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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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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진의 역사와 문화
19. 강진의 구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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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7. 14:56) 
◈ 19. 강진의 구비문화
강진의 구비문화
 
이목마을 베짜기
 
기성복이 도입되기 전에 대부분 서민들은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가장 흔한 직물이 삼베, 명주, 모시, 무명이다. 당시 부녀자들은 각종 섬유 재료에서 실을 뽑고 이를 가공하여 삼베, 모시, 명주, 무명 같은 피륙을 짜는 일련의 수공업 작업을 일컫는 ‘길쌈’을 해 왔다. 그러나 이후 산업화로 인하여 길쌈 풍습은 거의 사라졌으나, 아직도 강진면 이목리에는 베짜기 문화가 남아 있다.
 
이목리는 강진면 소재지에서 청웅면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다. 1664년 (현종5년)경 김해 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큰 배나무가 있어 ‘배나무실’로 불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목리(梨木里)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법정리인 부흥리에 속해 있다. 이목마을 주민은 오랫동안 농사, 돼지사육 외에 무명과 삼베길쌈을 하여 생계를 이어왔다, 이목마을 무명포와 마포는 품질이 우수하여, 중간 상인이 서로 가져가려고 싸우는 일이 잦았고, 2월 초순이면 집집마다 베짜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임실군 삼베는 삼베재배와 수확-껍질 벗기기-삼째기-삼삼기-실 올리기-실 내리기-실 날기-삼베매기-베짜기 순을 거쳐 완성된다. 삼배는 음력 6월 중순에 벤다. 너무 연할 때 베면 베가 약하고, 너무 여물 때 베면 베가 곱지 않다. 삼을 벤 후에는 곧 바로 삼칼로 잎을 전부 딴 후, 삼굿(삼대 껍질을 벗기기 위하여 삼을 넣고 찌는 구덩이나 솥)에 삼대를 엇갈리게 넣은 후 푹 삶는다. 이를 삼을 ‘굽는다.’라고도 하고 ‘찐다.’라고도 한다. 삼을 증기로 구웠기 때문에 ‘굽는다.’라는 말이 생겼다.
 
이어 한 시간 후 바로 껍질을 벗긴다(껍질 벗기기). 삼대는 시간이 지나면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으므로, 삼굿에서 꺼낸 즉시 식기 전에 껍질을 벗겨, 한 묶음씩 만들어 당일 말린다. 이때 품질을 상, 중, 하로 나눠 묶는데, 열 개 한 묶음을 한 ‘곰뱅이’라고 한다. 껍질을 벗긴 삼은 물에 담가 때를 빼 볕에 말린다. 말려 둔 삼을 물에 적신 후 다섯 가래 정도 삼을 왼손에 쥔 후, 다시 엄지손에 한 번 휘감아 쥐고, 오른 편 손톱 끝으로 삼머리 쪽부터 꼬집듯이 쪼개어 한꺼번에 손가락을 사이사이에 훑어 내린다(삼 째기). 짼 삼은 도마에 올려놓고 삼톱으로 이을수 있도록 벗기는 작업을 한다.
 
다음 순서인 삼 삼기는 이미 짼 삼을 상품, 하품으로 나누어 놓고 작업을 한다. ‘삼삼기’는 삼올을 뽑아 끝과 끝을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삼을 물어 적셔 짠 후 전지다리(표준어는 짓다리)에 걸어놓고 삼 머리 쪽과 끝을 잇는데, 머리 쪽을 반 가르듯 약간 쪼갠 후 다른 끝을 그 사이에 넣어 허벅다리에 대고 비벼 이은 후, 소쿠리나 체에 담는다. 삼삼기에 능숙한 여인들은 하루에 한 곰뱅이 정도는 끄떡없이 해치웠다고 한다.
 
삼아놓은 삼을 일단 물에 적시어 짜 물레로 잣은 후 돌꼇(이목리에서는 돌곳이라 부름. 심을 감거나 푸는데 쓰는 기구. 굴대의 꼭대기에 ‘+자’ 모양의 나무를 대고 그 끝에 짧은 기둥을 박아 만드는데, 굴대가 돌아감에 따라 이 기둥에 실이 감기거나 풀림)에 올려 다시 볕에 말린다(실 올리기). 돌꼇에 올린 것을 ‘실 것’ 이라도 하는데, 이 실 것을 물에 적시어 짚을태워만든 재에 버무린 후, 따뜻한 방안에서 일주일을 띠운다. 일주일 후 삼을 꺼내어 재를 털어버리고 큰 솥에 실것이 물에 흥건하게 잠길 정도로 넣어 푹 삶는다.
 
그 다음에는 볕에 말리는데, 두어 차례 물에 적셔 말리면 어느 정도 표백이 된다. 이후 쌀겨 물에 2~3일 담가 두면 삼올이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고, 쌀겨 물이 우러나 노랗게 착색된다. 삼올을 건져 볕에 완전히 말린 후 돌꼇에 메워 다시 내린다(신 내리기). 내린 실 것을 다시 다음어 고르게 한다. 이목리에서는 이를 ‘거스른다.’고 한다. 실떡 3근으로 40자 한 필을 짤 수 있다. 베는 삼올의 굵기에 따라 새[升]가 정해진다.
 
