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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예술의 신전개를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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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3
윤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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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예술의 신전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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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산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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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단』3월호에 발표된 「계급예술론의 신전개」란 김화산군의 평론을 나는 넘치는 호기심과 많은 기대 중에 읽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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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하 조선사회의 일 현상으로 프롤레타리아 문예에 대하여 나날이 새로운 이론을 세워 나가는 이때에 「계급예술론의 신전개」란 말이 어디로 보든지 무산계급문예운동의 본질적 새로운 이론을 발표한 것으로 상상되어 무엇을 얻을까하고 처음에는 경의를 표하는 태도로 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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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씨의 근본적 논개(論開)가 무산계급문예운동의 본질을 저버린 무책임한 횡설수설이라 할까 무책임한 억설(抑設)이라고 할까 하여간에 무산문예운동자로서는 도저히 용납지 못할 어그러진 이론인 데에 나의 호기심을 의분(義憤)으로…… 기대하였던 바는 여지없이 배치되는 동시에 이 반박문을 쓰게까지 하는 동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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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씨에게 묻고자 한다. 씨의 논평한 근본적 의도가 나변(那邊)에 재(在)하며 무엇을 표현하려고 용의(用意)하였으며 어째서 그런 우론(愚論)을 거침없이 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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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파 문학가론에 대한 일소검토(一小檢討)’라든가‘무산계급운동에 좌단(左袒)한다’든가‘프롤레타리아계급론을 지지한다’든가‘프로예술을 지지하지마는 조선문단에서 현시 논의되는 무산계급예술론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운운한 씨의 태도를 반짐작은 할 수 있다. 또 씨는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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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우리는 프로문예 중에 아나키즘문예와 볼셰비즘 문학의 대립을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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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가 그가 파악하는 인생관 내지 사회관에 입각하여 무산계급을 수립할 수 있다면 아나키스트 역시 그의 사상적 견지 하에서 무산계급예술론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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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운위한 것만 보더라도 씨는 확실히 아나키스트인 것이 분명하다. 기분만으로라도 아나키즘에 공명한다는 것이 명확한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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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씨의 근본적 논조가 아나키즘에 대한 이론을 세우는 데 한 도움이 되었는가? 막연하게나마 윤곽만이라도 이론다운 이론을 드러냈다고 씨는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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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무식해서 아나키즘이 여하한 물건인지 아나키즘문예의 이론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그냥 넘겼는지 모르지만 누가 보든지 씨의 주장은 일호(一毫)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단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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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생각하기는 ‘……프로문예 중 아나키즘문예와 볼셰비즘 문예의 대립을 상상할 수 있다’고 운위하였기에 아나키즘문예이론을 철저히 논거해가며 볼셰비즘문예의 결함을 지적한 후에 씨의 독창적 이론을 수립할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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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것이 곧 씨의 주장하려는 계급예술론의 신전개일 줄 나는 확신하였었다. 그러나 씨의 독창적 이론을 제시하기는커녕 아나키즘문예에 대한 이론도 일언반구가 표현되지 않았고 다만 근거 없는 그릇된 이론과 도전적 태도로 건설도상에 재(在)한 조선의 무산계급문예운동을 교란시키려는 헛된 노력뿐만이 씨의 논조를 일관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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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미루어 보아 씨의 태도를 (3행 판독 불가) 지지한다면서 조선문단에 현시 논의되는 무산계급예술론을 지지할 수 없다는 말부터 반동적 감정의 지배를 받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설령 현재의 프로문예에 대한 이론이 씨의 말마따나 아직 혼돈을 면치 못하여 불완전하고 미성품이고 국부적 모순이 있다손 치더라도 현하 조선사회에 필연적 일 현상으로 전개된 무산계급 문예운동을 전적으로 부인한다는 것부터 씨의 행동이 훌륭한 반동행위로 인정할 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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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선 프로문예에서도 이론이 완전히 서지 못한 관계상 프로문인 간에 부절히 이론적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씨는 어떠한 심리로 프로문예를 지지한다면서 도리어 반동적 행위를 취하는 이유가 어디있는지 모르겠다(나는 여기에 대하여 맨 끝에 가서 단언하고자 한다). 또한 씨의 말한 대로 조선문단에 현시 논의 안 되는 프로예술론은 여하한 것이며 씨의 관념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예술론은 어떠한 것이지?