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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山)사람들 ◈
◇ 제 1 막 ◇
카탈로그   목차 (총 : 2권)     처음◀ 1권 다음
1949. 12., 1950.1
함세덕
1
[산] 사람들 (전 2막 2장)
 
2
[산]에서 살고
3
[산]에서 내려왔다
4
다시 山[산]으로 올라간다고
5
부락 사람들은 그들을
6
[산] 사람이라고 불렀다.
 
 
7
제 1 막
 
8
1장
 
9
인물 :
10
김석민 (金石民 ; 구국투쟁위원회 조직부장)
11
송 백 (松栢 ; 구국투쟁위원회 조직부원)
12
부용철 (夫容哲 ; 구국투쟁위원회 조직부원)
13
고제곤 (高濟坤 ; 구국투쟁위원회 禾北里[화북리] 책임자)
14
제곤모 (濟坤母)
15
부을나 (夫乙那 ; 容哲[용철]의 妹[매], 海女[해녀])
16
진옥 (珍玉 ; 연락선 아지트 주인, 해녀)
17
부장의 (夫掌議 ; 부락의 노인, 60세. 掌議[장의]는 鄕校[향교]를 나왔다는 존칭)
18
삼바우 (梁俊洙[량준수]의 머슴)
19
장달 (長達 ; 징용 나갔다 돌아온 작인)
20
기타 ― 해녀·농민·부락민 다수
21
량준수 (梁俊洙 ; 大韓獨促支部長[대한독촉지부장]
22
오난수 (吳蘭洙 ; 漁業組合理事[어업조합이사], 禾北支部長[화북지부장])
23
전병술 (田炳述 ; 화북지부 刑事[형사])
24
선우기승( 鮮于基承 ; 西北靑年會[서북청년회] 監察部長[감찰부장])
25
경관
26
서청원 (西靑員)
 
 
27
1948년 3월 초순
28
2·7 구국투쟁이 지나가고 반동의 대탄압이 시작되어 제주도 구국투쟁위원회가 간부확보 조직정비 차기공세준비로 들어가든 무렵. 제주읍 화북리에 있는 빈농과부 제곤모(濟坤母)의 초가. 화북리는 제주성내서 십 리쯤 떨어져 있는 해변부락으로 인가는 오,륙백 호 가량 된다. 제곤모의 집은 바른 쪽으로 언덕에 등을 대고 제주도 특유의 원시적인,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높은 돌각담에 위요(圍繞)되었으며 지붕에는 바람에 이영이 날리지 않도록 앞 추녀 서까래에서 뒷추녀 그것에 걸쳐 바둑판같이 줄이 얽혀 있다. 지붕은 어욱풀 혹은 새풀(둘 다 島[도] 특산)로 이었다. 집 구조는 한 일 자로 되었으며 안방, 마루, 유방(維房), 부엌의 순서이다. 벽과 기둥에는 고깃줄, 얼레낚시, 어롱(漁籠) 등이 걸렸다.
29
마루에는 육지보다 규모가 큰 물레와 굽 높은 고풍한 나막신이 있다. 장독대에는 대바구니 속에다 토판(土版)을 넣은 물긷는 물허벅. 집 바른편에 우방(牛房 ; 오양깐)이 있고 출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뒤꼍에 변소의 인분으로 키우는 축사가 있으나 이것은 보이지 않는다. 도민들은 빈농들도 우마 한두 필과 돼지 몇 마리는 다 먹이구 있다. 돌각담에 기대어 농구들과 점복을 대에 꿰어서 말린 건초. 뜰에는 제주도 특유의 감귤나무가 한 그루 서 있어 사시상선(四時常線) 방순(芳醇)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돌각담 밑에는 뜸북(海藻[해조]의 一類[일류])이 널려 있다. 퇴비에 사용하려는 것이다. 왼편은 산록(山麓). 산록과 집 뒷켠에는 아열대성 죽림이 울창하다. 산록 아래서 깊은 해변과 산간부락으로 가는 길로 분기된다. 집 주위와 행길과 어디 할 거 없이 무수히 흑갈색 돌이 굴러 있다. 이들은 한나산 폭발시에 분출한 화산회(火山灰)가 굳은 것으로 빛이 누르고 누룩같이 생겼다 하야 항용 누룩 돐이라고 부른다. 멀리 감벽(柑碧)의 남해. 집 주인 제곤모, 마당에 널린 뜸북을 갈구리로 넘기고 있다. 해녀로 반어반농(半漁半農) 제주도 여자가 다 그런 것같이 사내같이 거세고 목소리는 항상 한 옥탑이 높은 과부다. 그는 제주도민의 풍속대로 갈중이라는 미녕에다 감물을 디린 다갈색 바지 저고리 같은 통 넓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대로 엮은, 챙 넓은 패랭이를 썼다. 마방(馬房)에서는 표한한 제주말이 “히히”하고 거칠게 울고 죽림에서는 밥주리(鳥名)가 봄을 고하는 듯 요란히 운다.
 
 
30
제곤 모   (말에다 대고) 와와와, 어러렁 어러렁, 빨리 오름으루 올라 가구 싶음디? 허지만 안 된다. 느가 지금 암낼 내고 있거든. 산에 올라갔다 독헌 말 씨 받으믄 느새끼 길들이기에 내가 골치 아플키어. 그러니 갑갑허드래두 좀 더 있으라.
 
 
31
해녀들이 3,4인식(三四人式) 삐를 지어 해변에서 올라와 행길을 지나간다. 부을나,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올라온다. 그는 20세. 오랜 잠수에 얼굴은 주동색(朱銅色)으로 절었고 가름은 쩍 벌어졌으며 목소리는 거칠고도 곱다. 동백기름에 칠(漆)같이 윤나는 검은 머리가 숱한 눈썹의 큰 눈에는 남성(南城) 여자의 타는 듯한 정열을 담북 담었다. 을나와 해녀들은 수건을 썼고 등에 태왁을 메었다. 태왁은 큰 박을 속을 파서 그물로 외피를 싼 부구(浮具) 겸 어획물을 담는 잠수도구이다.
 
 
32
을 나   (동행들에게) 먼점들 올라갑서. 난 아즈마님헌테 감물 좀 얻어가지구 가겠수다.
 
33
해녀들   천천히 오라. (다른 해녀들은 행길로 지나가고 을나만 돌각 담 안으로 들어온다)
 
34
을 나   아즈마님 바뿌쿠다.
 
35
제곤 모   물에서 나오는 길임디야.
 
36
을 나   예, 감물 남았거든 좀 줍서. 갈중이에 물디려야 허겠는데 우린 똑 떨어졌구다.
 
37
제곤 모   그럼 잠간 기대리라. (하고 방으로 들어가 감물을 들고 나온다)
 
38
을 나   아즈마님넨 뜸북 많이 건지셨수다.
 
39
제곤 모   무스걸 많이? (하며 감물을 준다)
 
40
을 나   (받으며) 퇴빌 저렇게 해놓셨으니 금년엔 거름 걱정 없으시겠수다.
 
41
제곤 모   느넨 좀 못 했냐?
 
42
을 나   퇴비가 다 무업수까? 아버진 형무소에 가시구 오래빈 밤낮 쫓겨댕기구 동지섣달 정월 뜸북철을 거냥 넘겼수다.
 
43
제곤 모   퇴빌허문 뭘험디? 우리 팔자에 고은밥(쌀밥) 먹어볼라디야? 고작해야 피(稗) 아니문 수석(粟)이지.
 
44
을 나   올핸 눈이 많이 와서 마민 못 건졌어두 보린 풍년일 거우다. 복사꽃 진달래가 활짝 폈는데 한나산엔 아직두 저렇게 눈이 쌓이지 않었수까?
 
45
제곤 모   보리가 풍년이문 뭘 험디? 공출루 다 긁어갈걸.
 
46
을 나   그리게 마리우다. 우린 죽 쒀서 개존일만 허구 있수다. 그런데 제곤 오빤 어디 나깠수까?
 
47
제곤 모   또 광고지 써가지고 새벽에 나간 채 아직두 안 들어왔다.
 
48
을 나   호호호. (웃으며) 아즈마니두 ―. 그게 광고지가 아니라 삐라우다.
 
49
제곤 모   삐란지 뭔지……. 느네집두 느네집이지만 우리 애 때문에 참말로 큰일났다.
 
50
을 나   무스게 큰일날 께 있수까?
 
51
제곤 모   그애가 주정(酒酊)공장에 댕길 땐 다달이 받는 거허구 내가 농사짓는 걸허구 보태서 그래두 끄니 걸르지 않구 살았는데 지난날에 동맹파업 일으키구 거기서 내쫓기구 나선 동전 한푼 들오는 데 없구나.
 
52
을 나   공장에서 내쫓긴 사람이 어디 제곤 오빠뿐입디까?
 
53
제곤 모   그야 그렇지. 허지만 말이다, 그놈의 세금이나 좀 적어야지야? 도청으로 승격허구 나선 왜정 때두 없든 무슨 세 무슨 세가 사흘이 멀다구다. 그것 뿐임디? 리승만이 사진임네, 무슨 기부금 무슨 기부금……. 거기다 툭 허문 닭 잡아오너라, 돼지 잡아오너라다. 그러니 나 혼자 어떻게 해나갈 거까?
 