새의 수가 높을수록 가늘고 곱다. 다음 순서는 실 날기(베날기)이다. 이 때 날틀과 걸틀이 필요하다. 날틀은 열 개의 구멍에 각각 가락을 꿰어 열 올의 실을 한 줄로 뽑아내는 말뚝이고, 걸 틀은 날반대 방향에서 날실을 거는 말뚝이다. 마당에 날틀과 걸틀을 세워 놓고,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날실을 교차해 베매고 짜는 과정을 실 날기 혹은 베날기라 한다. 한 사람은 날틀 뒤에서 실이 엉키지 않고 잘 풀려 나가도록 하고, 다른 한 사람은 10올(한모숨)은 반복적으로 교차시키는 일을 한다.
 
다음 베매기는 실 날기를 끝낸 날실에 풀을 먹이는 작업이다. 베매기는 풀칠하는 사람, 마주 않아 날실을 고르게 잡아주는 사람, 도투마리 마는 사람으로 3명이 필요하다. 마지막에는 베틀에 베를 짜면 옷감의 재료인 삼베포가 완성된다. 베 짜기는 선선할 때 하면 삼올이 끊어지기 때문에 주로 더울 때 짠다. 이렇게 한여름에 수확하여, 이듬해 여름 베짜기 까지 삼베 옷감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꼬박 1년이 걸리는 셈이다.
 
강진면 부흥리 이목마을에서 1970년대까지 80여 세대가, 1990년대는 50여 농가가 삼베길쌈을 했다. 임실군은 1999년 삼베를 임실특산품으로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개량형 배틀 30대를 농가에 보급하였으며, 대마 재배면적을 3ha에서 8ha로 늘리고 판로개척에 힘쓴 바 있다. 이목리에서는 마을회관 내 1층을 전통삼베작목반 작업장으로 사용하여, 마을 여성들은 저녁에 모여 길쌈을 했다.
 
이목마을의 홍점례(1942년생)는 60여 년 간 삼베 길쌈을 해 온 여성이다. 그녀에 의하면, 길쌈의 모든 과정이 힘들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배매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이목마을 김쌈 농가는 점점 줄어들었고, 마지막 3~4년 동안에는 김쌈을 하는 여성이 자신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녀도 4년 전 그만두어 이제 마을에 삼베를 만드는 농가는 전혀 없다. 삼베길쌈이 한창일 때는 대부분 농가에서 대마를 재배하였으나, 이제는 대마를 재배하는 농가도 없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조사팀이 1970년대 이목마을을 조사할 당시 임실군 강진면 이목마을 황복순이 들려준 베틀노래는 다음과 같다.
 
이수에 숙낭자가 옥난간에 베틀 놓고
앉을 말을 돋우 놓고 하관을 숙이시고
앉을 말 돋우 놓고 물고 부태 감는 양은
 
용문산에 안개를 두른 듯 북드는 양은
청용 황용 뒤트는 듯 바디집 치는 양은
삼월삼질에 병매기 울리는 듯 최발 옮기는 양은
 
동에 동쪽 무지기를 서에 서쪽 옮기는 듯
잉애대 삼형제 놓는 양은 오는 듯 가는 쟁기반기 다섰는 듯
제비장대 방기비기다서 눈잿대 누리는 양은
 
이슈 아에 캉태선이 낙숫 대가 노대는 듯
삼침대 엉키는 양은 구시월 새단풍에 칡사리가 엉키는 듯
벵어리 가는 양은 제비장대 방게에다섰다.
 
용두머리 우는 앙은 외기러기 짝을 읽고 벗 부르는 소리로다.
벼게미 섯는양은 고주대가 섯는 듯
도투마리 드놓는 양은 청용 황용 뒤트는 듯
 
뱁댕이 지는 양은 구시월 세단풍이 나뭇잎이 지는 듯
끄실신 잡어 다니는 양은 청용 황용이 여의주를 물구 희룡을 하는 듯
그 베를 다 짜서 곧가 세로 멱을 찔러 장변에 담방이고.
 
 
필봉마을 당산제
 
필봉마을은 조선 중엽때 부터 마을에 화재를 막기 위하여 마을앞 70m전방에 느티나무가 있는곳에서 매년 정월 보름이면 마을에서 왼새끼로 당산나무에다가 띠를 두르고 새끼에다가 숯과 솔가지와 대나무잎 등을 꽂고 사전에 당산제를 예고한 뒤 날자를 정하고 제유를 깨끗이 만들어 진설한 후 지정된 제관이 제사를 모신다.
 
