 1987. 12. 19.
1987년 12월 29일 섬진강 홍수에 경보시설(TM)착공 (준공 ’90. 12. 15)
1988년 4월 19일 통신 4급 김홍환 사우 순진
1988년 9월 10일 갈담사택 증축공사 기공
- 연립사택 4세대(2층 증축)
- 준공액 : 135,450천원
- 준공일 : 1988. 12. 31
1988년 12월 21일 계획 홍수위 이상 토지 인계(섬진강댐 → 이리청)
- 토지대장, 등기부, 지적도 각 1부와 재산대장 첨부
1988년 12월 섬진강계통 광역상수도 착공(건설부 이리청)
1989년 3월 31일 건설부에 인계한 토지에 대하여 현지조사 및 검토 후 국유재산법에 따라 처리할 계획이므로 재산관리에 협조해 주도록 통보 (이리청)
1989년 7월 27일 섬진강계통 광역상수도 원수배분 및 원수 대 협약체결
- 건설부, 전북도, 수공, 동진농조 간에 원수공급 보장확인
- 전북도지사 농업용수 목적외 사용승인 의거 (전북농지 27230 ~ 254381 : ’87. 10. 14)
1989년 12월 15일 댐 신축사무소 착공
- 철근슬라브 2층 연건평 200평
- 공사금액 : 205백만원
- 준 공 일 : 1990. 5. 13 ㈜ 신우건설
- 구 건물 단층 73평(68년 준공) 철거
- 전기 및 통신 분야 45백만원 별도계약 체결 1990. 5. 27. 준공
1990년 8월 14일 신축초소 착공
- 댐 좌우안 초소 2동 14평 신축
- 공사금액 : 35,750천원
- 준 공 일 : 1990. 11. 11.
1991년 6월 19일 청경 대기실 신축 기공(단층 슬라브 10평 ’91. 8. 5 준공)
1992년 3월 2차 국유지(배수위 무관지역)용도폐지 신청(섬진강댐 → 이리청)
1992년 7월 31일 섬진강댐 주변 용도폐지 따른 의견회시(수공 → 이리청)
- 현재 용도폐지 신청지역은 본류구간 EX.200M이상의 전.답.임야 대상
1992년 11월 16일 댐 후생관 신축기공
- 조적조 1층 149㎡
- 공사금액 88,781천원
- 준공일 1993. 5. 4
- 용수정으로 명명하고 전직원 콘도로 활용
1992년 12월 1일 섬진강계통 광역상수도 인수반 판견
- 반장 : 기계2급 구 종 회외 8명
1992년 12월 31일 댐 사용권(발전부분) 한전으로 등록 이전 동의
1992년 12월 31일 섬진강 계통 광역상수도 준공(건설부 이리청)
1993년 1월 1일 섬진강용수관리사무소 개소
- 위치 : 전북 정읍군 옹동면 산성리 529-6
- 초대소장 : 기계1급 구 종 회
- 인원 : 58명(일반직 40명, 별정직 8명, 청경 10명)
1993년 2월 13일 용수공급 개시(김제시)
1993년 3월 16일~3월 24일 섬진강광역상수도 원수대부담협약 체결
(수공 – 전주시, 정읍군, 김제시군, 부안군)
1993년 3월 31일 섬진강광역상수도 원수공급계약 체결(동진농조 - 수공)
- ’89. 7. 27 체결된 섬진강광역상수도 원수배분 및 원수대 협약 의거
1993년 5월 21일 국토대청결운동 실시
1993년 5월 25일 섬진강댐과 용수관리사무소 기구통합(`93. 5. 14자 이사회 의결)
- 통합소장 : 기계1급 구종회
- 인원 87명(일반직 55명, 별정직 19명, 청경 22명)
1993년 7월 섬진강계통 광역상수도 용수공급과 관련된 댐 운영방안 및 국유지 용도폐지 검토 보고(댐 운영처)
- 상시 만수위(EL. 196.5M)기준 저수용량 활용시 댐 증고 불필요
- 홍수위선내 국유토지의 무단점유 건축물 이주 및 철거대책 필요
- 본류 홍수위선 이상의 전답 및 3개 지류 구간 배수위선 이상 토지에 대하여 추가로 용도폐지 실시
1993년 8월 4일 적성댐 건설과 섬진강댐 중고에 따른 경제성 비교 검토 요구 (건설부 → 수공)
- 댐 주변지역 국유지 활용하여 당초 홍수위선(EL. 202m)까지 증고시와 적성댐 건설시의 경제성 비교
- 윗 건 기존댐 증고시 용수단가 높이 적성댐 신성방안이 유리함을 건설부에 검토결과 보고(’93. 10.)
1993년 12월 30일 동진농조 원수대 납부완료
- 물량 : 2,112천㎥(4. 1 ~ 9. 30)
- 총금액 : 106,164천원
1994년 1월 6일 섬진강계통광역상수도 시설관리권 당 공사에 출자(22,099백만원)
1994년 4월 19일 섬진강댐 관리위원회 개최(충주댐 홍보관)
- ’94 예산 및 ’93 결산승인
- 댐 본체 및 운암수갱 보수의 건 심의
1994년 5월 20일 섬진강댐 국토 대청결 행사실시
- 전주시 동 6개시·군. 동진농조. 칠보발전소 등 관련기관 참여
- 참가인원 : 192명
1994년 5월 25일 섬진강댐과 용수관리사무소 통합1주년 기념행사
- 노사화합동산 준공식 거행
- ’94 우수노조지부 표창기념 행사병행
 
 
현재 수중에 침수된 구 운암 댐
 
섬진강 다목적댐은 옥정호 저수지 수중에 있는 운암 댐으로부터 이어져야 한다. 섬진강 상류에 인접한 서해안 연안의 동진강(유로연장 45km 유역면적 1,034㎢)유역은 대부분 광활한 평야를 이루고 있으며 해안 일대에 넓은 간척 가능지대가 있다. 이 지역은 토양 기후 등 자연조건이 벼농사에 적합하지만 관개용수의 부족으로 늘 한해(旱害)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1920년 극심한 큰 가뭄이 있은 후 지방의 관민들이 수리조합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1925년 8월 29일 동진 수리조합을 설립하였다. 이 조합에서 섬진강 수계의 풍부한 수자원을 동진강으로 유로를 변경 동진강 유역의 광활한 평야지역의 관개급수난을 해결코자 진안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섬진강 본류와 순창군에서 흘러내리는 추령천의 합류지점으로부터 2km 하류인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 배수마을(좌안)과 정읍군 산내면 종성리 황토마을(우안)을 연결하는 제방을 쌓아 이곳에 저수되는 물을 임실군 운암면 운정리 취수구에서 정읍군 산내면 종성리 팽나무 골에 이르는 성왕산 중턱에 터널(운암수도, 최대 통수량 23.65㎥/sec)을 뚫어 수계를 돌려 동진강에 유입시키는 사업이 추진되었다.
 
1925년 11월 운암댐을 착공하여 1929년 11월 준공을 하였다. 운암댐은 높이 40m 길이 305m인 곡선형 중력식 콘크리트로서 현 섬진강댐 다목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운암댐은 수자원이 풍부한 섬진강의 물을 동진강유역으로 최대 18㎥/sec를 공급하여 22,100ha에 관개를 목적으로 한 유역변경개발방식이다. 총 저수량은 60,650,000㎡이다. 이와 같이 관개 단일 목적 댐으로 건설하였다. 한편 동진 수리조합이 잉여수량에 대한 일종의 수리(水利)사용료를 남선 수력으로부터 징수하는 조건으로 발전소를 건립함에 따라 남선 수력이 1931년 10월 운암발전소(발전량 5,120KW,정읍군 산외면 운정리)를 준공하였다.
 
