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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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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
◈ 동양고전 아카데미 423강 강의자료 요약(2026.5.14)
司馬遷《史記》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渡荊門送別〉과 작자 李白 및 주요 단어(渡, 荊門, 楚國, 大荒, 海樓, 海市蜃樓, 天鏡, 등)과 話者와 對象의 倒置 수법과 主客顚倒式으로 작성한 감상포인트 등에 대해서 설명 ; (2)《論語》〈公冶長〉「子謂南容,“邦有道,不廢;邦無道,免于刑戮。” 以其兄之子妻之。」를 예로 들어 南容, 邦과 天下, 戮(僇)과 棄市, 梟首, 孟皮 아들 孔忠(72賢), 《詩經》〈大雅·抑〉과의 관련성 및 衛, 武公의 自警詩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 (3)光復의 유사어, 출전, 建國과의 차이, 光復에 대한 다양한 증거 등과 관련된 내용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 (4)賜의 甲骨文과 《說文解字》에서의 문자학적 의미 설명 ; (5)劉向, 《列女傳》〈趙將括母〉 원문 번역을 통하여 趙奢와 趙括, 고대 上席의 위치(漢 이전과 이후), 連坐와 隨坐의 차이 등을 상세히 설명 ; (6)《左傳》〈秦晉崤之戰〉을 통하여 秦晉의 관계, 驪姬와 奚齊, 重耳와 夷吾, 秦3將(孟明視, 西乞術, 白乙丙)의 被擄와 복수, 晉의 世系와 烝과 媵(妻,妾)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동양고전 아카데미 423강 강의자료 요약(2026.5.14)
 
 
2026년 5월 7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도형문송별
2. 작자: 이백(李白, 701~762)
 
* 작자에 대한 설명은 지난 418강 참조하세요
 
* 이 시에 대한 김교수님의 해설용 슬라이드 11매가 있으나 1매만 게재합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1강(2024,09,19)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
5-2. 子謂南容,“邦有道,不廢;邦無道,免于刑戮。” 以其兄之子妻之。
 
(주석)
1) 謂 - 말하다, 여기다, 여기서는 평론하다(comment)
2) 南容 - 姓은 南宮, 이름은 南宮韜, 南宫括, 南宮适, 南宮敬叔, 南宮邊子, 字는 子容, 孟子의 조상, 魯人, 孔子의 제자, 조카사위.
 
《論語》〈先進〉「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
"남용(南容)이 시경에 나오는 '백규(白圭)' 시를 여러 번 반복하여 읊조리니, 공자께서 그 형님의 딸(조카딸)을 그에게 시집 보내었다."
 
《시경》 백규(白圭) 구절
- 시경(詩經)》 〈대아(大雅)·억(抑)〉
 
白圭之玷, 尙可磨也. (백규지점, 상가마야)
斯言之玷, 不可爲也. (사언지점, 불가위야)
흰 옥(백규)의 흠은 여전히 갈아내어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 (지울 수 없다).
 
* 이 시는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백규'라는 이름은 시의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공자의 제자인 남용(南容)이 이 '백규' 시를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해서 읊었다고 하며, 공자는 그의 신중함을 높게 평가해 조카딸을 그에게 시집 보낸 일화가 《논어》에 전해집니다.
 
 
《史記》〈仲尼弟子列傳〉「南宫括字子容」
"남궁괄(南宫括)의 자(字)는 자용(子容)이다."
 
* 南容 - 姓은 南宮, 이름은 南宮韜, 南宫括, 南宮适, 南宮敬叔, 南宮邊子, 字는 子容, 孟子의 조상, 魯人
 
* 공자의 가계도 요약
- 숙량흘(아버지): 정실부인(딸 9명)/측실(아들 맹피)/안징재(아들 공자)
- 맹피(공자 형)의 자녀: 아들 맹충, 딸(남용에게 시집감)
- 공자의 자녀: 아들 공리(백어), 딸(공야장에게 시집감)
 
3) 邦 - 제후국
4) 有道 - 태평 성세, 無道는 暗黑混亂
5) 廢 - 罷官, 免職
6) 刑戮 - 刑罰
 
① 전시
• 전시 기간: 보통 3일(三日) 동안 전시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3'은 하늘, 땅, 사람(천지인) 모두에게 죄를 지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 전시 위치: 주로 성문(城門)이나 교량(橋梁) 등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 배치되었습니다. 이는 정보를 전달하는 '공적인 게시판' 역할을 수행하여 통제 효과를 극대화한 것입니
 
② 효시(梟示)/효수(梟首)
• 방식: 목을 베어 높은 장대나 성문 위에 매달아 놓는 방식입니다.
• 의미: 가장 일반적인 전시 기호로, "누구든 이 죄인과 같은 뜻을 품으면 이렇게 된다"는 국가의 강력한 통치 위엄을 과시합니다. 주로 반역자나 흉악범에게 집행되었습니다.
 
