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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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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10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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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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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에 있어서 전쟁이 던져주는 영향은 재언할 바도 없이 막대한 것이었다 . 그것은 형태의 여하를 막론하고 전후의 불안을 반영 또는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1차대전이 끝난 다음 대전이 야기시킨 정신적 고민은 일부의 시인으로 하여금 자기(自棄)와 파괴의 속에 몸을 던지게 하였다. 루마니아의 청년 트리스탄 차라가 명명한 다다이즘은 “폭풍과 같이 구름과 기도(祈禱)의 장막을 파괴하여 참화, 화염, 해체의 장대한 광경을 준비한다”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여러 동지의 응원을 얻어 기관지 『문학』을 출판하게 되어 구라파 문단의 일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다이즘의 운동은 결국에 있어 자기들의 최저 대항선도 만들지 못하고 1922년에 다다이즘에 속하여 있던 유능한 시인들의 반항정신으로 해체를 면치 못했다. 다다이즘에 속하였던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제1선언’을 발표하고 기관지 『초현실주의 혁명』을 출판하며 초현실주의의 발전적 논리와 이론적 지도자로서 일파(一派)를 주창하였는데 여기에 모인 사람은 태반이 다다이즘 운동을 하였고 또는 그 아류에서 헤매던 필립 수포,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프랜시스 피카비아 등이었다. 이들은 제1차에 있어 인간 해방과 세계 재건을 위해 선악, 미추, 가정, 조국, 종교 등의 모든 기존 가치와 교의를 파괴하여 문학적으로는 이지와 논리를 배격하고 잠재의식에서 우러나오는 자동기술 속에서 절대를 탐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운동은 출발점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마르크스의 이론과 헤겔 변증법에 두었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국제적 코스를 찾기 위해서 우선 영국으로 건너가고 미국 그리고 일본과 조선까지도 도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 서반아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출현은 전 세계의 회화인으로 하여금 경탄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국의 전위회화의 지도자 허버트 리드는 ‘예술과 무의식’ 에 관하여 그의 초현실주의적 입장을 공개하였던 것이나 그들의 마니페스토의 기억은 루이 아라공이 극좌작가연맹AEAR에 가입함으로 말미암아 위기와 망각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아라공은 불란서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된 1936년에 『아름다운 지역Les Beaux Quartiers』을 발표하여 새로운 휴머니즘과 새로운 코뮤니스트의 방향을 지침하고 휴머니즘적 이론에서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지시되었던 사회성의 재인식을 대두시키었다. 그는 르노도상을 받은 다음 일로(一路) 모스크바로 출발하였다. 같은 1938년에 폴 니장은 『음모La Conspiration』를 발표하였다. 아라공은 『아름다운 지역』에서 “수염투성이의 알만이 축제의 날 사람 많은 곳에서 그의 친구 앙드리앙과 만났다 . 이 친구는 군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앙드리앙이 관계하고 있는 우익단체와 연결이 되어 있는 비넬의 공장에 소개받기로 되었다. 알만은 대단한 기쁨으로 그곳의 직공이 되고 보니 그 공장은 스트라이크 중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라이크를 방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3일 후 그 반동적인 역할을 완전히 의식하였을 적에 그는 곧 공장을 뛰어나와 동맹파업본부를 찾아갔다. 그때 벌써 노동자 측은 실패하고 있었으나 투사들은 이 젊은 동지의 참가로 미래에 대한 빛나는 이상을 가질 수가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알만은 자기가 지금까지 먹지도 못하고 방황하던 파리의 ‘아름다운 지역’에서 멀어져 가려는 의욕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라공은 지금까지의 자기의 문학적 생활환경을 이러한 아름다운 지역에 두고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초현실주의의 사람과 부르주아 계급에서 사는 사람과 반동적인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인간의 이성적인 의욕에서 지금까지의 위치를 벗어난다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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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기술한 것은 1차대전 후 사회적인 불안과 동요 속에서 가장 현저한 문화 곧 문학의 운동을 말하였는데 지금 표제에 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제2차대전 후 구라파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특히 논의되고 환영을 받고 있는데 말하자면 2차대전 후의 최대 문학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의 작가 일리야 에렌부르크는 “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생 제르맹가이고 또 거기에 있는 두 개의 카페이다. 그 중의 하나 ‘카페 되 마고’에는 백발을 휘날리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여명(餘命)을 아끼고 있고, 다른 한 개 ‘카페 드 플로르’에는 전자의 적인 실존주의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오늘날 불란서 문학계의 초점이며 제1차대전 후 발생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와 같이 제2차대전 후 새로 나타난 J. P. 