그 후 일제의 대륙침략으로 인하여 극심한 식량난과 군수자재난에 부닥치게 되어 전쟁기지인 우리나라에서 미곡증산을 위한 물 확보와 군수물자 생산을 위한 전력생산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1940년 4월 남선수력과 조선농업개발영단 간 협정을 체결하여 섬진강 다목적댐을 공동으로 종합개발하기로 하였고, 섬진강다목적댐의 건설로 운암댐은 현재 수중에 침수되어 있다.
 
<운암제의 제원>
○ 집수면적 : 76,200정보
○ 집수량 년평균 : 17.74㎥/sec(60억㎥/년)
○ 만수면적 : 721정보
○ 만수길이 : 24.2km
○ 댐 높이 : 33.0m
○ 댐 연장 : 316.0m
○ 총 저수량 : 69.4백만㎥
○ 유효 저수량 : 60.7백만㎥
○ 구 조 : 할석, 옥석 혼합콘크리트 아치형 중력식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섬진강다목적 댐
 
운암댐 하류 2km지점에 건설할 현 섬진강댐의 규모는 댐 높이 64.0m 길이 344.2m 마루표고 EL 200.0m 부피 410,000㎥인 중력식콘크리트 댐으로서 총 저수량은 466백만㎥(당시 527백만㎥) 유효저수용량 370백만㎥, 홍수조절용량 32백만㎥이며, 계획 홍수위 EL 197.7m 상시 만수위 EL 196.5m 저수위 EL 175.0m 이고 발전량은 시설용량 34,800KW이다.
 
수력발전 사용수량(최대 21.93㎥/sec 상시 14㎥/sec 7,200m의 도수로 및 압력수로(취수구:정읍시 산내면 능교리, 출구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를 이용하여 동진강유역으로 보내 낙차 151.7m로서 칠보 수력발전소(최대 27,700KW, 실제 설치는 14,400KW×2대=28,800KW)를 계획하였다.
 
한편 발전소 방류수량을 이용하여 관개면적 9,450ha에 관개함으로서 년간 110,000석의 식량생산을 하게 되었고 섬진강 중하류 연안의 홍수 조절로 수해 방지와 산업입지 기반형성 가능 등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꾀하였다. 실로 이 계획은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수자원개발방안으로서 선구적인 사업이라 하겠다.
 
1925년 11월부터 착공하여 1929년 11월에 준공한 운암댐 및 1929년 12월에 착공하여 1931년 10월에 준공한 운암발전소를 운영하던 중 1939년 미증유의 대한발로 인하여 극심한 용수고갈과 앞서 1934년 7월 20일 대홍수로 인하여 극심한 수해피해를 자극받아 나날이 급증하는 전력수요와 식량증산을 위해서는 보다 방대한 규모의 저수용 댐 축조의 필요성을 감안하여 1942년 6월 비로소 총 유효저수량 527백만㎥의 새로운 댐 축조계획을 수립하였다.
 
남선수력(주)이 조선전기 사업 령에 의거 공사실시시행인가를 얻어 1940년 4월 1일 신 댐(섬진강다목적댐) 건설을 착공하여 1942년 7월까지 가설비공사로 시멘트수송용 삭도(索道) 21.0km와 골재채취운반 및 저장설비, 콘크리트혼합설비, 콘크리트타설 설비 등을 완료하고 1942년 8월부터 댐 콘크리트 타설을 개시 하였으며, 1943년 9월 조선전업(주)이 이사업을 인수하여 시공하던 중 1944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의 물자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공사 중단 당시까지의 공정은 댐 콘크리트 87,450㎥를 축조하고 개거도수로 1,307m, 취수구설비, 압력수로 6,216m 등을 완성하였으며 1945년 4월 발전소 건물 및 제1호발전기(칠보발전소 14,400kw)를 준공하여 발전을 개시 하였다.
 
 
두 번째 착공 후 6.25사변으로 또다시 중단
 
그 후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섬진강 다목적댐 시공이 중단 된지 약 4년만인 1948년 8월 조선전업(주)이 두 번째로 착공하였다. 한편 당초 설계는 11년간(1928~1938)의 수문자료를 기초로 연평균 유하량을 17.06㎥/s로 산정하였으나 재 착공하면서 20년(1923~1942)간의 자료를 기초로 산정하여 사용가능한 연평균 유하량이 15.776㎥/s로 수정되었다. 따라서 저수지 만수위는 당초 EL202m에서 5.5m를 낮춘 EL195.6m로 변경되었으며 아울러 댐 부피도 415.000㎥에서 337.820㎥로 감축되었다.
 
1949년 7월까지 가설공사를 모두 완료하고 이어서 1949년 8월부터 댐 콘크리트 타설을 재개하였다. 이와 같이 공사를 재개하였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또다시 공사를 중단하게 되었다. 재 착공 후 콘크리트 축조 량은 41,631㎥이며 8.15 해방 전 타설 량을 합하여 129.081㎥의 댐 콘크리트가 축조된 상태이다.
 
 
세 번째 착공으로 이루어낸 국내최초의 다목적댐
 
6·25전란 중에 모든 가설비는 아깝게도 모두 손실되었다. 그 뒤 계속 중단된 상태로 있다가 5·16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포함하여 1961년 8월 19일 세 번째 착공하게 되었다. 섬진강다목적댐건설공사는 총 소요자금 내자 1,944백만원과 외자 1,590,000불의 예산으로 건설부 주관 하에 시행은 한국 전력이 대행하여 1965년 12월 20일 준공하였다. 아울러 칠보발전소 제2호기도 설치 완료하여 우리나라 최초 다목적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칠보발전소(섬진강수력발전소)는 1945년 4월 준공한 제1호기(14,400kw)와 1965년 2월에 준공한 제2호기(14,400kw) 그리고 운암발전소 폐쇄로 이를 대체하기위하여 1983년 9월부터 1985년까지 3년간 제3호기(6,000kw)를 건설하여 현재 총 시설용량은 34,800kw이다. 섬진강 다목적 댐은 1931년 10월 준공한 운암발전소(5,120kw)를 1985년 2월 폐쇄하기 전 까지는 2개의 발전소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력발전소
 
현재 섬진강 수력발전소는 발전 시설용량이 34,800kw이며 년간 발전량은 182,000천kw이다. 섬진강다목적댐의 수력발전소 이력을 살펴보면 1929년 10월 설립된 남선 수력전기(주)에서 그 해 12월 착공하여 1931년 10월 준공한 운암발전소(정읍 산내면 종성리)로부터 비롯되었다.
 
발전 용수는 1929년 11월 동진수리조합에서 축조한 운암댐 저수지에서 취수 하였다. 운암 저수지의 물을 약 3km 수압 터널로 유역 변경하여 그 낙차를 이용하는 소규모 발전소인 것이다. 운암 발전소는 1943년 9월 조선전업이 남선 수력전기(주)를 합병하여 운영하다가 1961년 7월 발족한 한국전력(주)이 운영하였다.
 
농번기에는 농업용수의 증가로 발전 용수와는 별도로 수로 중간지점의 수갱에서 추가 방류를 하였다. 이 발전소는1950년 7월 북한군에 점령되었다가 1951년 2월 탈환하였다. 북한군은 후퇴할 때 발전 설비 중 중요한 기기의 대부분을 파괴 방화하여 발전 기능은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 수복 후 1951년 5월 1차 공사로 제2호기의 복구를 시작하였으나 공비들의 출몰이 심하여 일면 공사 일면 방비라는 노력 끝에 그 해 6월 시운전에 성공하였다. 뒤 이어 1952년 3월 2차 공사로 제1호기도 수리를 완료하였다.
 
