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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무신 이방익의 《표해가》, 閩浙구간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항해하다 돌풍으로 돛이 사라져 16일을 표류한 이방익 일행 8명은 펑후제도에서 머물다 타이완 본섬으로 건너갔다. 펑후 항에서 배를 타고 타이완 타이난(台南) 대원(台遠) 항에 입도해 루얼먼 천후궁(鹿耳門天后宮)에 첫발을 디뎠다. 이방익은 당시를 회상하기를 “화각(畵閣)이 물 가운데 솟았는데 종소리 북소리가 밤새 들리고 등촉을 셋씩 넷씩 달아놓았는데, 사월초파일의 관등인들 이렇게 화려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재화의 풍족함과 인물의 번성함을 보는 것은 처음이며,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들의 호사함이 비길 데 없었다.”라고 諺文日記에 적었다.
타이난(台南) 루얼먼 천후궁(鹿耳門天后宮)(사진:台南旅遊網)
이방익 일행은 1796년 10월 28일 천후궁(天后宮)에 도착해 심문을 받았는데, 글을 아는 이가 이방익뿐이었다. 이때 병부의 관리뿐만 아니라 상급 기관 관리도 참석했는데, 이방익은 심문하는 관리에게 당당하게 漢文으로 적어 筆談하며 조선왕조에서의 무신 관직을 털어놓고 배가 표류하게 된 상황을 설명했다. 古代 녹이문(鹿耳门) 마조묘(妈祖庙)는 명나라 영력 15년(1661) 정성공이 초창(草创)하고 청나라 강희 58년(1719년)에 증축했다. 양영(杨英))의 《종정실록(从征实录)》과 강일승(江日昇)의 《대만외기(台湾外记)》에 따르면, 영력(永历) 15년 4월 2일(1661년 4월 30일)에 정성공이 녹이문 外海에서 수심이 얕아 큰 배가 入港할 수 없었다. 이에 정성공은 작은 배로 갈아타고 북선(北线, 汕)미서(尾屿)에 향안(香案)을 차려 기도를 올리자 潮水가 크게 불어나 정성공은 대강(台江) 내해(内海)로 쉽게 들어갈 수가 있었다.
루얼먼 천후궁(鹿耳門天后宮)사원 전시 배(사진:위키백과)
航海의 여신(女神) 마조(媽祖)는 중국 대륙 동남부 연해안에서 크게 尊崇되는 해신(海神)이다. 마조는 송대(宋代)에 福建 지역에서 神話로 시작되어 다른 전통 종교들과 교류하며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다. 마조 여신은 永遠한 生命力을 상징하며 생산, 경계와 소통, 정화, 치유, 재생의 이미지를 가졌다. 루얼먼 톈허우궁은 바다의 여신 마조와 정성공을 모시는 사원으로 매년 성대하게 타이장 영신제(台江迎神祭)를 개최한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 표류민들을 육로를 통해 본국으로 송환하게 되어 있어 절차를 기다리느라 이방익 일행은 타이난(台南)에서 50일간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관리들은 이방익 일행을 바닷길로 호송해 金門島, 샤먼도(廈門島) 바다를 지나 10여 일 항해하여 1797년 丁巳年 정월 초 4일에 廈門府로 호송하였다. 문순득의 작은 아버지 문호겸(文好謙)은 이방익보다 7년 후에 표류했는데, 琉球의 상선(商船)을 타고 하문부(廈門府)를 방문했지만, 해로로 이동했다. 중국 사람들은 廈門府부터 다음 구간을 민절(閩浙) 구간이라고 부른다.
