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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새는 안개 ◈
◇ 재 5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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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2~
현진건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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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새는 안개
2
제 5 장
 
 
 

1

 
 
4
어느 겨울날 저녁이다.
 
5
생선 눈깔 모양으로 퀭하게 흐려진 하늘만 보아도 사람은 음산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게다가 살점을 오려내는 듯한 매운 바람이 맹수와 같이 호통을 치며 두터운 옷자락을 할퀴고,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밀려는 듯하였다.
 
6
창섭은 이 불어닥치는 차디찬 맹수를 쫓는 부적이나 외우는 것처럼,
 
7
"엣, 추워. 엣, 추워."
 
8
하면서 새빨간 코끝을 실룩거리며 탑동 공원의 담을 끼고 돌아 교동을 향 하며 달음질한다. 그의 가는 곳은 명월관이었다. 그는 그 날 새로이 취임 한광고 부장 유만풍의 초대를 받은 까닭이다.
 
9
그런데 이 유만풍이란 자가 광고부장이 된 것은 무슨 학력과 경험이 있음 이 아니었다. 그는 광고에 대한 지식은커녕 광고란 문자까지 해석치 못 하였 으리만큼 무식꾼이었다. 그는 아모 가격 없는 휴지와 다름이 없는 반 도일 보주를 천원어치 사고 이 광고부장을 얻어 한 것이다. 그것은 옛날 벼슬 사던뽄새가 있다. 그를 끌어들인 이는 주운해이니, 운해는 '사(社)를 위하 여제 지위를 희생’하고 서무주임이란 이름으로 십원(拾圓) 증봉(增俸)이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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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섭은 거의 발이 땅에 닿지 않으리 만큼 종종걸음을 쳤다. 그것은 온전히치운 까닭일까? 그러면 그의 가슴이 군성거림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거기서 기생을 만날 수 있다, 친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한 서너 번 요리점에 갔건만 갈 적마다 무슨 애인을 밀회나 하러 가는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가서는 번번이 기생에게 말 한번 건네 보지 못하고 고작해야 옆눈질이나 하다가 헛되이 돌아왔었다.
 
11
"오늘은 꼭 기생 하나를 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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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번 하던 결심을 또 한번 되풀이하매, 가슴이 또다시 두근두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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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막 명월관 문턱에 다다른 때이었다. 저와 반대 방면으로부터 들이 닥친 인력거 한 채가 슬쩍 제 옆을 지나치었다. 그 때에는 그는 맵시있는 발을 담은 듯한 어여쁜 운여신 코끝을 얼른 보았다. 그 신코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 하였다. 그도 저도 모르면서 걸음을 재게 걸어 그 신코의 임자가 수레에서 나리기 전에 앞질러서 요리점 마루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고개를 뒤로 돌려 그 인력거 닿은 데에 시선을 던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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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여쁜 신코의 임자는 방장 수레를 나리고 있었다. 그이는 살짝 몸을 굽히고 한 발을 막 땅 위에 놓은 임물이었다. 그 서슬에 외씨 같은 발의 버선 목까지 잿빛 만토와 속옷이 치켜지며 종아리의 보얀 살이 살짝 내어다 보이었다. 가냘픈 허리가 날씬하자 그이는 얼골을 들었다.
 
15
그 얼골을 보자 창섭은 '아!’ 라고 경악에 가까운 외마디 소리를 쳤다. 그는 기절이나 할 듯이 단박에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이의 아름다 움에 압도 되어서 일까? 아니다, 그이의 얼골이 낯익은 까닭이다. 지나간 꿈 자락이 그이의 얼골에 살아있는 까닭이다. 그이의 얼골이 하릴없는 정애의 얼 골이었다. 창섭은 무에라 형용할 수 없이 가슴을 설레며 이 경이의 대상을 더욱 자세히 살피려 할 제, 그이는 누구를 보았던지 빵긋 웃고는 창섭의 얼 없은 모양엔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쪼르르 사무실로 그림자를 감추었다…….
 
16
"어느 방으로 오셨어요?"
 