그러나 1953년 7월 조속기 장치의 돌발사고로 제1호기가 파손되어 수차발전기 1대(제2호기만)만 운전되고 있었다. 지금은 설비의 노후화로 1985년 2월에 이 마저 폐쇄되어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발전소로 준공이후 폐쇄할 때까지 총 542,000kwh의 전력을 생산하여 호남지역 산업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운암 발전소 운영 중인 1945년 4월 칠보발전소를 준공하였는데 이것이 현재의 섬진강 수력발전소 제1호기이다. 제2호기는 1961년도에 8월에 착공하여 1965년 12월에 준공한 섬진강다목적댐 건설기간 중에 설치하였다. 1983년 9월부터 1985년 3월 사이에 제3호기를 증설하여 현재 총 발전시설용량 34,800kw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건설기간 40년인 댐으로 기록
 
결과적으로 섬진강다목적댐은 제2차 세계대전, 6.25동란 등 수난의 역사를 겪으면서 1925년 11월 운암댐 착공부터 시작하여 1965년 12월 다목적댐의 모습으로 준공되기 까지 가장 긴 건설기간을 가진 댐으로 기록되었다.
 
섬진강댐 재산권 및 관리권 설정
 
정부가 1961년에 착공하여 1965년에 준공한 섬진강댐은 한전의 기초공사 중단(1940년 착공, 1950년 중단) 지점에 재시공되었고, 1929년에 준공된 동진농조의 관개용 구 댐이 섬진강댐 건설로 수몰됨으로써 각자의 투자액이 복합 구성되어 있어 댐의 재산권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국가 소유의 댐 사용권을 한국수자원개발공사에 현물 출자하여 한전과 동진 농조에 각각 이를 양도함으로써 회수되는 비용부담액을 수자원 개발사업에 재투자하여 댐 유지관리를 원활히 하고자 하였다. 1966년 4월에는 특정 다목적댐법이 시행됨으로서 사용자의 목적별 편익에 따라 축조비와 관리비를 부담해야 하는 의무부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제27차 경제장관 회의(1972.11.15)와 국무회의(1973.12.28)를 통해 섬진강댐의 재산권 및 관리권을 설정하게 되었다.
 
1) 제27차 경제장관 회의(1972.11.15) 및 국무회의(1973.12.28)
 
○ 의결 내용
- 동진 농지개량조합의 수몰된 구댐(운암제)은 그 기득권 보장하며, 한국전기주식회사의 기투자분은 국가에 귀속시키고 칠보발전소 2호기는 한국전력주식회사에 귀속
- 정부는 한국 수자원 개발공사에 댐 사용권을 현물출자하고 한국수자원 개발공사는 한국전력 주식회사 및 동진 농지계량조합에 각각 이를 양도하여 회수되는 비용부담액을 수자원 종합개발사업에 재투자
※ 댐관리권 이관 : 건설부(호남국토건설국) ⇒ 한국수자원개발공사
- 댐 사용권의 비용부담액은 한국전력 주식회사가 1,385,029,816원을 20년(기 투자분 보장), 동진 농지개량조합은 148,398,000원(구댐 기득권 보장)을 30년간 각각 균등상환
- 한국전력 주식회사 및 동진 농지개량조합은 홍수시설 부담률(발전 69.16% 관개 30.84%)에 의한 댐 유지관리비를 부담
 
2) 댐 사용권 양수도 계약
 
○ 산업기지개발공사와 한국전력주식회사간 양수도 계약 (1974.4.26)
○ 산업기지개발공사와 동진농지개량조합간 양수도 계약 (1978.3.9)
 
3) 섬진강댐 관련 주요결정 사항
 
 
 

 
섬진강 다목적댐의 건설
 
건설개요
 
약 18,000ha의 몽리면적을 가진 운암 댐인 섬진강다목적댐의 건설로 1965년 7월 수몰되었다. 섬진강 다목적댐 건설에 의한 신규 관개면적 약 10,000ha를 추가하게 되었고 섬진강다목적댐은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 위치하여 높이 64.0m 길이 344.2m 부피 410,000㎥의 중력식 콘크리트댐으로서 유역면적 763.0㎢ 총 저수용량 466백만㎥, 만수면적 26.51㎢ 댐 마루에 설치된 높이 3.8m 너비 9.1m 15연의 Tainter gate로 계획수량 3,268㎥/초를 방류토록 계획되었다.
 
수력발전은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의 취수구에서 연장 6.2km의 수압터널을 통하여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칠보발전소에 송수 최대출력 28,800kw의 발전을 한다. 이때 최대 유효낙차 151.7m, 최대사용수량 21.93㎥/s이다. 발전 방류수는 동진강에 방류하여 동진수리조합의 몽리지구 약 18,000ha, 계화도 간척지 4,367ha 및 관개개선지구 5,849ha 등을 합한 약 28,000ha에 대한 관개용수를 공급토록 계획되었다.
 
 
 
 
□ 댐 형식 및 단면 결정
 
댐 지점은 성질상 중력식 댐을 건설하기에 알맞을 뿐 아니라 지형상 하폭이 유역 중에서는 좁다하나 높이보다 폭이 넓은 편으로 중력식 댐 축조에 알맞으며 또한 시공이 중단되기 전 당초 중력식 댐으로 타설이 시작되어 형식은 직선형 중력식 콘크리트댐으로 결정되었다.
댐 높이 64m, 댐마루 길이 344.2m, 중앙 158.05m를 일류부로 하며 우안측 90.95m, 좌안측 95.20m를 비일류부로 계획되었으며, 비일류부는 천단폭 5.0m, 상류면 경사 EL.170.28m 이하 1:0.05, 그 이상 1:0.0로 하고 천단은 유효폭 4.40m의 통로로 계획되었다.
 
일류부는 댐 마루부 상류 측을 원형, 상류측은 포물선형 이다. 상류면 경사는 비 월류 부와 같으며 하류 면은 1:0.833으로 제지부에 길이 29.334m, 두께 평균 1.5m의 물받침을 설치하고 그 선단에는 저변 6m, 상변 2m, 높이 2m의 제형 디플렉터를 붙여 하류 측의 세굴을 방지하였다. 댐 하류면 경사 결정에 있어서 동탄성 계수 측정결과와 기타 콘크리트에 덧붙이는 관계로 일류부와 암반이 그다지 좋지 않은 우안은 1:0.833으로, 좌안은 암반이 좋아 1:0.76으로 정하였다.
 
일류부와 비 일류부 사이에 높이 3m, 두께 1m의 도류벽을 설치하며 일류부 하류면과 물받침 과는 반경 15m의 바켓커브로 연결시켰다.
댐 기초 상류 단에는 상폭 2.5m, 깊이 1.5m의 지수 구를 설치하였으며, 일류부에는 16개의 교각을 세우고 폭 9.09m, 높이 3.8m의 텐더게이트를 설치하여 홍수를 조절하도록 계획되었다.
 
 
□ 댐 및 저수지 규모 결정
 
섬진강다목적댐은 기존 동진강수리조합 구 운암댐 하류 약2km 지점에 축조되어 유역면적 763㎢로부터 유수를 저류 조정하여 유효 저수 용량 527,000,000㎥을 저수하도록 계획되었다. 댐 저수량은 섬진강 지류인 추령천 좌안에 취수구를 설치하고 최대 21.93㎥/초의 수량을 동진강 지역으로 유역 변경하여 방류하고, 칠보발전소에서 유효낙차 151.70m로 도수하여 최대 27,700kw의 발전하고 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상술한 당초의 계획은 1928년부터 1938년 까지 11개년의 자료에 의해 연평균 유하량을 17.06㎥초로 결정하였으나, 불충분하였으므로 이를 다시 1923년부터 1942년까지에 이른 20개년의 자료수집에 의하여 재검토한 결과 사용 가능 연평균 유하량이 15.77㎥/초가 되었다. 이는 약 8%의 감소율을 나타낸다.
 