③ 기시(棄市)
• 방식: '저잣거리(市)에 내버린다(棄)'는 뜻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 바닥에서 처형하고 시신을 그대로 방치하는 방식입니다.
• 의미: 죄인을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격리하고, 죽어서도 안식(장례)을 얻지 못하게 하여 영혼까지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중의 야유와 모욕을 유도하는 전시 기호입니다
 
 
7) 子 - 고대에는 남자 여자 모두 子라고 일컬음. 여기서는 여자(딸)를 가리킴.
 
* 光復
1. 漢字의 단어임.
2. 의미 -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빛을 되찾다. 즉 원래 있었지만 망한 국가의 恢復 또는 빼앗긴 영토를 다시 찾아오는 收復을 의미함. 한국의 경우를 예를 들면, 한반도 혹은 대한민국을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되 찾아와서 해방을 맞이함.
3. 유사단어 - 恢复, 復原, 收复...
4. 光復의 과정 - 통상적으로 義擧, 反抗, 抗爭, 戰爭 등을 통하여 국가의 독립과 백성의 자유와 존엄 등을 추구하게 됨.
5. 출전 - 《晉書》〈桓温傳〉「知欲躬率三军, 蕩涤氛穢, 廓清中畿, 光復舊京」에 보인다.
6. 사견 - 光復이라는 단어의 의미로 볼 때, 1945,8,15일을 광복이라고 일컬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이미 대한민국(1919,4,10임시 의정원에서 확정, 이승만 대통령도 회의록, 연설문과 공문서에서 계속 대한민국이라고 하고, 1948년 제헌헌법 제정할 때도 헌법전문에 이승만의 강력한 요구대로 󰡒3.1운동으로 건국된 대한민국󰡓을 삽입하였음. 그런데 왜? 이렇게 反憲法的인 행동을 할까? 이승만도 원하지 않는 일을 후대에 일부 집단에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목적이 있을까? 이렇게 하면 누가 이익을 볼까? 등등)이 건국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史記》〈周本紀〉4-023
1. 賜 - 갑골文, 원래는 상을 주다
《說文解字》「賜,予也」
사는 주는 것이다.
 
1) 주다,
《正字通》「上予下曰賜」
위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주는 것이 사이다.
 
* 아래 사람이 위 사람에게 드리는 것: 獻, 拱
 
 
《禮記》〈曲禮〉「長者賜,少者賤者不敢辭」
"어른(장자)이 주시는 물건은 나이가 적은 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감히 거절하지 못한다."
 
《樂府詩集》〈木蘭詩〉「策勛十二轉,賞賜百千强」
공적을 기록함에 십이 등급을 올려 주었고, 상으로 준 것은 백, 천보다 많았다."
 
 
劉向, 《列女傳》〈趙將括母〉「趙將馬服君趙奢之妻,趙括之母也。秦攻趙,孝成王使括代廉頗爲將。將行,括母上書言于王曰. 括不可使將。王曰. 何以?
曰..始妾事其父,父時爲將,身所奉飯者以十數,所友者以百數。大王及宗室所賜幣帛,盡以與軍吏士大夫。受命之日,不問家事。今括一旦爲將,東向而朝軍吏,吏無敢仰視之者。王所賜金帛,歸盡藏之。乃曰. 視便利田宅可買者。
王以爲若其父乎?父子不同,執心各異。愿王勿遣。王曰. 母置之吾計已决矣。括母曰. 王終遣之,卽有不稱,妾得無随坐乎?王曰.不也。
括旣行,代廉頗。三十餘日,趙兵果敗,括死軍覆。王以括母先言,故卒不加誅。」
 
