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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원(迦葉原)
【역사소설】
(2021.07.26. 14:53) 
◈ 시작 - 3
김동인의 역사소설. (1947년작) 동으로는 멀리 동해(東海)를 바라보고, 북으로는 불함(不咸-長白)의 큰 뫼의 줄기를 탄 곳에, 가섭원(迦葉原)의 벌이 벌려 있다. 동부여는 그 가섭원에 서울 터를 잡고 있다.
시작 - 3
 
 
동으로는 멀리 동해(東海)를 바라보고, 북으로는 불함(不咸-長白)의 큰 뫼의 줄기를 탄 곳에, 가섭원(迦葉原)의 벌이 벌려 있다. 동부여는 그 가섭원에 서울 터를 잡고 있다.
 
서울의 북쪽 기슭에 왕실의 목장이 자리잡고 있고, 이 목장을 감독하는 책임을 띠고 있는 주몽은 목장 옆에 자그마한 초막을 틀고, 어미니 유화 부인과같이 거기 거처하고 있었다.
 
가을의 아침 해가 아직 뫼 위에 나타나기 전인 이른 아침, 주몽은 그의 원기 좋은 몸을 자리에서 일어, 어머님께 아침 문안을 드리고 이편으로 돌아와 보았다.
 
어제, 산곡 사냥터에서 새로 만난 세 동무(오이, 마리, 합부)도 벌써 일어나, 아침 소세를 끝내고, 셋이 가지런히 앉아 있다가, 주몽에게 인사를 한다.
 
주몽은 세 사람을 데로 벌〔野〕로 나왔다. 목장이었다. 나무로 넓게 책을 둘러친 가운데는, 굴레도 안 쓴 말이 오륙십 필 둘러 있다.
 
모두 살진 늠름한 말이었다. 그 말들은 주몽을 반기는 듯, 모두 주몽의 앞으로 가까이 왔다. 주몽은 책 한편을 넓게 열어, 말들로 하여금 아침 풀을 뜯어 먹으러 나갈 길을 터 주었다. 뭇 말은, 그 열어 주는 길로 하여, 풀 무성한 곳을 향하여 모두 나가 헤어졌다.
 
그 가운데, 단 한 마리의 말― 모두 살진 가운데 이놈 한 마리는, 참혹하도록 야위고 원기가 없었다― 은, 동무들을 따라 나갈 생각도 않고, 주몽의 앞으로 와서 무엇을 하소하는 듯, 주몽의 앞가슴에 얼굴을 문지르며 눈만 서벅거리고 있다.
 
오이가 한 걸음 가까이 나서면서, 말의 콧등을 어루만져 보면서,
 
"이 말이 탈이 났읍니까? 보아하니, 쉽지 않은 천리 용마(龍馬)인 듯 싶은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읍니까."
 
하며, 연해 갈기를 두들긴다.
 
"종자가 좋아 보이오?"
 
"네. 희대의 용마올시다."
 
"당초에 아무 것도 먹지를 않는구료."
 
"제가 약간 말 다룰 줄을 아옵니다. 어디 탈이 났는지 좀 손질해 보오리까?"
 
"글쎄…."
 
온 몸이 불붙는 듯 시뻘겋고, 그 몸집도 유달리 크고, 엉덩이 드높고, 다리 날씬히 길고, 나이는 네 살쯤― 명마로서의 소질은 다 지니고 있는 모양인데, 몸을 지탱키 힘들도록 야위고 눈곱이 끼고, 입으로는 침을 흘리며― 아주 꼴이 아니었다.
 
입으로는 침을 너무 흘리므로, 입속에 무슨 고장이 있는가 하여, 오이가말 얼굴을 쳐들고 입을 벌려 보려 할 때에 주몽이 앞서, 말의 입을 벌리고, 손을 넣어, 말의 혓바닥을 잡아당겨 꺼내어 보이었다. 말의 혀에는 꽤 커다란 바늘이 하나 꽂혀 있었다.
 
"이 혀로 어떻게 죽을 먹겠소? 아무리 명마라도 굶으니 이 꼴이지."
 
"아, 이게 웬일입니까."
 
"내일쯤은 바늘을 뽑아얄까 보오. 그렇지 않았다가는 말이 굶어 줄을 걸."
 
