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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참여콘텐츠
(총 98319 개) [모두보기]
◈ 인기순 (1 ~ 4 위)
2024.01.18
1.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사단 군인과 제주마 얽힌 사연
【문화】 한국전쟁 영웅 제주마-1 전북 임실 문화원장을 지낸 최성미 원장(76세)이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원장의 딸이 서울 송파에 사는데, 주소를 물어보니 필자 집과 아주 가까웠다. 필자는 새마을 시장 입구 작은 카페에서 최 원장을 신현근 대표와 같이 만나 차를 마셨다. 헤어질 시간 무렵에 필자가 지나가는 말로 “원장님! 내일 시간이 나면 바람을 쐬러 연천을 구경 가실까요?”하고 물었다.
2024.03.06
제주 사려니의 삼나무 숲
【관광】 제주 사려니 숲을 걸어보았다. 비를 맞는 삼(杉)나무가 쭉쭉 뻗은 곳에 무장애 데크길을 걸어보니 피톤치트가 더 많은 것 같다.
2024.05.22
【이순신해전항로탐사(6)】충무공 이순신 장군 49해전 항로 탐사 출정식
【문화】 22일 여수항 출항에 앞서 이순신광장에서 개최 충무공 이순신 장군 49해전 항로 탐사대(대장 이효웅)가 남해안 해전 현장을 요트로 탐사한다. 탐사대는 20여 일의 일정으로 돛을 이용해 임란 이후 처음으로 남해안 임란 전적지 해로 탐사에 나선다. 이순신 해전 전적지 항로 탐사에는 탐사대장 이효웅씨, 요트 율리안나(Juliana)호 선장이자 스키퍼 조원옥씨, 탐사 대원 오문수, 궁인창, 김낙현, 김연빈,박석룡 대원 등 7명이 의기투합해 나선다.
2024.01.05
오수 주천리 화락정(和樂亭)
【향토】 화락정은 오수면 주천리 마을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주천리 노산아래에 자리 잡은 화락정은 현풍곽씨 문중에서 마을의 부노(父老)들이 서로 모여 저수지 위에 높고 시원한 땅을 골라서 물가 쪽에 돌을 쌓고 정자 하나를 세우고서 화락정(和樂亭)이라고 이름 하였다.
◈ 등록순
2024.05.22
【이순신해전항로탐사(6)】충무공 이순신 장군 49해전 항로 탐사 출정식
【문화】 22일 여수항 출항에 앞서 이순신광장에서 개최 충무공 이순신 장군 49해전 항로 탐사대(대장 이효웅)가 남해안 해전 현장을 요트로 탐사한다. 탐사대는 20여 일의 일정으로 돛을 이용해 임란 이후 처음으로 남해안 임란 전적지 해로 탐사에 나선다. 이순신 해전 전적지 항로 탐사에는 탐사대장 이효웅씨, 요트 율리안나(Juliana)호 선장이자 스키퍼 조원옥씨, 탐사 대원 오문수, 궁인창, 김낙현, 김연빈,박석룡 대원 등 7명이 의기투합해 나선다.
2024.05.18
고성군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고성군】본래 고구려의 달홀(達忽)인데, 진흥왕(眞興王) 29년에 주(州)를 삼고 군주(軍主)를 두었으며, 신라에서 고성군으로 고쳤는데,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르고(겸임한 일은 杆城에 있다),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별호는 풍암(豐巖)이라 한다. 속현(屬縣)이 1이니, 안창(安昌)이다.(속설에 옛 이름은 麻用이라 한다)
2024.05.18
인제현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인제현】본래 고구려의 저족현(猪足縣)인데(烏斯回라고도 한다), 신라에서 희제현(稀蹄縣)으로 고쳐 양록군(楊麓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에서 인제현(麟蹄縣)으로 고치어, 처음에는 춘주(春州)에 붙이었다가, 뒤에 회양(淮陽)에 붙였고, 공양왕(恭讓王) 원년 기사(己巳)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르다가, 태종(太宗) 13년 계사(癸巳)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칭하였다.
2024.05.18
양구현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양구현】본래 고구려의 양구군(楊口郡)인데(要隱忽次라고도 한다), 신라에서 양록군(楊麓郡)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양구현(楊溝縣)으로 고쳐서 춘주(春州) 임내로 하였다가, 예종(睿宗) 원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자세한 것은 狼川에 있다)
2024.05.18
낭천현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낭천현】본래 고구려의 생천군(狌川郡)인데(也尸買라고도 한다), 신라에서 낭천군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 춘주(春州) 임내로 하였다가, 예종(睿宗) 원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어 옛 양구(楊口)를 겸임하게 하였는데, 본조 태조(太祖) 2년 계유(癸酉)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으로 고쳤다.
