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하를 기유(覬覦)하던 초장왕(楚莊王)이 주실(周室)의 전세보정(傳世寶鼎)의 경중(輕重)을 물었다 하여 ”문정지경중(問鼎之輕重)“이라는 한 개의 술어(術語)가 정권혁계(政權革繼)의 야심에 대한 숙어(熟語)로 사용케 되었다 하는데, 이 고사(故事)를 이렇게 해석하지 말고 관점을 고쳐서, 초장왕이 일찍부터 골동벽(骨董癖)이 있던 이로, 보정(寶鼎)이 탐이 나서 보정을 얻기 위하여, 또는 될 수 있으면 훔쳐만 내오려고 경중을 물었으나 훔쳐만 내오기에는 너무 무거웠던 까닭에, 조그만치 보정만 훔치려던 것이 변하여 크게 천하를 뺏으려는 마음으로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애오라지 보정 하나를 귀히 여기다가 군도(群盜)가 봉기하는 춘추전국(春秋戰國)의 시대를 현출(現出)시킨 주실(周室)의 골동벽도 상당한 것이라 할 만하다.
4
노자(老子)가 “不貴難得之貨하여 使民不爲盜라 얻기 어려운 재보(財寶)를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은 도둑질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고 경구(警句)를 발(發)하게 된 것도 주실의 이러한 골동벽이 밉살스러워서 시정(時政)을 감히 노골적으로 비난할 수 없으니까 비꼬아 말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근자에 장중정(蔣中正)이 골동을 영국엔가 전질(典質)하고서 수백만 원의 차금(借金)으로 정권의 신로(新路)를 개척하련다는 소식이 떠돈지도 오래였다.
5
골동이라면 일본에서는 ’가라쿠타(雅樂多)‘라 번역하고 조선에서는 어른의 장난감으로 아는 모양인데, 장난감으로 말미암아 사직(社稷)이 좌우되고 정권(政權)이 오락가락한다면 장난감도 수월한 장난감이 아니요, 특히 상술한 바와 같이 상하 사오천 재(載)를 두고 골동열(骨董熱)이 변치 않고 뇌고(牢固)히 유행되고 있다면 그곳에 무슨 필연적 이설(理說)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필자를 골동의 하나로 취급하려 드는 편집자로부터 골동설(骨董說)의 과제를 받기까지 생각도 없이 지났다면 우활(迂闊)도 적지 않은 우활이다.
6
하여간 초장왕·장중정의 영향만도 아니겠지만, 조선에도 근자에 골동열이 상당히 올라서 도처에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모양이다. 한번은 경북 선산(善山)서 자동차를 타려고 그 정류장인 모 일본인 상점에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 집 주인과 말이 어우러져 내 눈치를 보아 가며 하나 둘 끌어내어 보이는데, 모두 고신라(古新羅)의 부장품(副葬品)들로 옥류(玉類)·마형대구(馬形帶鉤)·금은장식품(金銀裝飾品), 기타 수월치 않은 물건이 족히 있었다. 묻지 않은 말에 조선 농민이 얻어 온 것을 사서 모은 것이라 변명을 하지만, 눈치가 자작(自作) 도굴(盜掘)까지는 아니한다 하더라도 사주(使嗾)는 시켜 모을 듯한 자이었다. 그자의 말이, 선산의 고분(古墳)은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박사가 도굴을 사주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구로이타 박사가 선산에 와서 고분을 발굴한 것이 기연(起緣)이 되어 가지고 고물열(古物熱)이 늘어 도굴이 성행케 되었다는 것이니, 일견 춘추필법(春秋筆法)에 근사한 논리이나 죄상(罪狀)의 전가(轉嫁)가 가증스럽기도 하였다.