"일부러 바늘을 꽂으셨읍니까."
 
주몽은 대답치 않고, 그곳서 발을 떼었다. 오이는 그 말이 못내 측은한 모양으로 말을 떠나지 못하고 그냥 서 있었다.
 
주몽은 조반 뒤, 임금(금와왕)께 아침 문안을 드리러 대궐로 갔다.
 
임금은 주몽을 보며 깜짝 놀란다.
 
"주몽이 ― 너 ― 어디 다치지나 않았느냐?"
 
"?"
 
주몽은 뜻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리를 기울였다.
 
"태자랑 시종들의 말에 너 어제 사냥 갔다가 호랑이한테 물려 갔다더니."
 
아마 어제 태자의 일행은, 임금께 그렇게 보고한 모양이었다. 주몽을 결박 지어 맹수 출몰하는 심산 중에 매어 두고 왔으니, 그들로서는 무론 주몽이 죽었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 발뺌을 하기 위하여 임금께 그렇게 보고해 둔 모양 이었다.
 
"무슨 말씀이온지, 신은 어제 종일 목장에서, 목장 밖을 나지를 않았 읍니다. 마침 말 다루는데 능한 사람 세 명을 구해서, 종일 말의 손질을 하고 있었 읍니다. 호랑이는 웬 호랑입니까?"
 
"흐⎯ㅇ, 이상하구나. 태자랑 사십여 명이 여출일구로, 너하고 함께 사냥 갔다가, 호랑이가 뛰쳐나와, 미처 손쓸 틈 없이 너를 물어 갔다는데."
 
"글쎄올시다. 나랏님도 아시는 바, 호랑이 한두 마리 덤벼들기로서니, 그런 것에게 물려 갈 신도 아니옵거니와 신은 어제 하루 종일 울 밖에 나보지를 않았읍니 다. 어느 틈에 사냥을 가오리까."
 
"거 이상하다. 누구 태자 좀 내가 부른다고 여쭈어라."
 
부왕의 부름에 멋모르고 들어서던 태자는, 거기(어제 자기네가 결박 지어 소나무에 매두고 온 ― 지금쯤은 맹수에게 오리가리 찢기어 죽어 있으 리라고 생각되는) 주몽이 아버님 곁에 모시고 있는 양에 하마터면 소리까지 낼뻔 놀란다.
 
"너희들 어젯저녁 뭐랬느냐. 호랑이에게 어쨌다는 주몽이 ― 주몽은 대체, 어제 사냥간 일도 없었다는데…."
 
자기네들은 어제 꼭 주몽을 죽게 만들어 두었었는데, 그 주몽이 현재 아무 고장 없이 여기 나타나 있으며, 더욱이 스스로 ‘사냥간 일이 없다’고 자기네(태자)의 비겁한 행동을 폭로하지 않는 이상, 구태여 어제의 주장을 고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태자는, 이 자리를 어름어름 어물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스스로 은근히 이것은 주몽의 혼백이나 아닌가 하여, 기회보아 슬쩍 주몽을 어루만져 보아서, 손으로 분명 만져지는 품이 혼백도 아닌 듯 하니, 당초에 어찌된 셈인지 알 수가 없어서, 마음으로는 무시무시한 생각과 의문을 품은 채 어전을 물러갔다.
 
주몽도 어전을 물러감에 임하여 임금께 목장에 한 번 거둥해 주시기를 간청 했다. 말 다루는 명인 세 사람을 새로 얻어, 말을 모두 손질했으니 한 번 보아 줍시사고.
 
이즈음 태자가 주몽에게 대한 태도가 나날이 고약해 가서, 그냥 어름거리다 가는 필경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이 근심되어, 일전에 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에게 그 하소연을 한 일이 있었다.
 
어디든 좋은 곳에 자리잡고, 성조 왕검 때부터 아버지 해모수까지 이어 내려온 업을 계승할, 새 터를 잡고 싶으나, 홀어머니 남기고 떠나기가 차마 어려워서, 이 고충을 어머니에게 하소연하였던 것이다.
 
