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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과 아부(阿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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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8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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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아부(阿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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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나 권력 그것보다 권력에 아부하는 그 아부가 더 무섭다. 권력에는 그래도 사리의 분변이 어느 정도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아부는 맹목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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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에 있어서도 소위 그 내선 일체를 부르짖던 그 정책보다 그 정책에 아부하는 그 아부배가 더 무서웠다. 자기 개인의 일시적인 영화를 위하여 혹은 자기의 신변 보장만을 위하여 혹은 사리에 눈이 어두운 이 아부의 맹종은 과연 무서운 것이었다. 거기엔 수단도 없고 방법도 없었다. 권력이 말하는 정책에 협조가 없으면 그저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어 놓으므로 아부의 도구를 삼는 것이 그들의 행동이었다. 이것도 일본인이 아니고 동족인 같은 혈통끼리의 행동이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이 와중에서 벗어나던 8·15를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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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부배의 맹종에 나도 제 나라에서는 살 수 없는 한 사람이었다. 일어로 글을 쓰라는 위협, 조선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위협, 머리를 깎으라는 위협, 요즘은 무엇을 하고 지나느냐는 따짐, 온갖 위협과 따짐이 날이 갈수록 조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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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같은 문화선상(文化線上)에서 예술을 탐구한다는 동지들에게까지 이러한 모함을 받게 되었을 때는 이미 나라는 존재는 내게 없었다. 파리 단련에 책을 볼 수가 없어서, 파리와 싸우는 이야기를 썼다가, 어떤 문예 평론가에게서 비국민이라는 공격을 받던 일은 연중(然中)에서도 잊히지 않는 기억의 한 토막이다. 드디어 천황 폐하를 불경했다는 모 선배의 고발로 유치장 신세를 면치 못하게 까지 되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부의 힘은 이렇게 백성을 괴롭혔다. 어떤 문예 좌담회 석상에서 파리 이야기를 쓰는 것 같은 비국민적인 정신의 소유자는 응당 징용감 밖에 안 된다는 논의가 있음을 보았을 때는, 나는 서울에서 기류계(寄留屆)를 빼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방으로 몸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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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방 역시 같은 무리의 발호에 끓고 있었다. 이 불시의 틈입자가 이상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같은 방법의 위협과 따짐은 묘하게도 같았다. 이 틈입자(闖入者)의 정체를 조사하는 기간이 좀 지연되었던 것이 다행으로 그 조사 도중에 8·15를 맞게 된 것은 얼마나 나를 위한 환희이었으랴. 드디어 8·15는 나를 찾아 주었다. 나를 위협 하던 무리들의 수그러진 머리를 바라볼 때, 나는 일종의 승리감을 느꼈다. 유치장에서 나의 뺨을 치고 포악한 행위를 임의로 자행하던 형사들의 살려 달라는 호소, 그러나 그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불과 월여에 이들은 나에게 외면을 강행하는 존 재로 변하였다. 8·15이후의 권력에 이들은 또 아부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이미 권력 잡은 기관에서 권세를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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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권력 없는 한 평민의 존재인 나는 이들의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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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나에게 산 감정이 자기네들에게 미칠 것 같아서 이미 자기네 들이 잡은 권세로 나를 여전히 위협하지 않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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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의 아부란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아부란 침해를 받게 되는 것은 선량한 비권력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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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에도 그들의 표변은 권세를 부렸고, 9·28 수복 이후에도 이들은 또 권세가 있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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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는 나라를 찾은 날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계승되는 날이다. 그러나 이 새롭게 나라가 계승되는 새 나라가 아부마저 계승해 받지 않아서는 안 되었던 이유는 어디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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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15를 맞을 때마다 이 아부배들이 연상되고, 그것이 우리나라 민족이 운명적으로 짊어지고 나온 민족적 근성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자못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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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심우(審友》(1956. 8.) ― 원제는 ‘8 15’
【원문】권력과 아부(阿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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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 심우 [출처]
 
  195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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