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상생활에 있어서 회화 없는 날이 있다. 그러면서도 생활은 아무 지장없이 진행된다.
3
가령 부부나 친우 간에 있어서 하루 동안에 참으로 몇 토막의 회화가 필요할까. 때로는 전연 필요치 않을 적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들 두 사람의 사이는 지극히 원활하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침묵으로 눈방울의 동정과 표정과 시늉으로 넉넉히 피차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피차를 설명할 수 있고, 그 위에 심리까지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은가.
4
문학에는 회화가 지나쳐 많다. 더욱이 극문학의 대화라는 것은 한 큰 근본 회의(懷疑)를 남겨 준다. 물론 그것이 소위 ‘문학’이요, 인생 표현의 한 형식적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간간이 부자연의 억지가 많은 것은 한 큰 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묵극(默劇)의 의의의 중대함을 알아야겠다.
5
슬프면 슬플수록, 마음의 심연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람에게는 말이 없어진다. 다만 돌과 같은 침묵이 있을 뿐이다. 무대 위에서의 독백이란 지극히 부자연한 것이다. 여기에도 또 하나 극문학의 힘을 본다.
6
인생에는 진행이 있을 뿐이오. 설명이 없다. 소설에 있어서의 설명이란 무용의 것이 아닐까. 칼날로 베인 듯한 묘사가 있을 뿐이다─이런 방향으로서의 순수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봄은 어떨까.
7
명사와 동사만으로의 결백한 직선적 단일적 최후적 표현.
8
형용사─그것은 벌써 절대적 필요의 것은 아니다.
9
사랑의 감정을 절대인 것과 같이 증오의 감정이 때때로 절대인 경우도 있다.
10
사랑보다도 성격이 더 먼저이며 더 강렬히 움직이는 때가 있다. 성격이 모든 것을 다 규정하는 것이다.
11
추(醜)를 사랑하는 마음─피부의 종기의 표면을 만지는 것과도 같이 일종 악마적 심사에서 나오는 것 같다.
13
생활 창조에의 적극성─인류 발전의 운명과 비결은 거기에 걸려 있다. 적극성만이 정리와 유쾌를 가져오는 까닭이다.
14
무서운 태정(怠情)의 감정이 때때로 불현듯이 머리를 쳐드는 때가 있다. 벌떡 뛰어 일어나서 창을 열고 정리하고 활동하면 질시와 유쾌가 올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진득이 누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눈만을 말똥말똥 뜨고 불쾌를 인고(忍苦)(일종의 인고임에 틀림없다)하고 있는 감정. 등에 땀이 배었을 때, 냉큼 일어서서 옷 벗고 목욕함이 옳은 것을 개짓이 참고 앉아 끈끈한 땀의 불쾌를 그대로 인고하고 있는 정감. 아편을 마시고 나타(懶惰)의 쾌감에 뼈를 흐붓이 녹이고 입을 벌리고 꼼짝달싹 못하고 누워있는 그 타감과도 흡사하다 할까─모두 불칙스런 멸망의 타감이다.
15
부정돈의 미학, 난잡의 쾌감─게으른 종족의 피난소.
16
얼굴같이 신비로울 것은 없다. 양 얼굴, 개 얼굴, 고양이 얼굴, 원숭이 얼굴, 사람의 얼굴, 거울에 비치는 얼굴을 하루 동안 무심히 바라보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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