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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협한 호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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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1
고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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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한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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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호랑이 해입니다.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데 이것은 여러분이 아직 듣지 못하던 새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가난한 사람을 살리고 어린이를 예뻐하는 훌륭한 호랑이입니다. 아마 올 새해를 맞은 호랑이는 이와 같은 좋은 호랑이라고 하니 여러분도 두 손을 들어 환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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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께! 산과 들에 눈이 하얗게 쌓였을 때입니다. 아주 점잖고 풍채좋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눈도 너무 많이 오고 해서 온종일 토끼 한 마리 구경도 못 하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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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높직한 언덕 위에 앉아서 어느 곳에 짐승이 지나가나 안 가나 하고 눈을 두리번두리번 하였으나, 저녁때가 되도록 한 마리 만나지 못해서 풍채 좋은 호랑이 얼굴에도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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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해는 지고 밤이 되어 날은 점점 추워오고 이제는 산짐승들도 다- 각기 제 집으로 들어갈 때라 오늘은 벌써 굶고 말게 생겼으므로 호랑이는 참말 큰일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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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다니는 노루, 사슴, 여우, 토끼 같은 날쌘 짐승을 기운 있게 쫓아서 잡아먹는 것이 풍채 좋은 호랑이의 자랑거리요 또 특별한 재주인데- 아무리 배가 고프기로 사람 사는 마을에 내려가서 울 안에 갇힌 굼뜬 돼지 같은 것이야 잡아먹기를 좋아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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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는 참말 견디기 어렵게 배가 고픈고로 할 수 없이 밤이 이슥하니까 남이 볼까봐 겁을 내면서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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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하얗게 쌓여서 사람의 집마다 모두 문을 굳게 닫고 잠을 자는 모양이요, 쥐 죽은 듯이 고요하였습니다. 호랑이는 어느 조그만 집 담을 훌쩍 넘어 안으로 사뿐 내렸습니다. 그래서 돼지 울을 들여다보니까 조그만 돼지 단 한 마리가 드러누워 자는 모양임으로 아무거나 이것이라도 먹을 밖에 없다 하고 잡으려고 하는데 벌써 자는 줄 알았던 방 안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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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아직 잠을 자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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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머뭇하고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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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서는 나이는 사십이 넘은 듯한 여인의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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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아가! 이번에는 저 돼지를 잘- 길러서 오는 설에는 그것을 팔아서 네 설옷을 해줄 테다. 해준다 해준다 하고는 못해주었구나……. 저번에 그 큰 돼지는 팔면 꼭 해준다고 했더니 그만 세가 밀려서 못해주고 그 전번에도 그 어미돼지를 팔아서는 쌀을 사오지 않았니? 이번에는 꼭 네 옷을 한벌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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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어머니. 나는 설옷을 안 해도 괜찮으니 이번에 저 돼지 팔면은 어머니 옷이나 한 벌 지어오세요. 어머니는 다- 해진 옷 한 벌밖에 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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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듯한 소리로 말하는 이는 아마 열두어 살쯤 된 소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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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나는 걱정 마라. 너야말로 벌써 삼 년째 설옷을 못 입었구나. 오죽이나 입고 싶겠니. 동무들은 설이 되면 모두 새옷을 입고 노는데 너 혼자 못 입으니……. 그러나 웬일인지 그 돼지가 요새는 잘 먹지도 않고 비실비실 하니 아마 병이 났나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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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병이 났으면 어쩌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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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말이다. 그러니 무엇을 좀 잘 먹여야 할 텐데. 어디 먹일 것이나 변변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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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난한 두 모녀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고요히 말을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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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호랑이는 문득 온몸에 불같은 의협심이 떠올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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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잘못이다 이 같은 불쌍한 모녀를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이것을 먹을 수가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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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대로 훌쩍 담을 넘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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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느 큼직한 집 담을 넘어 들어가서 물어내려고 보니 이상하지요. 여기도 돼지 울을 들여다보니까 큼직한 돼지 단 한 마리가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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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는 아직 방에 불을 켜놓고 어머니와 아들 소년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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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얘야! 그 돼지는 어떻게 하든지 내일 팔아버려야겠다. 비단빨래 널어놓은 위로 그 더러운 발로 걸어다녀서 아주 못쓰게 해놓았으니 그것을 길러 뭐하니? 저번에는 다- 기른 배추밭에 들어가서 지랄을 쳐서 못 먹게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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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머니 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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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어머니! 돼지가 불쌍해요. 내가 매일 쌀겨와 밥찌꺼기를 주어서 길러놓은 것을 그만 팔아버려서 가서 죽을 생각을 하니까 참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 발 팔아버리지는 마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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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애원하는 것은 예쁜 소년의 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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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내일은 어떻게 하든지 팔아버린다. 그까짓 것을 길러서 밤낮 데리고 놀면서 뭐하니? 더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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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머니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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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년은 울 듯한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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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돼지가 병이 났으면 좋겠다. 아무도 사가지도 않고 내가 잘- 병이나 치료해주고 놀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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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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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다시 참을 수 없는 의협심이 떠올라왔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가여운 소년의 마음! 설옷을 지어주려는 빈한한 어머니와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마음! 이것을 예뻐하는 호랑이는 자기의 배고픈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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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참으로 빨리 화살같이 빨리 그 돼지를 등에 둘러메고 한 번에 열 칸이나 뛰어서 그 가난한 모녀가 사는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하여 그 크고 튼튼한 돼지를 그 집 우리에다가 놓고 그 집돼지를 업고 이것도 참으로 빨리 뛰어나와서 소년의 집 우리에다 놓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빨랐던지 돼지가 소리 지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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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운 있고 풍채 좋은 이 호랑이가 훌륭한 의기가 났던고로 참말 놀랠 만한 기운이 새로 생겼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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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달이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호랑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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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날뛰는 짐승을 잡아먹는 나로서는 울 속에 돼지를 먹으려 함이 애초에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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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배고픔을 참으며 다시 산을 향하여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배고픔보다 더욱 마음에 상쾌함을 느꼈습니다. 깊은 골짜기를 지나다보니까 달빛 아래 여우 한 마리가 앉아 닭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열이 벌컥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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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 먹을 게 없어서 하필 불쌍한 농사꾼의 집닭을 훔쳐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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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날쌔게 뛰어가서 여우의 멱두시 잡아 물어 죽이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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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습니다. 불쌍한 어머니와 사랑스러운 소녀는 돼지 울을 들여다 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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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돼지가 하룻밤 새에 저렇게 커졌네. 이제는 이것을 팔면 네 설 옷과 내 옷까지 짓게 되겠다. 아이고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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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기뻐하다가 눈 위에 호랑이 발자국을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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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호랑이가 내려왔었나봐요. 아마 호랑이가 돼지를 저렇게 크게 만들었나봐요! 올해는 호랑이 해라더니 참 호랑이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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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소녀는 손뼉을 치고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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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편 가여운 소년도 돼지 울을 들여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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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돼지가 병났나보다. 아무도 사가지 않겠지. 이제 너하고 나하고 잘 놀아. 호랑이가 너를 그렇게 해주었구나. 너와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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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두 손을 높이 들어‘호랑이 만세’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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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제4권 제1호, 1926. 1.
【원문】의협한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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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한승(高漢承)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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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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