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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랑(螳螂)의 전설 ◈
◇ 2 막 ◇
카탈로그   목차 (총 : 3권)     이전 2권 다음
1940.10
채만식
1
제 2 막
 
2
제 1 장
 
 
3
〔무대〕
4
포치를 중심으로, 아래층 중앙 정면의 일부분만 보이는 큰 목제 양옥. 포치의 앞기둥엔 인천미두취인소(仁川米豆取引所)라는 간판이 붙었다. 포치에서 좌우로는 넓은 간격을 두고 장방형의 상하식 좁은 유리창이 각각 두 개씩. 오전 열한시반, 즉 전장지(前場止)의 바로 전각(前刻), 막이 열리면, 미두장 안으로부터는
 
5
“생고꾸(千石[천석])야로오!”
 
6
“산겡고햐꾸(三千五百石[삼천오백석])돗다!”
 
7
“핫셍(八錢[팔전])야로오!”
 
8
“고셍(五錢[오전])돗다!”
 
9
이러한 몇가지의 드높은 아우성을 중심으로, 그러나 그 규성들이 실상 무슨 소린지 언뜻 분간을 할 수가 없을 만큼, 다수한 군중의 와글와글 흥분하여 떠들고 부르짖고 하고 요란스런 둔소음(鈍騷音)이, 정신 아득하게 들려나오고.
10
포치 안의 활짝 열린 정문으로는 의표(儀表)가 비교적 깨끗한 미두꾼들이, 더위와 잔뜩 긴장한 얼굴에 겸하여 바쁜 걸음으로 연락 부절 들고 나고 하고. 일변 무대에는 양복짜리, 모자 쓴 두루마기짜리, 깎은 머리에 탕건 받쳐 쓴 갓짜리, 상투 꽂은 마른신짜리, 맨머리의 동저고리짜리, 감발에 짚신 신은 패랭이짜리, 게다 신은 유까다짜리, 이렇게 모두 형형색색이로되 그 죄다가 헙수룩하니 의복은 땟국과 땀으로 휘감기고 얼굴엔 윤기가 없고 한데에 완전히 일치가 되는 하바꾼, 돈 떨어진 마바라(小資本米豆[소자본미두]꾼), 옥관(玉觀), 구경꾼의 한떼 군중이 미리서 등장해서 있어가지고 서로들 분주히 납뛰고 지껄이며 떠들고 하는 중에도 하바꾼들은 이 구석 저 구석, 둘씩 셋씩 모여서서 고개를 처박고 쑥덕쑥덕하면서 간혹 돈을 서로 주고받고 하고 돈 떨어진 미두꾼들은, 혼자서 혹은 무더기로 넋을 놓고 우두커니 미두장을 바라다보고 섰다.
11
옥관(玉觀)은 점잖스럽게 부채질을 하면서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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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은 무표정하게, 어칠버칠하면서 과연 구경을 하고 있고. 그리고 다시, 치열린 네 개의 유리창에는 창마다 하바꾼이며 돈 떨어진 미두꾼 혹은 구경꾼이 3, 4인씩 4, 5인씩 죽자꾸나 매달려서 장내를 들여다보고 있고. 그들의 머리 너머로는, 장내의 한참 복작거리는 데후리의 입회광경(立會光景)이 약간 얼찐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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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약 1분 동안 소란(騷亂)이 계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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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1분 동안이 지나고 나면 장내로부터 별안간 딱따기 소리가 모질게 울리면서 씻은 듯 ‘얏다’ ‘돗다’의 아우성은 뚝 그치고, 군중이 웅성거리며 떠드는 둔소음 한결 더하다가, 다음 순간 일군의 초라스럽지 않은 미두꾼들과 간간이 손에 금절표(金切票)를 쥔 바다지들이며 조쓰깨들이 흥분과 더위에 헉헉 숨차 하면서 포치의 정문으로 메어질 듯 와아하니 몰려나온다. 하되, 그 많은 얼굴들이 만족 아니면 실망, 이 두 가지 표정으로 판연하게 갈려서 통일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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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뒤로 연해 쏟아져 나오는 장내의 군중은 다시 장외에 있던 군중과 한데 합쳐가지고 혹은 헤어져가면서 혹은 그대로 서성거리면서, 입입이 떠들고 지껄이고 불러내고 하느라고 무대는 발끈 뒤집히는 가운데
 
16
“오천 석 방(放)했네!”
 
