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둔 밤, 무섭게 어둔 밤, 비바람에 회오리쳐 떠나가는 낙엽 소리가 소연(騷然)한 밤, 산을 뚫고 땅을 파는 모든 악령이 이 천지를 뒤집어 놓을 듯이 소연한 밤이 깊고 어두운 밤에 수도원을 찾아올 사람이 없건마는, 비바람에 섞여가며 여자의 애원성(哀怨聲)이 두터운 수도원의 문틈으로 밀려 쓸어 들 제― 그는 이미 오래인 과거의 육욕적(肉慾的) 생활은 청산하고, 청산하려고 이 깊은 외로운 조그만 암자에서 홀로 도를 닦고 있었으나, 그러나 모든 것은 청산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육(肉)을 멀리 떠나지 못하고 육욕(肉慾)을 깨끗이 청산치 못하고 악마와 같은 그것과 비참하게 매일같이 싸우고 있는 그에게, 조그만 암자에 비록 비바람 소리에 부르는 소리는 약하게 들린다 하더라도 그 음성에서 상상되는 젊은 여인―그 육(肉)―, 그는 무서움에서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몸은 뻣뻣하여 버리고 말았다. 그는 주문과 같이 성경(聖經)의 일절(一節)을 외우고 있었다. 밖에서는 구원의 소리가 절박하게 들려온다. 그는 문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지금에서는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 더욱이 젊은 여성을 구한다는 것이 죄악을 짓는 것과 같이 무서웠다. 그의 굳어진 사지(四肢)는 몽유병자 모양으로 부르는 소리에 무의식중에 끌려 나아가 무거운 문을 열었다. 그때 몰려드는 비바람에 문 안에 뛰어든 여성, 그 여성에게서 내어 뿜기는 냄새―향기―, 그는 예상하고 있었으나, 오랜 동안 이 수도원에서 혼자 싸우고 다투고 괴로워하고 있던 그 실적(實賊)이 엄습함에 기색(氣塞)하고 말 지경이었다. 그는 그의 본심적(本心的) 심욕(心慾)을 억제하기에 필사의 노력을 하였다. 그는 그의 심약(心弱)을 극복하기에 성구(聖句)에 매달려 허덕이었다. 더욱이 그 여성은 우연한 미로에서 자연스럽게 한밤의 잠자리를 구(求)한 것이 아니었고, 계획적으로 이 수도승을, 과거에 번치있게 세간(世間)의 향락을 꿀같이 맛본 일이 있는 이 산간(山間)의 은사(隱士)를 다시 속계(俗界)로 끌어내리려고 침습(侵襲)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파렴치를 차릴수록 수도승의 번뇌는 컸다. 그는 여자에게 따스한 페치카를 내어 주고 다른 방으로 몸을 피하였다. 그는 혼자서 십자(十字)를 긋고 성구(聖句)를 외웠다. 아마 이와 같이 열성으로 전심신(全心身)으로 십자를 그어 본 적도 평상(平常)에 없었을 것이요, 성구를 외워 본 적도 평생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여자 편에서 보기에는 그의 인간으로서 본능적 약점을 보이고 있는 사랑스러운 번민이었다. 구두를 벗는 소리, 양말을 벗는 소리, 윗옷을 벗는 소리, 속옷을 벗는 소리, 맨발로 방을 돌아다니는 소리―벽을 격하여, 문을 격하여 쇠망하게 들려오는 육(肉)의 소리, 육의 냄새는 수도승에게는 실로 너무나 벅찬 유혹이었다. 벅찬 유혹은 벅찬 호흡을 요구하였고, 벅찬 호흡은 과도한 독경(讀經)의 소리, 과도한 주문의 소리로 변하였다. 그것을 들을수록 여자는 승리의 미소를 띠었다. 승리는 항상 사람에게서 염치라는 것을 빼앗아 간다. 절제와 예절을 빼앗아 간다. 여자는 기어코 수도승을 불렀다. 그 소리에는 음색(淫色)이 누렇게 물들었을 것은 물론이다. 방금 죽어 넘어갈 듯이 가병(假病)을 꾀 삼아 수도승을 불러 끌었다. 승(僧)은 그것이 자기를 유혹하고, 자기를 환속(還俗)시키려는 가식(假飾)의 수단인 줄 알면서도 부름에 끌려 나가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무서운 결심―괴로움을 억제하려고 자제의 수단이 문 앞에 있던 도끼, 나무를 패기 위한 도끼에 있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극복하고, 자기의 몸을 억기(抑己)하고, 자신 속에서 광답난무(狂踏亂舞)하고 있는 악마의 도량(跳梁)을 누르기 위하여 도끼를 들어 자기 손을 찍어 버렸다. 법의(法衣)에 피를 묻히고 말았다.
