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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문학과 그 비판적 요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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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2
권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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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문학과 그 비판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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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진 군 대 박영희 군의 논전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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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지광」 지난 12월호에 발표된 김기진 군의 문예평론에 대한 박영희군의 박론은(동지 1월호 소재) 이것이 오랫동안 적료(寂廖)하던 문예 비평단을 위하여서도 많은 흥미를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발생기에 있는 조선 계급문학의 지도적 원리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없지 못할 논쟁인 동시에 앞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리라고 우리 예기하여 마지않는다. 왜 그러냐하면 쟁의가 없는 곳에는 발랄한 생명의 전개를 기기(企期)할 수 없는 것이며 비판이 없는 곳에서는 또한 사물의 그 진수를 옳게 발견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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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누구는 말하기를 문명은 비평의 산물이라고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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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의미 아래서 나는 양군의 논전이 어떤 공리적 욕구에서 개인적 인격적 침해를 감행치 않는 범위에 한하여서는 얼마든지 앞으로 지속 또는 전개되기를 환영하는 바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나의 소견이 일단 불철저하니까 이것을 공개하기에 주저치 않는 바이다. 그러면 잔소리는 그만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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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도화선이 된 김 군의 문예평은 그것이 너무도 단편적이었더니 만치 그것만을 가지고는 군의 문예에 대한 중추적 사상을 음미하였다고는 단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군의 과거의 업적만을 가지고서라도 아직까지 군을 프로예술권의 인(人)으로 긍정치 아니하여 왔을 것은 세간이 다같이 말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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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 『조선지광』 11, 12월호 이후 기타 신문, 잡지 등에 발표한 군의 문예평은 그것을 이제 와서 일일이 지적하여 말하기는 어려우나 개평과 총평을 막론하고 프로문예 비평가의 태도로서는 너무도 모호한 혐(嫌)이 없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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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김 군은 한 작품을 평할 때에 그 작품의 경향과 정신이 나변(那邊)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전에 군의 소위 소설로서의 요구하는 필요적 조건 즉 묘사·심각·실감 등의 모든 표현상 기교의 여하만을 평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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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군의 주장과 같이 “소설은 한 개의 건축이다. 기둥도 없이 서까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입혀 논 건축이 있는가?”하는 이와 같은 의미에 있어서는 이상의 취한 태도에 모순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기둥 한 개나 서까래 하나만 없어도 그 건축은 완전한 건축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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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군의 소위 ‘소설은 한 개의 건축’이라는 이 말은 그 결론이 예술의 독립적 존재성을 주장하는 데에 떨어지고만 것이니 이것은 곧 예술을 위한 예술을 고조하는 태도에 불과하다고 아니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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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물론 순수 예술 해부학상으로 보아서는 통과될 논리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경향이나 정신을 가진 작품이던지 그 작품이 작품으로서의 요건을 구비한 작품 즉 작품화한 작품이면 곧 예술적 가치도 시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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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군이 당초에 주장해 온 프로문학, 또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려 하는 프로문학, 이것은 결코 초계급적, 예술지상적, 개인주의적인 저 소위 순수예술은 아니다. 계급예술이다. 