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 공민왕(恭愍王(民))
[광고]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공민왕 (恭愍王(民))
[1330 ~ 1374] 고려의 제31대 왕(재위 1351~1374). 충숙왕의 둘째 아들.
▣ 지식지도
◈ 요약정보
공민왕 (恭愍王(民)) [1330 ~ 1374] 고려의 제31대 왕(재위 1351~1374).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12세 때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위왕의 딸 노국 공주와 결혼 1351년에 왕위에 오르자, 원나라 왕실과 인척을 맺고 횡포를 부리던 기철의 일족을 없애는 등의 반원 정책을 썼다.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쳐 없애고, 영흥 이북 땅을 되찾았다. 원나라식 연호와 관제를 고치는 한편, 내정 개혁에도 힘썼다. 만년에는 홍건적, 왜구의 잦은 침략과 신돈의 횡포로 나라가 어지러워져 최만생, 홍윤 일당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작품 천산대렵도
◈ 지식지도
공민왕 (恭愍王(民)) 배전 과천시 서울 대공원 고려 1365년 1366년 1367년 1351년 1356년 1340년 1349년 1258년 기철 노국 대장 공주 신돈 우왕 충숙왕 충정왕 순제 유인우 창왕 충목왕 충선왕 충혜왕 조선 태조 공원왕후 홍규 복국장공주 기황후 국립 현대 미술관 쌍성총관부 국립 중앙 박물관 전민변정도감 천산대렵도 폐가입진 덕수궁 석조전
▣ 백과사전
[1330 ~ 1374] 고려의 제31대 왕(재위 1351~1374).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12세 때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위왕의 딸 노국 공주와 결혼하였다.
 
1351년에 왕위에 오르자, 원나라 왕실과 인척을 맺고 횡포를 부리던 기철의 일족을 없애는 등의 반원 정책을 썼다.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쳐 없애고, 영흥 이북 땅을 되찾았다. 또 원나라식 연호와 관제를 고치는 한편, 내정 개혁에도 힘썼다.
 
그러나 만년에는 홍건적, 왜구의 잦은 침략과 신돈의 횡포로 나라가 어지러워져 최만생, 홍윤 일당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특히 그림과 글씨에 뛰어나 「천산대렵도」 「노국공주진」 「석가출산상」 등의 미술 작품이 있는데, 지금은 「천산대렵도」만이 국립 현대 미술관에 남아 전한다.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 참조 원문/전문
왕부의 낙조 王府의 落照 근/현대 소설 김동인 (11) 식철수 食鐵獸 근/현대 소설 김동인 (7) 문래 文萊 근/현대 수필 김동인 (4) 불귀혼 不歸魂 근/현대 수필 김동인 (2)
◈ 조회순
2024.09.21
【문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는데 한 여랑를 데리고 와서 늘 곁에 두고 귀여워했어. 공민왕은 적군하고 싸우기 위해 안동에 왔기 때문에, 진지를 구축하고 홍건적하고 계속 싸웠는데 이때에도 여랑이 계속 따라다니고 그랬지. 그러다가 어느 싸움에서 홍건적이 가만히 숨어 있다가 왕에게 화살을 쐈는데, 그때 여랑이 몸을 날려가 대신 맞았어. 왕을 살린게지.
2024.09.21
【문화】 공민왕이 도저히 피란을 안 내려오고는 안되서 안동으로 내려왔어. 그래 내려와서 쓴 글씨가 안동군청 간판이래. 그게 공민왕 글씨 친필(親筆)이지. 그때 공민왕은 안동에 주재(駐在)했다가, 적이 내려와 싸움이 일어났어. 이래서 산성(山城) 쌓았는데, 예안 부포라는 데가 있어. 거기서부터 산능선을 쌓기 시작하여 산 능선을 타고 산성이라는 데까지 성을 쌓았어.
2024.09.21
【문화】 공민왕이 난을 피해 안동에 왔는데, 강을 건너게 됐거든. 그런데 강에 다리가 없는게라. 그래도 시기가 시기라서 급하니 그냥 강을 건넬라 그러는데. 참 귀한 공주가 맨발로 강을 건네게 할 수 없어서 안동에 있는 부녀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인교를 놓은게라.
2024.09.25
【문화】 【파주옛이야기(파주문화원)】우리나라 중심부를 동서로 흐르고 있는 임진강은 강원도 안변을 원류로 영풍을 거쳐 이천(伊川), 안협(安峽), 마전(麻田), 삭영(朔寧), 연천(連川)에 이르러 포천(抱川)과 합류 대탄(大灘)을 이루고 신지강(神智江), 구미연(龜尾淵), 표로하(瓢蘆河) 사미천(沙彌川)과 합류 ...
2024.09.21
【문화】 영호루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 그러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이곳에 머무를 때 친히 쓴 글씨인게라, 공민왕의 친필이니 만큼 현판 글씨의 필치는 참말로 잘 썼다고 사람들이 그래. 옛날부터 영호루가 수 차례 물 때문에 유실됐는데도 현판만은 지금까지 보존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현판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거든.
 