7
조선에서의 고분 도굴은 이미 삼국(三國) 말기에 있었으니, 오늘날 고구려, 백제대의 고분이 하나도 성하지 못한 것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유린의 결과로 추측되고, 고분의 도굴이란 것은 중국 민병(民兵)의 전위(專爲) 특색같이 말하나『고려사(高麗史)』를 보면, 익산(益山) 무강왕릉(武康王陵)의 도굴이라든지 무릉(武陵)·순릉(純陵)·후릉(厚陵)·예릉(睿陵)·고릉(高陵) 등 기타 제릉(諸陵)의 피해가 고려인의 손으로, 또는 몽고·왜구 등으로 말미암아 적지 않게 도굴되었다. 근자에는 개성(開城)·해주(海州)·강화(江華) 등지의 고려 고분이 여지없이 파멸되었으니, 옛적에는 오직 금은(金銀)만 훔치려는 도굴이었으나 일청전쟁(日淸戰爭) 이 후로부터는 도자기(陶磁器)의 골동열에 눈뜨기 시작하여, 요즘 오륙 년 동안은 전산(全山)이 벌집같이 파헤쳐졌다.
8
봉분(封墳)의 형태가 조금이라도 남은 것은 벌써 초기에 다 파먹은 것이요, 지금은 평토(平土)가 되어 보통 사람은 그것을 분묘(墳墓)인지 무엇인지 분간치 못할 만한 것까지 ‘사도(斯道)의 전문가’(?)는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한다. 그들에게 무슨 식자(識字)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요, 철장(鐵杖) 하나 부삽 하나면 편답천하(遍踏天下)가 아니라 편답분롱(遍踏墳壟)을 하게 되는데, 철장은 의사의 청진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요, 부삽은 수술도(手術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데, 철장으로 평지라도 찔러 보면 장중(掌中)에 향응(響應)되는 촉감만으로도 그 속의 광실(壙室)의 유무는 물론이거니와 기명(器皿)의 유무, 종류, 기타 내용을 역력세세(歷歷細細)히 알 수 있다 하며, 심한 자는 남총(男塚)인지 여총(女塚)인지 노년총(老年塚)인지 장년총(壯年塚)인지 소년총(少年塚)인지까지 알게 된다 하니, 듣기에는 입신(人神)의 묘기(抄技) 같기도 하나 예까지는 눈썹을 뽑아 가며 들어야 할 것이다. 하여튼 청진(聽診)의 결과 할개(割開)의 요(要)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는 부삽으로 흙만 긁어내면 보물은 벌써 장중에서 놀게 되고, 요행히 몇낱 좋은 물건이라면 최저 기십 원으로부터 기백 원, 기천 원까지는 자본 안 들이고 낭탁(囊橐)하게 되니 이렇게 수월한 장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엾게도 조선의 ’슐리만‘들은 발굴에 계획이 없을뿐더러 발굴품(發掘品)의 처분에도 난잡한 흠이 적지 않다.
9
우선 그것이 정당한 발굴이 아니요 도굴인 만큼 속히 처분해야겠다는 겁념(㤼念)도 있고, 속히 체전(替錢)하려는 욕심도 있어, 돈 될 만한 것은 금시에 처분하되 그렇지 않은 것은 파괴유기(破壞遺棄)하여 후에 문제될 만한 증거품을 인멸(湮滅)시킨다. 혹 동철기(銅鐵器) 같은 것은 금이나 은이나 아닐까 하여 갈아 보고, 금은으로 만든 것은 금은상점(金銀商店)으로 가서 금은 값으로 처분하고 마는 모양이다. 도자(陶磁) 같은 것은 정통적인 것만 돈 될 줄 알고, 학술상으로 보아 가치가 있다든지 골동적(骨董的)으로 특히 재미있을 것 같은 것은 모르고 파기하는 수가 많다.
10
이리하여 귀중한 자료가 소실되는 반면에 갓 나온 고물도굴상(古物盜掘商) 중에는 몹쓸 물건까지도 고물이면 귀중한 것인 줄 알고 터무니없는 호가(呼價)를 하는 우(愚)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 손에 발굴되는 유물이야 어찌 가엾지 아니하랴마는, 덕택에 과거 삼사십 년까지도 고분에서 나온 것이라면 귀신이 붙는다 하여 집안에 들이기커녕 돌보지도 않던 이 땅의 미신가(迷信家)들이 자기네 신주(神主) 이상으로 애지중지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치사(致謝)할 노릇이요, 이곳에 예술신(藝術神)의 은총보다도 골동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재화(財貨)의 위세를 한층 더 거룩히 쳐다보지 아니 할 수 없다.
