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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목(巨木)이 넘어질 때 ◈
◇ 기인(起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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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1.~2.
김동인
매일신보 1936.1.1 - 2.7(22회 미완) 간행됨. 연재된 부분은 장편소설 「견훤」의 내용과 비슷하다.
1
巨木[거목]이 넘어질 때
2
起因[기인]
 
 
3
"안 됩니다. 몸을 숨기세요. 이곳을 피하세요. 복중(腹中)의 왕자를 탄생하고 기를 귀중한 임무를 생각하세요."
 
4
낙엽진 수풀 ― 한 발을 내어짚을 때마다 무릎까지 낙엽에 축축 빠지는 험준한 산길을 숨어서 피해 도망하기 사흘. 인제는 근력도 다 빠지고 한 걸음을 더 옮길 수 없도록 피곤한 관주(貫珠)는 덜컥 하니 몸을 어떤 나무 그루 아래 내어던지고 쓰러져 버렸다.
 
5
만년종사를 꿈꾸던 백제도 이제는 망하였다.
 
6
이것이 꿈이랴 생시랴.
 
7
온조(溫祚)대왕이 나라를 세운 지 근 칠백 년, 이 반도에 고구려와 신라와 함께 솥발같이 벌려 서서 서로 세력을 다투고 힘을 다투던 한 개 커다란 나라가 하루아침에 소멸하여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8
이웃 나라 신라가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백제와 겨룰 수가 없으므로 비열하게도 당나라 군사까지 청하여 들여서 이 백제를 공격할 때에 ― 처음 한동안은 용케 당하기는 하였지만 원체 군사의 수효가 대상 부동이라 드디어 의자왕(義慈王)은 태자와 함께 서울을 피해서 북비(北鄙)로 도망하였다.
 
9
왕이 이미 몽진한 도성으로 밀물같이 밀려들어오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들의 난폭한 행동에 왕궁의 궁녀들은 모두 욕을 면하고자 대왕포(大王浦) 벼랑 위로 달려올라가서 아래 흐르는 사자수(泗泚水)에 몸을 던져서 욕을 면 하였다.
 
10
관주도 궁녀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 궁녀들과 같은 행동을 취하려 하였다.
 
11
함께 대왕포 바위 위에까지 달려올라갔다.
 
12
그러나 이 총망한 가운데서도 그의 동료 한 사람이 관주를 발견하고 달려와서 관주를 피신하게 한 것이었다.
 
13
"복중의 왕자를 생각하세요. 상감께서 일이 그릇되어 불행한 일을 당하시면 그 뒷일도 생각해 주세요."
 
14
그때 관주의 뱃속에는 다섯 달 된 용종(龍種)이 들어 있었다. 아드님이 될지 따님이 될지는 알 바이 없지만 만약 이 백제라는 나라 위에 천우(天祐)가 벼락같이 떨어지지 않는 한에서는 왕와 태자와 각 왕자는 반드시 불행한 최후를 보실 것이다. 지금의 형세로는 무슨 기적적 천우가 떨어지지 않으면 이 불행은 반드시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15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후 이 칠백 년의 거룩한 사직을 위하여 칼을 들고 일어서서 신라와 당나라에 원수를 갚을 사람은 지금 관주의 복중에 숨어 있는 용종(龍種) 하나 밖에는 없다.
 
16
본 바 보고 또 들은 바 신라 장군 김유신은 백제의 서울로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왕족이란 왕족은 모두 잡아 내어 죽이지 않았는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백제의 왕족은 아마 씨도 없이 잔 멸시 켰으리라. 그렇다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관주의 복중에 들어 있는 한 개 고 깃 덩이 밖에는, 백제 종실을 위하여 칼을 뽑아들고 나설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7
"보중하세요. 몸을 피하세요. 따르는 군사가 급하외다."
 
18
이리하여 관주는 물로 향하여 몸을 던지려던 발을 돌이켜서, 창황히 숲속으로 숨어 버렸다.
 
19
많은 동료들이 바위 위에서 통곡을 하며 몸을 던질 때 관주의 마음은 우겨내는 듯하였다. 그러나 복중의 왕종을 생각하고 강잉히 그곳을 떠나서 차차 깊은 숲으로 몸을 감추어 버렸다.
 