제사가 끝나면 바로 농악을 치며 당산굿은 치게 되는데 이때 마을 주민들이 참석하여 흥이나게 당산굿을 올리며 중간 중간 재앙퇴치를 상쇠가 선창하면 농악 대원들은 후창을 하며 굿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와 집집마다 순회하며 재앙을 물리치는 농악놀이와 주민단합을 과시하여 왔으나 1970년대 새마을 정신운동이 전개되면서 미신타파 일환으로 당산제가 사라져 버렸다가 필봉농악 전수관의 주관으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매년 지속적으로 임실군에서는 유일하게 당산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백련산 기우제
 
비에 의존하여 농사을 짓던 시절 한해가 심할 때 마다 청웅 강진면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자고 상호 연락하여 날짜를 정하여 백련산 산봉우리에 올라가 봉화와 함께 기우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이때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던 중 비가 쏟아져 한해를 면한 일이 종종있어 그 믿음으로 한해 때 마다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고 한다.
 
백련산 산봉우리에다 기우제를 지내게 된 동기는 백련산 봉우리라 칭한 곳으로 전설에서 산봉우리에다 묘를 쓰면 비가오지 않는다는 유래 때문에 그곳에다 기우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기우제가 시작되기 전에 묘를 썼는지 여부를 확인키 위하여 산봉우리를 파헤쳐 확인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하여 수백년간 기우제를 지낸 곳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과학문명이 발달되고 양수기 등과 소류지, 그리고 저수지와 댐 건설로 전천후 수리 안전답으로 변화도어 그렇게 믿고 시행하였던 기우제가 사라지고 이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남아있지 않고 있다.
 
 

 
강진의 민요 모음
 
1. 박종래(78세, 남, 강진면 필봉리 상필마을)
 
박종래씨는 강진면 필봉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양봉순(73세)을 아내로 맞이하여 슬하에 4남 2녀를 낳아 위로 딸 둘을 빼고는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다. 동네에서 가장 부지런하기로도 유명한 박종래씨는 너무 일을 많이 하여 몸이 몹시 쇠약한 상태이지만 자식들이 잘 되어 보람 있는 삶을 살았노라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 방개소리를 불러주었으며, 이곳 필봉리의 두레조직과 농악 전승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해주었다.
 
(1) 강진면 필봉리 ‘논매는 소리-방개타령’
가창자 : 박종래, 2005. 11. 10. 양진성, 오미애, 양옥경 조사.
 
오늘은 여기서 놀고 내일은 어데서 놀까
에헤야 에헤야 에헤이 야회로다 방개로다
 
 
2. 배정순(83세, 여, 강진면 산막마을)
 
배정순씨는 전주시 인후동에서 태어나 살다가 12살에 외가인 강진면 하필로 옮겨 살았다. 그녀는 어른들의 중매로 17살에 결혼하여 이곳으로 시집을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으며 막내 아들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남편은 76세에 위암으로 일 년 동안 거동도 하지 못하다가 돌아가셨다. 남편과는 동네에서 잉꼬부부라고 할 정도로 금슬이 좋았으나 남편이 사망하고 나자 마음이 많이 아프고 허전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배정순씨 혼자 살아가고 있다.
 
(1) 강진면 산막마을 ‘콩 밭매는 소리’
가창자 : 배정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열라는 콩 퐅 은 아니나 열고
아주까리 동백만 주저리 쳤네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를 말어라
우리 땅 삼형제 때 갈보 난다
갈보란 것이 종자가 있냐
남 사정 볼라 다 갈보라지
 
 
(2) 강진면 산막마을 ‘밭매는 소리’
가창자 : 배정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나락 밭에 나락은
제멋에 져서 흐드러졌구나
텃밭에 쑤시는 호리낭창 섰고
뒷동산에 다박솔은
나와 같이 외로나 섰구나
 
 
(3) 강진면 산막마을 ‘노랫가락1’
가창자 : 배정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사람이 살면은 몇 백년이나 살을랑가
내가 죽고 니가 살면 열녀가 되느냐
에야리야노야 에야리야노야
어기여차 뱃노래 가잔다
 
 
(4) 강진면 산막마을 ‘노래가락2’
가창자 : 배정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이팔청춘 소년들
백발보고 반절마소
우리도 엊그제께는 이팔청춘
소녀였더니 백발이
이리 실 줄은
내가 미쳐 몰랐네
 
 
(5) 강진면 산막마을 ‘아이 걸음마 시키면 부르는 노래’
가창자 : 배정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불무야 불무야
경상도 대불무야
불어라 딱딱 불무야
 
 
3. 곽야순(76세, 여, 강진면 필봉리 상필마을)
 
곽야순씨는 강진면 회진리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강진면 필봉리로 시집왔다. 그녀의 남편은 중요무형문화재인 임실 필봉농악 기능보유자였던 양순용씨로, 예술가를 남편으로 둔 덕에 젊은 시절부터 고생을 무척 많이 하였다고 한다. 현재 남편은 사망하였고,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으나 큰 딸은 제외하고는 모두 국악 분야에 종사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곽야순씨는 금번 조사에서 베틀가, 밭매는 소리 등을 불러주었는데 그녀가 알고 있는 노래만큼이나 길쌈, 밭일, 논농사, 곶감 만들기, 잠농(蠶農)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셨다. 처음 시집 왔을 때 시댁에는 증조부와 증조모 시동생까지 층층시하여서 그녀는 참으로 말 못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남편과 자녀들 뿐만 아니라 시동생들까지도 자식처럼 키워야 했던 곽야순씨는 그 모든 뒷바라지에 젊음을 모르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반백이 되어 있었노라고 한숨 지으셨다.
 