17
하는 거의 노기를 품은 듯한 뽀이의 억세인 목소리에 창섭은 깜짝 정신을 차리었다. 아마도 이 뽀이가 아까부터 이 말을 물었건만 창섭이가 미처 대답을 안 했기 때문에 화증을 낸 것이리라. 창섭은 오히려 꿈 자최를 찾는 사람으로 모양으로 눈을 멀뚱거리며 네 말을 못 알아 듣겠다는 듯이 딱 뽀이를 쳐다보았다. 뽀이는 또 한번 물었다. 그제야 반도일보사에서 온 것을 말하고 그때까지 벗지 않았던 구두를 벗고 슬리퍼를 바꾸어 신고 자기 놀방을 찾아갔건만 자꾸자꾸 고개가 뒤로 돌려짐은 어찌할 수 없었다.
 
18
"그 기생이 누구인고?"
 
 
 

2

 
 
20
반도일보사 측의 노는 방은 마루 입새에 있는 휘너른 제일 번이었다. 모이자는 시간은 여섯 점이었으되 일곱 점이 지난 이때에도 사람들은 삼분지 일도 오지 않았다. 사회에 물들은 그들이라 정한 시간에 으레 에누리가 있는 줄 알고 남이 아니 지키는 시간을 저 혼자 지는 것은 반편이나 할 일이지 자기네 같이 똑똑한 어른의 할 일이 아니었다. 딴 데와 달라 더군다나 요리 점 같은 데 때맞추어 가는 것은 제 권위를 상할 염려가 있었다. ' 나는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아서 이런 데 참예할 수가 없었으되 ○○(요리 내는이) 의 낯을 보아 막부득이 왔지요.’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두어 시간은 늦춰 올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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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삼분지 일이라도 온 사람은 어떤 이들일까? 첫째로 이날 밤의 연회의 주인이 유만풍, 둘째로 이 연회의 설계자이고 준비원인 주운해이며, 한시라도 더 많이 요리점의 정조에 몸을 담그고도 싶고 또 계주 생면( 契酒生面)으로 과히 체면에 관계치 않으면 저 친한 기생을 불러 보려는 홍 군수, 한 세 환 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는 이런 연회에 몇 번 참예를 못해 본 신출내기 기자, 허접쓰레기 영업부원들이었다. 그리고 또 기생 셋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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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둘은 벌써 노기란 이름을 들을 낫세인데 그 신문사의 놀음에 단골로 불려 다니는 홍련이와 신호주이었다. 남도산(南道産)인 그들은 안색은 아주 박색이로되 소리에 이르러서는 거의 광대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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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은 우뚝하게 큰 코, 얼마 아니 되어 머리 뒤꼭지까지 밀어갈 듯한, 훨렁 벗겨진 이마, 일자로 길게 찢어진 눈, 여기다가 눈썹이 길고 넓고 검어서 「수호지(水滸誌)」에나 나올 듯한 여걸의 풍도가 있었다. 산호주란 것도 그만 못하잖게 엉설궃게 생기었다. 살이 저대로 노는 축 처진 볼, 둘이나 되는 턱을 고인 나무 둥치 같은 굵직한 목, 허리띠를 바싹 치켜서 맨 보람도 없이 도리어 그 탓으로 바람이 가득 찬 공이나 무엇같이 터질 듯이 불룩한 젖가슴, 육(肉)리 부글부글 끓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 방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그 목청은 바루 꾀꼬리 소리처럼 맑고 가늘었다. 그리고 신이 나서 장고를 치고 우쭐거릴 때엔 그 안반짝 같은 궁뎅이가 팔랑개비 보 담더 가볍게 흔들고 돌리고 하였다.
 
24
그 외에 또 한 명은 명옥이라 부르는데 기생으론 한창 낫세이었다. 조금 좁은 듯한 이마, 있는 듯 만 눈썹이 그리 잘났다고는 못할망정 두 노기 의대조로 어린 맛과 또 도화분의 힘인지는 모르겠으되 봉선화 물울 들인 듯 한 뺨이 사람의 눈을 끄는 점이었다.
 
25
군수는 연해연방 싱거부리한 웃음을 띠우며 명옥이를 쓸어안고 무에라고 소 근거리고 있다. 명옥이도 몸을 그에게 반이나 실리고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기도 하며 이따금 목을 놓아 눈물이 나도록 웃기도 하였다. 그 모양은 '나는 이렇게 손님에게 친절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웃음을 가졌습니다. 제발 노시는 족족 나를 불러 주십시오.’하는 듯하였다.
 
26
이 때에 창섭이가 들어왔다.
 
27
"이키, 미남자가 들어오시는군!"
 
28
군수는 창섭을 보며 부르짖었다.
 
