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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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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녹색의 계곡
 
 
 

1. 녹색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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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서늘하다 . 연록의 날개를 보기좋게 버리고 백금(白金)의 태양아래 고운 밀어를 대지에 보내는 나무그늘도 좋거니와, 나무마다 은령(銀鈴)이울리듯 오월의 미풍은 더욱 더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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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푸르고 나무도 푸른데 일대의 계곡조차 녹색으로 빛나지 않는가. 계곡 반석위에 가만히 앉아 고요히 물소리를 들어보면 대지의 심장이 그 홀로 파동을 전하듯, 시냇가의 찔레꽃은 한 송이 두 송이 눈이 덮인 듯 하여, 그 눈빛의 송이는 푸른 계곡을 백금의 목걸이로 얽매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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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송이마다 눈이 내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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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고 하얀 꽃떨기가 물 위에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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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결도 정이 깊어 노래 부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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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구름송이 물 위에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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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흰 송이도 물 위에 덮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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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물 수 놓은듯 물결이 고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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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숲을 보고 찔레꽃을 따며 생각만은 먼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찔레꽃 송이에 행복이라고 써서 물결 위에 던져보고 또는 옛날의 애인이여! 하고 써서 던져도 보는 것이다. 아름다운 계곡과 물과 노래! 나의 심장 위에다 저 희고 흰 찔레꽃을 수 놓고 싶다. 행복과 청춘과 ── 그러나 지평선 위에 몰려오는 검은 구름이여! 나는 북국의 무명 시인 ‘젠마하리’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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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계곡에 물이 흐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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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심장의 복판에는 눈물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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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산비들기가 우는가? 나도 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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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시를 생각하였다. 고요한 시냇가를 찾아서 나의 전신(全身)을 녹색의 비단 속에 휩싸고 말때, 나는 옛날의 잃어버린 노래가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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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저 위엔 범국草[초]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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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아래 저 밑엔 꽃장포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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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새도 흥이 겨워 울고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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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번듯이 누워 먼 하늘을 바라보니, 무변창공에는 흰 구름이 한 점 조용히 흩어져 하늘가에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2. 오월제(五月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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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아름답다. 한(限)껏 살고 싶다. 일년 중 이달같이 정열과 매력을 느끼는 달은 다시없을 것이다. 백화가 어지럽게 피어 그 난만한 사월은 창부와도 같아서 보기가 싫고, 칠 팔월의 타는 햇살은 전쟁의 기분과도 같아서 재미가 없고, 구 시월의 낙엽은 계집의 한숨과도 같아서 보기가 섧고, 동지섯달의 흰 풍경은 늙은 철학자와도 같아서 그 쌀쌀한 것이 재미가 없다. 그러나 오월은 나의 애인이다. 오월은 서정시요, 가희(歌姬)요, 무용이요, 그림이다. 연록(軟綠)의 스카프를 하늘위에 날리고 은방울의 노래를 보리밭 위에 보내며, 맨발로 계곡을 다름질하는 나의 오월은 나의 애인이다. 오월제에 나가자. 오월의 노래를 들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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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융단을 깥아놓은 향훈(香薫)의 벌판에는 송아지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며, 오월의 가희(歌姬) 종달새는 푸른 하늘이 제 무대라도 된듯이 맑은 구슬을 시냇가에 흘리며, 고운 멜로디를 내지 않는가. 오월의 보리밭은 그녀의 금발과도 같이 훈풍 아래 이리넘실 저리넘실 금물결을 헤이고, 끝 없는 지평선에는 산봉우리가 자주빛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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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약동의 계절! 오색의 옷을 입은 무희는 초록의 숲에서 즐거운 반주를 보내고 있다. 한 송이 들꽃을 가슴에 꽃고 줄줄이 늘어진 수양버들 아래서 한 마리 새와 함께 몽상의 밀어를 보내고 싶다. 내 마음도 연록으로 잎이 퍼지고 내 영혼도 녹색으로 줄이 늘어질때, 이 심장의 새는 푸른 하늘이 그리워 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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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하늘이여! 녹색의 나무 그늘에는 그대를 부르는 새들이 있지 않은가? 때가 지나기 전에, 녹색의 여름이 가기 전에 노란 산비들기처럼 그대가 그리운 것이다. 마음껏 울어볼까? 그의 대답은 저 천사만지(千紗萬枝)의 버들 위에 매어두고,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그 숲으로 날아 가리라. 오월은 바로놀고 뛰는 시절이며, 한 달이 천 년 같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 정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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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오십 전 한 푼을 주고 이웃집에서 목수국(木水菊) 한 뿌리를 사다가 심었다. 물을 주고 아침저녁으로 가꾸어주고 또는 비료를 주고 이렇게 정성껏 길렀더니, 눈같이 하얀 꽃이 사발같이 크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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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재에서 문을 열고 항상 바라보며 그 청초한 맵시에 그만 취하고 말았다. 아내는 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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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꽃을 착실히 좋아하는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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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빙긋이 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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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소? 세상에 저 꽃보다 더 고운 것이 어디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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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 보다도 저 꽃이 더 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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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내는 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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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림도 없소. 당신이 무엇이 고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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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군요. 저 꽃이 내 사랑을 다 빼앗고 말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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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내도 웃었다. 꽃 한나무가 우리에게는 적지 않은 기쁨이었다. 그리하여 작약도 피고 땅개나리도 피기 시작하여 우리의 작은 정원은 아름다운 자랑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 꽃과 같이 붉을진데 또는 그 빛과 같이 정열적일 것인데, 사람은 좀더 값있는 동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춘희(椿姬)에 나오는 주인공이 항상 춘화를 가슴에 꽂고 다녔다는 것과, ‘에베레선’에 나오는 주인공이 그의 침상 위에 수선화를 놓고야 잠이 들었다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에피소드라고 말할 수 있다.
 
 
 

4. 어느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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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누워 잠을 자려니까 이웃집에서 레코드를 작게 틀어 놓았다. 그리고 유행가, 수심가, 배따라기 그 애련한 멜로디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집에는 늙은 처녀가 있다. 아마 잠이 안와서 레코드만 틀고 듣는 모양이었다. 그 역시 사랑이 그립고 그가 그리워 그의 마음을 노래로 잊어볼려는 심사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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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을 다시입고 거리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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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촌이라 사면이 죽은듯이 고요하나 아직 하늘에서 별들만이 반짝거리고 있다. 잔디밭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니 길가 술집에서는 막걸리를 들어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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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시구 좋다. 지화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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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세월 가지마라 아니놀고 어이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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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즐겁게 놀고 있는 남자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잔디밭으로 가서 두 다리를 쭉 뻗고 고요히 앉아있을 려니까, 저편 마을에서는 맑은 기타소리와 같이 아름다운 노래가 바람에 실려온다. 퍽이나 세련된 음성이었다. 밤은 날개를 버리고 별들은 대지의 비밀을 엿보고 있는데, 한마디 애처로운 노래는 나에게 적지 않은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얼마동안 귀를 기울인 채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나의 심신은 그 멜로디같이 한 개의 구슬이 되어, 저 별같이 허공으로 날아가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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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보다높은 인간의 전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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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였거니와 모든 욕심은 세상을 떠난 그 예술의 경지에서만 사람의 값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원문】녹색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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