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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재덕이네가 회관에 갔을 때는 유·박 둘이 벌써 와서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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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청소를 했다. 쓸 데는 쓸고 닦을 데는 닦고나니, 그제서야 하나씩 둘씩 단원들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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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서 말끔히 치워진 방안을 휘휘 둘러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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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재덕이가 웃으니까 모두들 머리를 득득 긁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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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나도 개과천선을 했소. 너무 핀둥핀둥 놀기만 했더니 길에서 단원들을 만나도 얼굴 둘 곳이 없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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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천만에요. 저희들은 뭘 했습니까? 날마다 모여앉아서 잡담 아니면 장기나 두었지요. 하긴 우리두 염치없어요. 말이 청년운동이지 뭘 하는 게 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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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지가 멀쩡한 놈들이 날마다 뻔질뻔질 놀기만 해노니까 인저는 몸이 다 근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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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 것이 분명한 것은, 이렇게 말할 때의 그들의 얼굴과 몸짓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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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일이 없어 죽겠다구 그랬지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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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거리가 생기면 몸 사리지 않고 일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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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재덕이는 단원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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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은 정말인지 농담인지 의아해하는 눈치면서도 기다란 나무걸상을 끌어다놓고 교장선생님 앞에 불리어온 국민학교 생도들처럼 단정하니 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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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내 여러분께 하나 질문하겠습니다. 여기에 젓가락 여러 매가 있습니다. 이 젓가락을 따로 세울 수가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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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세우겠지. 그것은 여러분이나 내나 마찬가지지요. 그 가느단 젓가락을 따루 세울 수가 있나요, 없지. 그러나 꼭 한 가지 여기에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젓가락들을 한데 묶으면 세워지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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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젓가락이나 우리 인간이나 마찬가지지요. 합치면 설 수 있고 따로 떼어놓으면 쓰러지고 이것은 비단 젓가락에만 한한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가정도 그렇고 동리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지요. 우리는 언제나 합쳐야 강해지고 합쳐야만 굳세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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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단원들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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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정말 재덕이의 하려는 말의 뜻을 이해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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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년운동만 해도 그렇지요. 첫째 우리 읍내의 청년운동 단체만 하더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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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느 오직 단 한 가닥의 핏줄에 얽힌 민족 입니다. 오천년이란 긴 역사를 두고 오직 한 가지의 말만 써온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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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통일된 땅을 가진 민족입니다. 이것을 말해서 단일 민족, 단일 언어, 통일국토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단일로부터 흩어졌습니다. 꼭 가져야만 할 단일 사상, 단일 주의를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재 덕이는 이렇게 설명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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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인은 오직 우리가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념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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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도 그의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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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재덕이는 어젯밤 여섯이서 늦도록 이야기한 계획을 대강 이야기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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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우리와 손을 잡고 일들 해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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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묻자, 한 단원이 벌떡 일어나면서 손을 썩 내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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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덕이도 따라 일어나서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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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둑 소리가 나게 청년은 재덕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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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마디 백 마디 해주는 것보다도 재덕이네한테는 감명이 깊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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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덕이가 묻자, 제각기 한마디씩 한다. 흡사 정말 국민학교 생도들이 선생님 앞에서 하는 짓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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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한 분 소개하겠습니다. 새삼스러운 것 같으나 이 박건 동지가 우리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저기 저 박도진 동지와 유 달성두 동지는 이 훌륭한 안을 생각해낸 창안자요, 여기 이분은 박경애 씨 ─ 아니 박경애 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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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괄량이는 다 아시다시피 내 누이입니다. 