29
"여보게, 이리로 오게, 이리로 와!"
 
30
군수와 창섭은 벌써'하게’를 할 만큼 친해졌었다. 마음 좋은 군수는 창섭의 미모와 재화(才華)를 사랑하였다. 창섭이도 그 걸걸한 성질을 밉지 않게 생각하였다.
 
31
창섭은 하염없이 웃으며 그의 곁에 가 앉았다. 그때껏 군수에게 몸을 실리고 있던 명옥은 슬며시 따로 앉으며 물끄러미 창섭을 보았다.
 
32
군수는 명옥에게 창섭을 가리키며,
 
33
"자아 어떠냐, 이 나으리를 보아라. 이만하면 너의 나지미 노릇을 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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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명옥은 입을 비쭉하며 군수를 꼬집었다.
 
35
"좋으면 그냥 좋다지, 왜 남을 꼬집니?"
 
36
하고 창섭을 보며,
 
37
"여보게, 이런 미인은 자네가 아마 처음 보리, 「수심가」 잘하고 춤 잘추고 조선에 제일 가는 기생일세."
 
38
창섭은 인제 기생과 친할 절호한 기회를 만났건만, 이 소개해 주는 말도 들은 체 만 체 잠잠히 말이 없다. 아까 흐르는 별같이 선뜻 나타났다 선뜻 사라진 정애 같은 그 모양이 그의 왼 머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이다…….
 
39
그 방의 커다란 문이 스르르 열리었다. 열린 사이로 보얀 얼골과 회색 치마가 나풀하며 기생 하나가 한 팔을 짚고 나붓이 인사를 드리었다. 창섭의 눈엔 그 새로 온 이의 얼골이 햇발같이 부시었다. 그것은 곧 그가 문간에서 본 그 얼골이었다.
 
 
 

3

 
 
41
여러 사람의 시선은 이 새로 온 기생에게로 몰리었다. 그이는 미색 하부다에 저고리에 이 또한 하부다이의 일종인 듯한 띄엄띄엄 매화 비슷한 무늬가 있는 진주빛 윤이 지르르 흐르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한 팔을 짚고 나서 살그머니 일어선 그이는 저를 초점으로 모이는 눈살을 부끄러워하는 듯이 고개를 다소곡하고 어데에 가 앉을까요 하는 것처럼 잠깐 서성서성한다. 여기저기서,
 
42
"이리 오라."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 가운데 군수의 목청이 가장 높았다. 그이는 저 를 아는 체해 주는 손님에게 감사해 하는 드키 싱그레 웃음을 건네고 발길에 밟 힐 듯한 치마를 한 손으로 걷어 오로리어 맵시 있는 보얀 버섯발을 재게 놀리어 군수의 곁으로 다가온다. 군수는 제가 무슨 승리나 되는 듯이 벙글벙글 웃으며,
 
43
"그러면 그렇지. 이리 오게. 이리 와!"하고 또 두어 번 청을 하였건만 그이는 군수의 곁이 아니라 제 동무 명옥의 곁에 앉는다.
 
44
창섭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숨 한번 쉬지 않고 저에게로 가까이 오는 낯 익은 듯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 바람이 지나간 뒤의 바다 모양으로 염통이 고동을 끈쳤으리 만큼 그는 정신을 모았건만 기실 그의 머리는 더할 수 없이 착란하였다. 반들하게 쪽 찐 머리가 생대로 푸수수한 트레머 리로 도 보이고 치마 밑에서 남실거리는 보얀 버선발이 까만 구두로도 보이었다…….
 
45
"여보게, 자네는 무엇을 그렇게 골똘히 보고 있나? 설향(雪香)을 보고 넋을 잃은 모양일세그려!"
 
