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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 33】홍타이지, 명나라와 전쟁 승리 후 링하이시 외곽 산 이름 구화산 명명...9개 연꽃 봉우리 연상
遼西 구화산 풍경구
랴오닝 서부 링하이시(凌海市) 외곽에 있는 구화산(九華山)은 요서회랑의 입구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대릉하성 명금전투 당시 후금의 홍타이지(1592~1643)가 주둔했던 곳이다.
【열하일기 33】홍타이지, 명나라와 전쟁 승리 후 링하이시 외곽 산 이름 구화산 명명...9개 연꽃 봉우리 연상
- 遼西 구화산 풍경구
 
 
랴오닝 서부 링하이시(凌海市) 외곽에 있는 구화산(九華山)은 요서회랑의 입구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대릉하성 명금전투 당시 후금의 홍타이지(1592~1643)가 주둔했던 곳이다. 후금의 한(汗)인 홍타이지는 명나라 장수 조대수가 이끄는 병력이 보병 7,000명, 마병 7,000명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1631년 7월 초 20,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대릉하성을 에워싸고 명군의 보급을 철저히 차단했다.
 
또한, 외번 몽골군과 후금의 병력을 발해 해안에 배치해 명나라 지원군의 4차례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도입한 대포를 이용해 난공불락 대릉하성을 공격했다. 조대수는 11월 21일 식량이 고갈되고 아사자가 속출하자, 항복을 결정하고 홍타이지에게 투항했다. 홍타이지는 조대수의 아들을 볼모로 삼고 조대수를 풀어주었다. 이 전투는 홍타이지가 1636년 대청 황제로 즉위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전투였다.
 
홍타이지가 명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산 이름을 구화산이라고 한 것은, 그 지역의 산세가 아홉 개의 연꽃 봉우리처럼 생겼고, 자신의 권력이 더 굳건해지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는 전쟁에서 죽은 명나라 군사들의 원혼을 달래고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종교적인 의미를 담아 구화산으로 정했다.
 
홍타이지는 아홉 개의 연꽃 봉우리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통치력이 하늘의 뜻과 같다는 사실을 알리고 많은 이민족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내세웠다.
 
 
【출전】1631年,皇太极取得大凌河城之战的胜利后,与明军将领祖大寿在这里举行了受降仪式,皇太极命名此山为九华山。
 
 
▲ 링하이시(凌海市) 遼西 구화산(九華山)(사진:Trip.com)
 
 
遼西 구화산 풍경구는 면적이 3.5㎢에 달하며 3만 년의 문화유산과 6천 년의 인류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 유적, 매혹적인 전설이 있다. 만주족 출신 기업가 장잔위(张占宇, 1954~)는 랴오닝성 군구 독립 1사단에서 전역하여 경제관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진저우농전전력설치회사 총경리, 링하이시 농전국 국장, 링하이전력그룹 회장, 전국인민대표대회 랴오닝 지역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고향을 위하여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발상으로 뛰어난 자연경관, 문화유산, 우거진 삼림, 기암괴석을 바탕으로 하여 2010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2016년에 구화산 공원을 완성하고 무료로 개방하였다. 풍경구에는 향기로운 온천과 현대적인 휴양 시설을 겸비하였다.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은 구화산(九華山, 九华山, Jǐuhuá Shān, 1,342m)하면 대부분 중국 안후이성 츠저우 시(池州市) 칭양 현(青阳县)에 있는 불교 4대 성지를 떠올린다. 이곳은 신라 왕자 金喬覺(697~794)이 719년 이곳에 와서 수행하고 794년 99세의 나이에 열반에 들어 제자들이 지장도량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佛子들이 구화산을 참배하고 불교신문 등에 탐방기를 기고했다. 제주도 삼소굴 주지 相民(윤봉택)은 2007년 4월에 충주 석종사 혜국 선사 일행과 함께 구화산을 참배하고 개인 블로그에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古拜經臺는 김교각이 수행하셨던 성지이다.
 
