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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死)의 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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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4·5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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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死)의 행렬
 
 
 

제1장

 
 
3
“반동 쎅트 시인 이혁 A급 C ─”
 
4
하고 외치다시피 하는 소리에 이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 의외였다. 그는 일단 자기의 귀를 의심해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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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쎅트? 반동A급?”
 
6
그는 자기 고막에 남은 심사원의 탁한 말소리의 여음을 주워모아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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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막에 남은 여음은 분명히 A였다. B나 C라면 좀더 강한 여음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유하고 부드러운 진동밖에 남아 있지 않았었다. 에이 ─ 정녕 쎅트 A라 했다. 반동이라 했고 또 A라 했다! 끝은 분명 C였다.
 
8
‘잘못이겠지! 무슨 착오겠지!’
 
9
이혁은 이렇게 생각했었다. 자위하자는 데서가 아니었다. 어디다 내세워도 부끄러울 데 없는 혁이었다. 해방 이후 꾸준히 반동분자들과 비린내가 훅훅 끼치는 투쟁을 해온 자기가 아니냐? 그 이혁이가 반동이 될 리가 있었던가? 쎅트란 더욱 말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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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 똑같다면서도 장안파니 정통파니 하고 싸움질을 할 때는 참석도 못한 혁이었지만, 근로니 인민이니 같은 공산당이 남북으로 나뉘고 소련파다, 조공파다, 그것이 다시 김일성과 박헌영, 무정 등의 직계니, 방계니 하고 주먹질을 했을 때도 그는 초연히 앉아서 자기의 할일만 꾸준히 해온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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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 일에 파가 무슨 파가 있소? 우리는 오직 일만 하는 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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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해온 혁명시인 이혁이었었다. 그 혁이한테 쎅트란 당치도 않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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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다. 그렇지 않으면 모략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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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이혁은 이렇게 생각했었다. 믿었었다. 그렇기에 그는 처음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자기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그들은 백배사죄하리라 했던 것이다. 아니 그는 유쾌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마치 진짜 형사가 가짜 형사한테 끌리어갈 때와 같은 근지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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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는가 보라지? 어디로 가서 뭐라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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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은 이렇게 생각하고 혼자 속으로 웃고 있었다. 사실 이혁을 반동이라 함은 당치가 않았다. 쎅트란 말은 더욱 조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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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며칠만 더 늦게 왔었더라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이혁이었다. 더욱이 최근 일년간은 이 세상에서는 옴치고 뛸 수 없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자기의 생을 개척하는 길이란 오직 자기 자신의 생을 스스로 사퇴하는 길밖에는 없다고까지 단념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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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난 일년간 이혁은 피뜩피뜩 그런 생각을 해왔었다. 죽어버린다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방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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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그것은 네가 신념이 없기 때문이다! 신념이. 싸우면 최후에는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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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은 자신을 이렇게 타일렀었다. 그래도 죽음에 대한 유혹을 받으면 그는 자기네가 승리할 날의 그 찬란을 눈앞에 그리어 보고는 했었다. 해방 다음 해부터니까 오 년 가까이 되는 셈이었다. 이 오 년 동안 늙은 어머니와 처자들의 생활을 통 돌보아주지도 못했었다. 사 년간은 일을 하느라고 그랬었고, 이 일년간은 피해다니느라고 그래왔었다. 혁은 그 어머니를 생각했고 아내를 생각했다. 어린 삼남매를 눈앞에 그리어 봄으로써 이 정신적인 고비를 넘기기도 해왔었다. 그러나 역시 그가 자살의 유혹에서 이겨온 것은 최후에는 승리한다는 신념에서였다. 혁은 과거 오 년 동안 좌익운동을 해온 사람이었다. 해방 전까지는 아니 해방 후 일년 동안도 서정적인 시만을 써온 그가 어떻게 되어 그런 정치운동의 회오리 속에 휩쓸려들어가게 되었는지는 그 자신도 기억이 분명히 않을 정도다. 변변치 못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변변치 못한 일이나, 혁은 그렇게 정치운동에 끌려들어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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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십년 가까이 버들가지에 앉아 제멋대로 봄을 노래하는 꾀꼬리 그대로의 시만을 써 온 혁이었었다. 계절과 젊음과 이 생을 마음껏 즐기고 노래하며 새들의 뒤를 쫓아다니는 철없는 아이들한테‘악마의 씨’라는 소름끼치는 이름으로 불리던 혁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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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그 몇천대 손이던가, 조그만 손아귀에 독 들은 돌을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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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 조상이 살아온 본을 떠 봄이 흥겨웁고 가슴이 터질듯이 용솟음치는 생의 희열을 억제하느라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꽃과 새들을 즐기는 어린아이들을 악마에 비유하여 이렇게 저주한 시인 혁이었었다. 그 혁이가 꾀꼬리의 노래 소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네의 생을 예찬하고 즐긴 인생의 노래를 만가(挽歌)로 삼고 메뚜기의 다리나 꽃나무의 가지가 아니라, 피를 나눈 동족의 목숨과 팔다리를 꺾고 자르고 한 그런 무리들의 운동에 뛰어들어갔다는 것을 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고 생각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혁 그 자신도 매양 이렇게 대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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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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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그가 장황한 말을 피하고 싶어할 때에 한하여 취하는 태도였었다. 정말 토론을 해야 할 경우라든가 자기의 변절이 친구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는 듯싶은 눈치가 보일 때면 도리어 물줄기 같은 그의 열변이 터지는 것이다. 어디서는 천재라고까지 일컫던 혁이었었다. 앵무새도 옮길 수 있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쯤 한번만 들으면 그만이었다. 혁은 입에 거품을 부걱거리며 자기의 변절을 합리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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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앵무새는 언제까지나 앵무새다. 그의 열변 ─ 아니 웅변은 역시 그들의‘영명하신 지도자’님네의 재판이었음에 지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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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렇게 된 데 대한 설명은 역시 그가 마음 없이 하던 “나도 모르지 ─.”이 말이 더 어울렸고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도리어 진실이었을 것이다. 서정시인 이혁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물이 얼마나 깊은가를 재어본답시고 야금야금 들어가다가 쑥 들어가고 만 형상이었다. 천석지기의 아들이라는 복된 환경에서 소년시대를 보낸 혁이었다. 위로 누님이 넷이나 있었다. 아래로는 둘이나 된다. 아버지는 더구나 양자시었다. 이 칠남매 속에 톡 빌거진 독자가 혁이었다. 만석꾼은 하늘이내고, 천석꾼은 땅이 낸다고 하는 천석꾼의 외독자다. 거기다가 그의 아버지는 뿔관을 쓰던 양반이었었다. 막대한 돈과 나는 새쯤은 호령 한마디로 떨어뜨릴 수 있는 세도를 가진 집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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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개 장안에 ‘안성만물전’이란 가게가 있었다. 요새 말로 백화점이다. 이 안성만 물전은 혁이네 땅이 안성에 있었던지라 지명에서 떼어온 이름이다. 구태여 상점을 내어야만 먹고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일년에 열일곱 번이나 되는 제사 흥정이 주였지만, 혁이의 군음식을 위해서 낸 상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일은 물론 옥선동이니 잣산자니 가다빵 눈깔사탕 ─ 이런 것은 순전히 혁이를 위해서 벌여놓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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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에서 소녀시대와 청년시대의 대부분을 살아온 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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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런 환경 속에서다. 혁의 의사는 그대로 진리였다. 혁의 말에 거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시에 또 혁은 그 어느 사람의 명령에도 거역을 할 줄 모르는 귀공자이기도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권세와 세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만 보고 자란 혁은, 자기가 그 세도와 권세를 부릴 때도 무섭지만, 남이 부릴 때도 무섭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배워온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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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은 자기 아버지 호령 한마디면 상것들이 사시나무 떨 듯하는 것을 보고 자랐었다. 나이 어린 자기 말에서도 상것들은 고양이 앞에 쥐였다. 그러나 양반이 없어지고 돈이 없어진 자기는 이제부터는 세도와 권력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남이 부리는 세도와 권력 앞에서 벌벌 떨어야 할 사람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권세와 돈을 잃은 귀공자 앞에 처음 나타난 것이 헌병이었다. 다음이 순경이었다. 경관 앞에서는 맥도 못쓰는 아버지를 발견한 것은 혁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놀람이었고 공포였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아버지가 일개 순경 앞에서도 벌벌 떤다. 돈이 없어진 뒤로는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던 하인들도 큰소리를 탕탕 하고 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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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옛날만 생각하나? 음지도 양지 될 때 있답니다. 왜 이리 큰소리요. 호령은 무슨 호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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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없고 돈없는 인간쯤은 셋넷 대매에 때려죽여도 끄떡없던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가 일개 하인한테서 갖은 욕을 다 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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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놈 봐라. 이 죽일 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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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발만 동동 굴렀지 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때려죽였을 인간을 어쩌지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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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눔? 어따 대구 이눔 저눔야. 나두 손주가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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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를 가졌던 사람이 권세를 잃었을 때의 실로 가련한 장면이었다. 권세란 이렇게도 좋은 것이었던가 했었다. 돈이란 이렇게나 큰 힘을 가진 것이었던가 했었다. 그 권세도 돈도 인제는 다 잃었거니 생각할 때 귀공자 혁이는 아주 기운이 푹 죽어버렸었다. 권세를 빼앗겼을 때는 그 앞에 가서 굴복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혁이는 배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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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아버지가 돌아간 후로의 혁은 끽소리 못하고 살아온 셈이었다. 혁은 우미관 앞에서 쌈패를 만난 일이 있었다. 쳐다보지도 않는 혁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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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식 길을 가면 그냥 갔지 왜 사람을 힐끗 쳐다보구 가는 거야.”
 
40
이렇게 시비를 걸었다. 그자는 멱살을 바짝 추키어잡고 흔들고 섰다.혁은 피뜩 그 쌈패는 자기 아버지요 자기가 상것이라는 착각을 일으켰다. 일체의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 앞에서 일체를 잃어버린 자기는 모름지기 어렸을 적 하인들이 자기 아버지 앞에서 한 그대로 비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싶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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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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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는 없었다. 억울은 했지마는 그렇게라도 해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이 수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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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 사람을 목욕(그는 모욕을 목욕이라 했었다.)해놓구서 미안하다면 그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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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가 무섭게 철컥 올려붙이는 것이다. 그러려니 사람들이 좍 몰려들었다. 죽이라느니 한번 치라느니 주고받고 하는데, 웬 한 친구가 나와서 사화를 붙인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니 그럴 것 없이 술이나 한잔 사고서 사화를 하라는 것이다. 동패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혁은 일원짜리 두 세장을 잡히는 대로 쥐어주고는 뺑소니를 쳤던 것이다. 혁이가 스물네댓 살때 일이었다. 말하자면 혁이가 권세와 돈을 싹 빼앗긴 후로 처음 맛을 본 권세와 돈의 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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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체험한 공포가 동대문 사건이다. 혁은 학생사건의 조종자라는 죄명으로 구속이 되었었다. 근거없는 죄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밝혀지기까지에는 만 열흘이 걸렸었고 밤 열두시면 으레히 끌어내었었다. 그럴 때마다 혁은 기절을 했었다. 볼기짝 살이 점점이 떨어져나갔었다. 놈은 격검대 사이에 낀 살점을 손으로 뚝뚝 잡아떼어 던지고는 소리를 치며 내려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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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혁의 앞에 나타난 공포가 바로 공산당이다. 실상 말하자면 이 나라 백성한테는 일본 제국주의가 최대 공포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혁이와 같이 조그만 저항도 없이 살고 있는 사람한테는 제국주의도 개처럼 온순했었다. 피를 빨리든 살점을 떼우든,그저 묵묵히 풀뿌리만 캐어먹고, 누우라면 눕고 서라면 서는 백성은 제국주의 일본한테는 있을수록에 대견한 존재이었을 것이다. 불온사상을 갖지 않았고‘후데이센진’이 아니기만 하다면 많을수록에 식민지 정책은 팽창할 것이다. 아니 그런 무골충을 양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장려도 했고 상도 주면서 사탕발림을 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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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산주의는 안 그랬다. 왜정 때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좋아도 했고 상도 주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안 그랬다. 반역하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만히 있어도 반동이었다. 팔을 걷고 나서서 칼부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계급 여하를 막론하고‘민주주의 공산당’에 항거하는 반역도배라는 것이다. 혁이도 이 부류에 든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혁을 맨 처음 찾아온 것은 음악평론가 박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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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이 군, 자네 어쩔라고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 격인데 이렇게 죽치구 들어 앉았기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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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은 어이가 없어했다.
 