(1) 강진면 필봉리 ‘밭매는 소리1’
가창자 : 곽야순, 2005. 11. 10.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못다 맬 밭 다 맬라다
금붕채를 잃었다네
금붕채 값은 열이 열닷냥
내가 나 줌세
 
 
(2) 강진면 필봉리 ‘밭매는 소리2’
가창자 : 곽야순, 2005. 11. 10.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나주 영산 돈애기 시암은
구름만 쪄도 생수가 나네
 
 
(3)강진면 필봉리 ‘베짜는 소리’
가창자 : 곽야순, 2005. 11. 2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오늘날은 하심심하니 베틀이나 놓아볼까
베틀 다리는 네 다리고 잉에 대는 삼형제라
달그락 달그락 짜는 베가
밤에 짜면 월광단이요 낮에 짜면 일광단이라
일광단 월광단 다 짜 놓아서
우리님 와이셔츠나 지어볼까
 
 
(4) 강진면 필봉리 ‘노랫가락1’
가창자 : 곽야순, 2005. 11. 10.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저 건네라 목화밭에
목화 따는 저 처녀야
너그 부모 어데 두고
너 혼자서 목화 따느냐
우리 부모 팔자 좋아
팔도 강산 귀경 갔소
얼씨구나 좋네
정말로 좋아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5) 강진면 필봉리 ‘노랫가락2’
가창자 : 곽야순, 2005. 11. 10. 양진성, 오미애, 양옥경 조사
 
저 건네라 모주랑 바우에
비리 빙빙 도는 봄 나비야
대동아 봉사리를 너를 줄까
옥동아 봉사리를 너를 줄까
대동아 봉사리도 나는 싫고
옥동아 봉사리도 나는 싫소
강원도 금강산 꽃만 주오
 
 
(6) 강진면 필봉리 ‘노랫가락3’
가창자 : 곽야순, 2005. 11. 10.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산이 높아야
골도나 짚지요
자그마한 여자 마음
얼마나 깊을까
이 방 율이 밝느냐
저 방 율이 밝느냐
경찰서 마당에 좋다
법률이 밝드라
 
(7) 강진면 필봉리 ‘달캉달캉’
가창자 : 곽야슌, 2005. 11. 1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달캉 달캉
달캉 달캉 서울 달캉
서울가서 밤하나 주워다
선반위에 얹었더니
머리 까만 생쥐가
들랑 날랑 다 까먹고
껍질은 아버지 주고
비늘은 어머니 주고
살 조깨 남은 놈 너하고 나하고
먹었더니 꼬숩고도 맛나드라
 
 
(8) 강진면 필봉리 아리랑
가창자 : 곽야순, 2005. 11. 1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아리랑 고개는 누가 냈냐
건방진 큰애기 내가 냈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울어머니 나실 적에
덕석 구비나 앉았던가
구비 구비 설움이네
구비 구비 눈물이네
 
멀구야 다래야 열지마라
산골짝 큰 애기 일 못밴다
 
울어머니 나실적에
왕대죽신
원했던가
모디 모디 설움이요
모디 모디 눈물이라
 
 
(9) 강진면 필봉리 ‘불무야 불무야’
가창자 : 곽야순, 2005. 11. 1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불무야 불무야
경상도 대불무
전라도는 외불무
불어라 딱딱 불어라
 
 
4. 김창순(77세, 여, 강진면 필봉리)
 
김창순씨는 정읍군 칠보면 묵동 마을에서 태어나 22살에 중매로 이곳 필봉 마을에 시집왔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으며 엄한 시부모님 밑에서 시집살이를 많이 하였지만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묵묵히 그 세월을 견디며 살아왔다고 한다. 남편은 이미 사망하였고 자식들도 모두 출가한 상태여서 지금 현재는 홀로 생활하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새로운 노래를 들으면 어떡하든 그것을 익히기 위해 무척 애를 쓰며 배웠다고 한다.
 
(1) 강진면 필봉리 ‘밭매는 소리’
가창자 : 김창순, 2005. 11. 2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시집 온 사흘만에
시금시금 시어머니 허신 말씀
고무자루 쥐어 줌서
건너 밭을 매고 오라네
앞산 가서 보니
악산 같은 지심 밭을
못 다 맬 놈 다 매다가
금봉채를 잃었구야
 
 
(2) 강진면 필봉리 ‘ 화전놀이 가서 부른 노래’
가창자 : 김창순, 2005. 11. 2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진주 강산 얽은 돌에
찹쌀 멥쌀로 술을 히여
딸 키워서 날 준 장모
이 술 한 잔 들으시오
이 술이 다른 술이 아니라
먹고 노자는 백노주라요
 
 
(3) 강진면 필봉리 ‘술 권하는 노래’
가창자 : 김창순, 2005. 11. 2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뒷동산은 봄 춘자요
앞동산은 부를 정자
가지가지 꽃화자요
두루두루 꺾어질 절자
동자야 술 부어라
잔우에 찰랑 찰랑
마실 음마로 돌립시다
 