17
“통 몇 정(丁)야?”
 
18
“긴상, 즘심 한탁 써요!”
 
19
“대판은 팔전 도매.”
 
20
“전장에 도통 오백사십 정이 뛨어!”
 
21
“돼지꿈도 별수 없군.”
 
22
“전라도가 김만경(金萬頃) 뻘이 적지(赤地)래!”
 
23
“이건, 어따 대구 도활 불러?”
 
24
“제엔장! 인생이 참으로 여반장이로군.”
 
25
“옥관이 제가 실상 알긴 쥐뿔이나 무얼 알어?”
 
26
등의 소리가 선후 없이, 그리고 유난히 높다.
27
이상, 약 20초 이내로 무대 급히 암전)
 
 

 
28
제 2 장
 
 
29
〔무대〕
30
미두취인점 마루상의 사무실. 바닥은 시멘, 후면은 벽, 상수는 유리창의 외면에는 나무창살. 나무창살에는 발을 쳤다. 하수는 전면으로 다가, 출입하는 문, 문지방에는 염창(簾窓), 문을 들어서면 후면을 향해 이층으로 급하게 올라간 좁다란 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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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의 벽 앞으로는 관객석을 향해 중앙쯤에 사무용 탁자가 한둘, 그 좌우로는 대형의 금고를 비롯하여 문서고가 두어 개 적당히 놓였다. 탁자엔 잉크, 필갑 등 문방구가 간단하고 안락의자가 딸린 걸로 보아 주인의 소용임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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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의 유리반창 앞으로는 하수를 향하여 다시 사무용 탁자가 제각기 문서고와 장부궤(帳簿櫃)를 등지고서 나란히 두 틀, 탁자 위에는 제마다 탁상 전화와 머리가 파묻힐 만큼 장부가 그득히 꽂힌 장부대와 기타 잡다한 문방구.
33
전면으로 치우쳐 중앙쯤엔 승객용의 원탁, 의자를 서너 틀 둘러놓고, 탁자 위엔 신문과 찻종들.
34
후면 벽에는 미두 시세의 등락을 그린 괘선(罫線)이 전면에 빈틈없이 붙고 한가운데 기둥으로 높직이, 둥근 괘종이 걸렸고.
35
층계 아랫바닥에는 구두, 편리화, 그리고 흑간 짚신과 게다와 마른신도 섞인 다수한 신발이 잡연히 놓여 있다. 무대 급히 밝아지면서, 시계는 열한시 사십분을 가리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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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저고리와 와이샤쓰까지 벗어붙인 사무원 갑·을, 갑은 펼쳐논 장부 위에 고개를 숙이고 한참 기입하고 있고 을은 손에 펜을 쥔 채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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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원 을   네에네! 오천 석이요! 알겠읍니다! (빙글빙글) 간밤에 참, 좋으시던데요? (間[간]) 네? 아아 아하하하! 거 참, 피차 일반이드랬군요! 하하하! (間[간]) 네에네, 그럼. (전화를 끊고 펜을 놀리면서 방백) 먹는 사람은 이렇게 듬쑥듬쑥 먹는데, 맨 그저 망했단 소리지 부자 났단 소문은 없으니 어떻게 된 셈이야! 도대체.
 
38
사무원 갑   따 먹질 못하구서, 그 댐에 가서 도루 토하구래야 마니깐 그럴밖에! (전화벨 소리. 통화기를 집어 대고) 네에. (間[간]) 아아! 젠상이십니까? (間[간]) 전장도메 삼전입니다, 삼십사원 오십삼전 (間[간]) (주인의 탁자를 들여다보고) 방금 아까 나가섰는데요. (間[간]) 네에네, 그럼 안녕이. (전화를 끊고 도로 일을 한다)
 
39
(미두 손님 갑, 사무원 갑이 전화를 받기 시작할 때 등장, 이내 2층으로 올라가려고 층계 밑에서 신발을 벗는다. 깨끗한 신수에 만족스러하는 표정)
 
40
사무원 을   (마치 고개를 쳐들고, 반겨) 여보, 김주사?
 