50
“죽치구 들어앉긴, 내가 왜 죽치구 들어앉어? 쓰구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감격이 너무 커노니까 시가 되지 않아 그렇지! 자네 참,‘내 조국의 품에 들라’읽어보았나?”
 
51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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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인지 박관은 코웃음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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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그래,자네 지금이 어느 땐데 그런 실 쓰구 있는 겐가? 죽치구 들어앉았다니까 안방에 들어 처박혔단 말인 줄 알았던가? 새로운 민족의 역사가 창조되는 이 순간에, 아아니 뭐? 민족? 끽 피토하듯 했다는 시가 케케묵은 민족애 타령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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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55
“이 사람 눈을 떠야 하네. 들어보게. 이 땅에는 새로운 역사 바퀴가 돌고 있네. 저 아우성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저 보게나, 깃발을!”
 
56
그때 마침 무슨 공장의 직공들이“아! 원수의… 원수의…”를 고함치며 그 넓은 길이 터지게 흐르고 있었다. 기폭과 플래카드가 물결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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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그러지 말고 동맹에 나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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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정치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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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가 아니니까 문학가동맹에 나오는 게지!”
 
60
문학가동맹과 문필가협회가 대가리가 터지게 싸울 무렵이었다. 혁의 이름이 하루는 문학가동맹에 섞여 나왔었다. 그것을 보자 문필가협회에서 달려왔다. 조직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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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여보, 이 형, 미쳤소? 정말 우린 신문을 보고 놀랐소. 이혁이 문학가동맹이라니 말이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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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안 되는 말이었다. 혁 자신 지금까지도 걸어온 길로 보나 장차 걸어갈 길로 보나 문학가동맹원은 아니었다. 동맹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이혁의 이름이 끼였다는 사실도 혁은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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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모르는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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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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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부장 김관수는 반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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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렇지, 이 형이 그럴 리 있겠소? 우리도 다 그렇게 생각했었소. 이 형이 설마 놈들한테 휩쓸리어 조국을 파는 매국 매족 행위를 할까부냐구! 특히 유진성 씨가 굉장히 분개합디다. 절대로 그 사람만은 그럴 리 없다구!”
 
67
유진성은 혁의 선배였다. 나이로도 선배려니와 문학으로도 그랬었다. 시를 쓰다가 소설과 희곡으로 전환한 후 유진성의 이름은 더한층 빛나는 터다.
 
68
“오길 잘했구려. 참 고맙소! 그럼 또 만납시다. 자주 연락합시다.
 
69
조직부장 김관수는 붙들 사이도 없이 으스러지게 손을 잡아흔들며 일어서 나갔다.
 
70
밖에는 눈이 펄펄 날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71
그런 지 바로 사흘 후였다. 혁은「문단」사에 들렀다가 호텔 앞에 지나던 길이었다.「문단」은 민족진영에서 나오는 월간지였다. 이월달 여섯시는 벌써 어두웠었다. 혁은 우울했다. 몸뚱이 하나를 양쪽에서 찢어대는 것이다.
 
72
‘서로 이름을 내면 어떻게 되지?’
 
73
혁은 이런 생각에 잠긴 채 외투 깃을 세우고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점심도 못했으니 시장기도 몹시 든다. 호텔을 막 지나치려 할 때였다. 누가 등을 탁 친다. 보니 박관이다. 그 옆에는 송연이가 거나하니 취한 몸체로 상체를 번듯이 제키고 서 있었다.
 
74
‘이 반동분자 새끼!’
 
75
말은 않으나 이런 몸체였다.
 
76
“가지!”
 
77
“어딜?”
 
78
“술 한잔 해!”
 
79
“톤톤데 메율라!”
 
80
박관의 대답이었다.
 
81
“뭐 우리 프롤레타리아의 돈으로 먹자는 겐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서 맹활약을 하는 민족주의 시인의 원고료로 한잔 먹자는 게지! 여! 민족진영의 대시인 이혁 선생! 동족애를 발휘하시어 한잔 사시오.”
 
82
“오늘 마침 수중이 비어서 ─”
 
83
돈만 있었다면 술 아니라 더한 것도 사겠노라 했다. 그러나 사실 그날의 혁의 주머니 속에는 담뱃가루만 수북했었다. 그러나 의식적인 그들한테야 이런 말이 통할 리가 만무였다. 혁은 기어코 술을 빼앗기고야 말았었다. 그의 팔뚝시계는 술값으로 바꾸어졌던 것이다. 시계의 제값을 받기나 하여야 겨우 갚을까 말까 할 액수였다.
 
84
“어쨌든 정신차려라! 만약에 다시 협회에 가는 날이면 사흘 안으로 없어질 줄 알아라!”
 
85
술을 실컷 빼앗아먹은 다음 헤어질 때 할 말이었다. 동맹에 나오지 않아도 ‘없고’,아무리 협회에서 임의로 이름을 내었다 해도 그 책임은 본인한테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럴 때는 바로 신문에 성명서를 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문은 지정이 되었다.
 
86
‘노동신문’·‘민주보’·‘독립신문’,신문광고도 민족진영 신문에는 게 재치 말라는 것이다. 일찍이 권세와 돈의 무서운 세도만을 보고서 자란 젊은 시인은 이날 저녁 자기는 이 무서운 권력 앞에서 어떤 처세를 해야 할 것인지에 잠도 못 이루었다. 결론은 될 수 있는 대로 이쪽에도 가담 않고 저쪽에도 슬슬 비위나 맞추며 살리라 했던 것이다.
 
87
그러나 그것은 공산당한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혁은 하룻밤 기어코 뭇매를 맞았었다. 열흘 동안이나 옴직도 못했었다.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난 때 박관이 또 왔었다. 음악평론도 다 집어치우고 박관은 오직 조직에만 골몰하는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에 전체대회가 있었다.
 
88
거기에 나가자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혁은 가기로 했다. 문 밖에 서넛이 어정댐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그가 좌익에 내디딘 첫발이었었다. 그 길로 야곰야곰 끌려간 것이 오늘날 그가 된 위치였다. 물론 혁은 처음에는 이쪽 저쪽을 교묘히 다니었었다. 그러나 소위 자기비판을 호되게 받은 이후로는 그러지도 못했다. 그는 명실공히 좌익이 되고 말았었고, 혁명시인이 되었었고, 투사가 되었었다. 그는 몇 가지 습격 사건에도 가담을 했었다. 그는 어느덧 당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기계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물이 깊은가 하고 호기심에 끌리어 야곰야곰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가다가 푹 ─ 들어가버린 어린아이들과 똑같은 경로였었다. 아이는 다시 헤어나와볼 기력을 잃고 말았다. 그도 그랬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열성분자가 되었던 것이다.
 
89
이렇게 사 년이 흘러갔다. 과거의 서정시인 이혁은 당당한 투사가 된 것이었다. 어느덧 시대는 바뀌어 공산당원만이 권세를 부리던 시대는 가고 말았다.
 
90
‘원수의 이 원수의’가‘동해물과 백두산’으로 변하자, 그들은 두더지처럼 지하도를 뚫고 들어갔었다. 혁도 그들과 함께 지하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시인 이혁의 이름과 그의 이름은 벌써 이 땅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았었다. 삼팔이남에는 대한 민국이 섰고 국제연합이 승인을 했었다.
 
91
붉은 기 대신 태극기가 온 세상을 뒤덮듯 하고 있었다. 혁은 이런 위치에선 채, 저 6.25를 맞고 오래간만에야 한숨을 휴 돌렸던 것이다.
 
 

 
 
 

제2장

 
 
93
그날 이 시각에 혁은 다락 속에 있었다. 처갓집이었었다. 최근 일년간은 마음놓고 자기 방에서 잘 수도 없는 몸이었었다. 그한테 이 소식을 전해준 것은 그의 장모였다.
 
94
“자나?”
 
95
반침 문을 똑똑 뚜들기는 소리가 났다. 혁은 잠이 깨어 있었다.
 
96
“왜 그러셔요?”
 
97
반침 문이 사르르 열린다. 육십 노파치고는 몸이 잽싸다. 상큼 다락턱으로 올라서더니 부리나케 문을 닫는다.
 
98
“왜 그러셔요!”
 
99
노파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혁은 가슴이 또 뜨끔한다. 누가 가택수색을 온 것이나 아닌가 했던 것이다. 놀라 일어나는 사품에 혁은 뒤통수를 들보에 들이받었다. 혁은 이 처갓집 다락 속예서 벌써 보름째였었다
 
100
“아아니, 왜 그러셔요?”
 
101
“큰일났네! 38선을 넘어서 막 쳐들어온대!”
 
102
“난 또 뭐라구 ─”
 
103
혁한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늘 쳐온다 쳐온다 말뿐이었다. 이제는 오직 그것만을 믿고 살아온 혁이었었다. 탱크로 좍좍 내려미는 날 오직 그 날이 오기만 빌고 살아오던 혁은 벌써 열 번 가까이나 속아만 왔었다. 시월폭동 때도 그랬었다. 폭동만 일으키면 쫙 내려밀어올 게니 마음놓고서 행동을 하라는 지시였었다. 좌익에서는 누구나 그것을 믿었었다. 다 때려죽여도 붉은 군대만 들어오면 그만이었다.
 
104
그러나 시월폭동은 이 강산을 피로 물들이었을 뿐이었었다. 오월 통일설이 또 전해왔다. 메이데이를 기하여 남북통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에서도 이에 호응하라는 것이다.
 
105
그 오월도 또 피만 흘렸었다. 선량한 대한민국 백성들은 이름있는 날이면 으레껏 뚜드려맞기만 했었다.
 
106
다시 팔월설이 왔다. 8·15에는 서울에서 축하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각 지방 조직을 통해서 대의원도 뽑으라 했었다. 대의원도 뽑았었고 식 준비도 암암리에 했었다.
 