조나라 장수 마복군(馬服君) 조사(趙奢)의 아내는 조괄(趙括)의 어머니이다.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효성왕(孝成王)은 조괄로 하여금 염파(廉頗)를 대신하여 장수로 삼으려 했다. 조괄이 출발하려 하자, 조괄의 어머니가 왕에게 상소(상서)를 올려 말하였다. "조괄을 장수로 삼아 보내시면 안 됩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찌 그러 한가?"
어머니가 말하였다. "처음에 첩이 그 아이의 아버지를 섬겼는데, 그이가 장수였을 때 친히 밥을 대접한 사람이 수십 명이었고, 벗으로 지낸 사람이 수백 명이었습니다. 대왕과 종실에서 하사하신 돈과 비단은 모두 군의 관리와 사대부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출정 명령을 받는 날에는 집안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조괄은 하루 아침에 장수가 되더니, 동쪽을 향해 앉아 군의 관리들을 조회하는데 관리들 중에 감히 그를 우러러보는 자가 없습니다. 또한 왕께서 하사하신 금과 비단은 집으로 가져와 모두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이익이 될 만한 살 만한 밭과 집을 보러 다닙니다. 왕께서는 그 아이가 그 아버지와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와 아들은 같지 않고, 마음을 쓰는 바가 각기 다릅니다. 원하는 바 왕께서는 그를 보내지 마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어머니는 이 일을 덮어 두세요. 나는 이미 결정을 하였다."
조괄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왕께서 끝내 그를 보내시겠다면, 만약 (왕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 첩이 수좌(함께 처벌받음)되지 않도록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다."
조괄이 마침내 출정하여 염파를 대신하였다. 30여 일 만에 조나라 군대는 과연 패배했고, 조괄은 죽고 군대는 전멸했다. 왕은 조괄의 어머니가 전에 했던 말이 있었기에, 끝내 그녀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처형하지 않았다).
 
* 卽 ~ 만약...한다면
* 稱 ~ 직분에 걸맞다.
* 연좌제 (連坐制) ~ 범죄자와 연결되어 함께 (죄의 자리에) 앉는 제도라는 뜻으로, 범죄자와 특정한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함께 처벌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혈연·가족 중심의 집단적 책임.
* 수좌제 (首坐제 / 隨坐制) ~ 주범의 죄에 '따라서' 처벌받는다는 뜻으로, 연좌제의 하위 개념이거나 전통 법률 체제에서 결탁된 관계에 따라 함께 처벌받는 연루 제도를 지칭합니다.
범죄자와의 '공동 행위, 직무상 관계, 혹은 한 울타리 안의 결탁 관계'가 기준입니다
 
* 이해를 위한 팁
• 배경: 이 사건은 중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 중 하나인 '장평대전(長平大戰, 기원전 260년)'의 배경입니다. 당시 노장 염파는 진나라의 공격을 수비 책략으로 잘 막아내고 있었으나, 진나라의 이간질에 속은 조나라 효성왕이 실전 경험이 없고 이론만 잘하는 조괄로 사령관을 교체하려 했습니다.
• 어머니가 반대한 이유: 아버지 조사는 부하들을 아끼고 사재를 털어 군사들을 대접하는 참된 장수였던 반면, 아들 조괄은 장수가 되자마자 교만 해져 부하들을 군림하려 들고 상금으로 재테크(부동산 구입)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이 모습을 보고 아들이 대군을 이끌 그릇이 아님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 장평대전(長平大戰, 기원전 260년)은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와 조(趙)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두고 벌인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거대한 전투입니다.
단일 전투에서 조나라 군대 45만 명이 몰살당하며 전국시대의 세력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고,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전투의 전개 과정과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1. 전쟁의 발단: 상당(上黨) 땅의 귀속 문제
진나라는 한(韓)나라를 공격하여 요충지인 '상당' 지역을 고립시켰습니다. 한나라의 상당 군수는 진나라에 항복하는 것 보다 차라리 조나라에 땅을 바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조나라 효성왕은 이 거대한 미끼를 덥석 물었고, 이에 분노한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하면서 장평대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2. 1단계: 명장 '염파'의 끈질긴 지구전
초기 싸움에서 조나라가 밀리자, 조나라는 백전노장 염파(廉頗)를 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 염파의 전략: 진나라 군대는 원정을 와서 보급선이 길고 지쳐 있었습니다. 염파는 이를 간파하고 단단히 성벽을 쌓은 채 절대 싸워주지 않는 지구전)을 펼쳤습니다.
• 결과: 진나라 군대는 초조하게 되였고, 전쟁은 2년 넘게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3. 2단계: 진나라의 이간질과 조나라의 치명적 실수
전쟁이 길어지자 두 나라 모두 재정적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특히 조나라는 식량이 떨어져 다급해 졌다. 이때 진나라의 재상 범저가 반간계(첩자를 통한 이간질)를 씁니다.
 