집단적, 사회적, 대중적 의식을 대표한 개인의식의 표현예술이니 즉 전무산대중의 ××을 목적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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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앞으로 무산계급의 계급적으로 완성을 이루며 자체의 ××가 실현되기 전에는 프로예술에서 향락적 요소를 발견하려든가 또는 예술의 독립적 가치를 말하려드는 이상적 공론은 절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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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새삼스레 프롤레타리아예술의 그 본질을 논한다는 것은 좀 메스꺼운 노릇 같다마는 원래 예술이란 고정 불변하는 독립적 영원성을 가진 물건은 못 된다. 시대적 전환과 사회적 환경에 의하여 인류의 문화는 ― 법률ㆍ도덕ㆍ종교ㆍ철학ㆍ예술 ― 시시각각으로 끊임없이 변화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은 맑스 이후의 모든 경제학자ㆍ사회학자가 다 같이 간파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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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시대의 문화와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가 같지 아니하며 또한 현대 즉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와 장차 앞으로 될 사회의 문화가 같지 않을 것은 누구나 다 같이 아는 사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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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와 같이 변천을 하느냐 하면 인류의 문화라는 것은 언제든지 그 시대, 그 사회의 필요적 욕구에 의하여서만 건설되는 것이며 또한 그 한도내에서만 문화적 가치와 그 생명을 보지하게 되는 까닭이다. 18세기 이전에 귀족이 농노에게 베푼 도덕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과되지 못하여 현대의 정치·법률이 또한 미래사회는 그만두고라도 역전하여 과거 봉건사회에서 수용되지 못한 것은 시대와 문화적 작용의 긴밀한 관계를 잘 설명하는 일례다. 예술도 문화의 일부분인 이상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고전문학과 불란서 혁명문학이 같지 아니한 것도 그 한 예며, 세기말적 퇴폐파의 예술과 노농러시아의 구성파예술이 같지 않는 것도 한 개의 호례(好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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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더 한번 쉽게 말하면 법률ㆍ도덕ㆍ철학·문학 할 것 없이 일체 문화라는 것은 그 시대 그 사회에 유익을 주는 한도 안에서만 존재적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요, 여분의 물건 즉 유해무익한 물건은 전부가 여지없이 말살을 당하고 마는 사회진화상 필연의 결과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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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작용은 시대전환기에 있어서는 기성문화 대 신흥문화의 충돌을 야기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계급투쟁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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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급사회에 있어서는 그 사회의 문화는 지배계급의 전속물이라 하여도 가할 만치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배계급은 자체의 영구적 보존을 하여 그 문화를 사수하며 절대 합리적인 것으로 주장한다. 여기서 소위 예술은 영원, 독립이라는 데퉁맞은 언구조차 나오게 된 것이다. 그네 즉, 지배군의 주장에 의하면 기성문화를 배척하며 파괴하려하는 것은 소위 문명한 사회를 도리어 암흑케 하는 것이다. 역사의 진전을 저주하는 것이다. 물론 지배계급에 있어서는 이것도 무리한 주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계급의 몰락을 상상할 때에 그 얼마나 가공할 사실이며 비통할 사실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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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랫동안 그네들의 밑에서 쪼들리고 들볶여서 여물대로 여문 피지배군은 재래의 소위 문화라는 것이 자기네의 복리를 위하여 존재한 것이 아니요 도리어 자기네를 ××하기 위하여 지배하기 위하여서만 성립된 특권계급 즉 지배계급의 전횡문화인 이 사실을 한번 각성하자. 어떠한 마술에도 속지 않는다. 도리어 이것을 배척하기 위하여 ××하기 위하여 계급적으로 단결을 부르짖으며 자계급을 위한 문화 즉, 계급문화의 수립을 주장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함에는 어떠한 타협적 수단 하에서 될 것이 아니라 오로지 투쟁적 ×××운동만이 가능한 것이니 이에 있어서 또한 타협적 행동은 절대 금물인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타협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상대자에게 유익을 주는 범위 내에서만 성립적 가능성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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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한 사실을 혹 부정할 양반이 계실는지 모르나 봉건문화를 깨트리고 현사회, 문화를 건설한 자본주의 계급은 무엇보다도 가까운 선구자가 아닌가? 이것은 불란서 대혁명이 이미 우리에게 교시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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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 문화의 한 부분인 문학도 이 엄연한 자연성적 변환 법칙을 벗어나서는 일시도 존재론적 가치를 보지(保持)할 수 없는 것이니 오늘날 부르주아문학이 향락적이요, 보수적이요, 퇴폐적임에 반하여 프롤레타리아의 예술이 선전적이요, 도전적이요, ×××이요, 선풍적인 그 실재적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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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찰스키가 “×××과정에 있는 무산 계급의 예술은 낭만적, 비극적, 폭풍적 형식을 취하는 외에는 정제한 내용을 가질 수는 없다. 