그 때에 어머니는,
 
"자식 잘 되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가장 큰 낙이요, 그것이 가장 큰 효도니라. 이 어미는 아무렇게 되든 간에, 너 좋은데 찾아가서 너 잘 되어야 어미는 기쁘지, 어미 곁에서 그냥 요 꼴로 지내는 것이 어미의 소망이 아니로다."
 
하며, 장부(丈夫)의 장도(長途)에는 반드시 좋은 말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하며, 모자(母子)서 함께 목장에 나와, 긴 채찍을 둘러 뭇 말을 칠때, 뭇 말이 모두 도망치는 가운데, 한 큰 붉은 말은, 두 길(二丈)되는 난간을 성큼 넘어 뛰어 달아났다.
 
어머니는 그 붉은 말〔騂〕을 다시 불러오라 하여 각가지로 시험해 보고, 이 말이야말로 쉽지 않은 명마라 해서, 주몽더러 각별히 기르고 임금께 간청 해이 말을 네 것을 만들라 하여 두었다.
 
그 이래, 주몽은 그 말의 혀에 커단 바늘을 하나 꽂아서, 아주 죽을 먹지못하게 하여, 이렇게 며칠 지내는 동안에, 그 크고 장대하던 말은, 거칠고 눈꼽 끼고 아주 보기 참혹한 형상이 되었다.
 
좀더 그대로 지내다가는 그 명마는 굶어 죽을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잘 먹여, 제 원모양을 회복하면, 임금은 결코 주몽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쓰지 못할 죽어가는 말인 듯 변형해 두었다가, 기회보아 임금께 줍시사고 청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임금은 아직 목장에 행행하지 않아 주몽은 그 말을 달랠 기회가 지금껏 없었다. 그냥 이대로 지내다가는 말을 죽이기 쉽겠으므로 주몽은 오늘 기회보아 임금께 한 번 와 줍시사고 청한 것이었다.
 
이따가 낮 뒤에 목장에 잠깐 거둥하마는 임금의 대답을 듣고, 주몽은 대궐을 물러 나와 자기의 말에 올라 목장으로 향하였다.
 
주몽의 탄 말은 소위 과하마(果下馬)였다. 몸집이 하도 작아서, 그 말을 타고도 과목(果木) 아래를 다닐 수 있다 하여, ‘과하마’라는 이 부여 특산의 종류였다. 큰 강아지만 하여, 위에 탄 주몽보다도 오히려 작으면 작았지 크지는 못할 방정맞은 짐승이었지만, 기운은 놀랍게 세어, 주몽을 허리에 가벼이 싣고서, 발발발 기어간다.
 
목장에 돌아오매, 오이 마리 합부의 세 새동무는 아까 주몽이 시킨 대로, 목장의 말들을 모두 솔질하고 물로 닦고 야단법석이다가 주몽을 절하여 맞는다.
 
주몽은 타고 온 과하마를 그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병든 말께로 돌아갔다.
 
또한 애소하는 듯 주몽께 와서 부벼대는 말의 갈기를 두들기며, 알아 들으라는 듯이 말에게 말하였다―.
 
"아프리라. 배고프리라. 네가 배고프고 혀 아프니만치, 너를 그렇게 하는내 마음도 아프다. 오늘 임금님이 오시면 임금님께 너를 내게 줍시사 해서내 것을 만들고, 그러고는 네 아픈 원인을 없애 주마. 아픈 것만 없어지거든 잘 먹고 곧 회복되어, 한 번 우리 천하를 뛰어돌아 보자꾸나."
 
말은 이 주인의 뜻을 알아보겠다는 듯이, 그 앞에 그의 기다란 얼굴을 디밀었다.
 
그 날 낮 조금 지나서, 임금은 주몽과의 약속대로 목장에 행행하였다.
 
임금이며 시신들은 주몽의 인도로써 목장에 기르는 말을 순시하였다.
 
그들의 눈은 자연 맨 마지막에 그 야윈 말에 머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몽이 아까 혀의 바늘을 뽑았기 때문에, 바늘 꽂혔던 자리에서는 피가 흘러서, 그 피가 침에 섞이어 입밖으로까지 흘렀다. 이 때문에 꼴은 더욱 참혹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네이…."
 
"입에서 피가 흐르는구나. 무슨 병이 들렸느냐."
 
"아마 그런 듯, 죽을 당초에 먹지 않습고 나날이 야위어 들어가옵니다. 종자는 좋은 모양이온데."
 
