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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여운 병신(病身) 몸으로 바이올린의 대천재(大天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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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0.1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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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病身[병신] 몸으로 바이올린의 大天才[대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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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4세의 어린 몸으로 세계에 자랑할 놀라운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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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대문 밖 정거장 뒤의 만리재 산턱에 있는 양정 고등 보통 학교(양정 중·고등 학교)에 씩씩하고 활발한 몇백 명 학생 중에 불쌍하게도 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다니는 어리디 어린 소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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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 흰 얌전한 얼굴과 총기 있는 눈은 한없이 재주 있어 보이고 희망 많아 보이건마는, 다리 하나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탓으로, 병신이란 이름을 듣고 절뚝발이라는 놀림을 받고 자라서, 가엾게도 빛깔 흰 귀여운 그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빛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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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아침마다, 시간이 늦을까 봐 남보다 고생되는 걸음걸이로 절뚝거리며 언덕길을 올라가는 소년! 하학 시간이나 체조 시간마다, 외따로 떨어져서 불행한 신세를 슬퍼하며 눈물 짓는 소년! 이 불쌍한 어린 1년생이야말로 온 학교 아니 양정 학교뿐 아니라 온 경성, 온 조선에 따를 이가 없는 귀신같은 재주를 가진 음악계에 처음 보는 천재 소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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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이 열네 살이고, 금년 봄에 처음 입학한 어린 사람이므로, 한 학교 안에서도 그의 위대한 천재를 아는 이가 별로 없으나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바이올린을 들고 서면 참으로 어떠한 전문가가 듣더라도 놀랄 만한 귀신같은 연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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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코 결단코 ‘어린 사람 치고는 잘 한다.’해서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아무라도 처음 듣고는 거짓말이라고 할 만치 사실로 조선 안에서는 아무 유명한 음악가에게도 지지 않는다 할 만치 놀라운 기술을 가진, 세상에 드문 어린 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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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이올린 전문가는 그의 연주를 듣고 탄복하면서 조선서는 물론이요, 중국이나 일본에도 이러한 천재는 없은즉, 서양 일은 몰라도 적어도 동양에서는 처음 보는 천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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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조선 호텔에 있는 독일 음악가 후우스 씨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러시아 소년으로 대가(大家)에게 지지 않을 만한 천재를 보았었고, 그 후로는 조선에 와서 처음 이렇게 놀라운 천재 소년을 보았노라고, 더할 수 없이 찬양해 말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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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열네 살의 어린 소년으로 이렇듯 훌륭한 재주를 가진 것도 우선 놀라운 일이거니와 그 비상한 재주가 단 1 년 동안의 공부로 얻은 것이요, 그나마 1년 동안도 전문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학교에 다니는 여가에 조금씩 배운 것이니, 이 어찌 범상한 재주꾼이라고만 할 것이겠습니까? 참으로 새 조선의 텃밭에 싹 돋아 가는 여러 방면의 어린 천재 중에도 가장 신기로운 천재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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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 때에 병신이 되어 바이올린 배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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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적어도 지금 동양 천지에서는 단 한 사람이라고 자랑할 만한 이 음악가의 천재 소년은 우리 《어린이》잡지의 독자인 안병소(安柄沼)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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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서 출생하여 시골 가서 자라났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한국 서화(書畵)계에 이름이 높으시던 심전(心田) 선생 안중식 씨였고, 그의 아버지 안명호 씨는 실업계에 활동하시는 이어서 집안이 그리 가난하거나 적막하지는 않았건마는 불행하게도 병소 씨는 난지 여덟 달이 되어서 이질 같은 병을 앓아 10여 일이나 젖도 잘 못 먹고, 고통을 하고 나더니 하도 몹시 쇠약하여 두 다리가 명주 고름같이 늘어졌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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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한참이나 정성을 써서 겨우 회복이 되기는 하였으나, 웬일인지 바른편 다리는 힘을 쓰지 못하고, 그냥 앓던 대로 힘이 없이 늘어지는 까닭에 점점 의심이 생겨서 가지가지로 치료를 하였으나 이내 효험이 없었고, 나중에는 경성으로 올라와서 총독부 의원(서울 대학 병원)에 갔더니 척수 마비증이라 하면서 젖먹이 어린애가 이렇게 한 다리만 쓰게 되므로 자라갈수록 쓰는 다리와 안 쓰는 다리의 차이가 많아져서 심한 절뚝발이가 되리라 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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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떻게든지 병신은 되지 않겠다고 이 방법 저 방법, 좋다는 대로 골라 가면서 치료에 힘쓰기를 10년을 계속하여 나중에는 전기 기계를 사다 놓기까지 하고, 열두 살 되는 때까지 하였으나 이내 투철한 