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쁜이는 꼭 한가지만 빼놓고는 모든 것이 남편 덕쇠가 말하던 대로여서 기쁘고 재미가 났다.
4
옷이 모두 비단옷이다. 비단옷을 입어보지 못했으니까 인조견이 비단이다.
5
머리에는 아직 이와 서캐가 있기는 하지만 기름을 발라 싹 빗고 쪽을 찌어 금비녀를 꽂았다. 합성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그것이 금비녀다.
7
주인이 사다 준 경대 앞에 앉아 거기 놓인 갖은 화장품을 써가면서 단장을 하고 거울 속을 굽어다보면 미상불 자기가 보아도 이쁜이라는 이름대로 이뻐 보였다.
8
그러나 여기서는 이쁜이라는 이름이 아니고 간드러지게 산옥이다.
10
빨래라고 하는 것은 구경도 할 수가 없다. 손에 물을 잠그기는 세술할 때 뿐이다.
11
낮으로 손님이 없을 때에는 명옥이며 또 하나 있는 다른 색시한테 장구를 들여놓고 노래를 배운다.
12
잠은 딴 방에서 역시 비단 이부자리를 덮고 혼자 거처한다.
13
제일 걱정되던 술 따르기는 막상 당해 보니까 그다지 어렵지 아니했다. 처음 주전자를 들고 손님 앞에 나앉으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 손이 떨리어 몇 번 흘렸지만 아무도 그런다고 나무라지는 아니했다.
14
손이 튼 것은 손님들이 보고 춘삼이네가 일을 시켜서 그런가 보다고 도리어 가엾이 여겨 주었다.
15
손님들이 억지로 먹이는 술을 한잔 두잔 받아먹으니까 처음에는 속이 어떨떨하더니 그것도 며칠 지나니까 되레 먹음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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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이 - 여기서는 아자씨라고 부른다 - 와 춘삼이댁이 무엇 쓸데 있는 것이나 옷이나 담배 같은 것 사겠으면 말을 하라고 일러두고, 그래 말만 하면 선뜻 시중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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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사다가 주고는 조그마한 책에다가 도장을 누르게 한다. 도장도 아자씨 춘삼이가 새겨준 것이다.
18
담배도 먹는 시늉을 한다. 처음은 손님들이 담배를 주면 못 먹는다고 했지만, 그러면서 한 모금 두 모금 빨아 버릇하니까 그대로 지내면 배워질 것 같았다.
19
시어머니는 꿈에도 볼까 무서웠지만 남편 덕쇠 소식은 궁금했다. 담배, 술 별다른 음식을 대할 때마다 생각이 났다.
20
아자씨 춘삼이더러 물으면 자기도 만나지 못했노라고 한다.
21
그러면 그 돈 백 원을 가지고 어디 가서 장사를 할 것이겠지 하고 안심을 했다.
22
범사가 다 이렇게 편안하고 쉽고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재미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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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꼭 한 가지 괴로운 것이 있다. 초저녁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24
밤 늦게까지 어느 때는 새벽까지 손님을 대하느라면 눈두덩이 내려앉아 견딜 수가 없다.
25
그러고 나서 자기 방에 돌아가 겨우 눈을 붙이면 촌에서 이십 년이나든 버릇이라 첫새벽에 잠이 깬다.
26
깨어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밤중으로 알고 쿨쿨 잔다.
27
오때가 되어야 겨우 다들 일어난다. 이쁜이는 그동안 잠은 아니 오고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다.
28
그렁저렁 점심때 조반을 먹고 번둥번둥하다가 저녁때 단장을 하고 나면 벌써 졸린다.
29
사뭇 졸려서 저녁밥 숟갈을 들고 앉아 졸기도 한다. 손님 술상 앞에서 졸다가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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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졸리운 것이 그렇게 괴롭기는 하지만, 그러나 생각하면 그것은 며칠 전까지 집에서 굶고 욕먹고 매맞고 하던 고생보다는 약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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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사흘짼데 그 새는 친구들과 같이 오더니 오늘 저녁에는 느직해서 술이 얼큰해 가지고 혼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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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검싯검싯 얼굴이 웬만한 사람의 키만큼이나 길고 눈이 왕방울 같아 금점판의 덕대로는 깎아 맞추었다.
