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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수집(屑穗集) ◈
◇ 연월(煙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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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2. ~7.
계용묵
1
설수집(屑穗集)
 
2
연월(煙月)
 
 
3
술기운이 몸에 얼근히 젖어 들면 어린 자식이 한층 더 귀여워진다. 인제 애빈 줄을 제법 알아보고, 방안에 들어와 앉기만 하면 벌레벌레 기어와 무릎을 파고들며 벙긋거린다. 그럴 때면 정말 통으로 깨물어 보아도 만족할 것 같지 않았다. 뺨을 들입다 빨다가는 말랑거리는 엉덩이를 파악팍 두들겨서 울리기까지 한 일도 있다. 그래도 마음은 개운하지 않다. 지금도 기어드는 자식의 뺨을 빨다가, 엉덩이를 두들기다가, 뒤쳐 업었다. 사랑하는 자식과 더불어 정릉 부근으로 산책이나 하자는 것이었다.
 
 
4
아직 술은 취하는 도중에 있나 보다. 들어올 때보다도 좀더 다리가 휘청거려진다. 진정할 수 없는 다리가 애비에게는 괴로운 일일는지 모르나 업힌 자식에게는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엎어질 듯 엎어질 듯, 더구나 돌부리를 차고는 끄덕 하고 앞으로 쏠리어 허튼 걸음을 되는대로 비뚝실 땐, 그것이 왜 그리 좋은지 꺄드득 꺄드득 아주 여무지게 웃어댄다.
 
5
아버지는 꺄드득거리는 자식의 웃음소리가 더할 수 없이 귀엽다. 위태로운 걸음은 좀더 위태로워진다. 꺄드득거리는 소리에 흥이 실리는 모양이다.
 
6
위태로운 걸음이 돌부리를 찼다. 뒤뚝 하고 몸이 모로 쏠린다. 잔등엣것이 공중 쏟아져 땅 위에 떨어진다. 왼쪽 눈초리가 지츠러졌나 보다. 거기서 피가 흐른다. 아버지는 하하 웃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흐르는 피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자기의 양복 엉덩이짝에 쓰으슥 비비고 “어비 어비” 달래며 다시 뒤쳐 업는다. 걸음은 여전히 위태롭다. 몇 걸음 안 가서 뒤뚝 하더니 아이는 또 공중 빠져 떨어진다. 이번에는 상처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다치긴 어디 단단히 다친 모양이다. 울음소리가 숨이 넘어가는 듯 자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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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비” 소리를 또 연방 지르며 뒤쳐 업는다. 뒤뚝, 뒤뚝, 이리로 쏠렸다 저리로 쏠렸다 골목길 좌우 변두리를 뒤쓴다. 자식은 울음을 뚝 그친다. 또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몸을 일며 뒤뚝거려도 아버지의 등은 맛이 있나 보다. 울던 아이 같지도 않게 꺄드득 웃음이 또 터진다. 웃음 소리에 아버지의 마음은 그냥 즐겁다. “어허 이 자식 이 이 자식이!” 아버지의 다리에는 좀더 흥이 실린다. 내어디디는 걸음이 넓직넓직 활발하다. 그럴수록 등어리의 자식은 웃음이 여무지다. 더할 수 없이 즐거운 표현이리라. “이 자식아 이 자식아” 아주 흥에 실려 비뚝시다가 그만 뒤뚝 모로 또 쓰러진다. 아버지는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졌고, 자식은 그 옆 개울에 거꾸로 떨어져 들어갔다. 개울 옆의 돌담에 맞부딪쳤게 말이지 그렇지 않았더면 얼마나 더 멀찍이 나둥그러졌을는지 모른다. 진창물에 처박힌 아이의 주위로 벌건 핏물이 줄기 따라 퍼진다. 어디 상처가 난 모양이다. 가겟집 부인이 뛰어 나와 아이를 건지려는 아버지를 밀어내고 손수 들어내어 가슴에 안는다. 취한 아버지를 신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8
아버지는 자식을 받아 들려고 하나 부인의 자식을 건네지 않는다. 아이는 감탕투성이 그대로 부인의 가슴에 안겨서 그냥 다리를 버둥거리며 운다. 피는 왼쪽다리 복숭아뼈 짬 부근에서 났다. 아이를 받아 들려고 자꾸만 내미는 아버지의 손을 부인은 한사코 물리친다. 아이도 아버지의 품으로 건너가겠다고 악을 쓰나 부인은 응하지 않는다.
 
