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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란 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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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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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란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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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생활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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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들었다 제주도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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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첫 해인 그 해를 나는 제주읍 ‘카네이션’ 이란 다방에서 지냈다. 커피의 향훈에 취해서가 아니었다. 향락에 취해서도 물론 아니었다. 있을 곳이 없어서였다. 살겠다고 난을 피하여 이 절해(絶海)의 고도(孤島)에까지 흘러온 몸이라 끝까지 살기 위하여 뻗대어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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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와 마찬가지로 기거를 하여야 되는 공동수용소에는 차마 발길이 들어 놓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 한 칸 얻어 들 밑천이 없다 나는 그대로 노상 에서 헤매이었다. 이런 정경이 어떤 한학자의 귀에 흘러들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소설가라는 소리를 들은 이 한학자는 그분이 방을 못 얻고 노상에서 헤매이다니―글은 글로 통해야 된다. 우리 집에 마루방이 있으니 우선 방이 날 때까지 이리로라도 모셔야 한다고 이 한학자가 특별히 나에게 베푼 호의로 나는 이 한학자의 집 마루방에다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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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면식이 있던 것도 아닌데 글을 한다는 소리를 풍문으로 듣고, 글 은 글로 유통이 되어야 한다고 자진하여 방까지 제공해 주는 이 호의에 나는 이 한학자에게 감사하기 전에, 먼저 문필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이 그 감 격에 감읍되어 눈시울을 뜨겁게 느끼었다. 실로 문필인으로서의 내 생애에 있어 이것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격의 한 토막일 것이다. 면식을 초월해 서까지 글은 글로 유통이 된다는 것은 이 얼마나 반가운 사실이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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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남해의 기후라고는 해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화로 하나 놓지 못한 이 마루방에 댕그라니 앉아서 엄습하는 한기를 이겨 낼 도리는 없었다. 보온을 위하여 나는 다방을 찾았고 통행금지 예비 사이렌이 울릴 때 까지 그 노변(爐邊)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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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방에 날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미공군 여섯 사람이 출입을 하였 다. 자기네들이 올 때마다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내가 앉아 있는 것이 그들 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루는 내가 이 다방으로 나오던 도중 에서 어떤 친구를 만나 시간이 좀 지연이 되는 동안에, 이 다방으로 왔던 그들은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음으로 주인에게 묻기를, 어째 오늘은 그 사 람이 없느냐 하고 나서 대체 키가 자그마한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무슨 직업을 가졌기에 다방에서만 사느냐 하고 나라는 사람의 정체에 무척 궁금해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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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주인의 대답이 그 사람은 우리 한국 소설가인데, 이 제주도로 피 난을 오게 되었으나 온돌방을 얻지 못해서 우리 다방에 불을 쏘이려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더니, 그 미군인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어 주인의 말을 막으 며 노오 노오 하고 거짓말은 말라는 눈치더란다. 그래 주인은 농담이 아니 고 사실이 그렇다고 다시 말을 하였더니, 그적에는 그는 그렇게 꼭 믿지를 않고 반신반의하는 태도로, 아니 소설가라면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그것이 무슨 소리냐, 소설가가 생활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삼류 의 소설가라도 생활에 위협을 느끼는 일은 없다고 다시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농담으로 들리기에 우리나라는 당신네 나라와는 실정이 달라서 소설 이 더욱이 순수 문학은 잘 팔리지를 않아, 소설가뿐이 아니라 예술인은 모 두 궁하다고 하였더니 그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도리질을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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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그 이튿날 다방 주인인 음악가에게서 막 듣고 앉았는 판인데 또 미군인 여섯 사람이 다방으로 들어오다가 나를 보고 히죽이 미소로 인사를 하는가 하니, 그 중 제일 나이 적은 한 사람이 덥썩 손을 내밀어 전 례없이 반가워하며 악수를 청하고 카멜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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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는 말이 자기도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예술인을 좋아 한다고 하면서, 어제 이 다방 주인에게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잘 아노라고, 얼마나 고생이 되느냐고 위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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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대한민국에서는 소설가가 그렇게 돈을 못 버느냐고, 이 다방 주인이 그런 말을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는다. 그래 사실일 게라고 하며 웃었더니 정말 사실이냐고 되채며 머리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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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사실이 그렇게 믿기지 않는가, 이렇게 믿기지 않는 사실이 우리 에게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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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까짓 사실이야 어쨌든 나는 이 제주 피난에서 글이 글로 통할 수 있었던 감격에 내 자신을 찾은 것 같다. 글 한 줄에 설사 백만 원을 받 았다손 치더라도 이러한 감격에 감읍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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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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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단행본〕『노인과 닭』(범우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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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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