11
이 점에서만도 마르크스(K. Marx)를 기다리지 않고라도 “경제가 사상을 지배한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더욱 골동에 대하여는 완전한 문외한이었던 사람들도 한번 그 매매(賣買)에 간섭되어 맛들이기만 하면 골동에 대한 탐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이런 기맥(氣脈)에 눈치 빠른 브로커는 이러한 기세를 악용하여 발호(跋扈)하게 된다. 근일 경성(京城)에는 불상(佛像)·고동철기(古銅鐵器)들이 많이 도는 모양인데, 조금 주의해 보면 1930년대를 넘었을 고물(古物)이 없다. 기물(器物)의 형(形)이라든지 양식으로써 식별하라면 이것은 요구하는 편이 무리일는지 모르지만, 동철(銅鐵)의 색소 등으로 분간한다면 웬만한 상식만 있으면 될 만한 것을 번번이 속는다.
12
우선 알기 쉬운 감별법을 들자면, 동철기에는 전세고색(傳世古色)과 토중고색(土中古色)과 수중고색(水中古色)의 세 가지를 구별하는데, 조선의 동철기라면 대개 토중고색이 있을 뿐이요, 전세고색이나 수중고색은 없다 하여도 가(可)하다. 전세고색이라는 것은 세전(世傳)하여 사용하는 가운데 자연히 생겨난 고색이니, 속칭 ‘오동색(鳥銅色)’이라는 색소에 근사(近似)하여 불구류(佛具類)에서 다소 볼 수 있을 뿐이요, 토중고색이라는 것은 토중(土中)에서 생긴 고색인데, 심청색(深靑色)을 띤 것이 보통인데 위조하는 것들은 흔히 후자 토중고색의 수창(銹錆)이 많으나, 그러나 단시일간에 창색(錆色)을 내느라고 유산(硫酸) 같은 것을 뿌린다든지 오줌독에 담가 둔다든지 시궁창에 묻어 둔다고 하며, 대개는 소금버캐 같은 백유(白乳)가 둔탁하게 붙어있고 동철(銅鐵)의 음향도 청려(淸麗)치 못하다. 특히 불상 같은 것에는 순금은(純金銀)으로 조성된 것이 지금은 절대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가할 것이요. 동표(銅表)에 그윽히 보이는 도금의 흔적만 가지고 갈아 본다든지 깎아 본다든지 하여 모처럼 얻은 귀물(貴物)을 손상하지 말 것이며, 혹 기명(記銘)이 있는 예도 있으나 대개는 의심하고 들이덤비는 것이 가장 안전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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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용모라도 좀 얌전하고 의문(衣文)도 명랑히 되었거든 오사카(大反)·나라(宗良)·교토(京都) 등지의 미술학생의 조작인 줄 알 것이며, 조선서 조작된 것 중에는 진유(眞輸) 덩어리에 마려(磨鑢)의 흔적이 임리(淋漓)한 것이 많고, 아주 남작(濫作)에 속하는 것으로는 아연으로 주조된 것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이 미술사적으로 말하더라도 지금 돌아다니는 종류의 불상들은 대개 촌척(寸尺)에 지나지 않는 소금상(小金像)들인데, 조선에서 소금상으로 미술적 가치가 있는 것은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의 불상에 한하였다 하여도 가하다. 그런데 삼국시대의 불상은 원체 많지 못한 것이며, 신라시대의 불상이라도 우수한 작품은 거의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어 가히 볼 만한 것은 민간에 들게 되지 아니한다. 경성의 누구는 현재 창경원박물관(昌慶苑博物館)에 진열되어 있는 삼국기(三國期) 미륵상(彌勒像)의 모조품을 사 가지고 하는 말이 “어느 날 믿을 만한 사람한테서 저것을 샀는데, 그 후 똑같은 것이 다시 나오지를 아니하는 것을 보니까 저것이 진자(眞者)임이 틀림없겠지요?“ 한다. 이런 사람을 오메데타이히토(お芽出度い人)라 하는데, 백발이 성성한 자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까 한편 가엾기도 하였다. 