"진나라는 염파 따윈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직 조나라의 천재 지략가인 젊은 조괄이 장수가 되는 것만 두려워할 뿐이다."
이 소문을 들은 조나라 효성왕은 속아 넘어가 염파를 해임하고, 실전 경험은 없고 이론만 빠삭한 조괄(趙括)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앞서 질문하신 '조괄의 어머니'가 왕을 찾아가 결사 반대했던 시점이 바로 이때입니다.)
 
4. 3단계: '백기'의 등장과 조괄의 참패
조나라가 사령관을 바꾸자, 진나라는 비밀리에 당대 최고의 명장인 '인간 도살자' 백기(白起)를 총사령관으로 투입합니다.
• 유인책과 포위: 조괄은 사령관이 되자마자 염파의 수비 전략을 버리고 대대적인 공격 감행했습니다. 백기는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며 조나라 대군을 깊숙이 유인한 뒤, 기습 부대를 보내 조나라 군대의 후방을 끊고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습니다.
• 46일간의 굶주림: 졸지에 장평 계곡에 갇힌 45만 명의 조나라 군대는 보급이 끊긴 채 46일 동안 굶주렸습니다. 결국 서로를 잡아먹는 지옥도가 펼쳐졌고, 절망한 조괄이 돌격을 감행하다 전사하면서 조나라 군대는 전원 항복했습니다.
 
5. 비극적인 결말: 40만 명의 생매장 (갱살)
백기는 항복한 40여 만 명의 조나라 군사들을 보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들에게 줄 식량도 없었고, 이들을 돌려보냈다가 나중에 다시 반란을 일으키면 진나라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결국 백기는 속임수를 써서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하루아침에 구덩이에 파묻어 생매장(갱살, 坑殺) 해버렸습니다. 오직 어린아이 240명만 살려 보내 조나라에 공포심을 심어주게 했습니다.
 
6. 장평대전이 남긴 역사적 영향
• 조나라의 몰락: 조나라는 이 전투 한 번으로 전국의 장정(성인 남성)을 거의 모두 잃었습니다. 집집마다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후 다시는 진나라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 진나라의 천하통일 발판: 진나라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유일한 대항마 였던 조나라를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로부터 약 40년 뒤, 진시황이 6국을 모두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는 결정적인 도약대가 되었습니다.
• 고사성어의 탄생: 실전 경험 없이 책으로만 병법을 논하다 나라를 망친 조괄의 행태에서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습니다.
 
 
 
 
 
 
 
 
《左傳》〈秦晋崤之戰〉「文嬴請三帥,曰:“彼實枸吾二君,寡君若得而食之,不厭,君何辱討焉?使歸就戮于秦,以逞寡君之志,若何?”公許之。先軫朝,問秦囚。 公曰:“夫人請之,吾舍之矣。”先軫怒曰:“武夫力而拘諸原,婦人暂而免諸國,堕軍實而長寇仇,亡無日矣!”不顧而唾。公使陽處父追之,及諸河,則在舟中矣。釋左驂,以公命贈孟明。 孟明稽首曰:“君之惠,不以累臣衅鼓,使歸就戮于秦,寡君之以爲戮,死且不朽。若從君惠而免之,三年將拜君賜」
 
문영(文嬴, 진 양공의 서모이자 진穆공의 딸)이 세 명의 장수(맹명시, 서걸, 백을병)를 석방해 달라고 청하며 말하였다. "그들은 진(秦)나라와 실로 우리(晉) 두 임금 사이를 정말로 이간질한 자들입니다. 우리 임금(진 양공)께서 그들을 잡아 살을 씹어 드셔도 만족하지 못할 터인데, 대왕께서 어찌 그들을 토벌하는 수고로움을 더럽히겠습니까? 그들을 진나라로 돌려보내 처형당하게 함으로써 우리 임금의 원한을 풀게 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공(진 양공)이 이를 허락하였다.
선진(先軫, 진나라의 장군)이 찾아와 진나라 포로들의 행방을 물었다. 공이 말하였다.
"서모(문영)가 청하기에 내가 그들을 풀어 주었오."
선진이 분노하여 말하였다. "무장들이 힘써 전쟁터에서 그들을 사로잡았는데, 한 가닥 아녀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나라 안에서 그들을 방면해 주었군요! 군 공의 결실을 무너뜨리고 원수를 기르는 꼴이니, 나라가 망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임금을 돌아보지도 않고 침을 뱉고 나갔다.
공은 양처부(陽處父)를 시켜 그들을 추격하게 하였는데, 황하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이미 배에 타고 있었다. 양처부가 마차의 왼쪽 곁말(驂馬)을 풀어 진나라 공(양공)의 명령이라며 맹명(孟明)에게 선물로 주었다.
맹명이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말하였다. "대왕의 은혜로, 죄인인 저희의 피를 북에 바르는 제물(흔고)로 삼지 않으시고, 진나라로 돌아가 처형당하게 해 주셨으니, 우리 임금께서 저희를 처형하시더라도 죽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대왕의 은혜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면, 3년 뒤에 장차 대왕의 그 은혜에 보답하러(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인사하러) 오겠습니다."
 