9
“안 되겠어요. 댁이 어디세요? 제가 댁까지 안아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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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 이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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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요. 선생님은 취하셨어요. 아이를 못 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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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업으나마나 당신이 남의 자식을 무슨 상관이오. 이리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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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이를 안은 부인의 팔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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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선생님은 아이를 또 메칩니다. 어서 제게 맡기고 같이 댁으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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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여자가 남의 자식을 빼앗으려나 보다! 날 취한 줄만 아나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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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부인은 사정이 딱했다. 아이를 주어서는 기필코 또 메칠 것 같으나, 그런 사정을 보아주기에는 그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게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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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이를 선생님이 업으세요. 제가 부축해서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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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부인은 아이를 그 아버지의 등에다 업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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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발버둥질을 하며 악을 쓰던 아이는 애비의 잔등으로 건너가자마자 금시 울음이 뚝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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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세요. 이 자식이 제 애비를 이렇게 아지 않아요? 자식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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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 자식이, 이 자식이” 하면서 가던 길로 또 뒤뚝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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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아버지의 옆에 서서 같이 걸어가며 아버지가 뒤뚝 하고 걸음이 위태로울 때마다 아이가 쏟아지는 것 같아서 두 팔을 불쑥 내밀곤 한다. 그러면 아이는 저를 어르는 줄만 알고 좋아서 끼드득거린다. 이 소리엔 아버지도 만족하다. 몸을 들추며 걸음이 활발해진다. 걸음이 활발해질수록 위태로움은 수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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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머니,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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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쓰러지는 것을 부인은 보았다. 아이는 저만치나 빠져나가 길 한복판에 정면으로 엎드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워 그 아버지의 옆에 바틈이 붙어서 따라갔건만 날래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아버지는 앞에 질린 실개울을 건너뛰려다 건너 뚝 언덕에 구두코를 걸렸던 것이다. 땅에다 박은 아이의 이마 언저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번져 나왔다. 부인은 달려가 아이를 들었다. 피는 이마에서 났다. 무지하게 피가 쏟아지는 것으로 보아 상처가 심한 모양이었다. 부인은 저고리 소매 구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아이의 상처에 눌러대고 황급히 인근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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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인의 원하는 응급치료를 의사는 응하지 않았다. 아이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이는 아이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부인은 아이를 병원 침대에 눕힌 채 하는 수 없이 병원을 나와 그 아버지를 찾아, 사고 현장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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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아버지도 이마에 상처를 받은 모양으로 피를 흘리면서 비뚝 비뚝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부인은 아이의 상처가 심하니 어서 병원으로 가서 응급치료를 시켜야 한다고 아이의 아버지를 재촉하였다. 그러나 술에 마비된 그의 걸음은 그저 한양대로 한가롭게 비뚝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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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병원으로 이르렀을 때에는 아이의 목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뇌진탕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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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이 죽었어! 정말 죽었니?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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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침대 위에 그린 듯이 누운 아이의 팔목을 잡아 흔들었다. 아이는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 아까같이 꺄드득거리며 웃음으로 대해 주지 않았다.
 
30
“이 자식 정말 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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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식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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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그러나 아비의 등에 업혔다 죽었으니 한은 없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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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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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식도 아버지의 말과 같이 아버지의 등에 업혔다 죽었으니 한이 없을 것인지. 원체 두살잡이라 말은 못 하고 행동으로밖에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였지만, 행동으로조차도 인젠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눈을 굳게 감은 자식이었다.
【원문】연월(煙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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