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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결(百結) 선생은 신라 자비왕(慈悲王) 때 서울 낭산(狼山) 기슭에 살던 분이다. 그의 성명은 알 수 없으나 세상에서 백결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와 같이 부르게 된 동기는 가세가 극빈하여 백 쪽이나 되는 헌누더기를 입은고로 백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와같이 빈궁이 극도에 달하였으나 그는 태연자약 해서 그의 심경은 마치 구름이 걷힌 하늘처럼 티끌만치도 가리운것이 없었다. 그와같은 생활은 할지언정 거문고 타기로 세월을 보냈다. 아무리 낙관의 생활을 하는 그일지라도 인간인 이상에는 경우에 의하여 희로 비탄과 불평의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할 때마다 반드시 거문고를 당겨서 자기의 의사를 표시하였다. 이로 보면 그의 생활 전부는 거문고를 빼어놓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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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결 선생은 안해 한 분이 있어서 그와 함께 오랜 세월을 가난살이로 지내 왔다. 한번은 섣달 대목이 닥쳐서 이웃집에서 떡방아를 찧느라고 방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이 방아소리를 들은 그 안해는 선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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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떡들을 찧는데 우리는 저녁 지을 쌀도 없으니 어떻게 새해를 맞이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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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와 달라서 섣달 그믐날이므로 쌀 한 알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될 적에 아무리 백결 선생의 간장이지만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백결선생은 태연한 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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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대체 죽고 사는 것이 명이 있고 부귀가 하늘에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거니와 가는 것을 붙들지도 못하는 법이오. 무엇을 그리 상심할 것이 있소. 자 내가 부인을 위해서 떡치는 방아노래를 지어서 들려줄 터이니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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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거문고를 안고 떡 치는 방아노래를 한 곡조 탔다. 그 소리가 매우 아름답고 또 떡치는 듯 하는 소리도 섞였으므로 이웃집에서 정말 떡치는 사람들이 우 ― 몰려와서 구경을 하고 즐겨해서 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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