또 이지방의 하천은 일반적으로 유출량의 변화가 심하여 최소와 최대의 비는 약 12배에 달하고 또 증발량이 많은 관계로 다년에 긍하여 수량조절이 곤란한 동시에 비교적 저낙차의 지점이 되므로 고도의 조절책은 불리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따라서 전 계획시 유효저수용량 587,600,000㎥에 대해 20개년 기록에 의해 산출한 연평균 유하량 490,510,000㎥을 기준으로 하여, 저수지 만수위 202m에서 5.5m를 저하시켜 만수위를 196.5m로 하고 최대 홍수위는 저수지의 조절 완호를 고려하여 1m 높은 197.5m로 결정하고 유효저수량은 370,000,000㎥(EL196.5m~EL170.0m, 현재 고시기준은 429,000,000㎥ (EL196.5m~EL154.54m))로 변경하였다.
 
이상과 같이 댐 높이를 저하시켜도 과거의 실적에 비추어 연속4개년에 증하여 일류할 시간이 없는 상태가 되므로 댐높이를 높여도 사용수량의 증가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전 계획을 변경 실시하였다.
 
 
□ 여수로 수문설치
 
섬진강댐의 여수로 수문설비는 섬진강댐이 완료된 후 Dam Crest El.192.604m 상에 폭 9.09m, 높이 3.80m 크기의 Tainter Gate 15set를 국내에서 제작 설치하여 하류지역의 홍수조절과 상류지역에는 저수하여 발전 및 관개용수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여수로 수문설비의 제작 및 설치는 국내 제작으로서 처음이며 1964년 4월 23일에 착공하여 동년 11월 15일에 제작이 완료되었다. 제작된 중량물은 제작사에서저장 보관하였다가 댐 콘크리트 타설표고에 맞추어 설치되었으며 제작이 완료된 이듬해인 1965년 4월 29일에 착공하여 그해 말에 설치가 완료되었다.
 
 
□ 칠보발전소
 
칠보발전소는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210번지 댐에서 약 16.0km 위치에 있다. 1940년 남조선수력전기(주)가 착공하였다. 1943년 이 회사는 조선전업(주)에 통합되었으며 전시물자난중임에도 어렵게 공사를 하여 1945년 4월 제1호기(14,400kW) 발전이 시작되었으나 8.15(1945년)로 한때 중단되었다. 제2호기(14,400kW)는 1946년 정부보조로 재 착공하였으나 계획변경, 자재구입난, 시공업자선정 잘못 등으로 중단되다가 원조단체인 미국 ECA가 International Engineering Co.로 하여금 시공케 하였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중단되었다.
 
동란 중 1950년 7월 21일 북괴군 침공 장악, UN군 폭격, 9.28수복(1950년) 때 공비들의 방화 등 극심한 피해를 입은 제1호기를 1951년 4월 복구하였다. 제2호기는 지금의 댐과 같은 기간에 시공하여 1965년 12월 준공하였다. 그리고 제3호기(6,000kW)를 운암발전소 폐쇄(1985년 2월)에 따라 1985년 3월 15일 설치하였다. 이로서 현재의 총 발전시설용량 34,800kW를 갖추게 되었다.
 
 
□ 사업계획 당시 기대효과
 
섬진강댐은 다목적댐으로서, 연간 160,308,000KWH의 발전을 하고 발전방류수는 운암도수로 방류수와 합하여 동진강 하류 간척지 3,050정보와 수리불안전답 5,844정보를 관개하여 연간 118,430석의 식량증산을 꾀하고, 또한 본 댐 지점의 유하량 약 500,000,000㎥에 대하여, 본 댐의 저류 량이 약 466,000,000㎥이므로 연간 총유하량의 약 80%를 저류하여 섬진강 중하류 연안일대의 홍수피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검토되었다.
 
○ 발전효과
- 출력증가 : 14,400KW (14,400KW는 기설)
- 연간발전량 증가 : 118,000,000KWH (42,308,000KWH는 기설)
 
○ 관개효과
- 관개개선면적 : 5,844 정보, 간척매립면적 : 3,050 정보, 총 8,894 정보
- 식량증가 : 연간 118,430 석
 
○ 치수효과(홍수조절)
- 3,268㎥/초의 홍수량을 1,868㎥/초로 조절방류하여 홍수조절(조절율 43%)
 
 
댐 건설 주요 특징
 
□ 신·구 콘크리트로 구성된 댐의 설계
 
섬진강다목적댐은 사회정세에 따라 중력식 콘크리트댐을 축조하다가 중단한 다음 10여년이나 방치하였다가 그 위에 이어서 신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완성한 댐이다. 그러므로 신․구 콘크리트는 재료의 물리적 특성이 다르게 되어 응력해석 면에서 새로운 문제가 야기되었다. 즉 신․구 콘크리트의 탄성계수(young’s modulus)가 각각 상이하므로 댐 응력해석에 있어서 일반적인 중력식 댐의 해석방식과 동일하게 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탄성계수가 다른 재료로 구성되는 중력식 댐의 응력해석법이 제시되었고 이 이론의 타당성을 2차원 광탄성실험으로 검토하였다. 그리고 신․구 콘크리트 접합면에 대하여는 열응력으로 계산한 결과를 토대로 하여 구 콘크리트 부분의 댐 하류면 경사가 당초 1:0.76인 것을 부득이 1:0.833으로 변경시켜 월류부 및 우안 비 월류부 댐 단면을 변경하였다.
 
이와 같이 함으로서 구 콘크리트의 보강은 되었으나 시공 상의 문제인 신․구 콘크리트의 일체화는 신․구 콘크리트 사이에 각종 계기를 설치하여 댐 콘크리트 축조 후 보수보강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최종 콘크리트 안전온도에 도달 시 신․구 콘크리트 타계면(打繼面)의 결합공법으로서 Joint grout를 시공하였다.
 
 
□ 최초 9ton 케이블크레인을 이용한 댐 콘크리트 타설
 
신규로 타설할 댐 콘크리트 양은 280,000㎥이다. 소요골재는 400,000여㎥이며 골재선별생산을 위한 일계열(一系列) 최신식 골재선별장(aggregate screen plant)을 1962년 3월 29일 설치완료 하였다. 장소는 댐 하류 임실군 덕치면 하천변이다.
 
골재 선별장 에서 선별된 골재를 골재저장소(aggregate stock pile)까지 운반에는 신설한 도로(폭 9m, 길이 약 7km)를 이용하여 덤프트럭(dump truck)으로 운반하였고 이 골재저장소에서 콘크리트 배처플랜트(concrete batcher plant)까지는 벨트 컨베이어(belt conveyor)를 이용하였다. 당시 골재저장소 등의 굴착장비로는 D-7 불도저(bull dozer)를 이용하였다. 특히 골재선별장에서 대, 중 골재가 벨트컨베이어에서 낙하 시 골재파손이 심한 것이 문제점이었다.
 
석분(石粉) 혼입비율(比率)이 골재의 청정도(淸淨度)를 저해할 정도였다. 이와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골재저장소 출입구에 샤워(shower)대 2기를 설치하고 오손골재(汚損骨材)를 적재한 덤프트럭은 이곳을 거쳐 가도록 하였다. 콘크리트배처플랜트는 1963년 2월 28일까지 설하였으며 용량 45㎥/hr인 전자동 혼합설비이다.
 