사르트르가 제창한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어떠한 것이냐? J. P. 사르트르는 1905년에 출생하여 그가 처녀작 『구토La Nausee』를 1938년에 발표하기까지는 노르망디의 르 아브르의 중학교 교원이었다. 그는 일찍이 데카르트, 야스퍼스, 키르케고르 등의 철학을 전공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 소설에서 허무에서 존재에의 정신의 변태(變態)를 미묘하게 그려냈다. 그의 『구토』를 처음 읽은 사람은 “여기에는 생, 사, 자아, 시간 등 여러 가지의 철학적인 문제가 취급되어 있음을 안다. 이것은 현상학적인 소설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르트르의 출세작인 이 소설은 일기체로 씌어져 있는데 그 주인공은 세계 각국을 여행한 다음 롤르봉 후작의 연구에 몰두한다. 롤르봉 후작은 ─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를 ‘원숭이’라고 불렀다 ─ 외교, 정치, 실업 각 방면으로 활약하고 러시아 체재 중에는 폴1세의 암살에도 힘을 쓴 사람이다. 사르트르는 아래와 같은 것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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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일은 하루하루의 일기를 쓰는 것이다. 물품을 명료하게 보기 위하여 일기를 쓰는 것이다. 암만 가치 없게 보이는 것이라도 세심히 정신을 기울여 분류해야 된다. 이 책상, 거리, 사람들, 담배 주머니 등을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쓸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변화한다.’ 그 변화의 범위와 성질을 정확하게 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기를 쓰기 위해서 만사를 과장하며 항상 주목하며 사실을 강요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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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변화하였다. 나 자신이 변화한 것이 아니면 이방, 이 거리, 이 자연이 변한 것이다. 변한 것은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법이 간단하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불유쾌한 사고의 방법이다. 지금까지 건드려보지 못했던 근소한 변태가 무수히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그것이 갑작스럽게 표면에 나타난다. 그러했으므로 내 생활의 외관은 이렇게 불통일하며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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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젊은 사람 속에 끼어 나는 벌써부터 눈앞에 있는 비어 컵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대로의 비어 컵이다. 그러나 무어라고 말하면 좋을까? 여기에는 다른 무엇이 있다. 나는 물 속에 공포의 쪽으로 점점 끌려가는 감을 갖는다. 처음으로 고독이 나를 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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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도서관에 가는 도중 길가에 떨어져 있는 종잇조각을 주울까 했으나 줍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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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얼굴의 미추는 아무래도 좋다. 조각과 다르니깐 미추 같은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오래도록 보고 있으니 대단히 재미있다. 자기의 눈, 코, 이마를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아주머니의 말씀 ‘거울만 보고 있으면 얼굴이 원숭이처럼 됩니다’라는 것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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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되겠다. 안 되겠다. ‘구토’가 난다. 이번에는 카페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카페는 나의 유일한 피난소였다. 이러다가는 이제는 갈 곳이 없다. ‘철도의 집’ 으로 가보니 마담은 없었다. 여급의 마들렌이 무엇을 먹겠느냐고 물을 때 나는 ‘구토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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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어제의 명상을 계속하고 있다. 모험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하면 또다시 생활할 필요가 있다.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는 어디로 여행을 하여도 항상 모든 것은 동일한 것이다. 배경이 변하고 인간이 출입할 뿐이다. 그러나 생활을 이야기할 때에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 모든 사건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온다 시간을 . 역행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도 모험적으로 된다. 모험 같은 것은 없어지고 남은 것은 ‘이야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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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마블리의 내부를 유리창 밖에서 들여다보니깐 손님들이 가득찼다. 내 머리와 같이 갈색 머리의 카운터의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는 악성의 병이 들어서 그 육체가 부패되어 갔다. 그 여자를 보고 있으니 전신에 악감(惡感)을 느끼게 되었다. 저것이다. 