 
(4) 강진면 필봉리 ‘강실강실 강도령’
가창자 : 김창순, 2005. 11. 2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강실 강실 강도령
강호 책을 옆에 들고
잠방으로 장가들어
서른 두 칸 기와집에다
마흔 두 칸 대문이라
앞대문은 용그리고
겉대문은 범그리고
꾀꼬리는 잔을 개고
봄나비는 날아간다
정지에 있는 하인들아
너그 주인네 거동보라
 
옥방석은 내다 싫고
짚방석만 들이댄다
이국 저국 다 마대고
미역국만 들이댄다
어서가자 어서가자
오던 길로 말돌려라
장인 장모 썩나서며
어따 어따 이 사람아
술이 나빠 가는가
안주가 나빠 가는가
술 안주는 좋네 마는
자네 딸 행실이 나빠 가는구나
애기 엄마 썩 나서며
저기 가는 거 서방님
애기 엄마 썩 나서며
저기 가는 저 서방님
애기 이름이나 짓고 가오
애기 아범 어따 두고
날더러 지라는가
일찍 났응게 일남자로 지어주소
 
 
5. 강복순(88세, 여, 강진면 백여리)
 
강복순씨는 순창군 장덕리에서 태어나 17세 결혼하여 이곳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원래는 현재 집 윗 터에 있는 집에 살았으나 전쟁 중에 불타버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시 지어 살고 있다고 한다. 남편은 평소에 노래 부르는 것과 치장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서 할머니는 노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남편과 사별한지 30년이 넘었는데도 엄했던 남편만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릴 정도라고 한다. 슬하에 4남매를 두었으나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해서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이 내내 한으로 남는다고 한다.
 
할머니가 시집온 지 2년 만에 남편은 29세 나이로 채독병에 걸려 일을 하기가 몹시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고, 그 병은 48살까지 지속되어 병환으로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제보해준 노래들은 남편이 돌아가신 후에 동네에서 듣고 배웠다고 한다. 강복순씨는 평소에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조사한 날도 노래 부르다 막히면 깡소주 한 잔을 들이킨 후에 다시 노래를 불러주곤 하였다.
 
(1) 강진면 백여리 ‘시집살이 노래’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성님 성님 사춘 성님
시집살이가 어쩝던거
시집살이는 좋더라 만은
밥상 놓기가 애롭더라
앞산 밭에 마늘을 숨겨
뒷산 밭에다 고추 갈아
고추야 마늘이 맵다 해도
시누년 만큼은 안 맵더라
 
 
(2) 강진면 배여리 ‘물레질 소리’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물레야 가라가 뱅뱅뱅 돌아라
물레야 가라가 요리 뱅뱅 돌아라
뒷집이 김도령이 밤이슬만 밟는다
너냐 나냐 두리 둥실 놀세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참사랑이로구나
 
칠 팔월 쓰시나무는 철이나 알고서 흔든디
우리집 시어마니는 때도 모르고 흔든다
 
십오야 밝은 달은 구름 속에서 놀고
빛이 반짝 처녀는
내 품안에 논다
 
십오야 갈보야 몸단장 말어라
돈 없는 건달이 날 죽어난다
 
 
(3) 강진면 백여리 ‘상여소리’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어-노 어-노
어너리 넘자 어-노
먼데 가는 저 모양이
옆에 가도 저따구로
 
 
(4) 강진면 백여리 ‘노랫가락1’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개야 개야 깜둥개야
양기가 축쳐진 삽살개야
누룬밥 훓어서 너를 줄 적에
내 배아지가 불러서 너를 주나
밤중 밤중 야방중에
뒷집에 김도령 오신다면
니 발을 캉캉 짓지를 말고
꼬리만 살짝 둘러다오
 
 
(5) 강진면 백여리 ‘노랫가락2’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순창 한골에
청년도 많도만
날 데려갈 청년이
그렇게나 없어서
회문산 꼭대기다
나를 숨겨 줬는가
 
 
(6) 강진면 백여리 ‘노랫가락3’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기상에 아가씨
한두바꾸 사랑의 편지가 놀구요
너 싫고 나 싫을 적에
너 갈대로 가거라
이 세상에 면전수가
너 하나 뿐이냐
한두바꾸 돈 있을 때
나를 감고 돌더니
돈 떨어진께
금새도 변하네
 
 
(7) 강진면 백여리 ‘노랫가락4’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꽃이랑 머리다가
춤을 볼라서 빗고서
우수나 달밤에 임 마중을 가세
너냐 나냐 두리둥실 노세
낮에 낮에나
밤에 밤이나 참 사랑이로구나
 
심보야 밝은 달을
구름속에 놀고
이십안짝 처녀는
내 품안에서 논다
너냐 나냐 두리 둥실 놀세
낮에나 잠에 밤에나
참 사랑이로구나
 
신작로 널루와서
도망가기 좋고
전기불 밝아서
정든님 보기가 좋구나
너냐 나냐 두리 둥실 놀세
낮에나 밤에 밤에나
참 사랑이로구나
구시월 국화는 바람에 날리고
우리님 넥코타이 내눈에 날린다
 