107
그도 거짓말이었다. 팔월이 시월이 되었고, 다시 이듬해 춘기공세로 되었다.… 이러기를 만 사 년 햇수로 오 년이었다. 도합하면 열 번은 되었을 것이었다.
 
108
6·25 해도 그랬었다.
 
109
말은 있었다. 그러나 바로 한달 전인 오월 일일의 진격설에 또 한번 속아온 후였었다. 오월에 속은 화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었다. 그 혁의 귀에는 장모의 말도 곧이들리지가 않았었다.
 
110
“아니 이 사람, 정말일세. 모두들 야단야. 피란들 간다구 벌써부터 법석야. 집집마다 군인을 찾아다니구!”
 
111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대수롭게 생각지 않은 혁이었다. 하도 속고 속아서 인제는 지쳐 나자빠진 격이었다.
 
112
이러한 혁이가 6·25의 진상을 파악한 순간의 기쁨은 비할 데가 없었다. 혁은“괴뢰군 삼팔선을 넘어 대거 남침 개시.”라는 주먹만큼한 신문 타이틀에도 오자투성이인 신문을 들고서‘반동신문’의 낭패한 꼴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113
“자식들, 꼴 좋다…”
 
114
혁은 일년 만에 쓴웃음을 웃었던 것이다. 햇수로 치면 사 년째 웃은 웃음이었었다.
 
115
국군은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를 했다. 서울은 하룻밤 사이에 새빨개지고 말았었다. 이 새빨개진 서울 거리에 나선 혁은 비로소 빛을 보았었다. 새 세상을 맞아서 혁은 정말 눈부신 활동을 했었다. 어머니도 살아 계시었었고 처자도 다 무사했었다. 보위대에는‘반동분자들의 제물’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있었다. 쌀도 있고 옷도 있었다. 돈도 많았다. 혁도 그것을 나누어 가졌었다. 혁은 먼저 반동분자 숙청에 가담했었다.
 
116
그의 성격상 살상은 싫었다.
 
117
그 대신 혁은 각 문화단체의 반동분자 리스트를 만들어 십여 일을 두고 심사를 했었다. A·B·C로 나누었다. A는 악질이었다. B는 극형은 면해도 일에는 참섭을 시키지 않기로 된 것이었다. C는 포섭을 해보도록 노력은 하되 당분간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부류였었다.
 
118
이렇듯 눈부신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혁 자신도 몰랐다. 심사가 끝날 무렵에 가서야 그는 처음으로 안 것이었다. 북에서 온 문화인들의 태도가 이상했던 것이다. 어딘지는 모르나 감정이 통하지 않는 것도 같았다.
 
119
그러나 그것도 처음 동안이었다. 열흘이 지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단계에 이르자 이남과 이북 사이에 커다란 장벽이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니 같이 북에서 온 패중에서도 소련 직계니 김일성 직계 방계, 월북파에도 최승희 직계 방계 누구파 누구파가 있었고, 거기에 또 완전히 숙청을 당한 연안파의 저류가 흐르고 있었다.
 
120
“헤게모니가 문제가 아니야! 요는 일이지! 누가 일을 많이 하느냐가 ─”
 
121
혁은 그들을 조롱하듯 이렇게 같은‘동무’들을 나무랐었다.
 
122
그것은 무서운 암투였었다.
 
123
그러나 혁은 그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니 그 어느 파도 인정치 않은 사람이었다. 구태여 그의 위치를 말한다면 일파였었다. 오직 일함으로써 만족하려는 사람이었다.
 
124
그는 큰 욕심이 없었다. 그저 일에 대한 욕심뿐이었다. 욕심이 없는 그는 모든 파쟁에 초연할 수도 있었고 무시할 수도 있었다.
 
125
그러나 이것이 잘못이었다. 혁은 자기에게 무슨 위험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양 옆을 가린 말처럼 앞만 보고 일을 하는 그에게는 삼면에서 쳐들어오고 있는 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6·25가 터진 이십 일 만에 혁명시인 이혁은 정체도 모를 사람들한테 납치가 되어갔던 것이다. 납치가 되어갈 때도 그는 몰랐었다. 며칠내로 새빨개진 이 서울에 반동단체가 있을 리 만무였다.
 
126
그는 끌리어가면서도 그랬었고 끌리어가서도 그랬었다. 심사를 받을 때까지도 그는 조금도 공포는 없었다.
 
127
‘어디 보자. 어떤 놈이 반동인가?’
 
128
그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129
사실 그는 그자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잡아왔거니 했었던 것이다. 한창 의용군을 잡아들일 때였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이남으로 다 따라갔고, 미처 못 나간 사람들은 다락과 지하실 천장 속으로 파고들고 거리에는 씨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새벽이면 집 뒤짐을 해서 잡아내는 판이었다.
 
130
그 속에 자기도 끼인 줄만 안 혁이었다.
 
131
그러나 아니었다. 납치가 된 지 만 사흘 만에서야 그는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132
심사가 시작되었다. 이틀째 되던 날 밤부터였다. 한번 끌려나간 사람은 반은 죽어 들어왔었다. 어떤 사람은 나간 채였다. 안 돌아온 사람은 숙청당한 사람이란 말도 떠돌았었다. 숙청이란 곧 듣기좋게 쓰이는 총살이었다.
 
133
“어디 보자.”
 
134
혁은 모두 치를 떠는 심사를 되려 초조하게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135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인식부족이었다. 이혁에게 내린 판정은 A급 C라는 것이었다.
 
136
“잠깐, 이의가 있습니다.”
 
137
하고 이혁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138
“무슨 이의냐?”
 
139
“착오가 아닙니까? 난 이혁이요. 동무!”
 
140
“안다? 소위 혁명시를 씁네 하구서 파쟁을 조장하며 혁명운동을 교란했다는 것을 우리가 모를 줄 안다더냐? 나이는 마흔, 와세다 영문과 일년 중퇴, 왜정 때는 일 제국주의자 놈들의 앞잡이가 되어 강연행각을 했고, 해방 후에는 미 제국주의 정권에 아첨하여 갖은 반동행위를 자행하다가 반동집단에 매수가 되어 좌익인 체 가장, 푸락치로 들어와서는 갖은 파괴공작을 자행했으며, 붉은 군대가 입성을 하자 종파적… 음모공작과 진영의 혼란을.”
 
141
이혁은 심사원이 열거한 자기의 죄상이 너무도 큼에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142
“이자를 A로 데리고 가!”
 
143
심사원은 명했다.
 
144
“넷!”
 
145
총구가 그의 등골수를 푹 찌른다. 이혁은 저도 모르게 뿌르르 서너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그대로 그의 걸음이 되었었다. 등골수에 쉴 새 없이 총끝이 와서 찔러 대었었다.
 
146
이윽고 밀려들어간 곳이 지하실이다.
 
147
칠월 십일날 새벽 이래 여러 곳에 감금이 되었었지만 그중에도 가장 어두운 곳이었다. 층계를 내려서 지하실 문까지 다 와서는 발길로 등빠지를 탁 차서 밀어 집어넣는다. 이혁은 뿌르르 밀려들어가다가 곤두박질을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텅 비인 줄만 여겼던 지하실은 문턱까지 반동분자 A급으로 차 있었던 것이다. 이혁이 밟고 넘은 것은 그 누군지의 허벅다리였던 모양이었다. 가슴에 안겨진 것은 사람의 머리였다. 그는 나무토막 쌓이듯 한 반동분자들 틈에 내던져진 것이었다. 그 사품에 눈에 불이 번쩍 났다. 이름도 나이도 몰랐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런 어떤 반동분자와 대갈받이를 하면서 나가동그라진 것이었다.
 
148
밟히고 받히우고 깔리고 했건만 어느 구석에서도 인기척 하나 없다. 다만 끙 소리가 단 한마디 났을 뿐이었다. 그것도 참는 소리였다. 의식없이 얼결에 튀어나온 신음소리를 부리나케 들이삼키는 소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지하실에는 잠시 어수선한 기맥이 돌다가 말았을 뿐이다. 방안은 돌 던지고 난 웅덩이처럼 도로 고요해지고 있었다.
 
149
오랜 시간이 경과했다. 그러나 그 오랜 시간도 혁의 눈에 덮인 두꺼운 어둠을 걷어 주지는 못했다. 그는 눈에 안막이 씌워졌나 싶어 눈을 닦고 닦고 해보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눈은 방의 넓이도 분간할 수 없다.
 
150
“여가 어디오?”
 
151
혁은 윤곽을 요량하기조차 어려운 옆 사람의 귀에다 대고 나직히 물어보고 있었다.
 
152
대답이 없다. 혁은 이번에는 반대쪽 그림자 쪽으로 입을 가져갔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는다. 대답을 않을 제는 켕기는 일이 있었으리라 싶어 망설이고만 있었다. 끝내 재차 묻지를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으려니까, 다 잊어버릴 만해서야 먼저의 그림자가 나직히 귓속말을 해주는 것이다.
 
153
“여기 지옥 제 삼혼가 보.”
 
 

 
 
 

제3장

 
 
155
얼마나 되는 시간이 경과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느 경인지를 알 사람도 물론 없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 자신이 감금되어 있는 이 지하실이 서울 어느지점에 놓여져 있는지를 짐작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오직 그날 밤 자정이 가까워서 끌려나왔더니라 하는 사실뿐이다. 이혁만 해도 칠월 이십일 새벽, 몽둥이를 든 세 놈이 달겨들어서 잠깐 물어볼 일이 있으니 가자 해서 집을 나왔을 뿐이었다. 처음 끌려간 집은 돈암동 국민학교였다. 거기서 사흘을 지냈었다. 두더지로 알았는지, 그들 자신이 두더지처럼 태양을 두려워하는지는 몰라도 창이란 창은 모조리 거적으로 가렸었다. 연통을 내어 뽑았던 구멍 한 개가 있었다. 창을 다 가렸어도 빛이 새어들어오니까 감시원들은 사방을 둘러보더니 질겁을 해서 연통 구멍까지를 틀어막았었다. 교실 안은 완전히 암흑으로 채워졌었다. 그들은 거적 틈새로 새어드는 빛으로서 겨우 실내와 실외를 분간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사흘을 거기서 지냈었다. 사흘이란 일수도 맨주먹밥 세 덩이를 받은 일이 있었기에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하루에 한 덩이씩을 받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흘이 지났다. 밤이었다. 사오십 명만이 끌리어 나갔다. 무엇때문인지도 몰랐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대기하고 있는 트럭을 탔었다. 호송하는 놈은 셋이었다. 두 놈은 굵다란 몽둥이를 제 각기 한 개씩 들었었다. 한 놈만이 따발총이었다. 셋은 앞에 하나, 중간에 하나, 뒤에 하나 ─ 이렇게 콩나물 대가리처럼 오십 명을 꿇어앉히고서 감시의 위치를 잡았었다.
 
156
복판에 있는 녀석이 소리를 꽥 질렀다.
 
157
“다들 잘 들어라. 너희는 지금 제2심사를 받으러 가는 것이다. 최후 심사란 말은 놈들이 해방 후 오 년간, 우리의 애국자들을 얼마나 용감하게 학대·학살했는가를 심사한다는 말이다. 너희들한테는 이제 위대한 상이 내릴 것이다.”
 