저것만이 오늘 하루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미소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나의 생활도 정지되었다. 나는 행복스러웠다. 그러나 곧 괴로운 회한뿐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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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같이 투명한 추상적인 사념으로써 자기를 세탁하고 싶다. 모험의 감정은 사건에서 발생치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데서 온다. 보통 여자를 보고 여자가 늙어간다고 생각하여도 그 나이 먹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때 그것을 보고 자기도 함께 늙어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모험의 감정이다. 그것은 시간의 비가역성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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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현재의 것이 아니면 존재치 않는다. 과거는 존재치 않는다. 사물이나 사상에서도 동일하다.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서는 과거는 피난소였으며 별도의 생활방법이었고 휴가와 무위의 상태였다. 롤르봉 후작은 나의 마음속에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살아왔다. 그는 존재하는 데 내가 필요하였고 나는 자기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기 위하여 그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지금에선 그는 죽어버렸다. 허무에 돌아가고 말았다. 그의 두 번째의 죽음을 맞이했다. 롤르봉 사건은 끝났다. 참으로 열렬했던 연애사건모양 과거는 죽어버렸다. 이 앞으로서는 어찌할까. 우선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대기하여 있던 ‘물상’이 급히 모여 나에게 뛰어든다. 그것은 나의 육체 속을 흐른다. 지금 ‘물상’은 바로 나다. 해방되었던 존재가 내 가슴 위에 역류한다. 나는 존재한다. 허나 만일 사색하지 말고 지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상은 참으로 소용없다. 육체보다 소용없다. 사상에는 언어가 있다. ‘나는 존재한다’ 고 하는 것은 나다. 육체는 혼자서 자란다. 사상은 내가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존재한다.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못쓴다. 어디까지 가도 같은 사상이다. 나의 사상은 나다. 그러므로 나는 정지할 수가 없다. 나이프로 손을 상하게 했다. 백지 위에 피가 흐른다. 그러나 그 피는 벌써 나의 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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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전 중(1차대전) 포로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말한다. 그때의 생활로써 그는 인간을 사랑할 줄을 알게 되고 누구든지 형체처럼 포옹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 그는 군중 속에 있는 것을 즐겨하고 전연 모르는 사람의 장식(葬式)에도 참렬(慘烈)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회주의의 단체에 가입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하였다. 나는 벌써 혼자가 아니라고, 그는 행복스러웠다. 그는 인도주의자다. 나는 비인도주의자는 아니나 인도주의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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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재의 비결 나의 ‘구토’의 열쇠, 나 자신의 생명의 열쇠를 찾아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쳐다보는 사이에 모든 존재의 탄생을 배웠다. 운동이라는 것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으나 그것은 추이(推移), 두 개의 존재의 중간, 미약한 시간이다. 허무는 머릿속의 관념에 지나지 못한다. 거대한 속에 흔들리며 존재하고 있는 관념에 지나지 못한다. 허무는 존재의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니깐 ─ 다른 많은 존재의 다음에 나타나는 것처럼 일종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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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하지 않는다고 그 여자는 말했으나 그 여자는 확실히 변화하였다. 변하지 않는 나는 그 여자가 어느 정도 변화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도정표(道程標) 같다고 말한다. 그 여자는 늙었다. 피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런던에서 무대에 선 일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여행만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패트론도 있다는 것이다. 책상 위에 그 여자의 옛날부터의 애독서인 미슐레의 『불란서사』가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여자의 옛날부터의 이상이었던 ‘최상의 시간’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모양이다. 그는 그 자신으로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옛날에 안니(그 여자의 이름)는 소멸하고 말았다. ‘나는 흰눈까지(눈의 흰자위까지 ─ 편집자) 변화하였어요’라고 그 여자는 말한다. 이상형의 소녀가 현실적인 여자로 되고 말았다. ‘나는 생창피를 당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때 그의 얼굴은 눈물도 연민도 없었다. 말라버린 절망을 나타내었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모험도 ‘최상의 시간’도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두 사람 모두 꿈을 잃어버렸다. 