"응 빛깔이며 키꼴이며 굽모양이며 쉽잖은 좋은 말 같은데, 왜 이 꼴이냐."
 
"아마 죽을 병이 들린 모양이옵니다."
 
"아까와라."
 
"나랏님. 저 말을 신께 주시면 좋겠읍니다."
 
"죽어 가는 말을 해서 뭘 하느냐. 네 마음대로, 이 가운데서 가장 좋은 ― 나 탈 것 하나 제하고는 네 마음대로 한 마리 골라 가지려므나."
 
"아니옵니다. 말이 탐나서가 아니오라, 저 죽어 가는 말이 저대로 두면 필시 죽을 것이온데, 그렇다고 신의 것이 아니고 나랏님 것이오매, 비상 수단을 써서 손질도 못해 보옵고, 그냥 죽이기는 아까와서, 신께 저 말을 주시오면, 신 한번 비상수단을 써서, 죽으면 죽고 요행 살면 살, 거친 손길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거든 가지려무나."
 
"성은을 무엇으로 갚소리까."
 
임금의 일행이 간 뒤에 주몽은 미리부터 준비해 두었던 말죽을 내다가 말에게 주었다. 그 죽에는 합부가 아침에 산에 들어가서 캐온 약초(藥草)도 들어서, 말의 여러 날 쇠하였던 원기를 회복할 일종의 약죽이었다.
 
오래간만에 혓바닥의 고장을 제하고, 죽그릇 앞에 선 말은, 원기 좋게 그 죽을 먹었다. 혀의 자유를 회복한 말은 그것이 기쁜 듯, 물을 먹다가도 고개를 쳐들고 소리높이 울어 보고 하였다. 명마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기다란 여음을 끄을며 산곡 간에 울려 나가고 하였다.
 
주몽은 오이 마리 합부의 세 사람에게도 각각 말 한 마리씩을 골라 잡아서 각별히 가꾸어, 무슨 비상한 일이 있을 때의 예비를 하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까지 원기 좋게 죽을 먹은 말은 원기를 다 회복한 모양으로 주몽이 시험삼아 유화부인까지 청해 내고, 주몽 스스로, 안장도 없이 갈기를 잡고 올라타 보니 말은 우렁차게 땅을 울리며 앞으로 달았다.
 
오이 등 세 사람도 각각 한 마리씩 골라잡아 목장을 경주하여 보니, 다른 말(오이 등이 탄 말)은 열 바퀴를 돌고는 숨차서 잘못 닫는데도, 주몽의 탄말은 그 새 여러 날 굶고 쉬었는데도 물구하고 열 바퀴쯤에는 끄떡도 않고, 열 다섯 바퀴 돌고도, 역시 힘이 얼마이고 남아 있었다.
 
어머니 유화부인도 이 말에 만족한 모양이었다. 주몽이 열다섯 바퀴를 돌고 말에서 내릴 때도 숨소리 여전히 예사로운 말을 하는 유화부인은 몸소 죽 그릇을 들어서 말의 입에 갖다 대었다.
 
"좋은 벗이 생기고 좋은 말이 생기고― 아마 네가 떠나야 될 날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 네가 떠날지라도, 어미를 여기 남겨 두었다는 생각일랑 아예말고, 네 등에 늘 업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어미 걱정은 말고, 네 자리 잡기나 힘쓰거라."
 
말죽 그릇을 들고 말을 먹이면서 유화부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예씨(禮氏)한테도 한번 가 보아야겠구나. 더구나 홀몸도 아니라니."
 
"네. 내일쯤 한 번 가 보겠읍니다."
 
예씨란 주몽의 안해였다. 부여의 풍속이 남녀가 혼인하면 안해는 그냥 눌러 친정에 있다가,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자란 뒤에야 남편의 집으로 간다. 그 풍속대로, 주몽은 예씨 집에 장가들어서 안해의 뱃속에는 벌써 주몽의 씨까지 들어 있지만, 예씨는 그냥 친정에 있던 것이었다.
 
"이번 가거든, 혹은 갑자기 어디로 가게 될는지도 알 수 없다고 미리 알려 두어라. 이즈음 형세를 보니 태자가 너를 미워하시는 품이 나날이 더해 가서, 여기 오래 있지 못할 모양이더라."
 