효험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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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그 부친의 한없는 정성도 허사에 돌아가고, 영영 불구의 몸이 된 가련한 병소 씨는 날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마음대로 뛰어 보지도 못하고, 유쾌하게 동무들과 놀아 보지도 못하고, 도리어 절뚝발이라고 놀림만 받으면서 쓸쓸히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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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가엾고 불쌍한 불구의 몸에 이윽고는 천하를 울릴 대음악가일 천질이 남모르게 뿌리를 박고, 싹 돋아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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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덟 살, 아홉 살 때 수안군 공립 보통 학교에 다닐 때에 다른 과정보다도 특별히 노래 성적이 제일 나을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제일 흥미있어 하는 모양이므로 , 그 부친이 그것을 마음여겨 보시고, 조그만 풍금 하나를 얻어다 주었더니, 저녁마다 장난하기를 한 사흘도 못 되어 넉넉히 학교에서 배운 노래 곡조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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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은 더욱 그의 이상한 재주에 놀래셨으나 그러나, 그 때 나이 불과 아홉 살 되는 어린아이라 그냥 그대로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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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두 해를 지나 열한 살 되던 해에 동리에 일본 사람의 집에 고용하고 있는 아이 한 사람이 헌 바이올린을 얻어 가진 것을 보고, 그것을 여러날 두고, 조르고 졸라서 빌려 오더니, 하늘에 별이나 딴 것처럼 기뻐하면서 이 줄 저 줄을 만지더니, 이번에는 단 이틀 저녁 만에(생후 처음 만져 보는 것이건마는) 창가 곡조를 훌륭히 해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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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집안 사람은 물론이요, 그 아버지의 놀라심이 참말로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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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분명히 음악에 특별한 재주를 가진 것이다.’ 생각하시고, 그 후로는 늘, 마음에 생각하시는 것이 있는 터에 또 당자도 몹시 조르는지라, 그 후에 서울에 오셨던 길에 일부러 진고개 악기 상점에 찾아가서 바이올린을 사가지고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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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소 씨의 기쁨이야 이루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이제는 바이올린을 정식으로 배워 줄 선생이 없어서 한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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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버지가 경영하시는 사업 관계로 수안에서 황해도 평산(平山南川[남천])으로 집을 옮기게 되어, 그는 남천 공립 보통 학교에 3년 급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 해 여름에 그 골 군수댁에 동경 가서 음악 연구하시는 최호영(崔虎永) 씨가 방학 동안에 나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는 곧 찾아가서, 머리를 숙이고 사정을 이야기하여 잠깐 동안이라도 바이올린을 가지는 법뿐이라도 좀 가르쳐 주십사고 간청하여, 승낙을 얻은 결과 비로소 우리 천재 소년은 처음 음악 선생님을 만났고, 처음 바이올린의 줄 고르는 법을 정식으로 배워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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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애처로운 일로는 최 선생도 방학 동안에 귀국하였던 터이라, 단 한 달도 채 못하여 섭섭한 손을 놓고, 다시 동경으로 가시니, 병소 씨는 또 다시 선생님 없는 한탄에 쓸쓸한 날을 헛되이 심심히 보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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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마음대로 못 쓰는 가여운 어린 몸이 한없는 재주를 헛되이 묵히면서 쓸쓸히 선생을 그리는 것을 보고 남모르게 마음을 졸이고 계시던, 그의 아버지는 기어코 서울로 올라오셔서, 경성 악대의 대장 백우용 씨를 찾아보고, 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을 만나 그 재주를 잘 길러 주겠느냐고 의논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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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백 씨가 조선 호텔에 음악 지휘로 있는 독일 음악가 후우스 씨를 말하면서 그이에게 배우게 하라고 소개 하였으므로, 병소 씨의 부친은 곧 병소 씨의 공부를 위하여 집을 서울로 옮기기까지 하려고 결심하고 내려가셔서 (집은 올라와서 차차 정하고 옮기기로 하고), 우선 병소 씨만 데리고 올라오셔서, 먼저 중동(中東) 학교 속수과에 입학시키고, 즉시 조선 호텔 안 후우스 씨에게 처음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그의 열세 살 때의 6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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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못 따를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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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같이 감사할 아버지의 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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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가 물을 만났다 할는지……. 우리의 천재 병소 씨는 중동 학교 속수과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우등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올봄에 양정 고등 보통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되어 어려운 과정을 치르어 가면서, 그 여가에 그 나마 매일 몇 시간씩이 아니요, 일주일에 단 두 시간씩 교수를 받는 것이건마는 원래 범상치 않은 재주를 가진 터이라 한 시간, 한 시간씩 늘어가는 기술이 기어코 단 1년을 지나서 후우스 씨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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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는 내가 가르칠 것은 다 가르치고, 더 가르칠 것이 없소. 이런 무서운 천재는 동양 와서 처음 보았소. 