 
(8) 강진면 백여리 ‘노랫가락5’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호박수 저짝우에
미나단초 달고
오동나무 그늘 밑으로
임마중을 가세
 
 
(9) 강진면 백여리 ‘장타령’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어 서리 서리 들어 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왔네
문전 대전 나그네 박대는 맙시다
 
일자 한자나 들고가 일선에 가신 우리 오빠
평화 오기만 기다린다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이자를 들고가 이승만이가 대통령
김일성이가 사성관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삼자를 들고가 군인가는 삼년 만에
소집영장이 웬말인가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사자를 들고가 사십먹은 중노인이
놈이잔 말이 웬말인가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오자를 들고가 오년만에 중공군이
낙동강에를 건너 간다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육자를 들고가 유사변에 불타버리고
거지나 생머리 웬말인가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칠자를 들고가 칠성당에다 불공하고
삼천동포가 평화 오기만 기다린다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팔자를 들고가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팔동산에다 집을 짓고 신부 신랑이 잠을 잔다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구자를 들고가 구십먹은 군노인이
물레줄만 감고만 돈다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품바가 잘헌다
 
십자를 들고가 장개 가는 첫날 밤에
소집영장이 왠말인가
품바 품바가 잘헌다 어허 춤바 잘 돈다
 
 
(10) 강진면 백여리 ‘영감노래’
가창자 : 강복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하늘과 같은 가장 정은
북망산천이 앗아가고
태산 같은 내 아들 정은
며느리 애기가 앗아가고
새별 같은 내 딸 정은
사우놈 그놈이 앗아가고
구야 구야 담방구야
너와 나와 하룻밤 이라도
풋사랑하고 놀세
 
 
6. 김인순(63세, 여, 강진면 산막마을)
 
김인순씨는 순창군 인계면에서 태어나 시누이의 중매로 이곳 산막 마을에 시집을 왔다. 시집을 와서 보니 이곳 마을은 시골 중에서도 아주 산 골쪽이어서 어찌 살아야 할까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한다. 슬하에 4형제를 두었으며 아들 둘을 출가시켰고 셋째 아들도 곧 결혼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둘째가 결혼을 하지 않아 항상 걱정이라고 한다.
 
남편은 60세 때의 간경화로 돌아가셨는데, 남편은 젊어서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동네의 술이란 술은 모두 남편이 마시는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남편의 음주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한 적도 많았으나 술 마시는 것 이외에는 할머니를 그다지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사시는 것이 당신의 운명이라 생각하며 현재 홀로 살아가고 있다.
 
(1) 강진면 산막마을 ‘시집살이 노래’
가창자 : 김인순, 2005. 8. 22.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십리방아 찧어다가
오리 물을 길러서
열두방아 자리 걷고
남편은 미련 새요
자식은 우는 새요
앞에 밭은 고추심고
뒷밭에 당초심고
당초 꽃이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매우랴
 
 
7. 김효순(배수댁, 72세, 여, 강진면 필봉리)
 
김효순씨는 강진면 옥정리 배소 마을에서 태어나 21살에 중매로 이곳에 시집을 왔다. 남편은 15년 전에 일찍 병으로 사망하였으며, 슬하에 5남매를 두었으나 모두 출가하고 지금 현재는 홀로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는 평소 신명이 많은 분이어서, 농악을 치는 날에는 판굿에 뛰어들어 절구공이를 들고 춤을 추곤 했는데, 그래서 붙은 별명이 ‘도굿대 춤쟁이’라고 한다. 하나 뿐인 친정 오빠가 6·25 전쟁으로 사망하였는데, 그것이 오랫동안 가슴의 한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1) 강진면 필봉리 ‘삼 삼는 소리’
가창자 : 김효순, 2005. 11. 1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왕대전대 뻗쳐 놓고
이포다리 걷어 부치고
송곳니를 다물고
붕어눈을 부릅뜨고
비빌 치고 베빌 치고
얼씨구나 좋네 정말로 좋네
아니나 노지는 못하리라
 
(2) 강진면 필봉리 ‘베 짜는 소리’
가창자 : 김효순, 2005. 11. 1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베틀을 놓세 베틀을 놓세
오늘도 하심심하니 베틀을 놓세
옥랑간의 베틀을 놓고
구릅잡아 잉애 걸고
무지개 잡아 끄실신 달고
사침대는 니형지요
 
눌림대는 외아들
잉여대는 삼형제요
거리 채발에다
오동나무 보디 집에
대추나무 북에다가
밤에 짜면 월광단
낮에 짜면 일광단
일광단 월광단 다짜서
무슨 놀이를 하여볼까
해남 가신 우리 낭군
도복 한 쌍 지어볼까
 
 
(3) 강진면 필봉리 ‘하하 오라버니’
가창자 : 김효순, 2005. 11. 1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하하 오라버니 히히 오라버니
오늘 장에 무슨 연령 내렸습뎌
노총각 노처녀 장가가고 시집가라고
연령 내렸단다
(노처녀가 좋아라고)
구부랑 당그레 혼삿일로 오셨단다
 