 
◈ 최근등록순
2024.09.25
【문화】 【파주옛이야기(파주문화원)】우리나라 중심부를 동서로 흐르고 있는 임진강은 강원도 안변을 원류로 영풍을 거쳐 이천(伊川), 안협(安峽), 마전(麻田), 삭영(朔寧), 연천(連川)에 이르러 포천(抱川)과 합류 대탄(大灘)을 이루고 신지강(神智江), 구미연(龜尾淵), 표로하(瓢蘆河) 사미천(沙彌川)과 합류 ...
2024.09.21
【문화】 공민왕이 난을 피해 안동에 왔는데, 강을 건너게 됐거든. 그런데 강에 다리가 없는게라. 그래도 시기가 시기라서 급하니 그냥 강을 건넬라 그러는데. 참 귀한 공주가 맨발로 강을 건네게 할 수 없어서 안동에 있는 부녀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인교를 놓은게라.
2024.09.21
【문화】 영호루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 그러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이곳에 머무를 때 친히 쓴 글씨인게라, 공민왕의 친필이니 만큼 현판 글씨의 필치는 참말로 잘 썼다고 사람들이 그래. 옛날부터 영호루가 수 차례 물 때문에 유실됐는데도 현판만은 지금까지 보존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현판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거든.
2024.09.21
【문화】 공민왕이 도저히 피란을 안 내려오고는 안되서 안동으로 내려왔어. 그래 내려와서 쓴 글씨가 안동군청 간판이래. 그게 공민왕 글씨 친필(親筆)이지. 그때 공민왕은 안동에 주재(駐在)했다가, 적이 내려와 싸움이 일어났어. 이래서 산성(山城) 쌓았는데, 예안 부포라는 데가 있어. 거기서부터 산능선을 쌓기 시작하여 산 능선을 타고 산성이라는 데까지 성을 쌓았어.
2024.09.21
【문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는데 한 여랑를 데리고 와서 늘 곁에 두고 귀여워했어. 공민왕은 적군하고 싸우기 위해 안동에 왔기 때문에, 진지를 구축하고 홍건적하고 계속 싸웠는데 이때에도 여랑이 계속 따라다니고 그랬지. 그러다가 어느 싸움에서 홍건적이 가만히 숨어 있다가 왕에게 화살을 쐈는데, 그때 여랑이 몸을 날려가 대신 맞았어. 왕을 살린게지.
 
▣ 참조 카달로그
◈ 주요 언급 키워드
김동인 (4) 백과 야담 (3) 백과 1954년 (2) 백과 수필 (2) 백과
◈ 참조 키워드
신돈 (9) 백과 고려 (7) 백과 설화 (5) 백과 안동시 (4) 백과 노국 대장 공주 (3) 백과 (3) 백과 전민변정도감 (3) 백과 조선 태조 (3) 백과 국자감 (2) 백과 (2) 백과 (2) 백과 성균관 (2) 백과 우왕 (2) 백과 원종 (2) 백과 이방실 (2) 백과 이인임 (2) 백과 창왕 (2) 백과 충목왕 (2) 백과 충숙왕 (2) 백과 충정왕 (2) 백과 충혜왕 (2) 백과 칭기즈 칸 (2) 백과 홍건적의 난 (2) 백과
[광고]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기본항목(E)
내서재 추천 : 0
▣ 카달로그 작업
관련 의견 모두 보기
자유 의견
▶ 지식지도
원문/전문
시민 참여 콘텐츠
관련 동영상
▣ 참조정보
백과 참조
고려의 임금.
충정왕 > 31. 공민왕 > 우왕
목록 참조
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