46
하며 군수가 무릎을 툭 치는 바람에 창섭은 깜짝 놀래어 정신을 차리자 무안해 짐으로 빙그레 웃었다. 그 때에 명옥이와 무에라고 소곤거리고 있던 설향이가 잠깐 눈을 들어 창섭을 보았다. 조금 흐린 맛이 있었으되 영채가 돌긴 하릴없는 정애의 눈이었다. 창섭은 이 눈을 보다 다시금 당황하였다. 이 것 저 것을 도모지 모르는 군수는 아까 명옥을 소개할 때와 똑같은 어조로 설향의 「수심가」잘함과 안색의 어여쁨이 서울에 으뜸임을 일러 주었다. 그리고 창섭이가 저와 한 사(社)에 다니는 것, 사중(社中)의 미남자이고 재주꾼 임을 설향에게 자랑하였다. 그이는 '네, 그렇게 훌륭한 분이야요.’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47
창섭은 새로이 설향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가 처음에 정 애로 속은 것이 우스웠다. 딴은 그 귀염성 있는 입 언저리와 갸름하고도 동 그란 상 판이 정애의 그것과 비슷도 하였으되 조금 날카로운 듯한 콧대와 가는 눈썹은 아주 별다른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분 바른 보람도 없이 푸른빛 이도는 얼골빛이 정애와는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48
그러나 그것만으로 기억의 못 밑에 간신히 가라앉았던 정애의 꿈을 불러일으킴에는 충분하였다. 그때껏 정애로부터는 일언반사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영숙의 입에서도 도모지 정애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영숙은 학교를 마친 후로 어머님께 붙들리어 바느질과 음식찌질을 배우느라고 좀처럼 대 문밖을 나가지 못하였고 혹 나들이를 간대도 일가 댁에나 갔지 동무들은 찾지 않는 모양이었다. 학교를 나오자 그들의 사이도 자연히 멀어졌으리라.
 
49
창섭은 어째 정애에게 놀림감이 된 듯싶었다. 제가 만나자고까지 하여 놓고 무슨 일로 해서 한 번 약속을 어겼다고 하기로니 그렇게 끊고 벤 듯 이발 그림자도 않을 까닭은 없을 듯싶었다. 진정으로 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장난 삼아 그런 편지를 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50
자기의 순실한 감정이 남에게 놀림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만큼 애닮은 일은 없으리라, 분한 일은 없으리라. 창섭은 정애를 괘씸한 계집애라고까지 생각 하였다.
 
51
그런데 오늘 밤에 정애와 비슷한 설향을 만났다. 그는 정애에게 느끼었던 사랑이 그이에게로 살아남을 느끼었다. 그리고 또 정애에게 느낀 비슷한 미움도 그이에게 느끼었다. 그는 정애에게서 채우지 못한 사랑의 욕심, 정애에게 속은 분풀이를 애꿏이 만만한 설향에게 하려는 생각이 마음 어 데인지 움직이고 있었다.
 
52
창섭의 설향을 바라보는 눈은 거의 적의를 품은 듯이 날카로웠건만 이런 줄을 모르는 설향은,
 
53
"사내로 어쩌면 얼골이 저렇게 흴까?"
 
54
라고 속으로 찬미하면서 연해연방 호감있는 시선을 창섭에게 던지었다. 그것은 병아리가 저를 덮치려는 솔개의 좋은 나래를 쳐다보며 부러워하는 격 이었다.
 
 
 

4

 
 
56
여덟 점 반이나 되어 손들이 거의 다 모이고 아홉 점이나 해서 요리상이 들어왔다. 손들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요리상을 에두르고 다시 자리를 잡는다. 창섭이도 요리상 곁을 가려다가 문득 설향이가 제 곁에 앉아야 될것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눈으로 그를 찾아보았다. 눈치 빠른 세 기생은 어느 결엔지 상머리에 하나씩 또 상 한편의 복판쯤 해서 술병을 들고 갈라서 있건마는 창섭의 찾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찌할 줄 모르는 듯이 서성서성 하는 판에 군수가 활발하게 기생 아니 선 편의 복판쯤 해서 자리를 잡으며 창섭을 제 곁에 앉으라 하였다. 남들이 다 앉는데 제 혼자 서 있기가 열쩍은 창섭은 그의 말대로 하였건만 무엇을 잃은 듯이 서운한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다.
 
57
이러는 즈음에 소피를 보러 나갔던 듯한 설향이가 들어온다. 그는 창섭 의심중을 살폈음이런지 또는 직업적 민감으로 제 위치를 알았던지 바루 창섭의 등뒤에 술병을 들고 선다. 창섭의 등은 벌에게나 쏘인 듯이 욱신욱신 하였다. 이내 기생들은 제 가까이 있는 손님의 청을 따라 나려앉게 되었다. 설향이도 군수의 앉으란 말에 치마에 바람을 품기며 사뿐 나려앉는다. 제 마음 탓인지 모르겠으되 군수에게보담 창섭에게 몸을 실리었다. 그 보들보들한 치맛자락이 슬쩍 창섭의 무릎을 스칠 제 핫두루막과 핫바지를 격했건만 제 무릎이 근실근실해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58
술잔은 돌아간다……. 창섭은 무슨 술을 먹어야만 될 일이 있는 것같이 설향의 따라 주는 술을 조금도 사양치 않고 주저치 않고 자꾸자꾸 들이켰다. 설향은 놀랜 듯이 창섭을 바라보았다. 창섭이도 맞질러서 그 눈 속을 들여다 보았다. 둘은 한동안 눈으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59
"무슨 술을 그렇게 잡수셔요?"
 