두 사람이 다 같은 도정(道程)을 하여왔다. 다 함께 변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여자를 설복시킬 힘이 없었다. 우리들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두 사람은 말할 것이 없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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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다. 나에게는 벌써 아무 생존 이유도 남지 않았다. 나는 어떠한 강렬한 구토 때에라도 안니면 구원하여 줄 것으로 믿어왔다. 그 희망도 사라졌다. 롤르봉 씨도 죽었다. 나의 과거는 죽었다. 나는 고독하며 자유다. 이 고독은 어느 정도 죽음에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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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에 또 한 번 저 자스의 레코드를 들려주는 ‘철도의 집’에 가서 마담과 작별하였다 그 흑인녀의 . 절망적인 노래가 지금까지 알지 못하였던 일종의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오늘부터 이 시간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나는 소설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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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에 나타난 사르트르가 암시하는 것은 실존이란 무동기(無動機), 불합리, 추괴(醜怪)이며 인간은 이 실존의 일원으로서 불안, 공포의 심연에 있다는 것이다. 이 심연에서 구원을 신에게 찾는 것이 키르케고르이나, 무신론자 사르트르는 행동에 의한 자유를 찾지 못하고서는 구원은 없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최근 미국에서는 ‘신이 없는 키르케고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완전한 순간’이라는 것을 귀중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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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기계적 인간도 아니며 악마에 시달린 것도 아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우리들은 자유인 까닭이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하는데 실제에 있어 자유라는 것은 중량의 부담이었다는 것을 사르트르는 사무치게 느끼었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오직 육체 자체의 사고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이지(理知) 이상의 지적인, 혁명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사르트르의 사상과 문학이 불란서에 발생한 필연은 패전 후의 불란서의 고민의 제상이었고 사르트르 개인의 철학 전공과 프란츠 카프카 (1883~1924)의 작품 영향도 있다. 그는 『변신』에 있어 철저적인 허무주의의 경향을 그렸고 장편 『아메리카』는 그가 죽은 다음 맥스 부로트의 손으로 발표되었다. 스티븐 스펜더는 그를 평하여 “카프카의 인간적 경우는 연옥에서 낙원에 도달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동일하다. 그의 죄악과 무지와는 그의 소신 속에 있다. 어디엔가 인간의 행동이 심판되는 옳은 규칙이 있다고 그는 신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란서에서는 지금까지 암흑은 철저한 암흑사상을 만들고, 고민은 철저한 고민의 작품을 만들었다. 근대에서 확립된 ‘인간’이 작품 위에 그 모습이 완전히 묘사된 나머지 사르트르에 이르러서는 도대체 인간의 존재는 무엇이냐, 인간의 존재는 우연이냐 필연이냐, 인간은 자유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유스럽지 못한가. 이 끝끝내 파고 들어간 정신은 불란서 파국의 속에서 실존주의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같은 1938년에 공쿠르상을 받은 앙리 트로이아Honri Troyat의 『거미Laroigne』도 불란서 청년의 정신적 말로와 지식계급의 회의와 무의지와 반항과 자살을 그린 작품이었다. 그가 현실을 그리는 것은 현실의 추와 불합리를 표현하는 데 있다. 그의 성적 묘사, 추악 폭로는 그의 철학적 현실관의 이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르트르는 『구토』를 발표하기 전 『상상』이라는 순철학적인 저서가 있었고, 『N. R. F』지에 2편의 중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 후 서반아 내전을 주제로 하여 『벽Le Mur』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주인공 파블로 이비에타와 라몽 그리스의 반(反) 프랑크전을 묘사하였다고 한다. 사르트르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희곡을 발표하였다. M. 체보의 말을 옮기면 “사르트르의 근작 『분묘가 없는 사자(死者)』가 앙트완좌에서 상연되었는데 이것은 반독(反獨) 항거부대의 작품이다. 이 희곡은 우선 민병과 항거부대에 반의(反意)를 보이고 있으나 민병이 참혹하게도 항거부대를 전멸시킨다. 부대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병정을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극장 내는 막 떠드는 비난의 소리로 소란해진다. 사르트르파는 사르트르를 변호하여 “독일병과 파르티잔에서라도 그들이 체포한 불인(佛人) 포로를 이렇게까지 학대했는가 안 했는가 제군에게 질문하고 싶다”라고 떠들었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 독일인은 그러한 학대를 하였다”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연극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이러한 문제 제공은 악취미인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사르트르는 죽게 되며 또는 벌써 그 형(形)을 받은 인간 속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의 반동(리액션)을 연구하려고 한다. 그가 취급하고 있는 문제는 심리적이며 형이상학적이며 거기에는 정치적인 그 아무것도 없다. 