어떤 놈이 몹시도 골려 먹었구나 하였지만, 오히려 이러한 숙맥(菽麥)의 부옹(富翁)이 있는 덕택에 없는 사람이 살게 되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러니저러니 하여도 사는 사람은 돈 있는 사람이요 파는 사람은 돈 없는 사람이니, 그 돈 있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 같은 자가 아니요 현해(玄海)를 건너와서 별짓을 다하여 축적한 돈이니, 이악보악(以惡報惡)으로 그런 자의 욕안(慾眼)을 속여서 구복(口腹)을 채우기로 유태인(猶太人) 배척하듯 그리 미워할 것도 없다. 이러한 것은 오히려 나은 편이요, 개성 지방에 도자기열(陶磁器熱)로 말미암아 위조기매(僞造欺賣)도 그럴듯하게 연극이 꾸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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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저녁 때, 농군(農軍)같이 생긴 자가 망태에 무엇을 지고 누구에게 쫓겨 드는 듯이 들어와 주인을 찾으면 누구나 묻지 않아도 고기(古器)를 도굴하여 팔러 온 자로 직각(直覺)하게 된다. 궐자(厥者)가 주인을 찾아서 가장 은근한 태도로 신문지(新聞紙)에 아무렇게나 꾸린 물건을 꺼내 보이니 갈데없이 고총(古塚)에서 갓 꺼내 온 듯이 진흙이 섞인 청자(靑瓷) 산예(狻猊)의 향로! 일견 시가 수천 원은 될 것인데 호가(呼價)를 물어보니 불과 사오백원! 이미 욕심에 눈이 어두운지라 관상(觀相)을 하니까 궐자(厥者)가 꽤 어리석게 보이므로 절가(折價)하기를 오할(五割), 궐자도 그럴듯하게 승강이를 하다가 못 이기는 체하고 이삼백 원에 팔고 달아나니 근자에 드문 횡재라고 혀를 차고 기뻐하던 것도 불과 하룻밤 사이! 밝은 날에 다시 닦고 보니 진남포(鎭南浦) 도미타공장(富田工場)의 산물(産物)과 유사품! 가슴은 쓰리고 아프나 세상에서는 이미 골동감정(骨董鑑定) 대가(大家)로 자타가 공인하게 된 지 이구(己久)에 면목이 창피스러워 감히 발설도 못 하나 막현어은(莫顯於隱) 격으로 이런 일은 불과 수일에 세상에 짝자그르하니 호소무처(呼訴無處), 고물이라면 진자(眞者)라도 이제는 손을 못 대겠다는 무의식 중에 자백이 나오는 예(例), 이러한 것이 비일비재하게 소식망을 통하여 들어오는 한 편, 호의(好意)로 위조니 사지 말라 지시하여도 부득이 사서 좋아하는 사람, 이러한 예는 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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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자는 우동집의 간장 독구리, 이쑤시개집 같은 것을 가져와서 진위(眞僞)를 묻는다. 원래 진위는 보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요 물건 자체에는 신고(新古)가 있을 뿐이다. 신고를 묻는다면 대답할 수도 있으나, 진위를 묻게 되면 문의(問意)를 제일 몰라 대답할 수 없다. 진위의 문제와 신고의 구별을 세워 물을 만하면 그러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지도 아니할 것이니까, 문제하는 편이 이것도 무리일는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물건을 꺼내어 보이지도 않고 우선 물건의 설명을 가장 아는 듯이 하고 나서 결국 꺼내어 보이는 것이 신조(新造), 그러던 사람도 이력(履歷)이 나기 시작하면 불과 사오 개월에 근 만 원을 벌었다는 소식이 도니, 알 수 없는 것은 이 골동세계의 변화이다. 이러한 소식이 한번 돌고 보면 너도나도 허욕(虛慾)에 떠도는 무리가 우후의 죽순처럼 고물(古物)! 고물! 하고 충혈이 되어 돌아다니니, 실패와 성공, 기만과 획리(獲利)는 양극삼파(兩極三巴)의 현황(眩煌)한 파문을 그리게 된다.
