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봄잠(春眠)을 늦게 깨여 대나무 창(竹窓)을 반쯤 여니
3
뜰의 꽃(庭花)은 활짝 피어있고 가던 나비 머무는듯
4
강기슭의 버들(岸柳)은 우거져서 물가에 띄여 있구나
5
창 앞(窓前)에 덜 익은 술을 일이삼배 먹은 후에
7
백마타고 금채찍 들고(白馬金鞭) 야유원(冶遊園) 찾아가니
8
꽃향기(花香)는 옷에 배고 달빛은 뜰에 가득한데
9
광객(狂客)인 듯 취객(醉客)인 듯 흥에 겨워 머무는 듯
10
이리저리 거닐다면서 기웃거리다가 유정(有情)히 섰노라니
11
푸른 기와와 붉은 난간(翠瓦朱欄)이 있는 높은 집에 연두 저고리와 다홍 치마(綠衣紅裳)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12
비단으로 가리운 창(紗窓)을 반쯤 열고 고운 얼굴(玉顔)을 잠깐 들어
13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요염한 자태(嬌態)로 맞아주네
14
은근한 눈빛을 하고 녹기금(綠綺琴)을 비스듬히 안고
15
맑고 청아한 노래(淸歌一曲)로 봄흥취를 자아내니
16
운우(雲雨) 양대상(陽臺上)에 초몽(楚夢)이 다정하다
19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가 되어
20
봄이 다 지나가도록 떠나살지 않을려고 했더니
22
새정을 다펴지 못하고 애달프지만 이별이라
23
맑은 강(淸江)에 놀던 원앙 울면서 떠나는 듯
24
거센 바람(狂風)에 놀란 벌과 나비(蜂蝶) 가다가 돌치는 듯
25
석양은 다져가고 매여둔 말(停馬)은 자주 울 떄
26
나삼을 부여잡고 침울한 마음으로 이별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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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노래 긴 한숨을 벗을 삼아 돌아오니
29
간장이 모두 썩으니 목숨인들 보전하겠는가
30
몸에 병이 드니 모든 일(萬事)에 무심해져
31
서창(書窓)을 굳이닫고 어색하게 누워 있으니
32
꽃같은 얼굴에 달같은 모습(花容月態)은 눈앞에 삼삼하고
33
아름다운 여인이 거처하는 방(粉壁紗窓)은 침변(枕邊)이 여기로다
34
연잎(荷葉)에 이슬이 맺히니(露跡) 이별의 눈물(別淚)을 뿌리는 듯
35
버들막(柳幕)에 연기끼니 맺힌 한(遺恨)을 머금은 듯
36
공산의 달밤(空山夜月)에 두견이 슬피 우는데
37
슬프구나 저 새소리 내 말 같이 불여귀(不如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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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三更)에 못든 잠을 사경에 간신히 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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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우리님을 꿈속에서 잠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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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지 시름 만가지 한(千愁萬恨) 못다 이루는 부질 없는 꿈(一杖蝴蝶)이 되니
41
아리따운 미인(玉鬢紅顔) 곁에 얼풋 앉았는데
43
잠 못 들어 탄식(無寢噓犧)하여 바삐 일어나 바라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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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낀 산(雲山) 첩첩히 천리안(千里眼)을 가리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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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달(皓月)은 창창하여 님을 향한 마음에 밝게도 비춰 주는구나
48
약수(弱水) 삼천리(三千里) 멀단 말을 이런대를 이르는구나
49
좋은 언약(佳約)은 묘연하고 세월은 덧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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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이월꽃이 푸른기슭(綠岸邊)에 붉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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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재빠르게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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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다 이 이별을 언제 만나 다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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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머리(山頭)에 조각달(片月) 되어 님의 곁에 비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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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위(屋上) 아침 햇살(朝陽)에 제비 되어 날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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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玉窓) 앵도화(櫻桃花)에 나비 되어 날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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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泰山)이 평지(平地)되고 금강(錦江)이 다 마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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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平生) 슬픈 회포(懷抱) 어디에 끝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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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유옥안(書中有玉顔)은 나도 잠깐 들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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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고쳐먹고 강개(慷慨)를 다시 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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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丈夫)의 공명(功名)을 세상에 알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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