사르트르는 이 무서운 분위기 속에서 긴 회화로 이것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자체는 훌륭한 아름다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때때로 연극의 유일의 가치라고도 볼 수 있는 감격도 보이고 있고 이 무서운 희곡 외에도 여러 가지 활발한 소희극(小喜劇)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이 작품들에서는 철학이 작품을 해독(害毒)시키지 않고 처음으로 사르트르의 탁월한 극작가로서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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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착의 「뉴욕타임즈」매거진은 “실존주의자의 햄릿”이라는 제(題) 아래 사르트르의 신작 『더러운 손Le Mains Sales, Dirty Hands』, 『정열의 범죄Crime passionel, Crime of passion』등이 파리와 런던에서 인기 집중에 있다고 하고 뉴욕의 다음 시즌은 그의 작품 『붉은 장갑Red Gloves』이 상연될 것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햄릿형의 코뮤니스트의 생활과 내면을 주제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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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으로 생각할 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구라파와 미국에서 히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불란서에 독일의 진격으로서 나타난 사르트르의 작품이 어찌하여 미국과 같은 전승국가에서 환영을 받고 있는지? 이것은 전쟁을 하였던 데서 정신적 불안과 혼미한 세상(世相)이 풍속화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데 공통성이 있고 아메리카인의 독자적 문화 배경의 저위(低位)를 말하고 있다. 실존주의의 운동은 현재 사르트르를 제외하고서는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금년 5월 10일의 『라이프』지가 소개하고 있는 비엔나 출생의 화가 헨리 코너Henry Koerner는 현재 미국에서 회화(繪畵) 위에 실존주의의 여러 가지 요소를 가미시키고 있다. 사르트르는 1946년 11월 1일 소르본대학에서 열린 국제연합 교육과학 문화기관인 유네스코대회에서 일장의 연설을 하였다. 이날은 카페 데 플로르가 대학에 장소를 옮긴 감이 적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요지(要旨) 아래와 같은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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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기의 작품을 우수한 것으로 하려는 것은 그것을 단순한 울부짖음에서 창조의 역(域)까지 높이겠다는 욕망에서 오고 이때 작가는 당연 집필하기 위한 자유를 필요로 한다. 그와 동시에 독자의 그 작품에 관한 비판의 자유도 불러본다. 문제는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자유의 풍토에서 뿐이며 그 이외에는 모두가 선전이다. 일부의 부유식계급부터 애독되고, 기독교라는 강고한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지속되었던 15세기의 작가는 과도기적 시대에 있어 시민계급(부르주아지)의 대표자였던 18세기의 작가에 비한다면 그 책임은 경(輕)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태는 대단히 변화하였다. 아직도 작가는 시민계급에 속하고 있고 그들로 하여금 읽히고 있는데, 허나 지금 이 계급은 그 이데올로기의 붕괴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의 재건이 작가의 의무로 되고 책임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농민 노동자층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의 사회는 작금 사상의 자유를 부인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 선전가로 될 수밖에 없다. 이 의미에서 작가는 노동자의 사회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같은 의미에서 현존의 다른 계급까지도 거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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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문(一文)으로서 충분히 사르트르의 사회관과 사상도 알 수 있다. 또 다시 에렌부르크는 말하기를, “이런 것은 모두 시대착오이며 과거의 변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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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이 부서진 후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고 쉬르레알리스트의 혁신시인들은 불란서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건설적인 노동자의 계급으로 달려갔다. 그것은 문학인뿐만이 아니고 화가 피카소, 장 말케도 참가하였다. 루이 아라공, 엘뤼아르는 대독전(對獨戰)에 있어 영웅적인 투쟁을 하여 온 초현실주의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반파시즘 항전이 격렬하였을 적에 나타난 J. P. 사르트르는 철학적 회의와 현대 인텔리겐치아의 취약한 정신과 사고의 입장에서 실존주의를 내세웠다. 앞으로 이 고독한 실존주의 주창자는 어떠한 방향으로 전진할 것인가. 혼란된 불란서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어 실존주의는 과연 존재하며 육체를 만들지? 에렌부르크가 말한 반동적인 무신론자들은 오늘 자유의 포물선상에서 괴기한 절망을 바라볼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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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1948. 10)
【원문】사르트르의 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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