158
그는 이렇게 말하고 앞뒤를 쫘악 둘러본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아까보다도 한결 거드름을 피우면서,
 
159
“그런데 말이다. 내가 하나를 부르거든 일제히 두 무릎을 세워야 한다. 둘을 부르거들랑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셋을 부르건 쪼그린 무릎 새에다 얼굴을 처박으란 말야. 알았지! 늦는 놈은 몽둥이에 해골이 바셔질 줄 알아! 중간에 고개를 들거나 옆을 보는 놈의 해골도 무사치는 않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럼 자, 준비, 하나, 둘… 셋.”
 
160
해골이 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자들의 명령은 절대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명령에 채 좇지 못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늦지도 않았는데 본보기로 때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161
어쨌든“이놈아”소리와 함께 소리가 났다.
 
162
“딱!”
 
163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보위대원은 의기당당하게 명했다.
 
164
“발차!”
 
165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소리를 부릉부릉 내더니만 차가 우쭐하고 미끄러져 나갔다.
 
166
“잘 들어라. 머릴 들거나 옆을 보는 놈은 없다! 없어!”
 
167
차는 초스피드다. 인적 하나 없는 넓은 거리를 살같이 달린다. 최소한 사십 마일은 되는 속력이었다. 몇 번인가 꾸부러지고 꼬부라졌고 포물선을 그리었다. 시간으로도 한 시간은 충분히 달렸을 것이고 보니 제대로 갔다면 백리 길은 넘었을 것이었다. 누구 하나 본 사람이 없고 보니 방향이 알려질 리 만무다. 그들이 오직 직감하고 있는 것이란 남쪽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한강은 국군이 후퇴하면서 철교를 폭파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
 
168
차가 급정거를 했다. 통 속의 물처럼 사람이 출렁한다.
 
169
“앞이나 옆을 보는 놈은 없을 줄 알아라!”
 
170
폭탄 같은 선언이었다.
 
171
그러나 이 선언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눈을 부비고 본대도 어디가 어딘지를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먹 그대로의 밤이기도 했으려니와 그들의 차가 멈춘 자리는 어떤 큰 공장 안이었다. 좌우에 창고 같은 건물이 둘러 있는 그 틈새에다 트럭을 처박듯 한 것이었다.
 
172
“발끝만 보고 내려라! 말을 하는 놈도 없다!”
 
173
보위대원의 지시대로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큰 창고로 기어들어갔었다. 뜻밖에 그 창고 안도 발 들여놓을 자리조차 없었다. 거기서 또 며칠인가 지냈다. 사흘 동안 같았지만 나흘이었던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만한 기간을 지나서 역시 밤중에 그들은 또 끌리어나왔었다. 운반하는 방법은 똑같았다.
 
174
그러니 그들이 자기네가 있는 위치를 알 턱이 없다.
 
175
“여기 집결시킨 사람은 반동분자 제일급이란다…”
 
176
이런 이야기가 떠돌았다. 물론 입에 내어 말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심전심이랄까. 이런 것은 대개 알고 있었다. 일급이면 물론 총살이었다. 그들은 수효도 모른다. 서로의 성명도 모르고, 직업도 나이도 모른다. 성(性)의 구별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만은 오직 한맘 한뜻이었다. 몸도 하나였다. 그들은 살겠다는 뜻에 뭉치어 있었다. 그들은 또한 다같이 그리고 똑같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177
감시원이 좀 멀어진 눈치면 여기저기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터져나오는 생리의 현상을 의지로써 억지로 집어삼키는 그런 한숨이었다. 온갖 지성을 다해서 신께 목숨을 비는 그런 애절한 한숨이었다.
 
178
물론 우리의 주인공인 이혁의 창자 속에서도 한숨이 터져나왔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혁의 한숨은 다른 사람들의 한숨과 비교할 성질은 아니었었다. 그는 자기에게 대한 오해는 풀리리라 했었다.
 
179
“나를 푸락치? 쎅트? 반동문자? ─ 얼마든지 해봐라. 너희들을 내가 심사할 날이 있으리라 ─”
 
180
혁은 이를 북 갈았다. 그러나 그도 인제는 지치었었다. 물론 그의 입에서도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그 한숨은 다른 반동분자들과는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공포라기보다도 그것은 초조에서였다. 제2심사에서는 자기를 알아줄 것이라 했었다. 혁명시인이요 오 년간 투쟁을 한 이혁을 ─
 
181
이렇게나 믿고 신뢰한 제2회 심사도 오늘 끝난 것이다. 그 결과는 역시 제1심사대로 A급이었다. 반동분자 중에서는 A급이요, A급 중에서는 C급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A급의 C기는 했지만 역시 이혁에게는 가장 극형이 주어지리라는 것이 오늘에야 판명이 된 것이었다.
 
182
“내가 반동? 푸락치? A급?”
 
183
믿고 신뢰했더니만큼 혁의 절망은 컸다.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었다.
 
184
많은 사과와 함께 석방이 되어 나갈 줄 알았던 이혁도 마지막 희망이 끊어져버리었었다. 그렇게나 그가 믿고 기다린 제2심사도 그한테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닌가!
 
185
“이혁, 반동 푸락치 A급 C!"
 
 

 
 
 

제4장

 
 
187
어둡다.
 
188
그러나 단순히 어둡다고만 해서는 모를지 모른다. 어둠이란 빛을 전제로 한 말이니까. 혁은 빛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난 지 벌써 여러 날이었다. 눈만이 아니다. 그의 마음도 지금은 벌써 완전히 빛과는 인연이 없어져 있었다. 불장난을 하다가 불에 데인 격이었다. 혁은 지금 과거 오 년간 놈들한테 바쳐온 열성을 되씹어보는 것이었다. 그러고 이를 북 갈아보는 것이었다. 흥분은 그를 몹시 피로케 했다.
 
189
혁은 처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잇달아 창자가 다 끌리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일찍이 전생애를 통해서 이 순간 같은 절망을 느껴본 적이 없다 싶었다.
 
190
이 해로 그는 사십을 넘었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이 순간처럼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해본 일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순간처럼 자기가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아본 적도 일찍이 없었다.
 
191
이러한 그의 심리상태를 들여다보고나 있는 듯이 옆 그림자가 귓속말을 한다.
 
192
“제1차 심사가 끝난 A급은 벌써 집행을 했다지요?”
 
193
혁은 아무 대답도 않았다. 집행이란 말이 오늘처럼 실감이 난 것도 처음이었다. 혁은 소름이 쪽 끼치었다.
 
194
“처단된 사람엔 이관수 씨도 들고 백선규 박사도 들었대요. 박인숙 여사는 B급 A로 돌아가고 ─”
 
195
“실례지만 선생은 뉘시오?”
 
196
하고 혁은 물었다. 이관수는 소설가니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백선규는 독일철학박사였었다. 박인숙이란 여성도 이름만은 들어 알고 있는 터였다.
 
197
“난 A급 B라오. 청년단장이니 A급일밖에 있소? A급은 오늘낼 처단을 한답디다. 선생, 혹 살아나시건 가족한테 말이나 전해주시오. 내가 처단되는 날이나…”
 
198
말이 갑자기 뚝 그친다. 감시인의 발소리가 가까이 들린 때문이었다. 실내는 물 속처럼 괴괴해졌다. 도저히 삼백여 명의 인간이 들어 있는 방 같지가 않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는지 청년단의 박이 또 말을 건넨다.
 
199
“대관절 여기가 어디오?”
 
200
“나도 모르겠소.”
 
201
“서울은 서울인가요?”
 
202
“서울은 아닐 게요.”
 
203
“개성이란 말이 있어요. 혹은 의정부라기두 하구…”
 
204
말이 뚝 그치었다.
 
205
그 대신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206
“어떤 놈이냐? 썩 나오지 못하느냐!”
 
207
숨소리조차 없다. 회중전등이 홱 비친다. 빛은 빛이나 살인광선이다.
 
208
“오냐! 다시 말소리가 들리는 날엔 전부 끌어내다가 잡을 게니 그리 알아라! 알았지? 공동책임야!”
 
209
말이 쓰윽 걷히었다.
 
210
실내는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실내 사람들의 마음은 정반대로 홱 밝아진 느낌이었다. 혁도 그랬다. 그토록 그립던 빛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할 수도 있던가 놀라고 있었다. 빛이라고 반드시 다 밝고 희망이요 기쁨만은 아닌 게다 싶었다. 어둠을 반기고 어둠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의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생각만 해도 뼈가 저리었다. 조물주가 희망의 상징으로 만든 빛을 어둠으로 역용하는 놈들에 대한 분노가 처음 혁의 숨통에 치받아오고 있었다. 그는 청년시대에 일본 ‘고지마찌’에서 달포를 고생한 일이 있었다. 그때 이와 비슷한 증오를 놈들한테 느낀 일이 있다. 그후 그는 동대문에서 십여 일 갇힌 일이 있었다. 그때의 증오는‘고지마찌’에 비할 바 아니었었다. 그 서에 박곰보라는 형사가 있었다. 손가락에 철필대를 끼우고 조이는 것은 약과였다. 코를 젖히고 설렁탕 국물을 붓는 것도 참을 수 있었다. 놈은 그를 빨가벗겨 엎어놓고는 격검대로 도리깨질을 하는 것이었다. 격검대 사이에 살이 끼이면 비틀어서 손으로 뚝뚝 잡아떼어 팽개치고는‘야잇’소리를 치면서 내리패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장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떠들어대는 공산주의가 재판은커녕 심사도 없이 사람의 목을 파리 목 자르듯 하는 무서운 사실 앞에서 혁은 오직 전율할 따름이었다.
 
211
자기만은 흙 속에 묻힌 옥이라고 믿어오던 유일한 희망이 뚝 끊어진 혁은 절망속으로 떨어졌다. 절망과 함께 무서운 수마(睡魔)가 습격을 해온다. 혁은 어둠처럼 엄습해오는 잠과 실로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힘이 수마를 물리치기에 너무도 약함을 깨닫고 있었다. 무서운 피로가 절망과 함께 그를 찾아왔다. ─혁은 깜빡 잠에 지고 말았다.
 
212
어느 때인지 외마디소리에 이혁은 깜짝 놀라 깨었다. 무서운 꿈이었다. 구렁이에 칭칭 감긴 채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두 마리의 구렁이였다. 한 마리는 왼쪽으로부터 허리통을 감고 있었고, 또 한 마리는 바른쪽에서부터 감아 들어와 있었다. 한 놈이 힘을 주어 틀면 딴 놈도 지지 않고 틀어대었다. 그럴 때마다 숨이 콱 막힌다. 두 놈의 구렁이는 제각기 자기가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왼쪽부터 감아온 구렁이는 자기가 북로당이니까 남로당인 혁은 자기가 먹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213
“아니다.”
 
214
하고 오른쪽 뱀이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215
“이혁은 기회주의자다. 그러니까 내가 먹어야 한다!”
 
216
옥신각신 시비가 일었다.
 
217
그러나 끝내 판결은 나지 않았다.
 
218
“그러면 좋은 일이 있다.”
 
219
하고 북에서 온 뱀이 제안을 하고 있었다.
 