주몽은 어머니가 팔 아플까 보아, 죽그릇을 받아 땅에 내려놓으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님."
 
"왜?"
 
"한 가지 여쭤 보겠읍니다. 만약 여기에 사람 열 명을 세워 놓고, 저와 태자가 동서에 갈라 서서, 각각 이리로― 내게로 오라고 외치면, 태자와 저 가운데, 어느 쪽으로 많이 가리까."
 
"내가 그런 걸 어찌 알겠느냐."
 
"아니올시다. 그런 일에 어머님이 보시는 눈은 놀랍게 밝습니다. 어머님의 소견을 말씀해 주세요."
 
"응 그러면 내 본 대로, 내 마음대로 말하마. 그렇게 좌우 편에서 부른다면 아마 네게 아홉, 태자께 한 명― 어미 된 욕심에 이렇게 보고 싶지만, 네가 해모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이 나라 사람에게 알릴 만한 일인 네게는 아직 없어. 태자님도 인망은 적지만, 아버님(금와왕)의 인망이 있으니까, 너와 태자님이 좌우 편에서 부른다면, 아마 태자님께 기우는 이가 많으리라."
 
그리고, 아들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나타나려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빨리 말을 계속하였다 ―.
 
"그 따위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나는 나 할 일을 한다는 생각 아래서, 내 믿음대로 크게 외치면, 나약한 태자보다 네게 돌붙는 사람이 많으리라."
 
때에 주몽의 나이 스물두 살 ― 인생의 가장 꿈 많고 희망 많고 야심 큰 혈기의 소년이었다. 자기의 근본과 계통과 역량에 대하여 굳은 자신이 있고, 게다가 현명한 어머니 유화부인의 교훈이 있고 또한 여러 번 천우신조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자기는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신념을 굳게 가지고있는 주몽이었다.
 
아직껏 자라기를 그러한 신념 아래서 자랐거니와, 그 신념은 나날이 커 가고 굳어 갔다.
 
더우기 일전 어떤 날, 하루의 틈을 내어, 활과 살을 메고, 불함산 어떤 깊은 골짜기를 의미 없이 목적 없이 배회하다가, 한 동굴(洞窟)을 발견하고 그 속을 장난 삼아 들어갔다가, 거기서 캄캄한 동굴 속에 살고 있는 한 노인과만 나서, 그 노인과 꽤 한참을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 주몽의 자신은 더욱 커졌다.
 
그 노인은 자기의 이름을 흰곰이라 하였다. 흰곰노인은 스스로 자기의 나이를 몰랐다. 백 살이 썩 넘노라 하였다. 여든 살까지는 나이를 세었으나, 그 뒤부터는 귀찮아서 따지지 않지만, 그 뒤에도 여러 십 년이 지났으니 백 살은 넘었다. 해모수님이 임금인 적에 갑자기 세상사 허무한 생각이 들어, 이 곳에 숨은 이래로, 세상에 나가지 않았으니, 그 뒤의 세상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노인에게서 주몽은, 막연히 역사 지식을 배웠다.
 
흰곰노인은 주몽이 자기는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하매, 반겨 절하며, 그러면 임금이냐 아니냐 물었다. 거기 대하여 주몽은 ‘아직 아니노라’ 고 장차 임금 될 뜻을 암시하매, 노인은 주몽더러 어서 임금 되라고 권하며, 이 땅의 내력을 주몽에게 알려 주었다.
 
까마아득한 옛날, 단군 왕검이라는 거룩한 어른이 생겨나서, 이 땅 백성에게 하늘과 해를 섬기는 법과, 부모며 웃어른을 존경하는 법과, 서로 욕심 내고 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겸해서 밭가는 법이며 온간 제도를 안출해서 가르치어, 한 개 집단 생활을 시작한 데서, 이 땅의 역사는 시작 되었다.
 
