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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과 제1장 ◈
해설   본문  
1939년 10월
이무영
1
제1과 제1장
 
 
2
수택은 문구멍으로 가만히 내다봤다. 도적이 분명하다. 밖에서는 나오라고 하나 나갈 길을 막아선지라 어쩔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황당해한 도적은 급기야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3
"나갈 길을 좀틔워주서유!"
 
4
이때 그는 벌써 부엌을 돌아서 울안에 와 있었다. 손에 흉기 하나 들지 않은 좀도적임을 발견한 그는 억 소리와 함께 덮치어 잡아나꾸었다. 그는 학생시대에 배운 유도로 도적을 메어다치고는 제 허리끈으로 두 팔을 꽁꽁 묶었다.
 
5
온 집안이 깨고 뒤미처 김영감도 달려들었다. 영감의 손에는 지게작대기가 쥐여 있었다. 도적놈도 그랬고, 온 집안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다. 몽둥이에 맞을 사람은 그 도적이라고,
 
6
그러나 아니었다. 지게 작대기에 아랫종아리를 얻어맞은 것은 아들이었다. 수택 자신도 그랬고 도적도 그랬을 게고 집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영감이 흥분한 나머지 잘못 때린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수택은 얼른 피했었다. 피하고는 안심을 했던 것이다.
 
7
그러나 아니었다. 김노인의 작대기는 재차 아들에게로 향하고 겨누어졌다.
 
8
"이 몰인정한 녀석, 내 물건 도적 안 맞았으면 그만이지 사람은 왜 친단 말이냐! 응, 이 치운 겨울에 도적질하는 사람은 여부해 하는 줄 아냐? 우리네 시골사람은 그런 법이 없다!"
 
9
도적은 울고 있었다. 도적의 등에는 쌀 한 말이 짊어지워졌다. 이튿날 수택은 지루할 만큼 긴 설교를 듣지 않으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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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흙내를 맡아야 하느니라. 대처(도회) 사람들이 암만 고량진미로 음식을 마든대도 시골 음식처럼 구수한 맛이 없느니라. 마찬가지야. 사람이란 흙내도 맡고 된장 맛도 나고 해야 구수-한 맛이 나는 게지. 음식이나 사람이나 대처사람이 밝구 정오(경우)야 밝지! 하지만 사람이란 정오만 가지고 산다더냐! 일테면 말이다, 내가 네 발등을 잘못해셔 밟았다고 치자꾸나. 그러면 넌 발끈할 게다. 허지만 우리 시골 사람들은 잘못해 밟았나 보다 하군 그만이거든. 정오로 친다면야 남의 발의 밟은 사람이 들지. 그래 이 많은 인총에 정오만 가지도 살려구 들어?"
 
11
수택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 고향에 돌아온 것을 붙잡고 김영감은 이렇게 자기의 지론을 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도회물을 먹은 아들은 물론 코웃음을 쳤었다.
 
12
몇핸가 후다. 음력과세를 한다고 고향에 내려온 일이 있었다. 이십 년래의 혹한이니, 삼십 년래의 추위니 날마다 신문이 떠들어댈 때였다. 그는 겉으로는 하도 오래간만이니 집에 와서 과세를 한다고 꾸몄지만 기실은 근방 읍에까지 출장이 있어서 온 김에 들은 것이었다.
 
13
그날 밤, 수택의 집에는 도적이 들었다. 벽에서 나는 황토냄새와 그야말로 된장내처럼 퀴퀴한 냄새로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 울안에서 발소리가 난다. 조금 있더니 누군지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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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으니 나오!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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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애원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16
수택은 문구멍으로 가만히 내다봤다. 도적이 분명하다. 밖에서는 나오라고 하나 나갈 길을 막아선지라 어쩔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황당해 한 도적은 급기야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17
"나갈 길을 좀 틔워주서유 ! "
 
18
이때 그는 벌써 부엌을 돌아서 울 안에 와 있었다. 손에 흉기하나 들지 않은 좀도적임을 발견한 그는 억 소리와 함께 덮치어 잡아 나꾸었다. 그는 학생시대에 배운 유도로 메어다치고는 제 허리끈으로 두 팔을 꽁꽁 묶었다.
 
19
온 집안이 깨고 뒤미처 김 영감도 달려들었다. 영감의 손에는 지게 작대기가 쥐여 있었다. 도적놈도 그랬고, 온 집안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다. 몽둥이에 맞을 사람은 그 도적이라고.
 
20
그러나 아니었다. 지게 작대기에 아랫종아리를 얻어맞은 것은 아들이었다. 수택 자신도 그랬을게고 집안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 이것은 영감이 흥분한 나머지 잘못 때린 것이라고 ---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수택은 얼른 피했었다. 피하고는 안심을 했던 것이다.
 