54
을 나   아즈마니네만 그런 게 아니우다. 그 개놈들 등쌀에 우리 제주도 사람은 내 남직 할 거 없이 모두 죽게 됐수다.
 
55
제곤 모   그야 그렇지. 허지만 말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문 끝에 가선 느네 용철 오래비만 원망스럽다.
 
56
을 나   (펄쩍 뛴다) 아이크, 아즈마니두 ……. 우리 오빠가 어쨌단 말임수까?
 
57
제곤 모   느네 오래비가 우리 아일 괜히 노동조합에다 넣어가지구 저렇게 맹글어 놓지 않었니.
 
58
을 나   아즈마니두……. 제곤 오빠가 우리 오빠허구 둘이 아주 친한 건 사실이우다. 허지만 제곤 오빠가 우리 오빠가 이랬다구 이러구, 저랬다구 저럴 사람임수까?
 
59
제곤 모   그야 그렇지……. (다시 생각하니 또 화가 난다) 허지만 말이다, (돌연 소리를 버럭 질른다) 아는 어째서 오기만 허문 내속을 이렇게 뒤집어놓는 거냐! 내 형편두 좀 생각해주라.
 
60
을 나   …….
 
61
제곤 모   농산 나혼자 지란 말이냐? 얘, 말좀 해보라.
 
 
62
이때 그의 아들 고제곤 들어온다. 정당이란, 도 특산의 넝쿨로 만든, 챙이 카 ― 보이 모(帽)같이 엷은 벌럽(笠)을 썼다. 그는 금년 25세. 제주성내 알코르 공장에 십년 가까이 다니던 노동자로 전번에 해고된 후 자기 부락에 돌아와서 일을 보고 있다. 얼굴은 사각형이고 용감하고 표한하고 반면, 선량하고 자기 희생적인 사람이다. 물길러 가는 처녀들(허벅을 등에 메었다) 이 그를 보고 인사하고 해변께로 내려간다.
 
 
63
제 곤   을나 동무 왔군.
 
64
을 나   (반가워) 지금 옵수까. (이때 아까부터 마방(馬房)에서 울어대든 제주마가 더 한층 거칠게 운다)
 
65
제 곤   (모(母)에게) 말 목말른가 보우다.
 
66
제곤 모   끌구 나가서 못에 가 좀 멕여가지구 와라. 비가 아니와서 천연수 받아논 게 독이 났다.
 
67
제 곤   그렇건 시간 없수다.
 
68
제곤 모   넌 부스거 일이 그렇케 바뻐 밤낮 시간이 없음디야! (말이 마룻바닥을 뒷발로 쾅쾅 차며 또 거칠게 운다)
 
69
제곤 모   (소리를 질른다) 와와와. (하고 자배기에 물을 떠가지고 마방으로 들어간다)
 
70
제 곤   (을나에게) 물에서 나오는 길이야?
 
71
을 나   예, 감물 좀 얻어가지고 갈려구…….
 
72
제 곤   그래 생북은 많이 자무렀어?
 
73
을 나   개놈들 등쌀에 딸 수 있습니까? 구쟁끼까지 합해서 한 십관이나 될지 모로쿠나. (하고 태왁에서 탐라포(耽羅鮑)와 소라 몇 개를 내놓는다)
 
74
제 곤   그건 왜?
 
75
을 나   저녁 반찬 하수다. 요샌 아즈마니께서 물에 못 들어가시니까 생북 구경두 못 허실 거우다.
 
76
제 곤   그런데 어떻게 오늘은 용케 안 뺏겼군.
 
77
을 나   하마트문 몽땅 뺏길 뻔했수다. 물에서 나오니까 어업조합 서기놈이 미국놈허구 지키구 섰다가 왈카닥 허구디리 뎀빕디다. 그래 태왁에다 손을 대는 걸 엠.피.(米憲兵(미헌병))놈 손꾸락을 꽉 물구치구 도망왔수다.
 
78
제 곤   혼날 뻔했구나.
 
79
을 나   허지만 나허구 걸어 나왔든 객사동 음전 어멍허구 거북인 몽땅 뺏겼수다.
 
80
제 곤   저런.
 
81
을 나   거냥 털어가문 ‘도적이야’허구 소리나 질르지 않겠수까. 목포나 부산에다 내다팔문 한 개 백 환씩은 받는 걸 공정가격이라구 십 환씩 내주구 있수다.
 
82
제 곤   왜정 땐 조합이 구문이나 쳐먹구 있었는데 미국놈들이 들오구 나선 한 숟갈 더 뜨는구나.
 
83
을 나   지금두 개에서 모두들 그 얘기였수다. 그 경찰놈들허구 이북에서 나뿐 짓 허구 쫓겨온 서북청년회놈들 등쌀에 우리 제주도 사람 다 죽게 됐다구…….
 
84
제 곤   그저 벨도리 없다. 미국놈들 하루바삐 우리 조선에서 몰아내는 길밖엔 없어. (생각난듯) 참 오늘 밤에 등화 올리기루 했어.
 
85
을 나   몇 시에 올림수까?
 
86
제 곤   아홉 시 정각.
 
87
을 나   장손?
 
88
제 곤   맨돈지 오름. 그러니 여덟 시쯤해서 쑥허구 낭구허구 가지구 등구루 나오라.
 
89
을 나   예. 그럼 이따가 산에서 다시 만납시다.
 
90
제 곤   응.
 
 
91
을나, 제곤과 악수를 나누고 나간다.
 
 
92
을 나   (나가다 돌아서며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 먼 발채로 제곤에게 보인다)
 
93
제 곤   그게 뭬야.
 
94
을 나   진주우다.
 
95
제 곤   진주?
 
96
을 나   예, 오늘 자무른 생북 속에 들었습디다. 낼 아침 첫배루 목포가서 팔아다 투쟁위원회에 자금 낼려구 허우다.
 
97
제 곤   응.
 
 
98
을나, 다시 돌아서 나간다. 제곤, 갸륵하야 그의 뒷모양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창공에서 주주머리(종달새)가 운다. 이윽고 마방에서 제곤모, 자배기를 들고 나온다.
 
 
99
제곤 모   저놈의 짐성두 불상허다. 일은 죽두룩 시키고 일년내 촐(꼴)만 맥이니 어째 속이 아니 상할 거까? 이번 오월에 봄보리 비거든 보리 여물 한번 맥에 줘야 혀커어.
 
100
제 곤   그럽시다. 그래야 류월에 가서 조밭에 씨 다질 때 꽉꽉 잘 다질 거우다. 그런데 누구 댕겨간 사람 없습디까?
 
101
제곤 모   을나 오래비가 뭐 두구 갔다. 들오거든 주라구.
 
102
제 곤   무업디까? (제곤모, 주위를 둘러보드니 언덕을 파고 삐라 뭉테기를 꺼내서 아들에게 준다. 제곤, 받아가지고 말없이 나갈려고 한다)
 
103
제곤 모   는 또 어딜 나감디?
 
104
제 곤   밖에 부칠 거니까 돌라주구 와야겠수다.
 
105
제곤 모   (불평에 찬 소리로) 조밭에 담이 모두 무너졌는데 그거나 가서 좀 쌓구 오라. 사월달 접어들문 노을풍(繼風) 자질키어. 마파람 맞이문 말이 제 아무리 꼭꼭 잘 다져두 씨 다 죽구 만다.
 
106
제 곤   제기, 댕겨와서 쌓겠수다.
 
107
제곤 모   촐두 어지간히 자랐는데 망아지두 오름(嶽)에 올려다 끌려놔야겠구, 가을에 태왁 맹글러믄 칵(박) 넝쿨에 거름두 줘야 할텐데, 너는 하루종일 밖에만 나가 있으니 농산 나 혼자 지란 말이냐.
 
108
제 곤   어멍, 그 개놈자식들이 개 백장 날뛰듯 섬사람들을 학살허구 있는데 젊은 놈이 말이나 맥이구 김만 매구 있겠수까.
 
109
제곤 모   그야 그렇지……. 허지만 말이다, 네가 나갔다구 독립이 됨디야?
 
110
제 곤   그렇다구 가만히 앉어서 맞어죽으란 말임까?
 
111
제곤 모   누가 가만히 앉어서 맞어죽으라고 했는가?
 
112
제 곤   그럼 나 허는 일에 챙견마우다. (하고 혹 나가버린다)
 
113
제곤 모   (절망한 듯 마당에 가 털벅 주저앉는다) 아아아.
 
 
114
이때 을나의 오빠 부용철, 뒤를 돌아보며 들어온다. 그는 당년 23세. 농업학교 중퇴. 외양의 선은 가느나 용감하고 굴복과 타협을 모른다. 조숙하고 이지적이어서 현재 투쟁위원회 조직부에서 일하고 있다.
 
 
115
용 철   웨 그럼수까? (하고 제곤모를 일으킨다) 제곤 동무 어디 나깠수까?
 
116
제곤 모   나갔다.
 