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과 철저한 구별도 없이 씨자신이 기분에만 맞도록 무정견, 무조리한 비이론적 우론을 주저치 않고 토(吐)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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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의 우론의 지시가 아니고도 우리는 벌써 프로문예의 본질적 요소가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항의식에만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가 필연적으로 새 사회를 동경하는 사회주의적 목적의식의 암시가 함유한 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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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혁명전기에 있어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은 혁명을 촉진하는데 한 도움이 된다면 거기에 만족한다 . 투쟁기에 재한 프로문예의 본질이란 선전적 선동의 임무를 다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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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가 공리적 목적 위에서 현상의 부정을 목적의식하고 한 개의 예술품을 창조하였다고 하자……그래 그 창조품이 선전포스터 이상의 효과를 나타냈고 노방연설(路傍演說)의 임무를 다하였고 인민위원회 정견발표문에 불과하였더라도 혁명전기에 속한 프로예술가로서는 조금도 수치를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프롤레타리아 일원이 자기로서의 역사적 필연의 임무를 다하였다고 만족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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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기에 재한 예술가의 붓이란 어느 때에 총검(銃劍)으로 변할는지 모른다. 예술가라고 전선에 내세우지 않을 리 없고, 문학가라고 정의의 싸움에 안나갈 리가 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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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시공산시대에 예술파에 속한 문학가들은 외국으로 도망하였거나 국내에 있으면서도 참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 필연을 믿는 프로예술가들은 거개(擧皆) 참전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붓으로라도 혁명전을 열렬히 고취하였고 정의의 전쟁을 찬미하는, 선전적이라느니 보다 자연발생적 문예품을 창작하였다고 한다. 그때에만 그것이 프로문예의 본질이다. 이 사실을 미루어 보아 ─ 씨가 말한‘선전용의 예술을 창작하라함은 공산파 정략가의 폭론(暴論)이다’한 것은 아무 효과 없는 우론(愚論)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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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부정하고 사회제도의 결함을 인식하고 부정, 불의, 불합리등과 싸우려는 프로예술가로서는 씨가 말한 대로 선전용의 예술품을 창작하라고 폭론을 토하는 공산적 정략의 말을 좇는 게 아니라 시대에 민감하려는 프로문예가로서의 능동적으로 자진해서 선전용의 예술품을 창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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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투쟁기에 재한 프로예술가의 취할 바 본질적 태도며 프로예술가로서의 반드시 가져야 만할 기분, 감정, 행동이다. 비상기에 처하여서는 어떠한 예술품이라도 실제행동에 수단화하고 선전하여도 무방하다. 무방이 아니라 정당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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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순예술가다운 이론으로 문예이론을 인용해서 프로문예에 논급하였다. 씨의 논조는 문예의 본질을 영원불변이라고까지 일정○○하는 줄만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씨가 추측한 대로 문예의 본질이란 고정해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의 추이를 따라 문예 자체의 본질도 항상 변천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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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투쟁기에 재한 프로예술가의 손으로 창작된 문예품이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계급해방의 임무를 다하는 기능을 가졌고 선전적 도구로 사용되어 선동적 효과를 발휘하였다고 하면 혁명전기(革命前期)에 있어서만 프로문예의 본질이라고 간과하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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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현재에 논의되는 프로예술을 지적해서 말하기를 “…… 이 태도(건설적)를 결여한 문예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문화와 아울러 최후의 섬광을 발하는 문예는 될 수 있으되 프롤레타리아문예는 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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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구나 이만한 이론적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과도기에 있던 모든 문화가 혹은 연장, 혹은 소멸된다면 모든 문화 중에 일위(一位)를 점령하고 있는 프로문예운동도 또 같은 귀착점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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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롤레타리아문예도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는 필연적으로 해체되고 말 운명도 프로문예 자체가 함유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계급]문화는 다음 ‘제너레이션’ 에 기다려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해체(解體)된 다음에야 비로소 수립된다’ 고 하는 말은 누구나 부정치 못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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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똑같은 정의 하에 프로문예자체도 어느 시기에 도달하여서는 성립되지 못하고 해체될 것은 명료한 사실이다. 사실이라느니보다도 반드시 그래야만 할 당연한 경로며 합리적 전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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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듭 말한다.