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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나 송도원이나 주을 산협에도 이야기는 많으나 필연코 그 누가 쓸 법하기에 비교적 숨은, 그러나 친밀히 지내온 독진해변(獨津海邊) 이야기를 씀이 적당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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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진해변은 수삼 년 동안 나에게는 찾아간 피서지가 아니요, 제물의 고장의 피서지였다. 하필 여름 한철뿐이리오. 봄 가을은 물론 겨울철에까지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던 정든 곳 ─ 바다에 대한 모든 나의 감정과 생각은 실로 그곳에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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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하고 화려하지는 못하나 그 대신에 맑고 조촐한 그러므로 더 값있는 순결한 처녀지. 장개고개 너머 아늑한 모래밭에는 제철이면 그래도 해수욕 패들이 물개의 떼같이 지천으로 와글와글 끓었으나 고개 이편 원수대로 뻗친 불역에는 물새가 내리고 해질 무렵이면 자디잔 새우의 무리가 뛰어 올라 올 뿐, 인간의 발자취 하나 없는 맑은 모래가 아깝게 오리 가량이나 터져있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은 물론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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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만든 샌드위치(학교 농장에는 밤이 흔하였다)와 식지 않는 물통에 넣은 더운 커피는 날마다 먹어도 싫은 법 없다. 그것만 있으면 해변의 하루는 언제든지 즐거운 것이었다. 식욕을 돋구는 늑준한 해초냄새가 흘러오고 먼 바다에서 밀려왔을 미역 줄거리가 모래 위에 얹히고는 하였다. 포구의 발동선 소리가 심장의 장단을 맞춰 주고 아리숭하게 보이는 기선의 기적이 꿈을 빚어 준다. 타고르와 같이 종이배를 만들어 그 속에 이름 적어 지향없는 곳에 띄워 보내고 싶은 생각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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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대하고 긴요한 점은 그곳에서는 나는 다른 해수욕장에서와 같이 귀찮은 해수욕복을 입을 필요가 없었음이다. 몸에 실 한 바람 걸치지 않고 유유하고 자유롭게 모래 위를 거닐었다, 바닷물에 잠겼다 하면서 긴 날을 결코 무료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무료하지 않음은 나의 결혼에서 왔던 것이다. 나는 원시적 자태로 처녀 해변에서 날마다 결혼한 것이다 ─ 태양과 바다와. 태양은 전신을 빈틈없이 쪼여 주고 바다 또한 전신을 속속들이로 안아 준다. 태양도 바다도 나의 육체의 비밀을 샅샅이 알고 있다. 그렇다고 물론 나는 부끄러울 것도 없다. 태양과 결혼할 때에 나는 온순한 신부요, 바다와 결혼할 때에 나는 부락스러운 신랑이다. 하기는 이것은 당치않은 뽐인지도 모른다. 바다와 결혼할 때에도 나는 역시 한 사람의 연약한 신부에 지나지 못할 것 같으나 날마다 결혼하는 재미로 나는 그 처녀 해변을 무한히 사랑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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