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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 4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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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0월
백신애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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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 4제
 
 
 

1.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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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골뜨기라 그런지 연전에 한번 택시에 치여서 백주대도白晝大道 위에 쭉 뻗고 하마터면 영 잠을 자고 말 뻔했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나 죄우간 자동차라면 맘에 그리 탐탐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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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대구처럼 ‘아스팔트’ 를 깔지 않은 길을 걸을 때 마구 먼지를 휘날려 사람들 숨통을 막히게 해놓고도 한 마디 사과도 없이 태연히 달려가버리는 밉살스런 자동차의 번들거리는 궁둥이란 못 참을 것의 하나이다. 그뿐 아니라 설령 내가 턱 버티는 때라도 맘이 펀치 못하기는 끝이 없다. 비록 체면 유지하느라고 젖히고 앉았기는 하지마는 나의 고통을 참는 마음[苦勞性]은 그저 사람을 칭구워 넘길 것 같고 곱게 차려둔 상점 같은 데 쫓아들어 갈 것 같아 그저 가슴이 조마조마한데다가 길 걷던 사람들이 먼지를 덮어쓰고 내가 탄 자동차 궁둥이를 눈을 흘기고 원망할 것을 생각하면 영영 자동차 탈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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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동차에 비하여 기차는 단연히 그렇지 않다. 한번 올라앉으면 맘이 편하고 든든하다. 첫째, 길 가는 사람들에게 먼지도 씌우지 않을 뿐 아니라 자동차처럼 되는대로 그저 아무 골목이나 막 털어놓고 쫓아다니는 그런 무례막심한 류가 아니다. 한번 꽥꽥 소리만 지르면 백사만사다 제지하고 그저 달아난다. 어디까지든지 두 줄기로 정답게 뻗쳐 있는 레일 위를 티끌만한 장애도 없이 절대의 특권을 가지고 저 혼자만 달려가는 그 유쾌함이야 감히 자동차 같은 소인배들에게 비할 바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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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분일초의 에누리도 사정도 없이 울며 잡는 수많은 소매들을 다 떨쳐버리고 간다면 가버리고야 마는 그 용단성(?)이야 얽매여 사는 인간들에게는 얼마나 부럽고 통쾌한 존재이랴 그뿐 아니라 거만스럽고 건방진 친구들에 게는 다시없는 교우의 하나가 되는 기차님이다. 제아무리 제라는 양반 신사 라도 기차시간만은 어기지 못한다. 기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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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조금만 일찍 왔다면 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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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스스로 후회는 할지언정 기다리지 않고 가버렸다고 기치를 욕은 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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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날 오뉴월 황소같이 생기고 하루가 ‘엿’ 같고 파리잡이 풀같이 녹진한 표 서방表書房이 ‘풀 스피드’ 로 정거장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표 씨는 길을 걸을 때 두 팔 흔들기도 힘이 든다고 그저 내려트린 채 대링궁 대링궁 걸어 다니며 두 눈도 일상 보아도 삼분지 일 밖에 뜨지 않는 아주 초만만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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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이 표 서방에게도 달음박질을 시키는 절대의 위엄을 가진 유쾌하고도 용기 있는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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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후미기리’ 를 지날 때 좌우로 사람이 비켜서 있는 것을 볼 때나 정거장 안에 쑥쑥 들어가면 금테짜리 영감 이하 꼭 바로 서 손을 들어 모자챙에 대고 인사하는 것을 볼 때 나는 제 세의 ‘돈키호테’ 가 되려고 하는지는 모르나 모두가 나 하나 행치를 위함이나 다름없는 것 같이 ‘플랫폼’ 에 내려서며 어깨를 M자형으로 치켜들었다면 모두 웃을 것이다.
 
 

 
 
 

2. 카르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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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장長 자가 붙은 사람의 부인쯤 되어 보이는 여인 한 분에게 손을 이끌린 어린아이가 대합실 안에서는 제 치장이 제일인 것이 아주 우쭐해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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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카르켓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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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손을 벌렸다. 여인은 얼른 실주머니에서 과자 한 개를 내어 아기 손에 쥐이려다가 잘못하여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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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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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폴짝 뛰어 집으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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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 몬지가 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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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또 한 개를 다시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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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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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다시 쥐어주는 과자를 다른 아이들 식욕을 충동이나 하듯이 바삭바삭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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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디서 보고 왔는지 거러지 아이 하나가 급히 달려와 떨어진 과자를집으려 했다. 그 순간 여인은 모르는 척하며 한 발을 과자 위에다 슬쩍 놓으며 바사삭 소리를 내어 유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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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러지는 하마터면 밟힐 뻔한 손을 움칫하며 물러서 여인의 발을 안타깝게 꼭 내려다본 후 과자 먹는 아이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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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서 보고 있는 내 맘은 몹시 불쾌했다. 그러나 만일 그 여인이 떨어진 과자를 밟아버리지 않고 집어서 거러지에게 주었다면, 밟아서 버린 그 이상 더 불쾌하였을 것이다. 아무리 거러지 아이지만은 떨어진 것을 차라리 먹이지 않는 것이 나으려니, 라는 그런 호의로서 밟아버린 그 여인이 아님을 확실히 느낀 바임이다.
 