2024.05.18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춘천도호부】본래 맥국(貊國)의 땅인데, 신라 선덕왕(善德王) 6년에 우수주(牛首州)로 하였고(곧 당나라 太宗 貞觀 12년인데, 文武王 13년에 首若州를 두었다고도 한다), 경덕왕(景德王)이 삭주(朔州)로 고쳤다.(首次若이라고도 하고, 烏根乃라고도 한다)
2024.05.18
울진현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울진현】본래 고구려의 우진야현(于珍也縣)인데, 신라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군(郡)으로 하였고, 고려에서 울진현이라 일컬었으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현의 사람들이 전하기를, “옛 이름은 半伊郡, 또는 仙槎郡이었다” 한다)
2024.05.18
평해군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평해군】본래 고구려의 근을어(斤乙於)인데, 고려에서 평해군(平海郡)으로 고쳤고, 현종(顯宗) 때에 예주(禮州) 임내를 삼았다가, 명종(明宗) 2년 임진(壬辰)에 비로소 감무를 두고, 충렬왕(忠烈王) 때에 토성(土姓)의 첨의평리(僉議評理) 황서(黃瑞)가 임금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서, 임금을 모시고 돌아온 공으로 인하여 지평해군사(知平海郡事)로 승격하였는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2024.05.18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삼척도호부】본래 실직국(悉直國)인데, 신라 파사왕(婆娑王) 때 내항(來降)하였다. 지증왕(智證王) 6년에 주(州)로 하였고, 경덕왕(景德王)이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군(郡)으로 하였다. 고려 성종(成宗) 14년에 척주 단련사(陟州團練使)로 고쳤고, 현종(顯宗) 9년 무오에 현령(縣令)으로 강등시켰으며(宋나라 太宗 大中祥符 11년), 홍무(洪武) 10년 정사(丁巳)에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2024.05.18
금성현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금성현】본래 고구려의 모성군(母城郡)인데, 신라에서 익성군(益城郡)으로 고쳤고, 고려 현종(顯宗) 9년 무오(戊午)에 금성현으로 고쳐서 교주(交州) 임내로 하였다가, 예종(睿宗) 원년 병술(丙戌)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고, 뒤에 현령으로 하였는데, 본조에서 그대로 따랐다. 별호는 금양(金壤)이다.
2024.05.18
홍천현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홍천현】본래 고구려의 벌력천현(伐力川縣)인데, 신라가 녹효(綠驍)로 고쳐 삭주(朔州)의 영현으로 하였고, 고려 현종(顯宗) 9년 무오(戊午)에 홍천으로 고치어 이전처럼 춘주(春州) 임내로 하였는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별호는 화산(花山)이다. 임내(任內)는 사이암장(寺伊巖莊)이다.
2024.05.18
횡성현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횡성현】본래 고구려의 횡천(橫川;於斯買라고도 한다)인데, 신라에서 황천(潢川)으로 고쳐서 삭주(朔州)의 영현(領縣)으로 하였고, 고려에서 다시 횡천으로 하여 그대로 춘주(春州) 임내로 하였다가, 뒤에 원주(原州)에 붙였고, 공양왕 원년 기사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2024.05.18
영월군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영월군】본래 고구려의 내생군(柰生郡)인데, 신라 때에 내성군(柰城郡)으로 고쳤다. 고려 때에는 영월군으로 고쳐서 원주 임내로 하였다가, 공민왕(恭愍王) 21년 임자(壬子)에 향인(鄕人) 연달마실리원사(延達麻實里院使)가 경사(京師)에 있으면서
6 (+2) | 영월군
2024.05.18
원주목
【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원주목】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인데, 신라 문무왕(文武王)은 북원소경(北原小京)을 두었고, 고려 태조(太祖) 23년 경자(庚子;晉나라 高祖 天福 4년)에 원주로 고쳤다. 현종(顯宗) 9년 무오(戊午;宋나라 眞宗 天禧 2년)에는 지주사(知主事)를 두었고,
2024.05.18
평창군
【인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강원도 > 평창군】본래 고구려의 욱오현(郁烏縣)인데(于烏懸이라고도 한다), 신라에서는 백오(白烏)로 고쳐서 내성(柰城)의 영현(領縣)으로 하였고, 고려에서는 평창현으로 고쳐서 원주(原州)임내로 하였다가, 충렬왕(忠烈王) 25년 기해(己亥;元나라 成宗 大德 3년)에 비로소 현령(縣令)을 두었다.
5 (+1) | 평창군
2024.05.18
정선군