* 주요 구절 및 맥락 해설
• 文嬴請三帥 (문영청삼수): 문영은 진(晉)나라 양공의 어머니뻘이지만, 친정은 적국인 진(秦)나라였습니다. 친정 장수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 손으로 죽여봐야 손만 더러워지니, 본국으로 보내 비참하게 처형당하게 만들자"라는 고도의 심리전(궤계)을 펼친 것입니다. 진 양공은 이 말에 속아 포로를 풀어줍니다.
• 不顧而唾 (불고이타): 목숨 걸고 싸워 이긴 장수 선진이, 임금이 아녀자의 말에 속아 다 잡은 적장을 풀어주자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임금 앞에서 돌아보지도 않고 침을 뱉은 장면입니다. 당시 장수의 권위와 분노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三年將拜君賜 (삼년장배군사): 맹명이 남긴 이 말은 겉으로는 "살려주어서 감사합니다"라는 외교적 수사 같지만, 실제로는 "3년 동안 군사를 기른 뒤 반드시 복수하러 다시 오겠다"는 서늘한 선전포고입니다. (실제로 맹명시는 3년 뒤 군대를 이끌고 다시 晉나라를 쳐들어옵니다.)
 
蹇叔哭師 ~ 《좌전(左傳)》 당시 秦진나라의 군주인 진 목공(秦穆公)은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출동하려 했습니다. 직역하면 "건숙이 군대의 앞날을 내다보고 통곡하다"라는 뜻입니다.
정치적 야욕에 눈이 멀어 무리한 원정을 감행하려는 군주와, 그로 인해 파멸로 걸어 들어가는 군대를 바라보는 노재상(老宰相)의 안타까운 충심과 예지력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결국 진나라 군대는 후에 발생한 효산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었고, 蹇叔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蹇叔의 지혜와 예언 능력을 강조하며, 그의 충고를 무시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
 
* 이 부분에 대한 김교수님의 해설용 슬라이드가 있으나 1매만 게재합니다.
 
 
 
* 진(晉)나라 6대 군주 계보 및 군림 연도
 
[19대 武公] (BC 678 ~ BC 677) 1.부인(첩) 제강(齊姜) (제 환공의 딸)
烝(눈이 맞아 庶母와 사통(私通)
 
[20대 獻公] (BC 676 ~ BC 651)
1. 부인 제강(齊姜) 태자 申生 (여희의 모함으로 자살)
2. 융주희 (융족) 딸 (백희 - 진목공의 부인)
3. 부인大戎姬 (翟國狐氏) 아들 重耳 (해외 망명19년, 文公)
4. 부인小狐姬 (翟國狐氏, 동생) 아들 夷吾 (해외 망명, 惠公)
5. 여희(驪姬) (중이, 이오)을 망명 시킨 '여희의 난', 아들 해제(奚齊),
6. 소희 (여희의 동생) , 아들 탁자 (즉위 후 살해)
 
* 잉제(媵制)란 무엇인가?
잉제는 고대 중국(주나라~춘추전국시대) 제후국 사이에서 행해진 '일부다처제적 집단 동반 혼인 제도'입니다.
신부가 시집을 갈 때,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매(친자매 또는 사촌 자매)나 조카, 그리고 시녀들을 일 일개 소대(?)처럼 무리 지어 함께 시집보내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처럼 정비(정식 부인)를 따라 함께 시집가는 사람들을 통틀어 '잉(媵)' 또는 '잉첩(媵妾)'이라고 불렀습니다.
 