21
그러나 아니었다. 김 노인의 작대기는 재차 아들에게로 향하고 겨누어졌다.
 
22
"이 몰인정한 녀석. 내 물건 도적 안 맞았으면 그만이지 사람은 왜 친단 말이냐 ! 응, 이 치운 겨울에 도적질하는 사람은 여북해 하는 줄 아냐 ? 우리네 시골 사람은 그런 법이 없다 ! "
 
23
도적은 울고 있었다. 도적의 등에는 쌀 한 말이 짊어지워졌다. 이튿날 수택은 지루할 만큼 긴 설교를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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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법만 가지구 사는 게 아니니라. 법만 가지고 산다면야 법에 안 걸릴 놈이 또 어딨단 말이냐. 넌 법에 안 걸리는 일만 하고 사는 상 싶지? 그런게 아니니라. 올 갈에두 면소 뒤 과수원에서 사괄 하나 따먹다가 징역을 갔느니라 남의 것을 따는 건 나쁘지, 나쁘기야 하지만 그게 징역갈 죈 아니지. 어젯밤 일을 본다면 너는 네 과일밭의 실괄 따면 징역 보낼 사람이 아니냐. 너 어제 그게 누군 줄 아냐? 모르는 체 하긴 했다만 내 저 아버진 잘 안다. 알구 보면 다 알만한 사람이야. 시골서야 서로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냐. 모두 한 집안 식구거든…… 사람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게란 말야!
 
25
이러한 일이란 적어도 도회인의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26
그러나 수택은 오늘 아버지와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동안에 막연하나마 이 이르는 바 '흙 냄새의 감정'이 이해되어지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27
김영감은 아들의 뜻하지 않은 계획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들은 논 닷 마지기에 밭 하루갈이만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물 자리 좋은 논으로만 여덟 마지기를 내주었고 집도 한 채 세워 주기로 했다. 물론 소작권을 이동받은 것에 불과했었다. 그의 집안에는 논 닷 마지기와 밭 두어 뙈기가 남아 있을 뿐이란 것도 그제야 알았다.
 
28
"패배자."
 
29
그는 가만히 이렇게 자기를 불러 본다. 시냇물은 조약돌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수택의 발밑을 지난 때마다 뭐라고인지 종알대고 흘러간다. 이 물소리를 해독만 한다면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수택으로서는 이 속삭이는 물 소리보다도 지난날의 추억보다도 패배자의 짐을 싣고 가는 마차 바퀴 소리만이 과장이 돼서 울리는 것이었다.
 
 
30

 
31
"패배자? 어째서 패배자냐? 오랫동안 동경해 오던 이상 생활의 첫 출발이지!"
 
32
누가 있어 자기를 패배자라고 부르기나 했던 것처럼 그는 분명히 이렇게 반항을 해 본다.
 
33
사실 수택이도 이 아내 말에는 동감이었다. 전에는 무심히 보아 그랬던지 자연도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나 머쓱한 포플러와 아카시아 숲 앞에는 상당히 깊은 물도 있고 큰 고기도 은비늘을 번득이었고 숲에서는 매미며 꾀꼬리도 울었던 것같이 기억이 되었으나 다시 가보니 조그만 웅덩이에는 오금에 차는 물이 고였고 가문 탓도 있겠지마는 송사리 떼가 발소리에 놀라서 쩔쩔 맬 뿐이다. 숲 속의 원두막 정취도 그지없이 시적인 듯이 기억이 되었으나 막상 가 보니 그도 평범하기 짝이 없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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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풀 향기가 코를 통해서 가슴 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그것이라고 느끼며 수택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려 본다. 밤이슬에 눅눅하니 젖은 샤스에서도 차츰차츰 불쾌한 감촉이 없어져 간다. 쫄쫄쫄 윗논배미서 아랫논으로 떨어지는 물꼬 소리에 금시 벼폭이 부쩍부쩍 살이 찌는 것같이 느끼어지는 것은 벌써 그의 문학적인 감각 때문만이 아닌 것 같았다. 여남은 다랑이 건너 도독한 밭 모퉁이에서 누군지 단소를 처량스러이 불고 있다. 역시 물꼬 보는 사람이리라. 그 맞은편 아카시아가 몇 주 선 둔덕 원두막에서는 젊은이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술집 여인들이 놀러 나왔는지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가끔 섞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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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루 바삐 나도 대처 사람의 탈을 벗고 흙과 친하자. 그래서 흙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38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타이를 때 누군지 귀에다 대고 소리를 꽤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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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퇴화다!"
 