35
이쁜이는 다른 손님 방에 있다가 불리어갔다.
36
“산옥이 노래 배운다지? 어데 한번 불러보아.”
37
김덕대는 서너 순배째 들어온 술상을 윗목으로 밀어놓고 이쁜이 무릎을 베고 누워 이야기를 하던 끝에 노래를 청한다.
39
이쁜이는 터진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부끄러워한다.
40
김덕대는 그 손을 잡아다가 거슬거슬 어루만진다.
41
“모르기는 왜 몰라! 그새 배운 놈 하나 해보라구.”
42
“그리두 몰라라우…… 나 인제 잘 배갖구 헐께라우.”
43
“허! 그럴라다가는 내 아들놈이 산옥이 노래 들으러 와야 허게! 허허허허.”
45
될 수 있으면 손님한테 술을 많이 팔리도록 해야 한다고 아자씨 춘삼이한테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쁜이는 밀어놓은 술상을 잡아당겼다.
46
김덕대는 그것을 못하게 하고 이쁜이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51
이쁜이는 부끄러워서 말로만 그런다. 김덕대는 히죽이 웃으며 어린 애기 어르듯 한다.
55
이쁜이는 까막까막 혼자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해도 못쓸 것 같다.
56
남의 사내를 똑바로 치어다보기만 해도 시어머니가 마구 야단을 하고 남편더러 일러서 매를 맞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57
이곳으로 오던 그날 아침에 두부장수 사건만 하더라도 그게 다 그런 속이다. 그런 걸 괜히 함부로 그랬다가는 시어머니나 남편이 알면 무슨 거조가 날지 모른다.
58
그러나 손님은 자꾸만 조르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60
이쁜이는 김덕대가 흝으려 잡는 것을 잠깐 나갔다가 꼭 온다고 기다리라고 해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앞마당에서 아자씨 춘삼이더러 다녀온다고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는데 마침 춘삼이가 안방에서 창경으로 내어다보고 있다가 당황하게 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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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러구 섰어? 김주사 발써 가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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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이는 김덕대와는 미리 기맥을 통했던 터라 속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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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유 저기 지신디…… 나 저 우리 집에 잠깐 갔다 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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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집에? 이 밤중에 자네 집에는 왜 ? 응?”
65
춘삼이는 와락 기색이 달라가지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짐작에 김덕대가 성가시게 구니까 달아날 양으로 그러는 줄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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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시어머니랑 또 또……더러 말 좀 물어보구 올라구 그리라우.”
67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나서 상의를 해본다는 말인데, 춘삼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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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랑 또 또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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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물어보다니 갑작히 무리마지가 났나? 무슨 말을 이 밤중에 물어보러 간다는 거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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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이는 허허 웃었다. 김덕대가 조르니까 그것을 시어머니와 남편한테 그러라느냐 말라느냐 물어보러 가려고 그렇게 나선 속을 비로소 알고기가 막혀 웃음이 절로 터져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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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나마나 괜찮으니 어서 들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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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두 후제 알면 야단허구 때리구 그럴 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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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이는 덕쇠한테 다 승낙을 맡았으니 아무 염려 말라고 하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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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에두 더러…… 응……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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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욕허구 때리는 줄은 어떻게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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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두 그리라우…… 물 질러(물 길러)가다가 남 치어다부았다구 욕허구, 두부장수 불러서 두부 한 모 얼마냐구 물어부았다구 마구 때리구 그맀어라우.”
87
춘삼이는 그런 것까지도 덕쇠한테 승낙을 받았고 겸해서 덕쇠 말이 만일 이쁜이가 말을 아니 듣든지 시키는 대로 아니하든지 하거든 때려라도 주라는 부탁을 했다고, 그러니 말만 잘 들으면야 때리다니, 그보다 되레더 좋은 일이 많을 테고 하니까 아무 염려 말라고 반은 엄포를 해서 반은 달래서 돌려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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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해뜩 웃으면서 김덕대가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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