 
▲ 구화산(九華山) 古拜經臺(사진:위키백과)
 
 
전설에 의하면 신라 왕자 김교각이 처음 중국에 도착해 오대산을 찾아갔다. 오대산에 오르자 산이 젊은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갑자기 기우뚱하면서 땅이 한 자나 푹하고 꺼져버렸다. 이에 자기가 머물 곳이 아님을 깨닫고 삽살개 ‘선청’을 데리고 다른 산으로 유랑했다. 가을날 구화산의 수려(秀麗)한 산수(山水)를 보고 매료되어 산에 草堂을 짓고 수행을 시작했다. 초당에서 수련하던 젊은 수행자는 목이 마르면 산간 벽계수를 마시고 배가 고프면 산나물과 백토(白土, 觀音土)를 먹으며 굶주림을 달랬다. 수행자의 덕행이 마을에 전해져 구화산 주변 주민들이 불법의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왔다. 이때 구화산에 사는 산주(山主) 민공(閔公)의 아들이 매일 수행자를 찾아와 불법의 가르침을 받고 집에 돌아갔다. 하루는 민공이 수행자가 나이는 젊지만, 득도한 고승이라는 말을 아들로부터 전해 듣고는 하도 궁금하여 직접 수행자를 찾아갔다.
 
민공은 수행자가 산간 벽계수로 목을 축이고 백토(먹을 수 있는 흙)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목격하고는 수행자를 집으로 모셔 정성을 다해 공양했다. 식사가 끝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민공은 수행자에게 부처님 법을 펴서 인근의 모든 백성이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며 수행자에게 특별한 선물을 드리겠다고 말하고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재촉해서 물었다. 이때 수행자는 자신의 몸에 걸쳤던 가사(袈裟)를 가만히 벗어 이 가사로 덮을 만한 작은 땅을 주면, 절을 짓고 불법을 더 널리 펴겠다고 민공에게 공손하게 합장하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민공은 수행자가 보여준 가사가 아주 작은 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가사로 덮을 만한 땅이 크면 얼마만큼 클까 생각하고 바로 승낙했다. 수행자는 민공에게 인사를 하고 마당에 나가 몸에 걸쳤던 가사를, 허공에 올리며 염불 정근을 하였다.
 
 
▲ 구자가사(九子袈裟)(사진:신화망)
 
 
그러자, 가사는 마치 날개가 날린 커다란 학처럼 높이 날아서 하늘을 한 바퀴 돌더니 어느새 훨훨 구화산 위로 날아 올라가 가사가 커지면서 넓은 구화산을 몽땅 덮어버렸다. 이런 모습을 본 민공과 마을 사람들은 그만 놀래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땅에 주저앉았다. 놀라운 기적을 본 것이다. 부처님이 득도하고 니서 마을에 내려와 교화할 때 공중 부양하여 온 마을을 날아다녔다. 이때 이 광경을 직접 본 브라만 사제들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다.
 
산주(山主) 민공은 잠시 넋이 나갔다가 수행자의 발밑에 엎으려 절을 했다. 민공은 젊은 수행자의 높은 도력과 덕행에 감복하여 자기가 말한 것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고 수행자에게 구화산 땅을 모두 시주했다. 그리고 자기 가산을 절에 시주하고 아들과 함께 수행자 밑에서 부처님의 법을 공부했다. 민공이 젊은 수행자에게 귀의했다는 소문이 먼 곳까지 퍼져나가자, 그때부터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구화산의 향불은 끊일 새가 없었으며, 날마다 수행자를 찾는 선남선녀로, 구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초만원을 이루었다.
 
문헌에 따르면 수행자에게 치성을 드리고 향을 올리는 선남선녀들이 하루에 천명을 넘었다고 한다. 과거 한나라에서는 링양산(陵陽山)으로, 남조 양진 때는 구자산(九子山)으로 불렀다, 동진(東晉) 때 401년에 천축국 승려 배도(杯渡)가 암자(祖寺)를 지었지만, 워낙 궁벽한 산골이고 승려가 적어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당나라 때 756년에 개축된 화성사(化城寺)가 가장 유래가 깊다. 구자산은 산봉우리가 99개이고 둘레가 백 리에 달하고 18경의 뛰어난 경관을 지녀 시인 묵객들이 좋아했다.
 
