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도 볼 탓이요, 물도 가릴 탓이라, 드러난 명산(名山)이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아닐 것이며, 이름난 대천(大川)이 반드시 장한 것이 아닐 것이매, 하필 수고로이 여장(旅裝)을 걸머지고 감발하여 가며 사무적으로 찾아다닐 필요도 없는 것이며, 무슨 산, 무슨 바다에서 전고(典故)를 뒤적거려 가며 췌언부언(贅言復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초목산간(草木山間)의 문창(門窓)을 통하여 조석(朝夕)으로 접하고 있는 무명(無名)의 둔덩도 정을 붙인다면 세상이 명산이 아니 될 것이 없는 것이며, 문전세류(門前細流)의 조그만 여울이라도 마음을 둔다면 대천 아니 될 것이 없나니, 그리는 산이 따로이 명색(名色)져 있을 턱 없고, 그리는 바다가 따로이 지목되어 있을 리 없다.
4
수년 전, 지기(知己)가 있는 바도 아니요, 동반(同伴)이 있는 바도 아니요, 또 무슨 소망이 있는 바도 아니었건만, 공으로 기십(幾十) 원 써 버려야 할 권리와 의무(의무까지는 문제이지만)가 있는 기회가 있어 단신 상해(上海)를 간 적이 있지만, 범범(泛泛)한 대해(大海)의 가도 가도 파도만인 것은 적이 권태(倦怠)나는 일이었다. 그야 저녁에 노을을 끼며 수평 저쪽으로 구름이 침전되어 가며 이글이글 불타는 태양이 차츰차츰 빠져 들어가는 광경이 장절(壯絶)하지 않음이 아니었고, 저녁 고요한 파도 위로 잡을 듯 뛰어올라 앉을 듯한 수평 위로 만월(滿月)이 금시 금시 솟는 광경이 신비하지 아님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엔 평범한 숭엄(崇嚴)이었다. 귀로(歸路)엔 지독한 풍랑을 만나 내 배도 짠물의 세례를 받았지만, 풍랑의 나락(奈落)으로 곤두박질하다가 격랑의 파고두(波高頭)로 헛정 던져쳐 허공에 뛰는 목선(木船)들의 번롱(翻弄)되는 꼴이, 운명은 가엾지만 보기 드문 호관(好觀)이었다. 물은 그대로 황토(黃土)의 뒤범벅이요, 파도는 바람 소리와 함께 리듬을 잊었는데, 한없이 무한(無限)으로부터 무한으로 뻗어 있는 수평만이 묵중(黙重)히 자약(自若)하게 있다. 동탕(動盪)은 수평 이하에만 있고, 수평 이상의 명명(冥冥)한 창공은 끝없이 고요하다.
5
정극(靜極)과 동극(動極)이 이때같이 대조되는 적은 없었다. “명하재천(明河在天)인데 성재수간(聲在樹間)”이란 것도 같은 경우이겠으나, 그 크고 장한 맛이야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 수월(水月) 임희지(林照之) 같은 기롱기(奇弄氣)나 있다면 일어나 춤도 출 만하였지만, 이 사람은 그만 횡(橫)으로 기다래져 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대해(大海)를 논할 자격이 없다. 하나 움직이지 않는 육지에 서선 장담코 나서 대해를 풍미할 수 있다. 예로, 강화(江華)·교동(喬桐)·영종(永宗)·덕적(德積)·팔미(八尾)·송도(松島)·월미(月尾)의 대소 원근(遠近)의 도서(島嶼)가 중중첩첩(重重疊疊)이 둘리고 위워진 가까운 인천(仁川) 바다를 들자, 아침마다 안개와 해미를 타고 스며 퍼져 떠나가는 기선(汽船)의 경적 소리, 동(東)으로 새벽 햇발은 산으로서 밝아 오고, 산기슭 검푸른 물결 속으로 어둔 밤이 스며들면서 한둘, 네다섯 안계(眼界)로 더 드는 배, 배, 배. 비가 오려나, 물기가 시커먼 허공(虛空)에 그득히 품겨지고, 마음까지 우울해지려는 밤에 얕이 떠 노는 갈매기 소리, 소리. 또는 만창(滿漲)된 남벽(藍碧)이 태양 광선을 모조리 비늘져 받고, 피어 뜬 구름이 창공에 제멋대로 환상의 반육부각(半肉浮刻)을 그릴 때 주황의 돛단배는 어디로 가려나. 먼 배는 잠을 자나 가도 오도 안 하고, 가까운 배는 삯 받은 역졸(驛卒)인가 왜 그리 서둘러 빨리 가노. 만국공원(萬國公園)의 홍화녹림(紅花綠林)을 일부 데포르메(déformer)하고, 영사관의 날리는 이국기(異國旗)를 전경(前景)에 집어 넣으면 그대로 모네(C. Monet)가 된다.
