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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 18】과거 조선 사신들 걸었던 길 그대로, 흥성고성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시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흥성고성이 있다. 이 성은 조선 사신이 남긴 자료가 많다. 성벽의 높이는 8.8m이고, 길이가 3.2km이다. 연암 일행은 고성 밖에서 자고 7월 19일 을미일에 성안에 들어와 조씨 패방을 보았다.
【열하일기 18】과거 조선 사신들 걸었던 길 그대로, 흥성고성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시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흥성고성이 있다. 이 성은 조선 사신이 남긴 자료가 많다. 성벽의 높이는 8.8m이고, 길이가 3.2km이다. 연암 일행은 고성 밖에서 자고 7월 19일 을미일에 성안에 들어와 조씨 패방을 보았다.
 
 
▲ 최성미 전 임실문화원장(사진:궁인창)
 
 
최성미 전 임실문화원 원장과 함께 연휘문 길을 걸어가며 연암이 걸었던 길을 회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열하일기》 답사 대원들은 과거 사신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남문을 보면서 누각이 아름다워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 흥성고성 연휘문(사진;궁인창)
 
 
흥성고성 남문을 지나 바쁘게 걸어가는데 놀랍게 길 중앙에 조벽(趙壁)이 있었다. 조벽은 고성의 일부로 고대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다. 조벽은 통상적으로 집안의 장식과 시야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정교한 조각과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중국 여행을 다니면서 집 안에 있는 아름다운 조벽을 보았지만, 성안 마을 한복판에 따로 있는 조벽은 처음 보았다. 조벽은 고대 도시의 풍모를 보여주는 동시에 고대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의 결정체로 벽에 있는 문양과 무늬는 깊은 문화적 내포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어 고성의 정취를 느끼고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 조벽(趙壁)(사진:궁인창)
 
 
조벽 앞에는 결혼식을 앞둔 커플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 다가가서 “결혼을 축하합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신부가 환하게 웃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진사는 멋진 드레스 복장을 갖춘 남녀에게 여러 가지 동작을 연달아 주문하였다.
 
 
▲ 장군부(사진:궁인창)
 
 
조벽 뒤에 장군부가 있었다. 장군부로 알려진 고가주택(郜家住宅)은 1926년에 건설되었다. 이 집은 옛 동북 3성 진위군 제3.4방면군 중장 참모장 고여렴(郜汝廉, 1875~1961)의 옛 집이다. 고여렴은 북양육군 무비학당을 졸업하고 일찍이 군에 입대해 장학량 장군의 부하로 동북 3성 진위군 제3, 4방면군 중장 참모장, 동북군 제11사단 사단장 등을 역임했다. 장군은 1928년 군에서 예편한 후 이곳에 정착해 빈영여자중학교를 설립했다. 일본 관리가 그를 찾아와 만주국(滿洲國) 고위직을 맡으라고 제안했으나 응대하지 않았다. 1955년 랴오닝성 정부에 의해 참의실 참사로 임명되었다. 1956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그를 접견하면서 그가 일본 침략자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은거하며 민족적 기개를 지켜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1961년 사망하여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 묘지(北京八宝山革命公墓)에 안장되었다. 장군부는 2003년도부터 관광지로 개방되었다.
 
 
▲ 흥성문묘(사진:궁인창)
 
 
장군부를 지나니 중국 동북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흥성문묘(文廟)가 보였다. 문묘는 굳게 문이 잠겨 있어 안내판을 여러 번 읽었다. 문묘는 전체 면적이 16800㎡이며, 안에는 장원문(壯元門), 장원교, 대성전, 성적도(聖蹟圖) 등이 있다. 문묘(文廟) 안을 보려고 하였으나 틈새가 없었다.
 
홍성문묘 벽 논어장(論語墻)에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공자의 《논어》 책에 나오는 구절이 있었다. 이 글자는 단순하게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평범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한자는 글자마다 깊은 뜻이 있어 한 글자 한 글자를 정확하게 해석해야 한다.
 
김영환 교수는 사마천이 쓴 《史記》를 강의하면서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논어》에 나오는 구절을 해석해 주었다. “붕(朋)은 뜻이 통하는 동료나 친구(友)를 의미하며, 학문적 교류나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벗과 함께 학문적 성취를 이루고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이 삶의 큰 기쁨으로 글을 읽을 때 중간에 끊어서 읽어야 합니다.”라고 가르쳐주셨다.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로 임금의 겸손한 마음과 임금에게 평생 뜻을 같이하는 붕신(朋臣)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 논어장「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사진:궁인창)
 
 
【출처】
1-2.「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1) 朋 -- 同門爲朋,同志爲友 ; 여기서는 志同道合 친구
2) 方來 -- 將來, 近來(×) ; 自遠方 來(0)
3) 樂 -- 외부적(신체) 즐거움 ; 우의증진, 같이 학습, 지식전파
 
 
▲ 위철기념관(魏哲纪念馆)(사진:궁인창)
 
 
흥성고성을 방문하기 전에 성을 충분히 조사했다고 자신했는데, 현장을 둘러보니 생소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고성에는 현대적인 요소는 보이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좋았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현대적인 양식의 큰 건물이 있었다.
 