시멘트(cement) 운반을 위하여 임실역(任實驛)에서 현장까지 운반도로 28.58km(지방도 26.24km, 시가지도로 2.34km)를 확폭(擴幅)․보수하였으며 시멘트창고는 임실역에 1,206㎡(목골조 함석지붕 702, 콘셋트조A 268, 콘셋트조B 236) 현장에 525㎡(목골조 함석지붕) 두 곳을 합하여 1,731㎡ 이다. 도로운반에서 시멘트(포대)적재는 슈트(chute)를 이용하였고 포대를 해태하여 배처플랜트로의 운반에는 Screw conveyor설비를 이용하였다. 포대시멘트 해태에 따른 노무자위생을 고려하여 옥상전면에 갤러리(gulley)를 설치하였다.
 
콘크리트 운반설비로는 고성능 9ton 케이블크레인(cable crane)을 설치하였다. 케이블크레인 및 배처플랜트의 작업능력을 중심으로 한 기계설비기준은 댐 콘크리트 양 280,000㎥에 대하여 타설 기간 32개월, 1시간당평균작업량 45㎥, 1일 평균 타설량 435㎥(1일 작업시간 : 10시간), 1개월 평균 타설량 8,740㎥(1개월 중 작업일 : 20일), 골재생산능력 220㎥/hr, 콘크리트제조능력 45㎥/hr 이다.
 
콘크리트배처플랜트는 생산능력 45㎥/hr로서 반자동, 반수동식이다. 가경식(可傾式) 믹서용량 0.75㎥ 3대를 갖추고 있으며 배합비를 간단히 변경시킬 수 있고 12종의 배합비를 Selector bandle로서 선택할 수 있다. 또한 믹서는 순서대로 규정된 시간에 비빈 콘크리트를 자동으로 콘크리트호퍼(hopper)에 배출 한다.
 
개량장치로는 골재(대, 중, 소, 모래), 시멘트, 물, AE제 등 7종이 있으며 모든 개폐용 문비(門扉)는 압축공기에 의하여 작동시키도록 되어 있다.
배처플랜트에서 케이블크레인까지(우안) 콘크리트 운반을 위하여 대차 및 디젤기관차(diesel engine car)가 이동할 수 있는 Bunker line의 궤도(rail way)는 15kg/m을 사용한 복선이며 120m이다.
 
9ton케이블크레인의 콘크리트타설 평균왕복 소요시간은 4분이나 기능공들의 호흡이 잘 맞을 경우에는 2분이었다. 기록으로는 1hr당 22회 왕복, 1일 400 Bucket 까지 기록이 있다. 댐 콘크리트용 거푸집은 목재를 사용하였다. 콘크리트배처플랜트 설비가 있었으나 공도교는 1:2:4 용적배합을 사용했다.
 
 
□ 우리나라 최초 매설계기를 설치한 댐
 
섬진강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매설계기를 설치하였다. 특히 댐 콘크리트 일부가 기존 콘크리트로서 10여 년간 방치된 것에 이어서 타설하는 콘크리트중력식 댐이기 때문에 시공관리 및 준공후의 보존 등을 위하여 매설계기를 중요시하였다. 매설한 계기는 4종 62개이며 Switch box, 지시계 등을 포함하면 총 10종 71개이다.
 
 

 
다목적댐의 역할
 
댐의 역할
 
다목적댐 사업은 용수공급, 홍수 조절뿐만 아니라 관광, 지역개발, 어족보호, 하천환경관리 등 수자원을 합리적으로 개발, 이용함으로서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한다. 다목적댐에서의 용수공급으로 전국적인 큰 가뭄에도 다목적댐 하류 하천연안과 급수지역에서는 피해를 입지 않고 있으며, 하천유량을 고도로 조절하여 하류의 홍수피해를 줄일 뿐만 아니라 홍수의 자원화를 위해 홍수기에 버려지는 물을 가두어 갈수기에 방류함으로 안정적인 용수공급을 도모한다.
 
 
수력발전은 주간 단기간의 첨두부하 대응을 위해 이용되고 있으며 무공해 부존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유류 등의 수입대체 등 국가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다목적댐 건설 사업은 대규모 종합건설 사업으로서 우리나라 건설 산업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고용기회의 증대와 건설 산업육성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목적댐의 일차적인 목적은 댐으로 생긴 저수지를 이용하여 풍수기의 잉여량을 저류하였다가 갈수기에 공급하는 것이다. 다목적의 용수공급 효과는 1978년, 1981년, 1992년, 1994년의 전국적인 가뭄에서도 급수혜택을 받은 지역이 전혀 가뭄피해를 받지 않은 것으로도 입증되었다.
 
두 번째 주요 기능은 홍수조절이다. 댐에 의한 홍수조절이란 유역에서 강우에 의한 대홍수가 발생하면 대체로 댐의 홍수조절용량을 적절히 활용하여 유입되는 홍수량의 일부를 저류함과 동시에 하류에서의 홍수피해를 최소화되도록 서서히 방류하는 것이다. 특히 다목적댐은 하천유량을 고도로 조절함으로써 하류의 홍수피해를 경감시킬 뿐만 아니라 홍수의 자원화를 기하여 필요한 생활용수 등의 수자원을 확보한다.
 
우리나라의 주요하천은 상류에 다목적댐을 건설함으로써 하상계수가 300~400에서 100~300으로 개선되었으며 장마철의 홍수는 댐에 의하여 거의 차단되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목적댐의 세 번째 기능으로는 전력 생산이 있다. 수력발전은 설비의 운전절차가 단순하고 기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서 필요한 양의 전력을 신속히 생산할 수 있으며 무공해 수력에너지로써 첨단 을 통한 전력공급에 크게 기여 하고 있다.
 
 
섬진강댐이 수행해온 역할
 
1925년에 최초 착공하여 2번의 공사 중단과 재 착공 끝에 1965년 준공한 섬진강댐은 동진강유역으로의 농업용수 공급과 총 3개 시·군의 생활용수 공급을 담당하며, 홍수기 수위 조절, 수력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으로 앞서 기술한 다목적댐의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우선 용수공급 측면에서 보면 댐 준공이후 6번의 심각한 가뭄상황에도 호남평야로의 관개용수공급과 정읍, 김제 지역의 생활용수공급의 중단 등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는 섬진강댐의 용수공급의 역할을 100%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홍수조절 측면에서도 섬진강댐은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50년간 발생한 수많은 홍수상황에서도 홍수량을 최대한 저류하면서 댐 건설시 계획된 방류량 이상을 방류하거나 댐의 계획 홍수위를 초과하여 댐 상 하류에 피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하여 왔다. 특히 2011년 500년 빈도가 넘는 최악의 홍수상황에서 섬진강댐의 홍수조절과 위기대응은 국민의 인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섬진강댐의 가뭄극복
 
1) 섬진강댐의 가뭄
섬진강댐은 홍수조절 등 다목적댐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동진강유역의 호남평야(29,860㏊)에 년중 계획공급량의 84%인 약 350백만㎥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농업용수 전용 댐으로, 농업용수는 각 작물의 관개기간이 한정되어 있어 이용의 집중도가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갈수 년에는 급격히 필요수량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섬진강댐은 타 다목적댐과 달리 가뭄상황 발생시 공급량 제한 등의 가뭄대책 추진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섬진강댐유역의 주요 가뭄은 1977년, 1982년, 1988년, 1994년, 2001년, 2008년으로써 대략 5~7년의 주기로 발생했으며, 가뭄년도의 강수량은 예년 평균의 47.8 ~ 86.3% 수준을 보이고 있다.
 