6
청도(靑島)의 부두로 배가 들면서 차아(嵯峨)히 솟아 펼쳐 있는 준초(峻峭)한 골산(骨山)이 금강(金剛)·관악(冠岳)·삼각(三角)·오관(五冠)을 곧 연상케 함에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느낀 적이 있지만, 남의 나라 명산(名山)은 그림이나 사진 외에 본 적이 없다. 곤륜(崑崙)도, 히말라야도, 에베레스트도, 알프스도 그리 그립지 않다. 내 나라 산도 산정(山頂)에 올라 보기는 삼각(三角)·북악(北岳)·천마(天摩)·송악(松岳)·마니(摩尼) 등뿐이니, 내게 있는 백두(白頭)·금강(金剛)을 못 오른 주제에 어느 남의 것을 그릴 수 있겠는가.
7
묘향영산(妙香靈山)을 찾아가고서도 평지에 펼쳐진 보현(普賢)·안심(安心)의 고찰(古刹)만 찾았고, 금강(金剛)에 두 번 놀면서도 정점(頂點)에 오른 적이 없다. 공산준령(公山峻嶺)도 멀리 바라보았을 뿐 중복(中腹)의 동화(桐華)·태고(太古)의 고찰에 발은 그쳤고, 지리영산(智異靈山)에 놀면서도 화엄고찰(華嚴古刹)에 발이 그쳤다. 오대준령(五臺峻嶺)에 놀면서도 월정(月精)·상원(上院)의 고찰에 발이 그쳤고, 태백준령(太白峻嶺)에 가고서도 중복(中腹)의 부석고찰(浮石古刹)에서 놀고 말았다.
8
나는 결국 산을 타기 위하여 다님이 아니었고 일을 갖고 배움을 얻기 위하여 가는 것이라, 찾을 대상은 영정(嶺頂)에 없고 중복(中腹) 이하에 있는 것이었다. 영정에 오르지 못한 일종의 변명으로 입산불견산(入山不見山)이니, 명산(名山)은 ‘가원관이불가설완언(可遠觀而不可褻翫焉)인저’ 할 수밖에. 백두(白頭)를 오르는 자, 백두를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요 백두에서 보이는 것을 보기 위함일 것이니, 백두에 올라 도리어 백두를 잃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드러누워서 보고, 앉아서 보고, 달리면서 본 청북청남(淸北淸南)이 무비명산(無比名山)이요, 그 중의 묘향영산은 다시 말할 나위 없고, 해서낙맥(海西落脈)의 구월장산(九月長山),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낙맥(落脈)인 태백준령(太白峻嶺), 또 그 낙맥인 속리장산(俗離長山), 이러한 예를 들면 한이 없을 것이다.
9
그러나 이 사람이 근자(近者)에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개성(開城) 천마산(天磨山)이니, 명산도 그 보는 위치를 얻어야 한다. 총지동(摠持洞)에서 고개턱을 넘어 대령통동(大靈通洞)으로 접어들 제 눈앞에 전개되는 그 산용(山容)의 변화란, 만일에 조선서 세간티니(G. Segantini)가 난다면 이곳 경광(景光)을 잡음으로써 청사(靑史) 제일엽(第一葉)에 오를 것이다. 헤벌어지기만 한 산, 준초(峻峭)한 산, 비록 장(壯)하지 아님이 아니나 결국 흩어진 자연일 뿐이니, 잡혀지되 장함을 잃지 않고, 장하되 단조(軍調)에 떨어지지 아니한 곳은 이곳인가 한다. 실로 영통(靈通)된 산이니, 높아 명산이 아니요, 깊어 명산이 아닐진대, 규모 작다손 치더라도 유선(有仙)한 산이라야 그리워짐은 고금(古今)이 일반이라. 그렇다면, 선문구산(禪門九山)이 가 봄 직한 명산일게라. 왈(曰) 실상산(實相山)·사굴산(闍崛山)·가지산(迦智山)·동리산(桐裏山)·봉림산(鳳林山)·희양산(羲陽山)·사자산(獅子山)·성주산(聖住山)·수미산(須彌山). 이것은 그 대본(大本)된 자요, 이에서 파생(派生)된 선산(禪山)들이 내 비록 선도(禪徒) 아니로되 그리워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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