117
용 철   나간 지 오랩니까?
 
118
제곤 모   지금 고작이라.
 
119
용 철   어디루 나갑디까?
 
120
제곤 모   해변개루 나가나 부드라.
 
121
용 철   미안하지만 빨리 쫓아가서 좀 오라구 해주우다. 급헌 일이 생겼다구 허구.
 
122
제곤 모   (불안하야) 무스거 일이?
 
123
용 철   동무들이 회합허든 장소가 놈들헌테 들어났다구 험수다.
 
124
제곤 모   회합허든 장소가?
 
125
용 철   예.
 
 
126
제곤모, 급히 아들이 나간 곳으로 쫓아나간다. 용철, 걱정에 싸여 마당을 거닌다. 공중에서 종달새 우는 소리. 이윽고 제곤모와 함께 제곤, 급히 들어온다.
 
 
127
제 곤   (용철과 악수를 하고) 대관절 어디가 들어났수까?
 
128
용 철   레포선 아지트가 들어났다구 험수다.
 
129
제 곤   (악연(愕然)하며) 레포선 아지트가?
 
130
용 철   예.
 
131
제 곤   그런데 어떡허다?
 
132
용 철   (제곤모에게) 누구 오나 망 좀 봐줍서.
 
 
133
제곤모, 행길가로 나가 망을 본다.
 
 
134
용 철   요전 병상 동무가 서귀면으루 지실 가지구 내려가는 길에 태울 자기 누님집에 옷갈아 입으려 잠간 들렸다 개놈들에게 포위되지 않었수까?
 
135
제 곤   예.
 
136
용 철   그 동무가 놈들의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레포면 아지틀 불구 말았수다.
 
137
제 곤   (미심한듯) 그 정본 확봅니까?
 
138
용 철   유감이지만 사실이우다. 생북을 목끄러 팔러가다 붙잽혔든 해녀 조합 동무 하나가, 지서에서 문촐 당하다가 즉접 보았다구 헙니다.
 
139
제 곤   그 동무가 불 줄은…….
 
 
140
이때 요란한 총성 1발. 계속해서 2발.
 
 
141
제 곤   나가부구 오겠수다.
 
142
용 철   (붙잡으며) 가지 맙서. 오다가 을날 만나서 가보구 오라구 했수다.
 
 
143
이때, 을나 급히 달려온다.
 
 
144
용 철   어떻게 됐냐?
 
145
을 나   책임자 동문 뒤콴으로 튀시구 연락왔든 동문 개놈 한놈을 때려치구 담을 넘어 도망허구 집주인 동무만이 억울허게 잽히고 말었수다.
 
146
제 곤   그럼 진옥 동무가?
 
147
을 나   예.
 
148
용 철   물건들 뺏긴 건 없드냐?
 
149
을 나   지금 가택수색을 허구 있는 중이우다.
 
150
용 철   가 봐라.
 
151
을 나   예. (하고 나간다)
 
152
제 곤   집 주인이 상당히 강한 동무니까 걱정은 없겠지만 세상일이란 누가 암수까? 만일을 념려해서 동무두 피허시는 게…….
 
153
용 철   나보다두 본부 아지틀 옮기시두룩 해야겠수다.
 
154
제 곤   본분 그저께 모두들 옮기셨다구 그러시나 부든데……?
 
155
용 철   위원장 동무 이하 중요한 부선 다 옮기셨지만 조직부장 동무만이 뒷처리 헐 게 있어서 아직 남아 계시우다.
 
156
제 곤   그럼 석민 동무?
 
157
용 철   예. 어디 가실 만한 곳 없겠수까?
 
158
제 곤   글쎄요. 원체 좁은 바닥인데다가 쓸만한 곳은 거의 다 드러나서 갑작스리 생각 안 남수다. 물론 부락 근처루 옮기셔야겠지요?
 
159
용 철   멀어두 괜찮수다.
 
160
제 곤   좀 불편허시드래두 참으실 수 있다문……?
 
161
용 철   아지트의 조건은 첫째 안전, 둘째 안전, 셋째두 안전 임수다.
 
162
제 곤   절대 안전은 허우다.
 
163
용 철   어딘데?
 
164
제 곤   맨돈지 너머 웃노들에서 목축허는 집이우다. 말허구 소허구 한 오십여 마리 멕이구 있기 때문에 만일 수색을 당허시드래두 말 씨 받으러 왔다구 허시거나 만일 그렇지 않으문 소 사러 왔다구 허구 빠지실 수 있을 겁니다.
 
165
용 철   그럼 요전 민청을 그 회합허든……?
 
166
제 곤   예, 급헐 땐 방 하나 내줄 테니 언제든지 오라구 했수다.
 
167
용 철   그럼 여기 있수다. 난 가서 석민 동무헌테 보고허구 준비허시두룩 허구 올 테니…….
 
 
168
용철, 급히 나가려 할 때 투쟁위원회 조직부장 송백 들어온다. 28세, 아직도 독신으로 오즉 주쟁에만 헌신하고 있는 여자 동무다. 침착하고 품(品)이 있어 보인다. 겨드랑에 구럭을 끼었다. 도(島) 여인들은 핸드백 모양으로 일이 있건 없건 항상 이 구럭이란 죽롱(竹籠)을 끼고 다닌다.
 
 
169
송 백   용철 동무.
 
170
용 철   (가다가 발을 멈추고) 송백 동무, 마침 잘 오셨수다. (그의 손을 잡고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송백과 제곤 악수)
 
171
송 백   레포선 아지트 주인이 잽혔다구 허는데 그게 사실임수까.
 
172
용 철   예.
 
173
송 백   본부에서두 불똥이 뛸 위험이 있으니 옮기실 곳을 마련해보라는 지시우다.
 
174
용 철   그러지 않어두 그것 때문에 지금 본부루 가는 길이우다.
 
175
송 백   적당한 장소 있수까?
 
176
용 철   웃노들 요전 민청을 그 회합하든…….
 
177
송 백   성내허구 멀어서 사업허기 곤난치 않겠수까?
 
178
제 곤   2, 3일만 고생허시문 그 안에 가까운 곳으루 택해서 다시 옮기시두룩 허겠수다.
 
179
송 백   그럼 그리루 결정허십시다.
 
180
용 철   남은 문젠 어떻게 무사히 부락을 빠져 나가시느냐 허는 거뿐이우다. (제곤에게) 어느 길루 빠져나가시는게 그중 안전허시겠수까?
 
181
제 곤   역시 이 길로 지나가시는 게…….
 
182
용 철   이 길룬 수색이 끝나는 대루 그 개놈들이 진옥 동물 묶어가지구 돌아올 거 아님수까?
 
183
제 곤   예, 허지만 놈들만 돌아오구 나문 그뒨 념녀 없을 거우다.
 
184
용 철   그럼 이 길로 빠집시다. (송백에게) 어떻겠수까?
 
185
송 백   본부 아지튼 동무 책임이니까 동무들 결정대루 허라구 그러십시다.
 
186
용 철   그럼 송백 동문 (제곤을 가리키며) 이 동무를 더리고 나갑서. 그래서 석민 동무헌테 상세한 거 말씀 여쭙구 곧 출발허시두룩 허우다.
 
187
송 백   그럭허우다.
 
188
용 철   (제곤에게) 동문 데려가는 길루 용감한 동무 몇 사람 뽑아서 도로 양편으루 허위허두룩 허구 즉시 김선생을 모시구 떠나두룩 합서.
 
189
제 곤   예. 피캔…….
 
190
용 철   피캔 내가 세우두록 허겠수다. 본부 아지트부터 옮기실 장소까지 오십 매 ― 틀 간격으루…….
 
191
제 곤   그럼 수고해줍세.
 
192
용 철   뭐 빠진 거 없나 생각해봅서.
 
193
제 곤   그만 허문 다 됐수다.
 
194
용 철   그럼 빨리들 나가 보십시다.
 
 
195
3인이 각각 악수를 나누고 나가려 할 때 멀 ― 리서 “불이여어”, “불이여어”하는 군성(群聲) 사이를 뚫고 대를 짜개는 듯한 여자의 규환과 아이들의 비명.
 
 
196
용 철   (아래 쪽을 내려다보더니 안을 향하야) 개놈들이 오정 어멍 네다 불을 질렀나 부다.
 
 
197
3인, 증오와 분노에 찬 눈으로 염염(炎炎)히 타오르는 화광(火光)을 응시하고 잠시 서 있다. 을나, 다시 달려온다.
 
 
198
을 나   개놈들이 오정 어멍을 묶어가지구 향교 담길 돌아서 이리로 오구 있수다.
 
199
용 철   여깄다가 동정 좀 살펴라.
 
 
200
송백과 제곤 나가고 좀 떨어져서 용철 나간다. 3인이 나가자 제곤모, 피캐를 해제하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201
제곤 모   (을나에게) 빨리 마루로 올라가라. 미친개 눈엔 몽둥이만 뵌다는데 너두 빨갱이라구 잡아갈지 암디야?
 