그것은 무산계급이 계급적 완성을 이루기 전에는 무산계급의 독립적 문화를 소유할 수 없는 까닭이다.”라고 한 이것도 아마 상론한 이유를 의미한 것이다. 전전하광랑(前田河廣郞) 씨는 『문예시장』에 다음과 같이 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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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예운동이라는 것은 사회운동의 호내(弧內)에 있는 일개 운동 종류에 불과하다. 우리 당면의 적은 부르주아문단에 의하여 대표되는 부르주아 사상가요, 그 기구요, 그 계급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품을 위한 작품전을 저네들에게 시(試)할 것이 아니라 사상을 위한 사상전으로 최종을 다투어야 한다. 그래서 전 부르주아 문단적으로 우리가 항복을 받아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는 당초부터 사상전의 제1전선을 분담한 이상 어디까지든지 비약적으로 자본주의의 아성을 돌관(突貫)하기에 전 정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문학운동이 문학에만 국한된다면 그것은 차라리 근본적으로 거부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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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리고 “어떠한 전략을 쓰기 위하여 우리는 적으로 변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정면공격을 개시하여야만 한다. 적이 우리를 위협할 때 현재의 우리가 모든 중간분자 및 반동사상의 고압에 사위(四圍)될 때 우리는 항복이냐 분사(奮死)냐?”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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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얼마나 프로문예의 전투성을 고조한 말이며 프로문학의 계급적 임무를 촉성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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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약론에만 의할지라도 김 군의 논법은 그 자체의 모순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김 군의 그 모순된 논법의 일례를 다시 들면 「조선지광」 12월호의 소재 「문예월평」 서두에 “내가 이 비평의 붓을 드는 목적은 우리가 가진 문예가의 개인적 창작에서 그 일반적 가치를 발견함에 있고 따라서 작가가 제시하고자 한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또는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이것을 주석하며 또는 작에 나타나는 작가의 정신, 창작에 대하여 취한 작가로서의 용의(用意)를 해부 비판하여서 그것을 사회적으로 평가하고자 함에 있다.” 이렇게 먼저 자기의 행할 바 임무를 말하여 놓았다. 이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로 프로문예비평가의 의례히 취할 태도를 선명히 한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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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선언한 군이 최서해 씨의 「이역의 원혼」을 어떻게 평하였는가? 이 작품은 이역에 추방된 무산가장의 참상을 설명하기 위하여만 그린 것으로 새로운 진로에 대한 어떠한 암시가 없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의 포촉(捕促)과 필치의 원숙이며 기타 실감만을 논하여 작품이 요구하는 요건을 구비한 작품이라고 평필(評筆)을 하(下)였으며 끝으로 ‘작자는 이와 같은 비애를 어떻게 하느냐. 이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비애가 있다고 말하였음에 그친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비애가 있느냐. 이것을 어떻게 하면 제거하느냐? 하는 것은 이 단편에서 묻지 않는다.’ 이와 같은 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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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슨 모순된 평이냐. 군이 서두에 선언한 문구 중 ‘일반적 가치’라든가 ‘사회적 가치’라는 것은 무슨 의미로 써 놓은 것이냐. 이 작품 중에서 그와 같은 요소를 발견할 수가 있었으며 또 그것을 지적하여 놓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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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다만 작가의 능숙한 묘사에만 찬사를 가하였을 뿐으로 조금도 어떠한 신국면을 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이 작품에서 그와 같은 것을 묻지 않겠다고 성언(聲言)하였으니 이것이 얼마나 문예비평가 아닌 프로문예 비평가의 모호한 태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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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껑충 뛰어가서 우리와 입장이 다른 염상섭 씨의 『미해자(未解者)』, 더구나 아직 한 도막 밖에 발표하지 않은 이 작품 위에다 평필을 던지어 왈 “사건의 연락과 묘사의 기교는 항상 보는 바와 같이 감히 타인의 추종을 허치 않는 바가 있다”고 대언(大言)하였으니 이것이 또 무슨 실태(失態)인가. 문제의 인물이라는 것은 그만두고서라도 그 작품의 정신이 나변(那邊)에 있는 것을 포촉하기 전에 평필을 든다는 것이 먼저 실수가 아닌가. 