41
미두 손님 갑  (돌려다보고, 의미 있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무언)
 
42
사무원 을   (같이 웃으면서 눈을 흘긴다) 왜 지끔 이층으루 실끔 올라가 버릴 령으루 이래요?
 
43
미두 손님 갑  그럴 리가 있나!
 
44
사무원 을   어떡허실 테야? 이따가 저녁에.
 
45
미두 손님 갑  아므렴! 장부일언 중천금인데! 허허허. (바다지 손에 금절표(金切票)를 쥐고, 염창을 밀치며 들어오다가 미두 손님 갑에게 가로막혀서 그대로 멈춰 선다)
 
46
사무원 을   어디 봅시다!
 
47
바다지    (미두 손님 갑의 어깨를 떠밀면서) 비켜나요! 이건.
 
48
미두 손님 갑  (고꾸라질 뻔하다가) 여보아, 약질 괄시 너무허구려!
 
49
바다지    (상수로 걸어오면서) 김주산지 미역주산지 수잡는 꼴 보기싫여, 난 이놈의 바다지 고만 해먹을 테야!
 
50
미두 손님 갑  (층계를 딛고 올라서면서) 그러지 말구, 좀 친합시다그려!
 
51
바다지    말루만!
 
52
미두 손님 갑  그리게 이따가 저녁에 다아 응?
 
53
바다지    혹시 그렇다면 모르거니와.
 
54
미두 손님 갑  (뒤통수다가 주먹질을 하면서) 에구우야 마마손님! (이층으로 퇴장)
 
55
바다지    (중앙의 원탁으로 가서 걸터앉으면서) 이 박원석일 어떡헌다? 아신데! (담배를 붙여 문다)
 
56
사무원 을   그 사람 참 딱해 못 보겠어!
 
57
사무원 갑   사정이야 딱하지만.
 
58
사무원 을   이번이 아마 최후 결단인 모양이지이!
 
59
사무원 갑   (전화를 받는다) 네에. (間[간]) 아아, 강참봉이세요? 네에네? (間[간]) 삼천 석이요! 네에네, 그럼 (전화를 마치고) 최후 결단이나마나, 끊어야지!
 
60
사무원 을   끊긴 끊어야지!
 
61
바다지    그리구 또오, 멋이냐 이, 전라도 광주서 왔다는 상투쟁이. (間[간]) 거진거진 돼가는데!
 
62
사무원 을   거 참, 왜 안 와? (間[간]) 추증금을 더 너라구 하던지, 끊어 버리던지 해야 할 텐데!
 
63
바다지    웬 게 돈이 남었을라구? (間[간]) 흥! 샌님이 들어단짝 이 천 원 돈을 홀라당 불어먹었으니이!
 
64
사무원 을   축현정거장 연못에 물이 몇 방울 또 부웃는다?
 
65
바다지    국으루 자빠져서 농사나 지여먹구 사는 게 아니라 끙! 백제 글쎄, 귀두 여태 안 뺀 샌님네들이, 버얼써 대가릴 깎은 놈의 돈을 먹어보자구 덤벼드니! 미두가 아무리 투기사업이요 재수노름이기루손.
 
66
사무원 을   시굴놈이 서울놈 사흘을 안 속혀먹으면 배탈이 난다네!
 
67
바다지    미두가 속혀 먹는게 왕이란다면, 그 제길 석 달 안에 한 백만원 잡겠네!
 
68
사무원 을   기껏해야, 남 잘 속혀먹을 줄 안다는 자랑이군.
 
69
(원석, 하수의 창을 밀고 조용히 등장. 흰 린네르 쓰메에리 양복에 맥고모자를 쓰고 검정 아사고무 구두를 신었다.
70
모습은 형석·정석 들과 역시 같은 모습이나, 살이 없고 강파르고 체집과 키도 자못 단소하다. 그의 기상은 그러나, 방금 그 초췌하고 추렷한 신색이며, 드레고 휘감기는 양복하며 매우 초라한 행색은 행색이라도, 두릿하니 트인 얼굴의 윤곽, 광채나는 안정, 꽉 다문 입초리 등 전체로 언뜻 침노하기 어려운 품격과 위엄을 갖추고 있다)
 
71
사무원 을   (바라다보고) 얼마나 더우세요? 박주사.
 