 
202
을나, 마루로 올라간다. 그리하야 물레를 끌어내놓고 물레질을 한다. 붕붕 하는 느릿한 물레 소리와 함께 솜에서 실이 곱게 뽑혀 나온다. 이때 더러운 욕지거리와 함께 화북지서장 오난수와 형사 전병술, 서북청년회 감찰부장 선우기승이 졸도들과 함께 만삭된 해녀 진옥을 끌고 행길로 들어온다. 지서장은 일제 고등계 형사로 신의주서 도주해온 자이고, 전(田) 형사는 제주도 출신의 전 사법계 형사다. 남조선 경찰이 다 그런 거와 같이 놈들도 잔인하고 비겁하고 악랄하고 음험하다. 선우기승은 전문학교 출신의 평북지주의 아들로 추방당하여 온 자이다.
 
 
203
지서장   (발을 멈추고 전형사에게) 물 한 그릇 얻어먹구 가세.
 
204
전형사   네. (하고 마당으루 들어오며) 아들눔 안 들어왔어?
 
205
제곤 모   집 나간 지 한 달째우다.
 
206
전병술   (방문마다 전부 열어본 후) 물 한 그릇 떠와.
 
 
207
제곤모, 울화가 치밀지만 꾹 참고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떠다준다. 전형사, 받아서 지서장에게 바친다. 꿀꺽꿀꺽 마신 후 바가지를 돌려준다.
 
 
208
진 옥   (만삭이라 늘어진 듯 어깨로 숨을 쉬며) 아즈마님, 나두 물 한 그릇 줍서.
 
209
전형사   (호통을 친다) 그 썩어빠진 창자에 물은 넣서 뭘 해. 이 개년아.
 
210
제곤 모   애기 밴 사람이니 한 그릇 먹여줍시다. (하고 떠가지고 나온다)
 
211
지서장   내가 맥여주지. (하고 바가지를 가루채서 진옥의 얼굴에다 쫙 끼얹는다)
 
 
212
개놈들, 통쾌한 듯 웃는다. 진옥, 이를 악물고 지서장을 쏘아보며 꾹 참는다. 이때 어업조합이사 량준수 올라온다.
 
 
213
량준수   수고들 하십니다.
 
214
지서장   조합장, 어딜 이렇게 갖다 오십니까?
 
215
량준수   국민학교에 가서 선거에 대한 강연을 하고 오는 길입니다.
 
216
전형사   이번에 참, 선거위원장이 되셨다지요?
 
217
량준수   예.
 
218
감찰부장  어업조합회사에, 대한독촉국민회 지부장에, 또 선거위원회 위원장까지.
 
219
량준수   하나 빠졌습니다. 경찰후원회 지부장이. 하하하.
 
220
지서장   후원회장 명의루 연 한턱 내셔야 할 일이 생겼쉐다.
 
221
량준수   낼 만한 일이카문 내야지오.
 
222
지서장   빨갱이 굴을 쑤셨쉐다.
 
223
량준수   그럼 보불.
 
224
지서장   네. (하고 진옥을 가리킨다)
 
225
량준수   듣든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진옥의 얼굴을 재낀다) 이년아, 잠수문 잠수답게 물에 나가 미역이나 딸 것이지 공산주의가 뭐야. 이 건방진 년아. (하고 스데끼로 그의 배를 꽉 찔른다)
 
226
진 옥   아이코. (하고 뒤로 덜컥 넘어진다)
 
227
을 나   (마루에서 뛰어내려오며) 이러다 애기 떨어지문 어찌겠수까.
 
228
전형사   (악을 쓴다) 네 년두 빨갱이냐?
 
229
을 나   …….
 
230
지서장   나두 빨갱이 새낄 날 바에야 뱃속에서 아주 죽구 안 나오는 게 차라리 나. 해해해.
 
231
량준수   그런데 지서장, 이번 총선거가 어떻게 순조롭게 진행될 거 같습니까?
 
232
지서장   그럼 순조롭게 가지 않구…….
 
233
량준수   어째 난 좀 불안합디다.
 
234
지서장   조금두 걱정마십쇼. 빨갱인 그만 하문 대충 숙청됐소. 거기다 굴꺼지 쑤셨으니……. 대장놈은 놓쳤지만 이년을 족치문 다마네기 껍질 베끼듯 모두 나올 거요. 놈들만 잡아놓면……. 아, 깨끗한 신작로 아닙니까? 그러구 나서 도록꼬 밀듯 일사천리루 총선걸 밀구 나갈텐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235
량준수   그렇게만 된다면 좀 좋겠습니까? 리승만 박사께서 대통령만 되시문……. (하고 어깨가 으쓱한다)
 
236
지서장   제일 몬저 국방군을 편성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삼팔 이북으로 밀구 나가야지요.
 
237
량준수   물론이지요.
 
238
감찰부장  우리들 서북청년원 전부 국방군으루 편입허기루 요전 리박사허구 결정했습니다.
 
239
전형사   빨리 가서 저년을 족치시지요.
 
240
지서장   그러세.
 
 
241
지서장과 전형사, 진옥을 개끌듯 끌고 나간다. 졸도(卒徒)들 뒤따른다.
 
 
242
량준수   (맨 나중으로 나갈려는 감찰부장의 소매를 지그시 잡으며) 술은 내가 가지고 갈 테니 할멈한테 도새끼(豚[돈])나 한 마리 얻어가지구 갑시다. 그래서 지서장 모시구 축배허십시다.
 
243
감찰부장  그럽시다.
 
244
량준수   (제곤모에게) 도새끼 한 마리 기부허게.
 
245
제곤 모   도새끼가 어디 거냥 나는 개똥채미랍디까?
 
246
량준수   서울서 예까지 오셔서 주야불구 허시구 싸우시는 분두 있어. 그까짓 똥멕여 길른 도새끼 한 마리가 그리 중헌가?
 
247
제곤 모   당신 집 도새끼 좀 기부허시구료.
 
248
감찰부장  에이, 싫으문 그만둬라. (하고 권총을 빼서 뒤꼍의 돈사(豚舍)를 향해 빵빵 하고 발사한다)
 
 
249
돼지가 탄환을 맞고 비명을 치며 우리 안을 뛰는 소리. 비명은 신음으로 변하드니 숨이 끊어졌는지 조용해진다. 조금 아까부터 진옥의 뒤를 따라 하나씩 둘씩 모여들어 놈들의 이 모든 만행을 바라보고 섰든 부락의 농민, 해녀들, 분노와 원차(怨嗟) 속에 웅성웅성한다.
 
 
250
감찰부장  비껴, 이 개새끼들아. (하고 군중을 헤치고 량준수와 함께 나간다)
 
251
을 나   (제곤모에게) 따라가보구 오겠수다. 우리 오빠허구 제곤 오빠 들오거든 지서루 갔다구 일러줍서. (하고 급히 놈들의 뒤를 따라나간다)
 
 
252
군중들과 제곤모의 참았든 분(憤)만이 터지기 시작한다. 군중속에는 부장의(夫掌議)라는 60세 된 부락의 노인과 징용나갔다 돌아온 장달, 량준수의 머슴 삼바우도 있다.
 
 
253
제곤 모   (나간 놈들의 등 뒤에다 대고) 대관절 저 오라질놈들이 언제나 섬에서 없어짐수까?
 
254
부장의   (지팽이로 땅을 꽝 치며) 저게 다 리승만이, 김성수 놈이 뒤에서 시키구 있는 거래. 그놈의 단독 선걸 시작헐려구 그 터를 닦구 있는 거래.
 
255
삼바우   (육척거구다. 포효하듯) 우리 섬은 이북서 반역질하구 도망 온 저 개눔들 판 되구 말았수다. 경찰은 말할 것두 없구 도청이구 세무서구 허다 못해 국민학교꺼지 우리 섬사람은 모주리 내쫓구 맨 저 개놈들이 들앉구 말았수다.
 
256
뚱뚱한 해녀  돌밭 갈아 농사 진 건 닥닥 긁어다가 그 웬수인 왜놈들 다 갖다 주구 우리헌텐 말이나 돼지밖에 안 먹는 썩은 밀가루허구 강냉이만 주구 있수다.
 
257
장 달   저 개놈들한테 끌려서 북해도루 증용나갔다 오니까 우릴 증용 내보내든 그 개놈들이 도루 그자리에 앉어서 거드럭거리구 있수다. 밥벌일 할래야 대한로총(大韓勞總) 테로단에 들지 않군 들어갈 수가 없수다.
 
258
부장의   한나산이 또 한번 폭발을 허든지 폭동이 한번 일어나든지 좌우간 무슨 동티가 있어야지 그러지 않군 백성이 살 수가 있나.
 
259
부락민   (격앙하야) 그렇수다. 한번 일어나야 허우다.
 
260
삼바우   북조선은 여기허군 아주 딴 세상이 아님수까? 지금 그 개놈들 겉은 친일파, 민족반역자 놈들은 사월 팔일 조구대강이 바시듯 모주리 바셔서 없애버렸으니…….
 
261
부장의   (당목(瞠目)한다) 그게 정말이시냐?
 
262
삼바우   정말이구 말구요. 그것뿐 아니우다. 이 집 고제곤 동무의 말을 들어서 알겠지만 지주놈들의 땅은 모주리 몰수해서 우리들 밭가는 농군들헌테 거냥 노나주지 않았수까?
 
