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허허 망신했군 ◈
카탈로그   본문  
1930.1
채만식
1
허허 망신했군
 
 
2
때아닌 비가 와서 길바닥이 몹시 진 바로 며칠 전 석양이다.
 
3
나는 평소에 하는 대로 인쇄 잉크와 기름이 새까맣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채 벤또 꾸러미를 옆에 끼고 교동 어귀로 들어섰다.
 
4
길바닥은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이 보면 한바탕 데굴데굴 굴러보고 싶게 동지 팥죽 이상으로 흐뭇하게 이겨놓았다.
 
5
오고가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비켜서 마치 걸음을 처음 배우는 어린애처럼 뜸적뜸적 거북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6
나도 동편쪽 상점 앞으로 다가서서 마른 곳을 밟아 가느라니까 바로 앞에서 쯤 되는 모던 17% 걸 하나가 역시 댄서 흉내를 내는 것처럼 걸음마를 하고 온다.
 
7
단발은 않고 레이티스트 스타일의 낙타색 오버를 쿨럭쿨럭하게 입고 역시 오버빛과 같은 실크 양말과 굽 높은 구두를 신고(덧구두가 없는 것이 유감이다)화장은 50%, 귀는60%를 가리고 손에는 변호사 가방의 새만한 가방을 들고……
 
8
이만할 모던걸이니 인쇄 잉크와 기름에 새까매진 고 시벵(腰辨)을 찬 한 마리의 인쇄 직공의 존재 같은 것은 주의할 여유도 없을 터이다.
 
9
그러나 인연은 묘한 것이라 우리 두 사람은 담배가게 앞에서 딱 마주쳤다.
 
10
나는 거진 무의식적으로 길을 비켜 주느라고 진 길바닥으로 비껴섰다. 그와 나는 대각형(對角形)으로 서게 되었다.
 
11
그 순간이다.
 
12
그 모던걸씨는 마침 길바닥에 놓인 진흙 묻은 미끄러운 널판지를 밟고 지나가려다가 그만 뾰족한 구두꿈치가 삐뚝 미끄러지며 상체의 중심이 사뭇 내게로 향하고 쏠렸다.
 
13
그는 기울어지는 중심점을 회복하려고 손을 내저으며 몸을 비꼬았으나 물리학상 원리는 그것을 허락치 아니하였다.
 
14
그대로 두면 모던걸이 진흙바닥에 굴렀다는 일대 참사가 돌발될 터이다.
 
15
나는 한 걸음 그의 앞으로 다가서 주었다. 그는 구세주를 만난 참 예수꾼처럼 체면 염치는 잠깐 전당포로 보내고 그대로 내 가슴에 덜컥 안겨버렸다.
 
16
이리 된 바에야 나도 덜컥 받아 안았다.
 
17
그때 마침 등 뒤에서 누구인지
 
18
“이 친구 어젯밤에 꿈 잘 꾸었구려.”
 
19
하는 농담 소리가 들렸다. 짓궂은 녀석이다.
 
20
그 서슬에 우리는 서로 해방을 하였다.
 
21
안기운 것을 내어놓고 그 모던걸씨의 얼굴을 한번 치어다보느라니까 이게 웬일인가.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나를 노려보면서
 
22
“이게 웬 게 이렇게 추근추근하게 이래?”
 
23
하고는 싹 지나가 버린다.
 
24
허허! 물에 빠진 놈을 건져놓으니까
 
25
‘내 보따리를 내라’고 하는 격이다.
 
26
꿈을 잘 꾼 것이 아니라 잘못 꾼 셈이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고 섰다가
 
27
“허허허허 망신했군.”
 
28
하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29
사방에서 “허허허허”하는 웃음의 홍소가 터졌다.
 
30
기왕에 억울한 욕을 먹을 바이면 껴안고 있을 때에 키스나 한번 톡톡히 할걸……
 
31
생각하니 섭섭하다.
【원문】허허 망신했군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콩트〕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8
- 전체 순위 : 5123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677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허허 망신했군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0년 [발표]
 
  콩트((프) conte)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허허 망신했군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