220
“너와 나의 힘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만일에 이혁이란 혁명시인이 남이든 북이든 태도가 분명만 했다면 너와 합치든 나와 합치든 가부간 승부가 날 것이었다.그러나 불행히도 이 시인은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다. 남도 되고 북도 된다. 이 말은 남도 아니요 북도 아니란 말도 될 것이다. 이런 중성의 동물을 가지고 너와 내가 싸우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아무리 싸운대도 영원히 승부는 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네가 나보다 세든지 내가 너보다 조금만 세든지 했더라면 이 중성인 동물은 그 센 쪽에 달라붙었을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승부도 간단할 건데 도리가 없다. 어떠냐, 내 제안이?”
 
221
“그렇다면?”
 
222
“가르잔 말이다. 똑같이 반쪽씩 나누잔 말이야.”
 
223
두 뱀의 대가리는 그의 숨통 앞에 나란히 고개를 빼쭉이 들고 있다. 한 놈이 혀를 뽑아 그의 목을 핥을라치면 딴 놈도 지지 않고 핥아댄다. 그때였다.
 
224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225
하고 나선 것이 수백·수천의 굴뱀떼였다. 그러다 깨었다. 꿈이었다.
 
226
검은 하늘을 뒤지듯 회중전등이 그들의 머리 위를 핥고 있었다.
 
227
“없느냐! 반동시인 A급 C에 이혁! 이혁!”
 
228
혁은 아직 잠이 채 깨어 있지 못했었다. 널름대던 뱀의 두 개의 혀끝에서 완전히 해방이 되지 못한 채 그는 얼결에 대답은 하고 있었다.
 
229
“네!”
 
230
“어디냐?”
 
231
불빛이 는청거린다.
 
232
“옙니다!”
 
233
“예가 어디야?”
 
234
“여기요!”
 
235
“나와!”
 
236
혁은 또 끌리어나갔다.
 
237
문 밖 희미한 별빛에 나서자,
 
238
“이리 와!”
 
239
하더니 검은 보를 뒤집어씌운다. 양봉가의 벌망처럼 생긴 자루다. 이혁은 다시 어둠 속으로 잡혀 들어갔다. 혁이가 끌리어간 곳은 그리 넓지 않은 방이었다. 검은 보를 통하여 촛불의 형체를 겨우 알아볼 만했다. 촛불은 테이블 위에 켜져 있었다. 그 앞에 사람이 앉아 있는 기색이다.
 
240
“네가 시인 이혁인가?”
 
241
무뚝뚝한 사나이의 목소리다. 말투부터가 의외였다.
 
242
“그렇소.”
 
243
속에서 치미는 것을 참았다.
 
244
“너는 가장 양심적인 열성분자인 체 가장을 하고 우리 진영에 잠입하여, 한편 군정 및 반동 집단에 우리의 조직, 인적 구성 등을 적에게 제공했다는데?”
 
245
혁은 말도 안 나왔다.
 
246
“우리의 영명하신 김일성 장군을 비방하여 종파적인 음모를 함으로써 당을 약화시키고…”
 
247
이런 죄목도 있었다.
 
248
혁은 처음에는 변명도 했었다. 분개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소용이 없음을 비로소 알았었다. 연극은 실로 조밀하게 꾸며져 있는 것이었다.
 
249
인제는 발악이었다.
 
250
“허위다! 너희 놈들이야말로 반동행위다!”
 
251
그의 발악에 심사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252
“그렇게도 빨리 죽고 싶은가?”
 
253
이혁은 자기의 항변이 아무런 효과도 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입을 봉하기로 결심을 했다.
 
254
“이자를 육호실로!”
 
255
덜컥 소리와 함께 의자에 마련된 장치가 떼어지는 모양이었다. 혁은 육호실이란 곳으로 끌리어왔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역시 지하실이다. 바닥에는 물이 지적지적했다.
 
256
“앉어!”
 
257
하고 위대한 민주주의 선봉자요 실천자인 북로당이 그의 왼쪽 어깨를 곤봉으로 내려친다. 혁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물론 얼굴의 보자기는 쓴 채였다.
 
258
그가 앉은 걸상이란 시골 이발소에 있는 걸상 비슷한 것이었다. 양쪽에 팔걸이가 있었다. 다리를 뻗으라 해서 뻗으니 발판이 있다. 그는 지그시 뒤로 기대어보았다.
 
259
그러나 뒤받이는 없었다.
 
260
묘한 장치였다.
 
261
“자면 안 돼! 꾸벅만 하면 네놈의 눈은 명태눈깔이 된다!”
 
262
손과 발을 의자에다 잡아맨다.
 
263
“고개를 반듯이 가누어야 한다. 고개가 조금만 기울면 사고야!”
 
264
정말 놈의 말대로였다. 십여 일 동안의 불면과 피로가 그의 몸에 배어 있었다. 적막이 그의 피로를 더해주고도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나 금세 깜빡 한다. 정신이고 육체고 완전히 희망을 잃고 보니 중심이 없었다. 희망을 잃은 그의 육체는 젖은 솜처럼 기력이 없다. 정신도 그랬다. 희망에만 집결이 될 줄 알던 정신 신경은 확 풀어져버렸었다. 자기도 모르게 깜빡했다. 장바구가 서뻑한다. 분명히 쇠바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뿐이 아니었다. 뒤에도 바늘이 있었다. 좌우로도 있었다. 고개를 반듯이 가누고 있지 않으면 사고라던 놈의 말 그대로다. 팔과 다리는 작대기와 함께 매어져 있었다. 무서운 장치였다.
 
265
“위대한 장치를 소련에게 배웠구나!”
 
266
혁이가 소련을 마음으로서 미워한 것은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혁의 머리와 이마, 볼, 십여 군데에 피가 흘렀다. 십여 번이나 졸았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역시 졸아대는 혁이었다. 이 안락의자에서 혁은 연사흘 동안‘휴양’을 했던 것이다.
 
267
사흘 동안에 아이들 조막만한 주먹밥 한 덩이가 겨우 배당이 되었을 뿐이다. 그나마 소금기도 없는 것이었다.
 
 

 
 
 

제5장

 
 
269
육호실에는 이십 명 가까운 반동분자가‘휴양’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어디로 새어들어왔는지 그들이 감금되어 있는 위치가 왕십리라는 것만이 알려졌을 뿐, 그 정확한 지점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270
사흘째 되던 날 밤, 혁은 또 끌리어나갔었다. 역시 같은 방법에 의한‘구타 없는’문초를 받았었다. 심사관의 말은 판에 박은 것이었다. 전달할 말을 녹음해두었다가 그대로 들리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271
“모른다!”
 
272
“없다!”
 
273
“아니다!”
 
274
혁의 대답도 판에 박은 것이었다.
 
275
한 시간에 걸치어 전날 밤과 똑같은 문초 끝에 혁은 해방이 되었었다.
 
276
그는 다시 자기에게 허락된 자유의 세계 ─ 시골 이발소 의자로 돌아왔었다.
 
277
이혁은 이미 자기의 운명이 어찌 될 것인가를 판단하고 있었다. 더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것은 숙청이었다. 총살이 아니면 타살이었다. A급 A와 B는 타살 내지 생매장이 끝났다 했다. 어떤 방법의 숙청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되 이미 그의 육호실에서 밤에 끌리어나간 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열 몇이었다. 나가는 대로 그만한 새 A급이 교대되어 들어왔었다.
 
278
대전이 함락되고 공주, 군산, 김제를 폭풍처럼 휩쓸었다고 한다. 물론 감시원의 입을 통해서 들은 뉴스였다.
 
279
또 며칠인가가 흘렀다. 그들은 겨우 밤과 낮과를 분간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이혁은 신경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어디 한 군데가 쑤시고 아픈 그런 신경통이 아니었다. 신경의 가닥가닥이 바늘 끝으로 쑤시듯이 저리었다. 더욱이 머리의 짧은 신경을 잡아늘일 때처럼 아팠다. 차라리 탁 끊어져 버리었으면 했다.
 
280
혁은 벌써 일주일째 단 일분도 눈을 붙여보지 못한 채였다. 이혁은 자기가 비참하게 생각될수록에 선배랍시고 찾아왔던 젊은 사람들이 생각키었다. 그들은 대개가 청년들이었다.
 
281
“선생님 동무 자꾸 분열이 되지요?”
 
282
“분열? 무슨 소리야?”
 
283
“어쩐지 남·북로간에 알력이 있는 것 같아요. 될 수 있는 대로 자꾸 우리를 경계하구요.”
 
284
“오해야. 그럴 리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벌써 동무들 마음속에 그런 종파적 심리가 있다는 증거야.”
 
285
그들은 돌아갔다.
 
286
이번에는 젊은 학생들이 몇 찾아왔었다. 과거에 좌도 우도 아니던 청년들이었다. 개중에는 학련 계통에서 일을 하던 학생도 자수 겸 찾아왔었다.
 
287
혁은 똑같은 말을 했었다. 일만 해라. 일만 하면 반동자도 포섭한다.
 
288
“그들은 지금 어떻게들 됐을꼬?”
 
289
혁은 울고 싶었다.
 
290
대구가 함락이 되고 부산을 향하여 진격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수용소 감시원들은 축배를 올리고 법석들이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비겁한 자여”하는 놈들의 노래 소리가 A급 반동분자들의 귀에 찌렁찌렁 울려오고 있었다.
 
291
“어제는 대전, 오늘은 대구, 모레는 부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292
이런 아리랑도 들려오고 있었다.
 
293
혁이네 육호실 반동분자들은 열한시나 되어서 모조리 끌려나왔다. 문 앞에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트럭 한 대가 또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294
“질서정연하게 탈 일!”
 
295
일행은 스물여섯이었다. 명령대로 차에 오르려고 하는데 감시원이 또 소리를 친다.
 
296
“이눔의 자식들아, 모두들 벙어리냐! 왜 대답을 못 하는 거야. 대답을 하구서 타!”
 
297
“넷!”
 
298
약 반수가 있는 힘을 다해서 대답을 했다.
 
299
“다시! 않는 놈이 많다!
 
300
“넷!”
 
301
혁만 입을 봉하고 있었다.
 
302
“좋다. 그만 타두 좋아.”
 
303
어디로 가는 줄도 몰랐지만 일동은 생기가 났다. 밖의 공기를 쏘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만족이었다.
 
304
속력도 같았고 운반하는 방법도 처음과 똑같았다. 다만 다른 것은 손을 묶은 것뿐 이었다. 그렇게 감시를 하건만 그래도 고개를 든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305
“이눔아!”
 
306
소리와 함께 딱 소리가 들린다.
 
307
트럭은 어디로 가는지 잠시도 쉴 줄을 모른다. 이번에는 두어 시간이나 실히 달리는데 물소리가 트럭 안에서도 들린다. 물소리는 좋은 음악처럼 그들을 즐겁게 해주었었다.
 
308
트럭은 골짝도 지나고 고개도 몇 개를 오르고 내린다. 한강이 끊어졌고 보니 남쪽은 아닐 게고 역시 북으로 달리는 것 같았다. 보지를 못하는 그들에게는 동네를 지날 때마다 들리는 개짖는 소리까지 이상한 감흥을 받는 것이었다. 두 시간 아니 세 시간을 달렸을 성싶다. 인제는 정말 방향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서울이 어떤 쪽이든지 까마득한 꿈길 같았다.
 
309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310
죽음의 길이라는 것은 누구의 머릿속에나 있었다. 죽음의 길이 아닐 바에야 이렇게 눈을 감겨두고 수갑까지 질러서 끌고 갈 리가 만무가 아니냐?
 