72
사무원 갑   (뒤미처, 같이) 날이 대단합니다!
 
73
원석     (원탁 앞으로 가면서, 천천히) 거 웬, 늦더위가!
 
74
바다지    남도 절러루 농형이 말이 아닌 모양이죠?
 
75
원석     아마 그런 모양이죠? (의자에 앉아, 모자를 벗어놓고 부채질을 한다) 쥔장은 어디 가섰나요?
 
76
사무원 갑   네에. 손님허구 함께 나가섰는데, 아주 즘심을 잡숫구 들어 오실려는지이?
 
77
원석     (시계를 올려다보고 나서, 방백) 열한시 사십분이라? 으음 (間[간]) 새루 한시차가 있겠다?
 
78
사무원 갑   어딜 가시나요?
 
79
원석     (이윽고) 네에.
 
80
바다지    (게으르게) 때가 돼오니 속은 잊어버리잖구서 허추울하구나!
 
81
사무원 을   즘심 좀 사겠지?
 
82
바다지    자네두 거, 꼬랑지 없어질려거든 더러 즘심이래두 사구, 다아 좀 그래 보게?
 
83
사무원 을   누가 한 말인데? (전화를 받는다) 네에네 (間[간]) 아아, 분상이세요? (間[간]) 전장도메 삼전입니다, 삼십사원 오십삼전. (間[간]) 네에네, 오천 석이요? 네에네 (間[간]) 네에네, 그럼. (전화를 끊으면서, 방백) 문뚱뚱이가 담보 늘었다!
 
84
원석     (사무원 갑더러) 그러면, 으음 (間[간]) 쥔장은 언제 들어오실는지 조만이 없군요?
 
85
사무원 갑   글쎄요! 수이 들어오실 겝니다마는. (間[간]) 술을 시작하면 영영 세월이 없는 양반이 돼서, 혹시 또.
 
86
원석     그러면, 으음 (間[간]) 내것이 아시가 적잖이 났는데, 으음 (間[간]) 걸 끊어버리시구.
 
87
사무원 갑   (이윽고) 네에! (間[간]) 미안합니다! 다아 참, 박주사루 말하면 일년 넹겨, 단골루 기시던 손님이구 하니깐, 가개서두 어떡해서든지 좀 더 편의를 보안 드려야 하겠는데.
 
88
사무원 을   거, 참, 박주사 웬일이십니까? 네에? (間[간]) 번번이 이렇게 손만 보시구! (間[간]) 어떡허세요?
 
89
원석     허! 천지망아요, 비전지 죄올시다! (間[간], 사무원 갑더러) 그리구, 내가 좌우간 고향을 좀 다녀와야겠는데, 돈두 마련을 해야 하련과 집안에 여러가지루 각다분한 일이 생겨 가지굴랑, 누누히 기별이 오구 전보가 들어닿구 해서.
 
90
바다지    진소위 화불면행이란 격이시군요?
 
91
원석     참 그래요! (間[간]) 불가불 그래서 시급히 다녀는 와야겠는데 (사무원 갑더러) 허! 부끄런 말씀으루, 내가 시방 수중에 푼전이 없으니다그려! (間[간]) 염치는 없지만, 날 삼십 원만 좀 취해 주십시요!
 
92
사무원 갑   (난처해서, 모호하게) 네에! (間[간]) 허!
 
93
원석     쥔장이 마침 기섰드라면 좋았을 것을 공교히 출입을 하시구서 기시질 않아서.
 
94
사무원 을   좀 기둘러 보시죠? 이따가 늦더래두 들르시긴 들르실 테니깐.
 
95
원석     한시차루 떠나야겠어서. (間[간]) 모레 오전 안으루 불가불 집엔 당도해야 할 사정인데, 중로에 또 서울허구 어디허구 두어 군델 들러서 긴히 볼일을 보구 나서, 집으루 가긴 해야 하겠구, 그래.
 