60
"설향이가 부어 주는 술을 아니 먹을 수 있나?"
 
61
"그러면 내가 부어 드리는 대로 잡숫겠다는 말씀이야요?"
 
62
"암, 얼마든지 먹고 말고."
 
63
"그러다가 취하면 어떻게 하셔요?"
 
64
"취하면 더욱 좋지……."
 
65
이 눈으로 주고받는 말이 매우 재미스러운 듯이 설향은 땍대글 웃었다. 살짝 입술이 양편으로 열리어 볼록하며 입가의 살을 모으자 보조개를 지으며 여러 가닥 실금을 그리고 눈이 가무러지는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오히려 웃음의 여파를 눈추리에 띠우고,
 
66
"또 부어 드려요?"
 
67
라고 인제는 법대로 입으로 말을 하였다. 그리고 기울어지는 제 몸을 버티는 듯이 한 팔로 창섭의 무릎을 짚으며 또 술을 붓는다.
 
68
창섭은 이 뜻 아니한 웃음에 놀래기나 한 듯이 웃는 이의 얼골을 뚫을 듯이 바라보다가 저도 싱그레 웃었다. 그리고 부어준 술은 자랑스럽게 비우고는 잔을 탁 놓았다. 설향은 또 웃으며 잔을 채웠다. 창섭은 또 웃으며 잔을 말리었다. 둘은 또 마주 보고 웃었다. 또 붓고 또 말리고……. 창섭의 무너지는 몸은 설향의 어깨로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69
그들은 아까 눈으로 한 말을 인제 입으로 되풀이하였다.
 
70
"무슨 술을 그렇게 잡수셔요?"
 
71
"설향이가 부어 주는 술을 아니 먹을까?"
 
72
"그러면 내가 부어 드리는 대로 잡숫겠단 말씀이야요?"
 
73
"암, 얼마든지 먹고 말고."
 
74
"그러시다가 취하시면 어떻게 하여요?"
 
75
"취하면 더욱 좋지……."
 
76
연회는 한창이었다. 얼큰하게 술이 돈 여러 사람들은 제각기 떠들고 있었다. 논설 쓰는 한학대가(漢學大家)는 주흥이 흐르는 듯한 얼골을 번쩍 거리며 수 양제(隋 煬帝)의 풍류성사(風流盛事)를 이야기하고, 삼면 주임은 침을 버글거리며 제국신문 맨들던 추억담은 지껄이고, 술 잘 먹는 창운은 술잔을 입에 대인 채로 신문 편집 방법을 늘어놓는데, 그와 마주앉은 군수는 편육을 쩝쩝 씹으며 제 일류의 신문 경영 방침을 논란하고 있다. 운해는 저와 같은 뚱뚱보 산호주를 한 팔로 엇비슷이 껴안고 무슨 실없는 소리를 소 곤 거리며, 조그마한 세환은 간 크게도 저보담 갑절이나 큰 듯한 홍련을 붙들고 깐죽깐죽하게 놀리고, 찬명은 소사스럽게 생글생글 웃어가며 명옥 을제 무릎에 올려 앉혔다 나려앉혔다 하고 있다. 택근은 '이 사람들을 내 가모두 부리고 있구나. 이 사람들이 이렇게 잘 노는 것은 온전히 나의 관대한 덕택이로구나.’하는 듯이 저 웃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때에 띠 우는 미소를 띠우고 여러 부하를 나려보고 있다…….
 
77
이윽고 춤과 노래가 벌어지게 되었다. 기생들은 한자리로 모이게 되었다. 그때껏 창섭이와 붙어 앉았던 설향이도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78
창섭은 차마 못 놓겠다는 듯이 손을 꼭 쥐었다. 설향이도 떼치기 어려운듯이 옷 곤치는 모양을 하고 차마 고름을 만적만적하다가 마츰내 제 동무들 있는 데로 가 버리었다.
 