【인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강원도 > 정선군】본래 고구려의 잉매현(仍買縣)인데, 신라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명주(溟州)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顯宗) 9년 무오에 그대로 임내로 하였다가, 뒤에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별호는 삼봉(三鳳)·주진(朱陳)·도원(桃源)이라 한다.
2024.05.18
【인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강원도 > 양양도호부】본래 고구려의 익현현(翼峴縣)인데(伊文縣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에 익령(翼嶺)이라 고쳐서 수성군(守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고종(高宗) 8년 신사에 글안 군사를 잘 막았다 하여 양주 방어사(襄州防禦使)로 승격하였으나(南宋 寧宗 嘉定 14년), 44년 정사에 적에게 항복한 까닭으로 덕녕감무(德寧監務)로 강등하였고(南宋 理宗 寶祐 6년),
2024.05.18
【인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강원도 > 강릉대도호부】 본래 예(濊)의 고국(古國)인데(鐵國이라고도 하고, 濊國이라고도 한다), 한나라 무제(武帝) 원봉(元封) 2년에 장수를 보내어 우거(右渠)를 치고 사군(四郡)을 정할 때에 임둔(臨芚)이라 하였다. 고구려에서는 하서량(河西良;일명 河瑟羅)이라 일컬었고, 신라 선덕왕(善德王)은 소경(小京)을 두었다.
2024.05.18
강원도
【인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강원도】 강원도(江原道)는 본래 예맥(濊貊)의 땅인데, 뒤에 고구려의 소유로 되었다. 고려 때에 이르러 영동(嶺東)은 성종(成宗) 14년 을미(宋나라 太宗 至道 元年)에 삭방도(朔方道)라 불렀고, 명종(明宗) 8년 무술(宋 孝宗 淳熙 6)에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라 불렀으며, 원종(元宗) 4년 계해(宋 理宗 景定 4)에 강릉도(江陵道)라 불렀었다.
21 (+1) | 강원도
2024.05.02
정순왕후가 잠든 사릉에서 전통 소리 명상의 매력에 빠지다
【문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소장 김용욱)는 5월 16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사릉(경기 남양주시)에서 옛 왕들이 즐겨 듣던 정가와 거문고 연주를 들으며 명상을 즐기는 ‘쉼, 사릉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다’를 개최한다.【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
▣ 참조 카달로그
◈ 주요 언급 키워드
남북국 시대 (4) 백과 후삼국 (4) 백과 삼국 시대 (3) 백과
◈ 참조 키워드
서울 특별시 (26) 백과 신라 (10) 백과 북한 (8) 백과 고려 (7) 백과 제주특별자치도 (7) 백과 경상 북도 (6) 백과 고구려 (6) 백과 강원도 (5) 백과 발해 (5) 백과 경주시 (4) 백과 백제 (4) 백과 평안 남도 (4) 백과 평안 북도 (4) 백과 함경 남도 (4) 백과 함경 북도 (4) 백과 황해도 (4) 백과 후백제 (4) 백과 남제주군 (3) 백과 대한 제국 (3) 백과 서귀포시 (3) 백과 울산 광역시 (3) 백과 일제 강점기 (3) 백과 전라 북도 (3) 백과 조선 (3) 백과 조선 (3) 충청 남도 (3) 백과 3·1 운동 (2) 가야 (2) 백과 강동구 (2) 백과 강북구 (2) 백과 경상 남도 (2) 백과 경주 노동리 고분군 (2) 백과 고종,조선 (2) 관악구 (2) 백과 관악산 (2) 백과 광진구 (2) 백과 김종서 (2) 백과 남산 공원 (2) 덕수궁 (2) 백과 도봉구 (2) 백과 동대문구 (2) 백과 서울특별시 양천구 (2) 백과 세계 (2) 백과 아시아주 (2) 백과 안창호 (2) 백과 옥저 (2) 백과 용산구 (2) 백과 울산 공업 단지 (2) 백과 윤관 (2) 백과 이동녕 (2) 백과 이승만 (2) 백과 제주시 (2) 백과 중구 (2) 백과 중랑구 (2) 백과 충청 북도 (2) 백과
▣ 백과사전
아시아 대륙 동북부에 자리잡고 있는 민주 공화국. 줄여서 한국이라고도 한다. 대륙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반도와 약 3,418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위도상으로는, 북부 끝은 북위 43°00′39″(함경 북도 온성군 유포진 북부 끝), 남부 끝은 북위 33°06′40″(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 남부 끝), 동부 끝은 동경 131°52′42″(경상 북도 울릉군 독도 동부 끝), 서부 끝은 동경 124°11′0″(평안 북도 용천군 마안도 서부 끝)으로 되어 있다. 북쪽은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하여 중국 동북 지방과 소련 의 연해주에 이웃해 있다. 그리고 동·남·서쪽은 각각 동해, 남해, 황해에 마주해 있다.
 