◦ 가뭄의 주기성
 
 
 
□ 갈수유량을 기준으로 한 섬진강댐의 가뭄빈도
 
주요 가뭄기간별, 지속기간별 가뭄심도를 갈수유량 측면에서 각 기간 동안의 갈수빈도를 분석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기왕의 주요가뭄과 2008~2009년 가뭄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2008~2009년 가뭄은 전기간에 걸쳐 10년 빈도의 가뭄이었으나, 홍수기 이후 9~12월(4개월) 기간은 약 50년 빈도의 가뭄으로 1994~1995년(50년 빈도) 가뭄이후 최악의 가뭄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뭄이 발생한 해보다 가뭄의 영향으로 저수량이 떨어진 다음 해에 피해가 더 크므로 관개기 시작전 섬진강댐의 저수율이 농업용수 공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Palmer 가뭄지수를 기준으로 한 섬진강댐의 가뭄의 심도
 
주요 가뭄기간별 최대가뭄지수로부터 각 기간 동안의 지속기간별 최대 가뭄지수를 분석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Palmer 가뭄지수를 기준으로 한 가뭄심도 분석결과도 2008~2009년 가뭄은 1994~1995 가뭄이후 가장 심한 가뭄이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2) 2008~2009년 가뭄의 극복
 
□ 가뭄현황
 
2008년 가뭄 시 섬진강댐의 총 강수량은 888.9㎜로 예년 강수량의 68.4% 수준이었으며, 여름철 홍수기동안의 강수량(538.9㎜)도 예년(732.4㎜)대비 73.6%에 불과하였다. 특히 홍수기 이후인 9월부터 12월까지는 85.1㎜로 예년대비 31.0%로 1976년도 이후 가장 적은 양을 기록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가뭄상황을 나타내었다.
 
또한 유입량도 마찬가지로 2008년 전체 총 293.3백만㎥으로 예년 544.1백만㎥의 53.9% 수준이었으며, 홍수기 이후인 9월부터 12월까지는 7.5백만㎥으로 예년대비 18.4% 수준에 불과하였다. 특히 홍수기 말인 2008년 9월 강수량과 유입량이 예년 21.5%, 12.2%에 그칠 정도로 아주 적은 양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2009년 잦은 강수로 인해 유입량 상황이 호전되었으며, 특히 7월 한 달 동안 555㎜의 강우로 가뭄상황이 해소되었다. 이는 1976년 이후 같은 월 강수량 중 최고를 기록한 것이다.
 
댐 저수위 저하에 따른 구댐 노출 전경(2009. 6. 11, EL. 168.11m)
 
 
□ 2008~2009년 섬진강댐의 가뭄극복 노력
섬진강댐은 심각한 가뭄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실시하였다. 우선 대외적으로 관계기관과의 공동대응체계 구축과 대국민 언론홍보를 추진하였고, 대내적으로 최악의 상황 발생시 생활용수 공급을 위해 비상용수 활용방안 검토하였다. 가뭄극복을 위한 추진사항은 다음과 같다.
 
◦ 추진 일정
- 2009. 2. 4 : 전북지역본부 주관 가뭄극복 대책회의
- 2009. 2. 6 : 가뭄극복 종합대책 보고(→기획조정실)
※ 가뭄극복대책 수립관련으로 주제별 대책자료
1) 단계별 대체수원 확보방안 2) 대국민 물절약 홍보 3) 수질오염 대처 강화
- 2009. 2.12 : 가뭄극복 플랑카드 제작․설치(운암대교)
- 2009. 2.20 : 가뭄극복 대책관련 관계기관 회의 개최
- 2009. 2.26 : 섬진강댐 내 수중보 현황조사
- 2009. 3. 3 : 가뭄극복협의회 운영 통보(→농공, 한수원)
- 2009. 3.26 : 가뭄극복협의회 회의 개최(1차)
- 2009. 3.31 : 갈수기 운영계획 및 비상용수공급방안 수립
- 2009. 4.28 : 가뭄극복협의회 회의 개최(2차)
- 2009. 5.25 : 광동댐 비상취수시설 지원 협조요청(→태배권관리단)
※ 광동댐 비상취수시설 : 펌프, 송배수관, 푼툰 등
- 2009. 5.29 : 가뭄극복협의회 회의 개최(3차)
- 2009. 6.19 : 가뭄극복관련 협조 요청(→농공)
※ 생활용수 확보 요청 : 14백만㎥(농업용수 조정 저수위 : EL. 161.21m)
- 2009. 6.25 : 가뭄극복협의회 회의 개최(4차)
- 2009. 7.27 : 가뭄극복협의회 종료알림(→농공, 한수원)
 
 
3) 비상용수공급 방안 수립
 
섬진강댐의 경우 댐내에 구댐 및 수중보가 위치하고 있어, 특정 저수위(구댐 EL. 157.65m, 수중보 EL. 155.50m)에서 용수공급에 지장이 발생하므로, 가뭄 심화로 인한 수위 저하시 안정적인 용수공급을 위한 비상용수공급 방안을 수립하였다. 이에 대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참고로 검토시점이 3월말(EL. 174.81m)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뭄심화단계별 가뭄극복 방안≫
◦ 1단계(현재 ~ EL. 157.65m)
- 관계기관(한수원, 농공)과의 협의통한 용수 공급량 조정 및 절수홍보 등을 통한 실공급량 저감 노력
(오류) 닫기 없음 ;\nr※ 섬진강댐 가뭄극복협의회 기 구성․운영중(제1차 회의 기 개최, ‘09.3.26)
◦ 2단계(저수위 EL. 157.65m 이하)
- 펌프 및 푼톤을 설치하여 신~구댐간 저수량(5,900천㎥) 이용
◦ 3단계(저수위 EL. 155.50m 이하)
- 펌프 및 푼톤을 설치하여 구댐~수중보간 저수량(4,214천㎥) 이용
 
 
나. 섬진강댐의 홍수 극복
 
1) 섬진강댐의 홍수발생
섬진강댐은 준공 이후 크고 작은 홍수가 지속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기상이변으로 극한홍수가 발생하는 등 재난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섬진강댐 준공 이후 발생한 홍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발생한 강우량을 기준으로 3일간 강우량이 200mm 이상의 홍수가 발생한 것이 총 12회이며, 이중 300mm 이상의 홍수는 총 4회 발생되었다. 이중 최대 강우가 발생한 것은 1984년으로 3일간 361mm이다.
 
 
 
유입되는 홍수의 첨두량을 기준으로는 초당 1,000㎥ 이상의 홍수가 발생한 해가 총 23개년이며, 초당 2,000㎥ 이상은 총 7개년이다. 특히 2011년 8월 9일 섬진강댐 유역에 제9호 태풍 “무이파”가 지나간 뒤 내린 집중호우로 당시 댐 유역에 18시간 만에 251㎜의 비가 내려, 댐의 설계홍수량 3,268㎥/초를 초과하는 500년 빈도 수준의(4,434㎥/초) 홍수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댐 비상여수로 공사 가물막이가 붕괴될 수도 있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는 등 국가적인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2) 홍수대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섬진강댐은 준공 이후 크고 작은 홍수가 발생되어 왔으며, 이에 대응하여 홍수조절이라는 댐의 역할을 다해왔다. 첨두유입이 초당 1,000㎥ 이상이 발생한 23회의 홍수상황에서 14회를 수문방류없이 홍수를 전량 담수하였으며, 9회의 수문방류 상황도 최대 90.3%의 홍수를 담수하는 등 댐 하류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특히 준공 이후 최대의 홍수가 발생한 2011년에는 실시간 강우예보, 홍수분석 등을 통하여 댐의 계획방류량 이내에서 조절 방류(1,795㎥/초)하여 댐 상․하류 피해를 경감하는 등 최적의 홍수조절을 시행하였고, 국가재난관리체계에 따라 정부기관 및 지차제 등 44개 관계기관에 비상상황을 통보하고 댐 상․하류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등 관계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인명피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으며, 재산피해도 최소화하였다.
 