이리하여, 이 종족은 이웃 종족보다 다른 문화 생활을 경영하며, 남쪽으로 북쪽으로 번식해 나가서 천 오륙백 년 단군 왕검에서 시작하여 단군 누구, 단군 누구 하는, 평화로운 세월이 계속된 뒤에, 저 서쪽 나라 중국사람들이 차차 이 땅으로 침입해서, 그 사람들이 성을 쌓고, 군사를 기르고, 싸움을 하고 하여, 지금은 이 단군의 땅을 적지 않게 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뿐더러 이 땅 사람들도 그 중국인에게 고약한 것을 배워서, 이전까지는 다만 임금의 아래서 착한 백성 노릇을 할 밖에는 몰랐는데, 이 땅 사람들도, 지금은 여기저기 제각기 나라를 세우고, 나랏주인 노릇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옛날은 온 동방이 모두 단군임금의 터였었는데, 지금은 중국인에게도 꽤 크게 잘리고, 그 잘린 남저지의 땅에 여러 나라 여러 임금이 있는 형편이요, 지금 단군의 터로 남아 있는 것은 이 부여(扶餘) 근처 이천 리에 지나지 못한다.
 
흰곰노인이 그냥 세상에 있을 때의 단군은 해모수임금이었다. 단군 해모수님은 사면으로 뜯기고 남은 작다란 터에 임금으로 오르셨다. 그러나 중국(지나)의 세력은, 요 조금 남은 터조차 연해연방 잠식해 들어가서, 이 꼴대로가 다가는, 단군 옛터는 씨도 없이 없어지고, 모두 중국땅이 필시 될 것이다.
 
이런 것 다 보기 싫어서, 흰곰노인은 세상을 버리고 이 깊은 산에 들어와 숨은 것이다.
 
"여보소 젊은이. 해모수님의 아드님. 이 땅의 한 포기의 풀, 한 덩이의 돌멩이가 모두 단군의 것이외다. 즉 당신의 것이외다. 동으로든 서로든 남으로든 북으로든 몇 천 리, 몇 만 리, 서로 같은 말(言語)를 쓰고, 한가지 해와 하늘을 섬기고, 보통 때 흰옷을 입는 사람이 사는데는 다 단군님의 땅, 즉 당신의 땅이외다. 거기 무색 옷 입고, 말이 다른 사람들이, 활과 칼을 가지고 들어와서, 흰 옷 입은 사람을 구박하고 내쫓으오. 이게 하늘의 이치입니까.
 
왜 제 땅을 두고 남의 땅에 와서 그 땅 주인을 내쫓아? 보아하니 당신은 녹록하지 않소. 사람, 사내, 욕심이 있고 심술이 있고 패기와 뱃심이 있어야 하오. 당신은 눈썹 위에 두드러진 그 군살이, 한 번 심술부려 봄직 하오. 내 땅 내 강산 찾아서, 내 백성과 같이 평안히 살아 보겠다는 생각도 냄직하오. 구태여 남의 땅까지 빼앗아서 무얼 하리요마는, 내 땅 남 주고, 좁은 데서 엉키어 살 것이야 또 무엇이오. 내 모르겠소마는, 젊은이 좀 잘 생각해 보시오."
 
흰곰이라는 노인은, 주몽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단군 해모수요, 단군 왕검의 직손이며, 이 땅은 단군 왕검의 땅이라는 것은 일찍부터 알았지만, 소위 ‘이 땅’이라는 것이 부여 일대만이 아니라, 몇 천 리 밖의 광막한 지역이며, 현재 지나인에게 그 대부분이 빼앗기어 있다는 것은 처음으로 지적받은 바였다. 같은 흰 옷을 입고, 해와 천지를 경배하는 습관을 가진 백성이 사는 곳은, 모두가 단군의 땅이라는 것도 새 지식이었다.
 
흰곰노인과 작별하고, 산에서 내려올 동안 주몽의 가슴에는 무드기 자부심이 더하여졌다.
 
나는 이 땅의 주인이로다. 어서 주인의 자리에 올라앉아서, 중국인에게 빼앗긴 내 땅을 다 도로 찾아서, 내 백성과 함께 이 땅에서 즐기리라.
 
아무 마음에 남는 바 없지만, 어머니 홀로 남겨 두고 떠나기가 인정상 그래도 어려워서, 아직 그냥 주저하고 있는 주몽이었다.
 
그 어머니도 또한, 자식의 영광이 어미의 기쁨이니, 어미 걱정은 아예 말고 마음 가벼이 떠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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