남한과 북한의 사이에는 중동부에서는 북위 38°선 이북, 서부에서는 북위 38°선 이남으로 길이 155 마일(약 250km)에 이르는 군사 분계선 이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분계선을 따라 남북 양쪽 2km의 지역을 비무장 지대로 설정하여 완충 지대로 하고 있다.
 
 
면적 : 총면적 22만 1,262㎢ 남한 면적 9만 9,273.70㎢
인구 : 총인구 6,529만 명(1990년) 남한 인구 4,352만 199명(1990년 11월)
수도 : 서울
공용어 : 한국어
화폐 : (단위)원
 

자연

한반도 북부에는 높은 산들이 많은 데 비하여 남부는 비교적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반도 북부와 동북부는 고산성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북부 국경에는 백두산을 주봉으로 하는 장백 산맥이 뻗어 있다. 반도의 등줄기 격인 낭림· 태백 산맥이 동해에 가깝게 길게 뻗어 내려 지형은 동쪽이 가파른 비탈을 이루고, 서쪽은 경사가 완만하며 낮은 산지 와 분지들이 있다.
 
압록강, 대동강, 한강, 금강, 낙동강 등 큰 하천의 중·하류 유역에는 넓은 충적 평야가 발달 되어 있다.
 
반도 황해안과 남해안의 해안선은 매우 복잡하며 연안에는 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기후는 네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며, 온대 계절풍 기후를 나타낸다. 태백 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남·북과 동·서의 기후차가 심하고, 겨울철에는 삼한 사온 현상이 나타난다. 연강수량의 50~60%가 6~8월 사이에 내린다.
 

주민

우리 나라는 한민족만으로 이루어진 단일 민족 국가이다. 고대 알타이족 가운데 일부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언어는 알타이 어족의 한 갈래인 한국어를 쓰고, 문자는 우리의 고유 문자인 한글을 쓰며 한자도 아울러 쓰인다. 종교는 국교가 따로 없고, 유교, 불교, 카톨릭교, 크리스트교 및 천도교, 대종교 등을 자유로이 믿는다.
 

역사

한민족은 이미 50만 년 전부터 한반도 곳곳에서 살아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석기 시대의 씨족 집단에서 군장 국가로, 군장 국가에서 연맹국인 고조선이 이루어졌다.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이 망한 뒤 여러 연맹 왕국 시대를 거쳐 1세기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대 국가가 차례로 일어났다. 6세기 중엽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으나 다시 후삼국으로 갈라졌다.
 
918년에 고려가 일어나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불교에 바탕을 둔 귀족 사회의 민족 문화 를 꽃피웠다.
 
14세기 말에 접어들어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어 유교를 바탕으로 한 민족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조선은 근대에 이르러 러시아, 청나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림을 받다가 1910년에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일제의 주권 강탈 이후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항일 독립 운동을 벌여 오던 중, 1945년에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함으로써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미군과 소련군이 북위 38°선을 경계로 나누어 점령함으로써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대한 민국 정부 수립

1948년 8월 15일에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서 대한 민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북위 38°선 이북에는 공산 정권이 세워져 그들에 의해 1950년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이후 1960년에 제2 공화국, 1963년에 제3 공화국, 1972년에 제4 공화국, 1980년에 제5 공화국을 거쳐 발전을 거듭해 오다가 1988년에 제6 공화국이 시작되어 민주 복지 국가 건설을 위해 힘쓰고 있다.
 