263
부락민들  (의망(意望) 감탄의 소리) 우리두 땅을…….
 
264
제곤 모   거긴 첫째 그눔의 공출이 없잖수까. 세금두 현물세 딱 한 가지뿐이구……. 또 고기두 맘대루 잡을 수 있다구 헙디다.
 
265
부락민들  (의망 속에)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졸 거까?
 
266
장 달   농촌만이 아니우다. 공장두 그렇다구 헙디다. 모두들 인민들 손에 그게 돌아왔다구 헙디다. 그래서 흥남에선 우리헌테 필요한 질소비료가 산떼미루 쏟아져나오구 있답디다. 그리구 황해 제철소선 입으루 무쇨 먹으문 아래루 철로길이 쑥쑥 나온다구 헙디다.
 
267
삼바우   그게 다 쏘련 사람들 덕택이 아님수까. 그 사람들은 정말루 조선 사람을 해방시켜줬구 또 원조해주구 있는 거우다.
 
268
뚱뚱한 해녀  나두 그런 얘긴 들었수다. 그 사람은 사람 차별을 안 한답디다. 미국놈 자식들이야 우릴 개나 돼지루 밖에 더 봄수까?
 
269
삼바우   제곤 동무가 그러는데 이번 쏘·미공동위원회가 깨지게 된 것두 순전히 그 미국놈들 책동이라구 그럽디다. 쏘련 사람들은 어떡허든지 독립을 시켜줄려구 했는데 미국눔들이 유령단첼 삼백애순 개나 맹글어가지구 기어쿠 파탄시키구 말았다구 헙디다.
 
270
부장의   그럼 우리들두 일가권솔 해가지구 북조선으로 가서 살자꾸나.
 
271
제곤 모   허느니 내가 그 말이우다. 그런데 우리 아들 녀석은 밤낮 이남에서 싸워서 여길 북조선처럼 맹글어야 헌다구 움직이지 않수다.
 
272
부장의   허지만 날이 갈수룩 우리 섬엔 저 북에서 쫓겨온 놈들이 늘어만 가는데 그게 될 거까?
 
 
273
제곤, 조금 전에 들어와 부락 사람들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나온다.
 
 
274
제 곤   됩니다.
 
275
일 동   (일제히 그에게 시선을 돌린다)
 
276
제 곤   남북이 통일허구 인민공화국만 서문 여기두 북조선처럼 저 개놈들을 숙청허구 민주건설을 헐 수 있수다.
 
277
일 동   ……!
 
278
제 곤   그러기 위해선 우리들이 맘과 몸을 한테 튼튼히 묶어서 리승만이, 김성수 놈의 단독선걸 두드려부숴야 험수다. 단독정부만 서는 날이문 우린 정말루 죽게 탄압받을 거우다.
 
279
군중들   (흥분하야 웨친다) 단독선걸 깨트려버립시다.
 
280
제 곤   쉬 ―. (하고 급히 막으며) 여기 몰려 있으문 개놈들이 쫓아오기 쉽수다. 재기들 흩어집시다. 지금쯤 집집에 삐라가 들어 갔을 거우다. 그러니 돌아가서 한자 한자 집어가문서 읽읍서.
 
281
삼바우   그럼 가들보십시다.
 
282
부장의   (나가며) 낙심허다가두 우린 제곤이만 보문 기둥처럼 든든해진다.
 
283
부락민들  그렇수다. (하고 동의한다)
 
284
뚱뚱한 해녀  (제곤모에게) 아즈마님은 복입네다. 저렇게 착실한 아드님을 가져서.
 
 
285
제곤모, 만족한다. 부락민들 이양(異樣)한 흥분된 감정으로 서로 이야기하며 각각 흩어진다. 제곤 모자(母子)만 남는다.
 
 
286
제 곤   용철 동무 아직 안 돌아왔습디까?
 
287
제곤 모   아직 안 왔드라.
 
288
제 곤   을난…….
 
289
제곤 모   개놈들 뒤쫓아갔다.
 
 
290
이때 용철, 미행을 살피며 돌아온다. 제곤모는 돈사(豚舍) 쪽으로 나간다.
 
 
291
용 철   (제곤에게) 어떻게 됐수까.
 
292
제 곤   송백 동물 앞세우시고 아지트를 출발허셨수다.
 
293
용 철   그럼?
 
294
제 곤   소털벙거지에 말줄대를 들시구 목자(牧者)루 변장허셨수다. 여럿이 지나가문 의심받기 쉬우니 앞서 가서 여기서 기둘르라구 허셔서…….
 
295
용 철   나두 피캐 다 세우고 왔수다.
 
296
제 곤   (한쪽을 가리키며) 저 ― 기 동백나무 늘어선 논틀루 오시는 게 바루…….
 
297
용 철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훅 쉰다)
 
298
제 곤   (약간 주저하다가) 동무, 그런데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피해 댕겨야만 험수까?
 
299
용 철   우린 피해 댕기구 있는 게 아니라 사업허기 위해 안전한 장소루 옮기구 있는 거우다.
 
300
제 곤   잘 암수다. 허지만 상부의 아지틀 옮겨디릴 쩍마다 가슴 아푸구다. 빨리 우리두 무길 잡구 개놈들을 무찔러버립시다.
 
301
용 철   나두 거기에 대해선 루차 건의해왔수다. 하지만 건의할 쩍마다 꾸중을 들었수다. 무력투쟁이란 전국적 정세에 대응해서 적당한 시기에 조직해야지 아무 때나 할 수는 없다구 허십디다.
 
302
제 곤   그럼 아직두?
 
303
용 철   예, 아직 더 그래두 싸워야 헌다구 허십디다. 그러나 어디까지든지 쏘련의 제안인 량국 즉시 동시 철거를 성공적으루 수행허는 방향에서 사업허두룩 해야 허우다.
 
304
제 곤   허지만 놈들의 탄압이 이렇게 심허지 않수까? 모두들 싸워보지두 못허구 맞어죽구 병신되구만 있수다. 너무두 원통허구 억울헙수다.
 
305
용 철   동무, 지금 우리 제주도 인민이 가장 가혹허구 무참한 탄압을 받구 있는 것은 사실임수다. 상부에서두 우리들을 언제까지나 이렇게 학살 밑에 방임하시진 않을거우다. 지도부에서두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그러니 그때꺼정 기대립시다.
 
306
제 곤   잘 알겠수다.
 
 
307
이때 을나, 급히 뛰어온다.
 
 
308
을 나   큰일 났수다. 개놈들이 부락을 둘러싸기 시작했수다.
 
309
용철·제곤  부락을?
 
310
을 나   예, 동구를 막구 부락에서 나가는 사람을 일일이 수색허기 시작했수다. 이쪽으루두 몇 눔이 오구 있수다.
 
311
용 철   그럼 김선생님은?
 
312
을 나   비서 동무허구 보리밭으루 숨으셨다구 허우다. 마침 김매구 있든 사람이 우리 동무라 호밀 빌려줘서 지금 엎대여서 김매는 척허구 있으시다구 허우다.
 
313
용 철   (제곤에게) 돌아서 가실 길은 없겠수까?
 
314
제 곤   길이야 많지만 논길이나 밭길은 되레 수상하게 뵈기 쉽수다. 내 생각엔 일단 집으로 다시 들어가셨다가…….
 
315
용 철   다시 들어가실 순 없수다. 본부가 이 부락에 있는 걸 눈칠 채구 포위허는 거 아님수까? 지금 뚫구나가셔야지 지금 못 나가시문 아주 못 나가시게 됨수다.
 
 
316
이때 가까이에서 “때려라, 부셔라, 빨갱이”, “바셔 죽여라, 찢어 죽여라, 빨갱이” 하고 야비한 구호를 부르며 서청원(西靑員)들이 이쪽을 향해 오는 소리. 용철과 제곤, 쭈뼛한다.
 
 
317
을 나   (나가보고 들어오며) 개놈들이 이쪽으로 옴수다.
 
318
제 곤   그냥 때려칠까요? 한 댓눔은 자신 있수다. (하고 상의를 벗을려고 한다)
 
319
용 철   (말리며) 벌집 쑤시는 거우다. (잠시 생각에 잠기드니 무슨 결심을 한 듯 을나에게) 내려가서 저 담에 선 생북 말린 장댈 치거든 곧 김선생님 계속해서 출발허시라구 피캐한테 연락해라.
 
320
을 나   어떡허실려구?
 
321
용 철   그건 알 필요없어.
 
322
을 나   (궁금한 채 나간다.)
 
323
제 곤   무슨 묘책이 있수까?
 
324
용 철   놈들은 여기서 내가 딴 곳으루 유도해나갈 테니 동문 여깄다 김선생님께서 들어서시는 대루 모시구 즉시 떠납서.
 
325
제 곤   그건 안 되우다. 놈들을 여기서 딴 곳으루 끌구 나갈려문 희생을 각오해야 허우다. 동문 몸두 약허구 헌데 만일 놈들에게 정체가 발각되는 날이문 그 혹독한 매에 맞어 죽을 거우다. 내가 끌구 나갈 테니 동무가 내 대신 여길…….
 