20
옷을 바꾸어 입고 몸을 숨겨서 산길을 배회하기 사흘 ― 그의 나약하고 연연한 몸은 자기가 짊어진 중대한 임무만 아니면 도저히 겪어 내지 못할 쓰라린 고초를 맛보면서, 오로지 복중의 귀한 씨를 생각하여 피하고 피하여, 서울서 백여 리가 넘는 지금의 삼림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21
수라장의 왕도를 도망하여 많은 동료들이 수중 원귀가 되는 것을 눈앞에 보고 그 길로 이곳까지 피해 온 관주는 저녁이 기울기까지 실없이 넘어져 있었다. 그 근처에 떨어져 있는 과일들로 겨우 요기는 하였다. 그러나 태중 오개월의 무거운 몸에 넘치는 피곤은 삭일 바이 없었다.
 
22
날이 기운 뒤에 관주는 겨우 몸을 일으켜서 마을로 내려왔다.
 
23
거기서 그가 안 바 그것은 이미 각오는 하였던 바이지만 놀라운 소식이었다.
 
24
북비로 몸을 피하였던 왕과 태자도 드디어 당병의 손에 붙들리었다는 것 이었다. 왕과 태자와 대신들 팔십여 명과 백성 일만삼천 인이 당나라 군사에게 잡히어서 지금 당나라로 길을 떠났다 하는 것이었다.
 
25
무론 잡힐 것이다. 그리고 잡히기만 하면 그 생명은 부지되지 못 할지니, 왕가와 먼 친척이 되는 사람까지 모두 죽여 버린 김유신의 방침을 보아서 지금 당나라에 잡혀가는 왕의 일행은, 그 마지막 길을 백제 땅에서 밟는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26
꿈틀!
 
27
뱃속에서 움직이는 한 개 고깃덩이. 비록 그것이 한 개의 고깃덩이에 지나지 못하나 그 고깃덩이는 또한 칠백 년 백제 왕자의 유일의 봉사손이요, 백제 시조 온조대왕의 유일의 직손인 것을 생각할 때에, 관주는 그 왕손을 배고 있는 자기의 몸의 커다란 책무를 새삼스러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8
꿈틀꿈틀!
 
29
피곤한 모체(母體)의 속에서도 기운차게 움직이는 이 고깃덩이의 장래의 활약을 위하여, 그리고 그 어린 몸이 장차 칼을 뽑아들고 신라와 당나라에게 대하여 크게는 나라의 원수요 작게는 일가의 원수를 갚는 장거를 도모케 하기 위해서, 결코 허수로이 하지 못할 자기의 몸이다.
 
30
"하느님 맙시사."
 
31
젊은 꼴꾼으로 옷을 차린 관주는 가련하신 왕의 운명과 자기의 중대한 책무 때문에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32
그로부터 수일 후 당나라 군사에게 호위된 백제 왕이며 태자 왕자 대신 백성들이 어떤 촌락을 지나갈 때에, 그 촌락 뒤 어떤 나무 아래 엎드려서 통곡을 하는 한 초동이 있었다.
 
33
무론 왕의 최후의 길을 우러러보고자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당당하게 뽐내며 지나가는 당병의 최후의 한 사람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종내 초부는 머리조차 들어 보지 못하였다.
 
34
거기서 포구까지 가는 동안 이 초부는 십 리쯤 뒤떨어진 먼발로 끝끝내 당 병의 일행을 쫓아갔다. 밤에는 왕이 수금되어 있는 집 근처에서 배회하며 틈을 엿보고 하였다. 엄중한 당병의 감시의 눈에 숨어서 왕께 뵈올 수는 도저히 없는 바지만 행여 하는 요행심으로 배회하는 것이었다.
 
35
왕이 당병에게 끄을리어 배에 오르기까지 왕을 뵈올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36
왕을 태운 배가 멀리 한바다로 떠나가서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 초부는 해변에 망연히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37
이 초부는 무론 변복한 관주였다.
 
38
거기서 왕께 먼발로나마 하직을 한 뒤에는, 관주의 자취도 이 세상에서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
 
39
왕이 당나라 서울서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백제라 하는 나라는 소멸 되어 버리고, 이리하여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서 이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40
백제는 완전히 망하였다.
 
41
후일 백제 회복을 위해서 칼을 들고 나설 만한 왕족까지도 모두 잔 멸시 켜 버렸는지라, 백제라 하는 것은 한 개 역사상의 과거의 일로 무시하여 버려도 좋을 만치 되었다.
 