同安古城墻(사진:구글지도)
이방익은 당시 상황을 “정사년 정월 초4일 하문부에 이르렀다. 큰 산이 있고, 산 앞에 大刹이 있으니 이름은 ‘향불사’라 한다. 절 앞에 반석이 있고 그 아래 돌을 파 암자를 지었으며, … 반석 위에는 큰 소나무로 된 건물이 있으니 이는 朱子書院이다. 朱子(朱熹, 1130~1200)의 화상(畫像)을 모셨는데… 使者가 인도하여 자양서원(紫陽書院)에 들어가니, 큰 문밖의 좌우에는 귀화(貴花)와 녹초(綠草)를 난만히 심고, 현판은 ‘자양서원’ 네 글자를 금으로 메웠다. 동편 작은 문으로 들어가서 보니, 좌우의 익랑(翼廊)과 정전(正殿)이 우리나라의 성균관(成均館)과 같고 화려함은 형용치 못할 정도였다.”라고 기록했다.
五代 十國 민국(閩國) 917년 지도(사진:위키백과)
필자는 2004년 10월 중순 朱子의 유적지를 탐방하러 상하이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에 입국하여 10여 일 동안 여러 지방 도시를 순방했다. 우이산(武夷山)에서 2일을 묵고 나서 관광버스를 타고 종일 달려 南平市를 거쳐 큰 강 沙溪 위에 있는 민북대반점(閩北大飯店)에 도착했다. 閩 호텔 주소는 中國福建南平市濱江中路 31號이다. 호텔에 들어서면서 크게 적힌 민(閩) 한자를 읽지 못해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이 땅이 천 백 년 전의 五代十國의 하나인 민국(閩國, 909~945)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남평에서 푸저우(復州) 가는 길은 생각보다 너무 무척 멀었다. 復州에 늦게 도착해 자고 아침 일찍 시가지를 구경하고 비행장으로 향했다.
福州长乐国际机场(사진:궁인창)
2004년에 11월 1일 오전 8시 5분 푸저우 창러국제공항(福州长乐国际机场)에서 샤먼항공 MF8437편을 타고 1시간 30분 만에 샤먼 가오치국제공항(厦门高崎国际机场)에 내렸다. 가이드에게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느냐?”라고 질문하니, “도로 상태가 안 좋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할 수 없이 비행기를 이용한다.”라고 알려주었다. 덕분에 비행기를 타고 厦门 주변 산맥과 바다의 경관을 하늘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샤먼(厦門)시는 아열대 해양성 계절풍 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약 20°C로 아주 온화하다. 우기인 4월과 9월에는 강수량이 많아 산과 공원의 녹지가 더욱 푸르르다. 이 도시는 ‘바다 위의 정원’이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샤먼 시에서 가장 높은 운정산(云顶山)은 해발 1,175.2m로 정상에 구름이 자주 머문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이 산은 고산 마을과 계단식 논이 유명하며 두견화(杜鵑花, 진달래, 철쭉)가 정말 아름답다.
운정산(云顶山) 풍광(사진:廈門市觀光協會)
거제도의 역사를 집대성한 고영화 선생은 <거제도의 두견화(杜鵑花), 진달래> 글에서 “진달래는 한시에서 두견화라고 한다. 이는 중국 전설에 기인한 것이다. 촉나라의 마지막 황제 두우(杜宇)가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 두견이는 귀촉귀촉(歸蜀)하고 구슬프게 우는데, 이는 촉나라로 돌아가고픈 황제의 넋이 담겨 있다. 피를 토할 때까지 우는, 두견새의 피가 꽃으로 피어난 것이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꽃은 망제(亡帝)의 원한(怨恨)인 것이다. 우리나라 전설에 계모의 구박에 못 이겨 죽은 어린 여자아이의 혼이 꽃으로 피어났다.”라고 적었다.