79
먹음 먹이의 냄새가 떠도는 그 방의 공기를 장고 소리가 흔들기 시작 하였다. 나이 어린 탓으로 명옥이와 설향이가 먼저「수심가」를 하게 되었다. 그 노래에는 한숨의 바람이 일고 눈물의 강이 흘렀다. 불 붙는 가슴, 애 졸이는 마음, 원수엣 님, 그리운 님, 야속한 님, 못 믿을 님, 두견이 우는 황릉( 黃陵) 의 무덤, 기러기 날으는 동정의 호수, 하늘에 걷는, 발 없는 달, 나무를 흔드는 손 없는 바람, 강물만 푸르러도 님 없는 설음, 비는 오건만 님 아니 오는 한탄…….
 
80
청승맞게 구르는 목은 어두운 밤에 혼자 훌쩍이는 과부의 울음처럼 껄떡이고, 죽어가는 나비의 나래 모양으로 그윽이 떨리었다…….
 
 
 

5

 
 
82
뒤숭숭하게 이리저리 위치를 바꾼 접시에는 거의 다 비어 가는 요리의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뒤흔들어졌으며 되는 대로 집어 던진 나무저가 여기 하나 저기 하나 어수선하게 떨어져 있다. 보얗던 상보(床褓)는 흘려진 국물과 장물과 칸즈메의 홍합 조각으로 하여 누른 반점 검은 반점이 그려져 있다. 졸아 붙는 구자가 최후의 비명을 아뢰고 있다.
 
83
반 넘게 가고 남은 손들도 더러는 술상을 떠나 불 같은 숨을 헐떡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더러는 비틀비틀하며 춤을 추고 ─ 춤을 춘다느니보담 활개를 펄럭거리며 다리를 지척거리고 있다. 이 춤꾼의 앞에는 홍련이가 장고를 메고 '얼싸 좋다, 으응.’하면서 멋드러지게 그 타구 같은 악기를 뚜 드린다. 그가 앞으로 나아갔다 뒷걸음을 쳤다 함을 따라 춤꾼들은 들어섰다 물러섰다 한다. 그 장고머리에는 산호주가 미륵 같은 몸을 흔들거리는데 그 질 직한 팔이 구렁이나 무엇같이 구불렁거리자 왼 얼골과 목을 뒤 흔들어서 '에라 만수’를 찾고 있다.
 
84
그런데 술꾼의 한 패는 그래도 요리상 한 모서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면 취할수록 술을 들이라 들이라 하는 그 축은 연해연방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85
곤드레만드레하게 벌써 굴신의 자유를 잃고 고개를 설향의 어깨에 누인 듯이 기대이고 창섭이도 그 축에 끼어 있었다. 그는 물론 주객이 아니로되 거기 앉은 어느 뉘보담도 술의 마력을 절실하게 느낀 사람은 그이일 것이다. 정애의 추억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슬픔, 새말갛게 높은 가을 하늘에 별을 치어다 볼 때처럼 가슴에 스며 흐르는 쓸쓸스럽고 하염없는 비애, 그 별의 그림자가 아트막한 시냇물에 떨어진 것을 움켜쥐려는 듯한 느낌을 설향에게 맛보는 애달픈 적막, 마른 잎 같이 물얼골에 뜬 그림자를 움켜쥠에도 물이 손에 묻을까 하는 염려, 곁에서 보는 이가 비웃고 흉볼까 하는 공 겁( 恐怯) 이 모든 감정을 흐리게 하고 사루어 버리는 데 술의 힘이 필요할 듯하였다. 술에게 힘입는 수밖에 없을 듯하였다. 술이란 기쁜 이에게도 동무일런가 모르겠으되 보담 더 슬픈 이의 친구이었다. 그러나 술을 먹는다고 슬픔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기쁨을 돋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돋우었다. 싸늘한 슬픔을 따스하게 녹여서 윤기를 내고 기름을 흐르게 하는 법이다. 빼빼 마른 염통에 물이 오르자 꽃 아니 핀 한숨을 걷잡을 길이 없었다……. 손에 물이 묻은들 어떠하리. 남이 비웃고 흉본들 어떠하리. 부어 잡자, 붙어 앉자. 어여쁘고 안타까운 별의 그림자를…….
 
