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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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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리 관경재(觀敬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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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관경재
【향토】
(2024.01.02. 23:46) 
◈ 안하리 관경재(觀敬齋)
이 재실은 지사면 안하리 매남 동쪽 언덕너머 관기리 쪽 기슭에 외따로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2개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선조 이덕겸(李德謙)의 재실로 성주 이씨 문중에서 1800년(?)에 세웠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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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리 관경재(觀敬齋)
 
이 재실은 지사면 안하리 매남 동쪽 언덕너머 관기리 쪽 기슭에 외따로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2개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선조 이덕겸(李德謙)의 재실로 성주 이씨 문중에서 1800년(?)에 세웠다.
 
 
 
 

1. 안하 관경재기(記)

 
관경재(觀敬齋)는 대방(남원)의 연주산(聯珠山) 아래 안화리 증사역원정 이덕▣의 재실이다. 공은 고은(孤隱) 선생의 후손으로 대대로 유학을 행하며 의로 은거하면서 천령의 백운산 중에서놀고 즐기면서 영화를 구하지 않아서 당시의 사람들이 백운처사라고 불렀다. 청초하고 단아함으로 잡고 기리고 있는 즉 물결이 도도히 흐르듯이 한가로이 세월을 보냈다. 만년에 가족들을 이끌고 안화로 들어가 후진들을 교육하는데 힘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생을 마칠 때까지 하였으므로 그 자손들이 여기에 거하였다.
 
다만 빈궁하거나 고독하였으나 가업을 떨쳤다. 경신년에 후손 종효 종호 등이 힘을 모으고 재물을 합쳐서 산아래 있는 수간의 누각을 보수하였으나 백성들이 이를 넘어뜨리고 달아났다. 5년 갑자년 겨울에 종호가 나에게 종친이 이 일을 알고 나에게 이를 기록하여 후일에 이를 기리고자하였다.
 
『역경』에 이르기를 <관>은 세수를 하고 제사를 올리지 아니한다는 까닭은 신명을 응접하는 방도이기 때문이고, 『시경』에 이르기를 ‘어버이가 심으신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하느니’라고 하였으니 선조에게 은덕하는 재(齋)이기 때문이다. 화수의 즐거움을 잘하고 모여서 새로이 상로지감(霜露之感)에 이르러 처사공의 유적을 흠모하고 대대로 지켜 낸 즉 안화 한의 주원 장차 백세를 가리켜 기록하노라. 종가 후학 도준(道浚) 삼가 쓰다.
 
 

1.1. 記

 
觀敬齋在帶方之聯珠山下安和里 贈司譯院正李公德▣之墳菴也 公以孤隱先生之後孫 世襲儒行隱居行義於天 嶺之白雲山中 玩樂墳典不求榮弟 旹人稱之曰白雲處士 其淸操雅望 卽 以激厲頹俗也 晩年挈家入安和 卽發育後進 力學不倦 怡然自得 以終其身子孫因以居焉 但貧窮孤獨 世以振厥家 業 庚申春后後孫鍾孝鍾浩等 合力鳩財 結構數間屋子於山下 以瓦覆之越 五年甲子冬 鍾浩以余爲同宗而知公之事甚詳 請余文以記之 余斂袵而後 曰易曰觀盥而不薦 所以接神明之道也 詩云維桑與梓 必恭敬止 所以恩先祖之齋也 是齋也 春而會花樹之樂 秋而致霜露之感 能慕放處士公之遺謨 世守而勿失 則一逼安和與漢之凋元▣將幷▣指百世是爲之記
 
宗家後學道浚謹記
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관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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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