云顶山 두견화(杜鵑花)(사진:廈門市觀光協會)
厦門의 北辰山과 天竺山, 五老峰도 중요한 명소이다. 우위안만 습지공원(五缘湾湿地公园)은 도시의 녹색 폐로 불린다.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201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구랑위 섬(鼓浪屿, Kulangsu)으로 본 섬에서 페리 배를 타고 5분 정도 들어가는데 유럽풍 건축물이 일품이고 鼓浪洞天과 일광암(日光岩) 바위가 장관이다. 샤먼은 아편전쟁 후 체결된 난징조약으로 샤먼 항을 개항해 대영제국, 미국, 스페인 영사관이 들어섰다. 고랑서 출신 후유이(胡友义, 1936~2013)가 1999년부터 만든 구랑위 오르간 박물관(鼓浪屿风琴博物馆)은 风琴을 주제로 한 특별박물관으로 58개의 오르간과 전자 오르간 등 진품을 소장했다. 필자는 빨간 지붕의 구관만 구경했는데, 최근 신관을 신축해 재즈 오르간을 추가해 소장품을 400대로 늘렸다. 23km의 山海健康步道는 도시와 자연을 연결하는 멋진 산책로이다. 샤먼시는 유엔 해비타트상(UN Habitat Award)과 국제정원도시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샤먼(廈門) 원당호(筼筜湖) 전경(사진:黃嶸)
무신 이방익 일행의 호송 코스를 문헌을 조사하며 추적했다. 청나라 관원들이 호송한 배는 샤먼섬(廈門島)에 들리지 않고 강을 따라 올라와 西溪을 따라 내륙까지 들어와 大學山이 보이는 同安縣 古城 입구 언덕에 도착해 범천선사(梵天禪寺)와 朱子書院을 방문했다. 범천선사는 푸젠성 샤먼시 퉁안구(同安区) 다룬산(大轮山)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이 절은 수나라 개황 원년(581년)에 건설을 시작해 흥교사(興敎寺)라 했다. 송 희녕(熙寧) 2년(1069)에 72개 사찰을 통합하며 황제가 범천선사라 명명했다.
범천선사(梵天禅寺)(사진:廈門市 불교협회)
梵天禅寺는 南普陀寺보다 역사가 300여 년이나 더 오래되고 復州 鼓山 용천사(涌泉寺), 푸톈(莆田) 광화사(广化寺), 취안저우(泉州) 카이위안사(开元寺), 장저우(漳州) 남산사(南山寺)와 함께 푸젠 연안의 五大 사찰이다. 사찰은 명대 洪武 연간에 재건된 후, 1994년에 再建했다.
범천선사(梵天禅寺)(사진:廈門市 불교협회)
범천선사는 香氣가 旺盛하고 신자가 많아 괴성문화제(魁星文化节) 등의 행사가 개최된다. 쿠이싱(魁星, 괴성, Kui Xing)에게 절(拜)하는 것은 중국 전통 민간 제사(祭祀) 행사로 음력 7월 초 북두칠성 일곱 괴성 誕生日에 거행된다. 魁星은 文嬰夫子, 大嬰夫子, 大嬰星君, 녹색 옷 황제와 군왕(绿衣帝君), 쿠이싱예(嬰星襖)로도 불린다. 중국 신화나 전설에 魁星은 문학의 興亡盛衰를 관장하는 신으로 존경받는다. 쿠이싱은 유교 학자들에게 최고의 지위를 가지며 수호신이다. 魁星은 북두칠성의 현지주(玄支酒), 북두칠성의 첫 번째부터 네 번째 별로 이 네 별은 쿠이(玄)이고, 나머지 세 별은 소(素)이다. 전설에 따르면 魁星은 문창제(文昌帝) 외에도 문학의 신으로 여겨진다. 문곡성(文曲星)은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을 가리키며, 중국 신화에서는 문학과 학문, 예술적 재능을 주관하는 별로 여겨져 문필력을 가진 재능이 뛰어난 인물들이 이 별에서 태어났거나, 이 별의 영향을 받았다고 믿었다. 문곡성은 칠성군의 일원으로 인간의 福과 禍를 주관하는 護法神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괴성(魁星)文化节(사진:위키백과)
사찰의 축제는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인 괴성에게 올린다. 괴성주문사(魁星主文事)는 제사 의식은 직녀 배향 활동과 나란히 향안을 설치한다. 제사를 지낼 때 붓을 손에 든 파란색 종이로 만든 魁星纸像을 제작하며, 제물은 뿔 달린 숫양 머리를 올린다. 축제 참가자들은 과거 시험의 한 유형인 공명 짓기(取功名) 게임을 하며, 용안, 헤이즐넛 등 말린 과일을 던져 과거 시험에서 3등 안에 드는 것을 흉내 낸다. 남자가 魁星을 숭배하고 여자가 직녀를 숭배한다. 두 집단은 안뜰에서 공존하지만, 서로 섞이지는 않는다. 이 풍습은 청나라 복건 동부의 과거 시험 문화에서 유래했다. 오래된 풍습의 기원은 淸代 민동(闽东) 문화와 관련이 있으며, 정대추(郑大枢)의 《竹枝词·七夕》과 천기(钱琦)의 《죽지사(竹枝词)·배문창(拜文昌)》에 민속이 기록되어 있다.