326
용 철   (덮어 누르듯) 동문 노나서 맡은 책임만 수행합서.
 
327
제 곤   …….
 
328
용 철   이 근처에 숨었다가 내가 놈들을 끌구 나가는 대루 장대를 칩서. 그리구 령마루를 무사히 넘으시거든 뻐꾹새 소릴 세 번 해서 신호해주우다.
 
329
제 곤   (눈물이 글성한 채) 예.
 
330
용 철   그럼 다시 못 만나게 될지두 몰르니 몸조심허구 잘 싸워주우다. (하고 최촉(催促)하듯 손을 내민다)
 
331
제 곤   (격하야) 동무. (하고 굳게 손을 잡는다)
 
 
332
용철은 급히 밖으로 나가고 제곤은 죽림을 헤치고 들어가 숨는다. 제곤모, 뒤꼍에서 죽은 돼지를 들고 나온다. 이때 야비한 구호와 함께 선우기승 이하 서청원들이 경관기동대 한 놈과 들어선다. 서청원들은 대개 미군(米軍) 배급품을 입었고 자전거 용수철, 전선 말은 것, 혁대, 수도 파이프 등을 들었다. 그들의 만행은 잔학비도(殘虐非道) 산비처절(酸鼻悽絶)한 문자 그대로 단말마(斷末魔)적이다.
 
 
333
기동대   여기서 지킵시다.
 
334
감찰부장  (졸도들에게) 그눔 새끼들이 변장엔 이골난 새끼들이다. 정신 바짝 채려라. 그대신 잡기만 허문 톡톡히 먹구 천 원씩이다.
 
335
서청원들  네. (하고 어깨를 재며 거리 길에 늘어앉는다)
 
 
336
이때 용철, 민족청년단의 제복 저고리를 입고 달려온다.
 
 
337
서청원들  웬 자식이야? (하고 소리를 질른다)
 
338
용 철   저 민족청년단이여요. 잠간 알려디릴 께 있어서 왔는데요.
 
339
감찰부장  (쏠깃하야) 뭔데?
 
340
용 철   (그의 앞으로 가까이 가서 목소리를 낮춰) 저 해변가에서 지금 빨갱이들이 비밀회합을 허구 있어요.
 
341
일 동   (일제히) 비밀회합?
 
342
용 철   네.
 
343
감찰부장  몇 놈이나 되든.
 
344
용 철   한 댓눔 되나 봐요. 그 속에 민애청 위원장 눔두 있어요.
 
345
기동대   (약간 떨며) 무기를 가졌드냐?
 
346
용 철   맨손들이여요.
 
347
부 장   멀어?
 
348
용 철   가까워요. 바루 요아래 여울이여요.
 
349
부 장   (기동대에게) 가봅시다.
 
 
350
용철을 따라 개들, 살기등등히 몰려나간다. 그들이 사라지자 제곤모, 죽림을 제치고 아들을 데리고 나온다. 제곤, 나오든 맡으로 돌담에 세운 건어(乾魚) 장대를 높인다. 이윽고 호위하는 청년이 지나가고 송백 들어선다. 뒤에다 신호를 보내니 구투위(救鬪委) 조직부장 김석민 들어선다. 그는 당년 28세, 침착하고 예지(叡智)적이고 과단성이 풍부한 청년이다. 조금만 하여도 얼굴이 소녀처럼 벌개지는 단순한 성격을 가진 일면, 사업에 있어서는 조직적이고 전투적이다. 제곤, 달려가 악수한다.
 
 
351
석 민   수고했소. 그런데 용철 동문.
 
352
제 곤   나갔수다.
 
353
석 민   하로바삐 그 개놈들을 몰아내구 또다시 이런 번거러운 수고가 없두룩 해야겠소.
 
354
제 곤   예.
 
355
제곤 모   아니, 이게 김선생 아님디야.
 
356
석 민   안녕허셨수까?
 
357
제곤 모   고생허우다. 부디 몸조심헙서. 김선생 몸은 혼자 몸이 아니라 우리 제주도 사람 전부의 몸이라.
 
358
석 민   예.
 
359
제 곤   빨리 가시지요.
 
360
석 민   그럼…….
 
 
361
제곤, 앞서 나간다. 사이를 두고 송백·석민 나간다. 뒤따른 호위청년도 지나가고 제곤모, 일행을 바리고 돌아와 죽은 돼지를 물에다 씻을려고 한다. 이때 전병술, 경관 한 놈, 황급히 달려온다.
 
 
362
제곤 모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363
전형사   일루 웬 젊은 년허구 사내놈 지나가는 거 못 봤어?
 
364
제곤 모   언제 말이우까?
 
365
전형사   지금 방금이야.
 
366
제곤 모   똑똑힌 못 봤수다만 웬 젊은 아낙네허구 사내 한 사람이 급헌듯이 선창으루 내려가는 것 같습디다.
 
367
경 관   그놈 자식이 배를 타구 도망할려나 부군요.
 
368
전형사   빨리 그쪽으루 가보자.
 
 
369
두 놈, 눈에 충혈이 돼가지고 해변으로 가는 길로 달려간다.
 
 
370
제곤 모   (그들의 등 뒤에다 손가락질을 하며) 저런 못난 자식들 거드럭거리구 쫓아가는 꼴이란……. 썻썻.
 
 
371
- 막 -
 
 
 
372
2장
 
373
전장(前場)에서 바로 직후.
374
해변.
375
뇌락(磊落)한 흑갈색 현무암이 바닷속으로 내리뻗었으며 해풍에 날리온 하얀 패각이 사이사이에 점점이 쌓여 검은 바위에 아름답게 흰꽃인 양 반영(反映)하고 있다. 바다는 몇 길이나 되는 듯 해록색(解綠色)으로 깊고, 암반(岩盤)의 웅뎅이에는 들어왔다 나간 조수가 못처럼 맑게 괴었다. 한쪽에 화산사지(火山砂地). 폐선 한 척이 기울어져 있어 파도가 애꿎이게 뱃전을 때리고 있다. 멀리 범선이 수면을 미끌어져 간다. 사지(砂地)에는 해당화가 군데군데 솟아 있고 수평선에는 석양이 걸렸다. 갈매기 떼가 후루루 날려와 호(弧)를 긋고 고기를 친 후 다시 비상해간다. 암반 한 구석에는 횡폭 2척 4촌(二尺四寸) 가량의 죽롱으로 만든 애기구덕에 어린애가 재워 있다. 잠수한 해녀의 어린이다.
376
막이 오르면 무대에는 아무도 없고 가까운 수중에서 해녀들의 휙휙하는 연락의 휘파람 소리만 한동안 계속한다. 이윽고 잠수복에 잠수용 안경을 쓴 뚱뚱한 해녀, 물에서 기어올라온다. 주위를 살피고 감시하는 놈이 없는 것을 알자 바다를 향하야 빨리들 나오라고 휘파람을 휙 분다. 해중 이쪽저쪽에서 응답의 휘파람 소리. 이윽고 해녀들 5,6인, 태왁에 어획물을 넣어가지고 물에서 나온다. 그중에는 12,3세의 소녀와 그의 모(母)인 듯한 40세 가량의 장녀(壯女)도 있다.
 
 
377
뚱뚱한 해녀  요행히 개놈들이 없수다. 빨리 옷 말려 입구 갑시다.
 
378
해녀 1   재기 낭구를 해오우다.
 
379
애기를 가진 해녀  난 우선 어린애 젖좀 빨려야겠수다.
 
 
380
애기를 가진 해녀는 애기구덕에서 어린애를 꺼내 젖을 먹인다. 다른 해녀들은 날쌔게 암반과 화산사지를 뛰어다니며 조수에 밀려들어온 태우[俊木] 껍질, 파반목편[破盤木片], 검불 등을 줏어다가 쌓아놓고 불을 피운다. 그리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잠수복을 벗어서 짜가지고 불을 둘러싸고 앉어서 말린다.
 
 
381
뚱뚱한 해녀  (암반에 고인 물에다 얼굴을 비치고 서서 머리를 빗으며) 우뜨루 말째년(막내딸)두 인제 그만허문 제법 한 사람 몫 됐어.
 
382
소 녀   그래두 다섯 길밖에 못 들어가수다. 여덟 길을 훅훅 들어가야 정말 잠수 아닙니까?
 
383
소녀의 모  한 달만 더 허문 여덟 길두 들어갈 수 있지. 첫 숟갈에 배불르지 아니 헌다.
 
384
뚱뚱한 해녀  얼마나 자무탄디야? (하고 소녀의 태왁을 기웃한다)
 
385
소 녀   생북 네 개허구 구쟁이 수무 개 했수다. 밥조개(帆立貝) 큰 거 한 개허구 ……. 아즈마닌?
 
386
뚱뚱한 해녀  난 미역허구 해삼 좀 했다. (동료들에게) 우린 열네 살 때 첨 어멍일 따라 물에 들어갔수다. 그래두 차귀여(遮歸 暗樵)까지 헤엄쳐서 간 건 그 이듬해였수다. 헌데 저 년은 석 달만에 우리 들허구 맞서지 않었수까?
 