[21대 懷公] (BC 651) 해제(奚齊) 이극의 난으로 살해됨, 단 수개월
 
[22대 탁자] (BC 651) 이극의 난으로 살해됨, 여희도 살해됨
 
[23대 惠公] (BC 650 ~ BC 637) 夷吾
 
[24대 文公] (BC 636 ~ BC 628) 重耳 60세에 즉위함
제강을 정실(제1부인, 제나라 공녀), 중이 망명을 도움
문영(文嬴) (진나라 공녀) 아들 양공(휘환)
 
[25대 襄公] (BC 628 ~ BC 621)
 
당시 서쪽의 강대국인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은 진 문공의 그늘에 가려 중원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가, 문공이 죽자 이를 기회로 삼아 중원의 소국들을 동맹국으로 포섭하고 진(晉)나라의 패권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즉위하자마자 강력한 외교적·군사적 시험대에 오른 것입니다.
 
* 효산 전투(崤之戰, BC 627)의 대승
晉 양공의 치세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즉위 이듬해에 일어난 효산(崤山) 전투입니다.
- 원인: 진(秦)나라 목공이 진(晉)나라의 장례 기간을 틈타 중원의 정(鄭)나라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정나라 기습에 실패한 진(秦)나라 군대는 돌아오는 길에 활국(滑國)이라는 진(晉)나라의 동맹국을 멸망시키고 재물을 약탈했습니다.
- 양공의 결단: 진 양공은 아버지를 잃은 상중(喪中)임에도 불구하고, 상복을 검은색으로 물들여 입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습니다. 진나라의 무례함과 패권 도전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결과: 진 양공은 험준한 효산(崤山) 계곡에 매복해 있다가 귀환하던 진(秦)나라 군대를 기습하여 맹명시(孟明視) 서걸(西乞術), 백을병(白乙丙)를 비롯한 세 명의 장수를 생포하고 진(秦)나라 대군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 의의: 이 전투를 통해 서쪽의 진(秦) 나라는 중원 진출의 꿈이 완전히 꺾였고, 진 양공은 아버지 못지않은 군사적 역량이 있음을 천하 제후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 현명한 내치와 인재 등용
진 양공은 군사적 업적이외에 성품이 유순하고 간언을 잘 들을 줄 아는 현군이었습니다.
- 어머니의 간언과 장수 석방: 효산 전투 직후, 양공의 서모(계모)이자 진(秦)나라 공주였던 문영(文嬴)이 "두 나라의 원한이 깊어질까 두려우니 생포한 진나라 장수들을 돌려보내어 그들의 군주가 직접 처벌하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양공은 이를 받아들여 장수들을 풀어주었습니다. 비록 명장 선진(先軫)이 왕에게 크게 대들며 반대하여 잠시 소동이 있었으나, 양공은 선진의 무례함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충성심을 인정하는 도량을 보였습니다.
- 가문 권력의 균형: 진 문공을 보좌했던 공신 가문들, 특히 조씨(趙氏 - 조돈), 선씨(先氏), 서씨(胥氏) 등의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왕권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유지했습니다.
- 급작스러운 죽음과 사후의 혼란
진 양공은 유능한 군주였으나, 안타깝게도 즉위한 지 단 7년 만인 기원전 621년에 젊은 나이로 급사하게 됩니다.
- 후계 문제: 양공이 죽을 때 그의 아들인 태자 이고(夷臯, 훗날의 진 영공)는 나이가 너무 어렸습니다. 이에 진나라의 실권자였던 대부 조돈(趙盾)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나이가 장성한 양공의 동생(공자 옹 등)을 왕으로 세우려다 마음을 바꾸어 다시 어린 태자를 옹립하는 등 큰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됩니다.
- 진나라의 쇠퇴 조짐: 양공의 사후 즉위한 아들 진 영공은 인품이 포악하고 정치를 돌보지 않는 폭군으로 자라났고, 결국 신하에게 시해당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이로 인해 진 양공의 치세는 진(晉)나라 전성기의 마지막 불꽃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요약
**진 양공(晉襄公)**은 춘추오패인 진 문공의 아들이자 **제25대 군주(재위 BC 628~621)**로, 상중임에도 군사를 일으켜 강력한 라이벌 진(秦)나라를 효산 전투에서 격파하여 아버지가 이룩한 중원 맹주의 지위를 확고히 지켜낸 명군입니다. 그러나 7년 만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진나라는 다시 한번 격동의 왕위 계승 분쟁 궤도로 진입하게 됩니다.
 
 
2026.5.14 주정봉 강의 요약
 

 
【학습】 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
• 동양고전 아카데미 423강 강의자료 요약(202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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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