5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십육칠 년 전 중학(中學)에 처음 입학하던 해 차 속에서 매일같이 읽던 톨스토이의 「은둔(隱遁)」이란 소설의 기억이다. 그때 어느 상급학교에 다니던 연장(年長)이던 통학생은 내가 조그만 일개 중학 일년생으로 이런 문학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매우 건방져 보였던지, 또는 부담스러이 보였던지는 모르나, 그것을 읽어 아느냐는 물음을 받던 생각이 지금도 난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도키 아이카(土岐哀果)가 번역한 단행본이었고, 그때 얼마 아니 되어 그 책은 어느 친구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6
오늘, 끝없이 맑고 맑은 창공에 저 산을 넘고, 내를 끼고, 들을 덮어 길 넘는 뜰 앞의 풀 덤불을 스치며 기어드는 금풍(金風)을 가슴으로 맞이하며 톨스토이 작품집에서「신부(神父) 세르게이」〔(이와나미본(岩波本) 12집〕를 찾아 다시 읽어 보았다. 휘몰아 읽다가, 벅차면 코스모스에서 눈을 쉬고, 다시 읽다가는 이름 모를 청화(靑花)에서 숨을 쉬다가 얼마 아니하여 독파(讀破)하고 보니, 인상은 다시 새로웠다. 사실, ‘알겠느냐’고 물음을 받을 만큼 기억하고 있던 당시 인상은 이야기로서의 일절(一節)의 기억에 불과한 것이었고, 작품의 정신을 기억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스토리에도 다소의 상위(相違)를 발견하였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요, 수법기교(手法技巧)에도, 예컨대 「부활(復活)」의 결말과 비슷한 서백리아(西伯利亞)로의 출분(出奔), 신을 찾아서 모든 속세적 인연을 던져 버리는 장면 등 재미있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으나 그것도 문제가 아니요, 신을 얻기 위하여 무아(無我)에 철(徹)하고, 신을 보기 위하여 몰세간적(沒世間的)이 되고, 몰명문적(沒名聞的)이 되는 등 동양적 정신, 특히 불교적 정신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던 곳에, 소설이란 것보다도 한 개의 종교적 이설(理說)을 읽고 있는 감이 있다. “인간에 섞이어 속세간적(俗世間的) 때문에 생활하는 자에게는 안심이 없다. 안심은 사람이 사람 사이에 섞여 가면서 신에 대한 봉사를 위하여 생활할 때에 비로소 있게 되는 것이다”라는 것이 톨스토이가 이 소설의 집필 당시에 발초(拔抄) 중에 쓴 일절이라고 해제(解題)되어 있지만, 나는 이 소설의 플롯에서 ‘신(神)에 대하여 충실(忠實)될 방법’과 ‘불(佛)에 대하여 충실될 방법’이, 하나는 톨스토이를 통하여, 다른 하나는 이규보(李奎報)를 통하여 설복(說服)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성(聖)된 것에 대한 공통된 심리를 보았다. 신부(神父) 세르게이가 신을 찾기 위하여 전후(前後) 이십 년을 두고 고심참담(苦心慘憺) 하였으나, 결국은 무지문맹(無知文盲)의 한 농촌의 노부(老婦) 파셴카에서 ‘신에 충실할 방법’을 얻어 배우고 신을 다시 찾기 위하여 길을 떠났지만,『이 보문집(李奎報文集)』 권25,「왕륜사장륙금상영험수습기(王輪寺丈六金像靈驗收拾記)」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번역을 하면 제한 매수가 너무 초과될 흠이 있기로 본문을 잉용(仍用)한다〕
7
崔侍中精安 常痛敬丈六像 以其宅之在寺之南隣 故每上官之時 則到寺門 輒下馬禮拜而後去焉 及退公則至朝宗門 又下馬再拜 步過寺門然後騎焉 凡所得新物先奉之而後敢嘗 又往往造于堂 手煎茶供養 如是者久焉 忽夢丈六告曰 汝事我誠 勤矣 然不若寺之南里鷹揚府老兵之歸心也 公明日使人尋其家 果有一老兵在焉 公親往訪之問曰 聞汝之常敬某寺丈六 信然耶 其敬之也又別作何般耶 對曰老僕 自中風莫興 凡己七年矣 但晨夕聞鐘聲則向其處合掌而己 安更有餘事哉 公曰 如是則老夫所以事佛者 其不若汝誠之至矣 由是大重其人 每受祿 輒以一斛腸之云云.