梵天禪寺는 주희(朱熹)와 음악가이며 예술가인 홍일법사(弘一法师, 1880~1942) 등 역사적 명인들이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중화민국 4대 고승으로 홍일 대사는 1918년 항저우 호파오사(胡坡寺)에서 출가하여 중국에서 율종(律宗)을 되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남산율종의 11번째 조사이다. 교리에 밝은 太虛(1890~1947) 대사는 항일전쟁이 본격화되자, 전국 승려에게 “몸을 던져 국가와 인민을 구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불교의 사회참여, 거사불교, 실천불교, 개혁불교를 주창했다. 印光(1861~1940) 대사는 염불삼매에 의지하여 淨土信仰을 주창하며 자신을 ‘늘 부끄러워하는 승려’란 뜻의 상참괴승(常慚愧僧)이라고 하였다. 선정을 중요시하는 虛雲(1840~1959)도 그중 한 명이다.
生活禪 실천 虛雲法师(사진:위키백과)
虛雲은 福州의 고산 용천사(涌泉寺)로 출가하여 수행자로서 깊은 산속에서 험난한 생활을 시작하여 동굴에서 6년이나 혼자 수행했다. 그는 나무 열매를 먹으며 생활했지만, 나중에는 生活禪을 주창하며 대중 속으로 들어와 참선과 수행을 했다. 선사는 전국 각지의 폐허 사찰을 직접 나서 중수하고 지역의 불교를 일으켰다. 선사는 여러 곳에 불교협회 등의 조직을 만들고 불교인들이 스스로 佛子임을 자각하고 현실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깨달음의 日常化을 가르친 선사는 43세에 삼보일배하며 오대산을 참배하고 50세에 ‘끓는 물’ 한 방울로 깨달음을 얻었다. 禪師는 1개의 삿갓과 걸망을 지녔다. 江西省 운거산(云居山) 真如寺에서 입적할 때도 낡은 초가집에 머물며 지혜와 혼란 속에서의 인내를 상징하는 “계율(戒律)” 딱 한 마디만 남기고 120歲로 열반했다.
매산사 백옥 불상(사진:廈門市 불교협회)
梵天禪寺 인근에는 同安 三大古寺로 유명한 隨나라 때 창건된 매산사((梅山寺)가 있다. 이 절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백옥 불상 석가모니 불상이 正殿에 모셔졌다. 주지 慈明法师가 青海에서 수행하던 중 자신이 산에서 玉佛을 지고 달리는 꿈을 꾸고 옥불을 꼭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慈明 주지는 2004년 미얀마에 옥을 찾으러 갔다가 시골 노인의 안내로 천년 된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300톤 옥석을 감싸고 있는 고목 뿌리를 발견했다. 梅山寺에 모신 옥불 불상은 높이 9m에 연꽃 좌대, 불상, 광배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고 백옥 불상은 높이 5.65m, 너비 4m, 두께 3m, 무게 65톤이다. 廈門市 주요 관광지는 대중교통이 편리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항해하다 돌풍으로 돛이 사라졌지만, 노련한 사공(沙工)의 기지(奇智)로 16일을 표류해 살아남은 이방익 일행은 燕京으로 호송되며 중국 남부의 다양한 민속을 구경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