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이란 그 시기 ─ 혁명전기(반항, 선동, 선전)로, 혁명기(전투, 파괴)로, 혁명후기(정리, 건설) ─ 에 대한 역사적 필연의 임무를 충실히 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이의를 제출한다면 그 문예가는 순예술파에 속한 부르예술가이거나 맑스주의자로서 용납지 못할 아나키즘경지에 선 아나 예술가일 것이다. 우리는 아나키즘문예를 근본적으로 극력 배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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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후기 러시아 문단에는 건설적 기분이 농후하다고 한다. 공장을 찬미하고 기계를 찬미하고 노동을 찬미하는, 혁명전기에 보지 못하던 낙관적 시가가 전 문단을 지배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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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희곡보다도 시가 대부분인 이유는 그들이 공장에서나 도로에서 일하다가도 감흥에 못 이겨 읊조리고 걸어가다가도 읊조린 까닭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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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기요, 건설도정에 있기 때문에 양으로는 풍부하고 질로는 빈약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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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찬가가 현 노동 러시아 문단에 중심세력을 잡고 있다는 말만 듣더라도 혁명 후 러시아 민중이 얼마나 건설적 정신에 도취하여 건설하기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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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산시대에 전쟁을 찬미하고 파괴를 고취하던 문학가들은 신경제정책에 불만을 품고 침묵을 지키거나 딴 이론을 세우려고 애쓴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미약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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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 시대에 적합하였고 그 시대에 그들 임무를 다하였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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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대에 신흥하려는 민중은 신인을 요구한다. 건설기에 있어서는 직접 건설의 임무를 다하는 노동자와 그들과 똑같은 기분감정을 가진 문예가만이 프롤레타리아 문예를 창조하며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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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까닭에 혁명전기의 프로문예란 예술적 요소를 구비치 못한 비예술품이라 해도 좋고 계급해방을 촉진하는 한낱 수단에 불과한대도 좋다. 다만 역사적 필연으로 전개되는 해방운동의 임무만을 다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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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계급해방운동이 곧 맑스주의운동을 의미하는 것 같이 사유하는 동일한 오류가 조선 프로문예에도 존재한다’고 하는 문제도 안될, 도리어 오류된 문구가 나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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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로문예=맑스주의’를 은연중에 부정하였다. 그러면 ‘프로문예=아나키즘’이란 의미인가? 씨는 맑스주의의 이론이 무산계급해방운동에 해당치 않다는 점을 무엇으로 증명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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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라고까지 황당우론(荒唐愚論)을 거침없이 토하였을 적에는 상당한 이론을 알고 있는 모양이니 그래 계급해방이 맑스주의에 의하여는 성립되지 못한다는 말인가? 사실 그렇다고 가정하면 세계 도처에 맑스주의를 신봉하는 맑스주의자들은 거개 실망하고야 말 것이다. 바야흐로 계급해방운동이 전개되는 이때에 씨의 이론이 사실이고도 정확하다면 해방운동 자체에 혼돈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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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맑스주의에 의하여서만도 무산계급해방운동이 아무 장해 없이 건전히 계속될 것이니 씨는 무용의 염려를 말고 안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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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설(박영희씨의 소설을 지적)로는 씨 자신이 주장하는 선전적 효과도 도저히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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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이런 말로 박영희씨의 창작이 예술적 조건을 구비치 못한 관계상 소설로도 실패하였고 선전용으로도 실패하였다고 단언하였다. 또한 선전적 효과를 나타냈다면 한 기적적 사실이라고까지 설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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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작품이 씨의 논조대로 예술적 조건을 구비치 못한 그런 류의 소설로는 실패하였는 지 모르지만 단지 선전적 효과만을 충분히 발휘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왜? 현시 조선사회사정이……우리의 주위와 환경이 그런 선전적 효과와 선동적 가치가 농후한 작품을 이 시대(비상기)에 처한 일반민중이 요구하는 까닭이다. 그래 작품에는 반드시 시대성을 띠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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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씨의 근작「지옥순례」를 고학당에 있는 학생들이 읽고는 감격에 넘쳐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의 처지와 환경이 그 작품을 읽고 소극적 행동이나마 선전적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다시 생각하면 그것이 소극적 행동이 아니다. 그 주먹에는 장차 적극적 행동을 취할 잠재적 세력이 충분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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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 경지에서 ‘부르’ 의 사상, 감정, 기분 등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선전적 가치를 부정하거나 선전적 효과의 힘을 입지 못하나 프롤레타리아로서는 프로문예의 선전적 효과를 충분히 힘입어 결국 행동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전적 효과를 인정한다.
 