 
□ 2011년 홍수극복
2011년 발생한 홍수는 댐 준공 이후 최대 규모이며, 강우량, 유입량, 방류량, 댐수위 등 기존의 댐운영 수문 및 기상자료의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댐 건설시 계획된 홍수량(초당 3,268㎥, 100년빈도)을 초과하는 기왕 최대의 홍수에 대응하여 섬진강댐은 홍수조절용량 확보를 위한 사전예비방류, 실시간 홍수분석 및 강우예측을 기반으로 적정 방류량 결정 등을 통해 댐의 계획방류량(초당 1,868㎥) 이내에서 홍수를 조절하였다.
 
댐 운영현황
 
 
◦ 홍수조절 효과
 
- (홍수조절율) 59.5% (첨두유입량-첨두방류량)/(첨두유입량)
※ 상시만수위 196.5m(0.24↑), 기왕최고 196.3m(‘85.9.19)(0.44↑)
- (저감효과) 구례기준 첨두수위 1.99m, 유량 2,849㎥/초 저감
※ 섬진강댐 운영으로 인해 경보수위(EL.7.0m) 도달 방지
 
 
◦ 기타 조치사항
- 8. 9 15:00 : 상시만수위 이하 주민(4가구) 주민대피 완료
- 8. 9 15:30 : 계획홍수위 이하 주민(102가구) 홍수 위험안내․대피
- 8. 9 19:20 : 비상상황 하류주민 대피 통보
(→중앙재해대책본부, 전라북도 등 4 개 기관)
- 8. 9 19:40 : 계획홍수위 초과 예상 유관기관 통보
(→중앙재해대책본부 등 8기관)
- 8. 9 19:45 : 댐붕괴 위기대응 주의단계 발령
(→중앙재해대책본부, 국토부, 영산강FCO)
* 계획홍수위 초과예상에 따른 위기단계 발령(근거 : 댐붕괴 위기대응 매뉴얼)
- 8.10 06:00 : 비상상황 주민 대피 해지(전북도)
 
 

 
섬진강 재개발사업
 
사업계획
 
섬진강 다목적댐은 댐 상류 저수구역(수몰지) 내에 정착하여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로 인하여 계획된 댐 제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여 이·치수 측면에서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가능최대홍수량(PMF)에 대한 댐의 수문학적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아 용수확보 및 홍수조절 등 수자원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한 댐 운영의 정상화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따라서 섬진강다목적댐 재개발사업은 댐 운영정상화로 정상 회복되는 저수량을 기 배분된 관개 및 발전용수 외에 호남동남부지역 생·공용수로 공급하여 수자원의 합리적인 이용을 도모하고, 비상여수로를 설치하여 가능최대홍수량(PMF)에 대한 댐의 수문학적 안정성 확보와 댐 하류 홍수피해 예방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목적을 두고 있다.
 
 
추진경위
섬진강댐은 건설 당시부터 저수구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침수피해 우려로 댐 수위를 낮추어 비정상적으로 운영해 왔으며, 최근 기상이변 등으로 인하여 가능최대홍수량(PMF)이 증가하여 댐의 수문학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치수능력의 증대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또한, 호남지역의 합리적인 용수공급을 위하여 「호남지역 수자원 개발계획」에 따라 섬진강댐의 여유수량을 수원으로 확보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국내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 주변지역의 생활환경이 낙후되어 기반시설 확충 및 환경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로 인하여 섬진강댐의 운영정상화 및 재개발 사업이 다음과 같이 추진되었다.
 
◦ ‘65. 12 : 섬진강 다목적댐 준공
◦ ‘69. 8 : 집중호우로 상류면소재지 침수발생
* 이후 댐 수위 낮게 운영(상시만수위 EL.196.5m → 191.5m)
◦ '73. 9 : 기본계획 및 준공인가 공고(건설부)
* (건설목적) 관개, 발전으로 홍수조절, 생공용수 해당없음
◦ '73. 12 : 섬진강댐 댐사용권 현물 출자(제113차 국무회의 의결)
* 댐관리권 K-water 위탁, 댐 사용권 농진공 31%(관개), 한수원 69%(발전) 양도
* 농진공 및 한수원은 국가에 20년간 국가에 건설비 부담금 상환(2,286백만원)
◦ ‘86. 2 : 제1차 불용토지 용도 폐지 및 무상양여
* 1,280필지, 임야 309만평
◦ ‘95. 12 : 섬진강댐 유휴지 무상양여 건의(전북도→건교부)
* 홍수위외 유휴지 양여(개발계획 변경 EL.202m → 197.7m)
* 홍수위내 집단취락지역 하천구역 제척
◦ ‘97. 9 : 섬진댐 구역내 거주세대 이주 및 개발계획(전북도→건교부)
* 총소요비용 8,764백만, 매각대금 4,876, 부족분 도비 20억, 시군비1,888백만원
* 홍수위선내가옥 137세대(정읍 7, 임실 130), 실거주 103, 비거주 34세대
* 소재지개발계획 : 배수처리시설(배수갑문2.5x2.5mX2련, 펌프장 : 200HP x 1,000mm X 3대) 오수처리시설, 시가지도로 확포장등
◦ ‘98. 2. 18 : 불용토지 무상양여 방침 결정통보(건교부→전북도)
* 저수지내 주민이주(103세대) 및 침수방지시설 ʻ99년까지 완료
* 소요비용은 양여토지 매각대금으로 충당, 부족시 전북도 부담
◦ ‘99. 8~‘00.12 : 광양공업용수도Ⅲ단계 실시설계
* 섬진강댐 운영정상화로 인한 추가용수 수원으로의 활용계획 수립
◦ ‘00. 1 : 제2차 불용토지 용도폐지 및 무상양여
* 계획홍수위 이상 불용토지 약 130만평
◦ ‘02. 3 : 수자원개발 및 관리실태 감사원 감사처분
* 섬진강댐 이주대책 및 광양Ⅲ단계사업 정상추진토록 국고지원 방안강구
◦ ‘05. 5 : 섬진강댐 재개발사업 추진계획 수립(건교부)
* (댐정상화) 주민이주, 도로보강 등, (치수) 보조여수로 등
◦ ‘04.12~‘06.12 : 섬진강댐 재개발사업 실시설계
◦ ‘07. 4 : 공공기관 갈등·조정 관리실태 감사 및 관계기관 합의(감사원)
* 기본계획 변경 협조, 추가 확보용수 검증, 보상방안 마련(K-water·한수원·농촌공)
◦ ‘07. 10 : 섬진강댐 기본계획 변경 고시(건교부)
◦ ‘08. 5 : 섬진강댐 재개발사업 실시계획 고시(익산청)
◦ ‘08. 6. 16 : 섬진강댐 재개발사업 착공
◦ '10. 7 : 댐사용권 합리적 조정방안 관계기관 협의(K-water·한수원·농촌공)
* (당초) 관개31%, 발전69% → (변경) 관개15%, 발전27%, 생공21%, 홍수37%
 
 
사업내용
 
섬진강댐재개발사업은 치수능력증대사업과 댐운영정상화사업으로 구분되어 추진되고 있으며, 치수능력증대사업은 수자원공사에서, 댐운영 정상화사업은 전라북도에서 시행하고 있다.
 
