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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李儁) # 장충단 공원
최근 3개월 조회수 : 1 (5 등급)
(게재일: 2016.04.16. (최종: 2019.11.21. 19:07)) 
◈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
장충단 공원의 마지막 편으로 장충단 비, 수표교, 사명대사 동상에 이어 (李儁) 열사 동상으로 마무리 한다.
장충단 공원의 마지막 편으로 장충단 비, 수표교, 사명대사 동상에 이어 (李儁) 열사 동상으로 마무리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장충단은 나라에 충성심을 장려하는 제단으로 조선 고종 때 군대 주둔지인 남소영 터(신라호텔과 장충단 일대)에 만들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장충단을 없애 공원을 조성하고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기리는 박문사를 세웠으나 해방 후 철거되었다. 이처럼 일본에 맞서 싸운 장충단에 승병장 사명대사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려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인 이준 열사 동상이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요. 이번 기회에 새로운 사실을 더 알게 되었고 이준 열사 동상과 사진을 보니 작은 키에 미남까지 나폴레옹(작은 사진)을 닮았던데 아래 사진 한번 보시지요.
 
 
▶이준 열사에 대하여
 
①1859년 1월 21일(음력 1858년 12월 18일)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②초명은 성재(性在)·여천(汝天)·선재(璿在). 자는 순칠(舜七)
③호는 일성(一醒)·해사(海史)·청하(靑霞)·해옥(海玉)
 
▶ 가족 스토리
 
1907년 4월, 이준은 집을 나섰다. 고종의 특명을 받고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난 것이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머나먼 이국 땅 헤이그에서 순국하였다.
3년 뒤, 부인 이일정은 남편의 유해를 찾으러 아들 종승(鐘乘,1888년 4월 7일 ~ 1954년 8월 18일)과 함께 러시아 하얼빈, 지금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밀항을 했다. 남편과 같이 떠난 이위종이 거기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종승은 이일정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 첫째 부인 주씨가 낳은 아들이다. 이일정은 딸(종숙)만 하나 두었다. 종승은 이 무렵 서울에 올라와 이일정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일정은 남편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을 한시 한 수에 담았다.
 
“해는 장사에 머물고 추색은 깊은데 어디 가서 낭군을 조상해야 하는가
(日落長沙秋色遠 不知何處弔喪君)”
 
함께 간 아들 종승은 귀국하지 않고 그 길로 중국으로 가서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장부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라’던 아버지의 말을 실천하기라도 하듯 그는 절강 군관 학교를 졸업하고 상해 임시정부 동로사령관(東路司令官)이 되어 북간도에서 활약했으며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손꼽히는 유격대장이 되었다. 이용(李鏞)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 북한에서 1954년 8월18일에 사망하였다.
이용은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주의자로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해방 후 조선노동당 북청 군당위원장,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도시건설상(건설부 장관), 사법상(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왜, 어떻게 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을까? 아마 당시 대부분의 사회주의자가 그랬듯이, 항일구국의 뜨거운 열정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사상 사회주의를 자신의 꿈을 이룰 지름길로 받아들였나 보다.
 
▶유묵
求學切於春望雨
持心恒若夜聞雷
배움의 길을 찾는 것은 봄에 비를 바라는 것보다 간절하고,
마음가짐은 항상 밤에 우뢰를 듣는 것과 같다.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963년 헤이그에서 유해를 옮겨와 국민장으로 서울 수유리에 안장했으며, 1964년 장충단공원에 동상이 건립되었다.
 
\na-;▼이준 열사 동상
 
 
\na-;▼작은 키의 이준 열사 동상이 너무 높아 가까이 가기엔 너무 멀다.
 
 
동상 앞에 애송하던 시를 바친다.
 
死而有不死 生而有不生
誤生不如死 善死還永生
 
죽어도 죽지 아니 함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아니 함이 있으니
살아도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않고
잘 죽으면 도리어 영생한다.
 
\na-;▼수유리 묘역
 
 
 
\na-;출처: 민족문화대백과,유튜브,이준열사 기념관,이준열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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