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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가담항설의지식창고 몽골제국 잔존세력의 후속 역사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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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제국 잔존세력의 후속 역사 소고(小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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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I. 서론
【논문】 본 연구는 몽골제국이 사라진 후 각 지역에 남았던 여러 몽골제국의 후예 중에 조치 울루스의 제(諸) 칸국이나 모굴 칸국(Moghul Khanate), 북원(北元)처럼 국가를 이루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군소 세력의 명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군소세력은 주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위치하여 주변 여러 국가들 사이를 줄타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 명과 모굴 칸국, 북원과 티베트 사이에는 명의 군사 행정구역인 위소로 편성되어 있지만 구성원은 몽골, 티베트, 투르크 등 비한족이며, 명의 강역 바깥에 존재하고 있으나 명과 긴밀한 관계를 지녔던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을 명에서는 관서 7위(혹은 8위)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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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논문】 오이라트 에센의 세력의 정점은 1449년에 발생한 토목보(土木堡)의 변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에센의 권력이 정점을 거쳐 쇠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토목보의 원인, 경과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있으므로 본 글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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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V. 결론
【논문】 본 논문은 14세기 후반에 명과 서·북 몽골 사이의 완충 세력이었던 가욕관이서의 제 위소가 북부와 서부의 몽골 세력의 공세에 맞서 어떤 과정을 거쳐 15세기 말~16세기 초에 폐지되는지를 살펴보는 논문이다. 본문은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기 위소의 형성과 북·서 세력의 공세에 대한 위소의 대응, 그리고 위소의 폐지와 이후 향방에 관해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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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논문】 전술했듯이 관서의 일곱 위소는 홍무제~영락제 재위초기의 서북 상황 및 명이 그들에게 제시한 여러 가지 혜택을 고려하여 동족에 칼끝을 겨누는 것을 선택했다. 홍무제 시기만 해도 몽골리아 초원에 자리한 여러 세력의 거점은 관서 위소와는 상당히 멀었고, 모굴 칸국의 세력은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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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논문】 차가타이의 손자로 쿠빌라이 칸의 지지를 얻어 차가타이 울루스를 차지했던 알구(Alghu)와 그의 계열은 차가타이 울루스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했고, 결국 차가타이의 또 다른 후손인 바락(Barāq)과 그의 아들 두아(Duwā)가 차가타이 울루스를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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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