군이 이 반토막 작품에 붓을 대게 된 것은 결국 그 역시 작가의 필치상 능숙한 수완만을 찬양하기 위하여서만 취한 행동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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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반면으로 이기영씨의 『박선생』이라던가 『천치의 논리』 같은 작품은 비록 불완전하나마 현대 사회 이면에 잠재한 일부의 추악 면을 폭로한 동시에 이것을 공격하기에 정력을 극진한 작품이니만치 작품이 주는 효과가 없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소위 작품으로서의 요구하는 요건을 구비치 못하였다는 조건 하에서 군의 사형선고를 대담히 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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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김 군의 논법에 모순이 있었다기 보다는 프로문학에 대한 상식이 없는 김 군이 아닌가까지 의심을 아니 품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박영희 군의 『철야』에 대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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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예술이라는 것은 초계급적, 예술지상적, 개인주의적, 향락적, 그야말로 예술화한 예술이 아니라 선전을 위한 예술, 전투를 위한 예술이라는 말은 우리가 입이 아프도록 지껄이고 귀가 저리도록 듣는 바가 아닌가. 이것을 부정하면 당초부터 문제도 되지 않는다마는 이 사실을 시인하는 이상에야 어찌 작가 박 군이 ‘계급 운운’을 쓰기 위하여 주인공 명진이를 썼고 이 글을 썼다는 것이 무엇이 모순된 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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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어떠한 한 개의 제재를 붙들고서 다음으로 어떠한 목적지를 정해 놓고 그러고서는 그 목적지에서 그 제재로 붙잡은 사건을 반드시 처분하고야 말겠다는 계획을 갖고 그리고서 붓을 들어 되는 안 되는 그 목적한 포인트를 끌고 와 버리는 것이 박 형의 창작상 근본적 결함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되든지 안 되든지’라는 것은 논의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직흥시인(直興詩人)이나 감각파가 아닌 프로문예가는 개인주의적, 단독적 주관의식의 표현을 피하여 대중적, 사회적 의식을 대표한 객관적 개인의식의 표현을 주로 하는 것이니 먼저 제재를 구하여 놓고 일정한 목적지를 정한 다음에 그 제재로 어떤 사건을 목적지로 끌고 가기 위하여 붓을 드는 것은 아마 박 군 뿐만 아니라 프로문예가일 것 같으면 누구나 다 같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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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말할 것 없이 여명기에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행위는 오직 계급적 투쟁적 기치 하에서만 그 의의를 갖게 되지 않는가? 김 군은 이 엄연한 사실을 몰락한 혐(嫌)이 없지 아니하니만치 박군에게 프로문예비평가가 되기 전에 ‘계급의식 운운에 호감을 갖기 바란다.’는 충고 받더라도 조금도 지나치는 주문이 아니라고 하겠다. 나 역시 김 군에게 충고하고자 하는 바는 좀 더 평자적 태도를 계급적으로 선명히 갖는 동시에 한 작품에 대한 평필(評筆)을 군의 소위 작품에 요구하는 요건의 구비 여하에 옮기기 전에 먼저 그 작품이 말하는 경향과 정신 여하에 치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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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로부터는 다시 박 군에게로 필단을 옮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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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군의 이론에 있어서는 대체로 모순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김ㆍ박 양군의 어떤 편이냐 하면 박 군의 편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섭섭한 것은 박 군의 이론이 좀더 구체적, 계통적으로 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비록 사소한 문제나마 박 군의 논법에 대하여 어떠한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김군이 너무도 작품상 표현과 묘사에만 과중시하였음에 비하여 박 군은 너무도 이것을 도외시하는 혐(嫌)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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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물론 김 군의 말대로 한 개의 완성된 건축물은 아니다. 하물며 프롤레타리아 작품이랴. 박 군의 말과 같이 프롤레타리아 전문화를 한 건축물이라하면 프롤레타리아 예술은 그 구성품 중의 하나인 서까래도 될 수 있으며 기둥도 될 수 있으며 기왓장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의 말을 빌어서 큰 기계의 한 치륜(齒輪)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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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 용심(用心)하지 않으면 아니 될 조건이 있으니 그것은 기둥이면 기둥, 기왓장이면 기왓장, 치륜이면 치륜, 그 맡은 바 실질적 임무와 기능을 다하기 위하여서까지의 노력 이것이다. 다시 말하면 포촉한 제재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우리는 정로(精勞)를 극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니 왜 그러냐 하면 같은 사건도 이것이 표현 여하에 의하여 인과적 효과를 낳게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김 군의 이른바 ‘실재감’이라는 것과 혼동시하여서는 근본부터 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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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입증하기 위하여서 한 개의 작품을 ― 작술(作述)을 김 군은 건축에 비하였고, 박 군은 치륜에 비하였음에 반하여 장검에 비유하여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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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장검은 결코 평소의 애검가들이 가지는 그와 같은 장검은 아니다. 급격히 몰아들어오는 강적을 쳐물리치기 위하여 만든 장검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피갑(皮匣)도 없고 자루도 험하고 칼등도 함부로 굽었다. 