16
예술품에는 정가(定價) 없다 하지만 골동 쳐 놓고 가격을 묻는 것은 우극(愚極)한 일이다. 일 전이고 천 원이고 흥정되는 것이 값이고 보니 취리(取利)의 묘(妙)는 오직 방매(放賣) 기술에 달렸지만, 적어도 골동을 사려는 자가 평가를 묻는다는 것은 격에 차지 않는 일이다, 요사이 신문에도 보였지만, 박물관에서 감정한 것이라 하여 석연(石硯) 하나에 기만 원이라는 데 속아서 수백 원을 견탈(見奪)한 자가 식자계급(識者階級)에 있다 하니, 그 역시 제 욕심에 어두워 빼앗긴 것으로 속인 자를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박물관에서는 결코 장사치의 물건을 감정도 해 주지 않지마는, 감정을 해 준다손 치더라도 수천, 수만짜리를 그렇게 명문(明文) 한 쪽 없이 구설(口說)로만 증명하여 줄 리가 없다. 물건 가진 자가 제 물건 팔기 위하여 무슨 조언작설(造言作說)을 못하랴.
17
그것을 그대로 믿고 속아 사는 자가 가엾은 우자(愚者)가 아니고 무엇이랴. 물건을 기매(欺賣)하는 자는 오죽한 자이랴만 그것을 속아 대접하는 것은 요컨대 제 욕심에 제가 빠져 들어간 자작얼(自作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수원수변(誰怨誰辯)이지, 오히려 속았거든 속히 단념체관(斷念諦觀)하는 것이 달자경역(達者境域)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는 애당초에 물건의 유래를 따지지 않고, 신고(新古)를 가리지 않고, 물건 그 자체의 호불호(好不好)를 순전히 미적 판단에 입각하여 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오히려 현명한 편이다. 애오라지 유래를 찾고 신고를 가리고 하는 데서 파(波)가 생기는 법이다. 물건의 유래를 찾고 신고를 차리자면 자기 자신이 그러한 식견(識見)을 갖고 있어야 물건도 비로소 품격이 높아지는 것이요, 골동의 의의도 이곳에 비로소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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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판단과 남의 품평(品評)은 오히려 법정에 선 변호사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항상 주석판사(主席判事)가 될 만한 식견이 없다면 골동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다. 골동이라 하면 단지 서양 말의 ‘큐리오(curio)’라든지 ‘셀텐하이트(Seltenheit)'라든지 '브리카브라크(bric-à-brac)'와 글자도 다를뿐더러 발음도 다르고 내용까지도 다른 것이다. 골동은 ‘비빔밥’ 이 아니요 ‘가라쿠타(雅樂多)’뿐이 아니다. 그러한 반면(反面)의 성질도 있기는 하나 동양에서의 골동 정의를 정당하게 내리자면 “역사와 식견과 인격을 요하는 취미 판단의 완상(玩賞) 대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 즉 전통을 요하는 것으로, 소위 하코가키〔箱書, 유서(由緖)〕라는 것이 중요시되는 것이며 식견을 요하는 것이므로 개인주의적 윤리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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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구(千里駒)도 백락(伯樂)을 기다려서 비로소 준특(駿特)해지고 용문(龍門)의 오금(梧琴)도 백아(伯才)를 기다려 비로소 소리나듯이, 골동도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가치와 의의가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다.
20
반면에 골동의 폐해는 또한 이러한 특성에 동존(同存)하여 있다. 전통을 중요시하므로 완고(頑固)에 흐르기 쉽고, 식견을 중요시하므로 여인동락(與人同樂)의 아량이 없고, 인격을 중요시하므로 명분에 너무 얽매이게 된다. 고만(高慢)하고 편벽(偏僻)되고 고집된 것이 골동이다. 가질 만한 사람이 아닌 곳에 물건이 있는 것을 보면 조만간 누가 찾아갈 입질물건(入質物件)을 찾지 못하고 유질(流質)된 물건으로밖에 아니 보인다. 따라서 가지고 있는 사람까지도 전당포 수전노(守錢奴)의 전주(錢主)로밖에는 더 보이지 않는다. 요사이 이러한 전당포주가 매일같이 늘어 간다. 이곳에도 통제의 필요가 없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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