함박 쪽박 어디가 혼삿일로 오셨단다
둥글레 바가치 혼삿일로 오셨단다
흔들레 조리 혼삿일로 오셨단다
 
 
(4) 강진면 필봉리 ‘이 다리 저 다리’
가창자 : 김효순, 2005. 11. 13. 양진성, 양옥경, 오미애 조사
 
이 다리 저 다리
이다리 저다리 각거리
점심먹고 끈꺼진가
어그락 더그락 머그락 책
 
한다리 천다리 귀일날
정지먹고 껑어지고
어그렁 더그렁 무거리 책
 
 
8. 강진면 강진리 한근호 선생의 노래를 모아 정리하였다. 노래에는 모심기 노래와 호미질노래, 밭매는 노래, 청춘가 등을 들 수 있다.
 
(1) 강진면 강진리 ‘모심기 노래’
가창자 : 한근호, 1999. 1. 7.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여-여-여- 여루 상사뒤여
이논 배매다가 모를 심어서 금실 금실 영화로구나
에헤헤야 허으어이
 
 
(2) 강진면 강진리 ‘호미질 노래’
가창자 : 한근호, 1999. 1. 7. 김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에헤헤야 허어이야
여그도 파고 저그도 파고 골고루 파감서 놀아보세
에헤헤야 허으어이
 
 
(3) 강진면 강진리 ‘밭매는 노래’
가창자 : 한근호, 1999. 1. 7. 김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저 건네 산을 바래 보이소
올통봉통 헌 것이 웬일인가이
우리도 죽으므는 저 모냥 되지
 
 
(4) 강진면 강진리 ‘청춘가’
가창자 : 한근호, 1999. 1. 7.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노자 노자 젊어서 노자
늙고 병들면 못노니
젊은 청춘 시절에 먹고 싸고 놀아보세
 
저건네 산을 바래 보이소
올통볼통 헌 것이 웬일인가이
우리도 죽으므는 저 모냥 되지
젊은 청춘 시절에 먹고 싸고 놀아보세
 
 
9. 기타
 
(1) 강진면 이목리 ‘농군 노래’
가창자 : 이귀곤, 1998. 12 .16.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우리는 농사짓는 농군이요
저건네 갈매봉에 비가 담뿍 물어 들어오니
우리 농군은 어서 논밭이나 잘 매세
 
 
(2) 강진면 강진리 ‘청춘가’
가창자 : 권사순, 1999. 1. 7.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올통 볼통에 천암산 보아라
우리도 죽으면 저기 저 모양 되노라
노세 놀아 저젊어 노세
늙고 병들면 유 아니 드라
젊어 청춘에 거드렁 거리고 놀아 보세
 
 
(3) 강진면 이목리 ‘담넘기 노래’
가창자 : 박춘애, 1982. 11. 20. 김익두, 유화수 조사
 
콩하나 숨것다 콩질 넘자
유자 콩질 댐이나 넘자 자몽시라 고부여
유자 탱자 댐이나 넘자 자몽시라 고부여우리 형님 요러케 좋으면 얼마나 좋컷냐
 
 
(4) 강진면 이목리 ‘깡노 깡노 깡놋새야’
가창자 : 박춘애, 1982. 11. 20. 김익두, 유화수 조사
 
깡노깡노 깡놋새야
이웃집이 쌍놋새야
참나무 능금새야
 
이슬밭에 저 각시는
누 간장을 녹일랴고
저리 곱게 생겼는가
내가 무엇이 고와마는
우리 형님 황돌박씨 꽃일레라
 
나비 없는 동산에
꽃이나 피어나 뭣 할소냐
임 없는 요내 방에
요 깔아 놓고서 뭣 할소냐
 
 
(5) 강진면 강진리 ‘모심기 노래’
가창자 : 권사순, 1999. 1. 7.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서마지기 논배미에 모를 심으로 서서 보니
논 갓은 창창하고 사람은 없어 어쩔쏘냐
여그도 꽂고 저그고 꽂고 군데 군데만 꼽아보세
 
 
(6) 강진면 강진리 ‘밭매는 노래’
가창자 : 임정자, 1999. 1. 7. 김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이러다 저러다 날 죽어 지면은
언제 친구가 날 찾아 오는가
 
못다 맬 밭 다 맬라면
금붕채를 잃고나 간다
 
(7) 강진면 이목리 ‘밭매는 노래’
가창자 : 박춘애, 1982. 11. 20. 김익두, 유화수 조사
 
메: 방실 방실 웃는 애기 못다 보고 해 다지네
받: 지는 해로 못보며는 불 써 놓고 다시 보세
 
메: 못다 맬 받 다 맬라다 금붕채를 일고 가네
받: 전주 송방 다 팔어도 금봉채 하나 내 당험세
 
메: 밭은 매서 불을 담고 논은 매서 물을 담세
받: 굵은 지심은 묻어 놓고 잔 지심은 띄워를 놓세
 
메: 이골 저골을 어서나 매고 임의 골로 맞아 들세
받: 이 밭골을 얼른 매고 우리 귀동자 젖주러 가세
 
 
(8) 강진면 이목리 ‘밭매는 노래’
가창자 : 이금옥, 1998. 12. 16.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이골 저골 어서나 매고
우리 귀남자 젖주라 가세
 