40
그것은 대처 사람인 또한 다른 수택이었다. 물방울 한 개만 튀어도 시비를 가리고 파리 한 마리에 상을 찡그리고 디파아트에서 한 시간 씩이나 넥타이를 고르던 도회인의 반역이었다.
 
41
"퇴화? 퇴화 좋다!"
 
42
"아니 패배이다! 패배자의 역변이다. 도시 생활-문명 사회에서 생활 경쟁에 진 패배자의 자위 수단이다. 그것은--"
 
43
"아무 것이든 좋다!"
 
44
그는 이렇게 발악을 했다.
 
 
45

 
46
수택이도 벗어 부치고 지게를 졌다. 아직 다리는 휘청거리나 그래도 대여섯 묵음씩 져 날랐다. 인제는 별서 그의 노동을 신성시하는 사람도 없었고 동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명실공 히 한 농부였다. 서투른 낫질에 손가락을 두 개나 처맸지만 보는 사람도 그랬고 그 자신도 그것은 큰 상처로 알지도 않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아내 역시 호밋자루에 터진 손바닥이 아물지를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혼자 일어나 앉아서 밤을 새워 가며 울지는 않았다. 아프니 자시니 했다가 그 말이 시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동정 대신에 핀잔을 맞을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끔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에게만 후하지 자식들한테는 너무 박하다는 불평을 말하는 때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가 시인을 하는 정도로서 가라앉았다. 사실 그 자신도 다소 심하지 않은가 하는 불평은 여러 번 품었었다. 손에 익잖은 자식이 서투른 낫질을 하다가 손을 다치어도 먼저 핀잔부터 주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증오와도 같은 것이었다.
 
47
그도 부리나케 볏단을 져 날랐다. 이 볏단의 대부분이, 아니 어쩌면 거의 전부가 낡아빠진 맥고모자를 뒤꼭지에 붙인 되바라진 젊은 친구의 손으로 넘어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택은 그것을 억지로 생각지 않으려 했다.
 
48
그의 아버지도 그 위인이 나와서 버티고 선 후로는 분명히 얼굴에 검은 빛을 띠었다. 자식에게 그런 눈치를 안 보이려고 비상한 노력을 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엿보였다. 수택도 아버지의 이 노력에 협조를 했다.
 
49
도합 스물두 마지기에서 사십 섬이 났다. 사십 섬에서 스물닷 섬이 소작료로 제해졌다. 사십 섬에서 스물닷 섬 -열닷 섬. 그의 지식은 처음 긴요하게 씌어졌다.
 
50
그러나 이 지식은 정확성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거기서 비료대로 한 섬 두 말이 제해졌고 아내와 계집아이들의 설사를 치료한 쌀값으로 장리변을 쳐서 열두 말이 떼였다. 지세도 작인과 지주가 반분해서 물기로 되어 있었다. 지세로 또 몇 말인지 떼었다. 그는 말질을 하는 되강구의 목덜미를 잡아 나꾸고 볏더미 속에다 쳐 박고 싶은 충동을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었다.
 
51
수택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 옴팡하니 들어간 눈에서는 황혼을 뚫고 무시무시한 살기띤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방공 연습을 할 때의 그 휘황한 몇 줄의 탐조등 광선을 연상하였다. 김 영감은 꼼짝도 않고 한 자리에 휘 서 있었다. 볏더미를 보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사람을 노리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영감은 내년 이 때까지 살아갈 것을 궁리하는 것이었다.
 
52
"다 짊어져라!"
 
53
수택은 깜짝 놀랐다. 남은 벼 여남은 섬이 가마니에 채워졌다. 전혀 자신은 없었으나 벼 이백근을 못 지겠노란 말도 하기 싫어서 지겟발을 디밀었다.
 
54
"엇차."
 
55
옆에서는 벌써 지고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도 엇차 소리를 쳤다. 땅띔도 않는다.
 
56
"자 들어 줄 게니 -엇차-"
 
57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무릎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오금은 뜨는 둥 마는 둥하다가 그대로 똑 꺾인다. 안 되겠느니 다른 사람이 지라느니 이론이 분분하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기까지는 버티었다. 이를 북북 갈며 기를 썼다. 힘을 주었다. 오금이 떨어졌다. 그러나 다리가 휘청하며 모여선 사람들이 '저것 저것' 소리를 귀곁에 들으며 그대로 픽 한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넘어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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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끼 천치 자식."
 
59
하는 김영감의 소리와 함께 빗자루가 눈앞에 휙 한다. 머리에 동였던 수건이 벗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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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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