정치

1945년 8·15 광복 후 미군 군정 시기를 거쳐 1948년에 ‘대한 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그 해 8월 15일에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두 차례의 헌법 개정을 거치면서 정치적인 혼란을 되풀이하다가, 4·19 의거에 의해 제2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제2 공화국은 국민들의 바람에 따라 의원 내각제의 정부 형태로 출발했으나 공공 질서의 문란과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5·16 군사 혁명을 맞게 되었다. 5·16 군사 혁명 후 과도기적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 제3 공화국은 문란해진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정국 안정의 바탕 위에서 기간 산업 육성을 위한 경제 개발 사업을 추진하였다. 10월 유신 후의 제4 공화국에서는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국토 종합 개발과 경제 개발을 추진하면서 근대화에 힘썼다. 또 외교면에서는 자주적 의지가 반영된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리하여 제6 공화국 출범 후인 1991년 9월 18일, 온 국민의 숙원이었던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경제·산업

우리 나라가 근대화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이후 휴전이 성립되고 부터이다. 초기에는 전쟁으로 입은 해를 복구하는 사업이 주가 되었고,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 개발 계획과 국토 종합 개발 계획 사업을 강력히 밀고 나가 근대화의 기초를 성공적으로 이루게 되었다. 1970년에는 국가 기간 고속 도로를 건설한 것을 비롯하여 산업의 공업화에 온 힘을 기울여 마침내 신흥 공업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공업은 수출 산업인 섬유, 전자, 잡화를 비롯하여 석유 화학, 철강, 조선 등 중화학 공업까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농업은 1970년대 이래 다수확 품종을 개발 보급함으로써 쌀 생산을 자급 자족 단계에까지 끌어올려 놓았다. 수산업 도 연근해 어업, 양식업이 활기를 띠었을 뿐만 아니라, 원양 어업에까지 나서게 되었다. 무역은 합판, 생사, 면직물, 전자 제품 등을 수출하고 공업 원료, 기계, 화학 약품 등을 수입하고 있다.
 

사회

1960년대 이후 1970년대까지는 근대화, 산업화로 경제 규모의 성장에만 힘을 기울였던 시기이다. 당시로서는 사회 복지 정책은 사회 보험적 성격을 띤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적극적인 복지 정책으로 고용과 취업의 기회를 늘리고, 국민의 소득 수준을 올려 놓는 데 힘썼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경제 발전의 바탕 위에 모든 사람이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복지 국가 건설을 국가 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문화

교육

교육 제도는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홍익 인간(弘益人間)의 교육 이념 아래 민주 교육의 제도가 확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학제는 초등 교육 6년, 중등 교육 전기 3년(중학교 과정), 중등 교육 후기 3년(고등 학교 과정), 고등 교육 4년(대학 과정)으로 되어 있다. 그 밖에 2년제 전문 대학이 있고, 4년제 대학 과정을 마치고 진학할 수 있는 대학원이 있다. 의무 교육 연한은 초등 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으로 모두 9년간으로 확정되어 있다. 1991년 1월 현재 전국의 주요 학교 수는 초등 학교 6,335개교, 중학교 2,474개교, 인문계 고등 학교 1,096개교, 실업계 고등 학교 587개교, 전문 대학 117개교, 교육 대학 11개교, 대학(교) 107개교가 있고 그 밖에 여러 특수 학교들이 있다.
 

보도 기관

1960년대 이후 산업, 교육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보도 기관 도 크게 발전하였다. 1990년 8월 말 현재 우리 나라의 일간지는 모두 78개지에 이르게 되었다. 방송 부문은 1980년에 방송 의 공영화에 따라 전국 방송망은 한국 방송이 주도하고 있다. 그 외에 기독교 방송을 비롯해 평화 방송, 극동 방송, 아세아 방송, 불교 방송, 교통 방송, 서울 방송이 있다. 그리고 통신사로는 전국의 신문사와 방송사가 공동으로 설립한 ‘연합 통신’과 공산권에 관한 뉴스를 전문으로 다루는 ‘내외 통신’이 있다.
 

스포츠

1963년 제3 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스포츠 진흥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고부터 국내 스포츠계는 차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1970년의 제6회 방콕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한 이래, 1978년의 방콕 대회를 거치는 동안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특히 1976년의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에서는 레슬링 부문에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2년의 제9회 뉴델리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28개의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아시아권의 스포츠 3강에 들게 되었다. 또한 1984년의 제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회에서는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를 차지해 종합 순위 10위를 기록하였다. 이에 힘입어 1986년의 제10회 아시아 경기 대회와 1988년의 제24회 올림픽 대회 를 개최하기에 이르렀고, 서울 올림픽 대회에서는 23개 전 종목에 출전하여 양궁, 레슬링, 탁구, 복싱, 유도, 핸드볼, 역도, 하키, 사격, 체조 등의 부문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차지하여 종합 순위 4위라는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다. 특히 국기인 태권도를 세계 여러 나라에 보급시켜 오던 중, 1973년에는 세계 태권도 연맹을 창립하여 95개국에 보급하는 등,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권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86년의 서울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8체급에서 7개의 금메달을 땄고,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경기 대회에서는 시범 종목으로 경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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