인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독일이나 오지리(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 가서 한 1, 2년 만 있다 오면 아주 세계적 음악가가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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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까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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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5일 저녁에 병소 씨가 우리 어린이 사에 와서 시험 연주하는 것을 듣고, 모든 사람이 그저 심취한 것은 물론이고, 바이올린 선생님인 최호영 씨는 그 때에 그 비범한 기술에 감탄하기를 마지 아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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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 놀라운 일이외다. 거의 조선에서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기술입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연주에 예술적 감흥은 적지마는 그것은 나이가 늘어가면 차차 훌륭히 생길 것이요, 기술은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트릴 같은 것은 아무라도 그렇게 오래 못 하는 것인데, 이 소년은 큰 사람 같이 손가락 마디가 굳지를 않은 데다가 기술까지 좋아서 그것을 비상히 오래 하는 것도 처음 재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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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말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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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년 동안의 공부로 1 열네 살의 어린 몸이 이렇듯한 성적을 낸 일은 실로 그가 천품으로 타고난 천재가 아니면 도저히 도저히 될 수 없는 일인 것은 다시 말씀할 것이 없거니와 우리는 다시 병소 씨의 아버지의 남다른 감사한 성의를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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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의 조선 소년의 아버지라는 아버지가 어떻게 어린 사람의 생명을 밟아 왔습니까. 얼마나 어린 생명을 학대하여 왔습니까……. 대 발명가가 될 소질을 가진 아들을 보면 ‘곰상스럽다.’하여 꾸짖고 때리어, 그 재질을 죽였습니다. 한 사회, 한 나라, 온 세계라도 잡아흔들 듯 싶은 용맹한 사내다운 소질을 가진 아들을 보면 사나워서 못 쓴다고 꾸짖고 때리어 그 용맹성을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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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가 될 천재가 있으면 ‘환쟁이가 되려느냐’고 꾸짖어서 그 천재를 죽였습니다. 더구나, 음악 공부가 될 말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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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녀석아, 무엇을 못 해서 깡깡이를 배운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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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집안 망할 일 생겼다고, 야단 야단이 일어나는 것은 정해 놓은 일이었습니다. 아아! 이리하여 조선의 모든 것은 말랐습니다. 시들었습니다. 조선을 빛내고, 세계를 더욱 빛나게 할 천재가 조선의 위대한 천재가 나면 나는 대로 그 부형의 손에 죽고 죽고 하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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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 모든 천재만 살았었으면, 조선의 천재들이 나는 족족 그 활개를 폈었다면, 아아 아아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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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도 울어도 시원치 않은 아버지가 많은 틈에 우리 병소 씨의 아버님이야말로 드물게 보는 감사할 어른이었습니다. 여덟 살 먹은 아들이 창가한다고 소리만 삑삑 지르는 것을 보는 아버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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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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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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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 광대가 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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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꾸짖을 때, 그이 아버지는 시골서 백방으로 주선하여 풍금을 얻어다 주셨고, 그가 동리 아이의 바이올린을 빌어, 잠도 안 자고 요란히 굴 때에 아버지는 꾸짖지 않고, 도리어 귀를 기울여 그것이 그의 남다른 천재인 것을 발견하고 20여 원짜리 바이올린을 사 주었습니다. 더구나, 어린아이의 음악 공부를 위하여 살림을 서울로 옮기기까지 하는 일이, 아무나 다 못할 일이어든 한 달에 단 여덟 시간이나 많아야 열 시간 배우는 데 25원씩의 비싼 월사금을 전당 잡히고, 빚을 얻어 가면서 내고, 아무리 바빠도 아들의 손목을 잡고, 교사의 앞에까지 같이 가서 배우고 나오는 시간까지 열심히 지켜앉았다가 데리고 돌아오고 하는 정성이야 어떻다고 말씀할 길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 들을 때 스스로 눈물이 흐름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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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조선은 새로워 옵니다. 각 방면으로 어린 천재가 고개를 들고 나타나옵니다. 이 때에 우리는 더 많은 조선의 천재와 함께, 이러한 거룩한 아버지가 더 많이 나오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광 있는 소개를 쓰게 된 일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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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우리는 우리 10만의 독자 동무와 함께 마음과 뜻을 합하여, 병소 씨의 병약한 몸과 그 부친의 바쁘신 몸에 건강과 행복이 끊임없으시기를 간절히 빌고 있겠음을 특별히 붙여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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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1926년 10월 1일〉
【원문】가여운 병신(病身) 몸으로 바이올린의 대천재(大天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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