86
창섭은 한 팔을 설향의 허리로 들어 있다. 단내 나는 코 안으로 기어 드는 무에라 말할 수 없는 머리 향기, 갑옷의 보드라운 촉감, 후끈거리는 내 손바닥에 옮아오는 저 손바닥의 미묘한 온미(溫味)…….
 
87
창섭은 취한 중에도 일부러 더 취한 듯이 감고 있던 눈을 반만 떠서,
 
88
"설향이!"
 
89
"네?"
 
90
"……."
 
91
설향은 고개를 갸웃이하여 창섭의 얼골을 들여다보니 말을 기다렸건만 창섭은 눈을 다시 감으며 아모 말이 없었다. 얼마 있다가.
 
92
"설향이!……."
 
93
"네?"
 
94
"……."
 
95
"왜 부르셨어요?"
 
96
"설향이!……."
 
97
"네?"
 
98
"우리 같이 갈까?"
 
99
"어데를요?"
 
100
"설향의 집에!"
 
101
"……."
 
102
설향은 방그레 웃을 뿐이었다.
 
103
"싫어?"
 
104
"무엇이요?"
 
105
"같이 가기가……?"
 
106
"……."
 
107
이윽고 설향의 편에서 물었다.
 
108
"참말이야요?"
 
109
"그럼!"
 
110
"정말?"
 
111
"그럼!"
 
112
설향은 또 고개를 갸웃이하여 창섭을 들여다보았다. 창섭은 두 손으로 움키는 듯이 설향의 볼을 잡아다리어 그 입을 제 입에 대었다.
 
 
 

6

 
 
114
창섭은 목에 불이 붙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물! 물!’하고 외치려다가 그는 의아한 듯이 사면을 둘러보았다. 두 간 반이나 될 듯한 방웃목에는 화려한 세간이 가득히 놓여 있다. 쌍을 채운 화류 삼 층장, 번쩍번쩍 하는 유리문 달린 옷걸이 그 안에서 누르게 푸르게 또는 분홍으로 초록으로 이불과 요가 내다 보인다. 자개로 수놓은 문갑 위엔 양 가에 자개 물린 큼직한 채경 하나가 얹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햇발이 비친 가을물 모양으로 전등불을 받아 운으로 번쩍이고 그 옆에 놓인 사기 화분엔 발 그 스름한 매화 두 숭이가 때아닌 웃음을 웃고 있다.
 
115
창섭은 여기가 어데인가 하는 듯이 고개를 반쯤 일으켰다. 누가 두루 막과 외투를 벗겼는지 동저고리 바람이고, 제가 누웠던 자리는 모본단 보료 위 였다. 그리고 누가 덮어 주었는지 묵직하고도 포근포근한 모본단 이불이 자기의 하반부에 얹히어 있다. 그러자 저와 멀지 않게 잠든 설향의 얼골을 보았다. 그는 번개같이 어젯밤의 지낸 일을 생각하였다. 연회는 끝장 날 때와 같다. 몇 아니 남은 손들도 허전거리는 손으로 모자를 쓰고 외투를 입었다. 기생들도 어느 결엔지 그림자를 감추었다. 남은 사람은 군수와 창섭이와 설향이와 단지 세 사람이었다.
 
116
"인제 고만 가셔요."
 
117
설향은 저를 다시 놓지 않으려는 듯이 붙들고 있는 창섭을 보며 민망한 듯이 이런 말을 하였다.
 
118
"싫어! 나는 가기 싫어!"
 
119
창섭은 어린애 모양으로 응석을 부리었다.
 
120
"딴 손님이 모두 가셨는데 안 가시고 어째요? 우리 같이 가셔요."
 
121
설향은 달래었다.
 
122
"거짓말!"
 
123
"왜 거짓말을 할 리가 있어요? 우리 셋이 같이 가셔요."
 
124
하며 군수를 보며,
 
125
"나으리, 이 나으리하고 같이 가셔요, 네?"
 
126
놀기에 연연한 군수는 물론 쾌락하였다. 문간에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설향이가 사무실에서 만토를 입고 나왔다. 그가 인력거를 타자 둘도 인력거를 탔다.
 
127
앞서 가는 수레를 따라 뒤로서 두 수레가 좇았다. 살을 오려내는 듯한 매운 바람이었건만 취한 이에게는 화창한 봄바람 모양으로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예까지는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 뒤에 일은 도모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불같이 타는 몸을 가볍게 흔들리우며 시원한 밤 공기를 마시면서 잠에 떨어졌음이다. 수레가 그 문에 닿은 때에야 잠깐 잠이 깨고 이 방에 들어올 수가 있었으되 또 고만 쓰러졌음이리라…….
 
