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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방(模倣)에서 창조(創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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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2.7~8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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模倣에서 創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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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문학 건설에 자(資)할 신제창(新提唱)’이라고 한 편집자의 이 시제(示題)가, 두고 곰곰이 새김질을 해보면 수월찮이 의뭉스런 소리인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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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조선의(춘향전이나 심청전이나 또는 추월색 같은 것은 말고) 진정한 문학을 새로이 건설한다는 의사(意思)의 전제가 없이는 그에 자할 신제창을 묻고자 할 내력이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조선의 문학을 새로이 건설한다는 의사의 배후에는 따라서 시방 조선에 조선문학이 있 지를 않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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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방 조선에 조선문학이 없다는 단(斷)을 나는 의뭉하다 한 것이요, 의뭉한 그 단정을 또한 나는 동감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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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하여 시방 조선에 조선문학이 있지를 않다고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나는 조선문학이 없기는 커녕 단지 ‘문학’도 아직은 없다고 감히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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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횡포한 방언(放言)이라 하여 혹은 모욕을 느끼고 분개할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사실이 사실인데야 그를 지적하는 자에게만 허물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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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도 물론 함께 쓸어넣고) 크게는 춘원(春園)을 비롯하여 유상무상(有象無象)의 중견들이며 최근의 최신진까지 모조리 시험대에 올려 놓고서 오늘날 조선문단이라는 것을 두루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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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0여 년을 두고 그러했고, 시방도 다달이 잡지에 날마다 신문에 무시(無時)코, 단행본으로 문학이라는 이름 밑에서 소설이라는 것들이 부절히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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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소설이라는 것’들이 어느 것 하나고 우선 한개의 완성된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되어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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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조선문단에서는 최고수준을 보지하고 있다는 춘원의 제작(製作)을 비롯하여 30년을 두고 씌어져 나온 수천 편의 작품들——가령 일부에서 쩍하면 떠받고 나오는 민촌(民村)의『고향』이나 또는 태준(泰俊)과 효석(孝石)의 대표적인 몇몇 단편이 나를 놓고 우리의(즉 後進의) 궁극적 목표요 동시에 비교의 대산인 구라파의(즉 先進의) 대가들의 작품과를 견주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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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가 질에 있어서 차(差)가 말도 아닌 것은 물론이거니와 후자라야만 비로소 ‘되어진 문학’이라는 것이 억지가 아닐진대 전자가 제아무리 울안에서는 큰소리를 쳐도 실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유사물(小說類似物)’이요, 따라서 ‘문학 이전(以前)’에 속했음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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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도화임본(圖畵臨本)을 놓고 그린 소학교 아동의 ‘도화(圖畵)’와 밀레나 세잔느의 ‘그림’과를 비교할 때에 생기는 미술 이전인 것과 미술인 것과의 차이여서, 양자의 예술적인 질적 우열은 사실상 문제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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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10년 전에 한참 평론가로 쟁쟁하던 양주동(梁柱東) 씨는 당시 조선의 문학을 작문(作文)이라고 호통을 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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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해서 한동안 물의가 컸었고, 한데 그 문구를 다시 빌어다가, 아직도 조선에서 시방 문학이라고 일컫는 것은 작문의 역(域)을 넘지 못했다고 해도 그다지 무실(無實)한 악담은 아닐 것이다. 악담이 아니요, 일변 그것이 우리네 작가들의 무능만이 허물이 아닌지라, 손가락으로 코를 풀어 기차의 걸상에다가 씨는 것과 같은 그런 수치로 여길 필요야 없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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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그렇듯 문학 이전인 ‘소설 유사물’이 또한 아롱이다롱이요 파 계(派系)가 구구하다. 해서 독자의 색채도 선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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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누구는 체홉이나 도스또예프스끼를 본받느라고, 그들의 작품에서는 노(露)문학의 영자(影子)가 얼찐거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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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누구는 포우나 발자끄를 본받느라고, 그들의 작품에서는 불문학의 냄새가 스미기도 한다.