311
‘이 사람들이 모두 사형수일까? 나를 빼어도 스물다섯이나 된다.’하고 혁은 생각에 잠긴다. 인제 어디로 가든, 갖다 찔러죽이든 할 대로 해라 싶었다.
 
312
‘저 사람들이 모두 다 사형을 받을 만한 죄를 진 사람들일까?’
 
313
그것은 도시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자기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충성을 한 죄가 이렇게 큰 것일까? 저 사람들이 다 사형을 받아야 한다면 대한민국 그늘 밑에서 산 이천만을 다 죽일 작정인가 했다. 이런 생각도 혁에게는 처음이었다.
 
314
“미친놈들! 이천만을 모조리 죽이고 저희들만이 이 땅에 살 작정인가?”
 
315
트럭이 멈춘 것은 너덧 시간이나 실히 가서였다. 위치가 어딘지는 역시 판단되지 않았다. 다만 어느 깊은 산속이라는 것만이 확실해졌을 뿐이었다.
 
316
“다들 내려라. 내려서 이열로 늘어섯.”
 
317
그들이 채 열을 짓기도 전에 트럭은 오던 길을 되돌아서 달아나고 만다.
 
318
“올 때까지 다 왔나부다…
 
319
일동의 가슴에는 찬바람이 휘 돌았다.
 
320
“이열에서 비져나는 놈은 쏜다! 알았지!”
 
321
“넷!”
 
322
“그럼 저기서부터 앞으로 갓!”
 
323
지시한 길은 산으로 들어간 소로길이었다. 부딪는 금속 소리가 역시 목총이 아니다. 아직도 날이 밝자면 한참 있어야 할 모양이다.
 
324
행렬은 산허리를 끼고 돌기 시작했었다.
 
 

 
 
 

제6장

 
 
326
그들 일행이 임진강을 멀리 바라다볼 수 있는 깊은 산중에서 다시 행군을 시작한 것은 만 사흘 후였다. 그들 일행은 벌써 이십육 명이 아니었다. 육호실을 떠나서 같이 트럭에 실리어왔던 스물여섯 명 중 아홉 명은 그들 일행으로부터 떨어져나가 버리고 없었다.
 
327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했다는 죄목으로 처단이 되었던 것이다. 아홉 명이 반동자A급이었다. A급의 A가 다섯, B가 셋,C가 한 사람이었다.
 
328
그날 새벽 먼동이 틀 무렵에 그들은 목적지인 듯싶은 산중에 도달했었다. 멀리 임진강이 내려다보일 뿐 물론 산 이름도 몰랐지만 군명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골짝 숲속에 난가게처럼 거적을 둘러친 조그만 어리가 있을 뿐, 인가가 어디 있는지도 짐작이 안 가는 산중이었다.
 
329
일행은 제각기 나무 밑과 바위 틈에 숨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때는 이미 국련에서 침략자 응징에 대한 결의를 보아 미국 공군이 대격으로 공습을 시작한 후였다. 탱크고 무엇이고 번뜻만 하면 폭탄세례를 내린다. 기차는 꼼짝도 못했다. 세 사람 이상의 집단 이동대는 발견되기가 무섭게 급강하를 해서는 콩 볶듯 기관총을 갈겨댔다. 침략의 뜻을 가진 인간은 물론, 일체의 기계와 병기, 시설까지가 함부로 뚜드려맞는 판이었었다.
 
330
“침략자 한 사람과 한 톤의 폭탄과 바꾸어라!”
 
331
미국을 위시한 전세계가 이렇게 대한민국을 성원해주고 있었다.
 
332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새까만 잠자리 그대로의 함재기들이 쌩쌩 금속성을 내고 골짝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무기고 인간이고를 보기만 하면 내려쳤다. 어떻게 연락이 되는지 추한 것을 발견한 까마귀떼처럼 몰켜드는 것이다.
 
333
“적기한테 발각되지 않는 것이 너희들이 속죄를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고 너희들의 몸뚱이를 까마귀 밥으로부터 구하는 방법이고. 알았느냐?”
 
334
“넷!”
 
335
먼동이 터온다. 훤하니 밝아오더니 점점 붉은 기를 띠는 것이다.
 
336
“해다! 해가 뜬다!”
 
337
누군지 부르짖었다.
 
338
“태양이다!”
 
339
하고 또 한 사람이 탄복을 하고 있었다. 해라고만 해서는 어쩐지 자기네의 이 벅찬 기쁨을 표현하는 데 실감이 안 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340
“위대한 태양이!”
 
341
누군지가 흑 하고 느끼어대고 있었다.
 
342
모두가 보름 만이었다. 하늘을 보는 것도 보름 만이다. 구름도, 풀도, 혹은 열흘, 혹은 보름씩 같은 방에서 같이 살아온 동료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그들은 이 순간이 처음이었다!
 
343
그 보름이란 그들에게는 완전히 한 세기였었다.
 
344
그들은 어둠이 걷히기 전부터 자기와 운명을 같이하게 된 동료들의 얼굴 모습을 찾기에 바빴다. 어둠이 홱 걷히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진다.
 
345
“아아니, 방 선생님 아니시오!”
 
346
“이건 또 누구야!”
 
347
“이 사람 보게나!”
 
348
동료 속에서 선배를 만난 사람도 있었다. 친구를 본 사람도 있었다.
 
349
그때 태양이 쑥 올라오고 있었다.
 
350
“아! 해다!”
 
351
사실 만 이 주일 동안이나 빛이라고는 단 한 가닥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그들에게 오늘의 태양은 정말 위대해 보이었다. 그 지루하던 어둠이 한겹 한겹 걷히면서 형형색색의 온갖 물체가 후련히 시야에 나타날 때 그들의 가슴은 기쁨에 터질 것만 같았다.
 
352
보름 만에 보는 파아란 하늘! 구름! 눈이 아프게 파아란 나무들 ─ 그들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것 같은 감격에 몸부림을 쳤었다. 이 아름다운 빛과 선과 그리고 가지가지의 형태! 의젓한 바위, 늠름한 산의 모습, 푸른 강물, 구미를 돋구는 파아란 풀들.
 
353
이런 것들이 이 주일 전에도 있었던가 싶었다.
 
354
“이 아름다운 산천과 빛과 향기를 공포와 어둠으로써 겹겹이 싸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라는 괴물이었구나!”
 
355
고의 적삼 바람인 반백의 한 노인이 파아란 하늘을 쳐다보며 무대 쎄리프처럼 이렇게 중얼대고 있다.
 
356
“쉬이!”
 
357
하고 누가 주의를 시킨다. 모두 찔끔했다.
 
358
다행히 그놈들은 못 들은 모양이었다. 어디서 노략질한 것인지 양담배들을 맛있게 피우고 있다. 셋인 줄 알았더니 웬 놈들이 십여 명이나 되지 않던가.
 
359
“인제 언제 죽어도 좋다!”
 
360
하고 고의 적삼이 또 말을 한다.
 
361
혁은 꾹하니 그 반백의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 꼭 본 사람인 것 같다.
 
362
‘저분이 누구시던가? ─’
 
363
꼭 어디서 본 사람 같았다. 혁은 자기의 어수선한 머릿속을 뒤지어본다.
 
364
그다! 바로 그였다.
 
365
윤상숙 씨였다. 유명한 동양화가였다. 그는 벌써 칠십이 불원했을 것이었다. 그는 국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366
이혁은 지금 무서운 증오에 떨고 있었다. 윤 화백이 어떻게 살아온 것은 혁이 잘 알고 있었다. 왜정 때도 그랬거니와 군정 때도 그랬었다. 그는 청빈으로 학처럼 살아온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충성했는지는 모르되, 정치를 싫어하는 이 노인이 못된 짓을 했으면 얼마나 했으랴 했다. 공산당에 대해서 얼마나 큰 죄를 이 노인이 저질렀단 말인가?
 
367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368
“나는 이 무도한 무리들을 동무라고 불러왔었던가?”
 
369
혁은 비로소 과거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다볼 기회를 가졌었다. 그것은 추한 길이었다. 어리석고 못생긴 기억만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혁은 고개를 떨어뜨리었다. 눈앞이 또 침침해온다. 어둠인가 했다. 그 지긋지긋하던 어둠! 혁은 소름이 쪽 끼쳤다.
 
370
그러나 그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눈물이 그의 눈을 가린 것이었다. 죽음을 슬퍼하는 눈물은 아니다. 깊은 회한의 눈물이었다.
 
371
“모두들 잘 들어라.”
 
372
호송병이 소리를 지른다.
 
373
“오늘은 여기서 쉬고 밤에 출발을 한다.”
 
374
또 어디로 가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다.
 
 

 
 
 

제7장

 
 
376
그날 밤 출발 직전에 이백여 명의 반동분자가 와서 닿았다. 청어 두름을 세워놓은 것 같은 행렬이었다. 열 명씩이 한 두름이 되어 있는 것도 청어와 같았다. 그 두 두름이 좌우 두 줄로 된 것도 청어와 같았다. 긴 철사에 왼쪽 줄은 왼 손목, 바른쪽 줄은 바른 손목이 묶이어 있는 것도 청어 두름과 똑같았다. 물론 그들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다. 알려고 한대야 알 길도 없었지만 알려고 애쓰는 사람도 없었다. 방향도 모르고 지점도 모르지마는 그들은 최후의 목적지만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377
그 최후의 목적지는 죽음이라는 것을 그들은 다 알고 있다.
 
378
이 많은 사람이 다 총살을 당해도 자기만은 풀리리라고 생각하던 이혁이도 인제는 깨끗이 단념하고 있었다. 혁은 자기와 같이 일하던 동무들 중에도 자기와 똑같은 길을 걸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자기네 이 행렬 속에서도 혁은 은행원 S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도 은행에 들어가서 많은 활약을 한 사람이었다. 당원은 아니었으되 학교에서 많은 활약을 한 역사교원 P도 혁의 같은 행렬에 끼여 있었다.
 
379
“여기서 떠난 것만 이천이 넘는대!”
 
380
안경쓴 무역상회가 이렇게 저희들끼리 하는 소리를 혁도 듣고 있었다. 그 이천 명 속에는 그와 같은 죄목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랴 했다.
 
381
어스름 달밤이었다. 일정한 길도 없었다. 두 줄로 가다가 길이 좁아지면 외줄이 된다. 어떤 때는 논둑을 타고 몇십 리나 걷는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는 그대로 깊은 산속 길로 들어선다. 맨 앞에는 징용당한 어린아이가 앞장을 서 간다. 길안내였다.
 
382
“호송대 동무! 소변 좀 보게 하시오!”
 
383
저 중간에서 누가 소리를 친다.
 
384
“말 삼가라!”
 
385
하고 호송대 동무는 눈을 부라린다.
 
386
“호송대가 뭐야! 오줌 가면서 눠!”
 
387
행렬은 여전히 전진한다.
 
388
이혁은 왼쪽 줄이었다. 바른쪽 줄 바로 옆에는 윤 노인이 철사에 매달려 끌려온다.
 