48
비상기에 처한 사회는 언제든지 긴장된 공기에 지배되어 나가고 새 사회를 동경하는 민중은 언제든지 예민한 감정, 긴장된 기분에 싸여 움직여 나아간다.
 
49
이 까닭에 예술적 조건을 구비치 못한 선전용의 문예품이라도 일반 민중의사상을 자극 충동하기에 넉넉하므로 혁명전기의 프로예술은 전반운동선상에 일 부대의 사명을 다하기에 노력할 뿐이다.
 
50
자연발생기에 속하였던 프로문예(조선 프로문예운동의 오늘날까지 밟아온 경로 ─ 빈궁문학, 반항문학 ─)는 사회주의적 목적의식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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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조선의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은 조직적으로 나날이 성장하여 나아간다. 자연생장적 무산계급해방운동과 보조를 같이 하며 이론적 투쟁을 계속하는 가운데 새로운 이론을 세워 나간다. 조선의 프로문예운동은 이만치 전개되어 있다.
 
 
52
“새로운 예술은 묵은 표현형식으로 나타낼 수 없다. 진부하고 무기력한 자연주의 수법이 의연히 조선 문단에 횡행한다.”
 
53
씨의 이 말만은 나로서 수긍한다.
 
54
새로운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그 술의 새로운 맛을 안다는 격으로 신흥예술도 반드시 새로운 표현방식을 취하여야 한다. 조선 프로문단에 오늘날까지 발표된 작품은 의연히 자연주의 경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프로문예운동에 뜻 둔 이로는 누구나 이 점에 고려 아니하는 바가 아니다. 그 점에 유의함으로 미구(未久)에 내용과 같은 생기발랄한 신 표현방식이 출현하리라고 확신한다.
 
55
더구나 창작가로서는 이 점에 유의할 뿐 아니라 표현방식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56
나는 씨가 구태여 다다이스트가 아니라고 극력변명한 것을 어째서 ‘따따 김화산씨에게’하고 이 박문(駁文)을 썼다는 것을 언명코자 한다.
 
57
먼저도 말하였지만 씨의 일관된 논조가 아나키즘 견지에서 그 일문을 논의한 것 같다. 사실 아나키즘경지에 들어가 아나키스트의 태도로 논평하였다면 극히 적은 부분에라도 아나키즘문예에 대한 이론이 표현되었을 터인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전혀 없을 적에는 씨의 태도가 사이비적 아나키스트로 밖에 아니 보인다. 내가 먼저 씨의 근본적 논조가 횡설수설이고 무조리한 억설이라고 까지 한 이유도 이 점에 있다.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맑스주의에 의하여 논의되는 프로문예의 선전적, 선동적 효과를 주장하는 프로문예를 근거 없는 이론으로 부정, 공박하기에만 능사로 삼았다.
 
58
그러면 씨가 맨 처음에 “…… 나의 태도를 선명히 하고자 한다. 본지(『조서문단』)2월호에 발표된 소설「악마도(惡魔道)를 읽은 사람은 나를 다다이스트로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결코 다다이스트가 아니다”하고 구차한 변명을 한 것도 현하 조선에서 논의되는 프로문예를 덮어놓고 부정하려는 본의에서 나온 것으로 볼 밖에 없다.
 
59
나는 여기서 단언한다. 씨는 틀림없이 다다이스트라고…….
 
60
다다이스트가 아니고서는 프로예술론을 지지한다면서 도리어 프로문예의 본질을 부정하거나 공박할 이치는 만무하다.
 
61
그러면 현시 논의되는 프로문예를 논박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가지고 선전적 예술론을 부정하였는가? 그렇지도 않다.
 
62
다만 다다의 일시적 발작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막연한 경지에서 아나키즘문예의 이론을 세워 보려는 의도만은 다소 있다고 보나 그것이 씨의「계급예술론의 신전개」란 말은 천부당 만부당이다. 계급예술론의 새로운 전개를 보여준 것이라고는 일자반개(一字半開)의 표현이 없다.
 
63
이것이 소위 다다식 문예론인가 보다. 나는 다다이즘을 개념으로라도 자세히 모르지만 모순을 사랑하고 존재를 부정한다는 다다이스트의 명론인가 보다.
 
 
64
다다이스트는 자기 자신이 다다이스트이면서도 다다이스트가 아니라는 것이 다다의 본색이요 다다의 , 가치 있는 행동이요, 다다이즘의 근본적 의의인지 신조인지 모르지만 씨는 무엇으로 다다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가?
 
65
도저히 다다로는 인증할 수 없으되 비다다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66
씨의 작품이 다다로 증명하는 한 세상사람들이 김화산하면 벌써‘방따따’로 인정하는 데야 내하(柰何)오
 
67
나는 마지막으로 씨의 말한 바“……나는 도리어 사상적 방면에 있어 퇴영적이며 환멸적이며 절망적인 다다이즘을 극력 배제하며 동시에 명일의 사회를 초래할 확신한 신념 하에 진출하는 무산계급해방운동에 좌단(左袒)한다. 그러므로 나는 예술론의 견지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문예론을 지지한다.” 고 한 그대로의 태도를 파악하여주기 바란다.
 
68
사상, 감정, 기분 등이 우리와 합치되어 동일한 보조를 취(取)코자 할진대 이름부터 다다식의 김화산이라고 하지 말고 방화산(方華山)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딴 이름으로 개명하여 주기 바란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로서는 한 동지를 얻게 되고 씨 자신으로는 완전히 다다의 경지에서 벗어났다고 할 것이다.
 
69
그래 씨의 태도가 진정한 ‘아나’이면 우리(맑스주의자)는 정책(政策)상 상위(相違)되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논전하기를 마지않을 것이다.
 
70
1927.3.20. 경도에서
 
 
71
『조선일보』1927년 3월25일-3월 30일
【원문】계급예술의 신전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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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기정(尹基鼎)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27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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