 
42
이백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43
그 짧지 않은 날짜가 흐르는 동안 무론 사람사람의 일신상의 변동도 이루 셀 수가 없다. 그 위에 국체(國體)상의 변동도 놀랄 만하다.
 
44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어서 백제를 없이한 뒤에 거기 자미를 보고 후일 당나라가 고구려와 싸우는 기회를 보아 가지고 고구려까지 없이하여 버렸다.
 
45
대륙에서 동해바다로 늘어져 있는 반도(半島)에 솥발같이 나란히하여 각축을 하던 세 국가 가운데 둘은 신라에게 망한 바 되고 신라 하나이 둥그렇게 남았다.
 
46
백제를 없이한 지 팔 년 뒤에 고구려조차 없이하여 버린 신라는 인제는 이 반도의 유일의 국가였다.
 
47
이리하여 표면으로는 반도 유일의 국가 ― 이면으로는 당나라의 제재를 받는 한 개 비열한 국가 ― 이러한 표리가 다른 국가 생활을 계속하기 이백수십 년, 사실에 있어서 백제와 고구려를 집어삼킨 데는 아무 그럴 만한 근터 리가 없었다. 단지 당나라가 도와 주려니 집어삼킨 것이지 그 이상 아무 원인이며 이유가 없었다. 그랬는지라 집어삼키기는 삼키었지만 그 나라의 강토들은 아낌없이 내어버렸다.
 
48
집어삼킨 뒤 한동안은 그래도 명색이나마 지방관들을 파견하고 경질하고 하여서 그래도 자기네 땅인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그 긴장의 몇 해가 지난 뒤에는, 그 강토는 다시 돌보지도 않았다.
 
49
백제의 옛 강역은 그래도 좀 거리가 가까왔더니만치 얼마만치 돌보는 흉내나마 내었지만 고구려의 구역(舊域)은 완전히 주인 없는 땅으로 되어 버렸다.
 
50
이러한 이백 년간에 옛날 김유신이 백제를 삼키고 뒤이어 고구려를 삼킬 때는 그래도 뒷일을 근심하여 장차 조국을 위하여 칼을 뽑아들고 나설만한 지위를 가진 사람은 종자까지 없이하여 버렸으나 명장 한 번 저승으로 간 뒤에는 다시는 그런 먼 후의 일까지 생각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51
자주 변경을 침노하던 무서운 고구려와 백제가 인제는 없어졌는지라 마음놓고 팔다리 길게 뻗치고 살 수가 있게 되었느니만치 지금 남은 것은 안일과 권태의 꿈뿐이었다.
 
52
먼저 궁중이 난잡하여 가고 뒤따라 백성들도 난잡한 꿈에 빠지기 시작하여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지 이백여 년이 지나서는 신라라 하는 일개 국가는 난정과 음일로 싸인 한 개 더러운 인간 단체로 화하여 버렸다.
 
53
이러는 동안 이백여 년 전 대왕포 바위 위에서 몸을 물로 던지려다가 독심을 품고 발을 돌이켜서 종적을 감추어 버린 당년의 의자왕의 총희 관주와 그 의 뱃속에 들어 있던 백제 왕족의 유일의 씨인 한 개 고깃덩이는 어떻게 되었나?
 
54
무론 그 새 흐른 세월은 덧없이도 벌써 이백여 년이니 대가 바뀌고 손이 갈리기도 벌써 여러 번씩일 것이다.
 
55
그러나 그 초지(初志)뿐은 지금껏 후손들이 계승하고 있는지, 혹은 하도긴 세월이라 인제는 선량한 한 개의 시민으로 변하여 버렸는지?
 
56
세월은 여전히 흐른다. 그 흐르는 세월 아래는 별의별 것이 다 감추여 있나니 내가 이러한 서두 아래서 적어 내려가려는 한 개 기구한 운명의 구인의 이야기도 그 이백 년이라는 세월이 눈감아 줄 동안에 생장하고 계승된 한 개 가련한 이야기다.
 
57
자 ― 그러면 인제부터 나는 나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 앞에 펴놓자.
 
58
장차 어떤 것이 나오려는지?
【원문】기인(起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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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거목이 넘어질 때 [제목]
 
  김동인(金東仁)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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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