우리 여섯은 힘껏 여러분의 심부름을 해드리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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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하고 아까 일어나서 손을 잡던 홍해성이가 한 팔을 번쩍 들어 이 사업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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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덕이네는 대개 찬동해주리라고는 믿었지만, 이렇게까지 좋아들 할 줄은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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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우리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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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과 도진, 달성, 진숙, 경애 이렇게 차례차례 긴 걸상을 삼각형으로 놓고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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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뵈면서도 인사 못 드렸습니다. 박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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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들어 아실 분도 계시겠지마는 나는 작년에 이북에서 월남해온 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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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북의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독재이며 얼마나 포악한 정치이며, 이 무섭게 포악한 정치 속에서 백성들이 또 얼마나 무서운 학대를 받고 있다는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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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여러분 중에는 설마 그럴까 하고 믿어지지 않으실 분도 있을 겝니다. 그러나, 날이 추워도 춥다는 말을 함부로 못한다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겝니다. 춥다는 말은 곧 정부가 백성 ─ 아니 인민을 춥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말이다. 인민이 춥게 내버려둔 정치는 잘못 하는 정치다. 그러고 보면 결국 김일성의 정치가 나쁘다는 말이요 공산당의 정부가 나쁘다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 이런 결론에 떨어집니다. 고발만 하면 최소한도 6개월은 수양해야 합니다. 수양이란 곧 감옥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북만주나 강계, 영변 같은 데로 끌려가서 중노동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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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쉽게 말하면 재채기도 공산당식으로 하지 않고는 단 사흘을 한 동리에 머물러 있기가 어려울 겝니다. 도시고 농촌이고 할 것 없이 평균 세 집이면 그 안에 반드시 밀정이 한 사람은 끼여 있다고 믿는 것이 옳을 겝니다. 형제간은 그만두고 내외간에 자리에 누워서 정치를 흉본 것을 밀고 해서 잡혀간 사건도 아마 평균하면 한 면에 하나꼴은 충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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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걸 믿어도 좋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남편보다 이 세상에서 더 믿을 사람이 있던가요? 이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부 중의 하나를 밀정으로 잡으니, 방법이야 이 이상 더 묘한 방법은 없을 겝니다. 이 하나로서 놈의 정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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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농민한텐 농토를 거저 나누어주었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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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 단원이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묻는다. 하도 모략이 많은 세상이니 분명히 또 누가 잘못 듣지나 않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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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무상으로 나누어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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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단언하는 말에 모두들 멀쑥해진다. 그 의문에 대답하듯 박건은 이북의 토지 정책을 설명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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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못 사는가 하고 의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2할 5부의 현물 세란 것이 말뿐이지 한 섬 난 데 2할 5부면 일곱 말 닷 되가 농민 차지가 되지만, 한 섬 난 것을 두 섬 난 것으로 치면 결국 현물세가 5할이 되고 석 섬으로 치면 7할 5부 정반대루 되지 않나요?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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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웃어댄다. 그러나 이 웃음은 박건의 다음 이야기에 쑥 걷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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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수확고 예산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 하면, 초가을에 조나 수 수 밭에 들어가서 그중 제일 이삭이 좋은 놈으로 하나 꺾습니다. 그걸 가지구 와서 떨어서는 한 알 한 알 헤입니다. 이것이 그 밭의 수확고가 되니 어디 다른 이삭이 다 그 알수가 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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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좁쌀 같은 건 어떻게 헤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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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헵니까? 성냥개피를 하나씩 들고는 밤이 새더라도 한 알 한 알 영락 없이 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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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는 그야말로들 질리는 모양이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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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많이 받아들이는 세금을 다 뭘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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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인가 후에야 누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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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습니다. 그 대신 무기를 사오지요. 농민들 부역이 일년간에 총계 구십일씩 입니다. 그런데 남쪽에선 일년에 단 이틀 길 부역을 시키는 데도 불평이 많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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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은 남쪽과 북쪽을 여러 각도로 비교해서 비판을 하고는, 남쪽에서는 민주주의를 잘못 해석하고서 자기한테 편하고 이롭도록만 이용하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어리석음을 깨우치자는 것이 이 계획의 초점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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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이 적은 것도 말하자면 몰라서 그런 것이지요.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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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팔을 걷어붙이고 용감히 나서볼 생각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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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그들은 힘찬 출발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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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일부터 교실을 수리하는 한편, 이 계획에 찬동하는 단원들을 모으기로 하고, 그날은 헤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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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들 가십시다. 먹다 난 찌꺼기라 죄송합니다만 잔치 끄트러기 북어 포 나부랭이하구 막걸리는 두어 말 남았을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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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덕이네는 어제 간 터라 굳이 사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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