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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살아감에 성품이 어설퍼서 입신 출세에는 뜻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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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 정도의 청렴하다는 명망으로 만족하는데 높은 벼슬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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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공부에 필요한 도구를 모두 없애 버리고 자연을 찾아 놀러 다니는 옷차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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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명산대천을 다 본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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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하며 금강 유역에서 은거하고 지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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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나와 세상 소식을 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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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통치자 토쿠가와 이에시게가 죽고 우리나라에 친선 사절단을 청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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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가 어느 때인고 하면 계미년 8월 3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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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임금님께 하직하고 남대문으로 내달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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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의 사당 앞을 얼른 지나 전생서에 다다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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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일행을 전송하려고 만조백관이 다 모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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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마다 장막이 둘러쳐 있고 집집마다 안장을 얹은 말이 대기하고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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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좌우로 모여들어 인산인해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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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있는 친구들은 손을 잡고 장도를 걱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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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모르는 소년들은 한없이 부러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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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거의 되니 하나하나 이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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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신호에 따라 차례로 떠나갈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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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과 부월 앞을 인도하는 군관이 국서를 인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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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으로 만든 양산과 순시 영기가 사신을 중심으로 모여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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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뒤를 따라 역마에 올라 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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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옷을 입은 지로 나장이 깃을 꽂고 앞에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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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서자가 부축하고 쌍두마를 잡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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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역졸이 큰 소리로 외치는 권마성은 무슨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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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말려도 정해진 의식이라고 굳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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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허옇게 센 늙은 선비가 갑자기 사신 노릇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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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고 괴이하니 남 보기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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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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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에 돛을 달고 여섯 척의 배가 함께 떠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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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연주하는 소리가 산과 바다를 진동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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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의 고기들이 마땅히 놀람직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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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을 얼른 떠나 오륙도 섬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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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돌아보니 밤빛이 아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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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니 보이고, 바닷가에 있는 군영 각 항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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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두어 점이 구름 밖에서 보일 듯 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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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실에 누워서 내 신세를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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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마음이 어지러운데 큰 바람이 일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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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같은 성난 물결이 천지에 자욱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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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석을 실을 만한 큰 배가 마치 나뭇잎이 나부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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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올랐다가 땅 밑으로 떨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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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이나 되는 쌍돗대는 나뭇가지처럼 굽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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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두 폭으로 엮어 만든 돛은 반달처럼 배가 불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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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우렛소리와 작은 벼락은 등 뒤에서 떨어지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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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고래와 용이 물 속에서 희롱하는 듯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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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실의 요강과 타구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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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 좌우에 있는 선실의 널빤지는 저마다 소리를 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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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해가 돋거늘 굉장한 구경을 하여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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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선실 문을 열고 문설주를 잡고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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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을 바라보니 아아! 굉장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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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천지간에 이런 구경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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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넓은 우주 속에 다만 큰 물결뿐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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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로 돌아보니 동래의 산이 눈썹만큼이나 작게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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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쪽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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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래 푸른 빛이 하늘 밖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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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우리의 가는 길이 어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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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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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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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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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을 돌아보니 저마다 배멀미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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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물을 다 토하고 까무라쳐서 죽게 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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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하도다. 종사상은 태연히 앉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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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실에 도로 들어와 눈 감고 누웠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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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가깝다고 사공이 말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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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나 나와 보니 십 리는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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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 십여 척이 배를 끌려고 마중을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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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돛을 내리고 뱃머리에 줄을 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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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에 줄을 던지니 왜놈이 그것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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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배에 매어 놓고 일시에 노를 저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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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편안하고 조용하게 움직여 좌수포로 들어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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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오후 3-5 쯤 되었고 짐을 실은 배는 먼저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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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로 들어가며 좌우를 둘러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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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듯한 산봉우리의 모습이 몹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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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삼나무, 대나무, 잣나무, 귤유 등감 등이 모두 다 등청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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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 종자 여섯 놈이 금도졍에 앉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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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가 드믈어서 여기 세집 저기 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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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하여 헤아리면 오십 호가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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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모습이 몹시 높아서 노적더미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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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는 왜인들이 산에 앉아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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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의 남자들은 머리를 깎았으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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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만 조금 남겨 고추상투를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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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벗고 바지 벗고 칼 하나씩 차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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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치장은 머리를 깎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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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기름을 듬뿍 발라 뒤로 잡아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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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두리 모양처럼 둥글게 감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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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은 둘로 틀어 비녀를 질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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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얼레빗을 꽂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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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을 보아하니 무 없는 두루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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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으로 된 옷단과 막은 소매가 남녀 구별 없이 한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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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크게 접은 띠를 느슨하게 둘러 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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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쓰는 모든 물건은 가슴 속에 다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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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있는 여자들은 이를 검게 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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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띠를 매었고, 과부, 처녀 , 계집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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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띠를 매고 이를 칠하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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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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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길 떠나서 이십 리를 겨우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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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물고 큰 비가 내리니 길이 끔찍하게 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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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워 자주 쉬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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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멘 다섯 놈이 서로 돌아가며 교대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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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이 전혀 없어서 둔덕에 가마를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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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머뭇거리면서 갈 뜻이 없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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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둘러보니 천지가 어둑어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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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은 간 곳이 없고 등불은 꺼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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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을 분간할 수 없고, 넓고 넓은 들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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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지 않는 왜놈들만 의지하고 앉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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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의 이 상황은 몹시 외롭고 위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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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꾼이 달아나면 낭패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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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의 옷을 잡아 흔들어 뜻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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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속에 있던 음식을 갖가지로 내어 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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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끼리 지껄이며 먹은 후에 그제서야 가마를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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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아가는데 곳곳에 가서 이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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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음식이 없었더라면 필연코 도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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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쯤이나 되어서야 겨우 대원성에 들어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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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프고 구토하여 밤새도록 몹시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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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에 비옷을 입고 강호(동경)로 들어갈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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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은 마을이요, 오른편은 바다(태평양)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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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피하고 바다를 향해 있는 들판이 옥야 천리로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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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누각과 집들은 사치스럽고 사람들이 번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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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높고 장한 모습과 다리와 배의 대단한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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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판성 서경보다 3배는 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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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에 구경하는 사람이 몹시 장하고 숫자가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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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붓끝으로는 이루 다 적지 못하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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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리 오는 길이 빈틈없이 인파로 이어져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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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헤아려 보면 백만이 여럿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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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모습이 아름답기가 명고옥(나고야)과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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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로 들어가니 여기도 무장주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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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덕천 가강(도쿠카와 이에야스)이 무장주의 태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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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 수길이 죽은 후에 그 가계를 없애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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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강호)에 도읍을 정하여 강하고 풍요로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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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계획함이 신중 은밀하며 법령도 엄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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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도 깊어서 왜국을 통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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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제 무리에서는 영웅이라고 하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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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 가강이 죽은 후에 자손이 이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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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까지 누려 오니 복력이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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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에는 비가 개지 않아서 실상사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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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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