 
(9) 강진면 이목리 ‘밭매는 소리’
가창자 : 박수녀, 1998. 12. 16.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방에로 가면 시어머니 웬수
정지로 가면 시누 애기씨가 웬수고
밭으로 가면 바라구가 웬수구나
어쩔거나 이놈의 신세를 어쩔거나
 
울이나 어뜨럭 밑에 쇠코나 쥔네 (쇠코같은 주인네)
고개나 한 번 떨썩 이고서
동쪽에서 뜨는 해는 서쪽으로 넘어 간다네
 
이골 저골 어서나 매고
우리 귀남자 젖주러 가세
 
 
(10) 강진면 이목리 ‘밭매는 노래’
가창자 : 최귀네, 1998. 12. 16.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고사리 끈 꺼 지둥 세우고
쾌춤 끈 꺼 상랑 연져
때짱으로 지붕이어
 
흙으로 밥 삼고
쉬포리로 벗을 삼고 나는 하질이네
 
 
(11) 강진면 강진리 ‘시집살이 노래’
가창자 : 권사순, 1999. 1. 7.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뺏골 같이 지신 발을 나 혼자만 다매랑까
못다맬 밭 다 맬라다 금붕채를 잃었구나
서산에 해는 지고 금붕채를 찾을 라니
금붕채는 아니 있고 서산에 해만 졌네
 
집이라고 해망 태망 걸어오니
시누애기 부엌에서 불 때다가 내다봄서
너 이리오라 이년 딴질갔다 인자 오냐
 
시어머니 방에서 반만 열고 내다보니
에라 요년 당장에 돌아서라
딴질 갔다 오는 년은 못 받아 들인다
 
 
(12) 강진면 강진리 ‘시집살이 노래’
가창자 : 유금순, 1999. 1. 7.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산도 보니 보든 산이요
물도 보니 보든 물이요
울 어마니를 불러보니 대답이 없네
산천초목이 대답을 허네
 
 
(13) 강진면 이목리 ‘시집살이 노래’
가창자 : 서인금, 1998. 12. 16.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무시를 먹고 무심헌 님아 냉수를 먹고 냉정한 님아
생각을 먹고 생각을 히보소 마늘을 먹고 말 한마자리 히여보소
알짱같은 굽은 길로 내가 돌아 감세
 
가면 가고 말면은 말았제
네 잡놈 따라서 내가 돌아 갈까
 
금반지 손에 찌고 호미짜리 들쳐메고
바라구 지심이나 메러 갈까
 
지심 밭을 빽꼭같이 메시다가
집이로 가면 시누 웬수 방이로 가면 시어마니 웬수네
 
물레야 물레 뱅뱅뱅 돌아라
순창읍내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돈디
우리집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돈다
 
옷이랑 머리다 춤발다 비고
청치매 자락에 약주병 달고
 
오동나무 숲속에 임마중 가세
어쩌를 헐거나 내 신세를 어쩌를 헐거나
 
 
(14) 강진면 이목리 ‘물레질 노래’
가창자 : 이금옥, 1998. 12. 16.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물레장 파랑장 자구레 섯대 궁굴고
석수쟁이 마친가락 백오동에 걸린가락
소리좋다 정가락
 
 
(15) 강진면 이목리 ‘베틀노래’
가창자 : 이금옥, 1998. 12. 16. 이창선, 김영언, 양진환 조사
 
오늘도 하 심심하야 베틀이나 놓아볼까
낮에 짜면은 일광단이요, 밤에 짜면은 월광단이라
일광단 월광단 다짜 모아서 우리낭군 저고리나 지어볼까
 
베틀 다리는 사형지 잉어 때는 삼형지
올라간다 나 사래 내려온다 억산때
억산때는 어디가고 난사래는 일허느냐
 
⑯ 강진면 이목리 ‘베짜는 소리’
가창자 : 장수연, 2004. 6. 4.
 
오늘도 한심하야 베틀이나 놀아볼까
베틀노래 사랑노래 베짜는
아가씨 수심만지누나
 
 
(16) 강진면 이목리 ‘사별가’
가창자 : 68세 할머니, 1982. 11. 20. 김익두, 유화수 조사
 
하늘같은 서방님이
태산 같은 병이 들어
치마를 팔아 비녀를 팔어
전라도 농토를 다 팔아다가
 
제일 약국 약을 지어
적노화로에 올려 놓고
몹쓸여러 잠이 들어
서방님 숨 간 줄을 나는 몰랐네
 
천리라도 따라를 가요
만리라도 따라를 가요
임 죽고 내가 살아 열녀가 되냐
한강수라 깊은 물에 빠져나 죽잔다.
【향토사】 강진의 역사와 문화
• 18. 강진의 주요축제
• 19. 강진의 구비문화
• 20. 강진의 민담과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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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