387
해녀 1   누군지, 새서방되는 사람 허리를 끌러놓게 됐수다.
 
388
소 녀   아이 아즈마님두 무스거 그런 소릴……. (하고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
 
389
뚱뚱한 해녀  그런 낡은 소리 마우다. 남녀동등이우다. 인젠 우리 잠수부들두 예전처럼 제 남편 안방에 앉혀놓구 빌어먹이든 구습은 없애야겠수다.
 
390
일 동   옳수다.
 
391
해녀 1   빨리 삼팔선이 끊어져야겠수다. 그래야 해금강으루 다시마 따러가지 않겠수?
 
392
해녀 2   그럼 북조선 구경은 우리들이 질 몬점 허게 되지 않겠수까?
 
393
뚱뚱한 해녀  암, 생북 따문서 쉬염 쉬염 놀문서 갑시다.
 
394
소 녀   그럼 김장군도 뵙게 되겠수다.
 
395
뚱뚱한 해녀  뵙다마다.
 
396
소 녀   아이 좋아라.
 
 
397
소녀, 좋아서 깡충깡충 뛰다가 돌연 돌아오며 절규한다.
 
 
398
소 녀   아이코, 아즈마니, 저기 용철 오빠가 테로단헌테…….
 
 
399
일동, 소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다. 이윽고 감찰부장, 기동대원, 서청원들을 인도해가지고 용철 들어온다. 용철의 이마에는 땀이 좍 흐른다.
 
 
400
기동대   어디꺼정 가는 거야. 이 새끼야.
 
401
용 철   이 자식들 어딜루 도망갔어? (하고 폐선 쪽으로 가서 속을 기웃하드니)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없군요.
 
402
감찰부장  이 새끼 누굴 장난감으루 알았니? 어디 빨갱이들이 비밀회합허구 있어? 이 새끼야.
 
403
용 철   확실히 여기서 허구 있는 걸 내가 이 눈으루 똑똑히 봤어요. (하고 해녀들에게) 여기 민청놈들 뫼서 쑤근거리고 있는 거 못 봤어요? (용철, 눈을 찡긋하나 해녀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임기응변하야 대답하지를 못하고 서로 얼굴들만 바라보고 섰다)
 
404
용 철   (돌아오며) 아마 그동안에 흩어진 모양이에요.
 
405
기동대   거짓말 말어. 이새끼야. 금새 있었다는 눔들이 몇 분 두 못돼서 흩어졌단 말이야?
 
406
감찰부장  너 이눔새끼 첨부터 계획적으루 그랬지?
 
407
용 철   그럴 리가 있겠어요?
 
408
감찰부장  다 알아 이새끼야. 우릴 어느 으슥헌데루 끌구 나가서 암살헐려구 그랬지?
 
409
용 철   내가 무슨 앙심으루 당신들을 암살헐려구 그리겠어요. 내가 지나갈 때 확실히 여기서 회합허구 있었어요. 아마 날 봤기 때문에 도망들 쳤나 봐요.
 
410
감찰부장  이눔새끼 바른 대루 얘기 안 허문 혓바닥을 빼버린다. (하고 허리에서 미제형(米製型) 뻰치를 쑥 빼든다) 너 이눔새끼, 남로당이지?
 
 
411
감찰부장이 용철을 뒤로 나꿔채서 넘어트리고 발길로 내리치자 기동대, 서청원들, 우루루 달려들어 난타한다.
 
 
412
용 철   난 민족청년단이에요.
 
413
기동대   민족청년단이 그따우 거짓말을 해? 이 새끼야.
 
 
414
해녀들, 그제서야 눈치를 챈다. 그리하야 쑤군쑤군 눈짓한 후 소녀는 부락으로 동민들을 불르러 가고 뚱뚱한 해녀는 해중을 향하야 모두들 나오라는 신호의 휘파람을 휙 분다.
 
 
415
기동대   (절규한다) 또 무슨 비밀연락이야. 이 개년들아.
 
 
416
감찰부장, 그들을 잡으려고 하자 해녀들 날쌔게 풍덩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어가버린다. 이때 김석민을 추격해갔든 전병술과 경관대 헐레벌떡 달려온다.
 
 
417
전형사   여기 웬 스무나문 먹은 계집년허구 사내눔 지내가는 거 못 봤어?
 
418
감찰부장  못 봤는데요.
 
419
기동대   뭐허는 눔들인데요.
 
420
전형사   계집년이 빨갱이 련락하는 년이야. 대장놈을 빼내가는 거기 쉬워.
 
421
일 동   그럼?
 
422
전형사   지금 막 빠져나간 모양이야. 그런데 동구 밖으루 나가는 눔들 샅샅이 수색허라구 그랬드니 어딜루 어디루들 나왔어?
 
423
감찰부장  동구 길목에 배치허구 있는데 (용철을 발길로 걷어차며) 이 새끼가 와가지구 해변가에서 빨갱이 새끼들이 비밀회합을 허구 있다구 그래서 달려나왔드랬지요. 그랬드니 거짓말이에요.
 
424
전형사   뭐 거짓말? (하고 용철이 앞으로 간다. 그리하야 푹 수그린 그의 얼굴을 재낀다. 순간 환희와 경악의 규성을 친다) 아, 이새끼야. 요눔 새끼가 고제곤이란 눔허구 둘이 댕기문서 도낼 빨갱이 소굴루 맹글어놨어.
 
425
감찰부장  그럼 부용철이란 새끼?
 
426
전형사   그렇소. 저눔자식 아범두 빨갱이요. 면당 책임자루 군정재판에 열 달 먹구 지금 목포 형무소에 있어.
 
427
감찰부장  (한 쪽을 보며) 지서장께서 오시오.
 
 
428
오난수, 급히 달려온다.
 
 
429
지서장   어떻게 됐어?
 
430
전형사   련락허는 년은 못 잡구 지명수배중이든 부용철이 눔을 잡았습니다.
 
431
지서장   부용철이?
 
432
전형사   네.
 
433
지서장   (용철의 얼굴을 재낀다) 네눔이 그 고제곤이 눔허구 돌아댕기문서 헌 죄상에 대해선 다 기억허구 있겠지?
 
434
용 철   …….
 
435
지서장   네눔이 그 자식허구 짜가지구 성내 아루코루 공장 노동자들을 선동해서 파업 일으킨 건 생각나냐?
 
436
용 철   (무언)
 
437
지서장   작년 가을 각 면으루 돌아댕기문서 공출반댈 선동허구 고제곤 놈헌테 농회창고에 불을 질르게 한 건 생각나냐?
 
438
용 철   (무언)
 
439
지서장   생각나, 안 나? 대답해, 이 새끼야. (지서장, 서청원의 자전거 용수철을 뺏어서 용철의 얼굴을 내리치니 나머지 놈들, 피에 주린 이리 모양 그에게 달려들어 난타한다. 용철 그 자리에 졸도한다. 이때 멀 ― 리 영마루에서 뻐꾹뻐꾹 하고 뻐꾸기 소리)
 
440
전형사   삼월달에 무슨 놈의 뻐꾸기야? (하고 오름을 바라본다)
 
 
441
용철, 뻐꾸기 소리가 나자 꿈에서 깬 듯 고개를 쳐든다. 계속해서 뻐꾹뻐꾹 하고 무사히 영(嶺)을 넘는 것을 알리는 신호. 용철, 귀를 기울이고 듣다가 세번째 뻐꾹새 소리가 끝나자 “저 뻐꾸기 소리”하고 감격의 함성을 친다.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방타(滂沱).
 
 
442
전형사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고) 인제야 생각나나 보군요?
 
443
용 철   오냐, 인제 생각난다. 내가 다 했다. 그리구 앞으루두 끝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리익을 위해서 싸울 것이다. (하고 변장하느라고 찾던 민족청년단의 완장을 북 찢어서 지서장의 얼굴에다 팽개친다)
 
 
444
지서장, 살모사처럼 독기가 올라 장화 뒤꿈치로 그의 얼굴을 짓밟는다. 용철의 안면에서는 선혈이 쫙 흐른다. 이때 소녀의 련락을 받고 을나·제곤모를 선두로 부락민들 달려온다. 수중에서는 아까 뛰어들어간 뚱뚱한 해녀를 선두로 20여 명의 해녀군이 떼를 지어 올라온다.
 
 
445
용 철   (혼신의 힘을 다하야 일어나며) 우리두 손에 무기만 잡는 날이문…… 너희눔들 친일파 민족반역잔 모주리…… 총살이다. (하고 기진하야 다시 앞으로 꼬꾸라진다)
 
446
전형사   우리가 죽기 전에 네눔새끼부터 죽어봐라.
 
 
447
전형사, 옆에 있는 경관의 총을 빼앗어 총대로 용철의 두부를 내리칠려고 치켜든다. 찰나, 군중 속에서 뒤늦게 달려왔던 제곤, 총알처럼 튀어나와 그의 총대를 꽉 잡는다.
 
 
448
제 곤   그 동무가 무슨 죄가 있어 그렇게 패는 거냐? 그 동물 이리 내놔라. 이눔 자식아.
 