 

 
 
 

3. 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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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채레로 서 하소. 요보, 뒤에 갓소. 앞에 작고 나와 안 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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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지사람 역부는 차표를 사려는 사람을 일렬로 늘여 세우려고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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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금 할 말이 있소.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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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쓰고 망건 쓴 촌 양반 한 분이 자꾸 출찰구에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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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보, 안 되겠소. 마리 무슨 마리 뒤로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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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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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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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부는 양반의 어깨를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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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 양반 정신없구나. 표 파는 사람에게 무슨 이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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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사려던 젊은 사내가 비웃는 말을 붙였다 양반은 갓을 고쳐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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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공교히 돈이 한 일 전 모자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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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애처로운 시선으로 출찰구를 바라보았다 젊은이는 벌써 양반이 한 말이 무엇임을 알아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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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참 그 양반 전라도 무주구천동 사다 왔구려. 쇠통 정신없구나. 당신 차표 에누리 할 작정이오. 에, 이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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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놀려대는 판에 표 사려던 사람들은 모조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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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누리가 아니라 단 일 전이 모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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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모두 웃었다. 양반은 얼굴을 조금 붉혀서 그래도 단념하지 못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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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일 전이 모자라는데 이렇게 큰 장사하는 기차장수가 그까짓 것을 가지고 시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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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 정상이 딱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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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오 어디까지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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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어보았다. 불과 십팔 전이면 가는 XX까지였다 나는 표 한 장을 사가지고 양반에게 주려고 돌아섰다. 양반은 한편 구석에 서서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데 그의 손발 사이에서 일 원짜리인 듯한 지폐 한 장이 보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차표를 찢어버리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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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모처럼 들어간 일 원짜리다. 단 일 전에 그 돈을 헐기가 얼마나 안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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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각을 하며 그 손에 차표를 쥐어주고 개찰구로 달음질하여 나오고 말았다. 뒤에 생각하니 대단히 싱거운 나임을 깨달았다.
 
 

 
 
 

4. 일 이등 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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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이등 대합실에서 쉬는 사람이면 다 일 이등 차를 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에는 일 이등 객은 문밖에 서게 되고 삼등객의 너절한 친구들에게 대합실은 점령되고 마는 때가 간혹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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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면 역부가 실내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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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가, 저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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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인 그이지만 역부는 오십음도五十音圖로 발음하는 것으로써 위엄을 내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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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위로 인조견을 번쩍거리며 속옷에 함북 풀을 먹여 와그작와그작 소리를 내며 검정 고무신에 두꺼운 무명 버선을 담아 신은 한 떼의 할머니들이 히히히, 웃으며 몰려가고 뱃심 없고 양심 바로 가진 순진한 분들은 다시금, 다시금 쫓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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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저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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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부는 소파 한가운데 어깨를 올리고 앉아 있는 사람 앞에 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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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때 묻은 샤쓰에 오십 전짜리 ‘캡’ 을 젖혀 쓴 룸펜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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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저리 가, 저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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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부는 재촉했다. 그러나 룸펜 씨는 까딱하지 않고 태연히 앉아 있었다. 역부는 쫓아낼 길이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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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차표 좀 봅시다. 여기는 일등, 이등차를 티는 손님밖에는 앉지 못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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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기어이 쫓아낼 계교를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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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표를 이제 본담. 그 친구 정신 빠졌구나. 여기가 기차가 아니오. 차표 조사는 또 왜."
 
62
하고 딱 들이받았다. 역부는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그저 무턱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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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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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령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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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로 가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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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룸펜은 캡을 벗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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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표정은 살기를 품은 것이 완전히 나타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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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 대합실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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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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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의 말소리는 조용하고 저력 있는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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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일등 대합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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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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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뭐야. 가."
 
74
“가가 뭐야. 왜?"
 
75
“잔말 말고 저리 가."
 
76
“잔말이 뭐야. 왜?"
 
77
“그래도 안 갈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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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 양반이 공연히 사람을 웃기는구나. 왜 작고 가라는 가요?"
 
79
“일등 손님이래야 여기 앉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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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어째. 헤 참 자꾸 웃기는구나. 그래 저기 앉은 저 색시도 일 이등 손님인가. 구태여 나만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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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 씨 가리키는 편에는 머리때 묻은 인조견 저고리에 가짜 금비녀를 꽂은 술집 작부인 듯한 색시가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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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안 갈 테야? 그렇게 앉고 싶거든 옷이나 좀 깨끗이 입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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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부는 고소를 감추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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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그 말잘 했구나. 야, 이 친구 어느 빌어먹을 녀석이 새 옷 입고 여기 앉으러 오겠느냐 말이야. 자, 봐라
 
85
룸펜 씨는 벌떡 일어서며 주먹으로 소파를 쾅쾅 두들겼다. 소파에서는 더러운 먼지가 풀씬풀씬 일어나며 남색 비로드에 깐 소파는 먼지투성인 속판을 폭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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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만하면 말 다했지 뭐야. 내 옷이 암만 더러워 보여도 이 걸상보다는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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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 씨는 자기 가슴을 광광 두들겨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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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더럽다고 나가라지만 나는 걸상이 더러워 피해 나간다. 얼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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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가가대소하며 궁둥이를 툭툭 털며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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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1935년 10월
【원문】정거장 4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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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白信愛) [저자]
 
  삼천리(三千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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