당나라 시성(詩聖) 이태백(701~762)은 연(蓮)을 좋아해 호가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그는 天寶 13년(754) 가을에 친구들과 황산과 구자산을 유람하다 이곳에 들려 많은 시를 지었다. 「九華山聯句」, 「妙有分二气,灵山开九华」 이 시는 “태초에 신묘함이 음과 양으로 나뉘고, 그렇게 나타난 영험한 산이 바로 구화산이네!”이다.
 
이백의 지은 시는 천 개가 넘는데, 그중에 「望九華 贈靑陽韋仲堪」하는 시가 있다.
 
 
昔在九江上 遙望九華峰。
天河挂綠水 秀出九芙蓉。
我欲一揮手 誰人可相從
君爲東道主 于此臥云松。
 
지난날 배를 타고 장강(九江) 배 위에서
멀리 보이는 그리운 구화산을 바라보았네
하늘의 강이 푸른 물처럼 걸려 있고,
아홉 봉우리가 부용처럼 빼어나게 보였네
 
나도 모르게 손짓해 불러 봤지만,
아무도 상대하여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없네
동도 주인 자네가 나를 불렀으니
이제 구름 덮인 솔숲에 누워볼 수 있겠네!
 
 
이 시는 이 태백이 장강에서 아홉 산봉을 바라보니 푸른 물이 천하에 걸려 있고 산봉우리가 연꽃이 피어있는 것 같아 시를 적어 청양 현감 위중감에게 보냈다. 이후 구자산이 구화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 99m 지장보살(사진:위키백과)
 
 
신라인 김교각(金喬覺, 697~794)은 법명이 석지장(釋地藏)으로 24세에 당나라에서 출가하여 교각(喬覺)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후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화엄경을 설파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화신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행적은 813년 중국 당나라 비경관(費冠卿)이 쓴 구화산화성기(九華山化城寺記), 이용(李庸)이 편찬한 구화산지(九華山志)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같은 시대를 살고 고승 입적 후 19년 뒤에 쓰인 당나라 비경관(費冠卿)의 저서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비경관은 구화산이 있는 지주 청양현 사람으로 학문이 뛰어났으며, 구화산 소미봉에 은거한 인물이다.
 
김교각은 794년 99세에 열반에 들었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시신을 석함에 넣고 3년 후에도 썩지 않았으면 등신불로 만들라고 말하였다. 고승이 입적하자 산이 울고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안후이성은 비가 많고 고온 다습하여 승려들은 스승의 유언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3년 뒤 항아리를 열어보니 지장보살은 열반 시 모습으로 앉아 등신불이 되어 있었다.
 
김교각의 75년 수행과 도력은 죽은 후에도 기적으로 이어져 내려와 현재 20구의 등신불이 탄생했다. 구화산 쌍계사의 大興和尙(朱茂和, 1894~1985)이 91세에 이르러 “저는 백세(百岁)의 성인이기에 화장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1985년 항아리에 안치하고 탑에 봉안해 3년 6개월이 지나 항아리를 열자 고요한 등신불 모습이 발견되어 중국불교협회의 승인을 얻어 금으로 안치하여 등신불로 모셨다. 구화산 관광국은 99세에 열반에 든 지장보살을 기념하여 99m 동상을 구화산 풍경구 입구에 건립했다.
 
 
▲ 링하이시(凌海市) 九華山공원 전경(사진:凌海市)
 
 
링하이시는 대릉하성 명금전투 명소에 구화산 풍경구를 건설하는 계획에 동의하여 기획단은 구화산 자연경관, 인문 경관, 온천수 도시, 대형 놀이공원의 4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현대적인 오락 시설이 자연과 어우러져 온 가족이 함께 즐기게 복합 관광단지로 개발했다.
 