(더우기 몇몇은 세기의 위선자 지드를 일일삼백배(一日三百拜)하는데 아직 그네의 이름으로「콩고행기(行紀)」와 같은 ‘정복자의 글’은 나오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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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누구누구는 영문학의 또는 독문학의 자취를 제작기 더듬고 있고 그리고 많이는 어느결에 (의식코 혹은 무심코) 큰스승도 아닌 동경일문학(東京日文學)에 빠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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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러나 적수(赤手)의 후진으로 면하기 어려운 숙명이며, 차라리 시비(是非)의 피안지사(彼岸之事)라고는 하겠으나 좌우간 그걸로 해서 조선의 문학은 독자의 성격도 없이(출생 후 오늘날까지) 문학의 전야 (前夜)에 처하여 그 색채 희미한 ‘소설 유사물’로 행세를 하고 있는 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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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시방 우리에게는(편의상 소설이니 문학이니, 또는 부득이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만)소설이 아니라 ‘소설 유사물’이 있을 뿐 성격도 색채도 없이 문학 이전이요, 아직 문학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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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문학이 아니며 ‘조선문학’이 없을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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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게 비록 문학 이전인 무성격한 ‘소설 유사물’이기는 할값에, 그것이 조선의 현실에서 취재한 것을 문학적 세계를 삼아 조선사람이 조선말로 쓴 것인 한 조선문학일 수 있는 일면적 조건을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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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면서도 그것은 단지 ‘조선사람이 조선말로 조선의 이야기를 쓴 소설’인 데 그칠 따름이지 결단코 그것이 바로 조선문학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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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것은 조선적인 문학적 개성이 거기에 성격과 색채를 갖추고 들어차서 있지 않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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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문학이 진실로 노문학인 소치는 그것이 노서아의 현실을 문학적 세계를 삼아 노서아말로 씌어졌다는 단지 재료적인 데 가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다른 불문학이나 영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노서아적인 독자 독특한 성격과 색채를 가진 문학적 개성을 지니고 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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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불문학이나 영문학이나 독문학이 역시 다 그러하여 그들은 제가끔불란서면 불란서적인 영국이면 영국적인 독일이면 독일적인 독자 독특한 성격과 색채를 가진 문학적 개성을 지니고 있고,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문학의 세계에 있어서 제각기 한 영역씩을 차지하고 앉아 자기를 주장할 자격과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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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조선의 문학도 그가 참으로 ‘조선문학’이자면 조선적인 독자 독특한 성격과 색채를 가진 문학적 개성을 체득하여야만 하고 그리함으로써 비로소 세계문학과 오(伍 )하여 자기를 내세우되 굽힘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러나 결코 한두 사람의 조그마한 천재나 하루 이틀의 시간으로 이루어질 것은 아니다. 그 좋은 예를 일본 내지문학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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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지문학은 그가 조선의 문학보다는 나은 문학적 전통을 가졌고,사회적 제현실과 조건이 문학을 기르기에 유리했고, 그러했으면서도 명치(明治)의 신문학 이래 장근(將近) 1세기로되 그는 아직도 세계문학과 어깨를 겨루어 자기를 똑똑하게 주장하도록 일본문학다운 문학적 개성을 완전히 체득하지를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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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것을 전통으로든지 문학의 성장에 필요한 현실적 제조건으로든지 연조상(年條上)으로든지 훨씬 불비(不備) 불리하고 뒤떨어져 있어 이제 겨우 문학의 전야(前夜)에 처한 조선의 문학이 시방 단꺼번에 세계적 수준을 만질 ‘조선문학’의 달성을 의욕한다는 것은 아무리 하여도 일종의 허욕이 아니면 초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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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더러 굳이 소감은 말하라고 한다면 ‘조선문학’의 건설이니 그에 자할 새로운 이론의 제창이니는 오히려 조급한 소리요, 더우기 작가로 앉아서는 소설 아닌 ‘소설 유사물’로부터 ‘소설인 소설’을 쓰는 실행상의 임무가 그대로 남겨져 있음을 잊지 않고 있노라고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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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언(結言)을 하고 나니 문득 전자에도 모(某) 지면에다가 이상과 비슷한 소회(所懷)를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하여 모씨로부터 (아마 작품 월평을 하던 끄터리인 듯하다) 매우 준열한 꾸지람과 일변 고마운 권면을 받은 일이 생각이 난다. 그 모씨의 꾸지람과 권면이라는 것은 “비록 조건과 제현실이 불리하여 작품이 조선적 수준에서 이상(以上)은 나가지 못할망정 기운은 마땅히 세계수준을 목표로 하고서 작품을 쓰라. 그리하여도 마침내는 조선적 수준의 작품밖에 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작가인 너의 허물이 아니라 ‘조선’의 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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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의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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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발명하고 싶은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기서는 통틀어 한 마디만 다음과 같이 “대체 패기(覇氣)와 투기(投機)와는 얼토당토 않은 것, 더구나 문학이 만인계(萬人契)나 미두(米豆)가 아닌 바에야 백 원을 걸고 천 원을 먹을 심보로 소설을 씀은 본(本)이 도(道)가 아니기에, 씨의 꾸지람과 아울러 간곡한 권면은 사절을 하노라”고 답함으로써 변변치 못한 예(禮)를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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