389
모두 다 발바닥이 헐었었다. 자다가 끌려온 사람들인지라 대개가 헌 고무신 짝이었다. 얼결에 여편네 고무신을 끌고 나온 채로 끌려온 사람도 있었다. 런닝 바람도 둘이나 된다. 양복 웃저고리를 걸친 사람들은 길에서 잡힌 사람들이었고, 자다가 끌려온 패들은 대개가 셔츠 바람이었다.
 
390
“아이구, 차라리 죽여주면!”
 
391
혁의 바로 앞 사람이 다리를 질질 끈다. 윤 노인은 입을 딱 봉하고 철사줄에 매어달리듯이 걷고 있었다. 혁도 인제는 지칠 대로 지쳤었다. 죽음의 길은 멀기도 했다. 밤낮 사흘을 갔어도 아직 저승 문턱에도 못 간 모양이었다.
 
392
낮에는 골짝과 굴속을 찾아다니었다. 미군 비행기가 무서워서였다. 호송대원들도 비행기는 무섭던지 소리만 나면,
 
393
“헤쳐! 헤쳐!”
 
394
소리를 치고는, 밭고랑이거나 골창이거나를 가리지 않는다. 비행기가 사라지면 그들의 행렬은 또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제8장

 
 
396
열흘째 되던 날은 처음으로 푹 쉬었었다. 새벽부터 연합군의 가지각색의 비행기가 잇닿았던 것이다.
 
397
“오늘은 여기서 쉬어!”
 
398
시골 조그만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조그만 골짜기였다. 나무도 제법 있었다. 정말 청어 두름을 눕혀놓은 것 같았다.
 
399
“예가 어디쯤 되오?”
 
400
윤 노인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401
그러나 아무도 대답이 없다. 그것은 알아서 무엇하련만 누가 대답이나 없나 하고 모두들 두리번거린다.
 
402
“황해도 땅이라오.”
 
403
얼마만에야 누가 죽어가는 소리를 한다.
 
404
“어디면 뭘하누.”
 
405
혁도 누웠다. 눈을 감았다. 아주 이대로 영원히 가 줍소사 속으로 빌며 잠이 들었었다. 잠이 깨었다. 우는 소리가 들리어 돌아다보니 모두 눈물을 씻고 있다. 맨 뒤줄 열에 끼였던 젊은 사람이 운명을 한 것이었다. 은행원이라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S였었다. 숨은 끊어졌지만 가슴에는 아직도 온기가 약간 돌고 있었다.
 
406
운명을 같이하던 길동무가 숨을 거두었지만, 얼굴을 덮어줄 오락지조차 없는 그들이었다. 아니 죽어가는 사람한테 유언시킬 자유조차 없는 그들이었었다. 유언이 필요한 그들도 아니기는 하다.
 
407
“반동분자!”
 
408
호송원은 펜치로 철사를 툭 끊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철사에 매달린 채였다. 철사에 매달린 채 숨을 거두었다.
 
409
“나이 시퍼런 자식이!”
 
410
호송원은 발길로 시체를 툭 찼다. 시체가 들멍한다. 두번째 구두바닥으로 굴리듯이 찼다. 그러니까 시체는 골창으로 떼그르 굴러떨어지는 것이었다.
 
411
“여보, 젊은 친구!”
 
412
보다못한 윤 화백이 힐난을 했다.
 
413
“시신이라구 죽은 사람을 그럴 수가 있소?”
 
414
“웬 걱정요!”
 
415
“걱정이 아니오. 임자가 죽을 때 누가 그럴까 겁이 나서 그러오.”
 
416
“저놈의 늙은 반동 봐라. 악담을 하잖나.”
 
417
“쳐라! 쳐!”
 
418
또 한 놈이 달려오기가 무섭게,
 
419
“가구 싶냐?”
 
420
하고 총구멍을 가슴에다 퍽 댄다.
 
421
“오냐! 쏴라! 원이다! 쏴라! 이 악마들아!”
 
422
윤 노인은 가슴을 썩 내밀고 있었다. 노쇠한 눈에서도 불이 나고 있었다. 한줌이나 되는 흰 눈썹이 무서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썹의 경련은 온 얼굴에 퍼져가고 있었다.
 
423
“죽기가 소원이다!”
 
424
“야루까?”
 
425
가슴이 딱 바라진 삼십 전후가 동료를 쳐다본다.
 
426
“야루까 하지 말구 땅 쏴라! 느놈의 세상에서 백년을 더 사느니 이 자리서 죽겠다!”
 
427
노인은 기를 벅 썼다. 기를 쓰면서 벌떡 일어난다. 그러나 그의 손목에는 철사가 매어 있었다. 그는 픽 쓰러지며 느끼고 만다. 어린애 그대로의 울음이었다. 떼쓰는 아이 그대로였다. 윤 노인이 호송대원에게 머리를 디어밀며 죽이라고 악을 썼을 때였다.
 
428
“에이끼!”
 
429
하고 이십대의 가무잡잡한 녀석이 윤 노인의 목을 콱 내려밟았었다.
 
430
“칵!”
 
431
오직 한마디뿐이었다. 윤 노인은 그대로 척 늘어져 버리었었다.
 
432
“너희놈들 같은 반동분자가 다 죽어야 우리 나라가 된다! 자, 행진이다. 일어섯!”
 
433
놈은 윤 노인의 철사를 끊어 발길로 탁 차고서 명령을 내렸다.
 
434
“출발!”
 
435
“나도 죽여라!”
 
436
하고 나선 것은 양화점을 했다던 사십객이었다.
 
437
“나도 죽여다오!”
 
438
“어떤 놈이냐!”
 
439
“내다! 여기 있다! 이놈들아. 이것이 인민을 위한 정치란 게냐. 이 개돼지 같은 놈아!”
 
440
이 말이 떨어지기도 전이었다.
 
441
“나도 죽여라!”
 
442
하나가 또 나섰다.
 
443
시계포였다.
 
444
“나도 죽여다오!”
 
445
“오오냐, 염려 마라! 또 없느냐?”
 
446
숨소리가 딱 그쳤다. 놈이 총을 번쩍 들어 가슴에다 대었던 것이다. 그의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겨냥을 할 필요도 없었다. 총구멍은 시계포의 가슴에 정통으로 향해져 있었다. 모두가 숨을 꿀꺽 삼키었었다. 귀를 막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방아쇠를 건 손가락에 전 시선은 집중이 되어 있다.
 
447
“할말이 없느냐? 할말이 있건 해라!”
 
448
“없다!”
 
449
하고 시계포는 대답하고 있었다. 대담한 대답이었다. 죽음 앞에 선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대로 바위였다.
 
450
“네놈들에게 할말이 있을 리 없다. 쏴라!”
 
451
“하나, 둘, ─”
 
452
이때였다. 저 앞에서 버레기 깨는 소리가 났다.
 
453
“허 허 허 허.”
 
454
그는 허리를 끌어안고 한바탕 웃어대는 것이다.
 
455
“자, 봐라! 저 파아란 하늘 빛을! 얼마나 고우냐. 응, 얼마나 고와? 그러구 흰 구름은?”
 
456
그는 시를 읊듯 하고 있었다. 목사였다.
 
457
“저 구름을 타고 가련다. 나는 저 구름을 타고 자유를 찾아가련다.”
 
458
“돌았군.”
 
459
정말이었다. 목사는 그 길로 아주 정신에 이상을 일으키고 말았던 것이다.
 
460
“자아, 가자. 갈 때까지 가서 다 한목에 죽여주마. 출발 준비!”
 
461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거룩한 명령 앞에서는 또 일초의 용서도 없다.
 
462
그들은 앞을 다투어 죽음의 길을 헤치는 것이었다.
 
463
“제5대! 무슨 말이냐!”
 
464
“제10대! 빨리”
 
465
앞·뒤·옆에서 재촉이 성화같다. 어쩌다 몸이 대열에서 조금 비져나가기만 해도 몽둥이가 어깨뼈에 올리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아이쿠’소리 이외에는 단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었다.
 
466
그날 밤은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467
“비가 와도 갑니까?”
 
468
하고 누가 물었다.
 
469
“비가 오니까 가야지!”
 
470
지금은 밤에도 비행기가 뜨니까 하는 소리였다.
 
471
“이놈의 자식들은 귀골이니까…”
 
472
비가 오는 날이면 낮에는 행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473
“젠장! 뭐 몸이 달아서 비오는 날에두 죽음길을 가야 한다니.”
 
474
누군지가 투덜대는 소리를 듣고는 또 벼락이 내리었다.
 
475
“어떤 놈이냐!”
 
476
비는 더욱 처량스럽다. 모자라고 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대부분이 이십여 일씩 어둠 속에서 살았었다. 개중에는 서울이 붉어지기 전에 납치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다 한달씩이나 된 머리들이다. 귀를 덮는 머리는 비를 맞아 온 얼굴을 덮었다. 아무리 여름이라곤 하지마는 깊은 밤이었고 또 산속이었다. 거기에 찬비다. 여기저기 대열에서 재채기 소리가 난다.
 
477
“여보, 괘니 큰일날려구 그러우?”
 
478
“왜?”
 
479
“대한민국식 재채기는 금물야.”
 
480
“호호, 소련식 재채긴 어떻구?”
 
481
“소련식 재채긴 앳치 ─ 김일성 ─ 하기두 하구, 앳치 스탈린 하기두 ─”
 
482
“쉬 ─”
 
483
뚝 그쳤다.
 
484
그래도 들은 모양이었다. 소름이 쪽 끼치는 악이 덜미를 친다. 혁도 인제는 다른 반동자들과 똑같은 생리였었다. 감정과 신경, 시각과 청각 ─ 모든 생리가 과거 오 년간 같이 호흡하고 같이 생활해온 공산주의자와는 이상하게도 생리적으로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반동분자의 증오가 곧 자기의 신경을 통해서 짜릿짜릿 이 생리적 고통을 가져다준다.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었다. 과거 오년간 ─ 특히 일년간이란 혁은 오로지 정신만으로 육체를 버티어왔었다. 사상으로 살아온 셈이었다. 이 정신, 이 사상이 그에게 육체를 지배할 수 있는 신념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 사상도 잃고 있었다. 신념도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485
대열 여기저기서 꿍꿍 앓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것은 생리적인 고통의 호소인 동시에 정신의 신음 소리였다.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빼앗은 공산당에 대한 저주 그것이었다. 혁도 지금 그들과 똑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이었다. 혁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빛이라고는 단 한 점이 없는 하늘 ─ 공산정치 그대로의 어둠이었다.
 
486
하품이 난다. 으스스한 것이 열도 있나보다.
 
487
“제발 병만 나지 말아라 ─”
 
488
이것이 이 슬픈 행렬 전체의 오직 하나인 염원이었다. 하루에 맨밥 한두덩이를 얻어먹고는 밤을 새워 걷는다. 걷는다기보다도 그것은 낚시에 꼬이어 끌려가는 생선 그대로의 고행이었다. 해가 뜨면 미처 숨도 돌릴 수 없는 폭격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보는지 한두 사람만 번뜩해도 소리도 없이 급강하를 하며 두르르 갈겨댄다. 폭격을 피하느라니 자연 굴이나 수수밭 고랑에 엎디어 쉬는 시간도 많았다. 그렇건만 그들은 죽음의 행진을 하는 밤이 오히려 기다려지는 것이다. 쌔앵하는 그 금속성에 그들은 자기 뼈가 깎이는 것 같은 생리적 고통을 느끼는 것이었다. 혁도 인제는 완전히 반동분자들과 같은 생리였다. 혁도 낮보다는 밤이 그리웠다.
 