 
▲ 링하이시(凌海市) 九華山공원 전경(사진:Trip.com)
 
 
구화산 공원에는 베이징의 자금성, 원단, 포탈라궁, 산하이관 등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 건축물과 온천수 도시, 王海寺, 사리탑, 천 톤 관음상, 대왕각, 영화 기지, 성수호, 대형 놀이공원 등이 있다. 음악 분수에서 화려한 분수 쇼가 펼쳐진다. 관광객들은 티베트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고 산책한다. 맛있는 먹거리를 개발해 설탕에 절인 산사나무, 구운 소시지가 인기가 많다.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며 열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테마 관광지가 일품이다.
 
 
▲ 九華山공원 전경(사진:凌海市)
 
 
구화산 온천수는 pH는 중성으로 지하 2,100m에서 솟아나 스트론튬, 칼륨, 나트륨, 칼슘, 마그네슘 등 52가지 미네랄 원소가 풍부하다. 서부 랴오닝성의 5성급 Linghai Garden Hot Spring Hotel과 Liaoxi Jiuhuashan Hot Spring Water City는 최첨단 장비와 첨단 장비를 갖추어 케이터링, 숙박, 레저 및 엔터테인먼트, 국제회의 및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 九華山공원(사진:Trip.com)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음력 7월 15일(양력 8월 14일) 北鎭 新廣寧에서 23일 山海關에 이르는 9일간의 562리 여정 기록을 《열하일기》〈일신수필(馹迅隨筆)〉에 남겼다. 신현근 대표가 창안한 다빈치지식지도에서 〈일신수필〉 원문을 읽으며 ‘일신(馹迅)’이 ‘말을 타고 가면서 빠르게 쓴 글’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연암은 공자를 빗대어 공간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말하며 청나라에서 본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를 낱낱이 이야기했다. 연암은 길에서 들은 것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전하기만 하는 것은 비루하다고 보았다. 비루하다는 뜻을 알지 못해 문헌을 조사하니 ‘구이지학(口耳之學)’은 《순자》〈권학〉 편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연암은 “본 것을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비판했다.
 
버스가 山海關을 향해 달렸다. 해가 넘어가며 펼쳐지는 들판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버스 계단에 기대어 2014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이승수 교수가 한국역사민속학회에 기고한 〈연행로 중 廣寧-山海關 구간의 노정 재구-百戰 벌판의 횡단과 역사 변동의 시각체험-〉을 읽었다. 이 교수는 “馹汛은 이 구간에 바둑판의 바둑알처럼 포진되어 있던 역참과 城堡를 뜻한다. ‘馹汛隨筆’은 수많은 성 들 사이를 지나며 느낀 대로 손 가는 대로 쓴 글이란 뜻이다.”라고 하였다. 논문을 통해 이번 답사에서 미처 방문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路臺, 三臺子墩臺, 성터, 격전지, 역대 조선 연행사의 숙박지를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요동지역의 설치된 대(臺)를 조사한 중국 유겸(劉謙) 교수는 《傳烽系統的設施及考察》에서 대는 1,700기가 넘었다고 했다.
 
다빈치지식지도의 〈일신수필〉 원문을 읽으며 한자를 번역했다.
 