광택도 물론 없다. 그러면 애검가가 이 장검을 볼 때에 뭐라고 평할 것인가? 장검이 요구하는 요건을 구비치 못한 불완전한 장검이라고 말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게 무슨 장검이냐고 발길로 차 내버리거나 않았으면 만행(萬幸)이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미구에 짓쳐들어올 적을 방비하기 위하여, 격파하기 위하여 응급히 제작하는 이 장검에서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정제한 전형과 광택 있는 맵시를 구할 것인가. 피갑(皮匣)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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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아무 것도 구하여 요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오로지 바라는 것은 먼저 자호(自好)한 강철을 취택한 다음에 낙락장송이라도 일도(一刀)에 참단(斬斷)할 날카로운 백인(白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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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취택하는 제재는 강철이다. 표현은 백인(白刃)이다. 목적은 다 같이 적을 물리침에 있다. 애검가는 침을 뱉어도 좋다. 예술비평가는 어떠한 악평을 내리든지 자유에 맡긴다. 장검은 그의 임무만 마치었으면 그만이다. 작품은 프롤레타리아의 문화적 사명만을 다함에서 족하다.
 
52
여기에 참된 프롤레타리아 예술비평가가 있다. 하면 먼저 그 강철의 양부(良否)를 심사하고 다음으로 검인(劍刃)을 만져 봄에 그칠 것이다. 그리고 여분의 요건은 평화기에 가서 찾을 것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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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한 바에 의하여 계급문학의 대의와 비평가의 결정할 태도만은 불충분하나마 그대로 설명된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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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앞으로는 작가에 관한 몇 가지 말을 간단간단하게 적음으로써 본문의 끝을 맺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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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프로문예가는 작품을 쓰기 전에 문단적 분위기를 벗어나서 문학부 정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뿐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체 문화를 근본적으로 ××하는 의미에 있어서 한 부분에 불과하는 모든 예술도 다 함께 거부당할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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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계급적으로 입장이 다른 만치 문화적으로도 이해가 다른 까닭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문학 부정도 본질적 문학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의 지위에 뿌리박고 있는 즉 기성문학, 우경문학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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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요구가 전통적 문화적 관념에서 떠나서 새로운 문화적 ××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입장에 토착한 그대로 지엽만을 신시대, 신사상에 내뻗치어 본다는 것은 허위요, 가면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뿌리가 다른 생명이 보전될 리도 만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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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전습적(傳習的), 기성적, 관념의 노예적 경역(境域)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사상의 파지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지식도 필요하다. 연구도 필요하다. 그러나 시대적 사상을 통찰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내적 의식을 주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부르적 근성을 제거한 그 밑에서 준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요구하는 참된 시대 사상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시대의 상을 인쇄물이나 기타 언론같은데서 듣고 구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흉저(胸低)에서 이것을 발견해 내야만할지니 이것은 전무산 대중의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같이 가지고 있는 요구에 공통한 사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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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상을 부인하는 무리와 먼저 사상전을 하기 위하여 여기에 비로소 우리의 붓을 들지니 작품의 형식이나 묘사와 그 기교 같은 것도 자기 자신이 가장 만족하는 그것을 취할 뿐이요, 남의 것을 ― 재래의 것을 ― 모방할 필요는 없다. 이에서 우리는 새로운 형식을 가진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적 선구적 사명을 가진 작가의 임명(任命)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비평가는 또 이 기운을 촉진하기 위하여 더 한층 예리한 민감을 갖지 않아서는 안 된다. 비평가의 사명도 이에서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계급문학과 그 비판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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