489
그러나 병이 나기보다는 폭탄을 맞아 죽어라 했다. 병만 나면 그것이 최후였다. 약이 있을 리 만무다. 주검을 찾아가는 길이니 병자라고 특전이 있을 리 없다. 쓰러져야만 그 대열에서 제외되는 순간이었다.
 
490
“끊어라!”
 
491
쓰러진 자를 끌고 갈 수는 없다. 손목에 매인 철사가 끊긴다. 그러면 호송 감시원인 보위대가 발길로 한번 탁 찬다. 그러고는,
 
492
“쩻!”
 
493
혀를 쩍 한번 찬다. 그러면 그만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작별인사였다. 매일 한둘씩은 이런 작별을 받고 대열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단 한마디 작별을 할 자유조차 없었다. 인간 하나가 죽어 쓰러질 때마다 목사는 소리쳐 웃고만 있었다.우스워 견딜 수 없다는 웃음이었다. 웃음도 못 웃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시체일지도 모르는 터라 보기도 싫어한다. 사실 눈을 감겨주는 사람도 없이 신음하다가 숨이 걷히는 것이 그들에게도 마련되어 있는 운명이었었다. 산길이나 혹은 논둑에서 운명도 못하고 신음하는 시체 아닌 시체를 그들은 매일 몇이고 그대로 보고만 지났었다. 이 길은 반동분자의 길이었던 모양이었다. 수천명이 이 길로 해서 죽음의 행렬을 했던 것 이다. 그들 중의 몇 명은 혹은 산부리에, 혹은 논구렁에 얼굴을 파묻고 죽어 있었다.
 
494
앉은 채 죽은 시체도 있었다. 큰대자로 엎어진 시체, 기어가는 개구리 그대로의 형상인 시체도 있었다. 밤에는 발에 채이어 비로소 시체인 것을 발견하는 일도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되 반도 남을 것 같지가 않았다.
 
495
“에이, 그놈의 송장만 눈에 안 띄어두!”
 
496
송장을 보기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증오까지 느끼었다. 신음하다 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어간 시체들이다. 자기도 똑같은 죽음을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증오를 가져다는주는 것 같았다. 오직 좋아하는 것은 목사뿐이었다. 그들 일행 이백 명 중에서도 벌써 삼십여 명이 지름길로 해서 죽음을 찾고 있었다. 남은 대열의 거의 전부가 환자들이기도 했었다. 오늘 저녁에 쓰러질 환자와 며칠 버틸 환자의 차가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며칠만 더 간다면 단 한 사람도 남을 것 같지가 않았다.
 
497
그러기에 한 사람만 털썩 나가떨어지면 그때는 한꺼번에 퍽 쓰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철사가 끊어질 리는 만무였다. 한 시체의 무게에 견딜 수 있도록 그들은 건강체가 벌써 못 되었었다. 하나가 쓰러지면 펜치를 들고 덤비는 호송대원한테 애원하는 사람이 나서는 것이었다.
 
498
“나도 이 자리서 죽게 하오!”
 
499
“잔말 말어!”
 
500
“아니오. 정말이오. 그대로 끌러달라는 게 아니오. 날 한번만 짓밟아주오! 그러면 다 죽은 내가 살아나겠소?”
 
501
“듣기 싫다! 출발!”
 
502
호령과 함께 제가 먼저 한발을 내디디었을 때였다. 한쪽에서 또 터졌다.
 
503
“나도 죽이구 가거라!”
 
504
“나도 죽여다오.”
 
505
또 있다.
 
506
“아니다. 우릴 한꺼번에 다 죽여다우.”
 
507
“그래라. 한 구덩이에 쓸어박아다우!”
 
508
그러나 그들에게는 죽을 자유조차도 없었다.
 
509
호송원은 또 소리를 빽 질렀다.
 
510
“출발!”
 
511
쇠를 깍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인제는 무딜 대로 무디어진 그들의 신경에는 아무런 반동도 일으키어주지 못했었다. 혁만 해도 그랬었다. 그도 벌써 증오를 느낄 줄 모르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만은 이 길이 어디로 통한 길인 줄을 잘 안다. 국경지방이 목적지였다. 영변이나 개천이 될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시베리아나 북만이었다. 거기서 종신 강제 노동에 종사하게 되어 있을 것이었다. 혁 자신 자기가 이 대열에 끼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혁은 자기 손으로 뽑아 보낸 수많은 반동자들의 얼굴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대부분이 그와는 오래전부터의 친구였고 또 지인이었었다. 선배도 있었다. 동료도, 후배도 있었다.
 
512
“이 군! 우린 어떻게 되오?”
 
513
이렇게 묻던 것은 선배인 H였다.
 
514
“단기 교육을 받게 될 겝니다. 교육을 받고는 자기 기능을 살리어 각 직장으로 배치되겠지요. 이런 때 일을 하지 않고 무얼 하시겠습니까?”
 
515
“그야 그렇지.”
 
516
그들은 안심하고 이 죽음의 행렬을 떠났던 것이었다.
 
517
그러나 지금은 벌써 그 선배나 동료들에게 대한 참회도 없었다. 그럴 정신적 건전성도 지금의 혁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오직 죽고만 싶었다. 이 대열의 전부가 쓰러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자기가 죽인 사람의 추한 시체를 바라보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대열 앞에서고 뒤에서고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아니 인제는 이 대열 전부가 신음하고 있었다. 놈들은 교대로 해서 동네에 들어가 닭에 술에 먹었지만, 그래도 지치는 눈치였었다. 코와 눈과 입과 다 오장육부를 똑같이 타고난 같은 인간이 똑같은 인간을 이렇게 해서 죽여야만 한다는 것이 혁한테는 이상하여졌었다. 혁도 물론 그런 과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의미에서 당에 충성을 해왔던 것이었다.
 
518
“으으응!”
 
519
누군지가 또 가는 모양이었다. 비는 점점 더 억수처럼 퍼붓고 있었다. 옆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520
“쉬엇!”
 
521
맨 앞줄 녀석의 호령이었다.
 
522
그제야 보니 바로 길 옆에 폭격맞은 집 서너 채가 있었다. 지붕도 없었다.
 
523
그저 벽이 약간과 기둥이 비슷이 서 있을 뿐인 집터였다.
 
524
그중 한채만은 비를 가릴 만했다.
 
525
일행은 쉬라는 소리에 그 자리에들 모두 주저앉고 말았다. 셔츠 바람에 찬 비를 맞은 그들이었다. 여기저기에 이 마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526
아까의 신음 소리는 한 오분간 계속되더니 뚝 그친다. 혁의 바로 뒤였다.
 
527
“자, 눈을 감소.”
 
528
하고 누가 말했다. 눈을 감겨주는 모양이었다.
 
529
“그래두 당신은 복탄 사람이오.”
 
530
하고 어둠 속에서 누가 부러워하고 있었다.
 
531
“다행히 이렇게 쉬다가 갔으니 눈이라도 감겨주었지. 다른 사람들이야 눈두 뜬 채 갔을 것 아니오.”
 
532
그것은 정말이었다. 이 폐부를 찌르는 말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었다. 그의 말에 감동이나 된 듯이 또 한 사람이 운명을 했었다. 십분도 못 되어서 였다. 또 한 사람이 소리도 없이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통에는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533
비가 걷히며 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서너시나 되었을 것이었다. 호령과 함께 또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 처참한 행렬은 큰 산부리를 돌고 있었다. 산골짝 물소리가 요란하고 밑은 큰 내였다. 긴 방죽 밑으로는 풀이 우거진 채 사뭇 방죽을 따라오고 있었다. 희미할망정 물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달빛이라도 보니 마음은 한결 개운했다.
 
534
“누구냐?”
 
535
방죽 한복판에 왔을 때다. 호송대원의 고함소리에 모두 움찔하고 멈추었다. 어떻게 철사를 끊었는지 검은 그림자가 대열로부터 두 길이나 되는 방죽 밑으로 떨어져 구른 것이다.
 
536
“탱! 탱! 탱!”
 
537
세 번 총소리가 연거푸 났다. 그러나 그 검은 그림자는 그대로 축대에 짝 붙어서 풀밭 속을 기어댄다.
 
538
“탱!”
 
539
또 총소리가 났을 때다. 갑자기 사오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방으로 짝 흩어진다. 한 대열 전부가 어떻게 그 굵은 철사를 끊은 모양이었다. 총소리가 연발한다. 묶인 사람들은 아슬아슬해하며 달아나는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빌고 있었다.
 
540
“탱!”
 
541
하나가 엎어졌다.
 
542
“탱 탱!”
 
543
또 하나도 푹 엎어진다.
 
544
그때다. 십 명씩 된 두 대열이 그대로 통째 흩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무모한 짓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판단할 만큼 그들의 정신상태는 건전한 것이 아니었다.
 
545
오직 살고 싶다는 일념뿐이었다.
 
546
“뛰자!”
 
547
“기회가 왔다!”
 
548
이것뿐이었다. 총소리 한번에 하나씩이 거꾸러졌다. 하나만 쓰러져도 전 대열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모한 행동을 그대로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549
총소리 한번에 한 인간이 쓰러졌고, 그 대열은 그대로 행동의 자유를 구속당하고 마는 것이다. 이인 삼각이 아니라 수십각의 다리가 제각기 움직인다. 오직 살고 싶다는 일념만은 완전히 합치된 것이었으나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니 단일 행동이 될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고 필요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오직 살기 위하여 행동하고 있을 따름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둔 밤에 불을 보고 덤비는 날벌레와도 같았다. 벌레에게 횃불은 지옥일 것이었다. 그러나 벌레들은 휘황한 빛이면 좋았다. 자기 동료가 불속에 뛰어들기가 무섭게 재가 되는 것을 보면서도 뛰어들고 뛰어들듯이, 그들은 탱 소리 한번에 쓰러지는 동료를 눈 앞에 보면서도 그대로 자유를 찾아 총부리 앞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작전은 실로 무모한 작전이었다. 한두 사람이 혹 살았을는지도 모르지만 전면적인 실패였었다. 일개의 발길에도 채어보지 못한 채 그들은 길바닥에 뒹굴리어져 있었다. 폭풍이 간 직후의 정적을 금속성이 또 깨뜨리고 있었다.
 
550
“다시 출발!”
 
551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걸음보다도 더 느린 행보였다. 위대한 철학과 진리를 깊이깊이 사색하며 걷는 그런 걸음이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슬픔을 씹어가며 걷는 그런 느린 걸음이었다. 자기 대열에서 떨어져 없어진 것이 몇인지도, 또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들은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이었다. 목사도 간 모양이었다. 그의 깨진 양철을 치는 것 같던 울음소리도 인제는 들을 수 없었다. 달빛이 한결 밝아져 오고 있었다. 새벽도 가까워온 느낌이었다.
 
552
그날까지도 혁이가 아직은 이 대열 속에 끼여 있었다는 것을 작자는 알고 있을 뿐이다. 계사 사월고(癸巳 四月稿)
 
 
553
<「국방」23·24호, 1953년 4·5월>
【원문】사(死)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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