449
해녀군   (일제히) 이리 내놔라.
 
 
450
해녀들 각자 태왁 속에서 점북 따는 비창, 굴 따는 호미를 쑥 빼들고 쇄도한다. 지서장과 개놈들 전율하야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이 사이에 제곤은 전병술을 등너머로 며다 꽂는다. 해녀군과 부락민들 우루루 달려들어 놈들의 손에서 용철을 탈환한다.
 
 
451
지서장   놓치지 마라.
 
 
452
개놈들, 발악을 하야 총구를 디리대고 용철을 인민들 손에서 탈거(奪去)한다. 해녀군들, 비창을 휘드르며 쫓아간다. 지서장, 위험을 직감하자 용철의 가슴을 향해 피스톨을 발사한다. 총성에 군상이 잠깐 주춤한 틈을 타서 개놈들, 공포(空砲)를 펑펑 쏘아 혈로를 뚫고 질주한다. 군상, 계속해서 쫓아가다가 돌연 날러오는 실탄에 일제히 착 엎드린다.
 
 
453
을 나   (쓰러진 용철을 발견하고) 아이코, 오빠가…….
 
 
454
난투 속에 누가 어떻게 된 줄도 모르고 싸우든 고제곤 외 부락민들, 그제서야 비로소 용철이가 탄환을 맞고 쓰러진 것을 알고 그의 주위로 몰린다.
 
 
455
제 곤   (그를 부등켜안고 일으키며) 동무, 용철 동무, 정신 채리우다.
 
456
용 철   (그의 손을 끌어 가슴으로 가져가며) 동무들, 내 원쑨 갚어줍서. (하고 최후의 힘을 다하야 상체를 든다) 그리고 인민공화국, 인민공화국을 꼭 세워주우다. (하고 숨이 끊어진다)
 
457
제 곤   아이코, 저기 용철 어멍이……. (하고 일방(一方)을 가리킨다)
 
 
458
일동, 고개를 숙이고 통로를 비켜준다. 용철 어머니 미칠 듯이 달려온다.
 
 
459
제 곤   대관절 어느 눔이?
 
460
을 나   어멍. (하고 어머니의 가슴에 엎더져 운다)
 
 
461
용철 모(母), 아들에게로 달려가 얼굴과 몸을 쓰다듬으며 운다.
 
 
462
제 곤   용철 동무, 인민공화국은 반드시 설 것이우다. 그리고 동무의 원쑨 기어쿠 우리 손으루 갚아주겠으니 안심 허시구 눈을 감수다.
 
463
용철 모   (더 한층 가슴이 터져 아들의 온 몸을 미칠 듯이 어루만진다)
 
464
제곤 모   (용철 모를 일으키며) 고정허게, 고정해.
 
465
제 곤   (용철 모에게) 뭐라고 여쭐 말 없수다.
 
466
용철 모   (비통과 분노에 안근이 경련하며 혁명가의 어머니답게 침착히) 우리 용철인 조선인민의 아들이우다. 인민을 위해서 싸우다 죽은 거니 한될 건 없수다. 허지만 한 가지 섭섭한 건 즈 아버지가 형무소에 계셔서 자기 아버지 얼굴두 못 보구 죽은 것이구, 또 하난 밤낮 피신해댕기느라구 에미 자식 새라구 밥 한끼 한상에 같이 못 먹구 이렇게 원통히 죽은 게 가슴이 맺힐 따름이우다.
 
467
일 동   (숙연히 고개를 숙인다)
 
 
468
어느듯 주위에는 황혼이 나래를 폈고 해면이 여광(餘光)으로 희미하다. 깃 찾어가는 갈매기의 끼룩끼룩 하는 울음 소리만이 먼 섬으로 흘러간다.
 
 
469
제 곤   (조용히 일어서며) 모두들 용철 동무의 명복을 빌어 묵상을 올립시다.
 
 
470
일동, 탈모 명목(脫帽 暝目).
471
나즉한 추도가는 황혼의 정적을 뚫고 지심(地心)에 파들어간다. 여자들 중에서 울음이 터져 잠시 걷잡을 수 없는 통곡으로 화(化)한다.
 
 
472
을 나   (앞으로 나온다) 동무들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죽다간 우리 제주도 사람 씨두 안 남겠수다. 모두들 오빠 원쑬 갚으러 지서로 갑시다.
 
473
부락민들  (기다렸다는 듯이 웨친다) 갑시다.
 
 
474
분노와 비통 속에 싸였던 부락민들, 요원(燎原)에 불이 붙은 듯 “왁”하고 함성을 올리며 지서를 향해 쇄도한다.
 
 
475
제 곤   (그들의 앞에 가 막아서며 말린다) 동무들, 이렇게 계획두 없이 몰려가서 어떡헐 작정이십니까?
 
476
을 나   지서에다 불을 질러버리구 오겠수다.
 
477
삼바우   한나산이 폭발해서 개놈들이 죽길 기둘를 순 없수다. 저리 비키우다.
 
478
해녀군   저리 비키우다.
 
 
479
군중, 살벌하야 막혔던 보(洑)가 터진 듯 아우성을 치며 몰려가려고 한다. 제곤, 필사적으로 제지하며 선두에 서 있는 을나를 뒤로 콱 밀어제친다. 을나, 덜컥 뒤로 쓰러진다.
 
 
480
제 곤   동문 그만한 건 알제만한 사람이 이렇게 미치광이처럼 날뜀수까?
 
481
을 나   ……? (불만스럽게 쏘아본다)
 
482
제 곤   (일동에게) 동무들, 이런 일은 비단 오늘만 일어난 일이 아니우다. 그리구 또 우리 화북에만 있는 일이 아니우다. 이렇게 무계획적으로 몰려갔다간 고연한 희생자만 내구 용철 동무의 원쑤두 못 갚을 것이우다. 되레 그 동무 죽엄을 개죽엄을 시킬 것이우다. 우리가 놈들을 무찔를려면 조직적이구 계획적이래야 허겠수다. (자기 가슴을 치며) 낸들 어찌 뛰어가구 싶지 않겠수까? 오늘은 분허드래두 눈 꾹 감구 참읍시다. 그대신 평화적 시위루 나갑시다.
 
483
부장의   고제곤의 말이 옳아. 저 사람두 생각이 있을 거라. 그러니 오늘은 저 사람 말대루 눈 꾹 감구 참읍시다.
 
 
484
군상, 불만스럽지만 책임자의 말을 믿어 발걸음을 돌린다. 을나는 못마땅하야 씩씩거리고 섰다.
 
 
485
제 곤   (을나에게) 내 말이 좀 과했다. 용서허라.
 
486
을 나   아니우다.
 
 
487
민애(民愛)청년들, 용철의 시체를 메고 일어선다. 그리하야 스크람을 짜고 인민항쟁가를 고창(高唱)하며 사장(沙場)을 돌아 부락을 향해나간다. 용철 모는 제곤 모에게 부축되어 뒤따른다.
488
해면을 달리는 마파람 소리.
489
제곤, 혼자 어둠 속에 남는다. 일행을 보내고 나니 참았던 울음이 일시에 북받쳐 폐선 가장이를 붙잡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끼룩끼룩 하는 갈매기 소리.
490
송백, 소리도 없이 나타난다.
 
 
491
송 백   제곤 동무.
 
492
제 곤   송백 동무. (하고 그를 부둥켜안고 운다)
 
493
송 백   …….
 
494
제 곤   동무, 빨리 지시를 주우다. 언제꺼정 피밥만 먹구 이렇게 학살만 당허구 있을 꽤까?
 
495
송 백   동무, 상부에서도 이런 야만적 학살에서 살 길은 무길 들구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데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신 것 같수다.
 
496
제 곤   그럼?
 
497
송 백   예, 모두들 산으로 올라가서 빨찌산 일으키기루 했으니 동문 전청·전농·민애청·민주학생련맹·녀맹 등 민전 산하의 단체에서 용감허구, 또 비밀보장 할 수 있는 동물 뽑아서 그 명단을 래일 오후 세 시까지 올리두룩 헙서.
 
498
제 곤   (감격하여) 예.
 
499
송 백   그리구 무기·군복·망원경·식량·기타 전투에 필요한 물장, 있는 대루 구해서 즉시 올리두룩 헙서.
 
500
제 곤   즉시 지시대루 시행허겠수다. 우리 제주돈 숲두 많구 오름두 많구 빨찌산 허기엔 아주 똑 알맞수다. 인제야 말루 용철 동무 원쑬 갚아주게 됐수다.
 
501
송 백   그럼. (하고 손을 내민다)
 
502
제 곤   (굳은 악수)
 
 
503
시위대열의 인민항쟁가는 어느듯 멀리 들려온다.
504
이윽고 개놈들의 연속적인 발포 소리. 그러나 대열은 조곰도 무너지지 않고 노래 소리는 정연히 무거운 압력을 가지고 밀고 나간다. 모 ― 진 조풍(潮風) 소리. 송백은 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제곤은 시위대열의 뒤를 쫓아 급히 달려간다.
 
 
505
―막―
【원문】제 1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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