128
설향은 불을 등져서 창섭의 편을 향하고 누워 있다. 슬쩍 귀밑을 스친 광선은 그의 얼골을 밝은 그늘로 감추었다. 희미한 곡선으로 그려진 그 윤곽엔 몽환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떠돌았다. 더운 듯이 한 팔로 가슴에 얹힌 이불을 걷어찼는데 하분이 풀린 저고리 자락 속으로 보야스름한 젖가슴이 무리 에운 달처럼 내어다 보이었다. 깨는 이의 얼골은 자는 이의 얼골에 가까워 갔다. 창섭은 다시금 정애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그림자를 부여잡는듯이 설향을 부둥켜 안았다. 자는 이의 괴로운 듯이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켜더니 반 눈을 떠서 사내를 힘없이 웃었다.
 
129
"언제 깨셨어요?"
 
130
"시방 깨었어."
 
131
사내는 슬며시 계집을 놓으며 부끄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132
"시방 몇 시나 되었어요?"
 
133
계집은 정신을 차리는 듯이 몇 번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134
"몰라."
 
135
"몇 시나 되었을까……? 아직 날이 새지 않았지요?"
 
136
계집은 이런 말을 하며 미닫이를 바라보고 몸을 일으켜 제 팔목시계를 본다.
 
137
"아직 세 시밖에 아니 되었구먼. 그런데 시장치 않으셔요?"
 
138
"시장치는 않아도 물이 먹고 싶어."
 
139
계집은 장 밑에 있는 자리끼를 내어 주었다. 사내는 살 듯이 물을 켜고 있었다. 그 동안에 계집은 보료를 걷고 다시 요와 이불을 나려 깔았다. ' 무슨 술을 그렇게 잡수셔요?’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140
피차에 한시바삐 눕기를 바라보면서도 물끄러미 마주보고 있었다. 달작지근한 침묵이었다. 웬일인지 양편의 가슴에서는 맞추기나 한 듯이 거의 한 때에 휘하고 한숨이 나왔다.
 
141
"왜 한숨을 쉬셔요?"
 
142
"설향은?"
 
143
둘은 웃었다. 전등불은 검둥 치마로 가리워졌다.
 
144
삶아서 껍질을 벗겨 놓은 계란같이 매끈한 살결의 보들보들한 솜의 느낌, 말씬말씬한 고무의 탄력, 손 안에 가볍게 흔들리우는 짜릿짜릿한 젖통의 무게……, 맞서리는 두 숨길, 붉어가는 두 입술, 서로 빨아 당기는 뒷몸의 사라지는 듯한 접촉…… 전 존재를 뒤흔드는 아찔한 도취, 둘이 하나로 녹은 황홀, 이 홍로(洪爐)…….
 
145
밤이다, 어두운 밤이다, 공단(貢緞) 같은 밤이다. 길이길이 새지 말과 저, 길이 길이 깨지 말과저……. 눈감고 속살거리는 달콤한 말씨, 서로 자랑 하는 사람의 깊이, 언제든지 새로운 감격을 자아내는 맹서, 계집의 눈물 묻은 팔자 타령, 사내의 한숨 겨운 위로, 못 믿겠다고 앵돌아지는 교태, 잔 싸움을 푸는 헬 수 없는 키스, 일분을 못 넘는 애틋한 졸음, 한결같이 걸어가는 우단의 꿈길, 깜박 졸다가 깜박 깨여서 사로 찾아다니는 따스한 팔뚝…….
 
146
전등불은 꺼졌다. 밤은 새어 간다. 무슨 단단한 결심이나 한 듯이 사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기 시작하였다.
 
147
"왜 벌써 가시려고 하셔요?"
 
148
다 늦게야 오는 잠에 조여붙는 눈을 부비며 계집은 물었다.
 
149
"그럼, 가야지."
 
150
사내는 향락의 뒤에 오는 적막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151
"벌써 가신단 말이야요?"
 
152
하고 계집은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얼음으로 흰 꽃을 수놓은 창경( 窓鏡)을 가리키며, 밖에 날이 저렇게 치우니 해가 오르거든 가라 하였다. 처음에는 몇 번 고개를 흔들다가 사내는 다시금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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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벽 』, 1923.2.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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