96
바다지    (사무원 갑더러) 어떻게, 그렇게 좀 해 드리슈그려? 참, 박주사야 오란 단골손님이겠다, 쥔장이 안 기시더래두 가개에서 고만껏쯤야, (間[간]) 그렇잖어요? 외려 쥔장이 기섰으면, 말씀하시는 것 외에, 하다못해 애기들 모치떡이래두 사다가 주시라구, 따루이 참! 돈 십 환이이래두.
 
97
사무원 갑   (생각하다가 원석더러) 그럼 이럭허시지요. 찻시간까지 기둘러 보시다가, 쥔장이 그 안에 둘오시면 더욱 좋구. 그렇지 못하면 그땔랑은 내라두 가개서 처릴 하는 걸루다가.
 
98
원석     건 좋두룩 하세요! 난 아무렇게 해서던지 한시차루 떠나기만 하면 그만이니깐요. (間[간]) 하여간 염치가 없읍니다! 대다 못해서 말을 내긴 냈어두.
 
99
사무원 갑   천만에! (間[간]) 으음, 그러면 (間[간]) 으음, 혹시 어디 볼일래두 기시거들랑 그동안에 잠깐 다녀오시지요? 앉어서 기대리기두 갑갑허구 하실 테니.
 
100
원석     무어 별루 볼일두 없읍니다.
 
101
사무원 갑   아아, 그러시면 머, 난 또, 행구 같은 거래두 가지구 떠나시자면 사관에두 들러오서야 할 것 같구 해서.
 
102
원석     사관에선 벌써 어제 아침에 떠나는 양으루 하구 나왔지요! (곰곰이) 것두 참 세태인심이라, 전에 있던 사관은 일 년이나 눌러서 유하구 있었으니깐 설마 그렇던 안했겠지만, 아, 지난번에 새루 든 집은 두어 달 밖엔 안된대서, 식대가 한달 가량 밀리니깐, 좀 좋잖은 내색을 하더군요! 허허! (間[간]) 그래, 오늘 내일 간에 아무래두 떠나기는 떠나야 하겠구 하기에, 어제 아침엔 주인자를 청해서, 며칠 고향엘 다녀오겠으니 그동안 행구나 맡아가지구 있으라구 일르구서.
 
103
(원석의 이야기가 끝나기 조금 전, 망건 쓰고 갓 쓰고, 솜버선에 마른신에 춘포(春布) 두루마기를 떨쳐 입은 미두 손님 을, 하수의 염창을 밀고 끼웃이 등장.
104
삼십이 넘었을까말까, 얼굴엔 어떤 건사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여, 흐물흐물 웃음이 절로 자꾸만 흐물거린다)
 
105
바다지    (먼저 알아보고서, 방백) 흥! 광주 활량 행차하섰군. (문득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미흡스럽게) 아니 저 샌님이!
 
106
사무원 을   어서 오십시요!
 
107
바다지    (진정으로, 방백) 심상찮어! 한나절 만에 이천 원을 홀딱 날리더니!
 
108
미두 손님 을  예에! (잠깐 어릿거리다가 헤벌쭉 웃으면서, 가까이 온다) 즘심 요구나 덜 허러 나간 게라우?
 
109
바다지    (더욱) 저거 보겠지! 정말 실성했나 바!
 
110
(사무원 갑·을과 원석, 미상불 그렇다는 듯이, 차차로 의아스러하는 눈으로 미두 손님 을의 거동을 유심히 여새겨 보아쌓는다)
 
111
사무원 을   마침 잘 오섰습니다! 그렇잖어두 시방.
 
112
미두 손님 을  얘애! 저두 마침.
 
113
사무원 을   (바다지와 눈이 마주쳐, 빙긋 웃으면서) 저어, 훗장버틈은 중금을 더 넣어주서야겠읍니다?
 
114
미두 손님 을  애애? (곧이를 안 듣고, 빈들빈들) 보징금을 느으라구?
 
115
사무원 을   네에.
 
116
미두 손님 을  궤니 시방, 날 놀려먹을라고! 헤헤헤!
 
117
일동     (확신한 얼굴로, 면면상고)
 
118
미두 손님 을  어서덜, 점심 요구나 허러 나가게라우! 아 미두를 히여서 당장의 돈을 근 이천 원이나 땄넌디, 즘심 한턱 안 내서사 쓰겄어라우? 건 참, 인사불성이지!
 