8
시중 최정안〔최당(崔讜)〕이 늘 장륙상을 공경했다. 그 집이 절 남쪽 이웃에 있었으므로 매일 등청할 때마다 절문에 이르면 말에서 내려 예배한 후에 갔으며, 퇴청할 때 조종문에 이르면 또 말에서 내려 재배하고 걸어서 절문을 지난 후에 말을 타곤 하였으며, 신물(新物)을 얻으면 먼저 불상에 바친 후에 먹었다. 또 이따금 금당에 가서 손수 차를 끓여서 공양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오래 계속하자, 어느 날 꿈에 장륙상이 이르기를, “네가 나를 섬기는 것이 참으로 성실하지만 남쪽 마을 응양부에 사는 늙은 병사가 진심으로 사모하는 것만은 못하다” 하였다. 공이 이튿날 사람을 시켜서 그 집을 찾게 하였더니 과연 한 늙은 병사가 있었다. 공이 친히 가서 찾아보고 묻기를, “들으니 네가 항상 아무 절의 장륙상을 존경하다는데 정말이냐? 그 존경하는 데는 어떠한 일을 특별히 하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늙은 제가 중풍 때문에 일어나지 못한 지가 무려 칠 년이나 됩니다. 다만 새벽과 저녁에 종소리를 들으면 그곳을 향하여 합장할 뿐입니다. 어찌 다시 다른 일을 함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늙은 내가 부처 섬기는 것은 성의가 너만큼 지극하지 못하다” 하였다. 이로부터 그 사람을 매우 존중하고 녹봉을 받을 때마다 일 곡(斛)씩을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9
이것은 마치 신부(神父) 세르게이가 신을 찾지 못하고 죽으려고까지 하다가 비몽사몽 간에 “파셴카에게로 가거라. 그래서 네가 이제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너의 죄는 어디 있는가, 너의 구함이 어디 있을까를 배움이 좋을 것이다”라는 신탁(神託)을 받고 파셴카를 찾아간 세르게이의 문답,
10
“파셴카, 그래 당신은 교회는 어떻게 하고 있소?”
11
“머, 그것은 묻지도 말아 주세요. 무어라 죄스럽습니다. 아주 게을러져 버렸어요. 아이들하고 같이나 되면 단식도 하고 교회에도 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달이라도 안 가는 때가 있어요. 애들만은 보내지요.”
13
“실상은 누더기 입고 가면 딸이나 손자들 보이기에 부끄러워서요. 대체 새 옷이 있어야지요. 그리고 대체 게을러졌어요.”
15
“그건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시늉뿐이죠. 그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도 하죠만 어디 진정 맛이 나야지요. 그저 제 못생긴 것만 알고 있죠.”
16
이것은 신탁으로 지시된, 이십 년 적공(積功)한 신부(神父)가 받은 한 농촌 노부(老婦)의 신신법(信神法)이다. 그는 물론 이 노부의 전후 행동을 종(綜)하여〔소설적으로 그것이 서술되어 있으므로, 이곳에다 잉용(仍用)치 않는다〕, 한 개의 진실로 ‘신에 충실될 방법’의 계시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신을 찾아 서백리아(西伯利亞)로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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