기념관 현판을 보고 유리창 안을 보아도 설명문이 없어 위철기념관에 대하여 여러 날 힘들게 고생하며 자료를 찾았다. 기념관은 싱청시에 사는 영웅 웨이저를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웨이저(魏哲)은 1967년에 태어난 평범한 주민으로 2013년 9월 20일 정육점에서 일하던 중 인근 미용실에서 일하는 전 부인이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즉시 미용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가게 안에 칼을 든 사람이 마구 설치며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려고 위협해 위이저는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용감하게 나서 범죄자와 맞서 싸워 상대를 제압했다. 싱청(興城)시는 주민의 용감한 행동을 보고 의로운 시민, 의로운 영웅 등의 칭호를 수여했다.
 
 
【출처】
 
纪念馆的建立目的
魏哲纪念馆的建立旨在弘扬他的见义勇为精神和优良品质,让更多人了解他的事迹,并学习他的精神。纪念馆不仅展示了魏哲的个人事迹,还传达了社会对勇敢和正义的尊重与推崇。
 
 
위철기념관의 건립은 그의 의로운 행동과 정신, 품성을 발양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업적을 이해하고 그의 정신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기념관은 개인 사적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용기와 정의를 존중하고 추앙하는 모습도 전달했다. 이후 그의 용감한 행동은 사회 가치관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위철기념관(사진:궁인창)
 
 
흥성고성 남이가(南二街)에 위치한 주씨주택(周家住宅)은 중화민국(民国) 시대에 지어졌다. 랴오시(遼西)의 특징을 잘 간직한 안뜰형 주택(四合院)으로 현재 성(省)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저택의 주인 주용지(周永吉)는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저택은 구조가 치밀하고 넓고 밝다. 복도와 기둥이 있는 7개의 큰 방은 청 벽돌로 지어졌으며, 양쪽으로 3개의 별채와 6개의 문루가 있다.
 
 
【원문】
 
周家住宅位于古城内南二街,建于民国年间,是保存完整的具有辽西特色的囤顶民宅四合院,现为省级文物保护单位,其主人周永吉是城内富庶大户。周家住宅结构严谨,宽敞明亮。正房七间,为出廊抱柱,青砖所砌。左右厢房各三间,门房六间。
 
 
▲ 민가 벽돌(사진;궁인창)
 
 
흥성고성 내의 사합원을 보고 걷다 벽돌이 많이 적재되고 지붕에 풀이 많은 집을 보았다. 중국에서는 집을 새로 지으려면 여러 해에 걸쳐 벽돌과 목재 등 자재를 구해 천천히 집을 건축한다. 비림(碑林)을 보았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
 
흥성고성은 명과 청의 격전지로 이 성에서 원숭환 장군과 조씨 형제의 충절과 활약을 보고 조선 사신들의 방문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의 평범한 집들을 구경하고 나오면서 아쉬움이 남아 중국 역사 문화를 248개나 기록한 초이스(cytcjoi) 블로그를 보았다.
 
고성 관람을 마치고 성 입구에 있는 관광 안내도를 보니 걸어온 길들이 이해가 됐다. 성에는 2개 포대와 관경대, 괴성루, 조씨(祖氏)패방, 성황묘(城隍廟), 장군부(將軍府), 周家住宅, 원승환 장군 깃발 등 과거 500여 년 역사와 찬란한 문화가 생생하게 숨 쉬고 있었다.
 
 
▲ 영금대첩(寧錦大捷)(사진:바이두백과)
 
 
흥성고성의 대표 먹거리이자 간식거리가 땅콩 떡(花生糕)이라는데, 떡매로 떡을 만드는 모습을 구경할 수 없어 아쉬웠다.
 
 
▲ 흥성고성 특산품 땅콩떡(사진;바이두백과)
 
 
짧은 시간 동안 고성을 돌아봤지만, 고성에 많은 역사가 숨어있어 다음에 다시 방문해 1박 하면서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느껴볼 생각이다. 고성을 나서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대원들은 “랴오닝성 흥성고성에 언제 올지 기약이 없으니, 고성을 자세히 봐야겠다.”라고 말하며 성벽을 만졌다.
 
 
▲ 흥성고성 춘화문(春和門)(사진;궁인창)
 
 
흥성고성 춘화문(春和門)을 걸어 나오며 명과 청 교체기 치열한 전투 끝에 죽은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며 버스에 올랐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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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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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