119
사무원 을   (뻐언히) 이천 원을 따다뇨?
 
120
미두 손님 을  (희떱게) 그럼 안 땄어라우? 이천 원 징금 내고서나 쌀 삼백 석을 팔었넌디, 오원 사십전이 올랐으닝께로, 삼오십오일천오백원 허고.
 
121
사무원 을   팔었으니깐 손을 했지, 어떻게 땁니까?
 
122
미두 손님 을  (비로소 일말의 불안한 빛이 드러나면서도, 자신있이) 팔었응께로 땄지라우.
 
123
사무원 을   하, 이런 답답한!
 
124
바다지    오오! (고개를 끄덕끄덕) 인제야 알았어! (미두 손님 을더러) 여보, 이노형?
 
125
미두 손님 을  얘애?
 
126
바다지    노형네 고장에선, 돈 가지구 싸전에 가서 쌀 사오는 걸, 쌀 팔어온다구, 그리지요?
 
127
미두 손님 을  그러먼이라우! 그게 왜, 돈 각고 싸전으로 가서 쌀 사오넝 것이간디라우? 쌀 팔어오넝 것이지!
 
128
바다지    그래, 그 셈만 대구설랑 여기 와서두, 돈, 이천 원 내놓면서 쌀 삼백 석 팔아주시우, 했겠다요?
 
129
미두 손님 을  그러먼이라우! 그랬응께로 내가 시방 쌀 삼백 석을 각고 있는 심이지라우!
 
130
바다지    (버럭) 각고 있긴 쥐뿔을 각고 있어?
 
131
미두 손님 을  왜라우?
 
132
바다지    팔어달랬으니깐 방할밖에!
 
133
미두 손님 을  방허다니라우?
 
134
바다지    팔었어! 정말 팔었어! 팔 맷자(賣字) 루 팔었어! 논 팔구 밭 팔구, 집 팔구, 기집 팔구 선영 뼉다구까지 팔구 하듯기, 팔았어! 팔아!
 
135
미두 손님 을  (사색이 질려 오다가) 참말이라우? 참말루, 파 (더듬는다) 파.
 
136
바다지    한 이삼백 원 남은 것 도루 찾아가지구서, 얼른 봇짐 싸요! 싸가지구 내려가서 타구난 팔자대루 농사나 지역먹구 살어요! 괘니, 어름어름하다간 논 팔구, 밭 팔구, 기집 팔구 선영 뼉다구까지 팔어먹군, 바가지 하나 뽄새 있게 차구 나설테니.
 
137
미두 손님 을  (퍼르르하여) 아니, 그런 경오 읎지라우! 그런 경오 읎어! 암만 그리두, 나는 쌀 삼백 석 팔었응께로 돈 내누와라우! 돈. (어쩔 줄을 모른다) 돈 내누와라우! 보징금 이천 원허구, 내가 딴 놈 일천육백 원 각수허고, 당장 내누와라우! (와들와들 떨면서) 어서 돈 삼천칠백 원 내누와라우! (이 사람한테로, 저 사람한테로) 어서 돈 내누와라우 어서 당장! (間[간]) 권연시리 돈을 안내누왔다가넌, 참, 큰일 나지라우! 내가 안 받고 가만 있을 종 알어라우? 어서 당장 내누아라우! 그게 어떤 돈이간디라우! 당신네 말짝으로, 논 팔고 밭 팔고 히여각고 온 돈이라우! 왜 이리어라우! 시방 날 쫑애로 알어라우?
 
138
원석     (무연히) 허! 노형이나 내나!
 
139
바다지    인제야 옳게 미치는군!
 
140
미두 손님 을  (그대로 계속해서) 돈 내누와라우! 돈 (차차로 정신없이 납뛴다) 날 죽는 꼴 안 볼라걸랑 당장 돈 내누와라우! 논 팔고 밭 팔고 헌 돈이여라우! 당장 어서 내누와라우! 내 돈, 내누와라우! 내 돈!
 
141
(서서히 내리고 있던 막, 한꺼번에 급히 다 내린다.)
【원문】2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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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 분류 :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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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랑의 전설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40년 [발표]
 
  희곡(戱曲)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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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랑(螳螂)의 전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