“오직 구전과 청각에만 의존하는 자들은 학문 배우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감정과 이해력이 아직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성인이 태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았다고 해도 내 마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이 사방을 둘러보셨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환상으로 여길 것입니다. 서양인들이 거대한 배를 타고 지구 너머로 항해했다고 해도 나는 터무니없다고 매도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장엄함에 대해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아아! 성인들은 240년 동안 글을 쓰고 그것을 춘추(春秋)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240년 동안 국가의 의례(禮, 樂)와 전쟁과 정치, 외교 등 國事의 일은 마치 꽃이 피고 나무가 쓰러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아! 지금 나는 이 글을 급하게 쓰는데, 한 번의 먹물 자국은 그저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한순간, 한 번의 숨결이 과거이자 한 숨결 사이에 작은 과거와 작은 현재가 형성되었습니다. 과거와 현재는 큰 순간이고 큰 숨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에 이름을 알리고 명성을 떨치려 하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언젠가 묘향산에 올라 상원암(上元庵)에 머물렀는데, 달빛은 밤새도록 낮처럼 밝았다. 창문을 열고 동쪽을 바라보니 절 앞에는 하얀 안개가 자욱했고, 그 위로 비치는 달빛이 마치 은빛 바다(銀海) 같았다. 바다 밑에서 코(鼾鼻)를 심하게 고는 것처럼 큰 소리가 들리는데, 승려들은 서로 마주 보며 “저승에 큰 뇌우가 온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 묘향산을 떠나 안주(安州)에 도착했고 전날 밤, 정말 폭우와 번개가 몰아쳤는데 평지에 물이 자그마치 30cm까지 차올라 사람들의 집을 휩쓸어 갔다. 나는 고삐를 쥐고 감격에 차 말하기를 “어젯밤에는 구름과 비를 피해 밝은 달을 품에 안고 잤네!.......“
 
소문에만 의존하는 자는 배우기에 합당하지 않은데, 감정과 이해력이 아직 온전히 파악되지 않은 자는 더욱 그렇다. 성인이 태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았다고 해도 내 입이 없으면 마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이 사방을 둘러보셨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환상으로 치부할 것이다. 서양인들이 거대한 배를 타고 지구 너머로 항해했다고 해도 나는 터무니없다고 매도할 것이다. 천지의 장엄함에 대해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아아! 성인은 240년 동안 글을 쓰고 그것을 춘추(春秋)라고 이름 붙였다. 이 240년 동안 옥, 비단, 전쟁의 일은 꽃이 피고 나무가 쓰러지는 것에 불과했다. 아아! 지금 나는 글을 쓰는데, 한 번의 먹으로, 한 순간, 한 순간, 한 번의 숨결로 나는 과거와 현재의 축소판이 되어버렸다.
 
 
【원문】
徒憑口耳者 不足與語學問也 况平生情量之所未到乎 言聖人登泰山而小天下 則心不然而口應之 言佛視十方世界 則斥爲幻妄 言泰西人乘巨舶 遶出地球之外 叱爲恠誕 吾誰與語天地之大觀哉 噫 聖人筆削二百四十年之間 而名之曰春秋 是二百四十年之頃 玉帛兵車之事 直一花開木落耳 嗚呼 吾今疾書至此 而一墨之頃 不過瞬息 一瞬一息之頃 奄成小古小今 則一古一今 亦可謂大瞬大息矣 乃欲立名立事於其間 豈不哀哉 余嘗登妙香山 宿上元庵 盡夜月明如晝 拓窓東望 庵前白霧漫漫 上承月光 如水銀海 海底殷殷有聲如鼾鼻 寺僧相語曰 下界方大雷雨矣 旣數日出山 至安州 前夜果暴雨震電 平地水行一丈 漂民廬舍 余攬轡慨然曰 曩夜吾在雲雨之外 抱明月而宿矣 妙香之於泰山 纔㟝嶁耳 其高下異界如此 而况聖人之觀天下哉 彼雪山苦行者 非能逆覩於孔門之三黜 伯魚之早沒 魯衛之削迹 而爲此出世也 誠以地水風火 轉眼都空 此可寒心 彼又謂聖人與佛氏之觀 猶未離地 則按球步天 捫星而行 自以其觀勝於二氏 然異方學語 白頭習文 以圖不朽者 何也 葢以耳聞目見而屬之過境 境過而不已 則昔之所憑以爲學問者 亦無所取徵 故强爲著書 欲人之必信見吾儒闢異之論 則綴拾緖餘 强效斥佛 悅佛氏堂獄之說 則哺啜糟粕 缺幾字 故耳 今吾此行 缺。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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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 11:54)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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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