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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고고학으로 본 임실
고고학으로 본 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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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고고학으로 본 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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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학으로 본 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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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 (7) 백과 가야 (2) 백과 가야포 (1) 고분 (1) 백과 고인돌 (1) 백과 남원성 (1) 백과 대가야 (1) 백과 동진강 (1) 백과 마한 (1) 백과 마한 말무덤 (1) 말무덤 (1) 백제 (1) 백과 봉수 (1) 산성 (1) 백과 상기문 (1) 새만금 (1) 선돌 (1) 백과 선사 시대 (1) 백과 소가야 (1) 백과 양직공도 (1)
▣ 공개 페이지
◈ 최근등록순
2024.01.05
【향토】 • 郭長根, 2007, 「蟾津江流域으로 百濟의 進出過程 硏究」, 『湖南考古學報』 26, 湖南考古學會. • 곽장근, 2008, 「호남 동부지역 산성 및 봉수의 분포양상」, 『영남학』 제13호,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곽장근, 2011, 「전북지역 백제와 가야의 교통로 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3, 한국고대사학회.
19 (+2) |
2024.01.05
【향토】 이상으로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임실의 선사와 고대문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북 임실군은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 산줄기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수계상으로는 섬진강 상류지역에 속한다. 섬진강 본류와 지류를 따라 크고 작은 평야와 구릉지가 발달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2024.01.05
【향토】 삼국시대 때 임실군의 위상을 이해하는 데 산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만경강에서 섬진강유역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슬치 주변에 산성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호남정맥 산줄기가 그다지 험준하지 않아 일찍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 슬치이다.
2024.01.04
Ⅰ. 들어가는 글
【향토】 『삼국사기』에 임실군은 백제의 임실군任實郡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지금도 백제 때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제 때 지명을 바꾸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는 곳은 임실군이 유일하다. 어찌 보면 통일신라 경덕왕 때 전통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꿀 때 본래의 지명을 지키겠다는 임실사람들의 강한 자긍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23 (+6) | 임실군
2024.01.04
Ⅱ. 선사시대 때 거점지역으로 발돋움
【향토】 인류가 불을 처음 이용하고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와 나무나 뼈로 만든 도구를 사용한 시기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99% 이상을 차지한다. 임실군에 사람들이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임실군 신평면 가덕리 하가유적에서 뗀석기와 몸돌, 슴베찌르개, 각추상석기, 나이프형석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024.01.04
Ⅴ. 통일신라와 후백제 고고미술의 보고
【향토】 섬진강유역에 속한 남원은 교통의 중심지와 전략상 요충지로서 이점을 잘 활용하여 줄곧 거점지역을 이루었다. 통일신라 신문왕 5년(685) 처음으로 남원에 소경을 설치하고 여러 주와 군의 민가를 이주시켰으며, 신문왕 11년(691)에는 남원성을 쌓았다. 중국 장안성과 흡사하게 바둑판처럼 정전법이 시행된 남원성이 축성된 것이다.
2024.01.04
Ⅳ. 동진강 하구 가야포와 임실 월평리 산성
【향토】 호남평야를 넉넉하게 적셔주는 강이 동진강東津江이다. 동진강은 내장산 까치봉 까치샘1에서 발원해 서북쪽으로 흘러 전북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와 부안군 동진면 안성리 사이에서 서해로 들어간다. 18세기에 제작된 ‘팔도지도八道地圖’2를 보면 부안 동북쪽에 동진東津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지명에서 강의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2024.01.04
Ⅲ. 삼국시대 백제와 가야문화의 공존
【향토】 삼국시대 때 임실군의 가장 큰 특징은 백제와 가야문화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임실군을 중심으로 한 섬진강유역에서는 가야토기가 일색을 이루지 못하고 백제토기와 섞여 있거나 지역색이 강한 가야토기의 경우도 대가야토기와 소가야토기가 동일 지역에 혼재된 조합상을 보인다.
◈ 조회순
2024.01.05
【향토】 • 郭長根, 2007, 「蟾津江流域으로 百濟의 進出過程 硏究」, 『湖南考古學報』 26, 湖南考古學會. • 곽장근, 2008, 「호남 동부지역 산성 및 봉수의 분포양상」, 『영남학』 제13호,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곽장근, 2011, 「전북지역 백제와 가야의 교통로 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3, 한국고대사학회.
19 (+2) |
2024.01.04
Ⅰ. 들어가는 글
【향토】 『삼국사기』에 임실군은 백제의 임실군任實郡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지금도 백제 때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제 때 지명을 바꾸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는 곳은 임실군이 유일하다. 어찌 보면 통일신라 경덕왕 때 전통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꿀 때 본래의 지명을 지키겠다는 임실사람들의 강한 자긍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23 (+6) | 임실군
2024.01.04
Ⅱ. 선사시대 때 거점지역으로 발돋움
【향토】 인류가 불을 처음 이용하고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와 나무나 뼈로 만든 도구를 사용한 시기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99% 이상을 차지한다. 임실군에 사람들이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임실군 신평면 가덕리 하가유적에서 뗀석기와 몸돌, 슴베찌르개, 각추상석기, 나이프형석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024.01.05
【향토】 삼국시대 때 임실군의 위상을 이해하는 데 산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만경강에서 섬진강유역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슬치 주변에 산성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호남정맥 산줄기가 그다지 험준하지 않아 일찍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 슬치이다.
2024.01.04
Ⅲ. 삼국시대 백제와 가야문화의 공존
【향토】 삼국시대 때 임실군의 가장 큰 특징은 백제와 가야문화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임실군을 중심으로 한 섬진강유역에서는 가야토기가 일색을 이루지 못하고 백제토기와 섞여 있거나 지역색이 강한 가야토기의 경우도 대가야토기와 소가야토기가 동일 지역에 혼재된 조합상을 보인다.
2024.01.04
Ⅳ. 동진강 하구 가야포와 임실 월평리 산성
【향토】 호남평야를 넉넉하게 적셔주는 강이 동진강東津江이다. 동진강은 내장산 까치봉 까치샘1에서 발원해 서북쪽으로 흘러 전북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와 부안군 동진면 안성리 사이에서 서해로 들어간다. 18세기에 제작된 ‘팔도지도八道地圖’2를 보면 부안 동북쪽에 동진東津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지명에서 강의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2024.01.04
Ⅴ. 통일신라와 후백제 고고미술의 보고
【향토】 섬진강유역에 속한 남원은 교통의 중심지와 전략상 요충지로서 이점을 잘 활용하여 줄곧 거점지역을 이루었다. 통일신라 신문왕 5년(685) 처음으로 남원에 소경을 설치하고 여러 주와 군의 민가를 이주시켰으며, 신문왕 11년(691)에는 남원성을 쌓았다. 중국 장안성과 흡사하게 바둑판처럼 정전법이 시행된 남원성이 축성된 것이다.
2024.01.05
【향토】 이상으로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임실의 선사와 고대문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북 임실군은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 산줄기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수계상으로는 섬진강 상류지역에 속한다. 섬진강 본류와 지류를 따라 크고 작은 평야와 구릉지가 발달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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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