 
치수능력증대사업
섬진강댐재개발사업 중 치수능력증대사업은 최근 변경된 댐설계기준(100년빈도홍수→가능최대홍수량) 및 댐운영정상화 이후 댐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추진되는 사업으로 보조여수로 건설을 통한 홍수배제능력 강화, 기존여수로 수문교체 및 보조여수로 수문설치, 하류용수공급시설 및 소수력발전소 건설 등 댐의 구조적 기능 보강이 사업의 주요내용이다.
 
보조여수로 건설
보조여수로는 가능최대홍수량(PMF) 유입 시 섬진강댐의 수문학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가 추진되었다. 당초 실시설계 시에는 기존여수로 수문의 고장 또는 여수로 구조물의 부분적인 파손으로 기존여수로를 우회할 필요가 발생할 경우나 유입된 홍수량의 미방류로 홍수조절용량이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또 다른 대홍수가 유입되는 경우 또는 설계유입홍수보다 큰 홍수가 발생하는 경우에 비상 여수로로 활용하는 것으로 계획되었으나, 2011년 이상홍수가 발생하여 계획홍수량을 초과하는 등 최근 기상이변에 대비하기 위해 신설여수로를 통한 홍수조절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홍수 발생시 상시 운영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으며, 보조여수로의 조감도 및 제원은 다음과 같다.
 
 
 
 
보조여수로의 규모는 가능최대 홍수량(PMF) 유입시 저수지 홍수추적을 실시하여 결정하였다. 홍수추적 결과 유입량이 초당 8,601㎥인 지속시간 18시간에 대하여 댐 수위가 EL.198.18m이며 여유고를 감안한 표고는 EL.199.97m로 댐 마루고인 EL.200.0m보다 0.03m 낮아 적정한 것으로 검토되었다.
 
 
 
하류용수공급 시설
하류 용수공급시설은 댐 운영정상화를 통한 용수확보 및 수자원의 합리적 이용을 도모할 수 있도록 용수공급시설을 설치하고 댐 체의 안정성을 높이고 효과적으로 물의 계획수요량에 따라 수요지에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시설물로서 다목적댐의 취수방식으로 수질과 수온을 고려하여 선택취수와 표층취수 방식을 동시에 채택하였다.
 
취수설비는 용수공급과 수밀성이 좋아 유지관리가 용이한 원형 실린더게이트 취수탑을 설치하였고, 취수탑으로부터 󰍋1500mm의 도수관을 통하여 취수된 용수(월 최대공급량 4.55㎥/sec)는 댐 직하류 좌측에 설치되는 소수력 발전소를 거쳐 하류에 용수를 공급할 계획이다.
 
 
 
기존 및 보조여수로 수문제작 및 설치
섬진강댐재개발사업의 댐 치수능력증대방안의 일환으로 홍수조절 및 댐에 유입된 수원을 댐 하류로 안전하게 방류하기 위해 보조여수로 수문 설치 및 기존여수로 수문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노후화된 시설 개선을 위해 수문 및 권양기를 교체하였다.
 
<기존여수로>
· Weir Crest 표고 : EL.192.70m
· 여수로 형식 : 문비조절 월류형 여수로-H4.206m × B9.09m, 15문
<보조여수로>
· Weir Crest 표고 : EL.186.70m
· 여수로 형식 : 문비조절 월류형 여수로-H11.5m × B12.13m, 4문
 
<보조여수로 수문 조감도>
 
 
댐 주변 환경개선
섬진강댐 재개발사업을 통해 섬진강댐 주변지역의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정비하고, 자연경관 및 생태환경을 보전·복원하여 친환경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섬진강댐을 구현하기 위해 댐주변지역과 상류 홍수터지역에 친환경 공원 조성 및 물문화관 설립을 추진하였고 물문화관은 ‘15년 7월에 개소하여 현재 운영중에 있다.
 
 
□ 댐 상류 사토장 공원 조성
 
□ 물문화관 설립
 
치수능력증대사업 시공 전경
 
 
섬진강댐 운영정상화 사업
섬진강댐은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댐 건설시 이주단지 조성 지연으로 댐 부지에 화전 허용 등 주민거주가 30년간 용인되어 거주민의 침수위험 등으로 댐의 제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운영을 지속해왔다.
따라서 거주민의 생활불편 및 지속적인 민원의 근본적인 해결과 섬진강댐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정부와 전북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수몰민의 이주대책과 도로 등 시설보강으로 이루어진 운영정상화 사업이 추진되게 되었다.
 
추진개요
 
◦ '86. 2. : 제1차 불용토지 무상양여(건교부→전북도, 약309만평)
◦ '95. 12. : 섬진강댐 고질 집단민원 해소방안 건의(전북도→건교부)
* 계획홍수위 이상 유휴지 무상양여(섬진강댐 계획 변경 EL.202m→EL.197.7m)
* 홍수위내 집단취락지역(운암면, 산내면) 하천구역에서 제척 양여
◦ '97. 12. : 섬진강댐 운영정상화 방안 방침결정(건교부)
* 국민고충위 권고(ʻ86년무상양여선례따름)에 따라 유휴지 약124만평 전북도 양여
◦ '98. 2. 18 : 섬진강댐 불용토지 무상양여 방침통보(건교부→전북도)
* 홍수위이상 약113만평, 홍수위이하(제내지)약11만평 무상양여
* 양여토지 매각대금으로 주민이주(약103세대) 및 침수피해방지시설 ʻ99년까지 완료
◦ '00. 1. : 제2차 불용토지 무상양여(건교부→전북도, 약130만평)
◦ '02. 3. : 수자원 개발 및 관리실태 감사원 감사처분
* (건교부) 이주대책비 확보계획 현실성 없음, 주민이주 국고지원
◦ '05. 5. : 섬진강댐 재개발사업 추진계획 방침결정
* (이주대책) 제내지108세대국고지원(284억원), 수몰지127세대전북도부담(234억원)
 
 
사업내용
 
□ 주민이주
◦ 수몰지 : 운암면 127세대
◦ 제내지 : 운암면 108세대(제방보호중이나 항구적 내수침수 방지목적)
□ 도로시설 보강
◦ 침수도로 : 국도 30호선 및 지방도 717호선 등 6.1km,
◦ 취락지구 연결도로 : 9.2km
 
댐 정상화
 
 
사업의 기대효과
최근 기후변화로 빈번해지는 홍수와 가뭄 속에서 댐의 역할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댐의 역할과 기능을 더욱 강화하여 기후변화에 대비하고자 하는 사업이 바로 섬진강댐재개발사업이다. 이 사업의 완료로 준공 이후 지속되어온 수몰민들의 애환 해소와 댐의 정상운영을 통해 홍수피해 해소 및 섬진강 본류 물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댐의 홍수조절능력 강화
보조여수로 설치 등 치수능력증대로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홍수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가능최대홍수량(PMF)에도 댐의 안전성이 확보되며, 기존여수로 보다 강화된 보조여수로의 홍수조절능력으로 댐 상하류 홍수피해 경감이 기대된다.
 
 
댐 운영 정상화로 용수공급능력 강화
섬진강댐은 당초 호남평야의 관개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건설되어 유역변경을 통해 용수의 대부분을 동진강유역으로 보내왔다. 이로 인해 섬진강댐 하류는 댐에 의한 물 부족과 홍수시 수문방류에 불만이 고조된 상황이다. 하지만 사업완료 후 댐의 정상운영으로 과거대비 연간 65백만㎥의 용수가 추가로 확보될 것으로 예상되며, 추가용수는 광양, 여수, 구례, 순창 등에 생·공 용수로 공급되어 댐 하류 물 부족 해소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하류하천 유황 및 수질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향토사】 강진의 역사와 문화
• 21. 강진의 종교문화
• 22. 섬진강다목적댐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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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